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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은 잠들지 않는다. 2
"숲은 잠들지 않는다. 2" 내용보기
우리나라가 겪은 시대적 아픔이 고스란히 담긴 좋은 메시지를 지닌 소설이었습니다. 전쟁의 상처 말이죠. 그러나 그런 의도와는 달리 별로 재미는 없었어요. 물론 박범신 선생님께서 이 얘길 들으신다면 그럴리가! 하고 말씀하실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작가의 말에 보니 선생님께서 쓴 소설 중에 가장 본격적인 재미를 확보했다고 자평하셨더군요. 예술가들의 문제란 게 늘 그렇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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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나라가 겪은 시대적 아픔이 고스란히 담긴 좋은 메시지를 지닌 소설이었습니다. 전쟁의 상처 말이죠. 그러나 그런 의도와는 달리 별로 재미는 없었어요. 물론 박범신 선생님께서 이 얘길 들으신다면 그럴리가! 하고 말씀하실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작가의 말에 보니 선생님께서 쓴 소설 중에 가장 본격적인 재미를 확보했다고 자평하셨더군요. 예술가들의 문제란 게 늘 그렇지요, 뭐. 하지만 그런 자신감은 대단히 필요한 거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반면 그리 생각하시는 이유도 어떤 부분에서는 이해가 되어요. 왜냐하면 그간 쓰셨던 소설과는 다르게 구성의 절묘함에 열 배는 공을 들였기 때문이다, 라고 말씀하실 수는 있으니까요. 확실히 그런 구성을 하려면 공을 더 들여야 하는 건 사실입니다. 그러나 추리와 반전만 있다고 해서 그게 재미있는 추리소설이 되지는 않습니다.

     

      선생님을 두고 말씀을 드리는 게 아니라 순문학 계열의 작가 분들은 장르 문학을 좀 알로 보는 경향이 있으시던데, 그래서 그들이 쓴 추리 혹은 미스테리라고 일컫는 작품을 보면 하나 같이 지루할 따름입니다. 서스펜스라는 장르가 지녀야 하는 공력을 너무 만만하게 보시는 거죠. 그것은 아름다운 문장을 만드는 것 만큼이나 피나는 노력이 있어야 이루어질까 말까하는 어마어마한 것임에도 그분들은 잘 모르시는 거 같아요. 

      단순하게 뭔가 꼬고, 비밀을 만들고 나중에 반전을 집어넣으면 그게 추리 소설인 줄 아시는 거죠.

      맞습니다, 그거 추리소설. 그러나 재미있는 것과는 별개의 문제죠. 이것은 비단 순문학 계열의 어르신들만 그런 게 아니라 신인 장르 작가에게서도 흔히 볼 수 있는 단점이에요. 꼬고, 비밀을 만들고 반전을 집어넣으면 그게 서스펜스다, 하고 생각하는 거 말이죠. 

      제 생각을 말씀드리자면 앞뒤가 좀 바뀌어 있습니다. 기본적으로 재미있는 소설의 가장 기본이자 중요한 점은 바로 이야기의 텐션입니다. 얼마나 고른 긴장감을 유지하며 밀고 당기는 완급을 적절하게 배합하느냐가 관건이지요. 그것을 이루기 위해 상기에 말씀드린 씹고 맛보고 엎고 뒤집고 하는 행위가 필요한 게 아니겠습니까? 그러나 정작 있어야 할 긴장과 완급은 옆동네에 마실 나간 상황에서 제아무리 엎고 뒤집고 해봐야 혼자놀기의 진수를 보여줄 뿐입니다. 

      그나마 순문학은 소설의 재미가 꼭 이야기에만 있는 건 아니지 않니? 하고 비겁하게 도망갈 구멍이라도 있습니다만, 장르 문학은 도망갈 때도 없어요. 그러니 사실 평가에 대한 부분에서 억울한 면이 없질 않죠. 고급 문학 중에 순문학이 많이 포함된 것은 사실이지만 독자가 보기에 잘 쓴 소설은 장르 소설쪽에도 상당히 많아요. 아름다운 문장만큼이나 이야기의 완급 조절 능력은 고고수의 공력이니까요.

 

      이야기의 긴장 완급이 있으려면 일단 독자의 호흡을 완벽하게 알아야 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당연한 얘기이겠죠. 그걸 알아야 언제 독자를 몰입시키고 어느 부분에서 호흡을 뺐을 것이며 언제 좀 느슨하게 풀어주어 다시 방심하게 만들지 등의 구성이 가능할테니까요. 그런데 많은 작가 님들께선 무작정 사건을 만들고 함정을 파고 나중에 뒤통수를 친다, 하는 식에만 몰두하는 듯 보입니다. 읽어보면 대개가 그렇고 추리 기법으로 쓰셨다는 이 작품도 별다를 바 없었어요. 재미있는 이야기는 그렇게 진행되지 않습니다.

