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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콕토(Jean Cocteau)는 프랑스 파리 출신의 시인이자 소설가, 극작가, 평론가, 영화감독 등 다양한 면에 천부적 재능을 지닌 팔방미인이다. 이 작품은 그런 그가 쥘 베른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80일 간의 세계일주』의 경로를 그대로 따라 여행을 하면서 쓴 일종의 박물 유람기 성격의 글이다. 그는 로마에서 시작해 브린디시, 아테네, 카이로, 아덴, 봄베이, 캘커타, 랑군, 쿠알라룸푸르, 싱가포르, 홍콩, 상하이, 도쿄, 호놀룰루를 거쳐, 미국 샌프란시스코, 뉴욕에서 프랑스 파리로 되돌아오는, 그야말로 세계를 가로지르는 80일 동안의 생생한 여정의 기록이다. 그는 이 여행에 대해 ‘자진하여 혼수상태와도 같은 깊은 잠에 틀어박혀 있던 내게 하나의 계기, 해결의 실마리가 되어주었다.’고 말하고 있다. 대중은 친숙한 볼거리를 좋아하지만 시인은 새로운 것을 보고 싶어한다. 여행자들은 이미지를 통해 익히 알고 있는 것을 향해 달려가지만 우리 시인들은 미지의 것들에 대해, 지금까지 어디에서도 보지 못한 것에 이끌리는 법이다. (35쪽) 그의 말대로라면 난 시인은 아니지만, 잘 알지 못하는 새로운 것들, 일상을 벗어나는 자유 등 이런 것들을 위한 것이 여행의 묘미라고 생각하는 편이니 시인 쪽에 슬그머니 편승해 볼까나. 그는 독자들에게 자신의 여행 방식을 추천한다. 일단 여행지의 사물과 더불어 지내라. 그 사물들에 시선을 던지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내 경우에는 그런 것들을 자세히 들여다보는 법이 없다. 그저 사진을 찍듯 그냥 쳐다보는 것으로 그만이다. 내 머릿속 암실은 그런 영상으로 마구 어지러져 있고, 집에 돌아온 후에야 필름을 현상하듯 하나하나 떠올려보는 것이다. (36쪽) 참고로 그의 여행 방식을 따라하기엔 무리가 있을 수 있다. 그는 소위 팔방미인의 천재에 가까운 사람이다. ‘내 머릿속 지우개’가 있는 나 같은 사람들은 이렇게 했다간 머릿속이 영원히 뒤죽박죽 될지도 모른다. 여행자들이 절대로 말해주지 않는 것이 있다. 아니, 어쩌면 더러 얘기를 해주기도 하지만 우리가 직접 체험해야만 알 수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건 바로 아름다움을 어떤 방법으로 발견할 수 있는지, 또 그 아름다움이 정확히 어디에 자리잡고 있는지에 대한 의문이다. (65쪽) 아마도 아름다움의 기준은 다분히 주관적이기 때문에 같은 여행지라 하더라도 저마다 느끼는 감흥과 아름다움은 모두 다를 것이다. 또 같은 사람이라 할 지라도 자신이 현재 처한 상황이나 기분에 따라 혹은 거리에서 여행 중에 만나는 사람들에 의해서도 쉽게 달라질 수 있다. 그러니 여행은 현재의 기술일 뿐이다. 그는 스핑크스를 보러 낙타에 올라 이집트 사막을 여행하면서 ‘굽이치는 사막과 잔해가 모두 우리 발 밑에 있다. 낙타는 이 땅을 닮아서 등이 그렇게 굽었나보다.’라고 한다. 그리곤 사막의 밤 풍경에 취해 ‘나는 몸서리를 치며 눈송이 같은 별빛을 털어냈다.’고 묘사한다. 역시 단순한 여행기라기 보다는 곳곳에서 그의 시인다운 면모가 드러난다. 그는 여행자로써 상당히 소탈한 면모를 가진 것 같다. 중국에서 그곳의 정서에 따라 인력꾼들과 함께 하면서 그들의 집이나 길거리에서 끼니를 때운 추억에 대해 자신에게 멋과 사치를 맛본 기억으로 남았다고 했다. 