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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를 지배하고 있는 이데올로기는 무엇일까? 혹자는 노무현 대통령의 출범이후, 진보적 세력이 이 땅의 메인스트림이 되었다고 이야기한다. 참여로 대변되는 젊은 개혁적 세대가 전면에 나섰다고도 이야기한다. 그러나 이 땅은 아직도 수구적 극우세력이 여전히 메인스트림의 자리를 지키고 있으며, 바로 그들이 거대한 권력 속에서 기득권을 지키려 몸부림치고 있다는 것이 정확한 표현이다. 그들은 틈만 나면 자신들은 건전보수 임을 주장하지만 그들이 주장하고 나타내는 모든 것들은 그들이 수구이며 극우임에 대한 증거로서 손색이 없다. 가진 자와 조선일보로 대표되는 그들은 자신들이 누려온 권력에서 하차하기를 거부하고 있다. 진보세력의 피땀으로 이룩한 언론의 자유와 사회적 자유는 그들에게 자신들을 왜곡하는 또 다른 무기로 활용되고 있다.
이 책 "불가사리"는 내노라 할 만한 10인의 논객이 각각 자신의 영역 속에서 극우에 대한 자신들의 시각을 피력하고 그들이 진정한 보수주의자들로 거듭나기를 소망하는 바람을 담아낸 책이다. 고종석의 신분제로서의 지역주의를 시작으로 홍세화의 조선일보에 대한 이야기까지 그들은 철저하게 극우세력의 실체를 파헤치고 비판하며, 동시에 또 그만큼의 애정을 보여주고 있다. 책의 중간에서 정지환이 말하는 "비정상이 정상을 조롱하는 세상을 거부한다"라는 말은 이들이 가지고 있는 시각을 웅변으로 대변하는 표현이다. 민중이 주인인 이 땅에서 민중인 우리는 왜 조롱 받고 사는가? 그 해답으로서의 극우수구세력에 대한 질타는 우리 삶에 대한 진정한 깨달음을 함께 요구하고 있다.
전라도라는 이름이 주는 사회적 문제에 대한 고종석의 거침없는 이야기로 시작해서 교육마피아로 인해 무너지는 교육의 현실을 이야기한 송원재와 이문열의 아둔한 자아를 질타하는 정문순의 장씨 부인의 유령을 쫓는 사람들, 민중의 냉소적인 속성과 권력에 대한 타성을 이야기하는 지승호의 과연 우리는 권력의 피해자였기만 한가, 한홍구가 이야기하는 보수와 수구사이의 차이에 대한 글까지 이 책은 오로지 민중으로써 우리가 자각하여야 할 근본적인 토대를 이야기하고 있다. 내 한 몸 편하면 그만이라는 속물적이고도 개인적인 관점에서 벋어나 내가 살고 있는 이 사회가 품고 있는 구조적 모순과 부조리 앞에 당당히 마주 설 때, 우리는 민중으로서의 우리의 권리를 향유할 자격을 갖게 된다. 세상은 변해가고 있다. 그 변화는 시대적 당위성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곧 우리 자신의 미래를 결정짓는 변화이기도 하다. 이 변화의 한 가운데서 우리를 억압하고 착취하는 비정상적 구조에 대한 자각과 비판은 대한민국의 미래를 결정하는 중요한 토대이고 초석이다.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는 세상에 대한 희망은 사회를 좀 먹고 있는 불가사리들에 대한 우리의 자세에서부터 시작될 것이라는 당연하고도 멀게 느껴지는 깨달음을 이 책과 함께 하였다. [인상깊은구절] 본디 지식인의 생명은 자아성찰이 아닌가. 세상은 선한 자와 악한 자의 싸움이 아니라 자아성찰이 가능한 자와 불가능한 자의 싸움이라 나는 알고 있다. |
| 가끔씩 나는 우리 사회의 폭력성에 혀를 내두르곤 한다. 아무 생각없는 듯이 뱉어내는 듯한 말 속에 담겨있는 나와 타인, 우리와 우리 아닌 것의 구분짓기 속에서 나는 우리 사회가 얼마나 경직되어 있는지를 느낀다. 단 한가지의 길만을 정도(正道)로 인정하는 사회는 결국 획일성으로 인해 존립에의 위험에 처하게 될 수도 있다는 진리에도 불구하고, 유독 우리 사회는 한 가지만을 진리로 인정하는데 익숙하다. 이에 대해 많은 이들은 우리의 민족성이 본래 그렇게 타고 났기 때문이라는 식의 회의적 발언을 한다. 하지만 나는 이를 지난 식민지 경험과 한국전쟁 그리고 군사독재라는 한국 사회의 특수성으로 인해 좌파에 대한 일방적인 억압이 자행되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실제로 우리 사회는 자유민주주의 수호라는 미션 달성의 주체로서 우파-그들은 스스로를 보수라고 칭하지만-만을 인정하고 있다. 정지환님은 이를 비정상이 정상을 조롱하는 세상이라고 표현하기도 하였다. 난 민주당이 결코 진보, 개혁을 이야기하는 정당은 아니라는 생각을 종종 한다. 