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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가해 한 세상을 다루고 있는 사고력이 풍부한 글을 한 편 읽었다. 세상의 모든 것을 알고 그것을 주관하는 자를 불러내어 인간들의 경외감을 불러내는 이야기는 어떤 면에서나 신비롭고 흥미진진한 내용이었다. 인간의 한계를 인정하고 그 한계를 바탕으로 그 위에서 군림하는 존재에 대한 의미를 다루는 일은 독자가 다다를 수 있는 영역은 아니다. 그 내용이 모나드의 영역으로 표출되고 있다.
한 공간에서 사체로 팔만 발견된다. 경찰들은 아연 긴장한다. 그 사건을 해결하기 위한 경찰들의 노력은 엉뚱한 이야기로 발전한다. 어떤 제과점에 빵을 만드는 아르바이트 생으로 한 인물이 들어오고 그 인물이 인간의 팔을 모델로 한 빵을 굽는다. 그 빵이 사체의 팔과 같은 모양으로 나타난다. 그러면서 어떤 교수가 그 빵을 사 가고, 그 빵에 대해 기고문을 쓴다. 그러면서 그 빵이 널리 알려지게 되고, 많은 사람들이 빵을 사러 온다. 경찰은 그 빵의 실체를 조사하게 되고, 빵을 만든 학생은 사라진다. 그리고 그 빵집에 기고문을 쓴 교수가 오게 되는데, 빵을 만든 학생과 같은 눈빛이다. 흔들리는 눈빛은 빵을 만든 학생과 똑 같다. 그것은 빙의의 의미로 다가온다. 빵을 만든 학생이 교수이고 교수가 신이다. 그 신을 이 공간에서는 god라는 이름으로 말한다. 이 글을 이끌어 가는 주체는 god이다. 그는 모든 것을 안다. 만나는 사람들의 미래까지도 알고, 그 세상도 안다. 그리고 그것을 경우에 따라 적당하게 이야기한다. 그것은 함께하는 사람들에겐 지극히 경이롭고 신비로운 세계다. 인간으로 빙의한 god은 사람들과의 관계도 스스럼없이 해나간다. 주변에 사람들을 두고 그들의 도움을 받기도 한다. 그들에게 자신의 신비적인 능력을 보여주기도 한다. 그 결과가 잘못된 세상을 고치기 위해서 나타난 것으로 그려져 나타난다. god은 상징적인 존재다.
god은 공원에서 사람들을 만난다. 그리고 그 사람들의 미래와 현재, 또한 심리적 상황까지 그대로 말해 준다.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는 신비적인 능력으로 나타난다. 그리고 자신의 존재를 제시하면서 신비로운 영역으로 사람들을 몰아간다. 다음 날은 많은 사람들이 몰려오게 되고, 자신은 경찰서에 폭력의 이름으로 구금된다. 그리고 그는 재판을 받게 된다. 그 과정 속에서 god은 인간 존재의 의미를 제시하고 궁극적으론 파멸의 길을 가게 될 것임을 말한다. 검사들은 그의 논조에 당혹감을 느낀다. 그들은 절재적인 존재인 그가 법정에 서게 된 사실을 궁금해 하는 상황까지 이른다. 그리고 질문을 한다. 왜 법정에 서려고 한 것입니까? 그것을 얘기하면 모나드가 훼손된다고 말한다. 그리고 짧은 시간 안에 일어나는 일을 근거로 예언을 한다. 그 예언이 맞아 들어가는 상황이 그려지면서 god이 이 공간에서 빙의로 활동하게 된 이유가 그려진다. 다양한 공간을 열어 어떤 한 공간이 잘못되어 있는 것을 바로잡기 위함임을 말한다. 그리고 파손된 다른 세계가 기워지고 인간의 세상 속에 있었던 사체는 사라지면서 모든 사람들이 일상의 삶으로 돌아온다.
모나드의 영역은 세계의 구성 요소로, 모든 존재의 기본적이고 궁극적인 실체를 뜻하는 라이프니츠의 용어다. 이 어려운 용어를 이야기를 통해 풀어내려고 하니까 SF적인 요소도 가미된다. 절대적인 존재를 인간화시켜 인간들과 대화를 나누는 것으로 이야기를 만들어 가면서 문제가 되는 인생의 문제를 해독해 보고 있는 글이다. 이야기는 철학에 기반을 두고 이율배반적으로 절대적인 존재를 제시하며 인생의 본질을 살피고 있는 것이다. 인간들이 지니는 유약성과 신의 영역에 있는 존재 사이의 만남은 무한한 공간과 다양성의 의미로 살아난다. 우리가 만나고 있는 현실도 한 세계로 인정되고 인식되는 것이지 그것이 절대적인 요소라 할 수는 없는 듯하다.
