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곳에 가면 그녀가 있다 -두번째 이야기]이다.첫번째 이야기는 그저 관조적인 입장에서 바라보았다면 두번째 이야기에서는 현재에도 이어지고 있는 여성의 문제라는 다소 현실적인 문제로 접근하게 된다.그래서 인지 읽는 중간에 눈시울이 붉어지게 만드는 이야기도 더러 있다. 여자임에도 그저 닥치지않으면 위기의식을 모르는 안전 불감증때문인지 나는 페미니스트도 아니었고 한번도 차별을 받고 살았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었다.그러나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조차도 부끄럽게 만드는 [그녀들에 대한 오래된 농담 혹은 거짓말]이다. 첫번째 이야기에서 신라와 강릉,부안,그리고 신여성에 대한 이야기 다음으로 이번에는 백제의 이야기로 시작된다.백제의 유적지 부여에서는 여성들에게 부정적이었던 삼국사기의 저자 김부식에게 조차 한 줄이라도 허락된 유일한 여성 <소서노>의 이야기와 백제의 멸망과 함께 전해 내려오는 의자왕의 삼천궁녀들의 이야기.내가 어릴 때 삼천궁녀와 의자왕의 노래가 유행이었기에 친숙해서 인지 이제껏 역사의 존재인줄 알았던 삼천궁녀가 사실은 백제의 멸망과 시대적 상황을 가려버리는 역할로 만들어진 이야기란 사실에 왜 웃음이 나는 걸까 ...진실이이라고 알고 있던 사실이 한 낱 거짓이 되어버리는 그런 기분이랄까 ...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고 했다.백제의 멸망으로 신라의 중심으로 기록된 역사에서 백제의 기록을 찾는 것도 힘든 일인데 여자의 이야기는 저자의 말대로 풀밭에서 초록색 실찾기 인 것을 거기서 찾은 또 한명의 백제의 여자 계백의 아내를 찾아낸다. 밀양으로 가서는 언니귀신인 아랑을 만난다. 아랑은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장화 홍련전]의 모티브가 되고 [전설의 고향]에서도 익숙하게 보아온 이야기이다. 억울하게 죽은 처녀귀신이 부임해오는 사또에게 나타난다는 그 이야기이다.이 이야기는 몇백 년의 세월 동안 입에서 입으로 전해 내려온 구전설화이다.여기서 저자는 초기의 아랑은 조선시대가 요구하는 이상적인 규수로 그려진 것으로 보고 있다.정절을 위해 기꺼이 죽음을 선택한 가부장적인 이상을 모범으로 실현하는 모범여성상이었던 것이 근래에 오면서 정절 이데올로기가 점점 변화되가면서 아랑은 기존의 질서가 어떤 억압을 만들어 내는지 보여지는 아이콘으로 변화된다. 진주사람들의 논개 사랑은 논개가 죽은 뒤 147년 만에 의기라는 호칭을 받게 된 것만으로도 알 수 있다.계급 측에도 속하지 못했던 미천한 신분의 논개의 죽음에 왜 그토록 집착을 보였던 것일까.그것은 진주성 싸움에서 보았던 수많은 죽음 앞에서 그녀가 껴안고 죽었던 것들.. 왜장의 몸만이 아닌 그녀는 폭력앞에 죽어간 수많은 여성,기생,천민 그리고 그녀의 삶을 억압하고 구속했던 이름들까지도 함께 포함된 것이리라.... 이어서 판소리의 명가 남원으로 간다.거기서 조선말과 일제강점기를 ’판소리 가수’로 살았던 이화중선의 녹록치 않은 생을 만난다.이화중선은 남성명창의 뒤에 있는 그림자 같은 존재이 여성명창에서 남성명창과 어깨를 견디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그러나 예술가의 삶은 고독한 법.이화중선 또한 늘 고독하고 불안한 생을 산다. 이 책 마지막의 박경리 작가가 스스로의 작품활동을 위해 원주에서 자발적 고립을 택한것처럼... 그리고 내가 눈물을 흘렸던 나눔의 집이 있는 광주이다.생물학적으로 여성의 몸을 가졌다는 이유로 위안부에 끌려가서 할머니가 되어서야 돌아올수 있었던 그녀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그녀들이 돌아오지 못했던 애절함과 애통함을 어찌 이해 할 수 있을까. 순결이데로로기와 정조관념이 칡뿌리처럼 질기게 남아있는 한국사회에서 위안부로 살아가야 한다는 것에 그저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그녀들을 위해 눈물 한 방울 흘려주는 일 밖에 할 수 없음을 ... 