물론 그들의 성향이 한나라당의 그것에 비하면 개혁이요 진보겠지만, 지난 김대중 정권이 구조조정의 칼날을 빼어들고 신자유주의적 흐름을 우리 나라에 가속화시켰다면 이번 노무현 정권은 그러한 구조조정을 좀더 세련화하고 완성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러한 노무현 정권의 성향을 가능케 하는 것은 다름 아닌 우리 사회가 가지고 있는 극우적 흐름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극우에 처하지 않은 모든 이들을 빨갱이로 매도해온 역사를 지니고 있기에, 현 정권이 보여주는 개혁에 있어서의 한계를 평가하고 보다 진일보한 자세를 취하기 보다는, 현 정권의 모든 정책이 너무도 급진적이라는 발언만이 난무하지 않을까 싶다. 언론에 의해 창조되고 유포된 그러한 발언들이 궁극적으로 시민사회의 헤게모니를 장악하고, 더 나아가 위기에 봉착한 냉전사회의 위기의식을 가속화시키진 않을까 하는 불안감을 가지기도 한다.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지역주의가 극우주의적 뿌리를 가지고 있다고 보고 있으며, 이를 현대판 신분제로 파악하고 있는 고종석 님에서부터 시작하여 점차적으로 그 힘을 잃고 있는, 조선일보를 필두로 한 극우 헤게모니를 분석한 홍세화님에 이르기까지, 극우를 설명하는데 있어서의 핵심은 다름 아닌 순수성(?)에 입각한 구분짓기가 아닌가 한다. 실질적으로 극우 세력에게는 어떠한 정당성, 논리성도 존재치 않는다. 하지만 그들은 그럴수록 보다 과격함으로 무장했고, 자신과 다른 이에 대해서는 무차별적인 폭력을 가함으로써 자기 영역에 속하지 않은 이들을 철저히 배제하는 모습을 보여왔다. 그 속에서 한국 사회는 다양성을 상실했으며, 과거에는 친일 그리고 현재는 친미 라는 구호를 외치는 자만이 ‘정상’의 범주에 포함될 수 있었다. 이러한 기제는 정치 혹은 거시적인 부분에 있어서만 작동한 것이 결코 아니었다. 이미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우리의 삶 모든 영역에 유포되어 왔으며, 가장 대표적인 것은 다름 아닌 교육이 아닐까 한다. 과거부터 현재까지 정부는 교육 예산을 확보하기 보다는 사교육을 통하여 부족한 부분을 보충하는데 급급해왔다. 난무하는 사립학교와 그로 인해 늘어만 가는 사교육비로 인해 경제력을 갖추지 못한 이들은 교육으로부터 배제되어 왔다. 또한 교육의 내용 역시 정부에 의한 엄격한 규제 속에서 현 지배계급이 권력을 정당화하는데 초점을 두었고, 재단과 교장 등 일부 특권층 양성은 기형화된 교육을 촉진시킬 뿐이었다. 하지만 사회는 점점 변화하고 있으며 극우는 그 패권을 조금씩 상실하고 있다. 물론 그들은 과거와 같은 절대화된 권력을 되찾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하지만 나는 이러한 변화가 그들로 하여금 진정한 보수주의가 무엇인지에 눈뜰 수 있는 하나의 기회로 작용하길 바란다. 이는 다름에 기초한 배제라는 지금까지의 기본적 질서를 휴머니즘에 입각한, 진정한 자유 민주주의 사회로 변화시키는 원동력으로 작용할 것이다. 그리고 이는 보다 성숙한 사회를 건설하는 힘이 되어줄 것이다. |
| 저자가 홍세화 외 여럿이라는 것에서도 쉬이 짐작할 수 있듯이, 여러 집필진이 투고한 원고를 하나의 묶은 구성을 가진 책이다. 빨간색 톤의 책 표지와 함께 불가사리라는 책 제목은 상당히 자극적이며, 함축적이다. 불가사리란 몇 억년간 진화도 거의 없이, 생태계 파괴에 원흉이라는 소리를 듣는 소위 도움 안되는 생물이다. 따라서, 불가사리를 수구 세력에 비교한 책 제목은 말 그대로 별 다섯 개 감이다. (물론 이런 관점도 인간 중심의 이기적 사고에 입각한 것이라는 생태학자들의 태클이 있을 수 있겠지만 눈 감고 넘어가자.) 그럼 책의 내용과 구성 자체가 별 다섯개 짜리인가? 평소에 알지 못했던 내용, 혹은 깊게 생각지 못했던 사회의 모순에 대해, 이를 파헤치고 고발하는 형식의 글은 비록 문장이 수려하지 못하고 문단이 깔끔하지 못하더라도 내용만으로 별 다섯 개를 줄 수도 있다. 따라서 이 책의 글들은 그런 관점에서 개별적으로 상당히 훌륭하다. 하지만 개별적 글들이 아닌, 책 한 권이라는 입장에서 생각해 본다면 완벽하다고 말하기 힘들다. 글 하나하나가 어떤 큰 맥락에 묶인다는 느낌을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책을 읽고 나면 열 편의 글을 단지 하나로 묶은 칼럼집 그 이상 이하도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물론 한 명의 필자가 처음부터 끝까지 쓴 글이 아니기 때문에 약간의 엇박자는 당연하다. 