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지역감정은 가깝고도, 강력했다.
LG트윈스 팬인 나는 고독했다. 삼성과 LG가 맞붙었던 1998년 프로야구 플레이오프. 수능을 한 달 정도 앞두고도 야자 시간에 프로야구 시청을 감행했던 우리반은 일순간 고요해졌다. 정규리그를 2위로 마쳤던 삼성이, 정규리그 3위 LG에 패배한 것이다. 홀로 의기양양했던 것은 나였다. 90년, 94년 우승한 LG 트윈스가 '4의 법칙'에 따라 98년에도 우승하는 게 당연하다며, 삼성이 못해서 그런게 아니라고 친구들을 얄밉게 위로했다. 친구들은 그런 나를 의아하게 생각했다. 도대체 왜 삼성을 응원하지 않느냐고. 내가 자란 곳에서 삼성을 응원하지 않는 것은 이상한 일이었다.
그래도 친구들은 그 정도로 넘어가 주었다. 하지만 만약 내가 좋아하는 팀이 '해태'였다면? 나는 정말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데, 그랬으면 분명 친구들은 '진심어린 장난'으로 나를 '배신자'라 불렀을 것이었다. 이인제가 영남표를 반분하여 김대중이 대통령이 된, 1997년 대선이 불과 1년 전인 시점이었다. 이인제에겐 '배신자'라는 낙인이 찍혔으며, 어린 나의 눈에도 이인제는 절대 재기할 수 없을 것으로 보였다. 어른들의 분노는 상당했다. 나는 다행히 이인제의 길을 가지는 않았다.
그렇다. 나는 경상도, 그것도 TK출신이다. 이번 지방선거에서 내 고향은 당연히 압도적인 지지로 한나라당을 선택했다. 2등은 무소속, 3등도 무소속. 2등과 3등은 한나라당 공천을 받지 못했을 뿐, 당선만 되면 한나라당으로 복귀하겠다는 이들이었다. 이 셋이 95%를 득표했으니 더 이상 설명은 필요없을 것이다. 그런 환경에서 나는 '전라도'에 대한 이미지를 키웠다.
초등학교에 다니던 어느 여름밤, 동네 어른들과 애들이 모여서 왁자지껄 판을 벌린 날이었다. 앞동에 살던 택시기사 박씨 아저씨가 손님을 태우고 광주로 다녀온 일을 얘기해주었다. 광주에서 기름을 넣으려고 주유소에 갔는데, 번호판으로 '경북'차량임을 확인한 주유소 직원들이 "김대중 선생님 만세!"를 외치지 않으면 기름을 못주겠다고 했다는 것이다. 우리 집에 차가 없던 시절이라 주유소가 뭔지 몰랐던 나는 기름을 담은 생수통을 든 사람들을 떠올렸는데, 당연히 그 인상들은 고약하기 짝이 없었다.
호남 대통령을 만든 이인제는 배신자, 해태만은 응원 불가, 광주는 무서운 곳. 내게 지역감정은 이렇게 다가왔다. 어른들이 그런다고 내가 무조건 전라도를 미워한 건 아니었지만, 어쨌든 호감일 순 없었다. 생각해보니, 어머니는 전라도 사람하고는 결혼도 반대라고 하셨다. 내게 지역감정은 이렇게 너무도 가까운 곳에 존재한다.
그런데 이 책은 '지역감정'이 가짜라고 말한다. 나는 동의할 수 없었다. 지역감정은 내게 가까웠고, 강력했다. 하지만 수긍할 수 밖에 없었다. 저자는 '지역감정'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없던 것이 만들어졌다'는 의미에서 '가짜'라 말한다. 그것도 그리 오래되지 않은 시점에서 만들어졌다고 말한다. 전라도도 박정희를 지지했었다는 사실이 이를 증명한다.
# 이른바 '지역갈등' - '지역감정'의 제조과정
1963년 대통령 선거에서 박정희 후보는 경북(61%), 경남(67%), 전북(54%), 전남(62%)의 고른 지지를 얻었다. 영남은 파란색, 호남은 연두색으로 갈리는 오늘날의 투표양상은 찾아볼 수 없었다. 1967년 대선에선 영남의 지지율이 70% 이상으로 올라가 타 지역의 지지율을 압도하기 시작했는데, 이 무렵 시작된 산업화가 영남의 호응을 얻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이때의 지역별 투표 격차는 아직 오늘날의 지역감정과는 달랐는데, 영-호남의 구도라기 보다는 영남-비영남 정도로 구분되었다.