그래서 한 가지 예만 실어보기로 한다. 새댁 김윤심이 뒤늦게 얻은 달은 꽃처럼 예뻤지만 말을 못했다.의사는 엄마가 걸린 성병 때문에 뇌성마비에 걸린 탓이라 했다.위안부로 끌려갔던 ’과거’를 들킬까 봐 엄마는 아이를 들쳐 업고 야밤에 서울로 도망갔다.바느질로,부엌일로 억척같이 고생하며 키운 고운 딸에게 옛이야기는 비밀이었다.이제는 투사가 되었지만 딸만은 험한 역사에서 보호하고 싶은 어머니는 듣지 못하고 말 못하는 딸 앞에서 웃었다.대화가 수화로 진행되면서 감독은 묻는다."어머니 책,못 봤어요?"뜻박의 대답."봤어요."카메라조차 놀라서 움찔거리는데,대화는 수화 통역을 통해 진행된다."엄마가 내가 아는 것을 싫어하잖아요."그래서 비밀을 지켜왔다는 딸의 미소가 더없이 해맑다.p265 한국에서 일본정부에게 위안부의 일로 사과를 요구했을 때 일본정부가 "위안부의 일은 없었다"고 했던 사실이 기억난다.그때 난 조금 사회문제에 무심했던 것 같다.같은 한국에 살면서도 무심하게 바라보았던 시각은 내가 얼마나 이기적이었는지 깨닫게 되었다.여성으로 살아간다는 것... 오랜 역사에서 주체이면서도 한번도 주체인 적이 없던 여성의 삶에서 이런 무심한 내 행동들이 결국은 여성을 객체에만 머물게 한 행동이었을 거라는 반성도 한다.결국 천년동안 여성의 삶이란 삼국시대부터 현대위안부의 삶에 이르기까지 남성위주의 삶에서 제대로 숨소리조차 내보지 못한채 피해자의 삶으로 고립된 채 살아가야 했음이 새삼 가슴아프게 다가온다. 아주 조금은 사회문제와 여성의 인권문제에 관심을 가지는 주체로서의 여성이 되도록 노력정도는 해야 할 것 같다.이 책 [그녀들에 대한 오래된 농담 혹은 거짓말]은 여성으로서 여성이라면 꼭 읽어보아야 할 책이라 보여진다.한 편으로는 독특한 여행 답사기로 시작해 여성인권문제에 까지 생각하게 된 책이었다.그리고 또 한가지 여행을 가게 되면 그리운 이름들을 하나 둘 기억할 수 있게 해주어 더 고마운 책이다. |
|
이 땅의 그녀들이 세상의 시선들과 장애에 마주하며 지쳐온 자취를 따라 부여에서, 고창, 남원, 밀양, 통영, 원주에 이르는 문화여행 이랄까? 우리 범인(凡人)들이 주목하기에는 낯 선 곳에 내밀하게 깃든 이유 있는 사색의 여정이라 할까? 역사는 항시 강자와 지배자, 승자의 시각과 논리를 따르지 않던가. 그래서 그 배제된 이면의 역사와 사고(思考)에 있는 약자와 피지배자, 패자의 울분과 아물지 않은 상처, 그리고 그네들의 삶의 진정한 모습을 찾아내기란 작자의 말처럼 “풀밭에서 녹색 실을 찾는” 일 만큼이나 어려운 일일 것이다.
이 여정은 여성, 지금에도 누구의 아내, 누구의 엄마, 누구의 딸과 같이 남성과의 관계 속에서만 자리매김했던 그네들의 발자취를, 숨겨지고 왜곡된 주머니에서 하나씩 그 진정성을 꺼 집어내 조명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이 작업에서 작자는 강자가 만들어 낸 조악한 역사와 거짓을 조롱하고, 조소를 보내며, 의심하고, 연민하기도 하며, 그녀들의 숨결이 배어있는 유산과 고장들의 전경과 함께 가벼운 인문학적 담론을 펼친다.
이러한 관점에서 백제의 패망하면 늘 패키지처럼 묶여 다니는 의자왕, 삼천궁녀, 그리고 계백이 작자의 시선을 피해가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낙화암(洛花巖)은 언제부터 꽃들이 떨어진 벼랑으로 불렸을까? 그리고 그 꽃들이라 칭하는 무려 삼천 명의 궁녀가 된 것은 어느 시기부터였을까? 정말 의자왕이 죽자 함께 떨어진 것일까? 이 저작의 표제처럼 새빨간 거짓임은 새삼 거론할 필요도 없겠지만, 이런 말도 되지 않는 거짓말을 왜 만들어 냈을까? 여자의 몸에 나라의 패망원인을 갖다 붙이는 것은 그야말로 앞뒤가 맞는 멋진 그림이 아니던가. 왕의 방탕에 일조한 궁녀는 탕녀이지 않은가. 그런 그녀들이 강물로 뛰어 들었으니 절개와 순국의 모습을 덧 씌워 형상화하니 그 아니 자연스러운가 말이다. 이와 더불어 선화공주, 계백의 아내, 소서노 조차 역사는 결코 진실을 말해주지 않으니, ‘새로운 눈’, 자연스럽고 익숙한 것들을 의심하는 눈을 가질 것을 피력한다.
