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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어주는 여자, 마리 콩스탕스
서른 네살로 결혼했으며 직업은 없다.
우연히 자기집의 ''소리 잘 나는 방''에서 친구와 이야기를 하다
친구가 목소리가 좋다면 ''책 읽어주는'' 일을 해보라고 말한다.
그녀는 신문에 광고를 내고 하나, 둘 연락이 오는데....
영화의 영상이 겹치면서 결말에서 웃지 않을 수 없었다.
남들에게 책을 읽어준다는 행위는 읽는사람 뿐 아니라
듣는 사람의 행위 또한 아주 중요하다.
듣는 사람들이 무엇을 생각하면 그 글을 받아들이느냐가 사람마다 다르지 않은가.
첫 고객인 열네살 소년 에릭은
그녀에게서 성적인 호기심을 해소하고 싶을 뿐이며,
뒤메닐 장군부인은
자신의 사상을 공유할 누군가가 필요하고,
미셀 도트랑은
사랑할 누군가가 필요했고,
여덟살짜리 클로렝드는
바쁜 엄마를 대신해서 자신을 축제로 데리고 나갈 사람의 필요했으며,
늙은 법원장은
사드백작의 작품을 그녀의 목소리로 공연(!!!)하기를 바란다...
그리고 그녀는 직업을 잃는다...
''책 읽어주는 여자''가 직업이 된것은 소리내서 얘기 하고 싶어서가 아닐까
유쾌한 그녀의 발걸음처럼 성큼성큼 고객들의 생활속으로 서슴없이 들어가 버리는 그녀
그러면서 그녀는 순수한 ''책읽기''만을 할 수 없게 되버린다.
콩스탕스 정신을 차리시오...라고
''책읽기''만 하라고 소라교수는 설득하지만
''책읽기''만 하기에 그녀는 너무도 발랄하지 않은가...
재미있고 유쾌하고 엉뚱한 마리 콩스탕스^^ [인상깊은구절] 나는 화가 나서 펄펄 뛸 지경이다. 내가 말한다. 안돼. 잠 안잘 거야. 졸리지 않으니까 이야길 좀 하고 싶다구. - p 9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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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백하자면, 난 이 책을 꺄롤린 봉그랑의 <밑줄 긋는 여자>랑 착각했었다. 아... 제목이 비슷하잖냐구... 또 둘 다 책에 관련된 이야기다 보니... 그런데 우연히 내 눈에 띈 이 책은 저자가 남자였다. 레몽 장... 프랑스 남불 지방의 대학 교수에다 김화영 교수의 선생이라지 뭔가. 사실 말이지... 난 일본 작품을 보거나 중국 작품을 보면 한참 동안 주인공이 그리고 다른 인물들이 남자인지 여자인지 헷갈릴 때가 많다. 저자 이름도 마찬가지이다. 사진을 보기 전까지는 도무지 모르겠단 말이지. 그런데 서양 사람들 이름은 구별하기가 나름 쉽다. 꺄롤린은 여자 이름이고 레몽은 남자 이름이니까.
