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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부제가 "18세기 기호유학을 이끈 호학의 일인자"입니다. 조선 전기에는 주리론과 주기론의 대립이 있었으며, 전자는 퇴계 이황, 후자는 율곡 이이 같은 대석학이 각각 지론으로 굳혀 이로부터 동인/서인 사이의 유구한 논쟁(정치가 아닌 학문)이 비롯했음은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헌데 한원진 선생과 이간 선생의 이른바 인물성동이론 논쟁은, 병자호란을 겪으며 민족적, 문화적 긍지에 큰 상처를 입은 조선 유림들의 치열한 정신적 모색 한 단면을 잘 드러내 보인다는 점에서 매우 의의가 크다고 하겠습니다.
이 책의 주제인물인 남당 한원진 선생은 물론 그의 스승 권상하 대현과 궤를 같이하는, 호론(즉 이론)의 대표자입니다. 그와 대립했던 이간 선생은 낙론의 거두 격인데, 인물성 동론을 주창한 분입니다. 낙론과 호론 모두 사색 중 노론 안에서 새로이 분립된 입장들이었으며, 대개 인성과 물성이 서로 같다고 할 수 있는지, 또 성(性)과 리(理)가 어디에서 합류하며 어디에서 분기하는지를 놓고 치밀하기 이를데없는 대논쟁이 벌어졌습니다.
유학에 소양이 깊지 못한 후대인들은 간혹 헷갈려하기도 합니다. 노론이란 서인의 한 분파이며, 서인은 이율곡의 주기론을 스승의 큰 가르침으로 삼는 입장이었습니다. 그런데 왜 낙론은 "이(理)"의 중요성을 강조했던 걸까요? 호론이 정통 스탠스로 "오로지 기(氣)"를 외쳤던 건 납득이 가도 말입니다. 이에 대해서는, 여진이 중화를 점령하며 이미 세상의 중심에 선 현실을 인정하려는 전향적 자세와, 그렇지 않고 여전히 종래의 "명분"을 고수하려 드는 진영의 대립이었다는 점 정도는 벌써 많은 대중 저술가들이 독자들에게 친절히 해명하고 있었습니다.
이 책을 읽으면, 같은 학파 사이에서도 상대의 입장을 어느 정도 유연히 수용할 것인가, 그렇지 않고 종래의 순정, 정통 스탠스만을 고수할 것인지를 놓고 다시 내부 대립이 빚어질 수 있음을, 좀 다른 각도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예컨대 다산 정약용은 누가 뭐래도 남인이었지만, 이 호락 논쟁의 와중에서 오히려 호론(정통 주기설)의 입장으로부터도 영향을 받아 그만의 독창적인 사상을 전개하게 됩니다. 동인 중에서 주기론에 다분히 경도된 쪽은 북인 계열이었는데도 말입니다. 보통 북인의 개조를 남명 조식 이전에 화담 서경덕으로 꼽기도 하지만, 엄연히 그는 주기론자이므로 율곡의 정신적 스승으로도 평가가 됩니다. 원리원칙에 충실하고 함부로 종래의 입장을 변경하지 않는 일관된 호론의 종적을 보며, 과연 "절개와 충의의 고장"이자 "양반의 상징"으로서의 충청도 그 명칭이 쉽게 생긴 게 아니라는 점 깨닫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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