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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기쉽게 설명한 '계몽의 변증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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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버마스는 대학원 시절 이 책을 읽곤 '신선한 지적 충격'을 받았다고 하면서 금세기 가장 우울한 책이라는 평을 했다. 개인적으로는 하버마스의 그 말에 속아서(?) 문학과 지성사에서 간행된 '계몽의 변증법'을 샀다가 50페이지를 채 넘기지 못하고 좌절하고마는 굴욕을 당하기도 했고.하여간, '계몽의 변증법'은 개인적으로 굉장히 관심이 가던 책이었건만 그 난해함에 손도 못대고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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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버마스는 대학원 시절 이 책을 읽곤 '신선한 지적 충격'을 받았다고 하면서 금세기 가장 우울한 책이라는 평을 했다. 개인적으로는 하버마스의 그 말에 속아서(?) 문학과 지성사에서 간행된 '계몽의 변증법'을 샀다가 50페이지를 채 넘기지 못하고 좌절하고마는 굴욕을 당하기도 했고.

하여간, '계몽의 변증법'은 개인적으로 굉장히 관심이 가던 책이었건만 그 난해함에 손도 못대고 있던 도중, 그린비의 리라이팅 클래식 시리즈의 한권으로 출간되었다는 소식에 지체없이 구입했다. 저자의 소개에서 보면 나오듯, 저자도 계몽의 변증법이 쉬운책은 아님을 미리 경고하고 있다. 그래서일까? 저자는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위해 다양한 문학적 방법을 사용한다. 이를테면 호르크하이머와 아도르노가 자신에 대해 이야기를 한다던지, 그 둘이 서로 특정주제에 대해 대화를 한다던지 하는 방식으로 말이다.

'신'을 몰아냄으로써 계몽의 시대를 열었던 이성은 스스로 신의 자리를 차지하여 결국 새로운 야만을 불렀다는 계몽의 변증법의 취지를 이 책을 읽으면서 쉽게 알 수 있었다. 또한 오디세우스와 사드의 소설에 관한 호르크하이머와 아도르노의 해석을 보며, 고전 해석의 또다른 방식을 보게 된 것도 또 하나의 수확이었다.

하지만, 솔직히 다른 리라이팅 시리즈에 비해 약간의 아쉬움이 남음은 지울 수 없다. 물론 계몽의 변증법 자체가 원채 어려운 책인지라 그것을 알기 쉽게 설명한 것만해도 충분히 대단한 일일 수는 있겠지만, 리라이팅 시리즈의 다른 책에 비해 저자 자신의 생각에 대해서는 그닥 많이 나와있지 않았다는 점이 첫번째 아쉬움이다. 두번째 아쉬움은 계몽비판의 측면에 있어서 이후의 논의는 어떻게 되어가는지, 포스트모더니즘 계열의 철학자들은 이 책을 어떻게 평가했는지, 근대성의 기획을 고수하고 있는 그들의 후예-대표적으로 하버마스-들의 이 책에 대한 입장은 어떠한지에 대한 설명도 있었으면 조금 더 좋지 않았을까 싶은 아쉬움. 개인적으로는 분량도 좀 더 늘리고, 출간시기가 다소 늦춰지더라도 그 부분에 있어서 다소간의 보충이 있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조그마한 아쉬움이 남는 책이기도 했다.

자, 어쨌건 그럼 이제 '계몽의 변증법'원전을 읽는 일만 남은건가??
근데 언제??ㅠㅠ
j***8 2006.03.11. 신고 공감 9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유쾌한 그러나 가볍지 않은 고전읽기
"유쾌한 그러나 가볍지 않은 고전읽기" 내용보기
권용선의 이선은 신화다, 계몽의 변증법이라는 책을 구입하게 된지는 꽤 오래되었다. 하지만 그 제목의 난해함과 계몽의 변증법이라는 책에 대한 두려움은 책읽기를 망설이게 하였다. 이번 여름방학을 맞아 인내심기르기 프로젝트의 하나로 그의 책을 집에들었다. 나에게 이 책은 이렇게 하나의 꼭 넘어야할 산처럼 다가왔다. 책을 한장한장 읽어가면서 두려움에 떨며 읽어보지 않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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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용선의 이선은 신화다, 계몽의 변증법이라는 책을 구입하게 된지는 꽤 오래되었다. 하지만 그 제목의 난해함과 계몽의 변증법이라는 책에 대한 두려움은 책읽기를 망설이게 하였다. 이번 여름방학을 맞아 인내심기르기 프로젝트의 하나로 그의 책을 집에들었다. 나에게 이 책은 이렇게 하나의 꼭 넘어야할 산처럼 다가왔다. 책을 한장한장 읽어가면서 두려움에 떨며 읽어보지 않았던 긴 시간들이 너무도 아깝게 느껴졌다. 저자는 자기소개에서도 말했듯이 쉽게 말하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모여주었고 그 노력은 충분히 책에 반영되어 있었다. 난해하기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계몽의 변증법이 그의 손을 거쳐 재미있는 책 한권으로 탄생한 것이었다. 이 책은 계몽에 대한 비판을 담고 있다. 대학 수업시간에 계몽의 변증법에 대해서 강의들은 적이 있는데 이 책을 읽어보니 더욱 잘 이해아게 되었다. 우리가 그토록 맹신해왔던 이성, 계몽이 사실은 신화에 불과하다는 것, 대중문화가 지배이데올로기를 종속화시키기위한 수단이라는 것 등 이 책은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많은 시사점을 준다. 파시즘을 다루는 부분에서는 전라도에 대한 지역감정을 예로들어 파시즘이 결코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을 말해준다. 글쓴이도 말했듯이 고전은 인애심을 기르는데도 도움이 되지만 지금 우리를 볼수있게 해주는 렌즈의 구실도 한다. 이런 의미에서 이 책은 충실한 렌즈역할을 다하고 있다.
c******3 2004.06.28. 신고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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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의 가면 뒤에 숨은 문명의 야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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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의 가면 뒤에 숨은 문명의 어둠 권용선, <이성은 신화다, 계몽의 변증법>"'사유하는 나'를 세계의 중심에 두고, 미지의 것을 개척함으로써 문명을 이루고, 타자를 배척하거나 동질화하는 방식으로 지배를 꿈꾸며, 역사를 만들고 시간을 조직하면서 자기 검열을 내면화하는 근대인이야말로 계몽 이성이 만들어낸 최고의 발명품이다."(68쪽)시대와 '불화했던' 한 젊은이가 있었다.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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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의 가면 뒤에 숨은 문명의 어둠
권용선, <이성은 신화다, 계몽의 변증법>


"'사유하는 나'를 세계의 중심에 두고, 미지의 것을 개척함으로써 문명을 이루고, 타자를 배척하거나 동질화하는 방식으로 지배를 꿈꾸며, 역사를 만들고 시간을 조직하면서 자기 검열을 내면화하는 근대인이야말로 계몽 이성이 만들어낸 최고의 발명품이다."(68쪽)

시대와 '불화했던' 한 젊은이가 있었다. 그 대가로 1990년대의 시작을 '특별한 공간'에서 갇혀 지내야했던 그는, 그 동안 자신의 삶이 주는 무게 때문에 미처 읽지 못했던 책들을 읽어나가게 된다. 그 와중에 읽게 된 <변증법적 상상력>(돌베개)이란 책을 통해 각인된 <계몽의 변증법>은 두고두고 그의 뇌리에 남아 있게 된다. 하버마스가 '세계에서 가장 어두운 책'이라고 표현했다는 류의 언급 때문이 아니라 어떤 정해진 길을 향해 일직선으로 달려가기만 하면 새 세상을 이룰 수 있다고 믿어 의심치 않았던 그의 사고방식에 커다란 의문을 남기는 계기가 되었기 때문이다.