중국은 가난하면 가난할수록 더욱더 부유하다. 중국 철학은 지혜를 보전한다는 ‘철학자의 돌’을 지니고 있다. 중국인들은 그 돌을 더럽히는 것이 아니라 거기에 고색창연한 빛을 더한다. (139쪽) 홍콩에 대한 인상은 이렇게 묘사한다. 홍콩은 한 마리 용이다. 용은 꿈틀꿈틀 물결치고 도약하고 기어다니며 곁길과 시장골목, 막다른 골목과 수직으로 깎아지른 계단이 비죽비죽 솟아나 있는 거리를 제 몸으로 뚤뚤 감고 있다. 그리고 그 모든 길가와 거리, 골목, 막다른 길, 계단마다 종교적 행차가 납시기를 기다리기라도 하는 듯한 엄숙한 분위기가 감돈다. (210쪽) 일본에 도착한 그는 여기저기서 발견되는 동그란 원에서 일본의 정신을 엿보기도 한다. 그 아이가 동그라미를 그리면서 보여준 근면함과 인내, 자신의 눈과 손에 대한 확고한 믿음, 그 간결함과 단아함은 일본의 정신 그 자체였다. (248쪽) 그는 동양의 정신과 미덕이야말로 시인의 미덕과 상통하는 진정한 성스러움의 경지에 이른다고 말하면서 유럽의 진부함과 상투성을 비판한다. 그러나 그는 다시 여행을 마치고 그 진부함이 가득한 유럽의 일부인 파리로 돌아간다. 그의 여행은 쥘 베른의 소설처럼 딱 80일이 걸렸다. 물론 80일간의 세계일주의 주인공 필리어스 포그처럼 내기에서 승리한 것도 아름다운 아내를 얻은 것도 아니지만 80일간에 걸친 그의 여정을 독자로써 함께 따라가는 것도 괜찮은 일이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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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실 처음 이 책의 소개를 인터넷 서점에서 본 순간 꼭 봐야겠다고 다짐을 했었다. 그 즈음 여행을 가려고 준비 중이었고, 여행기를, 그것도 장 콕토같은 사람이 쓴 여행기를 읽고 떠난다면 더 멋질 거란 생각을 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결국 여행을 다녀온 뒤 한참 후에야 책을 읽게 되었다. 이 책은 80일간의 세계 일주의 저자인 쥘 베른의 탄생 100주년을 맞아서 프랑스의 모 잡지에 장 콕토와 그의 친구(당시 연인)인 마르셀 킬이 그 루트를 똑같이 돌아보자는 것으로 아이디어를 내서 여행을 하게 된 기록이다. 장 콕토도 고백하고 있지만, 처음에는 멋질 것 같았던 여행이었는데, 책에서와 비슷한 교통수단을 이용하다 보니 거의 주마간산 격의 여행이 되었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사실 내가 기대했던 낭만적이고 아름다운, 시인의 여행기와는 거리가 멀었다. 어느 장소에는 잠시밖에 머무르지 못해서 별다른 내용이 없는 부분도 많았고, 기껏 머물러서 가는 곳이 아편굴이 대부분인지라 이게 뭐하는 짓인가 싶기도 했다. 당시 콕토가 아편 중독이 좀 심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래도 그에게 인상적으로 남은 장면들은 상당히 멋지게 묘사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인상깊었던 것은 찰리 채플린과의 만남이었다. 콕토도 이 부분은 정말 희열을 느끼며 글을 썼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열광적인 면이 보이는 것 같다. 