우리나라 3대 명루인 밀양 영남루와 아랑전설에 이르면 작자의 재기 넘치는 관점이 이채롭게 펼쳐진다. 우리나라 귀신의 전형인 긴 머리와 하얀 소복 패션이‘아랑’에게 비롯되었단다. 그러니 ‘언니귀신’의 원조격이지 않은가. 그런데 뜻밖의 질문을 던진다. 원혼이 되어 나타나 거듭 새로 부임하는 사또들을 황천길로 보내는 아랑은 왜 직접 복수를 하지 않고 신관 사또에게 간접적인 복수를 부탁하는 것일까? 하~아, 순결이데올로기가 지배하는 사회에서 강간당한‘더러운’몸으로 당시 정상성의 심벌이었던 ‘남성’양반에게 나타나는 것은 “귀신의 이름으로 성폭행 당해 죽은 여성들의 존재를 공적 담론의 장으로 부상시키려 했다”는 것이다. 페미니스트라 하면 ‘아랑전설’에서 이쯤의 절묘한 해석은 할 수 있어야 되지 않겠느냐 하는 듯하다.
더더욱 재미있는 것은 지역사회의 고루하고 구태의연한 사고방식에 대한 지적이다. 근자에는 아랑각 앞에 ‘정순문(貞純門)’하고 현판을 걸어두었단다. 사실 남성들의 우매함은 알아줘야한다. 죽은 이의 넋을 달래면 되는 것이지, 왠 느닷없는 정절이데올로기로 의미를 확장하는 것인지, 이 사회의 문화적 자질, 그 수준에 대한 조소와 질책이 통쾌하다. 이러한 남성중심의 실소를 금치 못 할 예는, 죽은 지 일백사십 년이 되어서야 민족정신의 수호자로서 죽음이 공식 인정된‘논개’의 일화에서도 발견된다. 터무니없게도 친고가 전혀 없던 논개에게 400년이 다되어서 ‘주논개’라 하며 관련도 없는 성을 갖다 붙이고 끊임없이 남성과 연관하여 설명하려는 오늘의 인식까지 더해지면 보이지 않는 왜곡된 습속의 권력이 얼마나 억지스럽고, 편향된 것인지 각성케 된다.
이처럼 이 땅에서 여성으로 살아간다는 것. 더구나 사회의 한 정점에 설 정도로 두각을 나타낸다는 것은 세상의 시선과 맞서 싸우고 버티어내는 엄청난 인내와 고통, 용기를 필요로 할 것이다. 남성만의 영역이었던 판소리 연창에 최초의 여성 연창자로서, 이후 판소리에 여성 입문의 길을 열어준 고창의 ‘진채선’, “분노하지만 항거하지 못하고 또한 그런 자신에 대한 자괴감에 시달리는 암울한 식민지 시대의 대중”과 교감하고 소통한 남원 문치마을 ‘이화중선’, 운봉마을의 ‘박초월’은 정말 흔들림 없이 자신의 길을 당당하게 걸어갔던 여성이었으리라.
이 여정에서 특히 매력적인 도시로 나의 시선을 집중시킨 곳은‘목포’였다. “우리의 근대 유산이 유달리 많이 남아있는 곳”, “시간 여행의 정거장 역할”을 하는 곳, 천만 다행스럽게도 “개발의 회오리에서 ‘소외’된 덕분”에 20세기 초엽의 모습을 간직한 우리민족 수탈의 산증거인 동양척식회사, 구 일본영사관, 이훈동 정원 등을 지금에도 찾아 볼 수 있다니 말이다. 때려 부수고, 갈아엎고, 그리곤 눈앞의 경제이익에 어두워 상자곽 건물을 개발이란 명목으로 획일적으로 나열하는 우리 현실은 아마 아프고, 수치스럽고, 고통스러운 기억과 마주하지 않고 회피하려는 습관인 모양이다. 상처를 정면으로 마주하고 치유하지 않으면 비정상적 사고의 다중인격을 양산할 뿐이다. 더 이상은 신뢰할 수 없는 사회로. 혹, 사라질지도 모를 근대의 유산들을 보러 목포에 조만간 다녀와야 할 모양이다.
