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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외인종 잔혹사 -- 빠른 속도 쑹쓍~ 끝이 허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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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 일이 벌어질 것 같이 한참 잘 달려나갔다. 각각의 사람들의 얘기가 속도감있게 읽힌다. 뭔가 일이 벌어지긴 했지만 너무 기대를 했나? 끝이 좀 허망하다. 어떤 결말을 바랬는지 나도 모르겠지만.. 뭔가 좀 더 감동적인 거나 자극적인 걸 바랐나보다. 그리고 궁금한 점은 왜 양머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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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 일이 벌어질 것 같이

한참 잘 달려나갔다.

각각의 사람들의 얘기가

속도감있게

읽힌다.

뭔가 일이 벌어지긴 했지만

너무 기대를 했나?

끝이 좀 허망하다.

어떤 결말을 바랬는지 나도 모르겠지만..

뭔가 좀 더 감동적인 거나 자극적인 걸 바랐나보다.

그리고

궁금한 점은

왜 양머리일까?

 

 

 

 

 

 

 

 

YES마니아 : 로얄 a****1 2010.09.03. 신고 공감 5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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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국의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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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에 있을 땐, 열외라는 말을 듣는 것처럼 기분 좋은 일도 또 없었다. 하지만 사회에 나오고 나선, 열외라는 말을 듣는 것처럼 불안한 일도 또 없다. 사회에서 열외란, 의자뺏기 게임에서 패배자가 된다는 뜻이다. 의자에 앉아야 안정된 삶을 가질 수 있는데, 내가 앉을 수 있는 의자가 없어져버린 것이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열외 되는 것에 대한 공포도 같이 점점 더 자라난다. 다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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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군대에 있을 땐, 열외라는 말을 듣는 것처럼 기분 좋은 일도 또 없었다. 하지만 사회에 나오고 나선, 열외라는 말을 듣는 것처럼 불안한 일도 또 없다. 사회에서 열외란, 의자뺏기 게임에서 패배자가 된다는 뜻이다. 의자에 앉아야 안정된 삶을 가질 수 있는데, 내가 앉을 수 있는 의자가 없어져버린 것이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열외 되는 것에 대한 공포도 같이 점점 더 자라난다. 다시 내 자리를 되찾는 것이 그만큼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주위 사람들도, 뉴스도 연일 열외가 되어버린 자들의 불행한 처지를 열거하면서 경고를 쏟아낸다. 경고를 들을 것도 없이 눈으로 직접 보기도 한다. 열외자의 출현은 언론이나 소문으로만 접할 수 있는 나와 먼 생경한 현실이 아니라, 바로 내 지근거리에서 일어나는 이미 익숙한 현실인 것이다. 그런 삶의 목도는 마음 속 공포를 더 부풀리게 마련이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열외자가 생겨나는 속도도 거듭 빨라지고 있다. 여기저기서 '두더지 잡기 게임'처럼 휙휙 사라지는 사람들이 남겨 놓은 빈자리가 늘어난다. 어쩌면 저 빈자리가 내일은 내 자리가 되지 않을까 하여 나는 더욱 단단히 매달리기 위하여 나의 모든 것을 죽인다. 조직이, 상사가 그리고 고객이 원하는 인간으로 철저히 변할 수 있게 노력한다. 사회에서 우리가 자존심을 굽힐대로 굽히고 더러는 굴욕마저 무릅쓰며 갖은 고생을 감수하는 것은 내가 속한 곳에서 열외가 되지 않으려는 처절한 몸부림에 다름 아니다.


 이렇게 열외에 대한 이야기를 하게 된 것은 주원규의 '열외인종 잔혹사'를 읽었기 때문이다.

 이 소설은 네 명의 열외된 인간들이 어쩌다 양머리를 한 수 십명의 테러리스트들이 획책한 열외가 되지 않은 자들의 성채라 할 수 있는 코엑스몰 점거 사건에 휘말리게 되는 하루를 그리고 있다. 그 네명은, 이제 곧 어버이 연합에 스카우트 될 것만 같은 노인 장영달, '이태백'이 되지 않기 위해 할 수 있는 것은 다 했지만 그래도 여전히 비정규직인 이십대의 윤마리아, 회사에 개처럼 충성했지만 돌아온 것은 코 푼 휴지처럼 버려지는 것이 전부였던 중년의 노숙자 김중혁(이름 때문에 자꾸 동명의 소설가 얼굴이 오버랩 되었다.), 마지막으로 게임 말고는 현실 그 어디에서도 자신의 자리를 가질 수 없는 십대의 불량 청소년 기무로 사실 현재 자신의 의자를 간신히 지키고 있는 사람들에겐 가장 피하고 싶은 인생의 모습들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 네 명을 혼비백산 시켰던 양머리 테러리스트들도 결코 그들과 다르지 않았으니, 사실 양머리 테러리스트들 역시 열외자였고 테러 또한 자신들과 같은 열외자들을 대량 생산하는 사회에 대한 분노로 일으킨 것이었다.


 그러고 보니, 예전 재난 영화가 유난히 유행할 때 그 이유에 대해 어떤 평론가가 이렇게 말했던 것이 기억난다. '재난 영화는 추락과 파산의 불안이 만연한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무의식적 소망을 담고 있다. 끝도 없이 불안을 가져다 주는 이 사회가 너무 진저리가 나서 어서 끝장나 버렸으면 좋겠다는 소망이다.' 양머리 테러리스트들의 염원도 이와 같다. 그들의 테러는 줄기차게 야기되는 혼란과 불안을 서둘러 끝장내고 싶은 염원의 표현인 것이다. 코엑스몰의 점거 테러가 본격적으로 전개되는 2부, '최악의 도시'는 알고 보면 요한계시록과 같은 종말론의 외피를 성글게 두르고 있다. 이 소설은 수박처럼 겉과 속이 다르다. 겉으로 보이는 소설의 분위기는 꽤나 희극적이지만, 속내는 종말을 희구하고 있고 굉장히 허무주의적이다.(그래서 희극적인 장면 또한 어쩐지 '내가 웃는 게 웃는 게 아니야'로 보인다. 마치 작가가 '현실이 이토록 막장인데, 이런 걸 보고도 웃음이 나와?' 말하며 내 멱살을 잡는 느낌이다.) 양머리들이 그토록 찾았던 메시아가 간신히 나타나자마자 총알 한 방에 어이없이 죽고, 코엑스몰의 그 엄청난 테러 사건도 바로 다음 날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되는 결말은 오늘 날의 대한민국이 천민자본주의의 막장이며, 결국 우리 모두는 열외자가 되어버릴 운명에 처해있고 자신이 헌신하는 소설조차 그런 현실을 개선할 그 어떤 도움도 주지 못한다는 작가 자신의 말에 힘껏 마침표를 찍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실은 소설은 아무 것도 주지 않는다. 이미 열외자가 되어버렸거나 혹은 언제 열외자가 될 지 모를 우리들에게, 그래서 어쩌면 더욱 절박하게 원할, 그 어떤 위안도, 희망도 주지 않는 것이다. 다만 인도 신화에 나오는 '저그노트'처럼, 시간이 지날수록 더 많은 사람들을 열외자로 만들어 짓누르는 이 천박한 시대가 어서 끝장 나기만 바랄 뿐이다. 그의 소설은 무력하다. 그런데 그럴 수밖에 없는 지도 모른다. 프랑스의 사상가인 지그문트 바우만에 의하면, 열외 인간의 양산은 현대화의 불가피한 산물이니까. 그는 주저 '쓰레기가 되는 삶들'에서 이렇게 말했다.


 '인간 쓰레기',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쓰레기가 된 인간들('잉여의', '여분의' 인간들, 즉 공인받거나 머물도록 허락받지 못했거나 다른 사람들이 그것을 바라지 않는 인간 집단)의 생산은 현대화가 낳은 불가피한 산물이며 현대성에 불가피하게 수반되는 것이다. 또 질서 구축(각각의 질서는 현존 주민들 중의 일부를 '어울리지 않는다', '적합하지 않다' 또는 '바람직하지 않다'는 이유로 내쫓는다.)과 경제적 진보(이것은 이전에는 효과적인 생계 유지 방식이었던 것을 격하하고 평가절하하지 않고는 결코 이루어질 수 없으며, 그로 인해 과거의 생계 유지 방식을 유지하는 사람들의 생활수단을 박탈하지 않을 수 없다.)가 초래하는 피할 수 없는 부작용이다. (지그문트 바우만, '쓰레기가 되는 삶들' p.22)


 열외자의 생산은 배제를 통해 질서를 유지할 수밖에 없고, 모든 것을 서둘러 낡은 것으로 만들어 계속 새 것을  소비시키는 것으로 존속할 수밖에 없는 현대성(모더니티)에 허파처럼 내재된 것이다. 현대는 바로 그런 열외자의 양산을 통해 지속되니까 말이다. 그러므로 열외자의 생산을 그치게 하려면 현대성 자체를 변화시켜야 한다. 하지만 그것은 너무나 어렵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대지를 떠받치고 있다는 아틀라스 신쯤 되면 가능할 지도 모르지만, 한낱 개인에게는 너무나 벅찬 짐이다. 그래서 주원규 작가의 고백은 차라리 정직하다고 해야 한다. 소설의 마지막 문장인 "제발 용건만 간단히"는 자신의 소설에 대한 비아냥일 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이 소설이 가지는 가치가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고 본다. 예전의 나도 그랬듯이, 우리들은 열외자의 문제를 흔히 아주 개인적인 사안으로 치부하기 쉽다. 최근에 나온 영화 '부산행'에서 열차에 몰래 숨어든 노숙자를 보고 김의성이 분한 배우가 아이에게 "너도 열심히 공부 안 하면 저렇게 된다"라고 말했듯이 말이다. 하지만 이 소설은 그것이 개인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 시대 자체의 문제로 보게 한다. 다시 말해, 이 소설은 한 마디로 '파국의 지도'다. 막장이 되어버린 시대의 적나라한 모습과 그 아래 가리워져버린 열외자들의 목소리를 보여주고 들려주어 독자로 하여금 전체를 조망하도록 만드는 지도인 것이다.