각설하고, 이 책은 처음부터 끝까지 분위기가 묘한 매력이 있었다. <밑줄 긋는 여자>에서의 젊은 여자의 상큼하면서도 지적인 분위기와는 또 다른 매력이었다. 다행히 이 책의 주인공도 여자였다. 연극을 했었고 목소리가 유난히 아름다운 한 여자가, 친구의 권유로 신문에 “책을 읽어주겠다”고 광고를 낸다. 그 신문광고라는 것이 아마 우리가 요즘 많이 보는 “벼룩시장”에 나오는 광고 같은 것일 게다. 예전에 그 광고를 보는 재미도 있었다. 그 중에서 제일 재밌는 광고들은 단연 남자가 여자를 찾고 여자가 남자를 찾는 그런 광고였다. 영어를 배울 때도 그런 걸 갖고 학원 같은 데서 공부를 하지 않던가. 마찬가지였다. 그런 식으로 처음 그런 광고를 대했고, 나중에는 재미로 보곤 했었다. 그런데 정말 그런 광고를 내는 사람들을 보면 “꾼”도 있고 유난히 “순진한” 사람도 있다. 그녀가 광고를 내려할 때, 그 광고주의 태도만 봐도 알 수 있다. 광고 덕분에 그녀는 육체적인 장애를 가진 한 남자애한테 책을 읽어주기 시작하는 것으로부터 퇴락한 백작부인, 깜찍한 어린 여자애, 어떤 젊은 사장 그리고 퇴직한 판사까지, 다양한 사람들로부터 책을 읽어달라는 제안을 받고 나름대로 성공(!)을 거둔다. 일이 계속 이어진다는 의미에서의 성공이다. 여기서 특이한 것은 그녀의 삶의 방식과 그녀가 타인들과 맺어가는 관계이다. 어린 남자애는 그녀보고 치마를 걷어 올리고 책을 읽으라 하고 백작부인은 그녀와 사회주의 성격이 강한 시위에 참여하길 원하고 젊은 사장은 그녀의 몸을 탐하려고 하고... 결국은 판사가 저 유명한 사드의 작품을 읽으라는 데까지 이른다... 그녀는 그 모든 것을 받아들인다. 철저한 직업 정신이다. 젊은 사장과 침대에서 뒹굴 때도 책을 읽으려는 그녀를 보면 감탄이 나올 지경이다. 특이한 것은 그녀가 결혼을 했고 남편이 이런 사실을 묵과한다는데 있다. 김유정의 <소나기>에 나오는 부부의 관계가 아니다. 남편은 자신의 일에만 관심이 많고, 정말 쿨한 사이다. 또한 대학도 다니다 만 그녀는 정기적으로 교수를 찾아가 차를 마시고 대화를 나눈다. 여자는 자신의 배꼽이 다른 사람들과는 다르게 정 가운데 있지 않고 약간 어긋나 있다는 사실을 빼고는 지극히 평범한 여자라고 말하면서 “좋은 독서사”처럼 보이려고 안경까지 착용하는 수고를 한다. 독자와 텍스트와의 관계를 생각해 교수의 자문을 구하고 미리 집에서 낭독을 해보는 등의 노력을 기울인다. 겉으로 들이는 노력만큼이나 특이한 것이 그녀의 수용 태도이다. 마치 독서와 관련된 모든 요구를 받아들이는 수용적인 태도... 그것이 마치 사회적으로 정의되어 있지 않은 “책 읽어주는 사람”이 갖춰야 할 직업 정신이라도 되는 듯이 말이다. 그런 면에서 그녀는 지극히 진지하다. 자신의 매력도 모르는 모양이다. 어린 남자애뿐만 아니라 교수, 젊은 사장의 태도로 볼 때, 그녀의 매력을 그녀만 모르고 있는 것이 틀림없어 보인다. 그녀의 직업적인 정신이 어느 정도냐면, 책이 단지 핑계일 뿐인 젊은 사장이 껴안으려고 달려들 때 하는 말을 들어보면 알 수 있다. “그는 나에게 달려들어 꽉 잡으면서 또다시 껴안고 입술을 더듬는다. 나는 슬쩍 피하여 몸을 빼낸다. 그는 극도로 약이 올라서 견딜 수가 없는 모양이다. 당신은 그렇지만 <책 읽어주는 여자>만은 아니지 않아요?... 나는 그를 빤히 쳐다본다. 아니, 왜 아녜요? 난 <책 읽어주는 여자>예요. 그는 팔을 축 늘어뜨린다(그야말로 문자 그대로). 좋아요. 그러면 읽으세요.” <책 읽어주는 여자>란 신종 직업은 사회의 안전을 위협하기까지 하는 것처럼 보여 형사도 끼어드는 상황에 이르지만 결국은 퇴직한 판사와의 관계에서 딜레마에 빠지지 않을 수 없는 상황에 빠진다. 그리고 여자는 결정을 한다. “직업의식에도 한계가 있다”고 하면서... 자기 자신조차도 특이한 방식으로 이해하고 있는 여자가 새로운 직업을 만들어내고 그 직업에 대한 목적의식, 시행하는 방법 그리고 부딪치는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 또 그에 따른 직업의식까지 사고하며 어떤 결론에 이른 방식이 특이했다. 책 뒤에 저자와 김화영 교수와의 인터뷰가 실려 있다. 읽고 나면 좀 더 이해가 쉬울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읽지 않았다. 그냥 내 느낌으로 책을 받아들이고 싶어서. 짧은 책에 감상문이 길었다. 생각해 볼 문제성은 여전히 남아있지만 또 다른 한편, 그만큼 흥미로운 대목이 많았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이 책에 등장하는 여러 작품 가운데 주목할 작품이 많다. 모파상, 보들레르, 클로드 시몽, 조르주 페렉, 사드 등등... (지금까지 사드의 작품을 하나 밖에 못 읽어봤지만, 여기에 잠깐 인용되는 부분은 아주 충격적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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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오늘은 어떤 책 읽어주실 거예요?" "글쎄, 오늘은 어떤 책을 읽어 줄까? 우리 **처럼 씩씩한 어린이가 주인공으로 나오는 책을 읽어 줄까, 아니면 말썽꾸러기 강아지가 나오는 책을 읽어 줄까, 아니야 역시 마법사가 나오는 책이 좋겠어! 자 그럼 지금부터 시작한다!"