글 속의 검찰들은 지극히 현실적인 존재들로 그려진다. 신비적인 요소를 인정하지 않고 인간화된 god을 치리해 나가는 상황은 그들의 한계로 그려진다. 그들이 만나가면 갈수록 god을 실체는 오리무중이고, 오히려 판단을 내릴 수 없는 지경에 이른다. 죄인의 입장에서 법정에 선 god이지만 그는 항상 당당하다. 방송국에서는 ‘god과 대화해 보자’는 생방송을 기획한다. 그리고 그것을 실행에 옮기면서 많은 사람들이 약 2시간에 걸쳐 god에게 질문하게 한다. 그리고 그것을 생중계한다. 질문자들이 제시하는 사항에 god은 자세하게 대답하고 그들에게 자신의 능력을 가감 없이 인식시켜 나간다. 나중엔 그들이 모두 신의 존재로 인정을 한다.
하지만 인간의 사회는 또 그대로 진행되어 나가고 신을 믿는 자는 믿고 그렇지 않는 자들은 그렇게 살아간다. 즉 원상회복된 사회에서는 언제 무엇이 있었는지 신과의 영역 속의 일은 모든 기억이 마비되고 여상히 흘러간다. “신이 존재한다는 것은 신심이 있는 사람에게는 자명한 일이므로 증명할 필요도 없었고, 다른 사람들은 신의 존재는 증명이 불가능하므로 결국 인간은 신의 본질을 인식할 수 없다는 관점에서 그것은 신앙에 의해 지탱되어야 한다고 생각했어. 즉 어느 쪽이나 신앙이 기반이 되고 있는데, 지금은 신앙이 없는 시대야. 그렇기 때문에 신의 존재 증명 같은 것을 요구하는 것이지.”(p225) 오늘의 현상을 잘 다루고 있는 부분이다. 이 책이 다루고 있는 내용과 오늘의 인간 의식 사이를 잘 규명해 주고 있는 구절이다. 신은 그들끼리의 리그를 만들고 인간은 인간의 유한적인 삶을 살아가는데, 그것이 절묘하게 융화되어 나타나는 것이 삶이다. 인간이 아무리 발버둥 친다 해도 신의 영역까지 어찌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인간은 인간들끼리 그렇게 또 다른 유한한 공간을 누리면서 살아가고 있다. 책은 그런 인간의 영역을 신의 이름을 빌어 구체화하고 있는 것이다.
미스터리한 이야기를 실감나게 읽었다. 저자의 생각이 깊이와 넓이가 대단하다. 아무리 가상의 이야기지만 생각의 폭은 독자들을 압도한다. 그 힘이 이 책을 끝까지 놓지 못하게 하는 마력인 듯하다. 대단한 폭의 이야기를 우리는 듣는다. 인간이 인지할 수 없는 새로운 세계에 대한 사고는 독자의 다양성을 충분히 충복시킬 만하다. 흥미로운 그러나 실감나는 SF 소설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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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작가의 책은 매우 가깝다. 요즘 서점에만 가봐도 한국작가의 책보다는 일본작가의 책이 수도 많고 근처에 책을 사려는 사람도 많다. 일본의 젊은 작가들 책들이 한창 인기 있을때 마구잡이로 읽었다. 온 나라를 들썩일 정도로 인기가 많았지만 나는 영~ 별로였다. 하루키의 책도 전부 다 읽었지만 중학생이 쓴 섹x망상서 같다.(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물론 미야베 미유키작가의 책은 호불호를 떠나-무지하게 좋아한다 ^^- 번역된 글임에도(이어서???) 전율이 흐를 정도다. 아무래도 작가도 많고 책도 많이 내다보면 좋은책도 좋지 않은 책도 좋은 작가도 좋지 않은 작가도 많아지게 되는 법이다. 우리나라도 좋은 작가와 좋지 않은 작가 모두가 많아지길. 워낙에 [시간을 달리는 소녀]를 좋아하는 바람에 [모나드의 영역]을 선택하는데는 망설임이 없었고, 작가의 "나의 최고 걸작.."이라는 말에도 흔들리지 않았다. (작가가 내 최고걸작이라는 말을 하면 전혀 읽고 싶지 않다.) 이 책을 읽기전에 먼저 모나드가 뭔지 공부를 할까 말까 망설였다. 알고 읽으면 더 나을까? 모르고 읽고 다시 한번 더 읽을까? 