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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리다 입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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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상의 난해함도 그렇지만, 국내에 소개된 그의 저서들이 대부분 오역으로 뒤범벅 되어있다는 점에서 꽤나 자자한 명성을 얻고 있는 데리다는, 그럼에도 철학, 사회학, 정치학, 문학등등등 적지않은 분야의 수많은 서적들이 그의 사상을 독자들이 이미 어느 정도 알고 있을 것이라 전제한 채 서술해나가고 있기에 평범한 독자들에게 있어선 또한 난감하기 이를데 없는 철학자이기도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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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상의 난해함도 그렇지만, 국내에 소개된 그의 저서들이 대부분 오역으로 뒤범벅 되어있다는 점에서 꽤나 자자한 명성을 얻고 있는 데리다는, 그럼에도 철학, 사회학, 정치학, 문학등등등 적지않은 분야의 수많은 서적들이 그의 사상을 독자들이 이미 어느 정도 알고 있을 것이라 전제한 채 서술해나가고 있기에 평범한 독자들에게 있어선 또한 난감하기 이를데 없는 철학자이기도 하다. 그런 와중에 제대로 읽자니 부담스럽고 지나치자니 호기심을 참을수 없기도(?)해서 '하룻밤의 지식여행'시리즈에 나와있는 데리다를 읽게 되었는데,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생각보다 괜찮았다.

우선 김영사의 '하룻밤의 지식여행'시리즈에 관한 이야기를 해 본다면, 이 시리즈는 영국 아이콘 북스에서 발행된 말랑말랑한 만화(?)형식의 철학/사상 입문서인데,(사실 이 책의 경우 만화형식이라고 하기에는 같은 시리즈의 다른 책들에 비해 텍스트가 지나치게 많은 감이 없지 않았다. 텍스트만 뽑아도 문고본 한권 분량은 거뜬히 될 듯) 실험적인 일러스트레이션과 갖가지 시각적 효과를 이용하여 간단 명확하게 인물의 사상이나 어떠한 학문 분과를 전달하고 있는 듯 싶다. 개인적으로는 이전에 이 시리즈 중 다섯번째인'철학'과 여섯번째인 '사회학'을 서점에서 친구기다리면서 번갯불에 콩구워먹듯 해치운적이 있는데, 그 책들 또한 나쁘지 않았다는점에서 일단 어느정도 신뢰할만한 시리즈라는 생각은 든다.(성급한 일반화의 오류?ㅋ 아울러 여담이다만 이런 책이 출판될 수 있는 영국 출판 시장이 조금은 부럽기도 하다.)

책은 데리다가 케임브리지 대학으로부터 명예박사학위를 수여받을 때 벌어진 흥미로운 해프닝을 시작으로 그의 사상 및 개념들에 대한 개괄적인 설명을 하고 있다. 사실 이 정도의 입문서 한권 읽고 데리다 철학이 어떻네저떻네 하는 것이 얼마나 웃긴 일인지 나도 모르는 바는 아니다만, 그래도 무리해서(?) 그의 주된 작업이었던 해체에 대해 논하자면 책 서두에 소개된 수많은 설명들 중 하나만큼 진실에 근접하게 설명된 것이 없어보인다. '당신이 해체라고 생각하는 것이 아닌 어떤 것'.

데리다의 해체작업은 솔직히 말하자면 '말장난'이었을런지도 모른다.(때문에 그의 명예박사수여에 대한 케임브리지 대학 교수들의 반응 또한 이해못할바도 아니다.) 실제 데리다 자신도 그의 작업을 해체'놀이'라고 한다.(물론 개인적으론 뭐 이런 놀이가 다 있냐 싶긴하다-_-;;;) 아울러 책의 말미에 언급된대로, 정의를 하는 순간 미끄러지는 이 해체라는 개념이 윤리적, 실천적 함의를 갖기 위해서는 어쩔수 없이 비해체적인 가치를 받아들여야 하는 모순 또한 지니고 있는 것이 사실인 듯 싶다. 하지만, 모든 분류의 사이사이에 있는 '결정불가능한' 수많은 항들의 다발들을 이야기하여(사실 그것들마저도 곧 해체가 가능하다) 현대철학에 심대한 타격(?)을 입혔던 그의 작업은 충분히 매혹적이었고 실제 상당한 의의를 지녔던 것이 사실이다. 때문에 세간의 말마따나 설령 '해체는 죽었'다 하더라도 해체 그 자체는 좀더 오래 존속하게 될 것 같다. 그가 열어젖힌 또다른 사유의 영역은-우리도 모르는 사이-이미 우리 모두의 사유의 영역에 들어왔기 때문에.
