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가 영화평론가 정성일이 지금은 고인이 된 ‘정은임의 영화음악’이라는 프로에서 중국의 신예거장 영화감독 “지아장커”를 소개했다. 그는 “지아장커”라는 젊은 중국영화감독이 왜 앞으로 세계적인 거장이 될 수 밖에 없는지를 설명하며 다른 중국의 선배 거장감독들이 “지아장커”에 대해 언급한 말을 인용했다.
“오직 그만이 중국을 아름답지 않게 그리는 방법을 알고 있다.”
중국은 분명히 변하고 있었다. 그것을 국가자본주의라 부르던 시장사회주의라 부르던 지아장커라는 젊은 중국의 영화감독은 그 거대한 변화속에서 중국인민들의 무엇이 무너지고 무엇이 변화하고 있는지를 있는 그대로 때로는 불편할 정도로 직시하는 영화를 만들었다.
그만이 중국을 아름답지 않게 그린다는 것은 지아장커만이 중국 인민들의 현실을 직시하는 유일한 감독이라는 말이다. 정작 중요했던 것은 중국사회를 살아가는 구체적인 인민들의 삶이었다. 그래서 그는 중국당국으로부터는 가장 불온한 감독이자 세계적으로 가장 존경받는 감독이 되었다.
‘민경우’ 라는 이름은 언제부턴가 진보운동진영의 상당수를 차지하는 소위 통일운동진영 내에서 ‘논쟁’과 ‘오해’라는 단어를 연상시키는 인물이 되어있다. 그리고 최근에 통일운동진영 일부는 그에게 소위 그들식의 “불온(?)”이라는 딱지를 붙이고 싶어하는 듯하다.
나는 때로 그의 글에 대한 통일운동진영의 반응에 공감이 갈 때도 있다. 왜냐면 그의 글은 불편하고 건조하기 때문이다.
그의 글은 불편하다. 왜냐면 내가 그만큼 치열하게 고민하지 않았다는 것을 정확하게 지적하기 때문이다.
그의 글은 건조하다. 왜냐면 승리적 평가 운운하는 자축 따위를 하기에는 그의 눈에 비치는 민중의 삶이 너무나 절박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에 출간된 그의 책 “진보의 재구성을 보면서 나는 이전에 그가 써왔던 글과는 다른 잔잔한 감동을 느낄 수 있었다. ‘민경우’답지 않게 이 책에서 그는 우리와 그 자신이 걸어왔던 길과 변화하는 시대의 불일치를 가슴 아프게 고백한다. 그리고 통일운동진영이 무엇이 부족하고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절절한 문장들로 분석하고 이야기 한다.
우리는 너무 오래동안 우리를 아름답게 포장하는 방법만 알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그래서 우리의 부족한 부분을 지적하는 것에 불편해했던 것은 아닐까? 그러다보면 혁신은 먼 이야기가 되고 우리는 강철대오등등 운운하며 사실 고립의 길로 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문이 든다. 나는 그래서 민경우의 이 책 “진보의 재구성 - 한 실천가의 반성과 전망”을 읽으며 몇 번은 울먹였고 몇 번은 무릎을 쳤다.
앞서 지아장커에게 보낸 찬사를 인용해 말하자면....
“오직 민경우 만이 통일운동진영을 아름답지 않게 그리는 방법을 알고 있다.”
그래서 그의 이 책이 지금 이 시점에 더욱더 소중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