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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대의 괴물, 기업의 본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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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도 점점 현실화 되는 문제 이 책은 기업이 무엇이고, 어떤 활동을 펼치는 지를 조명한 글이다. 미국에서 페로가, 우리나라에서는 현대의 정주영이 대선후보로 나온 적이 있다. 이유야 분분하지만. 기업인이 정치의 전면에 나선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빙산의 일각에 지나지 않는다. 김용철의 책에서도 볼 수 있듯이 기업은 더 이상 과거에 우리가 생각하던 그런 기업이 아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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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도 점점 현실화 되는 문제

이 책은 기업이 무엇이고, 어떤 활동을 펼치는 지를 조명한 글이다. 미국에서 페로가, 우리나라에서는 현대의 정주영이 대선후보로 나온 적이 있다. 이유야 분분하지만. 기업인이 정치의 전면에 나선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빙산의 일각에 지나지 않는다. 김용철의 책에서도 볼 수 있듯이 기업은 더 이상 과거에 우리가 생각하던 그런 기업이 아닌 오너를 중심으로 한 철저한 이익을 추구하는 집단으로 변신하였다. 그리고 그들이 원하는 대로 사회를 통제하려 한다. 사실 우리나라처럼 대기업의 독식이 심한 나라는 별로 없을 것이다.

 

기업권력이란 기업이 개인주의를 이용하여 사회를 무력화함으로써 얻은 노골적인 권력이다.멍텅구리는 자기의 일에만 관심을 갖고 자기가 속한 공동체의 일에는 관심 없는 사람이다.

우리사회는 기업권력이 터 커지고, 멍텅구리가 더 늘어나고 있다. 개인으로서 기업권력에 맞서기 힘들고, 사회단체나 국가들 통해서 대항이 가능하다. 그러나 가장 문제는 수많은 선택권들로부터 배제시키는 왜곡된 개인주의가 판을 치고 있는 것이다. 모든 것이 자유롭다는 현대이다. 하지만, 과연 무엇이 자유로운가? 또 흔히 말하는 기업이 말하는 소비자는 왕이다. 과연 그럴까? 소비 할 때만 왕일지도, 소비자중심주의는 반 사회적이고 기업 이윤에만 도움이 된다. 기업사회에서 사람들은 소비자로서 기업을 위해 존재하고 있다. 만일 소비자가 왕이라면 그는 거지 같은 왕일 따름이다.라는 말로 대별해준다.

 

 자유란 부자가 될 수 있는 자유이다. 과거에 비해 직업선택이 자유롭지만 실제로 보람을 가져다 주는 일자리를 갖게 되는 사람은 드물다. 지루한 일자리와 실업의 공포는 우리의 목을 쬔다. 대학교 등 학교는 직업전선에 나갈 수 있도록 준비하는 곳이다. 더 이상 학문을 위해 존재하는 곳이 아니다. 기업은 표현의 자유를 갖고 개인은 말할 수 있는 것들을 제한 당하고, 개인의 외침은 공허하다. 최근 소셜미디어의 발달로 나아지고는 있지만, 아직도 개인은 작은 존재이다. 또 우리가 주주로서도, 자신들이 보유한 주식에 점점 더 의존하고, 자신의 운명과 회사의 이윤을 밀접하게 느끼게 된다. 과연 나와 회사는 어떤 관계인가? 별볼일 없는 존재 아닐까 생각된다. 우리에게 삼성이나 LG, 현대라는 기업의 이미지는 어떻게 생성되었을까? 아마 그들의 끝없는 선전에 우리가 세뇌되지 않았을까? 대기업은 과연 어떤 공헌을 사회에 하는가? 최근 대기업 오너들의 실수로 우리가 대기업에 눈을 몇 번 찌 뿌렸지만, 아직도 너무 친 기업 정서를 가진지도 모르겠다. 그들은 이익을 추구하는 집단에 지나지 않는다.