두 사람이 여행중에 우연히 만나게 되었는데, 서로 이전부터 너무 만나보고 싶었던 친구인지라 언어의 장벽에도 불구하고 상당히 교감하게 되었던 것 같다. 세기의 두 인물의 만남인지라 같이 흥분하면서 읽게 되었다. 콕토는 여행을 시작하기 전에 본 80일간의 세계 일주 연극을 자주 거론하고 있다. 역시 극작가인지라 그런 쪽으로 많이 보이는 것 같다. 독특한 여행기였던 것 같다. 각각의 여행지에 대한 자세한 설명같은 것은 없지만, 그의 여정과 그가 느낀 분위기를 충분히 묘사해 주고 있었다. 여행기의 내용보다는 콕토라는 인물의 글쓰기로서 보는 것이 더 좋을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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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콕토의 다시 떠난 80일간의 세계일주 장 콕토, 난 그에 대해 전해 모른다. 아니 몰랐다. 그러나 이 책을 어느 신문기사에서 발견하면서 그에 대해 관심을 갖고 찾아보았다. 조금씩 알아가면서 그의 매력에 빠져들었다. 또 하나, 2년 전 사두었던 그의 책을 꺼내 들었다. <장 콕토의 다시 떠난 80일간의 세계 일주>. 제목처럼 쥘 베른이 얼른 생각이 났었다. 그러나 글을 읽어보고 내심 서운한 감정을 감출 수가 없었다. 왜일까? 쥘 베른의 책인 줄 알고 샀던 나의 잘못이었다. 집에 와 확인해 보니 전혀 다른 사람이었다. 이렇게 한 권의 책이 무성의한 관찰 때문에 늘었는가 싶었지만 그대로 두었다. 그리고 2년이 흐른 것이다. 요셉서 옥에서 잊힌 채로 만 이 년을 보낸다. 가득 찬 2년이 흐른 후 바로는 악몽을 꾸게 되고 술을 맡았던 관리를 의도적 망각의 존재인 요셉을 기억해내게 된다. 사람에게는 잊혔지만 하나님께는 잊힌 존재일 수 없었던 요셉은 다시 세상에 드러나고, 역사의 축을 돌리고 만다. 이 책도 나의 사유의 축을 돌리지는 못했지만 분면 심각한 도전은 주었다. 여행이란 의미를 새롭게 부여한 존재이기에. 쥘 베른이 살았던 19세기 중반은 과학의 발전이 비약적으로 이루어진 시기다. 14세기부터 시작된 르네상스 운동과 계몽주의는 '근대'라는 이름으로 꽃을 피운다. 18세기까지는 씨가 움트고 줄기나 세차게 솟아오르는 시기이다. 19세기가 열리자 그동안 응축된 지식이 폭발적으로 응용되어 새로운 시대가 열린다. 아직 미숙하기는 하지만 자연에 의존하던 기존의 패러다임을 탈피하여 기계와 화석 에너지로의 전환이 서서히 일어나기 시작한다. 바로 그 즈음 쥘 베른은 프랑스 서쪽의 항구 도시 낭트에서 태어난다. 쥘 베른의 탄생과 그의 소설은 깊은 연관이 있다. 계몽주의와 합리주의, 시민정신의 포문을 열었던 프랑스라는 나라, 비록 영국에게는 뒤지기는 했지만 과학문명이 가장 빠르게 진행되었던 나라, 그리고 낭트라는 항구는 새로운 문물과 소식이 들어오는 최고의 관문이었던 것이다. 모험심이 유난히 강했던 쥘 베른은 <로빈스 크루스>와 같은 모험소설을 즐겨 읽었고, 자신도 그런 모험을 하리라는 다부진 꿈을 갖고 있었다. 변호사가 되라는 아버지의 권면을 무시고 그는 작가가 된다. <기구를 타고 5주일>, <달나라 탐험>, <해저 2만 리> <땅 속 여행> <2년간의 휴가> 등을 발표하면서 경이로운 탄성을 자나내게 했고, 많은 인기를 누리게 된다. 마지막 생애는 조금 슬프다. 1889년 3월, 조카가 쏜 총에 다리를 맞아 삶은 내리막길을 걷게 되고, 부인이며 자신의 적극적인 후원자였던 에첼이 갑자기 세상을 뜨게 된다. 