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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에는 권하고 싶지 않은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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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숙함에서 멀어질수록 소설은 극과 극의 평가가 뒤따를 수밖에 없다. 그것은 아주 좋았다거나 최악이라는 지극히 단순한 말로 집약된다. 천명관의 소설 <고래>가 그랬고, 김영하의 소설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가 그랬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그들이 낯섦에 대한 부정적인 편견을 이겨내고 대한민국의 중견작가로 성장했다는 점일 것이다. 소설가 배수아는 이들과 비교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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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숙함에서 멀어질수록 소설은 극과 극의 평가가 뒤따를 수밖에 없다. 그것은 아주 좋았다거나 최악이라는 지극히 단순한 말로 집약된다. 천명관의 소설 <고래>가 그랬고, 김영하의 소설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가 그랬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그들이 낯섦에 대한 부정적인 편견을 이겨내고 대한민국의 중견작가로 성장했다는 점일 것이다. 소설가 배수아는 이들과 비교하여 상당히 다른 길을 걷고 있다. 세상에 들고 나온 그녀의 첫소설이 비록 낯설고 파격적인 것이었지만. 그러나 그녀는 지금 유행하는 소설의 형태가 어떻든 간에 오직 자신만의 색깔을 고집하며 소설을 쓰고 있는 몇 안 되는 작가 중 한 명으로 남아 있다. 고집스럽게도 말이다. 파격적인 소설로 떠들썩하게 등장했던 대다수 작가들이 어느 순간 자신의 색깔을 잃고 그들과 동화되었던 점을 감안할 때 그녀는 분명 특이한 작가라고 말할 수 있다.

 

<일요일 스키야키 식당>은 우리가 알고 있는 소설의 일반적인 형식이나 구성에서 상당히 떨어져 있는 작품이다. 그것은 어쩌면 낯섦에 대한 이질감이 아니라 동일성에 대한 놀람으로 읽힌다. 예컨대 거울을 자주 보지 않던 사람이 거울 속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고 화들짝 놀라는 것처럼 말이다. 우리가 읽는 소설은 어느 정도 미화하고, 가지런히 정돈하고, 적당히 가지치기를 하여 실제 우리가 사는 모습에서 상당히 순화되어 있다. 그러나 이 소설은 그렇게 하지 않는다. 찌질한 모습 그대로, 한숨이 터져 나올 것 같은 그 느낌 그대로를 기록한다. 그것은 불편함이다. 객관화한 '나'를 대하는 건 얼마나 불편한 일인가.

 

"돈경숙의 말이 틀리지는 않았다. 그녀의 젖가슴이 낡아서 너덜너덜 해어진 면 속옷 아래 비좁게 들어앉은 것이 보였다. 축 처진 아랫배의 살덩어리와 거기에 반해서 무서울 정도로 단단하고 탄력있어 보이는 불그스름한 허벅지가 속치마 아래로 언뜻언뜻했다. 그녀의 종아리는 그 몸매에 어울리지 않게 짧고 가느다래서 우스꽝스러운 불균형을 이루고 있었다."    (p.8) 

 

그렇게 시작된 소설은 줄곧 가난과 빈곤, 탐욕과 일탈의 그렇고 그런 모습을 비춘다. 어둠과 불안이 잠식된 존재의 구차하지만 질긴 삶을 묘사하기 위해 작가는 이 책에서 ‘빈곤’을 주제로 한 무려 17개의 길고 짧은 에피소드를 연작소설의 형태로 그려내고 있다. 사건의 전개와 등장인물간 관계에 있어 이렇다할 연관성이 없이 독립되어 보이지만, 부암동 허름한 골목길의 스키야키 식당 주변에 모여 살고 있는 인물들이 가난에 찌든 채 비루한 삶을 이어가고 있는 모습을 다양하게 보여주고 있다. 그 속엔 유식한 밥버러지(마), 허울 좋은 지식인(백두연, 음명애, 우균, 김요환), 돈을 절대가치로 삼는 가엾은 영혼(돈경숙, 표현정), 의식 없이 매일매일을 소비하는 아이들(세원, 털 모델)이 있다.

