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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의 정서를 가장 잘 표현하는 한 단어를 꼽자면 두말할 것 없이 '한(恨)'이 아닐까 싶다. '한'은 사전적 의미로는 '몹시 원망스럽고 억울하거나 안타깝고 슬퍼 응어리진 마음.'이라고 되어 있다. '응어리'라는 말과도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다. 왜 우리 민족은 '한'이라는 처절하고 슬픈 정서를 가지고 있는 것일까? 한국사에서 외세에 침략을 당한 회수를 900번 이상이라고 집계하는 학자들이 꽤 있을 정도로 우리는 끝없이 고난을 당해온 역사가 있기 때문이다. 이 소설 <홍염>은 1900년대 초반 나라가 힘을 잃어가고 더 이상 국민들을 지켜주지 못하던 시대, 또 하나의 '한'스러운 이야기다.
우리 역사에서 외세의 침략 횟수를 900 회 이상으로 잡는 것은 무리가 있을지언정 가만히 생각해 보면 끊임없이 침략당하고 고통받았던 것은 분명하다. 가장 큰 침략은 아무래도 일본의 임진왜란과 중국의 병자호란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근래에는 일본에 주권을 잃은 일제강점기도 있다. 그 중간에는 미국, 러시아, 프랑스 등 열강에 휘둘리기도 했고, 광복 이후에는 결국 그 힘 싸움에 한국전쟁이라는 비극을 맞기도 하였다.
수천 년 역사에서 과연 평화로웠던 시기가 얼마나 되었을까 싶다. 나라가 침략당하고 전란이 일어나면 가장 고통받는 것은 언제나 힘없는 백성들이다. 나라가 지켜줄 힘이 없으면 한 명 한 명의 소시민들이 그 풍파를 그대로 몸에 맞는다. 그렇게 우리 민족은 억울하고 원망스럽고 슬프고 안타까운 '한'의 감정을 몸으로 체득하게 된다.
이 이야기 <홍염>은 1900년대 초 일제강점기 간도 난민들의 비참한 삶을 그리고 있는 이야기다. 여기서 간도라 함은 두만강, 압록강 너머의 지역으로 여러 가지 이유로 한반도에서 밀려나거나 이주를 하게 된 한민족이 모여 살던 지역이다. 오늘날의 조선족 거주 지역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시대적 상황상 그곳에서도 주로 중국인 지주들에게 소작농을 치면서 갖은 수탈과 고초를 당하면서 아등바등 살아가던 시절의 이야기다.
입에 풀칠도 못하고 살아가던 문 서방은 좀 더 나은 삶이 있을까 싶어 서간도로 넘어간다. 서간도는 압록강 너머의 지역을 말한다. 본문에 '남부여대'라는 표현이 있는데, '남자는 짐을 등에 지고, 여자는 짐을 머리에 인다'라는 표현으로 힘없고 가난한 사람들이 바리바리 보따리 짐을 이고 지고 살아보겠다고 떠도는 모습을 표현하고 있다. 당시 이들의 삶이 얼마나 비참하고 절실했는지 잘 보여주고 있다.
이렇게 딸 하나를 데리고 부부는 간도로 넘어가 정착을 해보고자 한다. 그런데 그곳의 삶도 녹록지 않다. 결국에는 소작농의 처지를 벗어날 길이 없다. 게다가 그곳에서는 땅 주인이 중국인이니 더 인정사정이 없다. 어디 호소할 곳도 없고 지켜줄 사람도 없다. 그저 힘없고 돈 없이 당하는 수밖에 없다. 그러다 사달이 나는데 땅주인 눈에 문서방의 딸 '룡네'가 들어온 것이다. 중국인 지주 '인가'는 빚을 못 갚으면 딸을 데려가겠다고 막무가내이다. 그런데 막을 방법이 없다. 힘이 없다.
이렇게 금쪽같은 딸을 빼았기고, 문서방의 아내는 울분을 못 이겨 몸 져 눕는다. 한이 맺힌다. 문 서방은 딸을 좀 보여달라고, 엄마가 죽기 전에 얼굴이라도 보게 해 달라고 4번을 찾아갔으나 매번 얼굴도 보지 못하고 돌아온다. 빼앗긴 딸 얼굴을 보는 것도 비굴하고 부탁을 해야 하지만 그마저도 들어주지를 않는다. 힘없고 돈 없는 문 서방은 어디에 호소할 데도 도움을 구할 데도 없다.
그러다 결국 문서방의 아내는 딸의 이름을 목놓아 부르다 피를 토하고 세상을 떠난다. 문 서방은 한과 설움, 울분이 터져 나온다. 그리고 결국 쌓이고 쌓인 한을 풀로 도끼를 들고 인가의 집에 불을 놓는다. 딸을 구하기 위한 야밤의 활극이 시작된다. 결국 인가의 이마에 도끼를 꽂고 딸을 구해내지만, 이 부녀의 운명은 이미 정해진 것이나 다름없다. 여전히 지켜줄 번듯한 나라도 호소할 곳도 없다.
그 불안한 상황에서 문 서방은 묘한 해방감과 기쁨을 느낀다. 억압받고 매 맞고 빼앗기고 설움을 당하기만 했던 연약한 인생에서 모든 것을 불살라버리고 처치해 버린 자기 자신의 행동이 대견하다고 느껴진다.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활활 타오르는 붉은 불길 같은 기쁨을 느낀다.
참 안쓰럽고 안타까운 이야기다. 그런데 가상의 이야기가 아니라 불과 100여 년 전에 우리의 조상들이 숱하게 겪은 일이라고 생각하니 참 어이가 없다. 나라가 힘을 가져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나라를 위해서가 아니라 그 나라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위해 힘이 필요하다.
실제로 이 이야기의 작가인 최서해는 보통학교 5학년을 중퇴하고 어렵게 살아가다 17세에 어머니와 함게 간도로 넘어갔다고 한다. 이야기 속의 룡네의 나이와 같다. 그리고 간도에서 안 해본 것 없이 비참한 삶을 살았다고 전해진다. 최서해의 또 다른 작품인 <탈출기>에도 <홍염>과 같이 고국을 등지고 간도로 살 길을 찾아 나섰던 빈농의 현실을 생생하게 표현하고 있다.
최서해 자신도 가난과 병으로 31세의 젊은 나이에 요절하고 말았다. 그래서 그런지 <홍염> 속 한국인들의 모습이 처절하고 생생하게 묘사되어 있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말이 있다. 한 번쯤 꼭 읽어봐야 할 이야기라고 생각된다. 다시는 스스로를 지키지 못하도록 힘없는 나라가 되어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을 절실하게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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