 

소비자 주권은 제한된 형태의 주권이다. 소비자와 정부나 기업의 힘의 차이와 그들은 중요한 정보를 소비자들에게 제공하지 않는다. 현재의 식품이나 상품에 붙은 라벨링의 보편화에도 엄청난 싸움과 시간이 필요했다. 엄청나게 벌어지는 과소비를 이끄는 광고와 그릇된 정보로 소비자를 현혹하고, 소비를 부추기는 경쟁적인 소비개념으로 불만족을 양산한다. 우리 또한 노동자가 아닌 소비자로서 인식함으로써 만족감을 느낀다. 사치품에 대한 욕망은 인류의 산업을 계속 유지, 활성화하기 위한 기반이다. 기업들은 부가 점점 소수의 수중으로 모이도록 조장한다. 그들만 관리하는 것이 더 편리하고, 더 이익이 높다. 기업의 전략 우리가 공장에서 만드는 것은 화장품이지만, 매장에서 파는 것은 희망이다. 무엇보다 공장에서 대량생산되는 제품이 비쌀 필요는 없다. 소위 명품이란 것의 존재는 허영인지도 모르겠다. 편리함과 만족감의 함정, 광고의 가장 커다란 힘은 아마도 불만족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우리는 끝없는 만족과 더 새로운 것 더 나은 것을 추구해야 한다. 광고는 배제, 따돌림, 방관에 대한 원초적 두려움을 먹고 사는 것이다. 남들과 같지 못하다는 생각으로 우리는 점점 기업이 원하는 획일된 모습으로 나아가고 있다. 우리는 너무 많은 광고에 노출되어 있다. 거의 잠 자는 시간을 제외하면 대부분 이런 광고들을 보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것들을 아무 생각 없이 소비하고 있다. 상품이나 기술은 우리가 원하는 방향으로 발전하지 못한다. 기업이 원하는 방식으로 발전하고, 단지 우리는 그들이 제시한 상품 중에서 선택할 권리만을 가진다.

 

노동귀족의 탄생, 노조가 개별 노동자의 권리를 침해한다는 등의 명분을 가지고 노조의 권리에 반하는 기능을 하기 시작한다. 대부분 추가고용보다는 초과근무가 회사에 이익이다. 그리기에 잔업, 추가 근무 등은 거의 필수적이다. 이제는 사람들을 스스로를 자영업자라고 생각해야 한다. 자신이 지닌 기술을 팔려고 이 회사에 오는 행상인으로 살아야 한다. 더 이상 회사는 당신을 책임져 주지 않는다. 단지 좀 수명이 긴 1회용 상품 정도로 취급되고 있지 않을까! 지금 사회는 임금상승 없는 저실업상태가 계속되고, 노동자들의 힘을 무력화시키는 무역정책과 통화정책이 주를 이룬다. 위험한 직종들이 줄어들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산업재해로 희생되는 사람들의 숫자는 많다. 취업이 화두가 되는 사회 어쩌다가 이렇게 변했는지를 차분히 생각해 볼 때 이다. 기업은 이윤을 창출하려는 집단이다. 그들에게는 순간순간이 이윤의 요소이다. 모든 것을 돈으로 본다. 또 사회적 분위기가, 일자리가 있던 없든 노동자로서의 삶이 부러움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는 점은 안타까운 일이다. 사람들은 갈수록 많은 시간을 일하게 되었지만 얻는 것은 아무것도 없게 된 것이다.

 

기업의 책임. 기업개인주의, 기업을 개인처럼 대우한다는 것, 이것은 기업의 요구사항이다. 기업범죄는 비용 편익 분석에 의해서 좌우된다. 유럽은 정부에 의해서 조정되는 공공성의 문제를 미국에서는 반드시 소송에 의존하여 막대한 자원을 낭비하고 있다. 또 기업들은 자신들의 소송비용을 대중에게 전가시키고, 자회사와 하청을 통해 피해간다. 기업은 어떤 책임과 책무를 다할까? 다국적 기업들의 등장으로 기업의 책임소재의 불명, 세계화 국가간 거래 양상 더욱 복잡해 졌다. 리스크 전가. 흔히 우리가 하는 말, 대마불사, 미국의 시티은행은 망하기에는 너무나 커다란 조직이었다. 그러기에 망하지 못했다. 리스크를 부담하는 쪽은 개인이거나 사회전체이며, 기업은 리스크로부터 이익을 얻는다. 실제 시장은 개인, 특히 가지지 못한 자들이 대부분 리스크를 부담하게 끔 작동한다. 리스크를 다른 사람들에게 전가하는 것이 기업이윤의 주된 원천이다. 이로 인해 시장에 대한 독점권 등은 도덕적 해이(모럴 헤저드)를 불러 온다. 국가는 리스크로부터 기업들만이 아니라 개인들 역시 보호할 수 있는 충분한 힘이 있다. 복지국가 개인들이 직면하는 불확실성을 전반적으로 감소시킨다. 국가가 개입하지 않으면 보험이 가장 필요한 사람들을 배제함으로써 보험회사가 본래 존재하게 된 취지를 훼손하는 것이다. 국가의 복지정책부재는 다른 새로운 비용을 만들어낸다. 그러기에 국가의 운영은 무엇보다 중요한 문제이다. 이제는 감옥도 만원이다. 과도한 투옥은 범죄를 더 많이 양산(사회비용)하는 공포의 정치학이 기승을 분리다. 과거에는 공산주의에 대한 공포, 지금은 테러와의 전쟁에 따른 정부의 군비지출 예산 증가로 예산이 줄어든 정부서비스에 대한 민영화 요구가 발생한다.