글쎄, 토마스 아퀴나스군, 플라톤군, 다마스케누스군의 실적에 작가 쓰쓰이 야스타카가 심취했다가 충분하게 이해했다고 착각한 나머지 GOD를 내세워 자신의 편협한 우주관을 말하고 싶었던 것 같다. 처음 등장하는 여자의 잘린 팔 다리는 후반에 펼쳐질 꼰대의 설교를 감추기 위한 예쁜 포장지였다. 미스터리 장르라고 생각하고 나는 이 책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한국이 일본에 제기한 역사인식에 관하여 네 까짓것들이 역사인식에 대해 말하는게 가당키나 하나. GOD이외에는 없다.라고 아무래도 작가의 본심을 드러낸다. 방송을 빙자해서 각자 질문을 하는 여러 직업군의 사람에게 하는 대답은 지식의 깊이는 극히 부족하고 아집이 똘똘 뭉쳐있다. 전혀 이해가 가지 않는 GOD의 대답들이 연속되어 있지만, 대답을 들은 질문자는 전부 이렇게 말한다. "이해는 되지 않지만, 어쩐지 알것 같네요." 소설 안의 세계와 내가 사는 세계, 혹은 또 다른 우주가 존재한다는 이론은 이제 낡고 낡았다. 그것을 교묘하게 새롭고 신선한 듯 꾸며내어 책으로 쓴 작가가 가증스럽다. 얼마전 영화로도 개봉한 태드창의 [당신 인생의 이야기]를 보라. 리니어한 우주든 평행우주든 상관없이 어떤 유명한 철학자의 이름 하나도 거론하지 않을채 어마어마한 철학적 사고와 질문들을 던진다. 그것도 아름답게. 하지만 이 책의 작가는 안이하고 게으르다. "아이, 좀 어렵네요" 라고 말하는 사람에게는 주변의 사람들(당연히 작가다.)이 대신 화를 낸다. "무슨 소립니까. 훌륭한 답변 아닙니까? 라고. 이 대목에서 나는 매우 불쾌한 감정을 느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좀 어렵네~ 영 아닌데~ 별론데~라고 느낀다면, 훌륭한 책인데 니가 무슨 소리를 하는 것이냐고 길길이 날뛰는 사람들에게 둘러싸일 것 같다. 애니메이션이기에 가능했다. 그 수많은 철학자를 알든 모르든 전혀 상관없다. SF도 아니고, 미스터리도 아니다. 그저 책 많이 읽은 늙은이가 알고 있다고 착각하는 것을 자랑하고 싶어하는 책일뿐. 뭐, 어떤 출판사라면 이 책은 그렇게 이해하는게 아니에요~라고 GOD는 그런 분이 아니랍니다~라며 인식개조를 도모할지 모르겠지만 책을 어떻게 읽을지는. 1만원 넘게 주고 산 내 권리다. 닥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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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유명한 작가라도. 자기랑 맞는 작가가 있고 안맞는 작가가 있는듯 싶은데요.. '츠츠이 야스타카'는 '시간을 달리는 소녀'의 작가로 유명합니다 그러나 '시간을 달리는 소녀'는 읽다가 포기했던 책...안 읽히더라구요.ㅠ.ㅠ 그래도 이작품은 신간이고, 궁금햇는데.... 소설의 시작은 강변에 발견되는 여성의 팔로 시작됩니다.. '신이치'경부에게 검시관은 팔이 오랜시간 무엇인가를 만진손.. 즉 '미대생'의 손일 것이라고 추측을 하는데요.. 한편 '미대생'들을 채용하여 여러가지 동물들의 모양의 빵을 만드는 '아트 베이커리' 원래 일하던 알바들이 여행을 떠나면서.. 대신 보내준 '구리모토'라는 남자는 자기도 모르게 팔 모양의 베이커리를 만들고 주인은 팔려고 하지 않았지만, 눈에 띄는 바람에 인기상품이 되는데요.. 여행에서 돌아온 알바들은 '구리모토'가 자신들의 자리를 빼앗자.. 경찰에 투서를 보내고... '신이치'경부는 '아트베이커리'를 찾아오는데요 그러나 사라진 '구리모토' 그리고 '아트베이커리'의 단골손님이였던 미대교수 '유이노'에게 이상한 일이 벌여집니다.. '유이노'는 공원의자에 앉아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자신은 '신'이라고 말을 합니다 그리고 그들에 대해 모든것을 맞추고, 그들의 상담을 들어주는데요.. '유이노'의 이야기를 들으려는 사람들은 점점 늘고... 