크게 상심한 쥘 베른은 우울한 시간을 보내다 1905년 3월 25일 당뇨로 쓰러져 다시는 일어나지 못한다. 쥘 베른을 동경했던 장콕토. 어느 날 그는 쥘 베른이 <80일간의 세계일주>에서 여행했던 지역을 그대로 걸어보기로 작정한다. 사랑하는 친구 마르셀 킬과 함께. "지금부터 킬을 파스파르투라고 부르겠다. 맨 처음 이 세계 일주를 생각한 사람도 그였다. 쥘 베른 탄생 백주년을 축하하는 의미에서 소설 속 주인공의 여정을 따라가며 80일간 느긋하게 돌아다녀보자는 생각에서셨다." 1928년 3월 29일, 그러니까 쥘 베른이 탄생한 꼭 백년이 되던 해 장콕토는 여행을 떠난다. "드리어 우리는 여행길에 올랐다. 더 이상은 프랑스어를 쓸 수 없고 의사를 표현하려면 간단한 음절로 된 말이나 몸짓에 의존하는 수밖에 없다." 21쪽 여행이 주는 묘미는 바로 언어다. 소리의 언어는 지역과 문화라는 범주 안에 머문다. 여행은 범주를 넘어서 언어의 장벽을 건너뛰어야 한다. 그러나 소통해야하는 불가피성을 요구한다. 언어가 통하지 않아도 소통해야하는 수단은 바로 '몸짓'이다. 장콕토는 찰리 채플린과의 만남에서 이렇게 이야기 한다. “나는 영어를 못하고 채플린은 프랑스어를 알지 못했다. 하지만 우리가 서로 대화를 나누는 데는 아무 문제가 되지 않았다. 어떻게 대화가 계속될 수 있었을까? 우리는 무슨 언어로 이야기를 나누었던 걸까? 아마도 그 언어야말로 존재하는 모든 언어들 가운데 가장 생생한 언어이리라. 어떻게 해서든 상대의 말을 알아듣고 내 말을 이해시키겠다는 의지에서 태어나는 그 언어는 몸짓의 언어, 시인의 언어, 마음의 언어이다.” 226쪽 언어는 소통의 수단이다. 그러나 불현듯 언어가 장벽이 되었다. 저자거리의 언어와 대궐의 언어가 다르고, 일본 사람의 언어와 중국 사람의 언어가 다르다. 언어는 구분을 넘어 차별을 만들기도 한다. 필리핀에서는 따갈로그를 쓰면 하층민이고 영어를-그것도 올바른 영어를 사용하면 학자와 같은 일류 시민에 속한다. 곁에서 듣던 폴레트에게 통역을 부탁하지 의미심장한 말을 준다. “내가 중간에서 말을 옮기다 보면 사소한 것들에 신경을 쓰게 될걸요. 내버려두면 진짜 중요한 것들을 알아들을 거예요.” 맞는 말이다. 실제로 우리의 언어생활을 성찰해보면 불필요한 수사학에 묻혀 본심을 읽으려는 마음을 잃게 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언어가 소통이 도구가 아닌 오해의 도구가 되는 전형적이 실례(實例)이다. 장콕토의 여행은 계속 된다. 마지막 다시 프랑스 집으로 돌아간다. 역자는 장콕토가 ‘80일 동안 세상을 바라본 관점은 극작가이자 연출가로서의 관점’이라고 속삭인다. 샤틀레 극장, 뱀사원에서 보았던 무대 뒤의 스태프들, 투탕카멘의 무덤에서 죽음의 극장 등을 보았던 것을 상기시킨다. 신발장사 눈에는 신발만 보이고, 옷장사 눈에는 옷만 보인다는 말은 이럴 때 쓰는 말이다. 역자는 다시 한 가지를 더해 알려주는데 장콕토의 글이 모호하다는 점이다. ‘문장 자체가 어렵다기보다는 워낙 시적인 표현과 은유가 많다보니 뭘 보고 이렇게 표현한 것일까 고개를 갸웃거린 적이 한두 번이’ 아니라고 투덜거린다. 아마도 장코토가 시인인 탓에 그러리라. 프랑스에서 장콕토는 매우 잘 알려진 작가이며 시인이다. 한국에서는 거의 팔리지 않는 작가다. 아마도 한국의 정서와는 잘 어울리지 못하는 문장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