본격적으로 '호남'에 대한 공격이 이뤄진 건, 1971년 대선이었다. 김대중 후보가 강력한 라이벌로 성장하면서, 박정희 정권은 위기감을 느꼈고 호남에 대한 부정적 편견을 유포하기 시작했다. 호남을 고립시켜, 김대중에 대한 지지를 호남에 머물도록 하려는 전략이었다. 실제 서울-경기-충청지역에서는 호남출신의 이농민들과 갈등이 있었다는 점에서 '호남공격'의 기반도 존재하고 있었다.(영남출신 이농민의 경우 영남지역 내 산업단지로 상당수 흡수되어, 호남에 비해 서울-경기-충청지역 토박이와의 마찰은 적은 조건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대중과 야당에 대한 지지는 상당했고, 실제로 부산과 경남에서 박정희의 득표율은 급격히 감소했다. 영호남 간의 지역투표는 이 때도 아직 명확하지 않았다. '편견'은 위로부터 조장된 것일 뿐, 아래로까지 스며들지는 못한 셈이다. 개표 부정 등을 통해 겨우 정권을 유지한 박정희는 곧 유신을 선포했고, 직접선거는 한동안 사라졌다. 지역주의를 진단할 기회는 한동안 없었다.
그리고 직선제가 부활한 1987년 대선. 영-호남 지역주의가 전면에 등장했다. '민주화세력 대 군사독재세력'의 구도 속에서 민주화세력이 YS와 DJ로 분열하면서 영남과 호남의 표가 갈린 것이다. 노태우와 YS, 노태우와 DJ를 구분하는 것은 '민주화'라는 분명한 기준이 있었지만, YS와 DJ를 구분하는 것은 명확한 기준이 없었다. 그같은 상황에서는 '지역'이라는 차이가 충분히 선택지가 될 수 있었고, 역시나 표는 갈렸다.
노태우는 선거 과정에서부터 '민주화 세력'을 '지역감정을 부추기는 세력'으로 몰아부쳤다. 단일화에 실패한 김영삼과 김대중은 득표를 위해 영남과 호남표를 자신이 얻고자 노력할 수 밖에 없었다. 지역주의를 비판하든, 지역의 표를 얻고자 하든 1987년 대선을 통해 '지역'이라는 이슈가 한국정치의 특징으로 강력하게 자리잡았다는 것이 저자의 분석이다. 이같이 지역을 각 세력들이 나눠 장악한 상황에서는 새로운 세력이 성장하기도 쉽지 않다. 민중당, 진정추 등 새로운 세력으로 성장하려던 재야세력들은 영남당, 호남당의 틈바구니에서 자신들을 향한 지지를 얻기가 힘들었다. 결국 '지역주의'를 비판하며 기존 정당으로 들어갔다. 지역주의로 인해 외부에서의 개혁이 쉽지 않으므로 내부에서 개혁을 하겠다는 것이었다.
# 지역주의는 원인이 아닌 결과, 지역을 넘어서는 변별력이 필요하다
없던 지역주의는, 1987년을 기점으로 강력하게 자리잡았다. 영남과 호남의 투표성향이 명백하게 구분되기 시작하였고, 이는 "지역주의가 있다."는 것을 증명하였다. 그리고 "지역주의는 나쁘다"라는 비판은 누구나 공유하는 것이 되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선거철을 제외하자면, 한국에서 '지역'은 그다지 이슈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지역주의란 지역의 이슈를 활발하게 제기하는 운동을 말하는데, 때문에 중앙의 논리에 휘둘리지 않고 지역의 자치, 분리독립을 지향하는 형태로 나타난다. 그런데 우리 사회에는 지역의 쟁점보다는 중앙의 쟁점만 넘쳐난다. 서울에서 일어나는 일은 모두가 알지만, 지역에서 일어나는 일은 당사자들만 안다. 영남이든, 호남이든 서로의 지역에서 어떤 일이 생기는지 잘 모르며, 그래서 미워하거나 좋아할 토대가 약하다. 우리의 지역주의는 실체가 모호하다. 그래도 선거 때면 전쟁을 치른다.
이렇게 실체가 모호하기 때문에, 저자의 질문은 정당해 보인다. "지역주의가 심하다.", "지역주의나 나쁘다." 류의 과도한 관심이 오히려 문제를 제대로 못 보게 하는 것은 아니냐는 말이다. 이런 질문을 던져볼 수 있겠다. 혹시 지역주의는 미약한데, 각 지역에 거점을 둔 정당들의 경쟁 속에서 조장되고 있지는 않은가? 다들 지역주의가 나쁘다고 하지만 한나라당이 영남몰표를 잃을 각오를 할 수 있을까? 민주당이 호남몰표를 잃어도 좋다고 생각할까? 오히려 이들은 '지역주의가 나쁘다'고 말하더라도, "지역주의는 있다"는 인식을 모두 공유하는 상황에서 이익을 본다. 긴장감을 느낀 영호남의 주민들이 표를 모아줄 것이기 때문이다. '지역주의'는 원인이 아니고, 각 지역에 기반을 둔 정당구도의 결과물은 아닐까라는 생각은 그래서 합리적이다.
