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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철학자 미하일 리클린과 포스트담론의 대표 철학자들과의 대담집이다. 해체와 파괴라는 책 제목이 지시하는 바 대로 저자가 현대철학에서 가장 쟁점적인 경향으로 간주한 것은 자크 데리다에 의해 주창된 해체론적 패러다임과 질 들뢰즈 및 펠릭스 가타리의 분열분석이다. 해체론은 전통 철학에 대한 하이데거의 문제의식을 심화시켰으며, ‘소수성의 철학’에 해당하는 분열분석은 ‘니체적’ 노선을 발전시키는 동시에 이를 본질적으로 변형하는 데 주력했다.
이 책에 등장하는 열 명의 철학자들은 자신의 사유를 이 두 가지 흐름 속에, 혹은 그것들과의 대결을 통한 긴장 관계 속에 위치시킨다. 데리다와 더불어 현대 해체주의의 대표자들인 장-뤽 낭시와 필립 라쿠-라바르트는 해체주의자로서 이미 자신들의 고유한 족적을 남겨 놓았다. 슬라보예 지젝은 데리다의 제자임을 자처하면서 데리다 사유의 다양한 측면들에 자신의 작업을 연관시키고 있다. 해체론에 대한 강력한 비판자들도 빼놓을 수 없다. 미국의 맑스주의자 수잔 벅-모스와 보리스 그로이스는 데리다를 ‘기호학적 전체주의’의 수장으로 비판한다.
해체의 본질은 부정이 아니라 긍정이며, 파괴가 아니라 구성이다. 데리다는 단일한 해체의 방법은 없다고 강조하면서 해체의 복수성을 부각시키고 동시에 “각자는 자신이 처해 있는 특수한 역사적정치적 이데올로기적 상황에서 해체의 고유한 방법을 발명해야 한다”고 말한다. 흥미롭게도 데리다는 프랑스에서 철학교육의 하부구조가 완전히 붕괴했다고 지적한다. 데리다의 해체론은 로고스 중심주의와 음성중심주의에 대한 비판이 유명하다.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은 로고스 중심주의에 대한 비판이 결코 ‘형이상학 죽이기’의 작업이 아니라는 것이다.
한편 니체주의자 들뢰즈의 노선과 친화성을 보이는 철학자들로는 보드리야르와 폴 비릴리오가 있다. 보드리야르는 ‘철학의 죽음’이라는 테제하에 자신의 입지를 비(非)철학적인 것이라 명기하고 있으나, 들뢰즈와 자신의 근친성을 강조하는 한편 데리다에게는 거리감을 표하고 있다. 분열분석적 노선은 보드리야르의 ‘시뮬라시옹’과 폴 비릴리오의 ‘속도의 철학’(질주학)을 통해 계속되는 한편, 해체론적 문학 운동 속에 꾸준히 자기 자리를 찾으려는 리처드 로티의 ‘실용주의’에서도 지속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