 

"죄는 부모자식 됨에서 근원 되는 것이죠. 남자가 여자의 자궁을 피할 수 없음과 마찬가지입니다. 누구도 욕망의 혐의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습니다. 세속의 사람들이 이상을 구현할 수 없는 이유도 그런 욕망 아닙니까."    (p.61)

 

작가는 자신이 하고 싶었던 말을 소설 속에 등장하는 성도의 입을 빌려 말하고 있다. ‘빈곤에 대한 보고서’를 위해 다양한 인간군상을 취재하는 성도는 가난에 대해 구체적이고 직접적이며 솔직하게 말함으로써 소설 속에서 마치 한 편의 논문을 쓰는 것처럼 그려진다. 그것은 비록 작가 자신이 독자들에게 간절히 전하고 싶은 의도된 대목이었다고 할지라도 절정을 향해 치달아야 할 소설의 끝부분에 메마르고 탁한, 이야기라기 보다는 선명한 주장이 드러나는 산문 성격의 글을 배치함으로써 독자들로 하여금 갑자기 의욕저하를 일으키도록 한다.

 

"곧 가난의 성격은 더도 덜도 아닌 굶주림의 성격입니다. 설사 끼니를 거를 정도가 아니라 해도 역시 가난은 굶주림인 것입니다. 나에게는 긍정적 의미의 가난이란 존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가난은 단순한 불편과 수치를 넘어선 어떤 것입니다. 그것은 인간을 정서적으로 지배합니다. 인간과 그 아들과 그 아들을. 그러므로 굶주린 가난의 기억밖에 가지고 잇지 않은 사람들은, 부유하던 시절의 일을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입에 빵을 처넣어주어도 역시 게걸스러워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것 말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을 테니까요...... 그렇습니다. 나, 나는 지금 너무나 괴롭기 때문에 도저히 글을 계속해서 쓸 수 없습니다."    (p.199 ~ p.200)  

 

우리가 아는 빈곤은 타인과 비교됨으로써 상대적인 것이지만 또한, 한번 그 늪에 빠지게 되면 탈출이 거의 불가능하다는 점에서 절대적인 것이다. 이 소설에서의 가난은 물질적 결핍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결핍'과 그것에 뒷덜미를 잡힌 채 살고 있는 인간군상들의 체념은 차라리 자신에 대한 방임에 가깝다. 우리 사회에서 그것은 자신의 의지로 극복되어질 수 없는, 제 몸뚱아리를 가난의 벽에 스스로 내던질 수밖에 없는 비극적 현실임을 말하고 있다. <일요일 스키야키 식당>은 일요일 한낮에 느긋이 읽을 책은 아니다.