 어쩌면 이것이 출발점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개인적인 문제라 여겼을 때, 내 시선은 언제나 내게로만 향했다. 그것도 늘 단점과 부족함만 찾아내는 시선이었다. 그래서 더 주눅이 들었고 더 불안했다. 하지만 지도의 조망은 내게만 향했던 시선을 타인으로 향하게 만든다. 나와 똑같이 힘들고 비극적인 운명에 처한 이들을 보고 헤아리도록 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 열외자가 되었다는 절망, 될 지도 모른다는 불안에서 벗어나려면 날 계발시킬 것이 아니라 시대의 진실에 대해 더 많이 알아야겠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것이 시작이 되어 배우고 성찰하여 결국 자신의 목적지를 지도 위에 스스로 설정할 수도 있다. 너무 낙관적인 것일까? 그래도 나는 믿고 싶어진다. 이 '파국의 지도'를 본 이들이 추락과 절망을 강요하는 시대를 바꾸기 위해 점점 더 많이 노력할 것이라고.


 알고 보면 희망은 믿음의 문제이다. 그리고 변화를 가져오는 진정한 동력도 이 믿음에 있다.






l****1 2016.08.21. 신고 공감 4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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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너리티, 소수자, 룸펜프롤레타리아, 마르쿠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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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리스...   추운 겨울, 정확히 말하면 성탄절 연휴, 그러니까 얼마 전, 다시 정확히 말하자면 어제의 일이었습니다. 저는 집에서 따뜻한 방구석에 배깔고 누워 휴일을 맘껏 즐기고 있었죠. 문자가 왔습니다. 편하게 쉬고 싶으니 잠시 밖에 나가 달라는 누나의 메시지였습니다. 가끔씩 누나는 이렇게 부탁 아닌 부탁을 하는 경우가 있는데, 하필 서울이 몹시 추운 날이었죠. 다소 예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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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리스...

 

추운 겨울, 정확히 말하면 성탄절 연휴, 그러니까 얼마 전, 다시 정확히 말하자면 어제의 일이었습니다. 저는 집에서 따뜻한 방구석에 배깔고 누워 휴일을 맘껏 즐기고 있었죠. 문자가 왔습니다. 편하게 쉬고 싶으니 잠시 밖에 나가 달라는 누나의 메시지였습니다. 가끔씩 누나는 이렇게 부탁 아닌 부탁을 하는 경우가 있는데, 하필 서울이 몹시 추운 날이었죠. 다소 예민한 누나는 내가 가족임에도 불구하고 옆에 있으면 편하게 쉴 수 없다고 하네요. 방법이 있습니까. 정해진 목적지 없이 집을 나섰죠.

 

추웠습니다, 추웠습니다. 매우 추웠습니다. 눈에 가장 먼저 들어온 카페에 들어가 따뜻한 밀크티 한 잔을 주문하고 동행한 책 한 권을 테이블 위에 올렸습니다. 그 책이 『열외인종 잔혹사』였습니다. 이 책을 읽으며 쫓겨난 나 그리고 소설 속에 등장하는 마이너리티의 인물들이 오버랩되었습니다. 우연이라면 우연인 독서 경험인 셈이죠. 맞습니다. 이 책에는 노숙자, 자퇴한 청소년, 정규직을 갈망하는 인턴 사원, 노인 등 갈 곳 없는 사람이 등장합니다.

 

자본주의의 어두운 면

 

제14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인 『열외인종 잔혹사』는 이렇듯 마이너리티 문제를 소설의 소재로 다룹니다. 다른 문학상도 그렇겠지만 한겨레문학상은 고유한 색깔이 있습니다. 민주화를 소재로 한다든지,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 의식을 소설의 주제로 내세운다든지, 소수자에 대한 문제의식을 다룬다든지 하는 특징이 그러합니다. 심윤경의 『나의 아름다운 정원』이 첫 번째에 해당하고, 박민규의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이 두 번째 그리고 서진의 『웰컴 투 언더그라운드』등이 세 번째에 해당하죠. 물론 그 외에도 권리의 『싸이코가 뜬다』나 한창훈의 『홍합』 조영아의 『여우야 여우야 뭐하니』와 같은 작품도 주류 사회에서 소외된 '마이너리티'를 다룬다는 특징은 동일합니다.

 

그런 면에서 이 작품 『열외인종 잔혹사』 역시 한겨레문학상 수상작의 또다른 전형이라고 봐도 무방할 듯합니다. 갈 곳 없는 노숙자 김중혁. 학교는 다니지 않고 피씨방에서 무전취식하며 또래 여성이랑 격렬한 섹스가 인생의 낙인 비행 청소년 기무. 대학 졸업장도 땄고, 어학연수도 다녀왔으며 이런저런 자격증도 땄지만 대기업 정규직 사원은커녕 인턴도 하지 못해 유령회사의 인턴으로 제자리에서 맴돌고 있는 윤마리아. 박정희 전대통령을 자신의 신으로 모시고 매일마다 공원에 가 반공 멸공 등의 단어로 채색한 시국선언을 선보이는 게 유일한 하루의 일과인 퇴역군인 장영달. 소설의 서사를 구축하는 4명의 등장인물은 각각을 떼놓고 서술해도 한 편의 소설을 이룰 수 있을만큼 매력적이 인물입니다. 하지만 이 소설의 매력은 이들을 그저 그런 존재로 치부한다는 사실입니다.

 

인물에 대한 작가의 시선은 차갑습니다. 지금 이 시간과 공간에 흘러넘치는 인간 군상 중 하나로 치부하는 느낌입니다. 제 기억이 맞다면 예전, 그러니까 IMF 구제금융 당시만 해도 사회는 마이너리티에 대한 문제를 제기했습니다. TV를 중심으로 노숙자 문제의 심각성에 대해 열변했고 갈 곳 없이 방황하는 비행 청소년을 걱정했습니다. 그러나 제가 무관심한 탓일까요. 이제 그들은 하나의 일상적인 풍경으로 자리잡았습니다. 작가가 썼듯, 서울이라는 도시에서 이런 존재들은 흔히 볼 수 있다는 뜻이죠.

 

불만을 가질 만도 합니다. 주류사회에 편입하지 못해, 하다못해 주류는 아니더라도 평번한 사람의 축에도 못끼니까 사회에 대해 울분을 토할 만도 합니다. 물론 등장인물들은 화를 내기도 하죠. 퇴역군인 장영달 옹은 공산당을, 비행 청소년 기무는 자신의 여성친구에게 욕을 퍼붓습니다. 공기의 파동은 대기에 흡수되어 아무런 파동도 일으키지 못하지만요. 그러던 어느 날 각 인물들에게는 범상치 않는 정보가 흘러들어옵니다. 쿠데타, 혁명, 게임, 이벤트, 정규직 전환에 대한 희망 등 인물들에게 사건은 다른 의미로 다가오지만 이들이 움직이는 동선을 따라 계속 이상한 사건이 일어납니다. 노숙자들이 폭동을 일으키고 삼성역 코엑스에서 광란의 카니발이 거행됩니다.

 

양의 탈을 한 사람들의 총격전. 50여 명이 넘는 사람이 죽고 코엑스의 곳곳이 파괴됩니다. 소설의 서사를 이끌어가는 4명의 인물들은 맡은 바 최선을 다 하죠. 죽지 않기 위해 격투기 게임에 참여하고, 죽음을 각오하고 방재실에 침투해 방재셔터를 해제합니다. 그런데 무엇을 위한 최선일까요. 살기 위한 발버둥입니다. 딴 의미는 없습니다. 불친절한(?) 작가는 광란의 총격전에 대해서 말해주지 않습니다.

 

의미는 무엇일까요. 4명의 마이너리티는 사건의 주역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그들이 있건 없건 양머리를 한 사람들의 폭동은 일어났을 테니까요. 그 과정에서 4명의 인물이 부여받은 역할은 소설의 서사를 재밌게 끌고가기 위한 것입니다. 실제로 퇴역군인 장영달의 모습은 우리사회의 보수층에 대한 비꼼이고 윤마리아는 청년 백수에 대한 자조섞인 체념입니다. 노숙자 김중혁, 피씨방 폐인 기무도 마찬가지죠. 이들이 있어도 코엑스를 초토화시킨 테러는 감행되었을 텐데 왜 굳이 4명의 마이너리티를 등장시켰을까요.

