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

리뷰 (4)

한줄평
평점 분포
  • 리뷰 총점10 50%
  • 리뷰 총점8 25%
  • 리뷰 총점6 25%
  • 리뷰 총점4 0%
  • 리뷰 총점2 0%
연령대별 평균 점수
  • 10대 0.0
  • 20대 0.0
  • 30대 0.0
  • 40대 0.0
  • 50대 8.0
리뷰 총점 종이책
조선의 자유인 허균의 삶
"조선의 자유인 허균의 삶" 내용보기
홍길동전의 저자로 알려진 허균의 일대기를 소설적 기법으로 재미있게 풀어낸 책이다. 허균의 문집 국역번역본인 <성소부부고>와 조선왕조실록을 바탕으로 허균의 일대기를 재구성하면서, 소설적 기법을 가미하였다. 당시 최고의 여류 시인이자 기생으로 유명했던 이매창을 만나는 장면으로 시작된 허균의 이야기는 한시대를 같이 살아갔던 뛰어난 시인 권필, 조선 최고의 명필 한석봉,
"조선의 자유인 허균의 삶" 내용보기

홍길동전의 저자로 알려진 허균의 일대기를 소설적 기법으로 재미있게 풀어낸 책이다. 허균의 문집 국역번역본인 <성소부부고>와 조선왕조실록을 바탕으로 허균의 일대기를 재구성하면서, 소설적 기법을 가미하였다. 당시 최고의 여류 시인이자 기생으로 유명했던 이매창을 만나는 장면으로 시작된 허균의 이야기는 한시대를 같이 살아갔던 뛰어난 시인 권필, 조선 최고의 명필 한석봉, 걸인 화가 이정과의 우정 이야기, 그가 추구한 세상, 그가 비참한 말로를 걷게 된 과정 등을 재미있게 그려내고 있다.  

 

조선 중기 선조~광해군 시대의 문인이자 학자였던 허균은 대대로 학문에 뛰어난 뼈대있는 집안에서 태어났다. 아버지인 허엽, 두 형인 허성과 허봉, 그리고 누이인 허난설헌 모두 시문으로 이름을 날린 사람들이다. 허균도 시문에 뛰어난 재주를 보여 21세에 생원시에 급제하였고 26세에 정시(庭試)에 합격하여 승문원 사관(史官)으로 벼슬길에 오른 후 삼척부사·공주목사 등 관직을 지냈다. 또한 중국 사신의 일행으로 뽑혀 중국에 가서 문명을 날리는 한편 새로운 문물을 접할 기회를 갖게 되었다.

 

하지만 허균은 천재라는 특성보다는 <홍길동전>의 주인공처럼 이단아, 괴짜, 혁명의 이미지가 먼저 연상되는 인물이다. 방랑시인으로서 자유분방한 기질을 지닌 그였지만 세속적 출세를 위한 집착도 버리지 않았다. 그의 자유분방한 행동은 조선중기의 선비들에게 받아들여질 리 없었다. 벼슬을 제수받았지만 한 달이 지나지 않아 탄핵을 받아 파면되거나 유배를 떠나게 되었다. 광해군 즉위 이후 한때 당대의 실력자였던 이이첨과 결탁하여 폐모론을 주장하면서 왕의 신임을 받아 예조참의·좌찬성 등을 역임했으나, 국가의 변란을 기도했다는 죄목을 쓰고 참수형으로 생을 마감하게 된다.

 

마흔아홉에 파란만장한 삶을 능지처참형으로 마감했던 허균은 과연 어떤 인물이었을까? 홍길동전으로 대표되는 저서 때문에 그는 비판정신과 개혁사상을 지닌 인물로, 적서차별 비판, 탐관오리에 대한 징벌, 가난한 서민들에 대한 구제, 새로운 세계의 건설 등을 주장한 투사의 모습으로 비쳐져 왔다. 하지만 저자가 그의 문집과 각종 기록을 통해 분석한 허균은 두 개의 얼굴을 지닌 인물이었다. 하나는 천진난만한 시인의 감수성으로 거칠 것 없이 활달하게 세상을 살아간 자유인이다. 기생 이매창과의 사랑이야기나 그와 함께 했던 친구들의 면면이 이런 그의 성격을 잘 보여주고 있다.