방송국과 경찰에서도 찾아오는 가운데.. 자신의 제자가 되고싶다는 한사람을 폭행(?)하는 '유이노' 결국 '유이노'는 체포되고, 법정에 서게 됩니다... 법정에서 재판장에게 자신의 죄가 무죄이며.. 자신이 신이라고 주장하는데요.. 제목인 '모나드'는 철학자 '라이프니치'가 내세운 .. 세계의 근본이 되는 물질의 이름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소설의 내용은 내내로 철학적인데요....그런데 그 철학이라는게.. 제가 보기엔..무슨 ..'궤변'으로 밖에 안 듣기는.. 저러면 뭐가 있어보이는지..'선'도 '악'도 없고, 종교도 무의미하고...등등.. 읽어도 도저히 공감이 안되더라구요... 특히...'반기문'총장의 일본의 역사인식 비판문제를 이야기하자.. (그 한국인 유엔인총장이라는 사람이 라면서..표현이 기가막히던데요.. 어투가 마치 감히??라는 느낌....) 그건 자기(신)만이 판단할일이라고 성질내는 장면을 보며.. 작가의 역사인식 문제를 알수 있겠더라구요.. 결국 사과할필요는 없다는 것이지요....자기들은 잘못없다... (왜 결국 신의 예정조화설이고..신의 잘못이니까...) 하기사 전쟁에 대한 태도를 들어보니....뭐..역겹긴 매한가지더만 말입니다.. 니네 가족이 전쟁이나 테러의 희생자가 되어도 같은 말해라..알았지?? 솔직히 가독성은 좋습니다..페이지도 얇습니다 그러나 읽고나니..왠지 기분이 찜찜.... 아..추리소설인줄 알았는데...실수했네용.....ㅜ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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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행우주라는 말을 다들 한번쯤은 들어 봤을 것이다. 우주에 지구만 생명체가 존재할 리 없으며, 평행하는 다양한 우주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분명히 존재한다는 걸 알고 있다고 해도 절대 갈 수 없는 것이 또한 평행선이다. 그것은 만날 수 없는 선이니 말이다. 평행이란 나란히 가는 것이기에 존재해도 서로 만날 수 없는 세상이다. 우리가 일백 번 고쳐 죽어도 다른 차원의 자신이나 그리운 사람을 만날 수는 없다. 물론 평행하는 우주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 상상 속의 도피처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만약, 진짜 평행우주가 존재하고 절대로 만나서는 안 될 두 세계가 어느 지점에서 만나게 된다면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질까. 쓰쓰이 야스타카의 신작은 바로 그것에 대한 하나의 거대한 농담 같은 이야기이다.
가게 안에 빵 굽는 냄새가 가득 차고 반지하층에서부터 그 고소한 향이 거리로 흘러 나가 행인들이 고개를 살짝 쳐들고 코를 움찔거리는 개점 직전 시각, 시마가 반지하층에서 커다란 쟁반에 담아 매장으로 옮긴 바게트를 보고 마사히코는 낯이 창백해지고 가나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매일 보던 동물 모양의 작은 바게트 수십 개 위에 단 하나, 떡 하니 놓여 있는 바게트가 인간의 한쪽 팔 모양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바게트로 구워진 여성의 오른팔 모양은 실물 크기에 길이는 40센티 정도, 팔꿈치 조금 위부터 곧게 편 손가락 끝까지 만들어져 있었다.
