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악기없이도 소리를 만들어내는 지휘자(Conductor)란 존재는 진정 '허공'을 연주하는 천재들이라고 밖에 말할 도리가 없다. 카리스마와 통솔, 텔레파시와 집중‥. 지휘자에 관해서 서적, 그리고 음반을 통해서만 그 마력과 매력을 접하고 간간히 영상물을 참조하다가 소장한 이 "The Art of Conducting"은 그런 개론적인 사항에 대해 부족함이 없는 영상교본이다. 레너드 번스타인, 빌헬름 푸르트뱅글러,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 펠릭스 폰 바인가르트너, 토머스 비첨, 바르비롤리 등에 대한 간결하면서도 짤막한 귀중한 동영상을 보다보면 기계문명 시대에 잊혀지는 '거장 정신'에 정신이 치유되는 기분이다. 이 지휘자들이 각각 개성이 자유분방하고 다르고, 또한 그들의 지휘철학도 판이한 건 물론이요 상반되는 것도 있다보니 뭐가 그르고 옳은지는 아직도 모르겠다. 대표적으로 악보를 즉물적으로 따라한 토스카니니와 바인가르트너, 그 사감선생 이미지에 비하면, 확실히 푸르트뱅글러나 번스타인은 다소간의 자기과시와 즉흥성이 엿보이는 광대(?)처럼 보이기도 하니까. 그리고 권위있는 설명을 해주면서 옛 지휘자들을 추억하는 아이작 스턴, 예후디 메뉴인 등도 한마디도 나쁜 얘기는 거의 하지 않으니까. 어느 지휘가 바람직하고 옳은가라는 판단은 결국 우리 시청자들의 몫이란 말인가 ? 어쨌든 이런 고민거리(?)를 안겨주었다는 것은, 이 영상물이 그만큼 귀중한 자료를 제공해주었다는 이야기이겠다. 난 음악보단 영상에 치우치는 삐까번쩍한 현대 실황영상물보다는, 비록 흑백이고 음질도 다소 떨어지지만 뭔가 생각할 기회를 부여해주는 이런 다큐멘터리를 선호한다. 어차피 '음악'은 고물 오디오라도 '소리'로만 들으면 그만이니까. 다른 지휘자가 그다지 많지 않아서 아쉽다는 것은, 그만큼 실린 동영상물이 만족스러웠다는 말이기도 하다. 하지만 게르만권보다는 앵글로색슨권이 선호하는 지휘자들 중심이었다는 건 모종의 혐의(?)를 불러 일으켰다. 게제된 영상물 성향을 통해 보는 일종의 정치성이랄까 ? 수년전 음악평론가 이영진님(* 국내 브루크너 애호가 중 으뜸)을 통해 보았던 일제 LD 를 감상한 기억 덕분이기도하지만‥ 쿠셰비츠키나 라이너, 바르비롤리, 바인가르트너는 다루었으면서 어째서 멩겔베르크나 크나퍼츠부슈, 그리고 므라빈스키 등은 없는 걸까 ? 단언하기는 어렵지만, 분명 여기 실린 지휘자들은 "영미권" 취향이다. 단 자신있게 말한다면 지휘자 영상물 중에서 가장 감격스런 인물 중에는 분명 멩겔베르크나 크나퍼츠부슈가 빠질 수야 없다. 그들의 지휘가 비록 자의적이라는 평가를 배제할 순 없더라도, 멩겔베르크의 강렬한 눈빛에는 반할 래야 안 반할 수가 없고 크나퍼츠부슈의 투박하면서도 거대한 스케일의 상박/하박을 보면 막 죽고싶단 생각마저 들 정도이다. 그런데 이런 지휘자들이 빠졌으니 죽을 염려(?)야 없지만 생존한 것 치곤 다소 허무하다는‥. 특히 푸르트뱅글러의 경우는 그의 장기인 베토벤 교향곡 연주 장면은 없으며(대신 슈베르트이며 극히 짧다) 상당히 볼만한 브람스 4번 교향곡의 피날레 장면도 흥미롭게 그 연주장소가 '영국'이었다. 가장 만족스러웠던 이 영상물 다음으로 열기어린 모습은 물론 '번스타인'이었는데‥ 호오라, 예상치 못하게도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연주 장면이었다. 대부분은 번스타인하면 말러만 떠오르지만, 사실 그가 연주를 많이 하지 않아 그렇지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연주도 일류 고수 반열에 든다는 점을 아는 분이라면 :) 참고로 쇼스타코비치도 방미 중 자기 작품을 연주한 번스타인을 좋아하였다지. 이 두 장면만 칭찬하면(?) 나머지 지휘자들의 영상물은 마치 엉망인 듯인양 오해받을 것 같아 일러두지만, 여기 실린 모든 기록물들은 재미없는 것일지라도 상중하(上中下)에서 '중상(中上)' 정도는 된다 일러둔다. 다만 이보다 더 강렬한 영상물은 역시 - "나찌스 시대의 지휘자"들을 다룬 일제 LD 였고, 난 여전히 거기서 받은 감동을 못 잊었나 싶다. "The Art of Conducting"은 분명 지휘가 뭔지 가르쳐주는 좋은 개론서이지만, 나 같이 과거에 맛들인(?) 사람에겐 강렬한 열기가 다소 부족하다는 옥의 티 정도는 지적해야겠다. 사실 한글자막까지 논하면 '혹평'을 면하기 어렵다는 것은 슬픈 일이다. 이 영상물은 권위있는 상을 받았고 아마존에서도 호평일색이지만, 번역자가 누군지 몰라도 한글자막이 정말 성의없고 엉터리란 점은 슬픈 일이다. 하기야 고전음악광이라면 자막따윈 신경쓰지 않으며, 그들 예술가들의 육성을 직접 귀로 듣는 걸 즐길 테니 상관없는 일이려니만. 또한 다른 지휘자들을 다루지 못한 아쉬움은 이 시리즈의 다음 작품인 "The Art of Conducting : Legendary Conductors Of a Golden Era"에서 메꿀 수 있지 않나 싶다. 문제는 국내발행 여부인데‥ 세르지우 첼리비다케, 므라빈스키, 뮌슈, 클뤼탕스, 멩겔베르크 등도 다루고 있으니 발행된다면 본 영상물과 짝을 지어 허기진 아쉬움을 달래줄게 분명하다. 좌우지간 이 시리즈들은 꼭 구입하지 않더라도 빌려서 보거나 아니면 예술의 전당 등에 가서 관람하는 등으로 접하길 권한다. 보고난 후에 '지휘자에 대한 인식'이 확 바껴버리기 때문에 "백문이 불여일견"이란 속담만큼 어울리는 말도 없을테니까. (* 특히 푸르트뱅글러와 번스타인 영상은 강력추천이다. 역시 레니는 ^^ 꽃미남 로맨티스트였다. 그 함성이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