벌써 5년 전쯤, 한 초등학교 도서관에서 사서교사로 일을 하면서 나는 안양에 있는 종합병원 소아병동에서 그림책 읽어주기 자원봉사를 했다. 당시 그렇게 크지 않았던 소아병동에는 다양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아이들이 입원해 있었는데, 일주일에 한 번씩 새로운 책을 들고 찾아오는 남자 선생님이 신기했던지, 텔레비전에서는 한참 재미있는 만화를 할 시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은 선뜻 그림책을 읽어달라고 했다. 행여 나 대신, 아니 그림책 대신 텔레비전 만화를 택하면 얼마나 실망스러울까 생각했던 내게는, 아이들의 선택에 힘이 절로 났다. 따라서 즐겁게 책 나누기 활동을 할 수 있었고, 급기야는 아이들과의 헤어짐이 아쉬워 2년이나 봉사를 이어가기도 했다. 당시 스스로를 '책 읽어주는 선생님(줄여서 책주샘)'이라 불렀는데, 여기 나보다 훨씬 전에 그것도 직업적으로 책을 읽어주는 여자가 있었으니, 그 이름은 마리-콩스탕스 G.이다.
마리는 34살의 주부로 남편은 있지만 아직 아이와 직업 또한 없다. 그러던 어느 날 친구 프랑스와즈가 해준 기막히게 아르다운 목소리를 써먹지 않고 있는 것은 어리석다는 충고를 듣고 책 읽어주기 서비스를 시작한다는 광고를 신문에 낸다. 하지만 난생 처음 이런 일을 계획한 마리는 자신을 찾는 사람이 한 명도 없을까봐 걱정을 하게 되는데, 우려와는 달리 신체장애자인 아들에게 책을 읽어주는 것은 물론 보살펴 달라는 의뢰를 시작으로 뜻밖에도 그녀의 사업은 장군 부인, 미셀 도트랑, 클로렝드로 이어지며 어느 정도 안정을 찾아 나간다. 하지만 그녀의 직업 의식에도 한계가 찾아와 결국 다시 실업자의 길을 택하는 것으로 이야기는 끝을 맺는다.
나는 이 책의 주인공 마리가 책 읽어주기 활동을 통해 듣는 대상들에게 치료를 시행한 독서치료사라고 생각한다. 마침 그녀가 만난 사람들만 생각하더라도 발달적, 임상적으로 무엇인가 어려움이 있는 이들이었다. 특히 에릭은 장애아였고, 클로렝드는 바쁜 엄마와 살아가다 보니 많은 부분에서의 결핍을 드러낸다. 따라서 마리는 그들과 함께 책을 읽는 것은 물론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는데, 이런 노력이 대상자들에게는 상호작용을 통한 새로운 경험이었음과 동시에 치료적인 힘을 갖게 만드는 요인이었을 것이다.
'책 읽어주는 여자', 독서치료는 책이 갖고 있는 심리정서적 치료 효과에 주목하는 분야인데, 치료를 위해 선정한 자료를 제시하는 방법에는 이처럼 직접 읽어주는 것도 있다. 어쩌면 유아동들에게는 엄마가 품에 안고 읽어주시던 것처럼 직접 읽어주는 것이 더 효과가 크다는 생각인데, 마리는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고, 그들에게 적정한 자료를 골라 아름다운 목소리로 이야기까지 들려줬으니, 그녀는 이미 독서치료를 실시하는 치료사였던 것이다.