이달의 사락 s*****l 2015.11.10. 신고 공감 7 댓글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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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곤의 그물로 세상 다시 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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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은 소설 속에 나오는 사람은 왜 이리 많을까. '돈경숙'에 기생하여 사는 전직 국립대학 교수인 '마'와 '박혜전', '백두연', '표현정', 적어도 20여명이상이 나오지만 딱 부러지게 주인공이랄 사람도 없고, 결속력이나 연결도 그리 탄탄해 보이지 않는다. 전반에 나오는 사람들이 중반 이후부터 슬며시 사라지기도 하고, 전반부에 전혀 비치지 않던 사람들이 후반부를 장식하기도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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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은 소설 속에 나오는 사람은 왜 이리 많을까. '돈경숙'에 기생하여 사는 전직 국립대학 교수인 '마'와 '박혜전', '백두연', '표현정', 적어도 20여명이상이 나오지만 딱 부러지게 주인공이랄 사람도 없고, 결속력이나 연결도 그리 탄탄해 보이지 않는다. 전반에 나오는 사람들이 중반 이후부터 슬며시 사라지기도 하고, 전반부에 전혀 비치지 않던 사람들이 후반부를 장식하기도 한다. 다만 '성도'가 후반부에서 인터뷰하는 과정과 '백두연'이 전당포로 돈 번 삼촌의 돈을 얻어내기 위해 삼촌과 대화하는 과정이 전반부와 연결한다고 할까. 탄탄한 구조도 아니다. 검은 하루와 같은 장은 혼외 정사하는 남녀가 나오지만 그들은 도대체 주인공들과 어떤 관련이 있는지 알 수 없다. 그렇다면 우리들의 일상사가 이렇게 흩어지듯 연관지어진다는 사실이나 불특정 다수인들이 사는 사회의 단면을 보여주기 위함인가. 내가 소설을 잘못 읽었나? 0. 교수 출신인 '마'가 만두를 먹고 소양이 위에 달라붙어 복통을 일으켜 입원하지만 꼼짝도 않던 소양이 교통 사고로 자동차 뒷바퀴에 치었을 때, 그토록 오랫동안 위 속에서 소화도 되지 않은 소양이 입으로 한없이 비어져 나오는 장면은 마치 미셸 뚜르니에의 작품들 '들닭', '소녀의 죽음' '튀피크'…. 그 독특한 발상들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0. 이 글은 주제가 빈곤이다. 과거에 빈곤했거나, 현재 빈곤하거나, 유전처럼 빈곤했거나. 과거에 부유했건만 지금 빈곤한 사람이거나…. 하여튼 한없이 빈곤한 사람들이 주인공이고 사건이고 구조다. 어쩌면 배수아는 미셸 푸코나 비트겐 슈타인, 레비 스트로스등과 같은 일련의 구조주의 학파들과 같이 빈곤으로 이 세상을 한 바탕 재편해 보자는 의도로 보인다. 따지고 보면 성도가 찾아다니며 빈곤을 주제로한 인터뷰는 그녀 자신인지도 모른다. 내가 너무 크게 읽었나. 0. '노용'의 살기 위해 노동하거나 돈 버는 일을 거부하며 버려지는 음식으로 연명하는 장면은 최인훈이 '서류기'에서 일본 헌병의 입을 빌려 양반의 입장을 항변하는 춘원 이광수의 '흙'의 주인공 허숭에 대비되는 김갑진의 행태와 비슷해 언듯 반갑기도 하다. '갑진은 귀족입니다. 찌그러진 일각 대문 안에서 맨발로 벽만 차고 누웠을망정 허숭이하고는 신분이 틀리단 말씀입니다. 그의 피 속에는 양반의 게으름이 흐르고 있다 이런 말씀입니다. 개화세상 만난 상놈이나 벼슬에 환장했지 양반의 자손에게는 아득한 할아버지 적부터 이에 신물이 나도록 누려온 가업이 아닙니까. 벼슬이란 그것도 양반이니 으레 찾아올 일이지 시험을 치구 한다니 천하에 그런 더러운 일이 또 어디 있어요'라고. 0. 지금도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세탁소 주인의 냉혹함, '표현정'의 '부혜린'에 대한 혹독함. 자신의 딸에게 그토록 가혹행위를 가할 수 있는 아버지, 어머니가 지금도 존재할까. 박혜전은 가정교사까지 두면서 '말리'를 10살이 되도록 학교에 보내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작가의 착오는 아닐까. 0. '예비적 서문 - 슬픈 빈곤의 사회'와 '오직 무참히 짓밟힌 인간'은 자못 엄숙한 분위기다. 예비적 서문은 논문에 버금간다. 이 글을 읽히게 하려면 전반부부터 독자를 훈련 시켜야 하지 않았을까. 전반부를 쉽게쉽게 읽던 독자들은 이 부분에 이르러 손을 털어 버릴 수도 있다. '오직 무참히…'는 그런 대로 읽어 내릴 수 있다. 적어도 이런 정도로 완화해할 것이 아닐까. 이미 그런 조짐은 '그런데, 먹을 것 좀 가지고 있어'에서부터 시작된다. 그 이전 글과 따로 이질적으로 놀고 있는 것은 아닌지. 뒤집어 말한다면 이 정도의 글을 쓰는 소설가라면 전반부가 너무 진부하거나 가벼웠다고 질타를 받아야 한다. 0. 인간이 노동으로 돈을 벌고, 돈으로 음식을 장만하고 먹고산다. 그러나 인간들은 남는 음식도 개인에게 나누어 줄줄 모른다. 조직에서 조직으로 나누어주고, 조직에 일원으로 들어가야 얻어먹을 수 있는 까다로운 사회이다. 이 사회 분배의 문제? 과연 제대로 돌아가고 개선될 여지는 있는가? 종교나 정치를 배제한 순수 민간 단체에서? 정부조직에서? 우리 모두 숙고해 보아야 할 문제이다. 0. 평생 결혼도 못하고 먹고사는 돈 버는 일에 평생을 받쳐온 대대로 사생아인 삼촌의 마지막 절규 '그는 일생동안 한국인도 뭣도 아니었다. 오직 무참히 짓밟힌 인간, 그것일 뿐'은 새로운 충격이다. 어쩌면 우리 모두 …뭣도 아니지 않은가. 최근 신세대 소설을 전혀 읽지 않았다. 내가 잘못 읽었길 기대한다. 실은 배수아의 소설을 제대로 읽자면 그녀의 소설 2, 3권 이상을 읽어보고 따져야 할 것이다. 새로운 각도로 새로운 문제 제시가 좋았다. 건필 하시길.