강변 둔치에서 미대 학생이 여성의 오른팔을 발견한다. 어깨부터 절단된 여성의 팔은 깨끗하게 절단된 것도 아니고 난폭하게 뜯겨진 것도 아니고 어깨에서 자연스럽게 떨어져 나온 것처럼 보인다. 사건을 조사하러 현장에 나온 경찰과 대화하는 감식반의 쓰쓰미는 그것을 이렇게 평가한다. '아마도 하느님이 아담과 함께 만든 이브의 팔도 이렇지 않았을까 싶을 만큼 여기에는 평범한 여성의 팔에서 엿보이는 보편적 에로티시즘이 있다'며, 팔에 관한 자신의 의견 피력을 무려 두 페이지 가깝게 늘어놓는다. 손 페티시스트가 아닌가 싶을 만큼 말이다. 평범한 미스터리처럼 시작한 이 작품이 독특한 것은 바로 이런 부분 때문이다. 살해된 여성이 누구인가. 대체 왜 이런 범죄를 저질렀으며, 누가 이런 일을 벌였는가.는 이 작품에서 중요하지 않다. 어느 날 갑자기 등장한 '여성의 오른팔' 바로 그 자체가 의미심장한 것이다. 뒤이어 한쪽 다리가 발견되지만, 행방 불명 된 여성 중에 그런 팔이나 다리에 어울리는 피해자는 없었고, 수사에 더 이상의 진척이 없을 때 경찰서로 기이한 메일과 투서가 들어온다. 아트베이커리라는 빵집에서 여성의 팔을 본뜬 바게트가 판매되고 있는데 그것이 강변 둔치에서 발견된 여성의 오른팔과 매우 흡사하다는 주장이었다. 아트베이커리는 미대생을 알바로 고용해 동물 모양의 바게트를 파는 걸로 유명한 곳이었는데, 알바생 두 명이 휴가를 가면서 임시로 고용된 미대생이 그저 재미로 팔 모양 바게뜨를 만들게 되었다. 그것을 단골이었던 유이노 교수가 보고는 극찬을 하며 사가서 신문 칼럼에 그 이야기를 기고하면서 팔 바게뜨가 유명해진 것이다. 그런데 경찰이 찾아갔을 때는, 그것을 만들었던 미대생이 알바를 그만두고 연락이 안 되는 시점이었다. 그리고 그때부터 갑자기 유이노 교수가 평소와는 다른 이상한 행동과 말을 하고 다니기 시작한다. 자신을 신 혹은 그것에 가까운 존재라고 주장하며, 무슨 일이든 뭐든지 안다고 예언 비슷한 말을 하며 사람들을 끌어 모으기 시작한 것이다.
"글쎄 말했잖아. 나는 뭐든지 안다고." "꼭 하느님 같네요." 오가와 요시미는 절반은 경악하고 절반은 야유하는 투로, 그리고 자신의 실책을 까밝힌 데 대한 분노까지 보태서 애써 웃는 낯을 꾸미며 말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신은 아니야." 교수는 천천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뭐 그것에 가까운 존재이기는 하지만."
자신은 신이라며, 유이노 교수의 몸은 단지 빌렸을 뿐이라고 주장하는 그의 이야기에 사람들은 열광하기 시작하고, 그렇게 그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공원에 모이는 사람들이 수백 명이 되고, 언론에서도 취재를 하러 오는 등 일대 난리가 난다. 그러다 한 남자를 가볍게 건드려 뇌타박상으로 만들었다는 이유로 경찰에 연행되고, 그 청년이 다음 날 멀쩡하게 일어났지만 일이 커져 재판에까지 이르게 된다. 자신을 신이라고 자처하는 과대망상에 빠진 이상한 남자와 벌이는 이상한 재판, 피고인에 대한 상해죄는 오직 그가 법정에 서서 사람들에게 자신의 논리를 주장하기 위함이었던 것처럼 보이지만, 어찌되었든 법정은 그가 정신이상이라고 밝혀지지 않는 이상 그에게 구형을 해야 한다. 황당무계한 세계관처럼 들리는 것을 너무도 진지하게 논리적으로 주장하는 이 이상한 이야기는 하나의 농담처럼 들리기도 하지만, 굉장히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기묘한 힘도 느껴진다. 다중우주 또는 평행우주.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 외에도 다른 세계가 존재한다는 것. 실제 과학자들이 말하는 평행 우주는 세 가지가 있다고 한다. 우리 눈에 보이는 우주의 끝 너머에 존재하는 세계, 어두운 에너지로 가득 찬 신비로운 풍경 속에 존재하는 세계, 또 우리가 살고 있는 바로 이 공간 안에 있는 세계. "나나 당신들이 여기 이렇게 존재하고 있는 것도 하나의 가능세계에 불과하다는 걸 증명하는 이야기 말이야. 여기가 단지 소설 속의 세계라고 하면 어떨까. 독자가 보자면 나나 당신들이 있는 이 세계는 가능세계 가운데 하나에 불과하겠지. 당신들도 알잖아. 여기가 소설 속의 세계라는 것을." "역으로 말하면, 우리 세계에서 보자면 이 책을 읽고 있는 독자의 세계야말로 가능세계 가운데 하나라고 할 수도 있겠지." 우리가 발을 딛고 선 이 세계가 다른 세계와 공간적으로 겹쳐져 있다는 설정 자체가 매혹적이다. 