90년대 중반, 서른이라는 나이를 거치면서 영화와 음악 등 소위 문화라는 아우라로 포괄되는 시대적 유행을 겪으면서 다시 한번 <계몽의 변증법>과 마주치게 된다. 이미 맑스, 레닌만을 고집하지 않고 니체, 프로이트, 푸코, 들뢰즈 등 세상을 동일성이 아니라 '차이'를 통해 인식하고자 한 철학자들과의 조우를 통해 세상을 보는 눈은 많이 달라져 있었지만, 여전히 <계몽의 변증법>은 그에게 숙제로 남겨져 있던 책이었다.

그리고 시간은 흘러 새로운 세기의 시작 즈음에는 그 '숙제'를 어느 정도는 해결했다고 생각했기에 다시 그 고통스런 책과 마주칠 기회를 잡는 일은 쉽지 않아 보였다. 그러나 현실은 그의 이런 생각을 조소라도 하는 양 <계몽의 변증법>이 제기하는 문제들 곧 계몽의 신화, 이성의 신화를 다시금 그의 사유 속으로 불러 들인다.

권용선의 <이성은 신화다, 계몽의 변증법>은 호르크하이머와 아도르노가 제2차 세계대전의 와중에 '홀로코스트의 비극'을 몸서리치며 사유한 기록인 <계몽의 변증법>을 현재적 시선에서 다시 사유하기를 제안하는 책이다. 왜냐하면 '홀로코스트의 비극'은 아우슈비츠에서만 존재하는 게 아니라 아우슈비츠 이전 서부 개척의 역사에서도 지금 이 순간에는 바그다드에서도 역시 홀로코스트의 현장을 목격할 수 있기에….

지은이가 <계몽의 변증법>을 '다시 쓰는' 과정은 1인칭 자전적 서술로 호르크하이머와 아도르노를 소개하는 1장의 전기 부분을 제외하면 철저하게 원저자들의 목차를 따라가면서 서술한다. 따라서 계몽의 개념을 설명하는 2장부터 파시즘의 일상화를 설명하는 6장까지의 서술들은 호르크하이머와 아도르노의 생각일 수도 있고 지은이의 생각일 수도 있고 혹은 둘 다일 수도 있다. 물론 이 둘을 구분해보려는 것은 부질없는 짓이다.

계몽이라는 말이 '어둠을 밝히고 빛을 비춘다'는 의미라고 했을 때 빛은 '이성'의 빛에 다름 아니다. 신이 지배하던 중세적 세계관에서 벗어나 인간의 이성을 세계인식의 기초원리로 바라보기 시작했다는 것, 이러한 인식의 전환 속에서 계몽은 발아하게 된다. (제2장)

그러나 보다 근본적으로는 계몽은 더 나은 세계를 지향하는 인류의 희망과 더불어 시작되었고 할 수 있다. 인간이 자연의 지배로부터 자유롭지 못할 때, 인간은 자연이 주는 공포를 극복하는 수단으로 '신화'에 의지하게 된다. 이 '만들어진' 신화 속에서 인간은 자신의 이미지를 발견하게 되고 이를 통해 자연에 대한 공포를 서서히 극복하게 되고, 계몽이 진행됨에 따라 과학과 지성의 힘으로 마침내는 자연을 지배하게 된다. 인류의 역사 만큼이나 오래된 신화의 역사 속에서도 계몽은 발견된다는 이야기다. (제3장)

아도르노와 호르크하이머는 이처럼 계몽이 진행됨에 따라 인류는 진정한 인간적인 상태에 들어서기 보다는 새로운 종류의 야만에 빠져든다고 한다. 저자들은 이를 사드의 소설 <줄리엣의 역사>를 빌어 철저하게 계산된 이성, 완전히 계몽된 이성이 갖는 한계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지은이는 이 과정을 아도르노와 호르크하이머의 가상대화 형식이라는 문학적 상상력을 동원하여 재치있게 설명하고 있다. (제4장)

▲ 바바라 크루거, <무제>, 1989
훈육되고 길들여진 신체는 이미 내 것이 아니다. 그것은 이제 자동인형처럼 일상과 노동의 치열한 전투를 하루하루 살아낸다. 주어진 신체 안에서, 체계에 적합한 인간형으로 단련되는 것은 그러나 신체만이 아니라 정신 또한 균질화되어 간다. 개인이 감지하는 개성은 문화산업이 제공하는 틀 안에서만 안전하게 작동한다.(81쪽)
이 과정을 통해 지은이는 자연이 주는 공포로부터 벗어나 인간을 이 세계의 주인으로 세우고자 했던 계몽과, 이성과 문명의 이름으로 자연을 지배하고 식민지를 개척하고 또 다른 인간을 억압하는 근대 이후의 계몽은 서로 다른 것이 아니라고 본다. 우생학적이고 인종주의적 관점에서 시작된 홀로코스트의 비극과 서부 개척의 신화를 위해 잔인하게 희생된 아메리카 인디언들의 수난은 똑같이 합리성이라는 이름으로 '계산된' 계몽의 실천이라는 것이다.

사람들에 따라서는 첨단 과학기술로 무장한 현대사회를, 근대 철학의 산물인 계몽이라는 말로 혼접하여 야만의 시대니 어떠니 하는 것에 동의하기 힘들 수도 있을 것이다. 야만이라고 하면 아프리카 오지의 원시 미개 종족을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현대인처럼 세련된 취향과 매너를 지닌 야만인이란 생각하기 힘든 존재일테니까.

그러나 역으로 생각해보면 첨단 과학기술로 무장한, 세련된 문화적 취향을 지닌 이성적 존재들이기에 그 야만성은 원시 미개 식인종보다 더 파괴력이 큰 야만이 아니겠는가. '정의'라는 이름을 앞세워 열화 우라늄탄을 개발하고 악의 축 징벌을 위해 문명의 발상지 '천년고도'를 쑥대밭으로 만들어버리는 야만!

이러한 야만은 현대 사회 곳곳에 포진하고 있다. 문화라는 허울을 뒤집어 쓴 이데올로기의 형태로, 합리성이라는 이름으로 우리의 신체와 의식을 검열하는 파시즘이라는 형태로….

아도르노와 호르크하이머가 <계몽의 변증법>의 부록에 해당하는 문화산업과 유대인 문제에 관한 글에서 계몽이라는 옷을 입은 문화(산업)에 대해 그토록 강조하는 것은 그것이 자본주의의 논리와 결합된 파시즘의 지배이데올로기를 적극적으로 전파하면서 대다수 사람들의 이성을 마비시키고 획일화시키기 때문이다. 여담이지만 사실 아도르노 만큼 디즈니 만화를 혐오한 사람도 찾기 힘들 것이다.