x*****k 2003.11.26. 신고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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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편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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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는 내내 불편하고 불쾌했다. 끝까지 읽고 '작가의 말'까지 읽었는데도 수긍할 수 없는 소설이었다. '소설'을 즐기는 편은 아니지만, 소설에서 재미와 삶을 느끼는 것을 좋아한다. 배수아의 '일요일 스키야키 식당'이 문학상을 받았다는 걸 신문에서 알게 되었다. 상이 가지는 의미를 크게 두지는 않지만 그래고 괜찮으니까 상을 받았겠지...라는 생각을 했다. 제목이 주는 신선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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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는 내내 불편하고 불쾌했다. 끝까지 읽고 '작가의 말'까지 읽었는데도 수긍할 수 없는 소설이었다. '소설'을 즐기는 편은 아니지만, 소설에서 재미와 삶을 느끼는 것을 좋아한다. 배수아의 '일요일 스키야키 식당'이 문학상을 받았다는 걸 신문에서 알게 되었다. 상이 가지는 의미를 크게 두지는 않지만 그래고 괜찮으니까 상을 받았겠지...라는 생각을 했다. 제목이 주는 신선한 느낌(제목만으로는 하루키적 감성이 느껴졌다.) 때문에 골라 읽은 책이었는데,뜻 밖에 장편이었고 그 긴 소설을 읽는 내내 불편했다. 빨리 읽고 치워야지...가 이 소설이 내게 준 전부라고 한다면 이걸 쓴 작가에게 좀 미안해야 하나? 이 작품에서는 작가가 원래 가지고 있었던 어딘지 메마른 듯하면서 퇴폐적인 매력을 찾아보기 힘들었다. 소설집 '푸른 사과가 있는 국도'를 읽었을 때 나는 이 작가가 가진 매력이 좀 섬찟하다고 생각했다. 좀처럼 한국 소설에서 다루지 않는 소재들을 가지고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솜씨가 보통이 아니다라고 느꼈다. 그리고, 그 특이한 문체며 작가의 이력때문에 늘 관심있게 지켜보는 편이었다. 그런데, 이 소설은 내가 작가의 의도를 몰라서인지 시대적 소설 흐름을 파악하지 못해서인지 몰라도 읽는 내내 역겹기까지 했다. 너무 많은 인물들이 등장하고,그 인물들은 하나같이 정상적이지 못하고 비틀려 있었고, 그런 비틀어진 인물들이 만들어내는 이야기도 마찬가지였다. 소설에서 큰 교훈을 얻자고는 생각지 않는다. 그러나, 타인의 삶을 읽어나가며 자신의 생에 대해서 조금이나마 생각하는 여유를 가질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 족할텐데 이 소설을 읽는 내내 쫓기는 듯한 초조한 기분을 떨쳐버릴 수가 없다. 이 소설이 풍기는 악취,비틀린 인물들에서 느껴지는 번들번들한 기름기.... 어쨋든 다 읽었다! 나는 이제야 이 묘한 불편함에서 빠져나올 수가 있을 거 같다.
6*****o 2003.11.29. 신고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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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기에 유쾌하지는 않으나 그래도 읽어야만 할 것 같은 소설이어서 [한국소설-일요일 스키야키 식당]
"읽기에 유쾌하지는 않으나 그래도 읽어야만 할 것 같은 소설이어서 [한국소설-일요일 스키야키 식당]" 내용보기
유쾌하지도 슬프지도 교훈적이지도 않으면서 재미는 있는 소설. 쉽게 읽힐 수 있는데 쉽게 읽어서는 안될 것 같은 소설. 그게 무엇일까 생각해 본다. 글을 읽어나가면서 끔찍하다는 느낌을 자주 받았다. 어찌 이렇게 묘사할 수가 있는가, 어찌 이렇게 지독할 수가 있는가. 그러다 보니 나는 내가 상당히 고리타분하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사람들이 이 책을 보고 이른바 새롭다고 하는 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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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쾌하지도 슬프지도 교훈적이지도 않으면서 재미는 있는 소설. 쉽게 읽힐 수 있는데 쉽게 읽어서는 안될 것 같은 소설. 그게 무엇일까 생각해 본다. 글을 읽어나가면서 끔찍하다는 느낌을 자주 받았다. 어찌 이렇게 묘사할 수가 있는가, 어찌 이렇게 지독할 수가 있는가. 그러다 보니 나는 내가 상당히 고리타분하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사람들이 이 책을 보고 이른바 새롭다고 하는 긍정적인 평가를 인정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내가 소설에 대해 지나치게 엄격한 것인가. 보통 사람이라고 보기 어려운 인물들. 보통의 삶이라고도 보기 어려운 어두운 세계. 하고자 하는 의지보다는 어쩔 수 없다는 체념으로 온통 풀어진 인물들의 삶. 내게는 정말 익숙하지 않은 세상이다. 소설이라는 게 어느 한 가지 표정으로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어서 작가마다 다양한 의식을 보여주게 마련이라고 하겠지만 나로서는 좀처럼 다가가기 쉽지 않은 작가의 작품이다. 무슨 생각을 이렇게 할 수 있단 말인가-자꾸 이 생각만 드는 탓이다.

