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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뒷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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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영화를 보고나면 글을 쓰고 싶습니다. 그랜(그랑/그란)토리노도 그런 영화였습니다. 극장에서 보고 디비디가 나오면 꼭 사야지 했는데 가격도 적당해 얼른 구입해서 방학 중인 아들과 어제 보았습니다. 다시 봐도 좋았습니다. 보면 볼수록 더 좋아지는 영화가 될 것 같습니다.      앤딩 크래딧이 올라갈 때 나온 노래의 목소리가 아무래도 Clint Eastwood 같아서 집에 와 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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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좋은 영화를 보고나면 글을 쓰고 싶습니다. 그랜(그랑/그란)토리노도 그런 영화였습니다. 극장에서 보고 디비디가 나오면 꼭 사야지 했는데 가격도 적당해 얼른 구입해서 방학 중인 아들과 어제 보았습니다. 다시 봐도 좋았습니다. 보면 볼수록 더 좋아지는 영화가 될 것 같습니다.

 

   앤딩 크래딧이 올라갈 때 나온 노래의 목소리가 아무래도 Clint Eastwood 같아서 집에 와 검색해 보니 역시나 1절을 Clint Eastwood 불렀더군요. 그리고 Clint Eastwood님이 음악에 -특히 재즈- 아주 조예가 깊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자신이 감독한 영화 중에서 안젤리나 졸리가 주연한 영화(Changeling)과 힐러리 스웽크가 주연한 영화(Million Dollar Baby)도 -그외 많은 영화에서-음악 감독을 겸했더군요.

 

   그의 장남 Kyle도 이번 영화에서 공동 음악감독을 했습니다. Kyle은 재즈 뮤지션이면서 영화에도 출연하는데 줄리엣 비노쉬 주연의 여름의 조각들 (Summer Hours/2008)에서 비노쉬의 남자 친구역으로 나왔습니다. 영화를 보면서 "참 멋지다" 했는데 다음날 조간신문에 그가 Clint Eastwood의 장남 Kyle이라고 나왔더군요.

 

   옆집 몽족 Sue의 남자 친구로 나왔던 Trey도 Clint Eastwood의 아들이더군요. 이름은 Scott인데 Kyle과 엄마는 다릅니다.

 

   이탈리아계 이발사역을 한 사람은 어디선가 많이 봤다 했더니 제이크 질렌할 주연의 조디악(Zodiac/2007)에서 유력한 연쇄 살인용의자 역을 했던 John Carroll Lynch였습니다.

 

 



s*******5 2009.08.18. 신고 공감 3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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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에 관람한 최고의 영화를 꼽자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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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연 그랜 토리노 입니다.   2008년에 '데어 윌 비 블러드'와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가 아카데미 시상식 시즌에 개봉을 해서 제 눈과 마음을 꽉 움켜쥐었다면..   2009년은 이 작품이 그러했습니다.   나이를 헛으로 먹지 않은 고집쟁이 할아버지의 결단에 한 수 큰 배움 얻었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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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연 그랜 토리노 입니다.

 

2008년에 '데어 윌 비 블러드'와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가

아카데미 시상식 시즌에 개봉을 해서

제 눈과 마음을 꽉 움켜쥐었다면..

 

2009년은 이 작품이 그러했습니다.

 

나이를 헛으로 먹지 않은 고집쟁이 할아버지의

결단에 한 수 큰 배움 얻었던..

m*****7 2009.12.31. 신고 공감 1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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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늙은이가 살아가는 길...[그랜 토리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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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930년에 태어났으니 올해 벌써 팔순인데도 아직 젊음을 불사르는 감독이 있다. 바로 클린트 이스트우드. 뒷방 늙은이로 살 나이에 아직도 영화를 만들고 있으니 젊은이가 봐도 혀를 내두를만 하다.   그가 일흔아홉 살인 2008년에 만든 <그랜 토리노 Gran Torino>는 솜씨가 고스란히 녹아있는 작품이다. 배우로선 마지막으로 나온 작품이 아닐까 싶다. 감독이야 더 할 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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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930년에 태어났으니 올해 벌써 팔순인데도 아직 젊음을 불사르는 감독이 있다. 바로 클린트 이스트우드.

뒷방 늙은이로 살 나이에 아직도 영화를 만들고 있으니 젊은이가 봐도 혀를 내두를만 하다.