그렇다면 오늘의 우리 사회는 얼마나 다를까?

70년대 김민기의 <아침이슬>이 금지곡이었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군사독재 시절이니까 가능한 이야기 아니냐' 하면서도 지금 여기 '문민정부'나 '국민의 정부'에서 작동하고 있는 똑같은 메커니즘에 대해서는 애써 무지하다.

지은이가 문화산업을 다루는 5장에서 언급하고 있듯이 서태지의 <발해를 꿈꾸며>는 마음대로 불러도 되지만 DJ DOC의 <포졸이>는 왜 금지곡이 되어야 할까? <포졸이>의 가사가 저질스럽고 음란해서?

▲ 백남준, < TV 부처>, 1986
텔레비젼은 이제 우리 일상에서 없어서는 안 되는 중요한 정보전달의 매체이자 문화상품의 전달자가 되었다. 그것이 갖는 일상에서의 위력은 때때로 인간들 사이의 관계를 단절시키고, 원하지 않거나 불필요한 정보까지도 일방적으로 공급하면서 생활의 질서를 파괴하는 것으로까지 나아간다.(215쪽)
촌스럽고 저질스러운 것 그 자체에 대해서 금지라는 족쇄를 채우지는 않는다. 촌스러운 것으로 치자면야 <허리케인 박>보다 더한 것이 어디 있을까? 문제는 촌스럽고 저질스러운 것이 어디를 향하고 있느냐, 누구를 겨냥하느냐가 문제일 뿐! 이처럼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문화라는 고상한 취미 역시 철저하게 지배 이데올로기를 견고하게 하는 도구로 작동하고 있다는 것이다.

인터넷 언론매체에서 예민한 정치 관련 기사가 올라오면 '경상도/전라도 이데올로기'로 무장한 사람들은 서로에게 총부리를 겨눈다. 경상도 출신인 필자가 한나라당을 비판하는 글이라도 하나 올리면 당장 "너, DJ 광신도지?"라는 욕설이 난무한다. "전라도/경상도라는 지역주의는 지배집단의, 파시즘의 산물이다" 등등의 비판적 사고들은 이 광란의 장에 들어설 틈이 없다. 온 국민의 지역주의화!

동성애나 이주 노동자 문제 역시 마찬가지다. 동성애나 이주 노동자 문제를 다룬 기사들에 딸린 댓글들의 수준을 보라. 인간 이성의 동물수준화! 스스로의 합리성을 믿어의심치 않는 '합리적 다수'가 패거리 문화에 기대어 일류/삼류 대학을 구분하고, 특정 지역 출신을 소외시키고, 동성애자를 조롱하고, 외국인 이주 노동자를 학대하는 현실은 야만의 극치를 달리는 우리들의 슬픈 자화상이다.

하지만 아무도 이러한 것들이 진정으로 누구를 위한 일인지에 대해서는 생각해보지 않는다. 당연히 그래야만 하는, 자명한 것으로 알고 지나갈 뿐이다. 익숙한 것들에 대한 맹목적 신뢰! 금지된 것들에 대한 자발적 자기 검열과 반성하지 않는 이성 속에서 파시즘의 신화는 새롭게 부활한다. 일상적이고 미시적으로 작동하는 파시즘!

그렇다면 이러한 야만의 극복은 대체 어떻게 가능한 것일까? "스스로를 완전히 자각하고 힘을 지니게 된 계몽만이 계몽의 한계를 분쇄할 수 있을 것"(<계몽의 변증법>, 280쪽, 문예출판사/1995)이라는 원저자들의 생각에 동의할 수 있을까? 어려운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이 책의 지은이도 이에 대해서는 그 어떤 판단을 유보하고 있다. 아마도 무리하게 '에필로그'를 삽입하는 것보다는 <계몽의 변증법>을 다시 읽는 하나의 방법을 제시하는 수준에서 그친 듯한 인상이 강하다. 그래서 다 읽고 나면 어딘가 허전한 느낌이 드는 게 사실이다.

어쨌거나 국문학 전공자인 지은이가 학위논문을 앞두고 난해한 철학책을 '리라이팅'한 이유는 무엇일까? 궁금하기 그지 없는데, 그 스스로 어떤 형태로든 학위 논문에 반영할 생각이라니, 그의 학위논문이 새삼 기다려진다. 필자에게도 읽어볼 수 있는 기회가 올까?



권용선, <이성은 신화다, 계몽의 변증법>, 그린비(2003/10,900원)

차례


1장 어두운 시대의 노래
1. 나의 고백- 호르크하이머의 경우
2. 아도르노- 나를 말한다

2장 뫼비우스의 변주곡, 계몽과 신화의 변증법
1. 원숭이 우화
2. 마법사의 죽음과 세계의 탈마법화
3. 두 가지 전략, 반복과 언어
4. 계몽의 계몽을 위하여

3장 오디세우스, 주체의 탄생
1. 누가 이 세계를 구할 것이냐
2. 책략가 오디세우스, 신들의 세계로부터 도망치다
3. 오디세우스가 매력적인 이유

4장 줄리엣, 계몽의 마녀
1. 작전회의를 엿보다
2. 줄리엣, 법과 도덕을 조롱하다

5장 계몽, 문화라는 옷을 입다
1. 모두를 위한 기성복, 문화산업
2. 장삿거리가 되지 않는 건 아무 것도 없다
3. 모든 사람을 돌보아야 한다
4. 내가 대표 선수다

6장 파시즘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1. 파시즘에 관한 일상적 사례보고
2. 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
3. 유대인은 어떻게 문제아가 되었나

