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마 성석제 팬, 혹은 몇번정도 그의 작품을 읽어본 이들이라면 '성석제다'라는 말 한마디로 한 50%는 접고 들어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내가 팬이어서 그런것 많이 아니라, 현대 한국 남성 소설가중에서 폭넓은 팬을 확보하고 있는 얼마 안되는 인물로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첫 작품집이라서 그런지, 약간 다르다는 느낌도 좀 든다. '궁전의 새'라는 나름대로의 초기작에서 느껴졌던... 약간을 덜 다듬어져보인다는 느낌이 든다. 그런 느낌을 내 식대로 표현해보자면, 성석제 작품의 주요한 두개의 정서는 '순정'과 '해학'인데, 후반기로 갈수록, 소설가로서의 역량이 자랄수록(이자는 원래 시로 등단을 했다) 순정에서 해학으로 그 중심이 움직인다고 보여진다. 이런 기준에서 볼때, 이 작품집에 수록된 단편들은 상대적으로 순정에 방점이 찍힌 것으로 보인다. 물론, 그 절묘한 혼합이 가장 큰 작가의 장점인 것은 전제로 하고, 또한 그런 혼합의 마술이 초기부터 유지되었다는 것도 전제로 하고 말이다. 총 7개의 작품이 담겨있는데, 내 기준으로는 2부터 5는 순정파, 1과 7은 해학파 작품이다. 순정파가 싫은건 절대 아니고... 첫사랑이나 이른봄 같은 작품은 아주 감동적이었다. 스승들은... 정말 배꼽빠지게 읽혔고. 후반기로 갈수록 성석제의 작품 소재는 매우 기발해진다. 정말 '어떻게 이러한 가공의 인물의 이러한 생활을 소설로 옮길 생각을 했을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엄청난 얘기꾼의 기질을 보여준다. 내가 이 작가를 처음 접한 작품들이 대체로 이러했기 때문에, 초기작에서 나타나는 두가지 도드라지는 특성들에 대해 처음엔 약간 낯설어했다. 그게 뭐냐면, 초기작일 수록 '성장드라마'와 '깡패 이야기'가 참 많이 나온다는 점이다. 이 작품집에서도 이른봄과 새가되었네 빼고는 성장드라마, 그리고 깡패이야기, 혹은 그 접합이라고 할 수 있다. 역시 '궁전의 새'에서 이런 느낌을 많이 가졌었고, '조동관 약전' 역시 대표적인 예라 하겠다. 이러한 특성을 인식할때, 솔직히 가볍다고 말할 수 있는 성석제식의 글쓰기가 한국문학에 어떠한 기여를 하는가에 대한 회의가 들때도 종종 있다. 청춘스케치나 대학별곡으로 이어졌던 예전의 얄개전 류의 멘탈리티의 부활이라고 말하고 싶을때도 있을 정도니까. 그만큼 얄팍한 글쓰기라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그때마다 그것을 부정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다름아닌 그의 문체때문이다. 정말 서너 문단을 일필휘지로 갈겨썼을 것 같은 숨가쁜 호흡의 문체는, 판소리의 자진모리 장단이나 신기가 단단히 들은 무녀의 주문으로 들리기 일쑤였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많은 평론가들이 지적하듯이 우리의 서사문학? 혹은 만담문학의 부활이라는 새로운 장르의 개척을 성석제가 시도하고 있음을 인정한다는 뜻이다. 소재의 가벼움은 얄개전식일지라도, 그것을 풀어내는 독특한 방식, 그리고 그것으로써 의도되는 풍자의 효과는 결코 성석제의 글쓰기가 얄팍한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을 들게 한다. 내가 특히 좋아하게된 작품은 '첫사랑'과 '이른봄'과 '스승들'이다. 첫사랑은 다른 작품집에서도 봤던 기억이 난다. 띠동갑인 작가가 느꼈던 청소년기의 감상들을 나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는 느낌을 첫사랑과 스승들에서 느꼈다. 이른봄은... 성석제 작품에서는 보기 드믄 인간이 아닌 존재가 주인공으로 나오는 작품이다. 하지만, 매우 휴머니즘 적이다. |
성석제 작가의 소설집 내 인생의 마지막 4.5초에 세 번째로 수록된 작품 첫사랑. 이 작품은 작가의 실제 유년 시절의 경험이 반영된 작품이다. 그래서인지 이 작품 속 ‘나’는 누구나가 어릴 적 느껴보았을 법한, 뚜렷하기보단 은은하고 낯설지 않은 향수를 우리에게 보여준다. 줄거리는 단순하다. 시골 촌구석을 벗어나고 싶어하는 ‘나’와 그런 나에게 자꾸만 마음을 표현하는, 흔히 말해 학교의 실세인 ‘너’. 하지만 너와 달리 공부만 하는 샌님에 가까운 나는 너를 자꾸만 밀쳐내기만 한다. 하지만 결국 이별의 순간, 둘은 처음으로 서로에게 사랑을 속삭이게 된다. 작품속 ‘나’는 저가 사는 동네를 ‘지옥’이라고 표현한다. 그도 그럴 것이 그가 사는 이곳은 궁핍하기 짝이 없는 곳이다. 유일한 혈육인 누나는 꼬박꼬박 나가는 공장에서 월급을 받지 못하고 매일 아침을 굶는다. 그나마 종종 학교에 나타나는 빵 실은 트럭은 급우들에게 치여 구경도 하지 못하고, 어느 날은 깡패의 말을 듣지 않아 얻어맞고 코피를 흘린다. ‘나’는 이 지옥같은 가난을 벗어날 길은 공부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좋은 고등학교에 진학하기 위해 독서실을 다닐 정도의 열의를 보이며 공부를 한다.