이 작품의 서두에 등장하는 한쪽 팔과 한쪽 다리가 출현한 이유에 대해 양자역학으로 설명하는 대목도 매우 흥미롭고 말이다. 한쪽 세계에만 존재하는 누군가가 다른 한쪽 세계에 등장하면서 변수가 발생하고, 그 결과 이 모든 혼란이 생겼다는 쓰쓰이 야스타카의 논리가 모두 설득력이 있었던 건 아니지만, 그 발상 자체는 흥미롭기 그지 없다. 50년이 넘는 작가 생활 내내, 전에 없는 난센스와 블랙 유머가 작렬하는 작품들로 '쓰쓰이스트'라고 일컬어지는 열광적인 팬층을 거느리고 있는 SF 작가답게, 자신의 최고 걸작이며 아마도 마지막 장편일거라는 말에 부합하듯이 이 짧은 작품 안에 굉장히 많은 것들이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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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 중고로 손에 넣게 되었다. 다른 책을 사면서 사실상 딸려온 책인데, 지금 와선 그 다른 책보다 이 책이 더 마음에 든다. 지금까지 난 쓰쓰이 야스타카의 책을 읽은 적이 없다. 딱히 관심도 없었고, 일전의 망언도 있고, 어찌 되었건 손이 안갔다. 그러던 와중 이 책을 읽게 되었는데, 지금껏 내가 읽은 작품 중 손에 꼽힐 정도로 재미가 있었다. 책의 내용은 꽤나 난해하다. 아퀴나스, 라이프니츠, 아리스토텔레스, 그리고 그 외 다수. 많기도 많은 철학자가 나오는데 그냥 이름만 나오는 것도 아닌 것이, 책의 마지막에 참고 서적이 나오는데 이 양반이 본서만 읽은 것도 아니고 해설서까지 읽어가며 철학적인 내용을 쭉 나열해 놓았다. 이러니 책의 내용이 난해하지 않을 수가 있나. 쑥 훑어 있는 것으론 내용을 제대로 파악하기 어렵다. 하지만 그게 재미가 없었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작 중 주인공이 인간들에게 알아들을 수 있게 말하는 대사가 다수인 만큼 난해하나, 이해 불가능하진 않은 이야기일 뿐더러 난해한 이야기를 제외하더라도 책 자체가 매우 재밌다. 내가 가장 큰 인상을 받은 것은 이 책의 전개 방식이다. 흔히들, 작가가 임의로 넣어서 스토리를 전개시키면서도 정작 스토리 안에서 별 부각이 되지 않거나 잊혀지는 장치를 맥거핀이라고 이른다. 이 책은 맥거핀을 활용한 전개 방식과 유사하면서도, 아주 다르다. 좀 과장되게 말하자면 이 책 자체가 맥거핀이다. 맥거핀의 정의상 그런 이야기는 있을 수 없지만 느낌을 말하자면 딱 그런 느낌이다. 작가를 대변하는 캐릭터가 나와서 작품의 처음부터 끝까지 전부 설계해놓고 그 설계를 진행시키는게 끝이다. 심지어 작품 내에서 이 소설을 진행하기 위해서-사랑하기 위해서- 그런 짓을 했다는 말이 나온다. 소설을 진행시키기 위해서만 만들어진 장치로 소설이 진행되는 셈이다. 위의 말이 언뜻 이해가 되지 않을 수 있다. 애초에 소설 내의 장치가 이야기를 진행시키기 위해 만들어지는 게 정상 아닌가? 내가 말한 것은 그런 의미와는 거리가 있다. 소설을 진행시키는 장치의 소설 내의 목적이 소설을 진행시키는 것이란 점에서 타 소설과 구분된다. 가령, 셜록 홈즈에서 신사 찰스 씨가 옷걸이에 찔러 죽인 사건이 나왔다고 할 때, 그 찔러 죽인 목적은 (물질적이든 감정적이든)한 개인의 이익이며, 주인공의 목적은 범인을 찾는 것이다. 구슬을 잃어버린 아이들이 구슬을 찾으러 다시 길을 돌아가는 이야기에서 목적은 구슬을 찾는 것이다. 이 책에서 나온 사건의 목적은 주인공이 세계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기 위함-소설을 진행시키기 위함이다. 그는 망가트려진 '모나드'를 복구하기 위해 여러 사건을 일으키고 계산된 황당한 행동들을 하나, 그 '모나드'를 망가트린 주체도 주인공이다. 예측되지 않는 전개, 장황한 철학적 내용, 자유분방한 소설적 장치의 사용. 이 모든 것이 어우러져 기막힌 재미를 자아낸다. 소설을 즐긴다고 자부하는 사람들에게 이 소설은 재미가 없을 수 없을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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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나드 : 세계의 구성 요소로, 모든 존재의 기본적이고 궁극적인 실체를 뜻하는 라이프니츠의 용어. 어느 날 강변 둔치에서 여성의 한쪽 팔이 발견되고 손으로만 살펴본 팔은 150센티의 키에 살이 찌지 않은 몸매, 손목부터 손가락까지 활동량이 많은 일을 직업으로 하는 스무살 가량의 여자라는 추측만을 단서로 조사를 하던 신이치. 