이 책의 구성에 대하여

<계몽의 변증법>과 함께 읽으면 좋은 책들

2003/04/29 <오마이뉴스>에 게재되었던 서평입니다.
m******7 2003.05.03. 신고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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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에게 희망은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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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네상스와 함께 인류는 신을 버리기(?) 시작했다. 암울했던 중세의 기억을 떨치고 인류가 부여 잡은 것은 다름 아닌 이성이었고, 모든 이들은 계몽, 역사의 끊임없는 진보에 대한 강한 믿음을 가졌었다. 그리고 그것은 실로 현실화되는 듯 했다. 자본주의, 기술의 발전과 함께 인류는 절대적 빈곤으로부터 차츰 탈피했으며, 우리는 지금 어느 시대보다도 편리한 문명의 이기를 누리며 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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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네상스와 함께 인류는 신을 버리기(?) 시작했다. 암울했던 중세의 기억을 떨치고 인류가 부여 잡은 것은 다름 아닌 이성이었고, 모든 이들은 계몽, 역사의 끊임없는 진보에 대한 강한 믿음을 가졌었다. 그리고 그것은 실로 현실화되는 듯 했다. 자본주의, 기술의 발전과 함께 인류는 절대적 빈곤으로부터 차츰 탈피했으며, 우리는 지금 어느 시대보다도 편리한 문명의 이기를 누리며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이미 인류의 역사 속에는 두 차례의 세계대전과 잔혹하기 그지 없는 숱한 전쟁들이 기록되어 있으며, 이것들도 우리가 그토록 믿었던 우리의 이성이 만들어낸 것들이었음을 우리는 부인할 수 없다. 텔레비전 천연색 화면을 통해 누군가가 끊임없이 죽어가는 전쟁을 아무렇지 않게 감상할 수 있게 된 시대 속에서 우리는 전쟁의 끔찍함 보다는 무언가 그저 번쩍거림 속에서 거대한 굉음만이 존재하는 것 같은 이미지만을 기억할 뿐이지만, 아도르노와 호르크하이머는 이러한 끔찍함이 일상이던 시대에 살았다. 그들 역시 미국으로의 망명을 택함으로써 전쟁의 한가운데 존재하는 불운함은 면했지만, 이성의 이름으로 자행되는 난폭함의 공포로부터는 자유로울 수 없었다. 아니, 그들은 인간의 이름으로 자행되는 수많은 폭력에 대해 같은 인간으로서 괴로워할 수밖에 없었던 걸지도 모른다. <계몽의 변증법>은 인류의 보다 나은 것에 대한 지향에 대해 고찰하고 있다. 인류는 그 과정 속에서 현실에서는 이룰 수 없는 것들을 ‘신화’라는 수단 혹은 매개체를 통해 꿈꾼다. 그렇기에 신화는 인류의 이성의 집합체이며, 그 안에는 우리의 역사 속에 존재했던 수많은 억압과 폭력에 대한 암시가 들어있다. 아도르노와 호르크하이머가 살펴본 <오디세이> 에서 오디세우스는 자연과의 대결을 통하여 자신에게 드리워진 운명을 개척하고 신으로부터의 독립을 쟁취한다. 하지만 오디세우스는 그로 인해 더 큰 권력을 탐해야만 하는, 그러면서도 자신 역시도 자유를 누리지 못하고 어딘가에 속박되는 이중적인 해방에 처하게 된다. 이는 인류가 자신의 이성을 이용하여 자연을 지배의 대상으로 인식하고 그 위에 문명을 건설하는 과정과도 흡사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화려한 문명과 함께 점점 더 강인해져만 가는 노동강도, 자본이 규정하는 형태의 문화산업을 벗어난 형태의 여가는 꿈꿀 수 없는 현실. 인류는 결국 인류가 이성의 힘으로 만든 것에 의해 자유를 얻음으로써 자유를 상실하는 상태에 처하게 되었으니 말이다. 그들은 또한 사드의 <줄리엣의 역사>를 통해 인류가 보여준 폭력성이 지독히도 철저히 계산되고 설계된 것이었음을 증명한다. 사드의 소설에서 줄리엣은 자신의 이성을 이용하여 문명이 금기시하고 있는 것들을 철저히 깨뜨리는 실천을 하며, 그것은 너무도 이성적이기 때문에 죄의식이라는 최후의 안전망마저도 너무 쉽게 뛰어넘을 수 있었다. 줄리엣은 이러한 강력한 이성을 바탕으로 모든 감정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었으며, 그렇기에 그녀의 타락은 타락이 아닐 수 있었다. 이러한 줄리엣의 모습은 실로 오늘날의 인류와 많은 부분 닮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유태인에 대한 인종적 폭력은 우생학이라고 하는 지극히도 이성에 기초한 학문을 실현하기 위한 정당한 수단이었기에, 홀로코스트 산업에 대해 지난 날 그토록 많은 이들이 그에 동조했던 것이리라. 또한 이성은 모든 것을 규정 짓는 존재이며, 권력과 결합해서 사회에서 허락되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구분짓는 역할까지 수행한다. 모든 분야와 영역에 걸쳐 계급과 계층적 구분을 양산하고, 그에 따라 새로운 상품을 끊임없이 만들어내는 것도, 기존의 체제에 대해 조금이라도 쓴소리는 철저히 억누르고 그러한 것들은 대중으로부터 떼어냄으로써 현재의 질서를 공고히 하는 것도 모두 인간의 이성이 만들어낸 것이다. 그렇게 만들어진 것들이 문명이라는 단어로 불리는 것들이며, 지구화의 흐름 속에서 모든 인류는 보다 권력에 근접한 이성이 창출해낸 문명에 가까워지기 위해 노력한다. ‘미개’의 영역으로부터 탈출하기 위해 끊임없이 몸부림치는, 하지만 그와 함께 자신의 목을 죄어오는 힘이 점점 더 강해짐을 느끼는, 구속과 속박의 역사, 그것이 바로 계몽의 역사인 것이다. 니체에서부터 루카치, 푸코에 이르기까지 저자가 살펴본 많은 사상가들은 정도의 차이는 있었지만 인간이 신봉하는 계몽의 끔찍함에 대해 한결같이 이야기하고 있었다는 점에서 아도르노, 호르크하이머를 위시한 프랑크푸르트 학파와 맥을 같이 한다고 볼 수 있을 듯 하다. 비록 그들은 대중이 문화에 대해 비판적 시각을 가지고 이에 변화를 꾀할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진 존재임을 인식하진 못한 듯 하지만, 적어도 인간의 이성에 기초한 모든 것이 인류를 보다 나은 어딘가로 이끌지는 않음은 정확히 예측(?!)했다. 이성이 대안이 아니라면 우리는 어디로 가야 하는 것일까? 가슴으로부터 우러나오는, 내 마음이 이야기하는 것들에 귀를 기울여야 하는 것일까? 정도(正道)가 존재치 않는 이 세상이 가끔씩은 하나의 정결한 바둑판이었으면 싶은 까닭이 왜인지…
이달의 사락 q*****2 2004.06.01.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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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적이지만, 결코 대중적이기를 거부하는 비판의 경계철학서
"대중적이지만, 결코 대중적이기를 거부하는 비판의 경계철학서" 내용보기
학자들조차 어렵다는 계몽의 변증법이 호르크하이머와 아도르노의 고백으로 너무나 쉽고 친근하게 풀려진다. 계몽과 신화의 변증법, 오디세우스, 문화산업, 파시즘에 이르는 다양한 영역들이 어려운 학문적 틀에서 벗어나 그와 연관된 사진들과 이야기를 통해 다가오기 때문일 것이다. 처음 출간되었던 [계몽의 변증법]은 정말로 어렵고 해독하는데 힘이 많이 들었다. 하지만, 최근에
"대중적이지만, 결코 대중적이기를 거부하는 비판의 경계철학서" 내용보기
학자들조차 어렵다는 계몽의 변증법이 호르크하이머와 아도르노의 고백으로 너무나 쉽고 친근하게 풀려진다. 계몽과 신화의 변증법, 오디세우스, 문화산업, 파시즘에 이르는 다양한 영역들이 어려운 학문적 틀에서 벗어나 그와 연관된 사진들과 이야기를 통해 다가오기 때문일 것이다. 처음 출간되었던 [계몽의 변증법]은 정말로 어렵고 해독하는데 힘이 많이 들었다. 하지만, 최근에 출간된 권용선님의 [계몽의 변증법]은 그 자신이 박사학위논문을 준비하면서 겪었던 좌충우돌기처럼 쉽고도 어려운 경계선을 넘나들며 독자와 호흡하려는 노력이 돋보인다. 대표적으로 읽어볼만한 것은 5장이라고 생각된다. 세계양차대전을 살았던 학자들의 이야기가 현재에도 살아서 예리한 분석력과 통찰력을 주고 있기 때문이다. 대중문화에 상반되는 개념으로 [문화산업]이라는 신종어를 만들내었다는 점은 주목할만하다. 라디오, 영화, 텔레비전, 대중음악, 광고에 이르는 대중매체가 국민들을 얼마나 무비판적이고 이데올로기적 통치수단으로 전락했는지를 보여준다. 저자는 한국의 60년대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실례를 들어 비교함으로써 독자의 이해에 배려를 더해주어서 좋았다. 마지막장에 [파시즘]에 관해서는 단순히, 무솔리니나 히틀러의 파시즘만을 논하는 것에서 벗어나 우리사회의 지역감정에서 드러나는 파시즘적인 세태를 비판함에 이해가 많이 되었다. 어떻게 보면, 교양도서처럼 친근하지만 깊이가 없다고 비판받을 수 있는 [이성은 신화다, 계몽의 변증법]은 그래도 대중적인 그러면서, 대중적이기를 거부하는 책임에 한번쯤 권해본다.