 

'체념'이 아닐까 하는 우려가 생깁니다. 테러집단들의 낭독에도 명시되었듯 양머리 집단이 의도한 것은 자본주의 전복입니다. 물론 이런 어중이떠중이들로 자본주의가 전복될 리 없죠. 마르크스-레닌주의도 실패한 일입니다. 실현 가능 여부를 차치하고 등장인물 4명은 서로 자신이 살아온 대로 살아갑니다. 정규직 쟁취를 위해 자신의 종교를 계속 부각시키고, 멸공을 부르짖으며 공산주의 타도를 체현하고, 현실과 게임을 분간하지 못하면서 살상에 몰두합니다. 그나마 김중혁은 시민으로서 최소한의 역학을 완수하죠.

 

커다란 사건 앞에서 자신이 지속해 온 삶의 모습을 바꾸지 않는다. 이는 예전에도 마이너리티였고, 현재도 마이너리티이며 앞으로도 마이너리티일 것이라는 의미가 아닐까요. 어쩌면 작품의 결말이 이렇기 때문에 책의 띠지에 적힌 문구가 '지독하게 웃긴, 그러나 슬픈 잔혹극'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마르쿠제

 

마르쿠제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마르크스주의와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을 접목시키려 한 사람이죠. 그는 욕망과 욕망의 좌절에 따른 무의식의 잠재된 충동을 문명 차원, 특히 자본주의 전체적인 시각으로 분석하려 했죠. 그의 학문에 따르면 자본주의 사회는 사람들의 욕구를 거세시키는 거대한 집단적 억압으로 유지되는 체제입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유는 없다, 는 게 마르쿠제의 입장입니다.

 

현재 마르쿠제에 대한 평가는 높지 않습니다.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을 향한 비판처럼 마르쿠제의 주장 역시 반증불가능하고 관념적인 성격이 다분하기 때문입니다. 이 밖에도 마르크스주의자로서 그는 노동자의 역할을 불신하고 대신 룸펜프롤레타리아와 3세계 민중에 대해 신뢰를 보냈습니다.

 

이 소설에 등장하는 4명의 인물, 그들은 룸펜프롤레타리아입니다. 룸펜프롤레타리아는 사회에서 가장 소외되고 억압받고 있지만 정작 그들 자신은 이러한 사실을 모릅니다. 마르쿠제가 그토록 염원한 룸펜프롤레타리에 의한 사회 혁명이 발생하지 않은 이유도 여기 있쬬. 정치에 대한 불신, 허약한 의지력 등은 룸펜프롤레타리아의 전반적인 특징이죠.

 

『열외인종 잔혹사』는 마르쿠제의 이론을 떠올리게 하는 소설입니다. 크리스테바가 말했듯 상호텍스트성은 텍스트가 갖춰야 할 속성이니까요. 이 소설을 읽고 마르쿠제에 대해 공부해 보는 것도 재밌을 것 같네요. 저는 다음에 할게요. ^^

YES마니아 : 플래티넘 l****i 2009.12.27. 신고 공감 4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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쉽게 끊어질 것 같지 않은 고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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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등장하는 4명의 인간상은 세상 뒷편에 밀려나 있는 주목 받지 못한 우울한 개인들이다. 장영달, 그는 한국 현대사의 격랑을 헤쳐 나온 60대의 전직 군인 출신. 윤 마리아, 대학 졸업 후 정규직 사원으로 도약하고 픈 외국계 제약 회사의 인턴사원. 김중혁, 비정규직 파견 사원이었으나 결국 해고 당하고 가족까지 잃어버리면서 노숙자 신세. 기무, 고등학교를 진학하지 않고 피씨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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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등장하는 4명의 인간상은 세상 뒷편에 밀려나 있는 주목 받지 못한 우울한 개인들이다. 장영달, 그는 한국 현대사의 격랑을 헤쳐 나온 60대의 전직 군인 출신. 윤 마리아, 대학 졸업 후 정규직 사원으로 도약하고 픈 외국계 제약 회사의 인턴사원. 김중혁, 비정규직 파견 사원이었으나 결국 해고 당하고 가족까지 잃어버리면서 노숙자 신세. 기무, 고등학교를 진학하지 않고 피씨방에서 시간을 허비하는 청소년. 이 정도의 인물들이라면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점을 설파하는데 있어 대충 큰 바운더리 안에 묶여진다. 이들은 모두 크고 작은 사회적 상처에 신음한다. 장영달은 월남전 참전으로 훈장까지 받은 인물로 극우적 색채를 몸에 감고 사나 그 역시 노년의 빈곤함은 피할 수 없다. 윤마리아는 청년실업을, 김중혁은 비정규직 문제 그리고 가정의 해체, 기무는 희망없는 청소년상을 대변하고 있다. 이러한 무거운 주제를 경쾌하고 독특한 상상력으로 풀어나갔다. 

1 ‘11 24편에서는 시간대별로 꼼꼼히 이들의 행적이 기록되어 간다. 아무 관련 없는 듯한 이들의 개별 행동이 2최악의 도시편에서는 한 공간에 쏟아져 엉키고 설킨다. 2부의 공간은 소비를 추동하는 상징적 건물인 코엑스다. 그리고, 갑자기 2부에선 시간대 표기가 사라진다. 코엑스의 낮처럼 환한 공간도 암흑 속에서 진행된다. 이러한 시간과 공간 설정은 또 다른 안도감이다. 시간은 멈추어 있고 공간은 어둡다. 시간에 쫓길 이유도 없으며 공간의 어둠은 나를 보호한다.그런 속에서 이들 등장인물들의 삶에 누적된 사회적 긴장감과 피로감이 양머리를 쓴 사람들에게 투영된다. 우린 모두 사회제도 시스템에 양처럼 온순하게 길들어져 왔다. 그런데, 그 양의 탈을 쓴 자들의 집단 발작이 생긴 거다. 더 이상 양이기를 거부하는 한풀이 축제가 한바탕 벌어진 거다. 그러나, 그 축제는 흥겨운 마당이 아니라 피가 튀고 가슴이 뚫리고 머리통이 부서진다. 경쟁 일변도로 치닫는 현대사회도 미 서부개척시대처럼 총을 쥐어줬다면 이와 같은 총질을 해대는 모습 아닐까?


명품을 소비하고 픈 된장녀 윤마리아는 양머리 대장을이라고 생각한다. 이는 작가의 의도적인 네이밍이다.현대인은 미래의 소득을 미리 땡겨서 소비하고 산다. 바로 론(loan)으로. 론은 현대인의 거취를 제한적으로 규정하는 데 성공한다. 그래서, 이런 강한 소비가 견인하는 사회에선 스스로 욕망을 절제하지 않는 한 론에 의존하고 결국 사회 시스템 안에서 점점 온순한 양이 되어가는 것이다. 양은 또한 목자가 없으면 방향을 잡지 못한다. 코를 꿰어 무리들을 이끄는 메시아 같은 존재를 기다리는 수동적 삶을 상징한다.
양머리 무리를 이끄는 대장은 이와 같이 말한다. “내가 어떻게 알겠어? 어느 순간 거울을 보니 내 머리도 양머리, 다른 인간 머리도 양머리로 보이기 시작한 이 현상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겠어?” 작가가 결국 하고 싶었던 얘기가 이것이 아닐까 싶다.

마지막 장면은 더욱 의미 심장하다. ‘이라고 칭하고 싶은 양머리 대장이 기무의 총에 맞는 것이 아니라 엉뚱하게 노숙자인 김중혁이 맞는다. 이 엄청난 사회적 불만을 해소하는 한 편의 굿판에서도을 겨눴어야 할 마지막 총알 3발이 사회적 약자인 김중혁에게로 간 것이다.

이들의 삶은 다시 원점이다. 모든 것이 제자리로 돌아왔고 변한 것이 없다. 그래서, 그들에게열외인종이라는 굴레가 씌워진다. 이 고리가 끝내 이어진다면 우린 이것을잔혹하다는 표현 말고 그 어떤 표현으로 기술할 수 있을까?

h***3 2009.11.20. 신고 공감 3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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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외인종 잔혹사(列外人種 殘酷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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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인터넷 상에서 자주 볼 수 있는 단어 중 하나가 바로 ‘잉여’란 말이다. 잉여의 사전적 의미라면 ‘나머지’ 정도의 의미겠지만, 인터넷의 용법에서 파생된 의미를 유추해 보자면 ‘별 필요없이 그저 밥만 축내는 존재’ 또는 ‘별 볼일 없는 막장인생’ 뭐.... 이 정도 되지 않나 싶다. [열외인종 잔혹사]는 무지하게 재미있다. 그리고 무지하게 웃긴다. 4명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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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인터넷 상에서 자주 볼 수 있는 단어 중 하나가 바로 ‘잉여’란 말이다.

잉여의 사전적 의미라면 ‘나머지’ 정도의 의미겠지만, 인터넷의 용법에서 파생된 의미를 유추해 보자면 ‘별 필요없이 그저 밥만 축내는 존재’ 또는 ‘별 볼일 없는 막장인생’ 뭐.... 이 정도 되지 않나 싶다.


[열외인종 잔혹사]는 무지하게 재미있다. 그리고 무지하게 웃긴다.

4명의 ‘잉여인간’이 11월 24일 하루 동안 엇갈리다가 결국 만나게 되는 이 작품은 이휘재가 “그래 결심했어!”를 일주일마다 외치던 인생극장을 보는 듯하다.

우선 인물설정 자체가 예사롭지 않다. 여기 나오는 등장인물들은 하나같이 우리 사회에서 ‘잉여’로 불릴만한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자. 먼저 그들을 보자.