'만약 나이가 더 들어서 은퇴를 하면 어떤 거 하실 건가요?' 더러 이런 질문을 받으면 근래 들어 가장 많이 하는 답은 아이들이 있는 곳에 찾아가 다시 책 읽어주기 봉사를 하겠다이다. 이유는 다양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람들에게 책과, 치료사와 상호작용할 수 있는, 그럼으로 인해 갖고 있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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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소리가 아름답다, 따뜻하다, 감미롭다, 편안하다, 독특하지만 낯설지 않다, 뭔가 욕망이 살아나게끔 하는, 그런 목소리는 힘이다 내게 이런 목소리의 행운이 주어졌다면 난 두말할 것도 없이 책을 읽어주는 것을 직업으로 삼으리라 목소리도 훈련될 수 있다면 말이다 서른 네 살의 마리 콩스탕스, 그녀는 남편은 있지만 아기는 없고 직업도 없다 문득 자신의 목소리가 듣기 좋은 편이라 여겨 신문에 책을 읽어주겠다는 광고를 낸다 그 후로 만나게 되는 사람들과의 기이한 인연들, 이야기들. 독서라는 행위에서 느낄 수 있는 일상 밖의 상상력, 정직한 욕망, 고독의 공유, 읽고 듣는 두 사람만의 은밀함, 작위적인 예절. 이 책에서 ‘읽어준다’라는 의미는 헌신이 아니다 그렇다고 요즘처럼 돈벌이 목적으로 하는 행위 또한 아니다 궁극적인 치유에 그 의미가 있다 그것이 신체이든 정신이든 상처받은 날개를 감싸 안는 행위 그러기에 독서는 아름다울 수 있다 이 책을 다 읽고 난후 스스로 문장 몇 개를, 공명이 좋은 화장실에서 읽어봤다 혹 내 목소리가 ‘자비의 밥벌이’로 적당할지 모를 일이어서. 그 시간 즈음 오후 6시, 주방 쪽 라디오에선 김미숙의 <세상의 모든="" 음악="">이 들리는 것이 아닌가? 무엇보다 그녀의 목소리가 좋아서 듣는 라디오 프로인데 해질 녘을 닮은 그녀의 목소리로 오프닝 멘트를 시작하고 시가 한수 읊어진다 그 순간 생각했다 저런 목소리를 가지지 못할 바에는 누군가에게 책을 읽어준다는 행위는 아예 꿈도 꾸지 말자세상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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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책 읽어주는 여자La Lectrice, 1986 저자 : 레몽 장 역자 : 김화영 출판 : 세계사 작성 : 2007.03.18. “오오. 나는 책 읽어주는 남자가 되어 볼까나?(웃음)” -즉흥 감상- 책 읽어주는 여자. 어디서 많이 들어본 제목이다 싶어 한참을 고민하며 개인 컴퓨터를 뒤적거리던 저는 수없이 많은 영화 목록 중에서 영화 ‘책 읽어주는 여자The Reader, 1988’를 발견하고 말았습니다. 어떻게 입수한 영화인지는 기억에 없지만 일단 수중에 넣어 스틸 컷 마냥 휙휙 넘겨보며 얼굴 붉히는 장면이 나오기에 아직 감상에는 보류상태로 놔두고 있었는데요. 우선 그 작품의 원작이 이번에 읽어볼 책 속에 끼어있다는 생각에 대출을 받아 만나보게 되었습니다. 그럼 이어서는 영화까지 감상할 각오를 하게한 이번 작품을 조금 소개해볼까 합니다. 작품은 우선 옮긴이의 글과 작가로부터의 짧은 편지로 그 장을 열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자신을 ‘마리 콩스탕스 G.’라고 소개하는 한 여인의 모습으로 이야기가 이어지게 되는데요. 나이 30에 남편이 있으며 무직이었으나 친구와의 만남을 통해 ‘책 읽어주는 여자’로서 일하게 되는 경위가 나오게 됩니다. 