[인상깊은구절]
무엇이 금지할 것인가, 무엇을 허용할 것인가를 정확히 판단한 대중매체는 이제 허용목록 속에서만 안전하게 시스템을 가동시킴으로써 권력의 시녀가 된다. 지난 IMF시절, 대중매체의 선전 덕분에 하루하루 먹고 살기 바빠서 과소비할 여유가 없었던 서민들만이 국가경제를 살리기 위해 허리띠를 졸라 맸다. 그들은 대중매체가 하라는 대로 장롱 속에 숨겨두었던 금반지를 '헌납' 했고, 더 열심히 일하지 않았던 자신들을 반성했다. 그 와중에도 서울의 특정 상점에서는 고가 명품들이 끝도 없이 팔려나갔고, 국회에서는 이전투구가 끊어지지 않았다. 어떤 대중매체도 경제의 위기가 재벌들 때문에, 혹은 정치가들 때문에 온 것이라고는 말하지 않았다.
y****n 2004.04.25.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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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을 이성적으로 바라봄
"'이성'을 이성적으로 바라봄" 내용보기
서점에 갔습니다. 리라이팅 클랙식 시리즈가 세 권 나와 있더군요. 다른 두 권을 살펴보다가 우연히 이 책을 집어 들었습니다. '이성은 신화다'라는 제목의 부분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타인의 이성이 신화인지 어떤지는 모르겠습니다. 다만, 지금의 제 이성은 막다른 길에 다다른 느낌입니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이 책을 집어 들었습니다. 나는 '이성'이라는 도구로 얼마나 나와 타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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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점에 갔습니다. 리라이팅 클랙식 시리즈가 세 권 나와 있더군요. 다른 두 권을 살펴보다가 우연히 이 책을 집어 들었습니다. '이성은 신화다'라는 제목의 부분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타인의 이성이 신화인지 어떤지는 모르겠습니다. 다만, 지금의 제 이성은 막다른 길에 다다른 느낌입니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이 책을 집어 들었습니다. 나는 '이성'이라는 도구로 얼마나 나와 타인을 상처내는지... 이 책은 아도르노와 호르크 하이머의 '계몽의 변증법'을 다시 쓴 책입니다. 원본은 나도 읽어 보지 못했습니다. 책 '계몽의 변증법'은 두 가지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합니다. 하나는, 계몽이 봉착한 현실적인 한계를 지적하는 것, 다른 하나는, 계몽의 계몽을 수행하는 것. 계몽은 동질화와 배제의 과정을 거친다고 합니다. 20세기의 계몽이성이 자본과 권력이라는 현실적인 힘에 포획된 도구적 이성으로 전락합니다. 이 과정을 통해, 근대적 '이성'은 자기 비판없이 발전해 갑니다. 계몽은 자기와 다른 것에 대한 동질화와 배제의 과정을 거칩니다. 배제의 방법은 폭력이겠지요. 이성이 저지르는. '계몽의 변증법'은 이에 대한 대안으로, '근원으로서 자연'을 기억해 내는 노력을 제시합니다. 부정과 반성의 사유를 동반하지요. 근데, '자연'이라는 개념이 참 애매합니다. 광범위한 개념이기도 하구요. 여기서 다 설명하기는 벅찹니다. 어쨌든, 이러한 근대적 이성의 종착점은 권력에 대한 아부와 파시즘화 입니다. 저자들은 이 계몽 이성의 영향을 대중문화(저자들의 표현대로 하자면 '문화산업')의 모습을 통해 폭로하기도 합니다. '이성은 신화다, 계몽의 변증법'은 '계몽의 변증법'이라는 책을 이런식으로 다시 써 내려갑니다. 사실, 다시 쓴다는 표현은 적절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제가 읽어 본 바로는. 원저에 대한 교사용 지도서쯤 될려나. 안내서 정도 되겠습니다. 길을 잃지 않기 위한. 읽는 동안에 약간 당황했습니다. 너무 이해하기 쉽게 쓰여졌기 때문입니다. 원저는 정말 어렵다고 들었는데, 이렇게 쉽게 풀이하다니. 쉽다는 것은 미덕이 될 수도 있겠지만, 깊은 함정이 될 수도 있겠지요. 머리속으로 이라크 전쟁의 영상이 지나갑니다. 내가 실제 전쟁을 본 것인지, 스타 크래프트를 본 것인지 헷갈리기도 합니다. 공통점은 참 재미있다는 것입니다. 이성이라는 도구로 비이성적인 이라크에 비이성적으로 폭탄을 퍼 붓는 미국을 봅니다. 무엇이 이성이고 무엇이 비이성인지... 역사는 어디로 가는지...
g********m 2003.06.23.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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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용선의 이성은 산화다 계몽의 변증법을 읽고
"권용선의 이성은 산화다 계몽의 변증법을 읽고" 내용보기
오늘 소개하는 책은 <그린비> 출판사가 기획한 '리라이팅 클래식 시리즈' 중 여덟 번째인 권용선 작가의 <이성은 신화다, 계몽의 변증법>입니다. '리라이팅 클래식 시리즈'는 시대를 뛰어넘는 생명력을 지닌 인문사회, 철학 분야 고전을 새롭게 해석해 주는 기획입니다. 저는 <이성은 신화다, 계몽의 변증법> 외에 고미숙의 <열하일기, 웃음과 역설이 유쾌한 시공간>, 고병권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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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소개하는 책은 <그린비> 출판사가 기획한 '리라이팅 클래식 시리즈' 중 여덟 번째인 권용선 작가의 <이성은 신화다, 계몽의 변증법>입니다. '리라이팅 클래식 시리즈'는 시대를 뛰어넘는 생명력을 지닌 인문사회, 철학 분야 고전을 새롭게 해석해 주는 기획입니다. 저는 <이성은 신화다, 계몽의 변증법> 외에 고미숙의 <열하일기, 웃음과 역설이 유쾌한 시공간>, 고병권의 <니체의 위험한 책,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진은영의 <순수이성비판> 등을 읽어 봤습니다. 이 시리즈는 선뜻 손에 쥐기 어렵고, 쉽게 이해되지 않는, 낯선 문장과 번역투의 원작을 익숙한 우리말과 우리 시대의 문체로 풀어주는 고전 해설서이기에 고전을 읽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으나 선뜻 용기를 내지 못했던 저 같은 비전공자들이 읽기에 좋을 듯합니다.  