장영달: 무공훈장을 가득 달고 군복을 입은 채 ‘빨갱이 척결’을 외치는 노인

       시청앞이나 종묘공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소위 ‘보수 꼴통’

윤마리아: 여러 스펙을 쌓았으나 고작(!) 외국계 회사 인턴으로 일하는 88만원 세대 아가씨

       돈은 없어도, 카드가 상한에 달하는 한이 있어도 짝퉁 명품이라도 걸쳐야 하는 소위 ‘된장녀’

김중혁: 밤엔 서울역, 낮엔 무료급식소를 전전하는 노숙자

       온 사방에 퀴퀴한 냄새를 풍겨 감히 범접을 허하지 않는 소위 ‘거렁뱅이’

기  무: 고등학교에 진학하지 않고 밤마다 PC방을 전전하며 게임에 중독된 문제 청소년

       하는 일이라곤 먹고 싸고 젊은 누나들 훑어보며 침흘리기 뿐인 소위 ‘날라리 양아치’


이들 잉여인간들이 저마다의 사연을 가지고, 저마다의 필요에 의해서 삼성동 코엑스몰로 모여든다.

그리고 거기서 마주친 놀라운 광경!

양의 탈을 뒤집어 쓰고 총을 든 괴한들이 나타나 사람들을 인질로 삼고 죽이는 것이 아닌가.

우리의 4명의 주인공은 이 광경을 각각 다르게 받아들인다.

장영달은 좌익 빨갱이 집단의 출현으로, 윤마리아는 카니발의 일종으로, 김중혁은 노숙자들의 메시아가 일으킨 쿠데타로, 기무는 게임업체의 이벤트로.....

그리고 이 상황에서 각자의 필요에 따라 대처한다.

살기 위해서, 회사 정규직원이 되기 위해서, 게임 포인트를 얻기 위해서.


책장이 휙휙 넘어가는 재미와 웃음을 보장하지만, 몹시도 뒷맛을 쓰게 만드는 소설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주인공들을 너무나 손쉽게 ‘잉여인간’, 또는 ‘열외인간’으로 치부하고 있지만,

이들은 결국 무한경쟁사회에서 소외받은 우리들 바로 옆의 이웃이며, 어쩌면 우리 스스로도 어느 순간 그런 존재로 전락해 버릴 수 있다는 것을 너무도 잘 알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들의 의지박약함과 무식함을 탓하는 것은 이차적인 문제이다.

오히려 이들은 이데올로기의 희생자, 경제위기의 희생자, 교육정책의 희생자가 아니겠는가.

이들이 우리 사회의 열외인종으로 떨어진 이유를 먼저 보자. 그 다음에 이들이 저지르고 있을지 모르는 범죄나 몰염치함에 비난을 퍼부어도 늦지 않으리라.


자본주의 사회에 사는 사람은 예외없이 누구나 잉여인간이 될 개연성을 가지고 있다.

김별아 작가의 말대로 때때로 현실은 코미디보다 더한 코미디다.

분명 웃긴데 웃을 수가 없다. 남들의 불행에 웃어야 하는 현실이 기가 막히고, 언젠가 그 불행이 내게도 순식간에 닥칠 수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더욱 기가 막힌다.


소설에 등장하는 4명의 ‘잉여인간’ 또는 ‘열외인종’의 삶을 보라.

사실 우리가 사는 주변에서 비교적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사람들 아닌가. 그리고 냉정하게 생각하면 우리 자신도 언제든지 그 자리에 들어갈 수 있지 않은가.


삼성동 코엑스몰에 가 본 사람은 알 것이다.

높다란 빌딩숲과 최고급 호텔 아래 셀 수 없을 정도의 상점이 모여서 소비할 것을, 지갑을 열 것을 끊임없이 충동질하는 곳.

그래서 ‘자본주의의 타지마할’이라고 부르는 곳.

어쩌면 코엑스몰은 한국 자본주의가 이룩한 성과의 꽃봉오리와 같으면서도 자본주의적 욕망의 상징과도 같은 곳을 상징한다고 하겠다.

여기서 한 쪽으로 조금 나아가면 한국 자본주의의 또다른 얼굴, 즉, 천민자본주의의 상징과도 같은 지역이 있는 반면,

또 반대쪽으로 조금 나아가면 아직도 비닐하우스를 치고 가난에 허덕이는 사람들에게서 한국 자본주의의 또다른 얼굴을 볼 수 있다.


자본주의 심장에 떨어진 자본주의의 잉여인간들. 이들이 내지른 총질과 욕설은 자본주의라는 단단한 바위를 향해 던진 헛된 계란이었을까?

그래서 이들의 절규는 자본, 권력, 언론에 의해 압살당하는 한갓 ‘망상’이 되어버린 것은 아니었을까?


웃기다. 하지만 씁쓸하고, 결국엔 슬프다.

s******e 2009.09.17. 신고 공감 3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열외인종 잔혹사 - 최악의 도시에서 벌어진 최악의 쿠테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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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로테스크한 표지 그림과 비극을 암시하는 제목이 흥미를 불러일으켰던 <열외인종 잔혹사>는 작년 제14회 한겨레 문학상 수상작이다. 수상 당시 많은 사람들의 주목을 받았던 이 작품을 나는 심심찮게 서평으로 만나봤지만,  TV 책 소개 프로그램을 통해서 좀 더 자세히 알게 됐다. 가끔 문학 작품을 읽고 나면 내가 느낀 것들이 작가의 의도와 일치하는지 궁금할 때가 있는데, 그런
"열외인종 잔혹사 - 최악의 도시에서 벌어진 최악의 쿠테타" 내용보기

그로테스크한 표지 그림과 비극을 암시하는 제목이 흥미를 불러일으켰던 <열외인종 잔혹사>는 작년 제14회 한겨레 문학상 수상작이다. 수상 당시 많은 사람들의 주목을 받았던 이 작품을 나는 심심찮게 서평으로 만나봤지만,  TV 책 소개 프로그램을 통해서 좀 더 자세히 알게 됐다. 가끔 문학 작품을 읽고 나면 내가 느낀 것들이 작가의 의도와 일치하는지 궁금할 때가 있는데, 그런 점에서 나는 이 작품의 상징적 의미를 작가의 입을 통해 먼저 전해 들을 다음 작품을 통해 그것을 재확인하는 기분으로 읽어 나갔다.

 

<열외인종 잔혹사>는 크게 1부와 2부, 에필로그로 구성돼 있다. 1부에서는 이 작품의 주요 등장인물 소개와 더불어 사건이 일어나기 몇 시간 전의 상황이 펼쳐진다. 그리고 소개되는 주인공들의 면면을 보면 왜 이 작품의 제목에 '열외 인종'이란 말이 등장했는지 알 수 있다. 무공훈장을 단 군복을 입고 매일 탑골공원으로 출근해 좌파 빨갱이를 몰아내자는 주제로 '시국강연'을 펼치는 노인 장영달, 해외 어학연수에 각종 자격증까지 취득했어도 정체 불명의 외국계 제약회사 무급 인턴사원에 불과한 윤마리아, 100만원도 안 되는 급여를 받으며 몇 년간 설비기사로 일했으나 하루 아침에 해고되고 노숙자로 전락한 김중혁, 학교는 중퇴하고 게임방에서 무전취식하는 것을 낙으로 여기는 열일곱의 기무. 이 네 사람의 스치듯 마주치는 우연 속에 이들의 발길은 결국 사건의 장소, '코엑스몰'로 향한다. 

 

오후 4시의 코엑스몰을 상상하기란 그리 어렵지 않다. 수많은 인파와 번쩍이는 불빛, 사방으로 늘어선 상점 등 익숙한 풍경이 금새 머릿속에 그려질 것이다. 그런데 작품 속 11월 24일 오후 4시의 코엑스몰은 괴한들에 의해 점령 당하고 만다. 일반인들의 눈에 비친 테러범들의 모습은 우스꽝스럽기 그지 없다. 연미복 차림에 양의 탈을 쓰고 총으로 무장한 이들의 정체는 알 길이 없고, 그들이 인질들을 살상하는 이유도 어처구니 없기는 마찬가지다. 이 인질들 속에 장영달과 윤마리아가 있었고, 김중혁은 운 좋게 화장실에 숨어들었으며, 기무도 이 상황을 숨어서 지켜보고 있었다.

 

여기서 재밌는 사실은 네 명의 주인공들이 동일한 사건을 앞에 두고서도 제 각각 이 사태를 다르게 해석하고 있다는 점이다. 입만 열만 반공을 외치는 장영달의 눈에는 빨갱이들의 난동으로 보이고, 사적인 친분을 이용해 정규직 입사를 노리던 윤마리아는 회사 본부장과 자신이 믿는 어느 종교단체의 카니발로 여긴다. 그리고 김중혁은 노숙자들의 쿠데타를 이끌 메시아의 등장으로, 기무는 게임회사의 이벤트로 생각함으로써 이들 중 누구도 이 테러 상황을 제대로 인식하는 사람은 없다.

 

갖다 붙이면 그만이겠지. 이벤트일 수도 있고, 카니발일 수도 있어.

그렇지만 중요한 건 말이야. 우린 지극히 평범한 서울의 소시민들이었어.

