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예술은 돈이 많이 들지만 돈이 벌기는 힘든 분야이다. 예술처럼 배부른 유희 취급을 받는 일도 없을 것이다. 예술가는 아마 네 가지 분류로 나눌 수 있을 것이다. 돈 많은 집에 태어나 하고 싶은 작품을 마음껏 만드는 예술가, 작품이 팔리지 않아 궁핍하게 생활하는 예술가, 높은 평가도 받고 인기도 얻어 작품 활동만으로 생활을 꾸릴 수 있는 예술가, 그리고 후원자의 후원을 받는 예술가.
서양미술 쪽에서는 주류를 형성한 것이 네 번째였다. 이것은 서양미술, 특히 회화와 조각이 재료비를 비롯하여 많은 비용이 필요한 예술이라는 점도 한몫했지만, 더 근본적인 이유도 있었다. 과거 유럽 미술계를 지배한 것은 살롱과 아카데미였는데, 생계 걱정 없이 작품활동을 할 수 있는 지름길일뿐만 아니라 미술계의 인정을 받기 위한 등단문이기도 했다. 살롱과 아카데미를 심사하는 것은 기존의 원로들이었고, 살롱과 아카데미에 대형 미술품을 주문하는 것은 지배층이 많았다. 때문에 미술계의 주류를 형성한 그림들은 보수적이고, 권력을 강조하는 지향성을 띨 수밖에 없었다.
'후원자'가 작품에 미치는 영향은 두드러지게 나타나기 마련이다. 간혹 자신이 좋아하는 예술가가 마음껏 작품활동을 할 수 있게 돕는다는 것만으로 기쁨을 느끼는 후원자도 있지만, 대부분은 자신이 원하는 작품을 제작하기 위해 미술가를 후원하기 마련이다. 미술계가 권력층과 분리된 후에도 상황은 별반 다르지 않았다. 예전에는 권력층을 위해 미술작품을 제작했다면, 이제는 부유층을 위해 미술작품을 제작해야 하는 상황이었으니까. 값비싼 재료비 때문에 굶는 예술가의 길을 택하기도 힘들었던 서양미술가로서는, 부유한 집안에 태어나지 않는 이상 이 환경에 적응할 수밖에 없었다. 자연히 서양미술은 '칼자루를 쥔 사람이 원하는 작품'을 제작하는 쪽으로 흘러왔다. 덕분에 미술작품의 변천을 통해 당대 사회의 변화를 유추할 수 있다는, 의도하지 않은 부반응이 생기기도 하였으나 미술의 종속성이라는 측면에서는 안타까운 일이다.
그러나 19세기 들어서 이런 상황은 변하기 시작한다. 그 이전에도 조짐은 있었으나 세력이 미약했던 데 비해, 19세기 이후의 예술가들은 본격적으로 자기 목소리를 내고 기득권층에 순응하기를 거부하며, 마침내는 본격적으로 저항하기 시작한 것이다. 아니면 시대에 저항하는 미술품이 널리 알려지고, 작품이 남아있게 되었다는 표현이 더 맞을지도 모르겠다. 이런 의미에서 판화 이외의 미술은 문학보다 불리하다. 문학은 인쇄나 필사라는 형태로 얼마든지 그 내용이 퍼질 수 있었지만, 판화 이외의 미술은 단 하나의 작품만을 남길 수 있으니까.
<미술의 불복종>은 '권위'에 저항한 미술품들을 다루고 있다. 살롱과 아카데미의 권위에 저항하고, 후원자의 입김에 저항하며 독립하고, 국가와 나라의 만행을 고발하고 저항하는 미술가와 미술작품들의 이야기다. 읽다 보면 일차적으로는 미술가가 온갖 편견과 악습에 맞서 싸운 모습이 떠오르고, 그 다음으로는 미술가가 작품을 통해 항거할만큼 절박했던 시대상황이 손에 잡힐 듯 들어온다. 미술서적인데도 읽다 보면 역사 중요 에피소드 모음집을 읽는 기분이 들 정도이다. 그렇다고 미술작품에 대한 소개나 설명이 불충분한 것도 아니니, 그야말로 두 마리 토끼를 한번에 잡는 책이라 하겠다.
이 책이 다루는 작가 중 상당수는 미술사에서 중요하게 다루는 사람들이다. 이 미술가들이 활동하던 시대에도 권위에 순응하고 복종하는 미술품은 많이 만들어지고 있었지만, 후대의 역사는 저항하면서 새로운 시류를 만들어낸 사람들의 손을 들어 준 것이다. 역사는 저항하면서 행동하는 사람들이 발전을 이끌기 마련이었고, 그건 미술에서도 마찬가지였던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