그런 나에게 ‘너’는 뜬금없고, 낯선 존재일 것이다. 나를 괴롭히는 아이들을 괴롭힐 만큼 덩치가 크고, 몸에는 또래들에겐 없는 털이_배랫나룻이나 겨드랑이 털 같은_있다. ‘너’는 또래들의 우상이다. 하지만 나는 그런 너를 이해하지 못한다. 그저 앞가림 못하는 한심한 존재일 뿐이다. 그런 ‘나’는 ‘너’에게 있어 특별하다. 또래들을 제지시킨 채 빵 봉지를 다섯 개 집게 해주거나_정말로 집지는 않는다_찐빵과 튀김을 사주기도 한다. 여자 목욕탕을 보여주기 위해 다리에 상처를 입고도 꿋꿋히 버티는 그 모습은 차라리 헌신에 가까울 정도이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너’를 거부한다. 그것은 특별한 이유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너와 다르다’하고 거는 자기 세뇌에 가까워 보이는 모습이다. 나는 계속 공부를 해서 좋은 고등학교에 가야 해. 남들 괴롭히기나 하는 너와는 달라. ‘너’는 ‘나’에게 있어 벗어나야 하는 존재인 것이다.
그리고 ‘나’의 삶에서 절대 잊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난다. 나가 평소에 흘끗거리던, 당시 또래 사이에서는 유명한 빵집 여자와 ‘너’가 정사를 치르는 모습을 보게 된 것이다. 다름아닌 ‘너’의 예고대로였다. ‘나’가 그 여자에게 관심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너’는 그 여자를 먹어 보겠다는 속된 말과 함께 시간과 장소를 알려준다. 안 가야지 하지만 결국 제일 아끼는 옷을 입고 ‘나’는 그 장소로 간다. 그리고 난생 처음으로 타인의 정사를 보게 된다. 그 안에는 ‘너’가 있었다. 나는 그 이후 연합고사를 칠 때까지 너를 일절 피하기 시작한다. 너 역시 제멋대로 행동하는 일이 잦아진다.
그리고 운명과도 같은 연합고사가 끝난다. 그동안 모습을 보이지 않았던 ‘너’가 교실 창밖으로 보이고, 나는 달린다. 그리고 이야기는 절정에 달한다. 성석제 특유의 문체가 빛을 발하는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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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학교 프로젝트 성석제편 : http://ch.yes24.com/Article/View/29713
"성석제 소설은 아무런 교훈도 주지 않는다. 거기서 무슨 심오한 주제를 찾기란 애시당초 글러먹었다."
뒤의 해설에서 이영준 문학평론가는 성석제의 소설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이게 뭐야. 책에 대해 해석하고 찬사를 보내야하는 책 뒷말에 '애시당초 글러먹었다.'라고 쓰여있다니. 하지만 '주제없음'은 성석제의 소설에 대한 나름의 극찬이다.
교통사고로 차가 강물에 추락하는 4.5초 동안 자신의 일생을 돌이켜보는 주인공. 모든 걸 잃었지만 나르지 못해 착한 새가 된 채 마지막 추락을 기다리는 주인공. 그들의 인생에 무슨 주제가, 무슨 교훈이 있을 수 있을까. 그러기에 그들의 이야기는 슬프고 짧다. 그들이 추억하는 마지막 몇초, 몇분과 다를 게 없다. 액자 속 이야기가 30년 40년이라해도 고작해야 4.5초인 액자 밖 이야기에 수렴되는 것이다. (입시 용어를 빌리니까 뭔가 부끄럽다...)