4대보험에 가입한 직장에 다니며 아침 8시 반이나 9시쯤 출근해서 7시가 넘어 퇴근하고

접대 명목으로 폭탄주를 부어대던 평범한 직장인들, 아님 학교에서 수능 준비하던 수험생, 모여서 집값 대출 때문에

한숨만 푹푹 내쉬던 가정주부, 은퇴하고 하릴없이 탑골공원이나 쏘다니던 노인들이 바로 우리들의 본래 모습이었지.  p. 264 

 

이처럼 평범한 소시민이었던 사람들이 테러의 주동자가 되고, 또 의도치 않게 테러의 중요한 변수로 작용하며 사건은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방향으로 흘러간다. 그러나 독자들은 이것이 말 그대로 테러임을 알고 있다. 그래서 그런지 테러의 목적이 궁금했던 나는  테러범의 우두머리로 짐작되는 사람의 선언문을 통해 그것을 대강 짐작할 수 있었다.    

 

우리는 이 빌어먹을 도시에서 살면서 일부는 닭대가리, 말대가리, 또 일부는 양대가리가 되어가고 있다.

닭대가리는 무뇌아와 같으며, 양대가리는 목자를 잃은 채로 어느 순간

도살당할 비루한 운명의 결말을 기다리는 무지의 포로와 같다.    p. 179

 

사회에서 그 존재가치를 상실한 채 살아온 사람들이 테러라는 극단의 방법을 통해 알리고자 했던 바는 소외된 자들의 분노였다. 투명인간처럼 어는 순간 형체도 없이 사라져 버린 그들의 존재감을 다시 세상에 드러내는 것, 그것은 장영달과 윤마리아, 김중혁, 기무에게도 해당되는 내용이었다. 테러의 결말은 어느 정도 예상했던 내용이었다. 그러나 책에서는 사건의 결말보다 더 당황스러운 에필로그가 기다리고 있었다. 그 에필로그 때문에 한동안 소설 속 주인공들처럼 혼란에 빠져 버렸다. 에필로그에서 홀로 빠져 버린 김중혁이 그 혼란을 더욱 가중시켰다.

 

그러나 정말 중요한 것은 소설 속에서 일어났던 사건의 진위 여부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작가가 굳이 에필로그까지 써가며 또 하나의 결말을 보여준 이유는 사건의 중심에 있던 인물들 즉, 열외로 분류된 사람들의 억눌린 분노와 욕구의 잠재성을 드러내기 위함이 아닐까? <열외인종 잔혹사>는 신인 작가의 새로운 내용 구성 방식과 독특한 상상력, 사회적 시사성까지 모두 담긴 작품이었다. 그러나 경쟁의 승패와 관계없이 열외인간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는 현실이 씁쓸하다.   

 

 

 

 

m*******6 2010.04.19. 신고 공감 2 댓글 2
리뷰 총점 종이책
게임과 테러를 통해 드러나는 웃음의 허약한 구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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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과 테러를 통해 드러나는 웃음의 허약한 구조 -주원규의 《열외인종잔혹사》   나는 오늘 까맣고 어제 붉었고/ 내일은 없을 것이다/ 나는 웃지 않은 채로 기뻐하리라/ 나는 웃으면서 하품하리라    - 박연준, 「소혹성 B612호에 혼자 남은 꽃」중    요즘 예능 프로그램이 대세다. 방송국마다 개그맨과 가수, 배우 등을 적절하게 조합시킨 예능 프로그램을 내보내면서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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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과 테러를 통해 드러나는 웃음의 허약한 구조

-주원규의 《열외인종잔혹사》

 

나는 오늘 까맣고 어제 붉었고/ 내일은 없을 것이다/ 나는 웃지 않은 채로 기뻐하리라/ 나는 웃으면서 하품하리라

 

 - 박연준, 「소혹성 B612호에 혼자 남은 꽃」중

 

 요즘 예능 프로그램이 대세다. 방송국마다 개그맨과 가수, 배우 등을 적절하게 조합시킨 예능 프로그램을 내보내면서 주말과 평일을 가리지 않고 웃음을 직조하고 있다. 각 프로그램들의 방식은 비슷하다. ‘리얼리티’를 표방하며 MC들을 특정한 상황에 직면하게 한 다음에 그들의 당황스러움과 ‘센스’있는 말들을 즐기는 것이다. 게다가 MC들은 서로를 적절히 견제하고 시비를 건다. 때로는 MC나 게스트를 바보로 만들면서 웃음이 ‘빵’ 터지는 장면을 무리하게 연출한다. 그렇다고 무조건 웃기기만 하는 건 무리다. 때로는 대본 없는 리얼리티를 표방하면서 감동과 함께 착한 삶을 살기를 시청자들에게 주문한다. 그러면서 설정된 현실을 현실보다 더 진짜인 것처럼 연기한다.

 

 세태를 반영하듯이 많은 이들이 ‘재미있는’ 것을 추구한다. 현실의 팍팍함을 잊기 위해서든 단지 순간을 즐기기 위해서든 사람들은 웃음을 유발하는 특정한 코드를 추구하고 즐거워한다. 소설도 이제 예외가 아닌 것일까. 간만에 웃기면서 씁쓸한 소설을 읽었다. 올해 한겨레 문학상을 수상한 신진 작가 주원규의 《열외인종 잔혹사》는 황당한 설정들이 난삽하게 교차하는, 일종의 예능 프로그램 같은 소설이다. 곤혹스럽고 웃기다. 그리고 허무하다.

 

 이것은 테러에 관한 이야기다. 테러라는 말이 주는 어감에서 연상되는 어떤 정치․사회적인 갈등을 상상하는 것이 자연적인 수순이겠지만, 이 소설에서 보여주는 테러는 조금 다르다. 여기 등장하는 테러는 보여주기 위함이라는 점에서 쇼와 흡사하고 황당하고 허무한 결말은 게임과 비슷하다. 제목에서 드러나듯이 소설의 초반부는 우리 사회의 ‘열외적 인간’ 들이 하나씩 소개된다. 월남전 참전 경력을 삶의 자부심으로 느끼면서 늘 군복 차림을 한 채 “빨갱이 때려잡자”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 노인 장영달, 제약회사의 비정규직 인턴사원이자 된장녀인 윤마리아, 한때 코엑스몰 직원이었다가 퇴출된 노숙자 김중혁, 중학교 때 퇴학당한 채 학교를 떠나서 게임에 중독된 채 살아가는 17살 양아치 기무. 이들은 서로의 존재를 모른다. 각자 자신의 영역(그늘)에서 힘겨운 것도 인식하지 못한 채 무감각하게 살아갈 뿐이다. 어딘가 이들은 인기 예능 프로그램 ‘무한도전’의 4인방과 닮았다. 대책 없고 무모하다는 점에서, 상식적인 범주에서 벗어난 언행이 웃음을 자아낸다는 점에서.

 

 양아치 기무는 어느 날 새로 출시된 게임의 이벤트에 당첨된다. 게임광에서 그것은 엄청난 횡재다. 게다가 단순한 이벤트가 아니다. 이른바 ‘미션’이 존재한다. 지하철역 보관함에서 소총을 찾은 다음에 코엑스몰에 가서 대기할 것. 그리고 양머리를 쓴 인간들이 나타나면 그들을 게임처럼 총으로 갈겨버리고 두목을 찾아내서 사살하라. 기무는 게임 속의 화면을 현실에서 실행할 수 있다는 기대감에 부풀어서 소총을 찾아서 코엑스몰로 향한다. 게임 스타트! 김중혁은 노숙자 동료인 광록의 ‘예언’을 듣게 된다. 코엑스몰에서 ‘혁명’ 일어난다는 황당한 예언. 그런데 이상하다. 정말로 그 예언이 신빙성 있게 들린다. 우여곡절 끝에 김중혁은 어느새 코엑스몰로 향하게 된다. 퇴역군인 장영달은 신약 테스트에 참가하면 돈을 준다는 제약 회사의 홍보에 솔깃하다. 늘 꼿꼿하게 어깨를 펴고 자신을 알아달라고 온 몸으로 몸부림치지만 지난 ‘좌파정권 10년’ 동안 사람들은 더 이상 빨갱이라거나 반공이라는 말에 흔들리지 않는다. 늘 곤궁한 채 자존심 하나로 살아가는 장영달도 용돈이 필요하다. 장영달은 제약회사 직원과 코엑스몰에서 만나기로 한다. 물론 제약회사의 직원은 된장녀 윤마리아다. 이벤트의 ‘미션’ 때문에, 푼돈을 벌기 위해, 호기심 때문에, 회사업무 때문에 이 4명은 코엑스몰로 집합한다. 여기서 이들이 모이게 되는 이유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 소총을 들고 코엑스몰로 가서 양머리들을 쏘라는 이벤트를 누가 기획했는지, 기무는 의문을 품지 않는다. 자신이 먹게 되는 신약이 어떤 효능을 지니는지 장영달도 묻지 않는다. 이들을 움직이게 하는건 찰나의 몰입이나 당장의 필요이다. 마치 예능 프로그램에서 유행하는 ‘복불복 게임’과 같다. 왜 그것을 해야 되는지 타당성을 묻지 않고 다만 몰입하고 망가지는 모습을 연출하는 것처럼.