끝으로 우리 문학에 대하소설이란 커다란 족적을 남긴 두 여성 작가, ‘최명희’와 ‘박경리’의 근원에 대한 성찰, 무한한 생명의 비밀에 대한 깨달음에 정진하였던 그네들의 삶의 자취인 남원과 전주, 통영과 하동, 그리고 원주의 자연적 아름다움과 지역사회의 애정, 일화 등이 시절의 통한을 담고 애정과 존경심 그득한 필치로 그려지고 있다. 이 사회가 불편해하고 은폐하고 싶어 하는 여자들의 이야기가 세련된 식견과 온기 가득한 연민으로 멋 떨어지게 기술된 매력적인 인문학적 담론이자 여성여행기다. 시종 유쾌함과 진지함이 조화롭게 어우러진 지혜로운 이 저작에 작은 갈채를 보낸다. |
|
이 책을 읽으면서 문득 작가 김현아가 궁금해졌다. 역사를 이렇게도 접근할 수 있겠구나. 역사학자의 박식함과 예술가의 감성과 여성에 대한 따뜻한 시선과(물론 그녀가 여성이기에 더했겠지만)배려까지..왜 난 그동안 그녀를 몰랐었는지..숨어있었던걸까..아님 내가 무심한걸까.. 작가의 전작품 '그곳에 가면 그 여자가 있다'를 잇는 연작으로서 앞서 선덕여왕, 허난설헌, 나혜석, 고희정의 자취를 따랐던 작품후에 아직도 우리의 역사속에 실재했지만 숨어있거나 혹은 아무도 알아보지 못했던 '그녀'들을 찾아나선 독특한 기행 에세이였다. 요즘 우리는 역사를 아주 쉽게 만나고 있다. TV사극에서 만나는 역사는 자칫 너무 드라마틱 하고 왜곡되고 포장된 경우가 많다. 그런이유로 역사학자들의 우려는 새겨볼만한 일이다. 우리의 역사-물론 세계사도 마찬가지지만-속의 여자는 작가의 말처럼 '이름'조차 가지지 못하고 숨겨진 경우가 많았다. 역사를 기록하는 '서술자'인 남자들의 의심하고 불편해하고..의도적인 편파로 인해 묻혀진 여자들의 이야기를 저자는 긴 기다림을 깨고 찾아나선다. 주몽을 도와 고구려를 건국하고 이어서 백제를 건국한 소서노는 어떤 심장을 가진 여인이었을까 부여의 왕자였지만 과연 주몽이 소서노를 만나지 않았어도 나라를 세울수 있었을까 이미 정해진 운명이었으므로 누구를 만났어도 결국 고구려는 탄생되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연이어 일본의 정신문화에도 크게 기여한 백제까지 세운 여인이었다면 더이상 우연이라고 고집하기는 힘들어 보인다. 물론 선덕여왕도 있었고 명성황후도 있었다. 선택당한 자와 선택하는자의 차이가 있긴 하지만 왠지 불가능을 가능한것으로 만드는 능력은 소서노를 따라 잡을 수 없을듯하다. 그녀의 이런 담대함을 아무리 권위적인 남자라고 해도 그냥 지나치기는 어려웠던 것일까..삼국유사에 짧게나마 서술되어 있다고 하니.. 어쨋든 남자들은..특히 나라를 한번 들었다 놨다 해보고 싶은 남자들이라면 여자를 잘만나야 할듯하다. 소서노도 그러했고 선화공주도 그러 했으니 말이다. 그 백제의 낙화암의 꽃...삼천궁녀의 전설은 당시 백제의 수도 사비성의 인구가 오만 명쯤이었으니 도저히 그숫자의 궁녀가 존재할수 없다는 일부 역사학자들의 주장처럼 이미 없어져 버린 망국의 체면을 여지 없이 깎아내리고 싶었던 승리자의 오만한 기록이 아닐까 싶다. 오래된 농담 혹은 거짓말처럼 절개와 순국의 이미지를 위해 부풀려지고 포장된 삼천명의 여자들을 벼랑 아래로 밀어버렸는지도 모르겠다. 우리의 핏속에 면면히 흐르는 가락들.. 문득 북장단에 한소절쯤은 따라부르고 싶어지는 그런 가락이 우리 유전자에는 새겨져 있다. 이름도 낯선 명창 이화중선, 이중선의 생가는 단지 그곳에서 태어났을뿐 평생을 떠돌며 산 그녀들의 삶의 고단함과 신산함이 느껴져 쓸쓸해진다. 흔들림 없이 자신을 길을 걸어갔을 그녀들의 노랫소리가 귓가에 흐드러진다. 우리나라에서 여자로 산다는 일은 무지하거나 인내하지 않는다면 퍽이나 고달픈 일이다. 더구나 예술가로 산다는일은 목숨하고 바꿀만한 가치가 있거나 자신의 수명을 반쯤 내놓아만 가능한 일인 모양이다. 혼불의 최명희는 그렇게 자신의 목숨을 내어놓고 '혼불'을 썼다. 지금 그녀는 '혼불'이 되어 떠돌것이다. 지상에서는 외로웠지만 그곳에서는 행복하기를 가난하지 않기를..