그렇게 자신의 노 스승님을 찾아가 상담을 받게 되고 신문에 광고를 내게 되면서 만나게 되는 사람들-하반신 불수의 소년과 소년의 어머니, 어떤 장군의 미망인인 듯한 노부인과 그 집의 하녀, 외로움에 시달리고 있는 어떤 회사의 사장, 혼자 있는 시간이 많은 한 소녀와 소녀의 어머니, 눈이 어둡다며 책 읽어주기를 원하는 전직 법원장 등을 통해 발생하는 다양한 사건들이 그녀를 변화시키기 시작하는데……. 와. 놀랐습니다. 역자의 말에서도 ‘매우 영화적’이라고 했지만 대충 넘겨본 영화의 장면들이 머릿속에 있어서인지 한결 이해하기 편한 기분으로 작품을 만나볼 수 있었는데요. 거기에 비록 조각적으로 등장하지만 예전에 만나본 작품-모파상의 ‘손’과 루이스 캐럴의 ‘앨리스시리즈’의 모습이 지나가자 오랜 친구들을 만난 기분까지 들어버렸습니다. 또한 그런 조각들이 이야기의 흐름에 자연스러움을 주는 요소가 되었다는 점에서 작가님의 능력에 감탄을 하고 말았는데요. 여러 조각을 모아서 하나의 거대한 그림을 만든 다는 것. 그것이 제가 추구하는 멋진 작품의 이상형이기 때문은 아닐까 생각해보았습니다. 저자 분은 이번의 이야기를 ‘우화’ 형식을 빌려 적은 것이라곤 했지만, 그 점에 대해서는 딱히 받아들여지는 것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우선 ‘우화’의 사전적 의미를 찾아봤는데요. 「[명사]<문학> 인격화한 동식물이나 기타 사물을 주인공으로 하여 그들의 행동 속에 풍자와 교훈의 뜻을 나타내는 이야기. 《이솝 이야기》 따위가 여기에 속한다. ≒우언寓言」로 나옴을 알 수 있었지만 그래도 ‘답은 이것이노라’ 판단되는 것이 없었습니다. 그런고로 개인적으로 받아들인 것을 조금 적어보자면 ‘책 읽어주는 여자’의 대리 독서행위를 통해 그것을 받아들이는 이로 하여금 발생할 수 있는 어떤 것이 있음을 말한다고 생각하게 되었는데요. 책을 읽어주는 행위 자체 또한 독서의 행위라 할 수 있겠고, 읽어주는 행위를 받아들이는 쪽 또한 독서를 한다 할 수 있음에, 비록 이것이 소설일 지라도 ‘책이란 말없이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것’이라 생각을 정리해 볼 수 있었습니다. 그러고 보면 앞선 도서 ‘우리아이 우등생 만드는 기적의 도서관 학습법, 2005’에서 동화책을 읽어주는 도서관의 ‘북시터booksitter’가 나오기에 한국에서도 책을 읽어주는 직업이라는 것이 존재하는 것일까 싶어 조사를 해보니, 엉뚱하게라도 중고등 학생 시절 때 점심시간 중에 몰래 듣곤 했던 ‘EBS 라디오문학관’이 발견되어 마냥 들떠버렸습니다. 거기에 책의 또 다른 형태인 ‘오디오 북’과 같은 것이 같이 발견되니 글자가 아닌 목소리로서 독서의 행위를 할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해 생각을 해볼 수 있었는데요. 특히, ‘오디오 북’에 대한 것은 스티븐 킹 님의 ‘유혹하는 글쓰기On Writing, 2001’에서 먼저 그 언급을 만나볼 수 있었다보니, 과연 책 읽을 시간이 없다고 말씀하시는 생각보다 많은 분들은 또 다른 방식으로의 독서를 생각해 보신 적은 있는가에 대한 질문을 해보고 싶어지더군요. 또한 요즘처럼 영상매체에 적응된 세상에 있어서는 가능하다면 ‘TV 문학관’을 통하거나 휴대폰 등의 모바일 기술을 응용해서는 ‘오디오 북’과 같은 것을 이용함으로써, 꼭 책과 글씨로 된 것은 아닐지라도 많은 작품을 쉽게 접할 수 있게 되었음을 실감해 볼 수 있었는데요. ‘좋은 책은 훔쳐서라도 보라!’는 가르침을 따라 불법적이라도 어둠의 항구를 찾아봐야겠다는 생각을 해보게 했습니다(웃음) 아! 그건 그렇다 치고 ‘책 읽어 주는 여자’!! 모처럼의 휴식일인 일요일이라 집에서 편한 기분으로 공부 해보고자하니 부모님의 호출이 끝이 없어 몸은 노트북 앞에 있고 집중력이 콩밭을 메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잠시 머리를 식히고 자리에 다시 앉으니 입시를 위해 공부하던 때가 새록새록 떠올라버렸는데요. 