 

그가 일흔아홉 살인 2008년에 만든 <그랜 토리노 Gran Torino>는 솜씨가 고스란히 녹아있는 작품이다.

배우로선 마지막으로 나온 작품이 아닐까 싶다. 감독이야 더 할 수도 있겠지만.

 

세상과 사람이 뒤바뀌는 모습을 담담히 그리면서 가르칠 건 가르치고 넘어가려는 영화다.

나이가 든 미국이 흰둥이들과 검둥이들만이 사는 나라가 아니라

안타깝게도 이젠 온갖 사람들과 어울려 살 수밖에 없는 나라가 되었음을 잘 보여준다. 

 

2.

월트 코왈스키(크린트 이스트우드)는 1952년 한국전쟁에서 잘 싸운 덕에 훈장까지 받은 사람으로,

포드 자동차 회사에서 정비공으로 일하다 이젠 늙어 집에서 쉬는 늙은이다.

아내가 먼저 세상을 떠나고 집에서 맥주나 마시며 꼴사나운 세상을 나무라며 산다.

 

그래서 죽기 전 아내가 옆지기 월트를 잘 부탁한다고 다니는 성당의 신부한테 말해두었으므로,

집에 찾아와 고해성사를 하러 성당에 나오라고 하는 신부(크리스토퍼 칼리)마저 못마땅하게 여긴다.

"당신같이 공부만 한 스물일곱 살의 풋내기 총각이 삶과 죽음에 대해 뭘 알며,

늙은이들한테 구원을 하네 어쩌구 하면서 사람을 꼬시려 하지 말아..." 하며 쏘아 부친다.

 

마을로 자꾸만 몰려오는 아시아 사람들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

"너네 나라로 가서 살아...왜 우리나라에 오는 거야...꼴보기 싫게..."

 

두 아들이나 배꼽을 드러내 놓거나 손말쇠를 갖고 노는 손주들도 마음에 차지 않는다.

"내가 포드에서 오래도록 일했는데, 아들 놈은 일본놈들이 만든 차를 타고 그런 차를 팔러 다니고 있어..."

 

그래서 제 귀빠진 날을 기리려 찾아온 아들과 며느리도 몇 마디를 나누고는 마땅찮아 그냥 내쫓는다.

'난 이집에서 죽을 때까지 살거야. 네깟 놈들이 나를 어디로 보낼 생각 하지 말아...'

 

3.

이웃들이나 아는 사람들이 탐내는 게 월트의 집에 있다. 다름 아닌 오래된 차다.

월터가 포드자동차에 다닐 때인 1972년에 몸소 만들었던 '그랜 토리노'다.

차고에 고이 모셔두고 틈날 때마다 반질반질 하게 닦아 놓기만 하니까, 보는 이들이 침을 흘릴 수밖에.

 

새로 옮겨온 옆집 아들인 타오(비 방)는 같은 겨레인 마을 깡패들의 꼬임에 빠져 그랜 토리노를 노린다.

저승으로 떠날 날이 오늘일지 다음날일지 모를 늙은이인데다 혼자 살고 있으니 쉽게 본다.

 

그렇지만 싸움터에서 사람을 가리지 않고 죽인 바가 있는 꼬장꼬장한 월트를 우습게 봐서는 안된다.

싸움터에서 삶과 죽음 사이에 놓인 줄을 수없이 넘은 바 있는 늙은이여서 척하면 다 안다. 

옆집에 산다고 설마 총으로 쏘기야 할까만, 거침없이 움직이는 월트한테 걸려서 혼이 나면 어쩌려고...

 

같이 잘 지내던 흰둥이들은 다 떠나고 멕시코계 건달들이나, 아시아계 건달들이 판을 치는 마을이 된 탓에

월트는 혀만 끌끌 차지만 달리 되돌릴 길도 없다. 오랫동안 살아온 집을 떠날 수가 없으니...

'아, 옛날이여...흰둥이들만 오손도손 살던 때가 언제였던가? 그립구나...'

 

4.

미국이란 나라가 어떻게 되어 가는지 늙은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이 똑 바로 말하는 영화다.

 

아시아나 히스패닉계 사람들이 득실대고, 마을의 의사마저 아시아 사람으로 바뀌었고,

간호사는 '코왈스키'라 부르지도 못하는 다른 나라 사람이다.

폴란드 핏줄인 코왈스키와 이탈리아 핏줄인 이발사가 진한 우스개 소리를 해보지만,

아일랜드 핏줄의 마을 총각은 검둥이 건달들한테 혼이 나서 아가씨와 사귀지도 못한다.