      아주 간단하게 말씀드려서 구전 동화를 들려주는 두 명의 선생님을 예로 들 수 있겠네요. 같은 동화인데 한 선생님이 읽으면 애들이 초롱초롱 모여앉는데 다른 선생님이 읽으면 이내 죄다 딴짓을 하게 되는 경우 말이죠. 즉, 독자를 몰입시키기 위해선 이야기의 내용도 내용이지만 읽어주는 기술이 더 중요하다는 말씀입니다. 막 읽다가 갑자기 뚝, 멈추었다가 다시 늘어뜨리며 방심하게 만들고, 그런 호흡을 절묘한 구성으로 조각을 해야하는 것이지요.

      그러나 작가 님들 대부분은 그런 구성을 오로지 이야기의 아귀를 맞추는 구성으로만 신경을 쓰시지 어느 타이밍에서 어떤 성격의 이야기를 배열해야하는 지에 관한 구성은 장악하지 못하시는 것 같아요. 그게 관건임에도 불구하고 말이죠. 이 작품의 가장 큰 문제도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그러니 제아무리 비밀을 만들고 시선을 돌리는 장치를 해도 지루할 밖에요.

      관심은 이미 달나라로 떠나고 있는데 그제 와서 짜잔, 사실은 내가 고등어가 아니라 갈치다, 해봐야, 아 그래, 그렇구나, 라는 말 밖엔 해줄 수가 없다구요. 최선을 다해 어머나 깜딱이야, 하고 외쳐주고 싶어도 그럴 수가 없어요. 지루함에 지쳤거든. 옆집에선 불고기가 지글거리는데 말이지.

 

      소설가 선생님들이 자신이 잘 모르는 분야를 조사해서 작품 속에 집어넣을 때 가장 많이 저지르는 오류 중의 하나가 그 지식을 통제하지 못한다는 점입니다. 과학이든 뭐든 일반인들은 잘 모르는 분야를 다룰 땐 그런 오류를 쉬이 저지르시더라구요. 이 작품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법의학 지식 쪽으로 말이죠. 물론 작가 선생님께서도 조사하느라 힘드셨으니 좀 더 많은 내용을 넣고 싶기도 할테고, 또 자신도 몰랐던 것이니 당연히 독자도 모르리라 여겨 보다 자세히 설명하고 싶은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나, 노노. 그러지 마세요.

      제가 언제간 말씀드렸듯이 소설을 읽는 독자는 비행기가 왜 떠서 무슨 일 때문에 날아가는 지가 중요하지 비행기가 어떻게 만들어졌길래 공중에 뜨는지에 관해서는 별로 궁금해하지 않거든요. 그러니까 발바닥 부르트게 조사한 만 개의 내용을 단 한 개로 압축시켜 서사에 녹여내는 통제의 기술도 굉장히 중요한 것입니다. 좀 억울하시겠지만 그래도 그런 농축 우라늄 같은 지식 전달을 독자도 전혀 모르지는 않아요. 아아, 이 분은 엄청난 노력으로 이 하나의 사건을 만들었구나, 아니면 그 반대로 설렁설렁 했구나 독자도 다 느낀다구요. 그러니 애써 조사한 엄청난 지식을 압축해서 이야기에 녹인다고 해서 헛수고를 하시는 것은 아니라는 말씀을 꼭 드리고 싶어요. 

 

      박범신 선생님의 색깔있는 좋은 문장이야 뭐 더 말씀드릴 것 없고, 독자를 위해 좀 더 새로운 방식으로 작품을 소개하고 싶으신 의도는 충분히 이해하였습니다. 그러나 서스펜스, 추리 소설이 생각하시는 것처럼 그리 만만하지는 않다는 말씀을 꼭 드리고 싶네요. 신경숙 선생님도 <엄마를 부탁해>에서 추리 기법을 좀 썼다, 는 식으로 말씀하시던데 장르 기법 그렇게 알로 보지 마세요. 저는 개인적으로 순문학을 더 좋아하는 쪽입니다만, 그렇다고 그렇지 않은 쪽을 쉽게 보는 태도는 별로 탐탁지 않게 생각해요. 아름다운 문장과 멋진 내면 묘사의 공력만큼이나 장르의 이야기 전개 공력도 만만치 않다고요. 내가 이미 순문학에선 대장이니 이번엔 장르를 시전해 보여주마, 한다 해서 될 일이 아닙니다. 

      아마 처음부터 다시 공부하셔야 할 걸요?

 



b******k 2010.12.22.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