<이성은 신화다:계몽의 변증법> 그린비

책에 대하여

권용선의 책 <이성은 신화다, 계몽의 변증법>은 제목처럼 아도르노와 호르크하이머의 <계몽의 변증법>을 새롭게 해설해 주는 해설서입니다. 따라서 책의 주요 내용은 <계몽의 변증법>에서 다루는 계몽 비판과 파시즘 분석이며 책의 형식도 <계몽의 변증법>의 기본 구성을 따르고 있습니다. <계몽의 변증법>은 원래 '계몽의 개념'이라는 본문에 해당하는 하나의 논문과 그 본문에 붙은 두 개의 부연설명, 그리고 부록에 해당하는 두 개의 추가 논문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 책도 기본적으로는 원래의 책과 유사한 구성을 따르고 있습니다.

 

독일 프랑크푸르트 대학교수였던 아도르노와 호르크하이머의 원 저작 <계몽의 변증법>은 유대인 출신 독일 철학자였던 저자들이 1930년대 나치가 정권을 잡고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교수직을 잃고 망명해야 했던 미국에서 쓰인 책입니다. 책의 바탕이 된 초고는 아도르노와 호르크하이머가 주고받은 대화를 아도르노의 아내가 녹음한 것이었고 '철학적 단상들'이란 부제가 붙은 책은 1944년 완성되었으나 출판된 것은 1947년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였습니다. 당시 독일 출판사들은 유대인 저자들의 책을 출판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독일어판 계몽의 변증법>

저자들에 대하여

<계몽의 변증법>의 저자들 중에 한 명인 막스 호르크하이머 Max Horkheimer 1895년 독일 슈투트가르트에서 공장을 운영하는 유대인 재력가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청소년기에는 소설가가 되고 싶은 꿈을 갖었던 호르크하이머는 인생의 친구가 된 프리드리히 폴록을 만나 철학과 문학, 정치학과 심리학 등을 프랑크푸르트 대학에서 함께 공부합니다. 1930년 프랑크푸르트 대학의 사회철학 교수가 된 후 대학 부설 <사회연구소> 소장이 되어 폴록, 아도르노, 프롬, 뢰벤탈, 마르쿠제, 벤야민, 하버마스 등과 함께 '비판이론'으로 알려진 '프랑크푸르트 학파'를 이룹니다. 1933년 나치가 정권을 잡자 교수직에서 해임되고 결국 미국으로 망명하기에 이릅니다.

<호르크하이머와 아도르노>

20세기 사상가 중에 가장 음악에 조예가 깊었던 테오도르 아도르노 Theodor Adorno는 1903년 프랑크푸르트에서 역시 유대인 상인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성악가수였던 어머니와 피아노 연주자였던 이모와 어린 시절을 주로 보낸 덕분에 '음악만이 세상을 구원한다'라고 믿으며 음악가가 되고 싶었던 아도르노는 대학에 들어간 이후에도 음악과 철학을 결합하고 싶어 했으며, 1925년에는 쉔베르크에게 음악이론과 작곡법을 배우기 위해 빈을 방문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빈에서의 음악공부는 성공적이지 못했고 이후 프랑크푸르트 대학으로 돌아와 <사회연구소>를 중심으로 사회비판과 철학 연구에 몰두합니다. 나치의 압박을 피해 처음에 영국 옥스퍼드로 망명했다가 지적 관심사와 문화적 취향의 상이함으로 인해 영국을 떠나 결국 호르크하이머가 있는 미국으로 건너가 그곳에서 <계몽의 변증법>을 쓰게 됩니다.    

 

계몽의 변증법의 문제의식은 무엇인가

<계몽의 변증법>은 전체주의와 파시즘이 횡횡하던 암울한 시기에 쓰인 책입니다. '아우슈비츠'로 귀결된 파시즘의 광기에 인류가 절망하던 시기. 문명과 발전의 명목으로 나치가 자행한 전대미문의 대학살은 서구 지성계에 '아우슈비츠 이후에도 우리는 살아갈 수 있는가', '아우슈비츠 이후에도 서정시를 쓸 수 있는가'하는 자괴감과 절망 가득한 질문을 던졌습니다. 그리고 그 절망 속에서 호르크하이머와 아도르노는 문명의 발전과 진보에도 불구하고 "왜 인류는 진정한 인간적인 상태에 들어서기보다 새로운 종류의 야만 상태에 빠졌는가?"라는 질문을 던졌습니다. 그 질문에 대한 답으로, 전쟁의 광기와 파시즘의 폭력 속에서 탄생한 책 <계몽의 변증법>은 계몽과 이성, 진보와 문명에 대한 부정과 비판으로 가득 차 '20세기의 가장 어두운 사유'라고 불립니다.

유대인 포로

결국, 계몽과 이성이라는 진보의 도구로 무장하고 합리적인 역사발전을 추구했던 인류가 수백만명의 무고한 생명을 살해하는 가장 비합리적이고 야만적인 범죄를 저지른 이유에 대한 해답을 찾으려는 시도가 호르크하이머와 아도르노의 <계몽의 변증법>입니다.  왜 인류는 역사적 진보의 한 극단에서 인종적 편견과 전체주의적 획일성으로 요약되는 파시즘을 만나게 되었는지? 왜 인간이 만들어낸 역사의 진보 속에는 부정적인 것이 포함되고, 그 부정적인 것이 극단으로 치달으면 필연적으로 몰락의 길을 갈 수밖에 없는지? 인간을 위한 진보와 발전이 억압과 파괴의 길을 걸을 수밖에 없는 것인지?  

아우슈비츠 이후에도 서정시는 가능한가?

이러한 질문들에 대해 답하기 위해 아도르노와 호르크하이머는 <계몽의 변증법>에서 인류문명의 발전과 진보를 가능하게 했던 계몽과 이성의 체계를 그 근원에서부터 파헤치는 것입니다. 이는 도구적 이성에 대한 철학적 비판에 그치지 않고 계몽과 이성의 체계 자체에 내재한 동일성의 사유 자체를 비판적으로 분석하는 일이었고, 중심화되고 체계화되고 반성하지 않는 사유가 얼마나 위험한가를 상기시키는 일이며, 끊임없이 반성하고 긴장하는 주체를 통해 이성을 계몽하는 것 즉, 계몽의 계몽하는 것에 다름 아니었습니다. 달리 말하면 '진리에 대한 두려움 속에서 경직되어 버린 '계몽'을 구해내는 것이었습니다.