 

 이어지는 장면들은 황당한의 극치이다. 저녁이 되자 예언처럼 양머리 가면을 뒤집어 쓴 수백명의 테러집단들이 코엑스몰의 출입구를 봉쇄하고 전기를 차단한다. 그들은 반항하거나 탈출을 시도하는 사람들은 가차없이 사살해 버린다. 이 양머리 테러단은 자신들의 입으로 테러의 목적에 대하여 연설한다. 테러의 목적은 자못 비장하다. 컴퓨터 자판과 서류에만 매달리고 기름때에 시달리며 비판의식을 상실한 채 ‘닭대가리’, ‘양대가리’, ‘말대가리’처럼 살아가는 인간들이 가득한 “아무 결론도 희망도 없는 집합체”(179쪽)인 세상에 경고를 하기 위해서다. 테러를 통해서 공상하고 파괴하고 동정받지 않을 자유를 사람들에게 선사하기 위해 그들은 일어선 것이다. 이 목적 달성을 위해서 폐쇄된 코엑스몰은 살인과 구타의 소용돌이에 휘말린다. 여기에 대처하는 4인방의 태도는 각양각색이다. 윤마리아와 장영달은 노인과 뚱뚱한 여자를 처단하려는 테러단의 압박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웃지 못할 게임을 벌인다. 윤마리아는 뚱뚱한 여자들과 음식 빨리 먹기 게임을, 장영달은 젊은이들과 복불복 격투기에 돌입한다. 한편 김중혁은 코엑스몰에서 일한 경험을 살려서 배관을 타고 숨바꼭질을 벌인다. 생명을 걸고 벌이는 행위일진대 웃음이 터져 나오는 것을 참을 수 없다. 김중혁은 코엑스몰에서 일한 경험을 살려서 배관을 타고 숨바꼭질을 벌인다. 압권은 양아치 기무의 활약이다. 게임에 어지간히 중독된 기무는 테러가 벌어지고 눈 앞에서 사람들이 죽어나가도 아직 그것이 현실임을 깨닫지 못한다. 모두 게임 회사가 실감나는 미션을 위해 준비한 것이라고 착각하고 게임머니를 얻기 위해 소총을 들고 양머리를 쓴 악당들을 사살하기 시작한다. 기무는 “서바이벌의 매력은 과연 이런 것일까”(239쪽)라고 감탄하면서 어둠 속의 전투를 전개하며 정의감에 사로잡힌다.

 

 난삽하고 황당한 테러 장면들은 걷잡을 수  없이 이어지다가 장난처럼 막을 내린다. 노숙자 김중혁이 전기 차단기와 출입구 개폐기를 작동시키자마자 사람들은 한꺼번에 탈출을 시도한다. 역설적으로 양아치 기무가 벌인 총격전이 사람들의 탈출을 돕는 꼴이 된다. 결국 열외인간 4인방들은 모두 살아남는다. 정작 황당한 것은 테러 사건 이후이다. 서울 시내 한복판에서 이 정도 규모의 테러와 살인이 벌어졌으면 연일 일간지 전면을 도배하고도 남지 않겠는가. 그러나 약속이나 한 듯이 신문과 잡지, 인터넷은 조용하다. 살아서 탈출에 성공한 이들은 사람들에게 자신이 겪은 테러사건에 대하여 미친 듯이 설명하지만 아무도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로그아웃을 하면 아무리 치열하고 실감나는 전투도 거짓말처럼 종료되는 것처럼 그들이 겪은 끔찍하고 황당한 사건은 그렇게, 종료된다. 그러니까 게임처럼.

 

 예능 프로그램들이 웃음만을 강요하는 것은 아니다. 무책임한 바보 만들기와 말장난은 곧 질리게 마련이니까. 그래서 사회적 약자에게 시선을 돌리기도 하고, 국가정책을 살짝 비판하기도 하며, 정치적인 발언을 하는 등 기획한다. '무릎팍도사‘와 '1박2일’, ‘무한도전’의 기획들을 살펴보라. 자질구레한 말장난 속에 착한 삶을 주문하는 기획들이 넘쳐나지 않은가. 그러면서 특정 대상을 홍보하고 옹호하거나 대중들의 인식 전환을 직접 요구하기도 한다. 《열외인종잔혹사》도 예능 프로그램의 경향을 답습하고 있다. 코엑스에 모이는 열외인간 4인방들은 시종일관 코믹하게 묘사된다. 그들의 삶이 과연 웃을 수 있는 풍경인가, 라는 진지한 질문은 ‘웃으면서’ 피해간다. 열외인간의 기원과 형성에 관한 질문은 무겁고, 해결불가능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사회학적인 답을 내놓자면 손쉬운 답변이 제시된다. 무자비한 시장과 경쟁 체제 탓이다.

 

 그러나 우리가 살아가는 자본주의 체제는 시장의 중립성을 표방한다. 시장과 경쟁에 책임을 물으면, 존재의 타당성을 지닐 수 있는 것들이란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이 딜레마 속에서 모든 무거운 것들과 진지한 것들을 가벼운 웃음으로 휘발시키는 것이 필요하다. 희극의 존재 이유와 기원에는 언제나 비극이 도사리고 있는 까닭이다. 아무도 예능 프로그램의 말장난과 황당한 설정을 보면서 의문과 비판을 품지 않는다. 그럴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어차피 가벼운 웃음을 목적으로 만든 것이므로, 머리 아픈 질문은 평론가나 교수들의 몫으로 돌리면 된다. 비판을 가하는 순간 예능 프로를 보고 웃는 자신도 비판의 영역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스스로에게 면죄부를 주기 위해서, 진지함이 해결을 담보하지 못하기에 허약하고 가벼운 웃음들은 오늘도 끊임없이 유포된다. 단지 ‘빵’ 터지는 웃음으로 즐거우면 그 뿐이다.

 

 소설조차, 그것도 순수문학조차 예능 프로그램을 닮아가는 현상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이러한 현상이 문학에서 나타나는 것 자체는 막을 수도, 막을 필요도 없다. 세태의 변화를 충실히 반영하는 현상이니까. 우려되는 것은 이러한 흐름이 일종의 경직된 형식으로 굳어지는 것이다. 형식을 이루지 못하는 실수는 반복되지 않는 법이다. 베르그송의 말처럼, 그 형식이 굳어져서 웃음을 유발할 지경에 이르렀다면 오직 죽을(소멸될) 일만 남은 것이다. 다만 문학이 지닌 차이성은 하나이다. 그것은 바로 ‘속도’다. 1시간 남짓한 시간에 빠르게 소비되고 가볍게 흩어지는 웃음과 몇 개의 유행어를 유포하는 예능 프로그램과 문학은 다르다. 문학의 본질은 속도에 대한 저항이기 때문이다. 문학의 힘이 묘사에 존재하는 것도 속도에 대한 저항에 포함된다. 활자는 영상의 속도를 절대로 따라잡을 수 없다는 점에서 문학의 한계와 의미는 등가적이다. 영상의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는 활자는 영상보다 흥미를 지니기 어렵지만 읽은 행위에서 유발되는 여백을 확보할 수 있다. 이 여백 속에서 영상을 ‘보는 것’과 소설을 ‘읽는 것’의 차이가 생겨난다. 예능 프로그램과 비슷한 구성을 지니고 있을지라도 《열외인종잔혹사》의 웃음이 마냥 가볍지만은 않은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 해석될 수 있다. 이 소설을 영상으로 옮긴다면 아마도 테러장면을 자극적으로 그리면서 4인방의 우스꽝스러움을 양념처럼 삽입하는 방식을 취하지 않을까. 소설도 테러장면이 절정에 해당되고 4인방의 어이없는 언행이 삽입되는 구조지만, 영상보다 느린 독서행위는 그들이 열외적인 위치로 밀려난 이유에 대해서 눈을 돌리게 한다. 또한 현실같은 게임과 게임같은 현실에 대하여 영상으로 접하는 것보다 사유의 기회가 많을 것이다.

 

 자본주의의 세련된 고문은 기획의 주체에 대한 비판을 희석시키며 진행된다. 말장난과 가벼운 웃음 속에서 희화화되는 약자들의 현실에 대해서는 침묵한다. 부끄러움과 부러움을 유포시키면서 끊임없이 더 많은 것을 소비하도록 열등감을 부추기는 현실을 과연 누가 기획했는가에 대한 질문은 하지 않는다. 그냥 좋은 것이 좋은 것이고, 남들보다 많이 가지고, ‘꿀리지’ 않기 위해서 유행에 뒤처지지 않아야 한다. 저것을 사야하고, 외모를 가꿔야 하고, 꾸준히 예능프로그램을 보면서 재미있는 사람이 되어야 할 뿐이다. 존재하는 것들은 ‘있어왔다’는 바로 그 이유로 자연스레 돼버린다. 노숙자나 양아치나 비정규직이 되지 않기 위해서 끊임없이 노력해야 한다. 가짜라는 것을 알면서도 연예인들의 가상결혼을 보면서 즐거워한다. 결혼하고 싶어도 현실 때문에 어려운 수많은 젊은이들의 문제는 알 바 아니다. 단지 대리충족으로 고단한 현실을 잊고 싶다. 따라서 현실의 풍경들은 슬퍼할 거리도 못 된다. 구제란 처음부터 이런 세상에 어울릴 수 없는 말인지도 모른다. 정작 슬픈 것은 이 모든 비정상적인 것을 정상적인 것으로 착각하는 우리의 무감각일텐데, 아무도 의심을 품지 않고 허약한 구조를 지닌 웃음을 추구한다. 이 허약한 웃음은 마치 게임과 같다. 가짜를 현실처럼, 현실을 가짜처럼 만드니까. 로그아웃 하듯이 쉽게 나올 수 없다. 현실은 작은 모니터보다 더 큰 게임이 벌어지고 있는 중이므로.