한쪽 팔이 발견되고 공원 풀숲에서 여성의 한쪽 다리까지 발견되기에 이른다. 그리고 며칠 후 아트베이커리에서 동물 모양으로 빵을 굽던 남,녀 아르바이트생이 잠깐 유럽 여행을 가는 기간을 대신해 아르바이트를 해주던 구리모토군이 강변에서 발견된 것과 같은 한쪽 팔 모양의 베어커리를 만들고 그것을 우연히 본 미대 교수 유이노가 칼럼을 쓰면서 기괴한 모양의 한쪽 팔 바게트는 불티나게 팔리기 시작한다. 책을 읽으면서...한쪽 팔이 발견된 것에 묶여 기막힌 추리 소설을 기대하고 있었던 나로서는 중반부를 넘어가면서 왜 멀쩡하던 유이노 교수가 느닷없이 사람들에게 신의 노릇을 해대는지 의아했었다. 유이노 교수는 사람들에게 '신'은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것일뿐 자신은 하나님도 아닌 그 어떤 신도 아니지만 우주를 만들어지는 과정을 지켜보았노라고 말한다. 그런 유이노 교수로 인해 한바탕 난리가 나게 되고 그런 유이노 교수를 이용해 종교를 세우려고 접근했던 사람이 쓰러진 일을 계기로 유이노 교수는 법정에 서게 되고 검사의 질문에 답하는 유이노 교수의 대답은 우주를 창조해 낸 자신은 인간이 생각하는 어떠한 것으로도 설명할 수가 없음을 들며 라이프니츠, 스피노자, 토마스 아퀴나스 등이 했던 종교나 철학적 생각을 이야기하는 장면에서는 다소 이해가 가지 않아 몇번을 다시 읽어보게 됐던듯하다. 아무래도 신에 대한 인간이 정해놓은 영역 때문에 종교와 관련된 이야기가 많이 나오는데 법정에서 나온 후 생방송에 출현한 유이노 교수는 일본의 무종교를 질타하며 생각하기를 멈춰버린 일본인들이 책을 읽지 않는다며 역설하는 출판사장에게 "세계 어느 나라에서나 인간들은 늘 기도할 대상을 갈망하고 있어. 될수록 많은 사람들과 함께 기도할 수 있는 대상을 갈망하지. 그래서 전 세계 사람들이 자기랑 똑같은 대상에 기도하기를 바라며 전쟁을 벌여. 자기들과 같은 신을 믿는 자가 아니면 '너희도, 너희의 신도 다 죽어버려!'하며 서로 죽고 죽이지" 란 말을 내뱉는다. 기대되는 살인사건을 파헤치는 추리 소설이 아니라 강변에서 발견된 한쪽팔과 다리로 인해 초반부터 생각의 틀에 갇혀있었던 나로서는 소설의 막판에 도달했을 때야 비로서 이 세계와 또 다른 세계의 연결끈이 다리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순간 두개의 달이 떠오르며 IQ84가 떠오르기도했는데 전혀 예상했었던 이야기가 아니었던지라 인간이 이해할 수 없는 한계점은 끝까지 알 수 없었지만 뭔가 인간의 영역을 벗어나 유이노 교수안에 빙의된 GOD의 눈으로 인간을 바라볼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GOD의 눈으로 바라본 인간이란 어리석고도 나약하며 간사하고 잔인하지만 GOD는 그런 인간의 모습을 끌어안고 모두를 사랑한다고 말하고 있다. 작가는 결말을 내고 있는듯하지만 독자인 나는 열린 결말이 되어 한참을 생각 속에 머물러 있어야했다. 전혀 예상하지도, 기대하지도 않았던 내용이었지만 책을 펴면 덮을 수 없는 매력을 가지고 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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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년이 넘는 작가 생활 내내, 전에 없는 난센스와 블랙 유머가 작렬하는 작품들로 '쓰쓰이스트'라고 일컬어지는 열광적인 팬층을 거느리고 있는 일본을 대표하는 SF 작가 쓰쓰이 야스타카의 장편소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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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나드의 영역
쓰쓰이 야스타카 지음
은행나무
나나름대로 정해놓은
원칙, 국내소설, 동양소설, 서양소설의 순서로 읽기로 한 원칙을 지키자면, 사사키 조의 소설 『폭설권』을 읽고난 터라, 이제 서양소설을
읽을 차레이건만, 구입한 일본 소설도 몇권 있고,
대출한 책도 있어서 이런 원칙을 무시하고 순서를 바꿔서 읽기로
결정했다~
50년이 넘는 작가 생활 내내, 전에 없는 난센스와 블랙 유머가 작렬하는 작품들로 '쓰쓰이스트'라고 일컬어지는 열광적인 팬층을 거느리고 있는
일본을 대표하는 SF 작가 쓰쓰이 야스타카의 장편소설이다. 쓰쓰이 야스타카가 맞는 건지, 츠츠이 야스타카가 맞는 건지 혼란스럽다.