빌어볼 뿐이다. 저자는 이미 흔적도 없이 사라진 '그녀'들의 생가를...흔적을 왜 찾아나섰을까.. 그녀들의 삶이 잉태되고 태가 묻힌 그곳에 '그녀'들의 혼이 있다고 믿었던 것일까.. 박경리처럼 사랑했지만 살지 못했던 고향 통영보다 더 오래 살았던 원주의 의미가 남다른것은 그곳에 머문 그녀의 남다른 애정때문이었을것이다. 낯설고 황막한 도시였지만 단지 그녀의 존재만으로도 공기의 밀도와 바람의 호흡이 달라지고 새로운 도시의 이미지로 다시 태어날수 있으니..한사람의 존재감이 이렇듯 세상을 변하게 할수 있다니..저자의 여행은 이런 기적을 찾아내고 싶었던 이유였을것이다. 왜장을 끌어안고 남강에 뛰어든 논개와 수치심으로 숨어있었던 '못다핀 꽃' 정신대 할머니들의 가슴아픈 삶의 원흉...전쟁은 분명 남자들의 시작이었지만 죄없이 스러져간 이름모를 수많은 꽃들에게 이 시를 바치고 싶다. 통영 세병관의 이름의 빌미가 되었다는 두보의 詩 세병마행(洗兵馬行)! 어찌 하면 장사를 얻어서 하늘에 있는 은하수를 끌어와 갑옷과 병기를 깨끗이 씻어서 다시는 전쟁에 쓰지 않도록 할까 어찌 하면 한많게 스러저간 여인들의 넋을 위로해 줄것인가 은하수라면 그녀들의 한많은 가슴까지 깨끗이 씻어줄 수 있을것인지.. 자자의 여행에 따나 나섰던 나역시도 문득 궁금해진다. 다음 여행에서 만날 '그녀'들은 과연 어디에 숨어있을지 고독했을 '그녀'들의 손을 따뜻하게 잡아주고 싶어 벌써부터 기다려진다 |
|
가부장적인 제도에서 태어난 우리의 어머니들이 계십니다. 지금이야 남녀평등 외치지만 과거에는 감히 생각도 못할 일들이었답니다. 그러나 남자위주로 돌아 가는 사회속에서 여성은 존재했고 그 어느 남자 못지않게 희생한 분들이 계셨 습니다. 다만 과거 우리사회가 받아들여주지 않은 것이랍니다. 역사를 거슬러 오르고 현대이르까지 인정받지 못한 그분들의 숨결을 찾는 한권의 책입니다. 과거의 여성들은 양반, 상민을 떠나 단지 여자라는 이유로 숨죽여 살아야하는 존재였습니다. 뛰어난 재주가 있어도 어디에 하소연할곳도 없었고 얼굴도 모르는 남자에게 시집을 가서 아이를 잉태하는 그런 존재였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답답한 인생이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이면에는 알려지지 않은 훌륭한 우리의 어머니 그녀가 있습니다. 외장과 함께 강에 뛰어든 논개, 3.1절 만세를 부르고 독립을 외치던 유관순, 고구려의 탄생을 도운 소서노, 황진이, 이루말할수 없는 분들이 계십니다. 그런면에서 이책은 우리가 알지 못한 그녀 들의 오해를 풀어주고자 하는 해답과 같습니다. 표독스러운 표정과 말투로 연기한 박원숙과 단아한 이면에 강한 여성상을 연기 한 최수지 또 길상이로 나온 최재성라는 배우가 연기한 드라마 토지가 생각납니다. 얼마전에 타계한 박경리 소설의 토지를 책과 tv를 통해 보면서 저렇게 쓰려면 얼마나 긴 시간속에서 많은 생각과 고통을 느꼈을까 생각한적도 있답니다. 창작을 한다는 자체가 결코 쉬운일도 아니고 뼈를 깎는 고통에 비유를 하기도 합니다. 그속에서 국민드라마 토지가 탄생하고 여러편의 드라마로 재탄생하기도 했습니다. 역사소설을 보면 대부분 남자작가분들이 많은데 특히 여성작가라는 특이한 이면에 우리가 더 솔깃한거 아닐까 하지만 분명 알아야할것은 작가가 여성이라는 것이 아니라 책속에 담겨진 작가의 속내를 분명히 읽어낼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한권의 책속에 우리들의 어머니 자화상과 작가가 느꼈을 절망을 함께 공감할수 있는 우리들의 어머니 박경리님의 토지는 우리들의 자화상이 아닐까 합니다. 우리들의 어머니 그중에서도 우리가 가장 마음아파해야 할 부분은 역사에서 조차 나중에 밝혀진 위안부할머니들입니다. 정절을 중요시한 사회속에서 지금까지 얼마나 마음아파하고 한으로 사셨을까 생각하면 마음이 아린것은 당연합니다. 