 

 그래서《열외인종잔혹사》는 웃기면서 슬픈 소설로 다가온다. 앞으로 한국문학에서 더욱 잔혹하고 황당하며 우스운 풍경을 담은 작품들은 계속 늘어날 것이다. 이것은 필연적이다. 물론 무거운 문제의식을 진지하게 말하는 소설들도 생산되겠지만 이미 게임과 예능에 익숙해진 독자들의 외면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 그러므로 진정성이 가벼운 웃음을 넘어서기 어려운 현실을 역으로 이용하는 간계가 필요하지 않을까. 웃음은 흩어지고 현실은 견고하기만 하다. 현실의 기획에 대하여 의심을 품지 못하게 만드는, 가벼움과 무책임이 지금-여기를 지배하고 있으므로. 따라서 굳어진 형식으로 변질되어 사장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잔혹하고 우스운 소설들은 끊임없이 진화해야 한다.

 

 소설은 현실을 반영하지만, 현실은 소설이 지니는 문제의식을 쉽게 반영하지 않는다. 이 긴장과 모순이 주는 불편함을 포기하지 않을 때 비로소 현실을 지배하는 웃음의 앙상한 구조를 고발할 수 있으리라. 웃다가 쓰러지는데 넘어질 곳은 없는 그런, 빈약하고 무책임한 웃음으로 가득한 세계를.

2*****h 2009.10.20. 신고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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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의 타지마할에서 벌어지는 카니발 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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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책의 종류를 가리지 않고 다양한 분야의 책들을 읽곤 하는데, 문득 재밌는 책이 읽고 싶어졌다. 마침 한겨레문학상 수상작이라는 화려한 타이틀의 <열외인종 잔혹사>가 눈에 띄었다. 호모 부커스의 직감으로 이 책이 재밌을거라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역시나 내 기대를 조금도 저버리지 않았다. 이번으로 14번째를 맞는 한겨레문학상 수상작과는 세 번째 만남이었다. <열외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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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책의 종류를 가리지 않고 다양한 분야의 책들을 읽곤 하는데, 문득 재밌는 책이 읽고 싶어졌다. 마침 한겨레문학상 수상작이라는 화려한 타이틀의 <열외인종 잔혹사>가 눈에 띄었다. 호모 부커스의 직감으로 이 책이 재밌을거라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역시나 내 기대를 조금도 저버리지 않았다.

 

이번으로 14번째를 맞는 한겨레문학상 수상작과는 세 번째 만남이었다. <열외인종 잔혹사>라는 다소 알쏭달쏭한 제목의 이 책의 저자는 주원규 씨라고 한다. 그의 이력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바로 신학을 전공한 목사님이라는 사항이었다. 과연 소설이라는 가상의 시공간 속에서 어떤 스토리텔링을 펼쳐 보여 줄지 첫 장을 넘기는 순간부터 기대에 부풀었다.

 

<열외인종 잔혹사>는 11월 24일이라는 특정한 날을 시간적 배경으로 삼는다. 그리고 네 명의 주요 인물들을 시간의 흐름의 구성에 내맡긴다. 베트남전 참전용사로 연금생활자인 극우 보수논객을 자처하는 장영달 옹이 첫 타자로 등장을 한다. 일흔살의 노구에도 불구하고, 소위 좌빨척결을 지상과제로 삼는 범상치 않은 캐릭터다. 두 번째 주인공의 이름은 윤마리아. 88만원 세대의 전형으로 외국계 제약회사에 3개월째 식대와 교통비조차 지급받지 못한 채 착취당하고 있다.

 

세 번째 인물은 노숙생활 5년차의 김중혁이다. 서울이라는 공간 속에 하루하루의 생존을 위해 치열하게 살아가는 인물로, 동료 광록과 무료급식소와 쓰레기통 사냥에 나선다. 마지막으로 가장 어린 캐릭터인 기무. 노랑머리의 17살난 청소년으로 장영달 옹의 말을 빌리자면 싸가지는 애시당초에 발톱의 때처럼 생각하지도 않는 무적(無籍) 청소년의 표상이다. 우연한 기회에 피씨방에서 보게 된 온라인 게임 이벤트에 뛰어 들었다가 본의 아니게 대한민국 자본주의 심장 코엑스몰에서 펼쳐지는 상상을 초월한 카니발의 세계로 초대받게 된다.

 

이 소설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은 하나 같이 정상적인 삶을 영위하는 이들이 아니다. 아니 어쩌면 그렇게 철저하게 주류사회에서 소외된 아웃사이더들만을 골라서 주인공으로 삼았는지 작가의 혜안에 탄복할 정도였다. 하지만 어디 삶과 행동들이 궁상맞다고 해서, 그들 내부에 잠재되어 있는 욕망들도 저급하지는 않을 것이다. 바로 그 시점에 주원규 작가는 남미에서 한창 유행하던 주술적 리얼리즘에 기반한 공간이동을 시도한다.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백년 동안의 고독>에 마콘도가 있었다면, <열외인종 잔혹사>에는 서울 그 중에서도 자본주의 심장이자 타지마할(나름 참신한 표현이라고 생각을 하지만, ‘메카’라는 표현만 할까 과연?) 코엑스몰로 이 어중이떠중이들을 긁어 모은다. 소설의 전반부에서 각 캐릭터들을 등장시키고, 친절한 분석에 그럴싸한 개연성마저 확보하는데 성공한 작가는 이제 본격적인 무대인 코엑스몰로 독자들을 안내한다.

 

전반부가 21세기 대한민국의 리얼리즘을 돌이켜 보는 시간이 중심이었다면, 코엑스몰로 대변되는 후반부는 십헤드 카니발(sheep head carnival) 다시 말해 양머리들이 총을 들고 다수의 인질들을 잡고, 총기난사가 벌어지는 공간이 중심이 된다. 그나마 전반부를 지탱해오던 사실주의 블랙유머와 냉소들은 공간이동을 하면서 혼란 그 자체가 되고 만다. 도대체 양머리들이 원하는 것은 무엇이고, 왜 그런 난장판을 벌이는지 판단할 수 있는 정보의 양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어쩌면 그것조차도 작가의 철저한 계산 아래 준비된 것일까?

 

각각 1부와 2부로 나뉜 <열외인종 잔혹사>의 서사구조는 참 경이롭다. 우선 책의 절반가량에 해당하는 1부에서는 코엑스몰로 주인공들이 모이기까지 5분이나 10분 단위의 시간의 흐름의 서술구조를 선보인다. 딱 두 번 5분과 10분이 아닌 시간이 등장하는데, 한 번 찾아보시라 나름 재미가 있다. 물론 잘 기억이 나지 않아서, 휘리릭 다 읽은 책의 책장 넘기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았다.

 

그리고 2부에서는 작가 시점의 서사에 중점을 둔다. 이런 구조는 마치 다른 두 권의 책을 읽고 있는게 아닌가 하는 착각이 들 정도였다. 물론 작가가 의도한 대로 혼란스럽다면 그 또한 글쓴이의 트릭에 빠진 것이겠지만.

 

작가가 구사하는 냉소적이면서도 설명조의 작법은 얼마 전에 다시 읽었던 천명관 작가의 <고래>가 연상이 되었다. 마치 무성영화의 변사가 신파조의 설명을 곁들이는 그런 개입이 느껴졌다고 해야할까? 물론 거북살스럽다거나 그런건 전혀 아니고 오히려 ‘지독한’ 재미가 느껴졌다. 어쩌면 하급문화에 대한 로망이라고 해야할까? 작가의 대리인들인 주인공들의 입을 통해 거침없이 쏟아져 나오는 상스러운 육두문자들이 오히려 친근하게 느껴졌다.

 

참 왜 작가는 2부의 주무대를 ‘최악의 도시’ 서울의 그 많은 장소 중에서 유독 코엑스몰로 정했을까? 그건 아마도 작가에게 그 공간이야말로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의 심장이라는 상징적 의미가 있어서였을까? 아니면 소설의 어느 부분에선가 나온 것처럼, 모든 이들의 차 없이 지하철 같은 대중교통 수단으로 접근이 가능하다는 편리의 발현이었을까? 어쨌건 실제로 그렇게 많은 인파들이 몰리는 코엑스몰에서 상상을 초월한 양머리 카니발이 벌어진다면 어떻게 될까?라는 엉뚱한 상상의 나래를 펼쳐본다.

 

확실히 <열외인종 잔혹사>는 지독하게 재밌다. 동시에 민주주의가 역주행을 감행하고, 빈부의 격차해소는 요원해 보이기만 하고, 변변한 일자리를 찾는건 정말 백사장에서 바늘찾기 보다 점점 더 어려워져 가는 현실 속의 처절한 리얼리즘에 대한 작가의 냉소적인 패러디가 여기저기 아주 절절하게 배어 있다. 신예작가라 그런지 결말 부분이 좀 아쉽긴 했지만, 기발한 상상력의 현현이 아주 인상적이었다. 아직 읽어 보시지 않았다면 말을 마시라.

h******1 2016.08.17. 신고 공감 1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열외인종 잔혹사]열외인종의 서프라이즈 페스티발
"[열외인종 잔혹사]열외인종의 서프라이즈 페스티발" 내용보기
한겨레문학상 수상작이라는 것과 흥미로운 제목에 이끌려 구입한 <열외인족 잔혹사>는 그야말로 평범함과 긴장감이 적절히 배합되어 있어서 즐겁게 읽히며 그 결과에 대한 궁금함으로 인해 읽어갈수록 속도감이 붙는다. 베트남전에서 무공훈장까지 탔지만 현재는 아무 할일도 없고 그저 연금 조금 타서 연명하는 퇴역군인인 칠순의 장영달노인은 매일 종로3가로 출근하여 할일 없
"[열외인종 잔혹사]열외인종의 서프라이즈 페스티발" 내용보기
한겨레문학상 수상작이라는 것과 흥미로운 제목에 이끌려 구입한 <열외인족 잔혹사>는 그야말로 평범함과 긴장감이 적절히 배합되어 있어서 즐겁게 읽히며 그 결과에 대한 궁금함으로 인해 읽어갈수록 속도감이 붙는다.