이미 흰둥이들이 주름잡던 마을이 아니다. 흰둥이가 누리던 자리는 어디로 갔는지...

 

중국과 베트남, 라오스의 높은 산골에서 살던 '몽족' 사람인 타오나 그 누이 수가

오히려 월트와 말이 통하고 마음이 맞다.

제 차를 훔치려한 타오가 오히려 예의 바르고 사람을 잘 따르니 손주처럼 여겨진다.

 

흰둥이만 사람으로 보던 눈이 이젠 살갗이 희든, 검든, 노랗든 가리지 않아야 하고,

서로 마음이 오가는 사이가 이웃이고 동무이지 그깟 같은 핏줄이 대수랴...

이렇게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의 생각이 확 바뀐 것을 느끼게 해주는 영화다.

 

그래서 괴롭히는 같은 핏줄의 아이들로부터 타오를 빼내서 바르게 살도록 도우려고 월트는 발 벗고 나선다.

제 아들들이나 손주들은 마뜩찮아 하면서 이웃에 사는 아시아 사람들한테 손을 내미는 월트의 모습은,

옛날의 미국 사람이 보여주던 모습이 아니다. 시대의 흐름을 거슬러 살 수는 없는 법.

어떤 사람이든 같이 마음을 나눌 수만 있다면 같이 살아가야만 하는 세상...바뀐 세상을 보여준다.

 

5.

영화관에서 보아야 했으나 놓치고 말았는데 이렇게 빨리 디브이디가 나왔으니 얼른 살 수밖에...

그런데 따끈따끈한 디브이디는 바람만큼 좋지는 않다. 화면이나 소리는 그저 그렇고,

그랜 토리노를 비롯한 자동차에 얽힌 이야기들이 많이 나오는 보너스도 맛이 없다.

 

늦더라도 조금 가다듬어 영화를 찍게 된 뒷이야기들과 찍으면서 있었던 여러 이야기를 곁들이고,

나온 배우들은 어떻게 뽑게 되었는지를 알려주고, 예고편도 곁들였으면 좋았을 텐데, 많이 아쉽다.

 

아이들이 듣기에 좋지 않은 말들과 폭력이 나오는 탓에 본디 영화는 어른들만 보도록 하였으나,

디브이디는 열두 살만 넘으면 볼 수 있다. 어찌된 일인지...우리나라는 봐주는 품이 넓은 탓일까?

b******g 2009.08.09. 신고 공감 1 댓글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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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랜토리노 - 클린트 옹의 수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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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과 삶의 경계   영화의 시작은 죽음이다. 경건한 파이프 오르간 소리가 울리면서... 여든을 바라보는 늙은 할아버지 월터 코왈스키는 인생의 동반자였던 아내를 자신의 옆이 아닌 관 속으로 삶에서 죽음으로 떠나보낸다.   영화의 시작은 탄생이다. 월터 코왈스키의 아내가 관속에 누운 날, 이웃집에서는 새 생명이 탄생한다. 삶에 이제 막 눈 뜬 갓난아이는 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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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과 삶의 경계

 

영화의 시작은 죽음이다.

경건한 파이프 오르간 소리가 울리면서...

여든을 바라보는 늙은 할아버지 월터 코왈스키는

인생의 동반자였던 아내를

자신의 옆이 아닌 관 속으로

삶에서 죽음으로 떠나보낸다.

 

영화의 시작은 탄생이다.

월터 코왈스키의 아내가 관속에 누운 날,

이웃집에서는 새 생명이 탄생한다.

삶에 이제 막 눈 뜬 갓난아이는 생명의 숨을 쉬며

부모의 품에 안겨있다.

 

아내와 사별한 월터의 집과 아기가 태어난 베트남인 타오의 집에

가족과 친척들이 모인다.

한 무리는 죽음을 위로하기 위해서이고

한 무리는 탄생을 축복하기 위해서이다.

이렇듯 삶과 죽음의 경계는 잔디 밭 몇 걸음을 사이에 두고 붙어있다.

 

장례 미사 때 신부는 이런 말을 한다.

죽음이 무엇일까?

끝인가, 시작인가?

삶은 무엇인가?

...

영화 시작과 함께 관객들에게 던져지는 이 화두는

사실상 이 영화가 무엇을 지향하는지 보여 줍니다.