 

911과 석면 오염, 정부가 과학적 연구들에 압력, 화학산업의 안전문제와 정보공개문제, 테러위협 기업 측 편의, 규제, 식품산업과 테러리스트와 식품유통망, 과연 기업의 정보공개로 이루어진 테러는 얼마나 될까? 거의 없다. 정보의 기본적인 유통경로는 기업에 의해 장악되었다. 이해관계 언론사도 이윤 극대화를 추구하기에 기업이나 다를 바 없다. 기업형 언론사들의 변변치 못한 기능 덕분에 사람들은 고작 연예인, 스캔들, 스포츠 등에 대해서만 전문가가 된다. 복잡한 정보를 다루지 못하거나 다루기 싫어한다. 언론의 기능인 정부견제는 거의 이루어지고 있지 않다. 의회 또한 법안을 볼 기회도 갖기 힘들기에 효과적인 정부견제가 이루지지지 못한다. 정부는 정보의 간접 통제, 영업허가나 특종의 호의적 제공한다. 여기에 민간언론의 탈을 쓴 관제언론, 뉴스는 정부를 위한 공짜광고나 다름없다. 우리나라, 중앙일보는 삼성에서 떨어져 나왔고, 조선일보나 동아일보는 일제 때부터 형성된 기업언론이고, 한계레 등은 아직 이들에 힘이 미치지 못한다. 무엇보다 광고에서 독립하지 못하는 자유언론이 가능할까 생각된다. 시민구단이라는 명목보다는 시민신문이나 시민방송을 설립해야 될 때가 아닐까 생각된다.

 

점점 낮아지는 투표율과 선거참여, 이것은 정치에 대한 불신이 아니라, 권력독점 세력의 농간에 넘어간 결과이다. 선거 투표율은 보랄 것 없이 낮은 수준으로 인해 선거를 결정하는 것은 사람이 아니라 돈이 되고, 돈의 정치가 되었다. 현대 선거는 부자와 힘있는 자들의 지지 없이는 그 어느 누구도 주요공직에 나아갈 수 없다. 정치인들은 또한 기업을 선거권자로 업계를 고객으로 여기고 있다. 방송에서의 광고단가 증가와 기업후원금, 연예인과 방송인들을 이용한 공익보다는 단순한 이미지 정치와 네거티브 광고 등, 선거전문가들은 의도적으로 사람들이 선서에 더욱 환멸을 느끼게 만드는 전략을 써서 사실상의 소수의 유권자들이 그 결과를 결정짓게 만든다. 투표의 참여는 우리의 권리이자, 사회를 바로 잡는 몇 안 되는 우리의 수단이다. 적극참여하자.

 

이 책은 미국의 예로 많은 것들을 설명하고 있다. 하지만, 세계 보편적으로 기업은 이제 새로운 세력이 되어 버렸다. 그들을 견제할 수 있는 것은 국가나 시민사회이다. 물론 국민들의 참여와 의지가 가장 기본적인 문제일 것이다. 우리나라 대기업 대부분은 외국지분이 거의 50%에 육박한다. 어쩌면 더 이상 한국기업이니, 국내기업이니 하는 구분은 큰 의미가 없는 것인지도. 우리 삼성이니, 우리 현대니 하는 개념은 그들의 선전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는 좀더, 자기가 속한 공동체와 사회에 관심을 가져야 할 것 같다.

 



p*******t 2011.05.21. 신고 공감 10 댓글 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