 

또 다른 하나는 정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허우적거리는 현실적 선비의 모습이다. 조선의 예술적 분위기나 사회 풍속등은 임진왜란 전후로 크게 나누어진다. 조선 초기의 다양성이 전쟁이 끝난 후에는 경직되고 극심한 이념분쟁으로 연결되기 시작하는 시기이다. 명나라가 망하고 청나라가 흥하는 시대적 배경도 한 몫을 했을 것으로 보인다. 허균은 민감하게 변하는 시대에 태어나 고루하고 편협된 쪽으로 흐르는 사회분위기에 적응하지 못하고 일탈적이고 개방적인 사고와 행동을 하다가 비참한 말로를 맞이하게 된다. 물론 가끔 현실 영합적인 태도와 행동을 보이지만 현실에 안주하지 못하는 그의 성격상 오래 유지되지는 못하게 된다.

 

어느 시대에나 시대를 앞서가는 사람들이 존재하는 법이다. 허균의 삶을 돌아보면 그는 개혁가나 혁명가보다는 풍부한 감성으로 자유분방하고 소박한 삶을 추구했던 몽상가에 가깝다는 생각이 든다. 다만 그 시대상황이 그를 내버려 두지 않았을 뿐이다. 어쩌면 그의 누이 허난설헌이 어린 나에에 요절한 것도 마찬가지가 아니였을까 하는 생각이다. 조선 중기 사회가 자유분방한 사람들을 품고 함께 살아가기에는 아직 준비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c******4 2013.01.28. 신고 공감 6 댓글 14
리뷰 총점 종이책
허균,길에서 살며 사랑하다 죽다
"허균,길에서 살며 사랑하다 죽다" 내용보기
허균하면 흔히 서자의 삶에서 시작해서 시,고문을 좋아하다 시를 쓰고 시대의 부조리를 파헤치고 시대에 저항성을 나타낸 홍길동전 정도의 지식과 한군데 진득하게 있질 못하고 이리 저리 떠돌아 다니는 방랑자적인 기질을 백팔십도 발휘한 그의 인생길은 자유스럽게 보이기도 하지만 파장만장한 일대기가 마치 ’인생파’를 연상하게도 했다.그는 벼슬을 하는 가문에서 서자로 태어나지
"허균,길에서 살며 사랑하다 죽다" 내용보기
허균하면 흔히 서자의 삶에서 시작해서 시,고문을 좋아하다 시를 쓰고 시대의 부조리를 파헤치고 시대에 저항성을 나타낸 홍길동전 정도의 지식과 한군데 진득하게 있질 못하고 이리 저리 떠돌아 다니는 방랑자적인 기질을 백팔십도 발휘한 그의 인생길은 자유스럽게 보이기도 하지만 파장만장한 일대기가 마치 ’인생파’를 연상하게도 했다.

그는 벼슬을 하는 가문에서 서자로 태어나지만 아버지의 피를 물려받은 탓인지 고문,시등을 사사 받으며 문인의 길을 닦아 가기도 하고 청소년기에는 과거 시험의 코스인 초시,생원시,장원이라는 엘리트 길을 걸으며 벼슬길에 서기도 한다.또한 시인 허난설헌그의 누이라는 점도 눈에 띄고 집안 환경이 그에게 커다란 유년시절의 인생의 밑그림을 설계하는데 커다란 작용을 했으리라 생각이 든다.