베트남전에서 무공훈장까지 탔지만 현재는 아무 할일도 없고 그저 연금 조금 타서 연명하는 퇴역군인인 칠순의 장영달노인은 매일 종로3가로 출근하여 할일 없는 비슷한 노인들 앞에서 반공을 주제로 한 연설을 한다. 용돈벌이를 위해 일종의 신약 임상실험 아르바이트를 하기 위해 제약회사 직원을 만나러 코엑스몰까지 가게 된다.
한때는 코엑스몰의 설비기사로 잘 나갔던 김중혁은 현재 노숙자로 광록이라는 사람을 만나 매혈을 하게 되고, 그 돈으로 국산양주 나폴레옹을 사서 마시며, 광록에게 격암유록이라는 책과 이 책에 예언된 메시아가 곧 나타날 것이라는 얘길 듣는다. 용산역에서 노숙자들의 말도 안되는 난동을 보고 광록의 말이 생각나서 코엑스몰까지 가게 된다.
외국계 제약회사의 인턴사원이면서 명품짝퉁 마니아인 윤마리아는 어떻게라도 끝까지 남아 정규직 사원이 되기 위해 기를 쓰는 중인데, 팀장인 부리가 자신과 같은 데이비드교 신자라는 이유로 십헤드카니발에 대한 소스를 주어 코엑스몰로 향하게 된다.
17세의 청소년 기무는 학교를 중퇴한 채 게임에만 열중하고, 가끔 비슷한 처지로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하는 여자친구 육돌순과 집에서 성관계까지 즐기는 대담함을 보이는데, 게임이벤트로 인해 진짜 총을 갖게 되고 게임머니 획득을 위해 코엑스몰까지 가게 된다.
이들은 모두 서로 모르는 사람들이지만 각자 이런 저런 이유로 살짝살짝 만나거나 지나치게 되고, 결국엔 코엑스몰이라는 장소에 집결된다.
검은 연미복을 입고 머리를 뒤집어쓴 일단의 무리들이 나타나고 천장을 향한 무차별사격이 이루어지며 코엑스몰에 있던 모든 사람들은 푸드코트로 모여서 인질이 되고, 코엑스몰은 정전이 된다.
여자들은 따로 구별되어 햄버거가게로 보내고, 남자들은 그 곳에서 환갑이라는 나이 기준으로 나뉘게 된다. 처음엔 나이 많은 사람을 우대하는 것 같았지만, 그동안의 정치경제의 파탄책임을 물으면서 총살당할 것을 명한다. 여기서 장영달은 나이를 속이려고 하고, 그 후에 젊은 청년들과 한 판 맞짱도 뜨게 된다.
윤마리아는 햄버거 가게에서 체중 70kg을 기준으로 나뉘는데,
70kg이상에 속해서 냉동음식들을 먹어치우는데 끼게 된다.
김중혁은 화장실에 있다가 예전의 설비기사 시절을 떠올리며 지하의 전기실까지 가게 된다.
기무는 이 모든 것이 게임 이벤트인줄 알고 지하철역의 보관함에서 획득한 총으로 양머리들을 하나씩 제거하며 우두머리를 찾기 위해 혈안이 된다.

이 모든 것이 코엑스몰에서 반나절동안 이루어지는 일인데, 나름 박진감 있고 코믹하며 사회의 어두운 면을 풍자한 것들이 살짝 페이소스를 느끼게도 한다. 나름 쿠데타라는 이름으로 양머리들이 나타나 잔혹하게 살인을 하다가 엉뚱하게 무너져가는 것이 왜그렇게 애처럽게 느껴졌는지... 치밀하게 계획된 것 같지만 너무도 허술한 그들의 작전, 그리고 허약한 우두머리, 게다가 게임머니 획득을 위해 기무가 보스냐고 묻는 말에 홧김에 보스라고 했다가 총을 맞는 김중혁... 여기서 김중혁의 죽음은 메시아의 장렬한 희생을 뜻하는 걸까?

슬픔까지는 아니더라도 우리 사회의 어두운 면을 확실하게 부각시키며 씁쓸한 맛을 느끼게 했다. 안으로 안으로 들어와서 열외가 되고 싶지 않은 하지만 용납되는 것은 하늘의 별따기기에 끝까지 열외일 수 밖에 없는 초라하고 가난하며 서글플 수 밖에 없는 우리들의 모습을 그대로 보는 듯 했다. 열외인종 잔혹사란 우리가 이렇게 아프고 슬프고 비루하게 살면서도 그것을 외칠 수 없고, 외쳐봤자 보이지 않는 커다란 벽에 부딪혀 도로 반사되는 메아리처럼 되기 때문에 잔혹한 운명임을 얘기하려한 것은 아닐까한다.
작가의 약력을 보니 공학와 신학을 공부한 분이며 대안교회를 운영하는 분이라고 한다. 그래서 설비계통과 이단적인 종교에 대한 얘기가 재미있게 나왔구나라고 수긍이 갔다. 결국엔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어버리는 해프닝에 약간 허무하기도 했지만, 읽는 내내 마음은 이상하게 짠했다.
작가는 "오늘의 우리는 그 무엇엔가에 험악하게 분노하고 있다"라고 말하고 있다. 추천사에서 프로이트는"사회가 강요하는 좌절을 더이상 참을 수 없을 때 사람들은 정신질환에 걸린다"라는 말을 했다고 한다. 모든 사람의 좌절을 꼭 사회 탓만으로 돌릴 수는 없지만, 사회의 탓이 아주 없다고도 할 수 없기에 참 슬픈 현실이다. 분노... 무엇인가에 분노를 느끼고 있기에 거리엔 웃는 사람보다 험악하게 찡그리고, 어둡게 무표정한 사람들이 더 많이 있는 걸까...
c*****p 2009.08.22.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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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아침 독서 습관] 열외인종 잔혹사
"[새벽 아침 독서 습관] 열외인종 잔혹사" 내용보기
새벽 아침 독서 습관 2019.11.6 (수)(습관 포스트 쓰기 26일차) 1. 독서 시간과 읽은 페이지 : 오전 6시 30분 ~ 8시, 完 2. 읽은 책에 대한 감상 <열외인종 잔혹사>는 11월 24일이라는 특정한 날을 시간적 배경으로 삼는다. 그리고 네 명의 주요 인물들을 시간의 흐름의 구성에 내맡긴다. 베트남전 참전용사로 연금생활자인 극우 보수논객을 자처하는 장영달이 첫 타자로 등장을 한다.
"[새벽 아침 독서 습관] 열외인종 잔혹사" 내용보기

새벽 아침 독서 습관

 

2019.11.6 (수)
(습관 포스트 쓰기 26일차)

 


1. 독서 시간과 읽은 페이지 : 오전 6시 30분 ~ 8시, 完

 

2. 읽은 책에 대한 감상

 

<열외인종 잔혹사>는 11월 24일이라는 특정한 날을 시간적 배경으로 삼는다. 그리고 네 명의 주요 인물들을 시간의 흐름의 구성에 내맡긴다. 베트남전 참전용사로 연금생활자인 극우 보수논객을 자처하는 장영달이 첫 타자로 등장을 한다. 일흔살의 노구에도 불구하고, 소위 좌빨척결을 지상과제로 삼는 범상치 않은 캐릭터다. 두 번째 주인공의 이름은 윤마리아. 88만원 세대의 전형으로 외국계 제약회사에 3개월째 식대와 교통비조차 지급받지 못한 채 착취당하고 있다.

 

세 번째 인물은 노숙생활 5년차의 김중혁이다. 서울이라는 공간 속에 하루하루의 생존을 위해 치열하게 살아가는 인물로, 동료 광록과 무료급식소와 쓰레기통 사냥에 나선다. 마지막으로 가장 어린 캐릭터인 기무. 노랑머리의 17살난 청소년으로 장영달 말을 빌리자면 싸가지는 애시당초에 발톱의 때처럼 생각하지도 않는 무적(無籍) 청소년의 표상이다. 우연한 기회에 피시방에서 보게 된 온라인 게임 이벤트에 뛰어 들었다가 본의 아니게 다른 세 명의 인물처럼 대한민국 자본주의 심장 코엑스몰에서 펼쳐지는 상상을 초월한 카니발의 세계로 초대받게 된다.

 

민주주의가 역주행하고 빈부격차 해소는 요원해 보이기만 하며 변변한 일자리를 찾는건 정말 백사장에서 바늘찾기 보다 점점 더 어려워져 가는 현실에 대한 작가의 냉소적인 패러디가 여기저기 아주 절절하게 배어 있다.

 

 

*'예스블로그 독서습관 이벤트'에 참여하며 작성한 리뷰입니다.*

l*****0 2019.11.06. 신고 공감 1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