교훈이 없는 이야기는 재미있다. 책이나 공연, 영화 어떤 장르에서나 교훈이 툭 튀어나오는 순간 집중이 와장창 깨진다. 나는 배우는 게 싫어서 영화관, 공연장에 온 건데 거기서까지 무언가를 가르치려하니. 그래서인지, <내 인생의 마지막 4.5초>는 막힘없이, 빠르게 읽을 수 있었다. 그리고 정말 재미있었다. 다음 문장이 궁금해 빠르게 문장을 따라갔다. 앞으로 이 남자는 어떻게 되는거지. 어떻게 결말을 맺으려하지. 신기했다. 교통사고를 당하는 사람이나 자살을 준비하는 사람의 결말을 뻔한데. 그리고 실제로 그들은 죽는데. 그것이 허무하거나 단절되었다고 느껴지지 않았다.
짧은, 또 텅 빈 이야기를 채우는 건 감각이었기 때문이다.
시를 쓰기 위해 온갖 책을 독파하고 책상에 앉았지만 오히려 시를 쓰지 못하게 된 주인공이 종이 위에 뱉어 놓은 글.
"여기에는 언뜻 보아 방만한 자유가 있다. 새로운 감각 체계의 놀이는 우리의 마비된 피부에 신선한 피를 공급한다."
나의 감각은 솔직하다.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인다는 의미가 아니다. 나의 눈, 코, 귀는 모든 것을 왜곡해서 내 맘대로 받아들이는데 솔직하다. 성석제 소설 위에 펼쳐진 감각들은 들쭉날쭉 제 멋대로라는 점에서 감각 그상태로 존재했다. 그리고 내 감각은 성석제 소설 위의 감각을 쫓아가는데 부담이 없었다. 아무렇게나 늘어놓은 감각 속에서 허무한 죽음은 허무함 그대로 담담하게 존재했다. 애초부터 당연한 죽음이었기에 오히려 허무하지 않았던 것 같다. 죽기 전까지의 일생이 아무리 파란만장하고 혹은 안쓰럽다해도.
사실 이렇게 리뷰를 쓰고있는게 부끄럽다. <스승들>에서 주인공은 '특대호에 나온 허다한 인물의 이야기는 정말 수준과는 거리가 멀어지려고 기를 쓰는 사람들의 역작'이라고 이야기하는데, 미천한 내 글솜씨로 쓴 리뷰가 딱 그 모양인것 같아서... <스승들>의 주인공처럼 온갖 주제의 책을 망라하여 읽으면, 글을 잘 쓸 수 있게 될까. 소설에서처럼 먼지보다 작은 빗방울이 떨어지는 듯, 무엇인가 신호가 올까. 책을 읽어야겠다, 징징거리며 리뷰를 마무리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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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고 느꼈다. 성석제 씨는 글을 정말 잘 쓰신다는 것을. 그동안 작가가 전해주는 웃음, 재미, 연민에 젖어 그들을 감상하느라 미처 잊고 있었던, 성석제라는 소설가에게 처음 관심을 가지게 되었던 그 계기를. 성석제 씨의 엄청난 문장력을.
성석제 씨는 정말 글을 잘 쓰신다. 소설가니 당연히 글을 잘 쓰는게 아니냐고 누군가 반문할지 모르지만, 사람은 누구나 태어나 살아가지만 진정 삶을 '사는' 사람은 많지 않다고 말할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의 이야기라고 하면 말하고픈 바가 전달이 될까.
말글대로 휘몰아치는 성석제 씨의 신기 오른 듯한 문장들을 읽으며, 주먹을 꼭 쥐고 기쁨의 한숨을 쉬고 감격해 눈물이 날뻔까지 했다. 눈 돌릴 새가 없다. 눈 깜빡할 새가 길다. 머리끝까지 신기가 오른 무당의 단단히 맘먹고 벌이는 신명나는 굿 한판, 혹은 숨 들이킬 새도 없이 보는 이가 숨이 찰 정도로 쏟아내는 판소리 한 판을 듣는 기분. 실제로 작가들 중에는 신기가 있는 분이 적지 않다고 하던데 성석제씨도 혹시?
100%의 여자 아이를 만나는 이야기를 썼던 분이 무라카미 하루키였던가. 하루키가 이야기한 100%가 내가 이야기하는 100%와 같은 성질의 것인지는 모르겠다만, 여튼 <100%>의 소설을 만나기란 하늘의 별따기와 같이 어려운 일이다. 2% 모자란 소설, 99%,99.99%의 소설을 만나는 일이 간혹 있을지 몰라도, 완벽하게 부합하는 100%의 소설을 만나기란 인생에 있어 운명의 여인을 만나는 것만큼이나 어렵다. 그런데 만났다. 이 소설집에서. 두 편이나. <스승들>,<황금의 나날>, 넉넉하게는 <첫사랑>까지.