또한 여색을 밝히는 기질이 농후한 허균은 조선의 최고 기녀 이매창을 만나기도 하고,주색에 빠져야만 그림으로 자신의 내면을 묘사하는 나옹 이정등의 숱한 여인들과의 만남은 그로 하여금 남녀간의 사랑과 연모의 정을 깊게 나누고 그리워하고 그의 인생 세계를 풍부하게 만들게 한다.반면 그는 인습,규범 같은 틀에 박힌 세계는 혐오할 정도로 그것과은 벗어난 세계를 추구한 나머지 술만 입에 들어 가면 정치 세계를 비꼬는 말투가 자주 등장하고 그러한 입바르고 거슬리는 비판의 목소리가 그의 정적들에 의해 이용 당하기도 하고 초라하게 유배길로 가야 하는 신세가 되기도 한다.

그는 주로 서자로 태어나고 남존여비의 사상에서 비롯되어 출세길이 막힌 서자,여류 문인들과의 사랑과 우정을 나누는 게 주류를 이루는 듯 하다.그러나 조선의 아웃사이더들의 삶은 조선 국정의 주류가 아니면서도 주옥같은 문학 작품들을 남겼다.그들의 작품 세계 속에서 그들의 내면을 충분히 읽을 수가 읽고 음미할 수 있는건 정사 못지 않게 소중하다는 반증이기도 한 것이다.

공주 목사에서 파직 당하고 부안에 있을 무렵 정사암에서 우연히 남궁두선생과 진묵대사의 권고에 의해 <남궁선생전>과< 홍길동전>이라는 소설을 쓰게 되는데 조선의 사직을 뒤엎을 만한 내용이다 하여 이이첨이라는 인물이 홍길동전을 찾으려 하지만 찾지 못하고 그의 불온 혁명 사상을 반증하는데는 실패하고 마는 셈이다.모략과 역모가 판치던 광해군 시절 광해군은 허균과  머리를 맞대고 국사의 밝은 미래를 숙의하고 계획했건만 간신들의 끈질긴 역모에 의해 광해군은 결국 역모자들의 손을 들어 주고 허균은 배신을 당하며 비참한 삶으로 나락하게 된다.

그의 인생의 최후는 그가 가장 절친하고 바늘과 실처럼 삶의 파트너였던 이재영에 의해 경운궁에 나붙었던 비밀 상소가 허균에 의해 저절러진 것처럼 되어 결국 그는 친우의 배신으로 1618년 8월의 염천하에서 서대문 거리에서 망나니에게 목이 잘리고 나머지 몸이 몇 등분으로 잘리는 처참한 최후를 맞게 된다.여기에서 친구 이재영은 찢어지게 가난한 집안에서 자라고 이상적인 삶보다는 현실주의자로서 남기를 바랬고 허균은 나름대로 시대의 부조리등을 파헤치고 한 몸으로 불태웠던 아웃사이더가 아니었다 싶다.

허균은 다재다능하고 자유분방하며 한 시대를 풍미한 걸출한 인물임에 틀림없다.이러한 인물이 시대를 잘못 타고 태어나 그의 뜻을 십분 발휘할 수 없었던 당시의 조선 정치상의 부패,악의 고리등을 이해하고 그의 작품을 통해서 그의 숨겨진 의미를 총체적으로 알 수 있으리라 기대해 본다. 





j******6 2010.07.22.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허균, 길에서 살며 사랑하다 죽다
"허균, 길에서 살며 사랑하다 죽다" 내용보기
시인들은 죽고 세상은 미쳐가다그야말로 흐드러지게 한 세상 살다간 한 인물을 만났다. <홍길동전>의 저자라는 짧은 한 줄로 역사에 남아 우리가 기억하는 인물이다. 역사는 인물이 아니라 인물의 업적을 빛내지만, 작가는 잊히고 묻힌 인물의 삶에 빛을 주었다. <허균, 길에서 살며 사랑하다 죽다>는 그와 벗들이 살았던 세상, 그리고 그 세상이 지배했던 허균과 그 벗들의 운명을
"허균, 길에서 살며 사랑하다 죽다" 내용보기

시인들은 죽고 세상은 미쳐가다


그야말로 흐드러지게 한 세상 살다간 한 인물을 만났다. <홍길동전>의 저자라는 짧은 한 줄로 역사에 남아 우리가 기억하는 인물이다. 역사는 인물이 아니라 인물의 업적을 빛내지만, 작가는 잊히고 묻힌 인물의 삶에 빛을 주었다. <허균, 길에서 살며 사랑하다 죽다>는 그와 벗들이 살았던 세상, 그리고 그 세상이 지배했던 허균과 그 벗들의 운명을 이야기한다. 허균, 그는 약 400년이 지난 오늘 이처럼 샅샅이 자신의 삶을 들여다보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안다면 어떻게 반응할까? 