 

계몽의 역사는 왜 퇴보하는가

도구적 이성으로 타락하여 범죄자의 길을 걷게 된 '계몽'을 구해내는 일은 <계몽의 변증법>의 본문에 해당하는 '계몽의 개념'을 다루는 장에서 시작합니다. 이 장에서는 저자들은 '계몽'의 일반적인 내용과 자신들이 사용하는 '계몽'의 개념을 제시하고 '계몽'과 '신화'의 얽힘 속에서 '계몽'의 개념을 파악할 것을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계몽의 체계를 구성하는 두 가지 전략인 '반복과 언어'의 문제를 중점적으로 다룹니다. '어둠을 밝힌다 enlightenment'는 의미의 '계몽'은 어두운 곳에 빛을 비춤으로써 어둠의 공포를 몰아내고 그 대상을 지배할 수 있지만, 동시에 평화로운 숲을 순식간에 태워 버리는 화마로 돌변할 수 있듯이 그 안에 약탈과 지배, 야만의 얼굴도 감추어져 있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자들에게 "계몽의 역사는 발전과 진보의 과정일 뿐만 아니라 퇴보의 역사"이기도 했습니다. 저자들에게는 계몽, 이성, 문명, 빛이 하나의 범주이고 신화, 비이성, 야만, 어둠은 또 다른 범주로 묶일 수 있는 것이지만, 빛과 어둠이 하나이듯이 신화와 계몽, 문명과 야만은 서로 다른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저자들은 "신화는 이미 계몽이었고, 계몽은 다시 신화로 돌아간다."라고 말합니다.

 

 결국, '계몽의 개념'에서 저자들은 계몽의 역사가 보여준 퇴보의 경로를 보여주며 그 과정 속에서 계몽의 진정한 의미를 회복하는 것, 즉 '계몽을 계몽하는 것'을 자신들의 전략으로 삼습니다. 그리하여 계몽 안에 들어 있는 자기모순을 밝혀내고 계몽의 과정 속에서 동일한 실패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는 항상 부정과 반성의 사유를 계속해야 한다는 것, 이것이 바로 저자들이 말하는 '계몽의 변증법'입니다.

주체의 탄생: 오디세우스의 경우

신화에서 계몽으로: 주체의 탄생

권용선의 책 <이성은 신화다, 계몽의 변증법> 3장 '오디세우스, 주체의 탄생'은 <계몽의 변증법>의 '계몽의 개념'에 대한 첫 번째 부연설명입니다. 저자들은 여기서 호머의 서사시 <오디세이>를 통해 신화 속에도 계몽은 존재하며, 주체는 신화의 세계를 탈출함으로써 탄생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트로이 전쟁을 끝낸 오디세우스가  천신만고 끝에 귀향하는 과정을 다룬 <오디세이>에서는 오디세우스의 귀향을 방해하는 칼립소, 키클롭스, 스킬라, 사이렌 등의 괴물과 신들이 등장하는데 이들은 신의 형상을 한 자연에 다름 아닙니다. 그리고 오디세우스가 자신의 지식과 책략을 통해 이들 신들과 싸워 이기고 귀향하는 과정은 무한히 허약한 인간이 이성적인 '자아'를 형성하며 서서히 탈자연화, 탈신화화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계몽의 과정입니다. 아도르노와 호르크하이머가 <오디세이>라는 문학적 텍스트를 분석하여 자신들의 철학적 근거를 제시하는 방식은 매우 이채롭고 매력적입니다.

계몽의 마녀, 줄리엣

계몽에서 신화로: 계몽의 타락

4장 '줄리엣, 계몽의 마녀'는 '계몽의 개념'의 두 번째 부연설명 '줄리엣 또는 계몽과 도덕'과 관련된 글입니다. '오디세우스, 주체의 탄생'이 이성적 자아가 어떻게 신화에서 탈출해 계몽으로 나아가는 지를 보여줬다면 4장 '줄리엣, 계몽의 마녀'는 그 계몽된 이성이 어떻게 다시 신화로 떠어지는 지를 보여줍니다. 이 과정을 칸트의 계몽 개념에 내포된 개별적 차이를 무화시키는 보편적 자아와 특수자로서의 자기 유지의 성격이 칸트의 원래 의도와 상관없이 단순히 계산하고 계획하는 도구로 전락하고 그 과정에서 사유는 의미를 포기해 버리는 과정으로 설명합니다. 저자들은 사드 백작의 소설 <줄리엣의 역사>를 통해 계몽된 이성이 감성의 부분까지도 철저하게 체계화시킴으로써 어떻게 다시 이성이 신화의 세계로 추락하는 지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철저하게 계몽된 이성과 그것의 도구적 활용에 대해.

 

계몽과 문화산업, 파시즘

5장 '계몽, 문화라는 옷을 입다'는 <계몽의 변증법>에 실린 <문화산업:대중 기만으로서의 계몽>을 다루는 부분입니다. 저자들은 여기서 대중들이 어떻게 문화산업에 감염되어 비판적 사유의 힘을 잃어버리고 갈등 없이 파시즘의 체계로 편입되는지, 문화산업의 이데올로기에 의해 사물화된 이성이 어떻게 반성적 기능을 상실하는지, 문화산업이 '문화'를 상품화하는 과정을 통해 어떻게 대중들을 수동적으로 만들어 가는지를 보여줍니다. 저자들이 대중문화의 이념적 성격만 지나치게 부각하고 대중문화의 자발성이나 성장 가능성을 무시한 측면은 아쉽지만 대중문화의 몰가치성과 획일성에 대한 저자들의 비판은 여전히 유효합니다.

파시즘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6장 '파시즘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는 <계몽의 변증법>에서 '반유대주의적 요소들:계몽의 한계' 부분에서 다룬 반유대주의의 문제를 파시즘의 지배전략의 문제 차원에서 다룹니다. 파시즘을 사유의 능력을 상실한 이성이 약자를 지배하는 체계로 본다면, 남성 우월적 권력에 항의하는 페미니스트, 외국인 노동자 및 이민자, 성소수자 등과 관련하여 '특수자'와 '차이'를 문제 삼는 우리의 '파시즘적 문화구조'에 대한 비판으로도 읽을 수 있습니다.

 

이 책의 좋은 점

권용선의 책을 읽으며 제가 좋았던 점 몇 가지를 말씀드린다면,

우선 모든 철학은 그 시대의 자식이기에 그 철학을 탄생시킨 시대적 배경을 먼저 알아보는 것이 <계몽의 변증법>을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됩니다. 이 점에서 저자가 1장에서 <계몽의 변증법>의 두 저자, 호르크하이머와 아도르노의 간략한 전기를 제시한 것은 참 유익한 발상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더욱이 저자는 두 사람의 전기를 작가적 상상력을 가미하여 호르크하이머와 아도르노 자신이 독자들에게 자신들을 소개하는 가상의 자서전 형식으로 서술하고 있음이 매우 흥미롭고 유익합니다.

 두 번째, 기본적으로 원저인 <계몽의 변증법>의 원래 형식을 따르면서도 어렵고 난해한 원저의 문체와 설명방식을 뛰어넘은 부분이 좋았습니다. 이는 '리라이팅'이라는 기획 취지에도 부합하는 것이고, 번역문의 껄끄러움을 피하는 방법이기도 하고, 독자들의 가독성을 높여주는 일이기도 합니다.

