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킹 온 헤븐스 도어'라는 영화는 명작임에도 불구하고 나에게 실망을 안겨주었 다. 그래서 '소년은 울지 않는다'라는 영화를 보기가 더 꺼려졌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오늘 기어코 보고 말았다. 느낌은 '아주아주 좋다!' '라스베가스를 떠나며'를 보고 난 뒤처럼. 딱 그런 느낌을 받았다. 아주 오랫만에. 슬프고 화가 나고 목이 메이지만, 눈물은 나지 않는... 그냥 기분 나쁜 채로 영화를 보게 되는. 고리타분하게 '성정체성'이니, '타인의 잘못된 시선' 따위에 대해서 말하고 싶 진 않다. 그냥 영화 자체로 보여지는 모든 것이 깊은 여운을 주었다. '실화'를 의미하는 크레딧이 올라왔을 때는 놀라지않을 수 없었고...(에휴..정말 놀랐다.) 내용을 미리 알려하지 말고, 영화를 보길 권한다. 힐러리 스웽크의 연기변신 또한 멋지고(정말 손색이 없다!), 헤드윅이나 라스베가스를 떠나며 같은 종류의 영화를 즐겨보시는 분이라면 깊은 감동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
이 영화를 보기 전까지 트랜스젠더에 대해 알지 못했다. 아니 알 필요가 없었다. 그것은 기독교인이 혐오하고 수용할 수 없는 가치관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 시대는 아직도 전통적인 가치관을 토대로 사는 삶에 익숙하기에 자신과 다른 가치관에 대해서는 상당히 비판적이다. ‘하나님이 짝 지어 주신 것을 인간이 나눌 수 없다’는 기독교의 결혼관이 대표적인 경우다. 하나님의 축복으로 만난 두 사람이 자녀를 낳고 죽을 때 까지 희로애락 하며 평생 변하지 않는 사랑으로 사는 부부야 말로 모든 인간이 꿈꾸는 결혼관이다. 그러나 인류의 타락으로 인해 일부다처제가 생기고 이혼, 불륜, 동성애 등과 같은 다양한 형태의 사랑을 우리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다. 우리나라도 간통제도를 폐지했기에 영화 속에서나 볼 수 있는 희극적인 불륜의 모습을 찾을 수 없지만 이것이 사회에 어떤 변화를 가지고 올지 누구도 모르는 현실이다.
![]() 그러나 이 보다 더 큰 사회적 갈등을 야기 시키는 사랑에 대해 찬반여론이 뜨겁다. 게이, 레즈비언으로 불리던 동성 간의 사랑을 무조건적으로 비난하던 시기를 지나 지금은 이들의 사랑을 결혼이라는 제도를 통해 합법적 결혼으로 인정해 주는 나라가 많아지고 있다. 그런데 한 걸음 더 나아가 요즘은 트렌스젠더(Transgender)의 사랑에 대한 논란이 뜨겁다. 육체적으로는 남성이나 여성의 신체를 가지고 태어나지만 정신적으로는 자신의 성적 정체성을 반대로 생각하는 사람들이다. 즉 육체적인 성과 정신적인 성이 일치하지 않은 사람들을 트랜스젠더라 부르는데 나 자신만 하더라도 동성애자와 트랜스젠더를 혼동했다. 통계에 의하면 이런 성적정체성에 시달리는 남자는 3만 명당 1명이고 여자는 10만 명당 1명 정도 쯤 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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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소년은 울지 않는다’는 실화로 1993년 12월 30일 미국의 작은 도시에서 일어났던 실제 사건을 영화화 했다고 한다. 남자로 살고 싶었던 여자 티나 브랜든(힐러리 앤 스왱크)의 비극적인 운명을 그린 작품이다. 이 영화를 보며 놀란 것이 두 가지가 있는데 첫째 배우 힐러리 앤 스왱크가 브랜든의 역할을 완전히 해냈다는 것이다. 짧게 자른 머리는 그녀의 보이쉬한 모습을 사실적으로 보여주고 있는데 각본과 연출을 맡은 킴벌리 피어스는 2년 반에 걸친 오디션을 통해 힐러리 앤 스왱크를 주연으로 발굴했다고 한다. 감독이 배우를 조련한다는 말은 맞다. 이 영화로 인해 그녀는 72회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수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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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를 보고 다가오는 생각 하나는 사랑은 어떤 형태를 가지고 있느냐 보다 사랑의 내용이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문학이나 영화는 검은 머리가 파뿌리 되도록 함께 한 사랑은 별로 다루지 않는다. 