하지만 극우(혹은 수구라 불리는 세력)에 대해 다양한 사람의 다양한 글을 실을 생각이었다면 책머리에 종합적인 리포트를 하나 작성함이 어땠을까. 그래서 적어도 무턱대고 책을 읽기 전에 하나 하나의 글이 전체적 맥락에서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지에 대해 조금의 사전지식을 갖게 해주었다면 말이다. 구술이 서말이어도 꿰어야 보배란 말이 있듯이, 글의 단편적 지식이나 주장들을 하나로 꿸 수 있는 실을 미리 만들어 주는 배려가 있었으면 어땠을까 ?그렇다면 별 하나 쯤 더 주었을 텐데.. PS: 이 책을 읽기 전 개인적 욕심은 이 책이 사회 각 분야에 생각보다 깊게 파고 들어 있는 수구 세력에 대해 알려주기를 바란 것이었다. 이런 시점에서 볼 때, 전교조 대변인인 송원재 씨의 "교육의 수구파들"이란 제목의 글은 상당히 신선하다. 우리나라 교육계가 얼마나 반민주적이고 권위주의적인지 여실히 알 수 있는 글이었다. |
| 우리나라만큼 극우파가 활개치는 자유민주주의 국가는 보기 힘들 듯 하다. 우리안의 파시즘 이란 책에서도 말하듯이 극우 보수 이데올로기와 미시적 파시즘은 아직도 한국사회에 더러운 얼룩들을 남기고 있다. 한 예가 지역주의 인데 이것은 특정 지역에 대한 특별한 애정을 가지지 않는 나조차도 분노할 만큼 비이성적이고 몰상식하며 반인륜적이다. 5.18로 수많은 사람이 억울하게 죽었지만 "극우"들은 그것이 전라도 사람들 특유의 "욱하는 성질"땜에 일어난 폭동이라고 너무나 간단하고 동시에 진부하게 말해버리는 것이다. 이렇듯 극우는 한국사회에서 뿌리뽑혀져야 할 대상들이다. 그들은 자유민주주의와 상생할 수 없는 것이다. 불가사리는 사회전반에 퍼져있는 이런 극우 이데올로기의 마법을 까발리고 비난한다. 우리사회에서 반민족 세력들이 어떻게 성장해 왔고 그런한 과정에서 생겨난 폐해는 무엇인지 어떤 방식으로 일어나서는 안될 일들이 일어나 왔던 것인지를 자세하고 신랄하게 지적해 놓았다. 이 책의 표지에 나온 카피로 마무리 짓는다. 극우야 잦아 들어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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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책은 최근에 발매 될수록 좋은 평가를 받고 몇년이 지나면 그런 책이 있었는지도 모를 정도로 현실과는 어느정도 떨어진 느낌이 들기도 하다. 읽으면서도 "음.... 그렇군"이라는 생각이 들기는 하지만, 확~ 잡아끌 정도로 동시대적인 느낌이 들지 않는다. 생각보다 시간이 지난 것일까? 아니면 노무현 정부의 모습에 대해서 점점 더 낮은 평가를 하게 되었기 때문일까? 뭐~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동춘 선생의 글은 해방 직후의 이념적 지형이 어떠했는지 누구나 대부분 알고 있기는 하지만 다시금 정리하는 내용이 있어서 깜빡했을때 다시 확인할겸 읽어두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또한 교육계에 있는 보수성과 어떻게 이모양이 되었는지 적절하고 좋은 내용이 있어서 교육계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좋은 자료로 사용 되리라 생각한다. 전체적으로는 어떻하던지 조선일보를 작살내고 싶어하는 마음을 엿볼 수 있는 책이고 여러 방법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책이기도 하다. 물론... 나처럼 머리 식힐겸 헌책방에서 사서 읽는 사람에게는 조금은 "워워워~ 너무 힘주시는거 아니에요?" 라고 웃으면서 농담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이런 소리 하면 저쪽에서 약간은 인상쓰겠지만... 쉬운 내용이라 빨리 읽었다. 뭐... 시간이 남아서 그랬을 것이라고 생각해도 상관은 없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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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우야 잦아들어라"라는 재미난 잔소리로 시작하고 있는 이 책. 홍세화의 글을 읽고 싶어 '홍세화'라는 이름으로 책을 검색해서 만나게 된 책이다. 홍세화의 <나는 빠리의...="">나 <쎄느강은...>처럼 제목만으로도 유명한 책은 아니었으나 읽어보고 난 느낌은 대략 만족.