| 이 책은 구입한 것이 아니라 딸이 빌려다 보던 책을 다시 빌려달라고 해서 읽은 책이다. 딸이 이 책을 읽는 것을 보면서, 영어공부를 할 때 읽은 적이 있는 80일간의 세계일주보다 자세한 내용이 있는 책이 아닌가 하고 생각했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장 콕토의 다시 떠난’이라는 말이 추가된 것을 알았다. 그래서 내가 알고 있던 그 유명한 80일 간의 세계일주가 상상 속 여행이었다는 것도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이 책의 저자는 프랑스 시인 장 콕토로 그는 80일 간의 세계일주가 출간된 지 63년 후인 1936년에 쥘 베른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여 상상 속 여정을 좇아가는 실제 여행을 계획했다고 하며 이 책의 내용은 환상여행을 좇는 황홀한 여정의 기록이라고 한다. 하지만 80일간의 세계일주라는 것이 그저 지구를 한 바퀴 돌았다는 점이 강조되어 세계일주라고 했다는 점을 백번 이해한다고 해도 이런 여행은 여행이 아니라 방문한 나라 수를 채우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저자조차 시간이 없어 주마간산이었다고 고백할 정도이니까. 저자가 지나간 곳이 파리, 로마, 아테네, 카이로, 봄베이, 캘커타, 랑군, 쿠알라룸푸르, 싱가포르, 홍콩, 상하이, 도쿄, 호놀룰루, 샌프란시스코, 뉴욕 등이다. 나도 여기에서 나오는 지명의 반 이상은 가보았지만 아직 세계일주의 반을 했다고는 말할 수가 없다. 그러니 그런 제목은 애교로 보아 넘길 수밖에 없겠다. 나는 여행을 무척 좋아한다. 태어나서 세계를 모두 다 가고 싶다. 그렇지만 그게 쉽지는 않다. 그리고 세계를 모두라는 말이 어려운 일이다. 2년 전 미국에서 한 달 동안 렌터카를 빌려서 여행을 할 때 많은 미국인들을 만나서 이야기한 적이 있다. 나이가 들면 캠핑카를 빌려서 여행을 다니다가 그 속에서 인생을 마감하는 것이 꿈이라는 사람도 있었다. 미국 땅도 넓은데 세계 모두 여행이라니 욕심이 큰 것이다. 그러니 80일간의 세계일주라는 말을 쓴 것도 이해할만 하다. 인도 사람들은 인생을 4기간으로 나누어 산다고 한다. 만약 80까지 산다면 20세까지는 배우고, 40세까지는 돈을 벌고, 60세까지는 인생을 정리하며, 80세까지는 거지처럼 방랑하는 것이 아닐까. 60세 이후의 방랑이라는 것을 아마도 여행과 같이 생각하면 될 것 같다. 그래서 나도 많은 여행을 다니고 싶다. 여행은 진정한 인생의 관조이니까. 지은이 장 콕토는 찰리 채플린과의 만남을 매우 길게 쓰고 있다. 말도 통하지 않는 두 사람이 대화하는 장면을 상상해 보면 매우 즐겁다. 서로 만나고 싶어 하던 사람들의 만남 그 자체가 매우 즐거운 것이다. 나의 도를 알아주는 사람이 찾아오면 그 아니 기쁘지 아니한가가 논어의 첫머리의 좋은 번역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든다. 친구가 찾아오면 기뻐하는 것이 범인의 기쁨이라면 성인의 기쁨은 나의 도를 알아주는 사람이 찾아오는 것일지도 모른다. 특히 공자는 그 당시 정치권에서 인정받지 못하였으니 더욱 그러할 것이다. 아마도 이 책은 여행기로 볼 경우에는 실망이 앞설지도 모른다. 저자가 인정한 것처럼 너무 시간을 맞추기 위해 제대로 된 여행을 하지 못해서였다. 그저 지금과 다른 시대의 여행을 느끼고 저자의 글쓰기를 즐기는 것이 더욱 좋을 것이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