내가 이 작가의 이런 소설을 다분히 거부하고 싶어하는 것과는 상대적으로 어떤 독자들은 내가 거북해 하는 그 이유 때문에 이 작가의 소설을 좋아할 수도 있을 것이다. 얼마나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사는 세계인가. 나는 아닌데, 내가 아니라고 하는 그것에 절대적인 가치를 두는 사람들이 내가 살고 있는 이 세상에 나와 더불어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무서우면서도 신비롭다. 나와 같은 사람은 세상 어디에도 없으며, 나와 완전히 다른 사람도 이 세상에는 있을 수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사람을, 삶을, 세상을 어떤 눈으로 바라보아야 덜 불행할 것인가. 이 소설이 보여주려는 세계가 거짓된 것으로 여겨지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마냥 진실된 모습으로 보이는 것도 아니다. 역겹고 불편하고 더럽고 견디기 어렵다는 느낌들의 연속에서 내가 생각해 보는 삶에 대한 태도는 적어도 지금의 내 삶이 이 소설 속 인물들의 삶만큼 불행하지는 않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것만으로 위로가 되지 않는 것은 또 무슨 까닭인가.

YES마니아 : 로얄 j***6 2003.08.27.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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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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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수아를 좋아하고 있지만 그가 말하는 것들을 백프로 이해할 수는 없었다. 특유의 냉소와 사회 비판적인 발언들. 무엇을 강조하고 또 무엇을 숨기려 함인지.. 나 같이 우매한 독자들을 위해 좀 더 친절한 글쓰기를 할 의향은 없는 것인지. 배수아가 말하고 있는 빈곤이란 일반적인 의미의 그것은 아닌듯 하다. 상대를 통해 내 스스로 느끼는 의식의 빈곤이나 지극히 일상적인 것들을 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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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수아를 좋아하고 있지만 그가 말하는 것들을 백프로 이해할 수는 없었다. 특유의 냉소와 사회 비판적인 발언들. 무엇을 강조하고 또 무엇을 숨기려 함인지.. 나 같이 우매한 독자들을 위해 좀 더 친절한 글쓰기를 할 의향은 없는 것인지. 배수아가 말하고 있는 빈곤이란 일반적인 의미의 그것은 아닌듯 하다. 상대를 통해 내 스스로 느끼는 의식의 빈곤이나 지극히 일상적인 것들을 갖추지 못했을 때의 그 상대적인 박탈감. 결국 배수아가 말하려 했던 빈곤이란 것의 의미는 자각하지 못하는 우리 모습의 단면이 아닐까. 여러 번 읽어봐야 할 것 같다.