이 책은 흐름이 빠르다. 여러 저자의 공동 저작이기 때문에 많은 단락으로 나뉘어 있기 때문이기도 하고, 소위 '정제된' 글을 쓰는 사람 보다는 '꼴리는 대로' 글을 쓰는 사람이 더 많았기에, 소위 '제도권' 글쓰기가 아닌 '나만의' 글쓰기를 하는 사람이 더 많았기에 그러했을 게다.
우리사회 곳곳에 존재하는 극우에 대한 잔소리. 인종주의에 버금가는 우리나라의 지역주의랄지, 백년지대계를 작심삼일로 만든 우리 교육계랄지, 조선일보같은 권력이랄지 하여간 여러 극우세력에 대한 이야기들이 아주 재미났다.
[인상깊은구절] p8,9 책 제목 <불가사리>는 하나의 상징입니다. 가장 오래된 지층인 3억년 전의 지층에서 발견되는 불가사리는 오늘날의 불가사리와 큰 차이가 없습니다. 되풀이하자면 3억년 전이라는 긴 시간 동안 불가사리는 전혀 진화하지 않았다는 이야기입니다. 호나경부의 오랜 연구에 의하면 이렇게 영구한 생명력을 자랑하는 불가사리는 어장을 황폐화시키고 수중 생태게를 파괴하는 해적 생물이며 그 포식성은 실로 상상을 초얼한다고 합니다. 불가사리의 주 먹이는 이동이 불가능하게 되었거나 죽은 개체, 그리고 정착성 조개류입니다. 죽었지만 부패하기 직전이거나 "부패가 진행되기 시작한 개체만 포식"합니다. 다만 불가사리는 이동하는 것을 포식하지 못한다고 합니다. 느리게나마 조금이라도 움직이는 "건강한 개체"는 불가사리에게 희생되지 않는다는 말이지요. (중략) 바로 이 포식자 불가사리에서 우리는 한국 극우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장구한 생명력을 가지고 인간에게 유해하며 진화하지 않는 불가사리. 정권이 바뀌고 새해가 왔지만 불가사리들은 전혀 변함이 없습니다. 아니 오히려 저 심연에서 더욱 날카롭게 칼을 벼리고 있습니다. p147,8 대중과 만남의 접점이 크면 클수록 우리만의 언어로, 우리만의 논리로 해왔던 그간의 우리 운동은 많이 혼나고 많이 깨질 것이다. 우리에게 너무도 당연한 것이 대중들에겐 하나도 당연하지 않다라는 엄정한 사실을, 우리에게 너무나 중요한 것이 대중들에겐 전혀 중요하지 않을 수 있음을 절감하게 될 때 우리는 사회의 변화가 얼마나 더디고 더딘 것인지를, 진보가 얼마나 고되고 고된 것인지를 깨닫게 될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가 좀더 겸손해지고 겸허해질 수 있다면 우리의 수고는 이미 수고가 아닐 터이다. p287,288 극우 파시즘에 대한 경계와 반대는 시민 사회의 상식이어야 한다. 나는 한국 사회에 이런 상식이 통하길 간절히 소망한다.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는 사회'라면 더 바랄 게 없겠지만, 우선 이 상식만이라도 통했으면 참으로 다행이겠다. 상식이 통하는 사회는 저절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 상식이 언제나 상식으로 남을 수 있는 건, 사회구성원들의 지속적인 견제를 전제할 때만이 가능하다. 상식이 통한느, 나아가 사회정의가 흐르는 사회를 위해, 몰상식과 불의에 오늘도 맞서 싸워야 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불가사리>쎄느강은...>나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