그러나 일본정부나 우리나라나 뚜렷한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하는 가운데 역사속 으로 사라져버린 할머니들을 보면서 같은 여성으로서 뜨거운 눈물을 흘리지 않을수 없습니다. 현재 우리법에는 강간이라는 법이 존재하지만 그 전쟁속에서 이런법이 통할리 없었겠죠. 위안부 문제가 수면으로 떠오르기까지 우리는 결코 아무도 몰랐습니다. 어느날 갑자기 tv와 신문과 인터넷을 통한 소식을 접하면서 이런일도 있었구나 했지 이분들이 겪었을 고통을 그 누구도 몰랐던 거죠. 조국에 돌아와서도 따뜻한 말한마디 들을수도 없는 그분들의 한을 어떻게 하면 풀어드릴수 있을까요. 답답하기만 합니다. 그 누구도 같은 여성이라도 경험을 하지못하면 동감을 하지 못하는것은 당연합 니다. 다만 조금이나마 고통을 나누고 위로를 해줄수는 있습니다. 남성의 억압 속에서도 꾹꾹히 우리들 곁으로 오신 그분들을 생각하면서 이책을 읽었습니다. 눈물도 흘렸습니다. 역사서에조차 올려지지 않은 우리들의 그녀들의 오해는 한장의 종이에조차 올려지지 않았습니다. 거짓이든 오해든 그녀들은 우리들 과거의 자화상이었고 현재의 자화상입니다. 여성이라는 직함에 좌절도 포기도 과거의 그녀들을 생각하면서 내자아를 찾아가는 여행을 하기를 바랍니다. |
|
|
|
원래 유적답사기라던가 여행기라던가 하는 책들을 재밌게 읽기란 여간 힘겨운게 아니다. 이제까지 그런 책들을 읽어보고 크게 감흥을 받은적이 없었다. "그녀들에 대한 오래된 농담 혹은 거짓말"은 저자가 백제 삼천궁녀가 떨어졌다는 장소부터 토지의 작가 방경리님의 고향과 집필장소까지 찾아다니며 책에 옮겨놨다. 위안부 여자들에 대한 이야기를 다뤘을때는 그녀들에게 너무 미안한 마음에 고개를 들 수 없었고 박경리 작가에 대한 이야기를 할때는 배울점이 너무 많아 함부로 책장을 넘길 수가 없었다. 무엇보다도 너무나 익숙한 것을 익숙하게만 보지 않는 작가의 시선과 작가의 생각이 감탄스럽고 부러울 따름이다. 작가는 그녀들의 삶을 추적하면서 그녀들의 자취를 한 발짝도 놓치지 않으려 한다. 사라진 그녀들을 작가는 다시한번 불러내어 독자와 만남을 주선한 듯 싶다. |
|
이책을 잡는 순간 역사를 보는 생각이 또 하나의 방향성으로 내다 보인다. 특히 이책은 변함없는 여성 문화예술인 답사 에세이로 백제의 삼천궁녀와 논개를 필두로 시작한다. 이후 조선시대 기생 논개와 ‘언니 귀신’ 아랑을 거쳐 근대작가 박화성, ‘목포의 눈물’을 부른 이난영, 일본군 일까 거짓일까 생각이 오간다. 진실이라도 혹은 거짓이라도 그말에 누구도 말할 수 없을 만큼 사연과 역사의 발자국이 지나가는 것 같다, 벼랑에서 꽃이 날리듯이 사연을 뒤로하고 슬프게 죽어 졌다는 것은 어디서 나온 상상의 날개일까? 백제를 생각하면 가장 먼저 생각났던 낙화암 그곳에서 바람에 꽃잎이 날리듯 날았다는 그 여인들은 진정 어디의 여자들일까 그리고 그들은 거기에 진정 있었을까? 거짓이든 진실이든 이 책은 이 땅에 살다간 여성들의 자취가 남은 공간을 여성의 시선으로 응시해 역사의 왜곡된 이미지 속에 묻힌 그들의 삶과 숨소리를 불러내는 역사기행 에세이로서 우리들의 마음을 새롭게 잡는다. 한편 여성의 몸을 작은 이미지의 이중적 잣대로 그린다. 민족.순결. 혹은 희생과 반대로 타락으로도 표현한다. 따라서 당시의 시대적 문화적 이데올르기를 여성이라는 주제에 흠뻑 표현한다, 한편 논개는 조선시대 가장 천한 기생의 존재였다, 그 비천한 여성을 호명하는 새로운 말이 생겨났으니 그것이 적장을 안고 뛰어들은 의기의 논개로 변하였던 것이다. 작가는 논개가 민족의 딸이 되면서 훗날 로맨스의 주인공으로 격상시키며 한남성의 아내로 민족의 딸로 만들어 낸다. 한편 일본 위안부 여성을 보는 눈도 한국 사회의 자기기만을 날카롭게 지적한다.정조를 빼앗긴 가문의 수치로 지났던 그 세월이 그들에게는 어떤 의미 였을까? 언제부터인가 우리사회는 위안부를 미군에 의해 죽은 여성 윤금이를 민족의 수치에서 민족의 딸로 격상했을까 거기엔 여성의 몸을 민족의 감정 정치에 전쟁터로 재현 하고자 하는 민족주의가 심어 있다고 보고 있다. 