[인상깊은구절]
소설에는 주인공이라는 것이 있고 그리고 그의 여정을 따라가는 것이 소설 읽기라고 일단 생각하는 독자라면, 이 책 『일요일 스키야키 식당』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실망스러운 것이 될 터이다. 유감스럽게도 그것을 위해서 내가 해줄 수 있는 일이 없다.
YES마니아 : 플래티넘 m****m 2003.09.29.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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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들이여, 집중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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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특한 제목이 책을 선택하는 중요한 이유중에 하나라는 사실도 재확인해준 소설. 전체적으로 평가를 내리자면 그리 흡족하지 못하다. 빈곤을 객체로 성능 좋은 망원경을 통해 들여다 보려 했던 의도(그 의도가 정확한 것인지조차 의심이 든다. 그 이유는 후기에서 밝혔듯이, 집중해서 써내려가 소설이 아니라, 몇년에 걸쳐 다른 작품을 써가는 사이사이 완성한, 아니 '끝을 낸' 소설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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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특한 제목이 책을 선택하는 중요한 이유중에 하나라는 사실도 재확인해준 소설. 전체적으로 평가를 내리자면 그리 흡족하지 못하다. 빈곤을 객체로 성능 좋은 망원경을 통해 들여다 보려 했던 의도(그 의도가 정확한 것인지조차 의심이 든다. 그 이유는 후기에서 밝혔듯이, 집중해서 써내려가 소설이 아니라, 몇년에 걸쳐 다른 작품을 써가는 사이사이 완성한, 아니 '끝을 낸' 소설이라는 작가의 '고백' 탓에)는 단순히 들여다 보기만 한 결과를 빚어냈을 뿐이다. 다양한 등장인물에 치인 느낌이 들 수밖에 없는 이유는 새로운 페이지를 넘길수록 선행 등자인물과의 희미한 연결선은 보이지만, 그것이 완결된 구조로서의 연결이 아니라, 한 작품 내에 묶어 두기 위한 수단으로 그치기 때문이다. 각 인물들의 묘사에 그치고 만, 이 작품은 접어두었다가 늘 새로운 기분으로 써야 하는 작가의 시간적 공백을 독자에게 그대로 전달한다. 결콘 완결적인 작품이라고 할 수 없는 소설. 따라서 부분적으로는 미덕을 발견할 수 있지만, 전체적으로 평가를 내리기에 주저할 수 없는 이 소설은....한마디로 실망. 작가들이여, 집중하시길.
d*****t 2003.12.29.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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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스키야키 식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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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협한 시각, 뒤로 갈수록 떨어지는 집중력... 어느 때인가부터 작가 이름이 신문 같은 곳에서 많이 보였다 다른 작품을 읽어보지 않았으니 작가의 작품을 두고 왈가왈부하기는 뭐하지만... 이 작품을 읽자고 선택하게 된 배경은 단지 신문에서 자주 보였던 이름 때문이었다. 전체의 주제를 빈곤이나 가난으로 잡은 것 치고는 작가의 입장으로 중립적이지 못한 위치에서 쓴 듯 해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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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협한 시각, 뒤로 갈수록 떨어지는 집중력... 어느 때인가부터 작가 이름이 신문 같은 곳에서 많이 보였다 다른 작품을 읽어보지 않았으니 작가의 작품을 두고 왈가왈부하기는 뭐하지만... 이 작품을 읽자고 선택하게 된 배경은 단지 신문에서 자주 보였던 이름 때문이었다. 전체의 주제를 빈곤이나 가난으로 잡은 것 치고는 작가의 입장으로 중립적이지 못한 위치에서 쓴 듯 해보인다. 마치 부자의 입장에서 가난한 사람들을 내려다보고 쓴 듯한 느낌이 드는 것이다. 가난한 사람들로 대변되는 한사람 한사람에 대한 말투나 행동 등의 묘사도 어울리지 않는 옷을 입은 듯하며 상투적이다. 결국 읽는 이로 하여금(특히 가난한 사람들)공감대를 형성하지 못한다면 이 작품은 실패작일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뒷쪽으로 가면서 나타나는 '서문'운운하는 것들도 갑자기 왜 끼어들게 되었는지 모르겠다 오히려 집중력을 흐트러뜨리게 하는 요소가 아닐까? 등장인물들 간에 그물처럼 얽혀 있는 관계를 보며 절묘하다고 생각했지만 장편보다는 각각의 단편으로서 존재했더라면 더 좋았을 것을 하는 생각도 들었다. 누구나 빈곤하다면 부자는 있을 수 없다. 그 경계를 어떻게 지을 것인가? 마음 속에 자신이 가난하다는 생각은 누구나 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많은 것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나는 빈곤하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을 보고 있는 정말 가난한 사람들은 박탈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가난에 대해 좀 더 심도있고 참신하게 접근했으면 좋았을 것을 그랬다.
