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가 어렸을 때만 해도 컴퓨터는 단지 간단한 사무용이나 계산기, 게임기 정도의 역할 밖에는 하지 못했다. 하지만 오늘날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함께 만나는 인터넷이라는 새로운 네트워크가 급속도로 발전하면서 컴퓨터는 우리의 일상생활과 매우 밀접해졌다. 우리는 컴퓨터를 통해서 이메일 주고 받기, 레포트 쓰기, 인터넷 쇼핑 등의 여러 가지 일들을 할 수 있다. 최근에는 싸이월드라는 개인 홈페이지가 유행해 친구들끼리, 때로는 서로 모르는 사람들끼리도 교분을 나누기도 하고, 더 발달된 머드 게임들을 통해 사이버 공간에서 새로운 인간관계를 형성해 나가기도 한다. 이제 컴퓨터는 우리에게 친구나 새로운 삶의 파트너로 인식되고 있는 것이다. 이 책의 저자인 셰리 터클은 이러한 컴퓨터를 정보통신의 기술에 한정하지 않고 인간과 문화로 그 탐구영역을 넓혀 다양한 체험담을 이용해 폭넓게 고찰하고 있다. 저자는 먼저 컴퓨터를 낱낱이 해부하고 지배하려는 초기 마니아들의 욕구가 어떻게 모더니즘의 세계관에 닿아있는지, 인터넷의 사이버 스페이스 속에서 벌어지는 일들과 땜장이방식(소프트 스타일)이 포스트모더니즘·후기구조주의와 어떤 관련이 있는지 등 인간과 기술 문명을 심도 깊게 이해할 수 있는 혜안을 준다. 또한 인터넷의 발달로 인한 사이버 공간의 시뮬레이션 문화가 우리의 정신과 몸, 성적 욕망의 본질, 자아는 물론 기계에 대한 기존 관념을 상당 부분 바꾸어 놓았음을 보여준다. 인공지능과 인공생명에 대한 낭만주의적 반발에서 벗어나 이제는 시뮬레이션 문화의 발전과 함께 ‘다양한 시각의 순환’이 생명에 대한 우리의 사고 방식으로 일반화되어 가고 있다. 또한 사이버 공간에서 ‘남자인 척 하는 여자’나 ‘남자인 척 하는 여자’를 보는 것은 이제 어려운 일이 아니다. 심지어는 ‘남자인 척하는 여자를 가장한 남자’도 존재한다. 여성이 남성의 입장에서 여성들과 여성문제를 토론하기도 하고 이십대 여성이 사십대 여성으로, 사십대 여성이 이십대 여성으로 자아를 바꾸기도 한다. 이처럼 자아 역시 ‘하나의 실물’이나 ‘영구·고정적 구조를 가진 하나의 정신세계’가 아니라 ‘담론의 장’으로 바라보는 포스트모더니즘적인 흐름과 궤를 같이 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측면에서 자아를 볼 때는 다중 인격 장애와 같은 정체성의 위기를 초래할 수 있으나 저자는 제3의 길로써 ‘유연한 자아’라는 새로운 개념을 제시함으로써 이를 긍정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본다. 하지만 이러한 사이버 상의 경험이 현실의 삶을 더 악화시킬 수도 있다. 저자는 이에 대해서 자연 상태를 변형한 인공적인 체험을 실재와 혼동하는 경우, 가상 세계의 경험이 너무도 강렬해서 그 속에 들어가면 현실에서보다 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다고 믿는 경우, 가상공간과 이용자의 책임문제, 고급 정보의 독점화 현상, 사회감시체제 등의 문제들을 살펴보고 있다. 이처럼 저자는 스크린 위의 삶(컴퓨터와 인간의 관계)에 대해서 다양한 체험담을 바탕으로 긍정적인 측면과 부정적인 측면을 같이 제시하고 있다. 하지만 결론적으로 머드라는 가상 공간의 경험 자체가 충분히 현실적이라든가 ‘유연한 자아’라는 개념을 제시하는 측면에서 봤을 때는 사이버 공간의 장점들을, 이를 이용하는 개개인이 ‘잘 활용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실용주의적 관점을 택하고 있다. 그렇지만 이러한 관점은 여러 가지 문제들을 야기한다. 우선 위에서 제시한 여러 가지 문제점들을 해결할 수 있는 구체적인 방안이 제시되지 않고, 이를 이용하는 개개인의 책임과 선택에 맡겨버린다면 이에 대한 사회적 책임을 회피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학교 교육과정에서 미리 사이버 공간을 잘 활용할 수 있는 여러 가지 경험들을 쌓을 수 있게 한다면 사이버 공간의 미래는 더욱 밝아질 것이다. 사이버 공간에서의 예절이라든가 사이버 공간 상에서 여러 가지 자아를 체험하더라도 여기에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는 방법들은 학교 교육 상에서도 충분히 학습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보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컴퓨터에 대한 접근성의 문제이다. 이 책의 저자는 미국, 영국, 러시아 등 소위 선진국의 사례들을 들고 있다. 하지만 아프리카나 라틴 아메리카의 후진국들, 선진국이라도 가장 하층에 있는 사람들은 컴퓨터를 이용할 수 있는 환경적인 측면에서 상당히 제한적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컴퓨터가 오늘날 많이 보급되었다고 하더라도 이에 대한 혜택을 전혀 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존재하는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인터넷 상의 사이버 공간이 인간의 삶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 지에 대한 연구도 중요하지만 이에 대한 혜택을 전혀 받지 못하는 사람들에 대한 관심 또한 이에 못지 않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이 책에서는 이들에 대한 언급이 거의 없는 점이 아쉽다. 현실과 가상 공간 중 어느 것이 중요할까? 오늘날에 이 질문은 별 의미가 없을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아무리 인터넷이 보급되고 사이버 공간의 활용이 일상화되었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현실을 기반으로 두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측면에서 셰리 터클의 이러한 연구 성과는 우리에게 많은 시사점을 안겨준다. 하지만 더 나아가 컴퓨터를 이용하는 모든 사람들의 건강한 사이버 공간 이용을 위해서는 개인 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노력이 필요하다고 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