이밖에도 저자는 역사 혹은 설화에 등장하는 많은 여성들의 이야기가 남성적 시선으로 조직 어 있음을 드러내고 시대를 불화 하거나 역사가 만들어낸 허구의 이미지로 존재했던 그들의 새로운 시선으로 오늘을 되살린다. 한줄한줄 항해를 하듯 이책을 펼치노라면 역사와 사람 남자와 여자 강자와 약자 진실과 거짓 등의 다양한 생각들이 스치어 간다. 다알고 있었던 이야기들 어쩌면 수없이 반복된 이야기들이었지만 역사의 한 장으로서 여성이라는 단어로서 새롭게 접할수 있는 아름다운 에세이라고 강하게 추천하고 싶다. |
|
여행을 하는 여러 길이 있고 떠나는 목적도 다양한 법이다. 그러나 여행이 주는 효과는 매한가지가 아닐까. 겹쳐진 두 개의 시공을 걷는다는 점에서, 과거의 나와 현재의 나가 부딪히고, 과거의 인물과 현재의 사물이 이어진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
|
그녀들은 누구일까? 책의 제목을 보는 순간 그녀들이란 누구일까라흔 생각을 하게 된다, 빨간 표지 하단에 그녀들의 이름이 줄지어 보이면서 이책의 내용이 어떨까 반은 짐작이 되고 반은 궁금해진다. 이책은 "그곳에 가면 그여자가 있다"의 두번쨰 이야기다. 전편과 이어지는 느낌의 이책에서 다뤄지는 인물들은 삼천궁녀, 소서노, 논개에 아랑 그리고 박초월과 정신대 할머니 까지 세대도 이미지도 다른이들이 한데 어우러져있다. 그들의 삶과 그들이 어떻게 우리곁에 남아있고 그렇게 되기까지 그녀들에게는 무슨일이 있었는지에 대한 이야기는 작가의 발길따라 진행된다. 이책의 작가는 역사관련 일을 한다거나 작가라거나 하는 것보다 여성학자 혹은 여행가라는 생각이 더 든다. 그만큼 이책은 그 지역의 물줄기하나 바람한자락까지 세세하게 적어내려갔다. 거기에 드문드문 던지는 농담같은 그녀들의 일화와 그것을 분석하는 색다른 시선이 더해져 우리를 부여에서 조선으로 그리고 현대로 이끌어 주어 책읽는 이들을 시간여행속으로 이끈다. 그안에서 조선 말기의 명창이나 할머니들을 만나는 것은 한편으로는 아프고 한편으로는 자랑스러운 경험이기도 하다. 이책을 보면서 색다른 것이 또 있다면 이책에서 이야기 되어지는 논개와 아랑이었다. 논개에 대한 진주사람들의 사랑과 열정 그리고 논개를 그렇게 추앙할수밖에 없었던 시대적 요구가 논개를 백년을 한참 넘긴후에 되살려내고 의기로 칭송하데 만들었다는 것이 실로 대단하기도 하고 부럽기도 했다. 거기에 아랑의 이야기 , 언니귀신이라는 표현이 걸맞은 아랑의 이야기로 여성사를 풀어가는 부분에서는 상당부분 공감이 가면서 여성사와 문화사가 어우러져 시대를 분석하는 시선또한 흥미롭다는 생각이 든다. - 1965년 봄 밀양 소복을 입은 사백명의 소녀가 거리를 행진한다. 그뒤를 고운색 한복을 입은 이백명의 소녀가 뒤따르고 그뒤로 아랑이 꽃수레를 타고 거리를 누빈다. 아랑영정을 옹위한 초대 아랑들이 그뒤를 따른다. 이 행진의 서두에는 해병군악대, 의장대 고적대가 음악을 연주하며 길을 틔우고 있다 사람들은 박수를 치거나 함께 행진한다. p 86 서양의 할로윈 축제가 이렇게 흥겨울까 하는 생각이 든다. 아랑이 만들어낸 처녀귀신들의 모습도 궁금하다. 책속에 밀양에 대한 풀이가 있다 어쩌면 그 풀이는 이안의 모든 여성들에도 해당되는 말이 아닐까? 원하건 원하지 않건 세대의 이름을 남긴이들 그들의 모습이 바로 " 진정 은밀한 태양, 시크릿 선샤인이었다" |
|
역사라는 분야를 맞딱드렸을때 나는 대체적으로 엄청난 부담을 느끼는 편이다. 학창시절 엄청난 양의 암기해야할 "역사적 사실"들과 "역사적 인물"들에 짓눌렸기 때문이기도 하고 분명 내가 알고 있는 인물임에도 내가 기대하고 상상했던 것과는 조금 다른 건조한 연대기만을 접하게 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역사소설을 좋아하고 역사를 소재로 하는 이야기들을 꽤나 즐기는 편이다.