세 번째, 저자가 '계몽'이나 '변증법', '이디오진크러시 Idiosyncrasie' 등 어려운 철학용어나 심리학 용어를 풀이해주는 친절한 설명이 돋보였습니다. 그리고 이런 개념들을 소개하기 위해 사용한 비유나 우화 등도 적절한 것이었습니다. 이런 저자의 친절함과 명료함이 제가 이 책의 끝까지 달려가 볼 수 있었던 가장 큰 요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호르크하이머와 아도르노의 <계몽의 변증법>은 쉽게 읽히는 책은 아닙니다. 그리고 그 해설서인 권용선의 책 <이성은 신화다, 계몽의 변증법> 역시 저자의 친절함, 배려심에도 불구하고 원저의 불편함을 완전히 덜어주지는 못합니다. 하지만 <계몽의 변증법>이 제기한 문제의식과 고민, 그리고 그 고민의 결과로 나온 이성과 계몽에 대한 철저한 비판의식과 반성적 사유의 필요성은 <계몽의 변증법>이 나온 지 70여 년이 흐른 지금에도 여전히 유효합니다.

 

e******e 2022.07.19.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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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몽이라는 이성의 반작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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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더니즘 시대의 불확실성과 병폐가 탄생시킨 산물인 포스트 모더니즘. “이성은 신화다, 계몽의 변증법”은 포스트모더니즘의 중추적인 역할을 했던 프랑크푸르트 학파의 본산인 사회연구소 출신인 호르크하이머와 아도르노의 사상을 해설한 책이다.유럽을 공포로 몰아넣었던 세계 2차 대전, 이 중심에는 아돌프 히틀러와 이탈리아의 무솔리니의 나치즘과 파시즘과 같은 전체주의가 있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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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더니즘 시대의 불확실성과 병폐가 탄생시킨 산물인 포스트 모더니즘. “이성은 신화다, 계몽의 변증법”은 포스트모더니즘의 중추적인 역할을 했던 프랑크푸르트 학파의 본산인 사회연구소 출신인 호르크하이머와 아도르노의 사상을 해설한 책이다.


유럽을 공포로 몰아넣었던 세계 2차 대전, 이 중심에는 아돌프 히틀러와 이탈리아의 무솔리니의 나치즘과 파시즘과 같은 전체주의가 있었다.


호르크하이머와 아도르노는 전체주의가 발생한 이유가 이성 중심의 계몽에 있다고 생각했고 정반합에 따라 세계는 진보한다는 헤겔의 변증법과는 달리 세상은 이성으로 인해 퇴보한다고 봤다. 이는 이성이 모든 것이 우선한다는 자만심으로부터 비롯되면 이것이 사상의 획일성, 배타성, 야만성을 다시 만들어 내고 이것이 사고의 획일성으로 세계를 지배하는 전체주의가 탄생하게 된다고 본 것 같다. 따라서 이런 퇴보를 탈피하는 것은 다름을 인정하지 않고 이성의 범주에 강압적으로 편입시키지 않는 다양성 및 다원성을 인정해야 한다고 봤다.

 

이를 해설하기 위해 오딧세우스 신화와 사드의 "줄리엣의역사-악덕의 승리"를 사용했다.


이들은 2차 대전의 화마를 피해 미국으로 옮긴 후에 미국에서 전제주의 씨앗을 발견했다고 생각했고 이는 미국 사회에 만연해 있는 대중문화가 사람들의 생각을 획일화하고 이는 또 다른 전제주의의 씨앗을 될 수 있다고 봤고 인스턴스처럼 빠르게 만들고 확산되는 대중문화에 대해 혐오증에 가까운 증상까지 보였다. 이런 혐오증에 대해 저자는 부정적인 입장을 여러 군데에서 표명하지만, 개인적으로 대중문화가 지배한 사회는 아무리 고급 문화라고 하더라도 고급 문화로서 가치가 떨어진다고 생각한다.


포스트 모더니즘 책들은 대부분 어렵게 쓰여져서 제대로 읽기 어렵다고 한다. 혹자는 포스트 모더니즘 자체가 다양성을 인정하기 때문에 하나의 텍스트로 여러 가지로 해석하는 것 또한 긍정한다. 이런 형식화된 해석이나 정의를 부정하는 포스트 모더니즘은 전체주의 영향으로 현재 유럽의 다원주의를 뿌리는 내리는데 많은 영향을 미친 듯 하다.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이성이 아닌 이성 이상의 무엇인가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이 사상. 과연 현재의 유럽이나 미국을 정말 다양성을 인정하는 사회를 만들었을까?


충성심, 가족애와 같은 사회적인 통념을 해체함으로써 얻어지는 것들이 이를 유지함으로써 얻어지는 그 무엇보다 더 좋은 것일까?


대중문화가 대중의 생각을 획일화하는데 쓰인다는 것에 동감하지만, 이를 예전에 계몽을 숭상하던 이들만 획일화에 사용할까?


과연 포스트 모더니즘는 사회를 진보시켰나?


포스트모더니즘은 탈이성화를 통해 전체주의를 탈피하려 했지만, 포스트모더니즘이 지배하는 세상은 또 다시 전체주의적인 사회로 돌아가는 듯 하다.

 

어려운 주제임에도 불구하고 해설자는 핵심 주장을 이해하기 쉽게 쓰여졌다. 탈이성과 대중문화에 대해 관심이 있는 분들이라도 한 번쯤 읽어봐도 좋을 듯다.

 

 

 

YES마니아 : 로얄 g*****i 2018.05.02.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아도르노와 호르크하이머의 당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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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유공간 너머의 책들은 확실히 '당의정' 의 효과가 있다. 고미숙씨의 열하일기도 그랬다. 이 책 역시 마찬가지. 혹자는 이들의 책을 두고 성의없고 깊이 없는 겉핥기라고 욕을 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이들의 후배세대인 나로서는 이들 고미숙, 권용선 등 젊은 학자들의 이러한 시도가 그들로서 폼을 좀 빼고, 대중과 호흡하는 괜찮은 시도라고 생각한다. 이는 얼마 전 수유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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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유공간 너머의 책들은 확실히 '당의정' 의 효과가 있다. 고미숙씨의 열하일기도 그랬다. 이 책 역시 마찬가지. 혹자는 이들의 책을 두고 성의없고 깊이 없는 겉핥기라고 욕을 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이들의 후배세대인 나로서는 이들 고미숙, 권용선 등 젊은 학자들의 이러한 시도가 그들로서 폼을 좀 빼고, 대중과 호흡하는 괜찮은 시도라고 생각한다. 이는 얼마 전 수유공간 너머의 열린 강좌 게시판에서 '혼자 아이를 키우는 미혼모로서 마트에서 일을 마치고 달려가 공부하는 재미에 시름을 잊고 흠뻑 빠진다' 는 한 네티즌의 고백에서 이 공간의 의미를 읽고나서 생긴 느낌이었다. 이 책 '이성은 신화다, 계몽의 변증법' 은 지금 이 시대에서 보이는 대중문화, 문화산업, 또는 각종 대중예술들이 어떻게 소비자본주의의 형태로 녹아들어 소비를 촉진함으로써 그들(지배 계급)의 문화정치적 지배논리를 정당화하는 지 보여주고 있다. 아울러 내가 보고 읽은 것은 아도르노, 호르크하이머가 시대를 넘어서는 문화적 통찰력을 보여줬다는 느낌도 들었다. 그런 학자들의 생각에 나름대로 흥미를 느껴 몇 권의 책을 더 구입했다. 가볍다 깊이없다는 말은 학자가 된 뒤에나 하겠다. 나같은 대중은 좀 더 이렇게 달콤하게 씌어진 당의정이 필요한 법이다.
k******a 2004.10.21.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