YES마니아 : 플래티넘 o****2 2004.01.09.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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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수아, 난 그녀와 맞지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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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키야끼. 그게 뭔지는 잘모르겠다. 읽다보면, 이게 우리나라 작가가 쓴건가? 다시한번 책 표지를 보게된다. 아무리 읽어도 우리나라 분위기를 찾을수가 없다. 집중이 안될때 읽어서 그런지, 책 내용은 내 머리속에 저장되어있지않다. 등장인물도 너무 많아서 헷갈려 그런지 모른다. 전직 교수였다던 마, 그의 아들, 딸 막, 말리 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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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키야끼. 그게 뭔지는 잘모르겠다. 읽다보면, 이게 우리나라 작가가 쓴건가? 다시한번 책 표지를 보게된다. 아무리 읽어도 우리나라 분위기를 찾을수가 없다. 집중이 안될때 읽어서 그런지, 책 내용은 내 머리속에 저장되어있지않다. 등장인물도 너무 많아서 헷갈려 그런지 모른다. 전직 교수였다던 마, 그의 아들, 딸 막, 말리 막, 말리를 돌보는 가정교사 진주. 그녀의 약혼자 성도. 성도는 기자? 아님 작가? 뭐 그렇고, 가난을 반복하기 싫어서 결혼을 거부한다. 부혜린? 이름만 기억이 날뿐. 사람들이 너무 많이 나와 어수선하고, 머리속에 각인되어지는게 없다. 배수아 작품을 처음접해봤는데...정신산만 혼란 그자체다. 이런.. 한마디로, 부산스럽고 특별하지 않은데 특별해 보이려고 애쓴 것 같다. 조잡해
w*****8 2006.11.06.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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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얼리서 바라보는 빈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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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도서관 버스를 이용하기로 했다. 우리 아파트에 들르지 않으면서부터는 바로 옆 단지라도 바지런떨며 찾아가 지질 않더니만, 이젠 그나마 거기도 오질 않아 두어 차롄가는 헛걸음을 했다. 도서관에 전활해서 물어보니..저 큰길건너 단지로 온단다. 하는수없지. 목마른 이가 샘판다고 했던가. 가야겠다고 맘을 먹고도 한달이 더 지나..드디어 다녀왔다. 우리 단지에 올때만해도 일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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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도서관 버스를 이용하기로 했다. 우리 아파트에 들르지 않으면서부터는 바로 옆 단지라도 바지런떨며 찾아가 지질 않더니만, 이젠 그나마 거기도 오질 않아 두어 차롄가는 헛걸음을 했다. 도서관에 전활해서 물어보니..저 큰길건너 단지로 온단다. 하는수없지. 목마른 이가 샘판다고 했던가. 가야겠다고 맘을 먹고도 한달이 더 지나..드디어 다녀왔다. 우리 단지에 올때만해도 일주일에 10권씩을 빌려주었는데... 작은 아이가 어릴때이니. 두권 빌리고, 큰아이 몫으로 3~4권, 내 몫으로 나머질 빌려 봤었다. 이젠 일주일에 7권, 요 앞 단지에 올 때와 같다. 아이들 몫으로 각 3권씩, 내가 읽을 건 한 권 빌렸다. 사실 한 권이나마 다 읽으려나 싶기도 했다. 되도록 생각없이 진도 잘 나갈 책으로 골랐다. 바로 이책... [일요일 스키야키 식당]이다. 이 작가의 책은 살펴보니 몇권 읽었다. 단편집에 나온 것들도 더러 봐 익숙한 이름인데... 기억에 특별히 남진 않는다. 그런데 아마 이 책을 읽고 난 후론 기억에 틀림없이 남을 듯 싶다. 책은 기대했던데로 진도가 빨리 나가서 어영부영 읽고, 또 다른 일 해가며 중간중간 읽었어도 가볍게 한 권 읽을 수 있었다. 장편이라는 데 좀 낯선 구성으로 씌였다. 나로선 참 재밌었지만, 그런게 싫을 사람도 퍽 있겠다 싶다. 옴니버스 영화를 보다보면(혹은 드라마) 주인공이나, 상점, 거리, 한가지 사건을 동일하게 하고..나머지 이야기의 전개나 등장인물이 달라지는 것들이 있다. 말하자면 이 소설은 그런 구성을 갖는 장편이다. 주인공들은 일요일 스키야키 식당에 대해 알고 있거나, 들어 봤거나, 아는 사람을 알거나, 좋아하거나... 그러나 그 [일요일 스키야키 식당]은 아무런 별 비중이 없다. 작가가 쓰려고 의도했다는 빈곤에 대한 이야기가 빈곤과는 별 관계없이... 그러나 재밌다. 소설은 지극히 소설적이며, 소설적 이름을 가진 주인공이 등장하고, 소설같은 이야기만으로 가득하다. 빈곤을 드러내거나 추억하거나, 설명하는... 묘사하는 부분은 마치 부잣집 딸이 썼다는 가난에 대한 작문(옛날 영문법 책에 나온)을 떠올리게 한다.- 왜, 있었잖은가. 우리집은 가난하다. 기사도 가난하고, 가정부도 가난하고, 정원사도 가난하다. 우리집은 가난하다. 가정교사도 가난하고, 집사도 가난하다..라고 썼다는. 빨간 영어 문법책에 실렸던 - 재미와 가벼움과 유려한 문체와 신세대다운 감각... 그 모든 장점을 넘어... 그러나 나는 맘에 들지 않는다. 어쩐지 번역한 투의 문체. 마치 하루키류의 소설같은 어법, 주인공들의 말투, 흉내낸 듯한 묘사, 한국에선 전혀 살아보지 못한 채 한국의 서민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는 듯한... 남의 나라 이야기 같은, 먼~나라 이야기같은. 남의 다리 긁는 듯한,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미있는. 소설은 소설이다. 소설로 그만임을 주지시키는. 그러니까. 딱 내 입맛에 맞는 책을 잘 빌려온 셈이다. 적어도 이 주에는. 이 정도의 주제를 이 정도 이야길 끌어나갈 힘을 가지고 있음에도 어쩐지 남의 목소리를 흉내낸 듯 한것은..(작가가 들어서 억울할지 몰라도)개인적, 사회적 손실이라고 생각된다. 아니면 정말 작가의 경험은 그런식으로 축적된건가. 어쩐지... 한국적이지 않게. 그렇다면... 그런가보다 할 수 밖에.