이 소설집이 작가의 두번째 소설집이었던 걸로 알고 있는데. 아니 세번째이던가. 큰 상관은 없다만. 이 소설집을 통해 처음으로 작가를 만났던 거라면 아마 난 머리를 감싸쥐고 방안을 이리저리 황망하게 왔다갔다 헤맸을지도 모른다. 어떻게! 겨우 두 번째 소설집인데 ! 이만한 역량?!! 뭐 이런 사람이 다 있어?(?)
성석제 씨의 소설을 가볍니 어쩌니 하는 사람들 앞에 이 책을 들이밀고 징징대며 묻고 싶다. 이런 소설 쓸 수 있냐고. 이런 문장력 반의 반이라도 따라할 수 있냐고.
언제 세상을 뜰지 모르는데 그때가 되면 내가 남긴 짐이 많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기에 엔간하면 책을 소장하지 않는데. 소장하고 싶어 손이 부들부들 떨린 몇 안되는 책이 되었다. 문장을 와작와작 씹어 먹고 외어 내 안에 간직하고프다는 생각이 들 정도의 소설이었다.
* 서평을 쓰고 보니 작가의 첫 소설집이었단다. 할 말이 없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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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취향을 알고 있는 친구에게 성석제 님 소설을 읽어보라는 권유를 받고 덜컥 구매했다. 저 제목과 같은 표제작이 처음에 실린 걸로 기억 나는데 적어도 세 번 정도 덮었다. 왜인지 너무 생각했던 느낌과 다르고 끌리는 내용도 아니라 (아주아주 개인적인 취향으로) 친구가 내가 설명한 그런 취향을 잘못 받아들였나보다 하고 그냥 넘어갔다. 나중에 놀러갈 떄 이걸 딱 한권만 들고가서 아예 볼 작정으로 다음 단편들로 넘기고 넘기고 하다가 아주 취향인 작품들을 찾았다. 내용 뿐 아니라 글쓰는 구성 자체에서 향수가 느껴지고 달달하고 애달픈데 너무 예쁜.. 그런 문체를 정말 잘 구사하시는 듯.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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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석제의 초기 중단편 모음집. 반은 좋고 나머지 반은 그냥 저냥.. 성석제의 중단편 소설집. 거의 초기 작품들이 모여있다 이른봄, 황금의 나날, 스승들 이 좋았다 황만근은 이렇게 말했다 소설집 보다는 좀 덜하지만 그래도 재미있다 특히 스승들은 마치 작가 자신의 일생이 담겨있는듯해서 사실인건지 아닌건지 헷갈렸다 ㅋㅋ 제일 재밌었음 꿩들의 의인화기법을 사용한 이른봄 역시 신선하고 재밌고 아름다웠다 그리고 황금의 나날의 독특한 화법이 맘에 들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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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6년 나왔던 '새가 되었네'를 개제한 단편집, 내 인생의 마지막 4.5초. 아무래도 '새가 되었네'보다는 강렬하기 때문이 아닐까?(특히 표지의 글꼴이 뭔가 강렬하겠군 하는 느낌을 준다)
그냥 '황만근은 이렇게 말했다'를 괜찮게 읽었던 기억으로-정작 돌이켜봐도 내용이 자세히 생각 안난다만...-열심히 읽긴 했는데 제목만큼 강렬하진 않았다. 다만 제목처럼 '죽음'과 관련있는 몇몇 단편 중 <이른 봄>이나 <새가 되었네>, 그리고 죽음과 크게 관련은 없지만 <황금의 나날> 정도가 괜찮게 볼만했다.
아직 미숙한 책읽기 수준으로 대체 무얼 말하는지 쉽게 감이 안잡히면 당황스럽기도 하고 불안하기도 한데, 이 책이 딱 그러했다. 그래서 나에게는 그냥 그런 단편집으로 남을 것 같다.
책 속 한문장
선생은 말씀하셨다. 당신이 문학을 하려고 국문과를 간 것은, 생각해보면 편하고 넓은 길이었는데 오늘에 이르러 그 뜻이 간 곳이 없고 땟국 묻은 양복만 남았다고. 어쩌면 다른 길로 천천히 에둘러가는 것이 문학으로 나아가는 본령일지도 모른다, 너도 촌티 내지 말고 다른 길로 가서 공부를 더 한 다음에 천천히 생각해보라고 하셨는데 갑자기 나도 문학의 넓은 길로 갈 생각이 없어졌다. <스승들> 中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