어렵지 않게 그녀들과 그녀들의 자취를 여행하다. 이 책, [그녀들에 대한 오래된 농담 혹은 거짓말]을 읽기 전까지 그러했다는 이야기이다. [그녀들에 대한 오래된 농담 혹은 거짓말]은 보통의 역사를 소재로 하는 책들과는 조금 다른 느낌을 준다. 사실인 역사를 소재로 한 상상력이 가미된 소설도 아니고, 그저 한 시대를 살아간 여러 여성들의 이야기들을 담은 말 그대로 사실을 다루는 이야기이긴 하지만 그저 그 시대를 설명하고 그 인물을 설명하는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과거의 인물을 설명하고 그녀들이 현재에 어떻게 존재하고 있는가를 그녀들이 살았던 장소와 그녀들이 자취를 남긴 곳을 통해 표현해낸다. 인물을 설명하기 위해 그곳을 설명하고 그곳에 남은 그녀들의 흔적을 설명하는 과정이 몹시도 자연스러워 마치 그곳에 내가 서 있는 듯하고 그곳을 작가와 함께 여행하고 있는 느낌을 받는 것이다. 그곳의 그녀들에 대해 아주 잘 알고 있는 가이드와 함께하는 여행같달까? 그래서인지 책을 읽는 것만으로도 거론된 여성들의 간략한 일생과 생의 중요했던 장소를 동시에 돌아보는 기억에 남는 여행을 하게 되는 것이다.
나의 고향과 나의 시대에 그녀들이 있다. 개인적으로는 책 속에서 나의 고향이기도 한 목포의 두 여성, 박화성과 이난영을 만나게 되었던것이 가장 기억에 남는 부분이다. 아마도 그녀들의 생이 책속의 다른 여성들의 삶보다 특출해서라기보단 그곳이 나의 고향이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이렇게 이 책은 책속에서 나의 고향을 만나고 나의 고향에서 한 시대를 살고 그 고향을 역사에 기록하게 만든 이야기를 풀어냄으로써 꽤 오랫동안 그 여운을 남게 하는 힘을 가지고 있는 듯 하다. 책 속에서 만나는 그녀의 고향은 나의 고향과 같기도 하고 다르기도 하지만 어쨋든 그곳에 나의 기억도 남아있으니 말이다. 동 시대를 살진 못했어도 같은 곳을 살았다는 묘한 동질감 역시 책 속에 나를 묶어두는 힘을 가지고 있었다. 아마 다른 이들은 다른 지명이 거론 된 페이지에서 이런 동질감을 느끼지 않았을까?
작가의 눈으로 새롭게 보다. 책 속에는 책을 쓴 저자의 생각과 느낌들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때로는 개인적인 경험을 풀어놓기도 하고, 때로는 본인이 보고 읽었던 것들을 동원해 무언가를 설명하기도 하는데 그 안에서 작가의 시선이나 관점을 느끼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것이리라. 어느 책에서나 마찬가지이겠지만 책에서 느껴지는 작가의 관점은 때로는 공감을 불러일으키기도 하고 때로는 반감을 일으키기도 한다. 다행히 이 책에서 느껴지는 작가의 관점은 나에게는 상당부분 공감을 하게 했던것 같다. 책을 읽는 동안 작가의 눈으로 설명하고 작가의 관점으로 더해진 이야기들을 읽으며 작가의 눈으로 역사 속 여성들의 이야기들을 새롭게 볼 수 있다는 점은 이 책이 주는 또 하나의 즐거움이 아니었나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