[인상깊은구절]
"먹을 것을 위해서 이마에 땀이 번질거리도록 일하고 또 일하는 한편 다른쪽에서는 먹을 것을 단지 배가 부르다는 이유만으로 버리고 있다. 그 두 가지 세계가 원활히 연결된다면 좋을 텐데. 이건 마치 사회를 하나의 전체로 본다면, 상당한 부분, 버리기 위해서 미친 듯이 돈을 벌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중략)....살아가기 위해서 돈이 필요하다는 것은 야만적이다. 그것은 노동을 강요한다."
k***o 2003.08.30.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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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과는 또다른 세상의 참혹한 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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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 소설을 좋아하던 나는 우연히 신문에서 이라는 제목을 보고 사기로 맘 먹었다. 이전에 한번 배수아의 소설을 읽어본 적 있었던 것을 떠올리면서, 이 작가 꽤나 냉소적이었어 그런 생각을 하면서 책을 샀다. 사실 내가 책을 사게 된 계기는 배수아라는 작가보다 일요일, 그리고 스키야키라는 두 단어 때문이었다. 작가의 냉소적인 세계관을 읽히 알고 있던 터라, 이 단어가 가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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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 소설을 좋아하던 나는 우연히 신문에서 <일요일 스키야키 식당> 이라는 제목을 보고 사기로 맘 먹었다. 이전에 한번 배수아의 소설을 읽어본 적 있었던 것을 떠올리면서, 이 작가 꽤나 냉소적이었어 그런 생각을 하면서 책을 샀다. 사실 내가 책을 사게 된 계기는 배수아라는 작가보다 일요일, 그리고 스키야키라는 두 단어 때문이었다. 작가의 냉소적인 세계관을 읽히 알고 있던 터라, 이 단어가 가지는 매력만이라도 충분히 소설에 묻어난다면 좋겠다나란 생각으로, 별 생각없이 샀지만, 읽는 순간부터 나는 배수아 작가를 다시 보게 됐다. 삶의 지리멸렬한 면을 정말 지리멸렬하게 보여준 이 소설은 상처에 바르는 과산화수소수처럼 우리의 상처를 얼얼하고 화끈하게 만든다. 작가는 그리고는 이렇게 말하는 것 같다. 이런저런 상처의 사람들도 많다. 그 사람들은 어쩌면 바로 곁에 있는 사람일수도, 아니면 나 자신일 수도 있다. 자 그럼 이런 상처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상처를 치유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그 대답은 작가인 내가 아니라 이 글을 읽는 독자인 당신이 나에게 들려줘야 한다고. 이 책은 오랫동안 그 상처를 곰곰히 살펴보면서 초라한 일요일 스키야키 식당에서 먹는 우동의 그 짜릿한 순간을 내내 잊지 못하고 있는 우리의 조악한 그림자를 떨쳐버리지 못하게 만든다. 강한 소설이다.
r******7 2003.07.31.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