막장 드라마라며 욕하면서 보는 이유다. 정상적인 사랑은 자극적인 이야기가 없기에 밋밋하고 재미없다. 너무도 아름다운 불륜을 다룬 영화 ‘메디슨카운티의 다리’ 나 소설 ‘안나카레리나’ 등이 대표라 할 수 있다. 그 시대의 도덕이나 법으로 판단한다면 교도소행이 틀림없겠지만 진정한 사랑은 그 시대의 전통적인 가치관을 넘어 영원한 사랑의 아름다움을 표현한다. 감동하는 이유다. ‘소년은 울지 않는다’ 이 영화 속에 표현된 사랑도 그렇다. 여성 감독인 킴벌리 피어스는 브랜든의 성적 정체성보다 두 사람의 사랑을 밀도 있는 진정한 사랑으로 표현하다. 비록 그 시대가 용납하기 어려운 사랑이었지만 그들은 시대의 가치를 넘어선 진정한 사랑을 했고 그 사랑이 관객들에게 전달되기에 영화는 감동이 있다. 나아가 감독은 그 시대가 가지고 있던 야만성을 해부한다. 정상인이었지만 밑바닥 인생을 살고 있던 존과 톰은 브랜든이 여자라는 것을 알고 분노한다. 더군다나 존이 사랑하는 라나를 브랜든에게 빼앗겼다고 생각하자 그는 톰과 합세하여 브랜든을 강간한다. “네가 여자이기 때문에 강간 당하는 거야. 그런데 어떻게 네가 라나를 사랑한다는 거야” 오직 동물적인 본능만으로 자신의 성적 욕심을 채우는 짐승적인 남자들과 브랜든과 라나의 아픈 사랑을 비교해서 고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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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즈로 목숨을 잃은 록 허드슨이나 프레디 머큐리 등으로 인해 심어진 편견이 하나 있다. 성적인 문란함 때문에 얻어진 병이라는 것이다. 에이즈 환자. 동성애자, 트렌스젠서 등은 과연 성적으로 문란한 사람들일까? 이 영화를 보고 스스로에게 질문해 본다. 최소한 영화 속에 등장하는 브랜든과 라나는 그렇지 않았다. 두 사람은 첫사랑이었고 그 사랑을 지키기 위해 브랜든은 21살의 어린 나이에 살해를 당하고 라나는 자신이 살고 있던 지역을 떠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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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킴벌리 피어스 감독이 1999년에 만든 <소년은 울지 않는다 Boys Don't Cry>를 보았다. 사내처럼 제가 좋아하는 아가씨를 사랑하며 살고픈 꿈을 그렸으나, 그 꿈은 이룰 수 없는 꿈이었다. 계집의 몸으로 계집을 사랑하며 살 수 있는 세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안타까웠다. 하고 싶은대로 마음껏 펼칠 수 있는 세상은 어디에서나 보기 어려운 세상이다. 그게 미국이라 하더라도.
2. 1993년 네브래스카 주 링컨시에 살던 티나 브랜든(힐러리 스웽크)은 사내들한테 쫓기고 있었다. 그 사내들은 제 누이를 건드렸다며 집까지 따라온다. 사촌인 로니의 집으로 달아나긴 했지만, 로니는 티나를 꾸짖는다. "너 대체 왜 그래? 넌 사내가 아냐..." 싱글거리며 티나는 맞받는다. "계집애들은 좋기만 하다던데..."
그런 일이 있거나 말거나 머리를 짧게 깎고 사내처럼 살고자 하는 티나. 술집에서 엮인 캔디스와 존, 톰을 따라 80킬로미터나 떨어진 폴즈시로 놀러 간다. 이름을 티나에서 브랜든으로 바꿔 말하고, 술을 마시고 담배를 피우며 사내 같이 해 입고 다닌다. 가슴은 압박 붕대로 칭칭 동여매어서 억누르고, 아랫도리엔 양말을 집어넣어 사내들처럼 불룩하게 만든다.
캔디스의 집에 머물면서 캔디스의 동무인 라나(클로이 세비이니)한테 푹 빠진다. 라나가 술집에서 노래 부르는 모습을 보고는 뿅간 탓이다. 공장에 다니던 라나한테 "멤피스 같은 큰 도시로 나가 노래를 부르면 잘 살 수 있을 것"이라며 바람을 넣고, 사내인 것처럼 속여 같이 살까지 섞게 된다. 브랜든은 사랑을 키워가면서 달콤한 꿈을 꾸지만, 그 꿈은 아무나 이룰 수 있는 꿈이 아니다.
그 꿈길에는 비록 감옥에 갔다 왔지만 저한테 잘 해준 라나를 좋게 생각하는 존이 있으며, 링컨시에서 훔치다가 걸려 법원에서 재판을 받아야 하는 일도 남아 있고......