머릿속이 하얘진다. 내가 알아왔던 상식이 배반당한 기분이다. 그에 대해 아는 것이 없었구나 하는 깨달음만큼이나, 책의 마지막 장을 덮을 때가지 그에게서 '위대한 점'을 발견할 수 없다는 사실이 당혹스럽다. 역사가 기억하는 인물에서 흔히 발견할 수 있는 인격의 고매함이나 높은 기상, 추구했던 이상조차도 찾아보기 어렵다. 오히려 그렇게 지겹도록 탄핵을 당하고 번번이 내쳐지면서도 끝까지 벼슬자리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모습이 애처롭기까지 하다. '훗날 역사가 평가해줄 것이라'는 우리의 믿음이 옳다면, 그는 시인으로 태어나 괴물로 죽었다. 그가 죽은 뒤 역사에서 '천하에 둘 도 없는 괴물'로 불렸다고 전하여지니 말이다. 

<허균, 길에서 살며 사랑하다 죽다>는 허균과 한 세월 그와 함께했던 벗들을 이야기한다. 그 자신이 서자로 태어난 허균의 주변에는 뛰어난 재주를 가졌지만 천한 신분이라는 태생적 사슬에 매인 서자들이 많았고, 전쟁이나 가난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기생으로 살아야 했던 여인들과 어울렸다. 그래서인지 사연 많은 기생 매창, 술이 취해야 그림을 그렸던 걸인 화가 이정, 가난에 찌들어 살았던 명필 한호, 시 한 편 때문에 죽은 권필 등 시대를 잘못 만나 그 재능과 뜻을 다 펼치지 못한 안타까운 인생 이야기가 넘친다. 무슨 운명의 장난인지 허균이 사랑했던 친구들이 모두 길 위에서 죽었다. 그 마지막 순간까지 참으로 고단한 인생들이다.

허균은 누이 허난설헌의 시집 뒤에 이런 글을 적었다고 한다. "누이는 세 가지 잘못을 저질렀다. 여인으로 태어난 것이 첫 번째 잘못이고, 무능한 남편을 만난 것이 두 번째 잘못이고, 조선이란 나라에 태어난 것이 마지막 잘못이다"(p. 91). '조선의 괴물'이 되어, 서대문 사거리에서  망나니의 칼에 목이 잘려 죽임을 당한 허균의 잘못은 무엇이었을까? 시인의 감성을 가지고 태어났으나, 그가 시인으로 사는 것을 허락하지 않은 야만의 정치와 미친 세상, 그 세월과 시대를 탓해야 하지 않을까.

허균의 삶의 가장 큰 아이러니는 '우정'이 아니었을까 싶다. 탄핵을 받으면서도 어려운 친구를 두고 보지 못해 늘 가까이에 끼고 살았던 허균이 결국 친구의 배신으로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으니 말이다. 그러나 한 세상 그처럼 한 많게 살다간 허균의 인생에서, 가장 빛나고 아름다운 그것은 벗들과 시를 노래했던 그 마음과 그 시간이 아니었을까. 언젠가는 모두 두고 구름처럼 바람처럼 떠날 세상, 그처럼 흐드러지게 벗들에 취하고, 시에 취할 수 있다면 후회 없을 듯하다. 그래서인지 그를 말리고 싶었던 내 마음만큼이나, 그도 미친 세상에 비굴하게 목숨을 구걸했던 그 시간을 지워버리고 싶어하지 않을까 상상해본다.