j***8 2006.05.30. 신고 공감 7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데리다를 만화책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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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읽기에 녹록하진 않지만 데리다 사유의 궤적을 꽤 '짜임새' 있게 정리해 놓았다. 전반부는 이항대립을 무너뜨리는 전략으로서의 '결정불가능성'과 '탈선된 의사소통'에 대한 해설을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다. 데리다는 에서의 파르마콘에 대한 해명을 통해 서구 형이상학의 로고스 중심주의를 지적하고, 소쉬르 언어학에 대한 탐구에서 나온 '흔적', 그리고 '차연' 개념을 통해 형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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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읽기에 녹록하진 않지만 데리다 사유의 궤적을 꽤 '짜임새' 있게 정리해 놓았다. 전반부는 이항대립을 무너뜨리는 전략으로서의 '결정불가능성'과 '탈선된 의사소통'에 대한 해설을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다. 데리다는 <플라톤의 약국="">에서의 파르마콘에 대한 해명을 통해 서구 형이상학의 로고스 중심주의를 지적하고, 소쉬르 언어학에 대한 탐구에서 나온 '흔적', 그리고 '차연' 개념을 통해 형이상학이 설정한 이항대립의 결정불가능성을 드러낸다. 또 옥스포드 일상언어학파의 오스틴이 전개한 의사소통이론을 공박하며 일상적이고 수행적인 의사소통을 가능케 하는 절대적 맥락은 존재하지 않음을 주장한다. 후반부는 데리다가 문학비평, 건축, 미학, 맑시즘과 페미니즘을 비롯한 정치적 영역에서 발언하고 개입한 사례들을 보여주고 있다. 국내에 소개된 데리다 관련 저작들 대부분이 오역, 졸역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지만, 이 책은 번역도 상당히 깔끔하다. 재기넘치고 또한 실험적인 일러스트레이션과 함께, 또 1992년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의 데리다 명예박사학위 수여와 관련된 논쟁으로 시작하는 서두와 함께, 흥미롭고 자연스럽게 데리다에 접근하게 해 주는 책이다. 옥의 티라면 다른 하룻밤의 지식여행 시리즈에 비해 만화보다 텍스트의 양이 상당히 많다는 것이다. 자크 데리다와 같이 다양한 분야에 걸쳐 활발한 사유를 펼치고, 또 그만큼 광범하게 '글쓰기'에 의존하는 인물의 학문을 소개하는 데에 그 정도의 텍스트는 되려 한참 부족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만화책 책장이 굉장히 더디게 넘겨지는 게 다소 부담스럽기도 하다.