3. 이해영과 이해준 감독이 같이 만든 우리나라 영화 <천하장사 마돈나>에 나오듯이 처음에는 몸과 마음이 달라서 몸을 바꾸고 싶은 사람들을 다룬 영화인 줄 알았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생각과 다른 제 몸을 바꾸고자 하는 게 아니라, 제 몸이야 계집의 몸이든 말든, 그냥 계집을 사랑하는 이의 얘기였다. 이게 남다른 영화였다.
몸은 사내이지만 생각은 계집이거나, 거꾸로 몸은 계집이지만 생각은 사내여서 겪는 머릿속 아픔은 하나도 다루지 않았다. 그래서 영화에선 몸을 고치려 하지 않는다. "제가 사낸지 계집인지 잘 모르겠어요..." 하면서도, 라나한테는 "너랑 멤피스에 같이 가고 싶어. 함께라면 뭐든지 할 수 있어..." 하며 몸이 어떻든 제가 좋아하고 끌리는 사람과 사랑을 하고픈 브랜든의 생각을 어떻게 봐야 할까?
감독은 본디 있었던 일을 영화에 담았지만, 나로서는 세월이 흘렀어도 그런 일이 쉽게 받아들여질 것으로는 생각하지 않는다. 사내와 사내끼리나 계집과 계집끼리의 사랑도 어쩔 수 없이 그렇게 되었겠지만 자연의 흐름을 거스르는 듯해서 마뜩찮다. 그런데 한 술 더 떠는 이 영화를 선뜻 받아들이기 어렵다. 두고두고 생각을 하게 될 듯하다. 빛깔이 다른 영화이긴 하지만, 그래서 별은 넷만 주었다.
4. 계집이면서 사내 노릇을 하는 브랜든을 맡은 힐러리 스웽크의 연기는 놀라웠다. 큰집까지 다녀왔으며 거칠게 노는 존과 탐한테 지지 않고 껄렁한 사내처럼 보이려고 으시댈 때나, '범퍼 스키'라며 짐차의 뒤에 올라타고는 줄을 잡고 달리는 짐차에서 마치 스키를 타듯이 버틸 때, 사내 노릇을 하려고 라나의 몸 위에서 살을 섞을 때는 속이 불편할 텐데도 그런 내색을 보이지 않았다.
변혁 감독이 2004년에 만든 영화 <주홍글씨>에서 한석규와 엄지원, 성현아와 같이 나온 이은주는 나중에 계집끼리 사랑하는 모습을 찍도록 하는 감독이 싫었고 그런 게 역겨웠다는 말까지 남겼다. 이 영화에서 브랜든으로 나온 힐러리 스웽크나 라나를 맡은 클로이 세비이니는 어땠을까? 아무리 영화에서 하는 연기라 하지만 서로 입술을 찾고 젖가슴에 입을 맞추는 일이 선뜻 받아들여질까?
티나가 브랜든으로 사내 같이 보이려고 해도 어쩔 수 없는 대목은 따로 있었다. 술집에서 캔디스에게 지분거리는 덩치가 큰 사내한테 덤빌 때는 애가 어른한테 덤비는 듯하고, 거칠게 나오는 존과 톰한테 어쩌지 못하고 눌리게 될 때는 사내가 아닌 몸이라 안쓰러웠다.
5. 영화 이름처럼 소년은 울지 않아야 하는데, 소년이 아니기 때문에 브랜든 티나는 울었는지 모른다. 제가 버텨내기에는 누르는 아픔이 더 컸을 것이다. 세월이 흘러도 쉽게 견딜 수 있는 아픔이 아닐 듯하다. "어떻게든 되겠지" 하며 버티는 브랜든의 말은 메아리가 들려오지 않는다. 빈 하늘 속으로 사라질 뿐.
영화가 나온 지 그리 오래 되지 않은 덕분에 디뷔디는 화면이나 소리가 좋다. 강가에서 보여주는 해넘이나 풍경들은 티나의 아픔은 제쳐두고 그저 아름답기만 했다. 덤으로는 어떻게 만들었는지 짧게 말해주는 것과 예고편들이 담겨 있다. 감독이나 배우들이 나와서 찍을 때 있었던 뒷얘기들을 많이 들려주면 좋았을 텐데 조금 아쉬웠다.
디뷔디 집에는 128분으로 적혀 있으나 영화는 118분짜리다. 9,900원에 샀는데 이제는 8,800원이다. 값은 알맞다. 아이들과 보다간 브랜든과 라나가 살을 섞는 모습에서 얼굴을 붉힐 수 있으므로 어른들만 봐야 하는 디뷔디다. 그런데 떨어져 나오지 않는다. 빨리 다시 나왔으면 좋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