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까마귀 기르기]는 참으로 느릿하고 지루한 영화다. 더군다나 한 사람의 배우가 여러 명의 등장인물을 연기하는가 하면 순식간에 시간과 공간이 옮겨지는 등 혼란스럽기까지 하다. 매력적인 배우들도 없고 신나는 사건도 없다. 이 영화를 이해하고 싶다는 강렬한 욕망이 없는 한은 참고 보기 힘들지 않을까, 걱정스러울 정도다. 35년 전에, 우리와는 그리 친숙하지도 않은 나라인 스페인에서 만들어진 예술영화를 굳이 참고 견디며 본 이유는 뭘까. 카를로스 사우라라는 걸출한 감독의 이름에 반해서일까, 아니면 [벌집의 정령]에도 출연했던 아역배우 아나 토렌트의 연기를 다시 한 번 보고 싶어서일까. 혹은 제랄딘 채플린의 묘하게 중성적인 얼굴과 매력적인 목소리가 그리워서였을까. 그것도 아니라면 겨우 사흘 머물렀을 뿐인 마드리드 시내의 모습을 떠올리기 위해서? [까마귀 기르기]에는 그 모든 것들이 다 있지만 또 다른 것들도 있다. ‘까마귀에게 먹이를 주면 언젠가는 당신의 눈을 빼간다’라는 스페인 속담에서 유래한 제목답게 조숙한 열 살짜리 소녀 아나(아나 토렌트)는 주변의 어른들에게 살의를 품는다. 그러나 그녀가 손을 더럽힐 필요도 없다. 프랑코 정권의 막바지, 보수적인 상류계급인 아나의 가정은 이미 죽음의 그림자로 어둡다. 불륜과 퇴락, 질병과 음울함 속에서 어른들은 애써 정상적인 겉모습을 유지하려고 하지만 아나는 쉽게 속지 않는다. [벌집의 정령]에서도 그랬듯이 아나 토렌트의 검고 영리한 눈동자와 극도로 민감하고 예민한 표정은 배우로서의 놀라운 재능을 드러낸다. 이토록 어린 배우가 단지 시선을 고정시키는 것만으로도 사물의 본질을 꿰뚫어 보고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다니 경이로운 일이다. 아나의 어머니로 역시 이름이 같은 아나 역을 맡은 제랄딘 채플린도 지성과 재능을 가진, 관찰자이자 희생자, 기록자이자 주석자로서 시간과 공간, 생사를 초월해 등장한다.
![]()
[까마귀 기르기]는 한 번 보는 것만으로는 다 이해할 수 없는 복잡한 구조와 의미를 지닌 영화이기도 하다. 지극히 개인적인 취향에 맞는 영화일 뿐이다. 그래도 누구나 다 나름대로 자신만의 소중한 것들을 모아 나가는 게 인생이 아닐까. 그래서 좋았다. 그것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