우리는 한나라당 정부도, 민주당 정부도 겪어보았다. 하지만 지역투표의 성향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한나라당 정부나, 민주당 정부를 겪어봐도 크게 차이를 못느낀다는 말이다. 하지만 한나라당이나 민주당과는 확연히 구별되면서, 서민들의 삶에 획기적으로 기여하는 정책-이슈를 제기하는 정당이 생긴다고 가정해보자. 그러면 '지역'이 선택의 기준에서 벗어날 수도 있지 않을까? 실제로 진보정당의 득표는 지역보다는 계급-계층의 영향을 받는다는 점에서, 이슈가 지역을 넘어설 수 있다는 생각은 설득력이 있다. 때문에 한국정치의 문제를 '지역주의'로 호도하기 보다는, 협소한 정치지형(한나라, 민주 둘 중 하나라는 좁은 선택지)를 넘어서는 이슈를 제기해야 것이다. 나는 이에 절대적으로 동감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역감정은 진짜다. 그것이 '만들어진' 것이라 하더라도, 그것은 실제로 작동하고 있다. LG트윈스를 좋아했던 나는 고독했고, 이인제는 배신자였다.(이명박 출마시의 이회창도 마찬가지였다.) 이는 충분히 선택의 기준이 될 만한 이슈를 제기한다하더라도, 대중을 망설이게 만들 것이다. 악조건임에는 분명하다. 하지만 그럴수록 더욱 열심히 새로운 이슈들을 제기해야 한다. "지역주의는 원인이 아니라, 변별력 없는 두 정당이 정치의 전부인 한국사회의 결과물"이라는 해석을 통해, '지역'을 넘어서는 대중적 지지를 얻어낼 '이슈'를 제기해야 한다. |
|
<만들어진 현실>을 접했을 때, 스티븐 제이 굴드의 책들을 읽었을 때 느꼈던 감탄이 떠올랐다. ‘왜 4할대 야구 타자들이 없는가?’ 와 같은 그냥 평범한 질문을 던진 후, 이리 저리 나를 끌고 다닌다. 끝에 다다르면 처음의 질문이 진화와 어떻게 맥이 닿아있는지 기가 막힌 방법으로 보여준다. 94년도던가.. 민자당 김영삼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되던 날, TV를 통해 개표 광경을 새벽까지 지켜봤던 게 기억난다. 그 후로 김대중 후보가 당선되는 순간도, 노무현 후보다 당선되는 순간에도 전국 유권자의 투표결과를 보여줄 때마다 느낀 것은 전라도가 한 특정인물에게 절대적 지지를 보이는 걸 보면서 “호남사람들 지독하네..”또는 섬뜩함이었다. 그 현상을 우리는 지역주의라고 의심 없이 본다. 박상훈 선생님의 <만들어진 현실>은 이러한 아주 평범한 질문에서 시작된다. 그리고 그 누구도 편안하게 생각하는 시각들이 우리 사회의 권력, 이데올로기와 무관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실제로 박상훈 선생님을 전에 한번 만난적이 있다. 내가 인상적이었던 것은 “A 때문에 B라고 하지 않느냐”라는 문제를 제기할 때마다 “문제를 그렇게 보면 안 된다.”면서 문제의 틀을 다시 구성해주고 그렇게 생각해보라고 권유를 했다. 그 권유에 따라 다시 생각해보니, 전과 다른 점은 그냥 자포자기 했던 많은 부분들에 해결점이 보인다는 것이었다. 이 책은 그가 오랫동안 한 문제를 다각도로 생각하며 얻어낸 결과물이라 할 것이며, 그 결과물은 훌륭하기 그지없다. |
|
'지역주의'라 눈총받는 호남(광주)의 선택이 잘못된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1987년 겨울.
1993년 여름.
1997년 겨울.
2004년 4월 15일.
2010년 5월.
2010년 6∙2 지방선거가 끝나자 <견고한 '지역주의'의 균열>이라는 평가가 나왔다.
2010년 6월 19일 지방 MBC 뉴스테스크에
다시 '지역주의' 극복이 한국 정치 과제로 튀어나왔다.
"지역주의가 문제"라는 주장에 "지역주의 극복"을 꺼내는 것은 누군가가 의도한 틀(Frame)에 갇혀 맞장구 쳐주는 것이다.
이 '지역주의'라는 인형의 조정자의 손놀림에 현혹되지 말아야 한다. |
|
현실정치의 틀속에서 지역주의 만큼 우리에게 강력한 프레임을 요구한 것이 또 무엇이 있을까? 대부분의 문제들은 '지역주의 때문이야'라는 말로 상당히 합리적으로 결론 지어진다.
저자는 '만들어진 현실'에서 우리가 알고 있는 '지역주의'라는 것의 실체를 파헤친다. 과연 그것이 정당한 추론인지, 아니면 누군가에 의해서 강제된 프레임인지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