『시간을 달리는
소녀』와 함께 쓰쓰이 야스타카에 대해 격찬을 늘어놓길래 한 껏 기대하고 읽었는데, 도대체가 뭐가 뭔소리인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기대가 컸던
탓일지, 아니면 SF소설을 제대로 이해하고 즐기지 못하는 탓인지 모르겠다. 그렇다고 딱히 이 소설을 SF소설이라고 정의내리기도 어려운 노릇이다.
그나마 그닥 두께가 두껍지 않아서 책을 읽는데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은 점이 다행이라고 해야하는가? 싶다.
2017.2.10.(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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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는 다소 생소한 일본 소설, 그리고 철학소설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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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10시 20분. 강변 둔치에서 여성의 오른팔이 발견된다. 수사 1과 가미다이 신이치 경부는 현장에 투입되어 수사를 진행한다. 한편 현장 근처의 빵집에 새로 들어온 아르바이트생이 여성의 팔 모양을 한 바게트를 만드는 소동이 벌어진다. 팔 바게트는 입소문을 타게 되고 급기야 방송에 소개되며 빵집은 문전성시를 이룬다. 아르바이트생이 계속 일해주었으면 하는 빵집 주인의 바람과는 달리 아르바이트생은 일을 그만두고, 빵집 단골이자 팔 바게트를 처음 발견한 유이노 미대 교수의 거동이 이상해진다. 고마쓰 사쿄, 호시 신이치와 함께 'SF의 3대 거장'으로 꼽히는 일본의 대표 SF 작가 쓰쓰이 야스타카의 신작 <모나드의 영역>은 종잡을 수 없는 소설이다. 첫 부분만 보면 전형적인 추리소설이다. 여성의 신체 일부가 절단되는 사건이 벌어지고, 노련해 보이는 형사가 등장하고, 사건 현장으로부터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사건과 무관해 보이지 않는 또 다른 사건이 발생한다. 이런 식으로 이야기가 전개되면 사건의 전모를 밝히고 범인을 잡으면서 이야기가 결론 맺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야기는 팔 바게트를 만들었던 아르바이트생이 자취를 감추고 유이노 미대 교수의 거동이 이상해지면서 생각지도 못 했던 방향으로 튼다. 유이노 미대 교수는 자신을 '신 이상의 존재'라고 주장하며 예언 비슷한 발언을 반복하는데 그 발언이 줄줄이 적중한다. 처음에는 교수를 무시하고 비웃던 사람들도 점차 교수의 주장을 믿게 되고 교수의 발언에 귀를 기울이게 된다. 급기야 교수는 언론과의 대형 인터뷰에 응하고, 스스로를 'GOD'로 칭하며 종교, 정치, 사회, 역사 등 여러 문제에 대한 논의를 펼친다. 이쯤 되면 SF 소설이 아니라 거대한 풍자 내지는 담론이다. 쓰쓰이 야스타카가 쓴 다른 소설을 읽어본 적이 없어서 새롭고 신선했다(유명한 <시간을 달리는 소녀>도 안 읽었다. 영화, 만화, 드라마로도 안 봤다). 올해로 84세(1934년생)인 작가가 이 정도로 기발하고 독창적인 소설을 썼다는 것이 놀랍다. 그러면서도 자신의 50년 작품 세계를 관통하는 과학, 철학, 종교, 예술, 사회 등에 대한 관심과 열정을 잃지 않고 이 소설에 녹여냈다는 것이 또한 놀랍다. 작가는 이 소설에 대해 '나의 최고 걸작이며 아마도 마지막 장편일 것이다'라고 했다는데 과연 그런지, 다른 작품들을 읽어보고 나서 판단하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