영화에서 이 신부는 감독 클린트 옹의 대변인입니다.

산다는 것과 죽는 다는 것이 무엇일까...

난 그 얘기를 하려고 지금 이 영화를 찍고 있어라고

삶과 죽음을 주관하시는 하느님의 사자

신부를 통해 친절하게 관객들에게 설명하고 있는 겁니다.

 

삶과 죽음을 임의로 피할 수는 없다.

베트남에서 학살을 피해 미국으로 이민 온

타오와 수가 미국 땅에서 그들의 동족, 가까운 친척으로부터

죽음의 위협을 받는 것처럼.

한국전에 참전하고도 살아 온 코왈스키가 이제는

지병을 얻어 각혈을 하며 얼마 남지 않은 여분의 하루하루를 사는 것처럼.

삶과 죽음은 뒤집어 입을 수 있는 옷처럼 한 벌이다.

어느 쪽이 삶인지 죽음인지 모른 체 입을 뿐이다.

 

 

 

자 이제,

고집불통에다가 온통 괴팍하기만 한 노인 코왈스키는

이웃집 베트남인 타오 그리고 수와 친구가 된다.

이들을 인연의 끈으로 묶어 준 것은 아이러니하게 교차했던 삶과 죽음이었고

그 끈을 더 단단하게 매듭짓게 해 준 것은 월터 코왈스키의 그란토리노다.

1972년 그의 손으로 조립해서 생명을 불어넣은 차 그란토리노.

이 차는 코왈스키의 삶을 관통한 상징과도 같은 그의 분신이다.

그래서일까?

지병의 고통 속에서 겨우 살고 있는 차주 코왈스키처럼,

차도 엔진을 회전시키지 않고 창고속에만 있을 뿐이다.

죽음을 기다리고 있는 코왈스키와 그란토리노.

 

죽음이 무엇일까?

끝인가, 시작인가?

삶은 무엇인가?

 

...신부의 말을 고민하고 있었던 걸까?

코왈스키는 삶을 더하려 하지 않고 죽음을 피하려 하지 않습니다.

그는 죽음을 선택합니다.

생명의 위협을 받고 있는 타오와 수를 위해 그는 자신을 희생합니다.

그리고 그의 죽음으로 타오와 수는 삶을 보장 받습니다.

 

코왈스키의 장례미사에서

신부는 다시 말합니다.

 

〃그를 알기 전엔 삶과 죽음을 알지 못했습니다. 그를 통해 배웠습니다〃

영화가 시작 할 때 신부를 통해 삶과 죽음이 무엇인지 질문을 던졌던 감독은

영화의 끝에서 이제 배웠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그 답을 친절하게 설명 해 주지는 않습니다.

관객이 영화를 통해서 얻어야 할 몫입니다.

 

죽음이 무엇일까요?

끝일까, 시작일까?

 

영화속에서 단 한 번도 달지지 않았던 코왈스키의 그란토리노는

마지막 씬에서 드디어 자유롭게 달립니다.

코왈스키는 자신의 분신같던 차를,

자신과 함께 창고에서 죽음을 기다리던 차를,

타오에게 물려줍니다.

코왈스키의 죽음을 통해 평화로운 삶을 얻을 수 있었던 타오는

다시 숨 쉬는 그란토리를 타고 길게 뻗은 도로를 달립니다.

삶과 죽음의 경계를 이어 준 그란토리노를 타고.

 

 

 

연세를 드시고 드신 어르신들은 손수

수의를 장만하십니다.

그 어르신들은 삶에서 비단옷을 입길 바라기 보다는

평안한 죽음을 경건히 맞이해 수의를 입길 바랍니다.

고요하고 안락한 죽음이야말로 오늘의 삶을 평안케 하는 유일한 낙입니다.

 

영화를 보는 내내

클린트 옹이 코왈스키를 연기하는 것인지

코왈스키가 클린트 옹을 연기하는 것인지

구분이 가질 않았습니다.

 

아마도 클린트 옹은 손수 수의를 마련하는 기분으로

코왈스키를 연기한건 아닐까요?

누구나 바라는 고요하고 안락한 죽음을 맞이한 코왈스키는 아니었지만

삶과 죽음의 경계를 초월하고 있는 클린트 옹에게 이 영화는

잘 맞춰진 안락한 한 벌의 수의와도 같을 것입니다.

 

 

2010. 5. 15

 

새벽 파랑월

 

 

u***d 2010.05.15.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