c***1 2009.09.03.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혼란한 시대의 벼슬아치 허균
"혼란한 시대의 벼슬아치 허균" 내용보기
이화우 흩날릴제 울며 잡고 이별한 님 추풍낙엽에 저도 날 생각하는가 천리에 외로운 꿈만 오락가락 하노라    허균과 우정을 나누었다는 부안기생 이매창이 유희경(천민 시인)을 생각하며 지은 시란다. 반말 비슷한 투정섞인 두번째 구절이(저도 날 생각하는가)재미있어서 기억에 남는다. 내고향 김제에서 가까운 전북 부안에 "매창공원"이 있다고 하니 꼭 한번 가야겠다는 생각
"혼란한 시대의 벼슬아치 허균" 내용보기

이화우 흩날릴제 울며 잡고 이별한 님

추풍낙엽에 저도 날 생각하는가

천리에 외로운 꿈만 오락가락 하노라 

 

허균과 우정을 나누었다는 부안기생 이매창이 유희경(천민 시인)을 생각하며 지은 시란다.

반말 비슷한 투정섞인 두번째 구절이(저도 날 생각하는가)재미있어서 기억에 남는다.

내고향 김제에서 가까운 전북 부안에 "매창공원"이 있다고 하니 꼭 한번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을 읽기 전 허균에 대해서는 오로지 최초 한글소설 "홍길동전"의 작가로만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는 장원급제에 형조참판서까지 지낸 한시대를 풍미한 인물이었다.그리고

최초 동인과 서인으로 갈라지게된 광해군 시절에 그의 형 허봉과 함께 정치적으로도 중요 인물이었다.

(허균은 동인의 효시인 김효원(1532-1590)의 딸을-첫째부인 사후에-둘째부인으로 맞이함)

아울러 그의 동생 허난설헌이 유명했던 것은 명나라 사신접대에 능했던 허균덕택이 아니었나 싶다.

이 책은 허균에 대한 평전도 아니고 그렇다고 역사소설도 아니다.

그런 면에서 그런지 전체적으로 내용도 산만하다.

특히 첫장부터 이매창에 관한 이야기가 너무 길다. 이매창전인지..허균전인지..

허균의 삶을 시대순으로 나열했다면 차라리 허균이라도 명확하게 기억에 남았을텐데...

아울러 홍길동전을 어디서 썼는지도 명확하지 않고

심지어는 홍길동전을 허균이 썼다는 주장도 애매하게 말한다.

 

"우리가 [홍길동전]을 허균이 썼다고 하는 근거는 딱 한가지다.

택당 이식(1584-1647)이 쓴 택당집에 [홍길동전]이란 소설을 허균이 썼다고 한

기록 한줄이다.

하지만 많은 연구 결과 허균 이전에도 [홍길동전]이란 소설이 존재했을 것이며

한글소설 [홍길동전]은 허균의 작품이 아닐 것이란 주장도 많았다.

실록에 보면 홍길동의 이름이 몇 차례 나온다."     -  243p에서 -

 

이 책의 좋은 점은 멋진 싯구절이 중간중간 싫증나지 않게 나온다는 점이다.

그리고 한시의 경우 원문을 같이 실었고 다른 인물들도 아주 흥미롭게 소개했다.

아울러 광해군 즉위시절의 벼슬아치들의 혼란상을 적나라하게 말하주고 있다는

점에서 그럭저럭 재미있는 책이었다

 

"광해군은 역대 조선 군주 가운데 존호가 가장 긴 군주였다.

48자나 되는데 그것은 대개 역모 사건이 끝난 뒤 임금에게 신하들이 감축을 드린다며

올리는 충성서약 같은 의미였다. 실록에 광해군 집권시절 역모라는 키워드로 검색하면

443개난 발견된다. 그만큼 기획된 역모 사건들이 많았다는 말이다. ......

정조집권 24년 동안 역모사건 기사는 105건이다.

두 수치를 놓고 보면 광해군 시대가 얼마나 혼란스러웠는지를 금방 알수 있다."

269p에서 발췌함.

k*****9 2010.02.22.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