h******k 2003.09.03. 신고 공감 2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아름다운 전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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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있으면서 죽어있는 것이 있다면 과연 그것은 무엇일까? 중간항을 허용치 않는 것이 우리 사회에는 너무도 많다. 선과 악, 내부와 외부, 진실과 거짓, 본질과 외관 등. 일찍이 플라톤은 일련의 단순하고 명확한 대립쌍들에 의존해 자신의 사상을 펼쳐 보였다. 그리고 이는 이성과 감정이라는 양분된 요소 중 어느 하나의 절대적 우위를 칭하는, 서양 철학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난 특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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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있으면서 죽어있는 것이 있다면 과연 그것은 무엇일까? 중간항을 허용치 않는 것이 우리 사회에는 너무도 많다. 선과 악, 내부와 외부, 진실과 거짓, 본질과 외관 등. 일찍이 플라톤은 일련의 단순하고 명확한 대립쌍들에 의존해 자신의 사상을 펼쳐 보였다. 그리고 이는 이성과 감정이라는 양분된 요소 중 어느 하나의 절대적 우위를 칭하는, 서양 철학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난 특징을 가능케 했다. (심지어 칸트는 ‘이성’의 영역 내에서도 순수이성과 실천이성을 구분 짓는 섬세함[?]까지 선보인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지동설이 하나의 패러다임으로 고정되어 어느 누구에 의해서도 의심되어서는 안 되는 것으로 여겨졌듯이, 이러한 철학 질서 역시 하나의 고정 불변의 진리로 여겨졌었던 것이 사실이다. 가장 순수한 학문으로서의 철학은 다른 학문과는 구분된 우월한 영역에 머물러야 한다는 생각, 철학을 업으로 삼고 있는 이들이 지녔을 자만심. 이는 하나의 기득권이었고, 그것은 특권층 스스로 포기하지 않으면 절대 무너지지 않을 견고한 성곽과도 같은 것이었다. 그랬기에 데리다가 펼쳐 보인 철학은 전혀 새로운 것으로 여겨졌다. 기존의 철학이 지금까지 그려진 밑그림에 조금씩 채색을 덧붙이는 작업이었다면, 데리다의 철학은 기존의 모든 질서를 거부하는 듯해 보인다. 대신 그는 아무것도 그려져 있지 않은 하얀 종이를 요구한다. 그런 면에서 우리는 데리다에 대해 높이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그의 철학은 포스트 모던적인 사회 흐름을 타고 사회를 꿰뚫는 하나의 지배적 정서로서 다가오긴 했지만, 그 시작은 분명 기성 질서에 대한 반란이었다. 그는 소위 지배적이라 일컬어지는 것의 토대가 어떻게 형성되는지, 그 메커니즘을 알고 있었다. 이항 대립을 이용, 특정 항목을 특화하고 나머지 부차적인 것을 종속시키는 속에서 지금의 우리 사회는 정형화된 하나의 질서를 생산해 냈다. (음성과 문자. 이 두 요소간에도 이와 같은 메커니즘은 적용 가능하다. 회의를 통해 얻은 중요한 사항을 기록하지만, 다음 회의에서 이는 문자 아닌 음성으로 재확인됨으로써 다른 이들에게 인정 받는 것을 통해 우리는 음성이 문자보다 상위에 놓여있음을 우리는 알 수 있다.) 데리다는 이러한 대립 속에서 형성되는 한 항의 다른 항에 대한 우위화를 거부하기 위해 대립이라는 것에 대해 반기를 든다. 명사도 동사도 아닌, 그가 만들어낸 새로운 언어 differance 는 그의 철학이 지닌 독특함을 나타내 주는 한 예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동시에 그는 철학이라는 하나의 고정된 영역에 대해서도 거부한다. 그랬기에 그의 글은 철학이라기 보다는 문학과도 같아 보인다는 이유로 많은 이들로부터 비난을 받았으며, 그를 두고 철학자라 일컬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많은 논란이 있을 수 밖에 없었다. 현재 데리다의 작업(?)은 많은 영역에 광범위하게 유포되어 있다. 건축 분야에 이미 오래 전 도입된 해체 건축은 데리다의 철학을 현실화한 대표적인 예라 할 수 있다. 건물의 용도 등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듯, 주변 환경과의 의도적 조화를 꿈꾸지 않은 듯한 빌레트 공원의 모습은 종합 아닌 대립, 통일 아닌 단편화, 신중한 관리 아닌 광기와 놀이를 추구한 공간이다. 데리다의 철학은 세상 모든 진리를 부정하는 허무한 것으로, 때로는 현실에서는 결코 존재할 수 없는 초월적 유아론을 지향하는 것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하지만 그의 철학은 이항 대립적 요소 간에 존재하는 권력의 차이를 명확하게 포착하고 있으며, 두 요소간의 갈등을 조장하는 권력의 붕괴를 조장하고 있다는 점에서 어찌 보면 마르크스주의와도 연결 지을 수 있을 것이다. 아니, 오히려 지배적인 것에 대한 거부라는 점에서 그의 철학은 마르크스로부터 한발 더 진보한 모습을 보인다. 그렇기에 나는 데리다의 철학을 ‘아름다운 전복’으로 이해할 수 있었다.
q*****2 2004.08.11.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