제가 이성에 대한 감정을 일찌감치 닫아버리기도 했지만, 부모님끼리의 연합으로 인해 생물학적으로 여자인 동내 친구와 같이 가외를 받은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영어문장을 읽는 그 친구의 목소리가 참 매력적이었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는데요. 어떻게 자음 모음으로 이뤄진 문자와 그것의 집결체인 단어, 그리고 단어가 모여 만들어지는 문장을 읽는 것인데도 그렇게 맛깔나게 읽을 수 있었던 것일까요? 그 후로 저도 그렇게 읽어보고자 노력했지만 소리 내어 잃다가도 어느덧 독서삼매경에 빠지기 일쑤였던지라 그저 부러웠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래서 글을 잘 읽는 사람들이 부러웠고, 그 생각이 발전됨에 미래로의 꿈 중 하나로 책 읽어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가지게 된 것은 아닐까 생각을 해보게 하는군요. 기록하는 것 못지않게 읽고 싶다는 절재 할 수 없는 욕망. 그렇다보니 ‘기록’이라는 행위를 통해 매일같이 무엇인가를 연재하다가도 또 다른 분들의 기록을 만나버리는 순간 저의 기록이 밀려버리는 일이 자주 발생하곤 하는데요. 저의 볼품없는 기록을 읽어주시는 많은 분들 중 몇 분이 응원을 해주시니 기록과 감상이라는 둘 사이의 균형을 잘 잡아보도록 노력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과연 읽기 위해서 기록을 하는 것인지, 아님 기록을 하기 위해 읽는 것인지 한 번씩 헷갈리기도 하지만 저는 둘 다 좋아하니 열심히 읽고 기록할 수밖에요(웃음) ‘한권의 책이 한 사람의 인생을 바꿀 수 있다.’와 비슷한 말을 심심하면 듣곤 합니다. 또한 그것은 실재로 한권씩의 책을 만나면서 생각하곤 하는 것인데요. 특히나 책을 읽는, 아니 좀 더 정확하게는 또 다른 방법으로의 독서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고 생각하게 된 이번 책을 잃고서는 책을 읽어주는 행위에 대해 그 필요성을 생각해볼 수 있었습니다. 작품의 내용에서는 어느 정도의 자극점이 필요해서 성적인 장면-개인적으로는 책을 읽는 다는 것에 대한 본능을 그렇게 표현한 것이라 생각 합니다-이 추가되었을지는 몰라도, 감수성이 풍부하나 육체적인 결함으로 친구가 필요하기에, 나이를 먹어감에 눈이 말을 듣지 않기에, 생활환경 문제로 어린나이에 혼자일 수밖에 없기에, 아. 아니군요. 방금 정리된 생각을 통해서는 ‘외로움’을 이겨내기 위해서라도 ‘책읽어주는 사람’이 필요하다 생각을 정리해볼 수 있겠습니다. 휴우. 감상기록의 시작을 ‘우화’라는 단어로 시작해서인지 그것에 얽매이는 기분이 없지 않은데요. 덕분에 다른 생각들이 하나의 생각에 묶인 체 머릿속에서 정신 사납게 비명을 지르는 기분입니다. 그래서 앞으로 책을 읽을 때는 역자의 말이나 저자의 말 같은 것은 일단 나중에 읽는 버릇을 가지도록 노력해야 겠다고 다짐 하게 되었는데요. 보통은 그런 것들을 먼저 읽고 시작할 경우 작품의 이해에 많은 도움이 된다 생각을 했었지만 이번 경우에는 그 역효과가 나는 듯했습니다. 그렇기에 이 작품을 영상화 한 미셀 드빌 감독님의 영화 ‘책 읽어주는 여자The Reader, 1988’를 통해 작품에 대한 정리의 시간을 가져볼까 합니다.
TEXT No. 409
[아.자모네] A.ZaMoNe's 무한오타 with 얼음의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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