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홉 개의 문>은 키타무라 카오루가 아이디어를 내고 총 9명의 작가가 참여한 앤솔로지 단편집입니다. 토리카이 히우, 타케모토 켄지를 제외한 나머지 작가들은 전부 '아는 작가'였기 때문에 망설임 없이 읽기 시작했는데, 맨 처음 키타무라 카오루의 글이 왠지 애매해서 '어라…' 하는 기분이 들며 작품집의 퀄리티를 다소 불신하기 시작했지만 뒤로 갈수록 재미있어지더군요. 맨 마지막, 츠지무라 미즈키의 글은 최고였습니다. 앞으로 봄마다 이 이야기를 떠올리면서 행복한 기분에 젖을 수 있을 것 같은 예감. 명목은 '릴레이 소설집'이지만 연작 형태거나, 작품 전체가 하나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앞 주자에게서 테마를 하나 받고, 자기가 쓰고 싶은 대로 쓰되 앞서 나온 이야기와 관계가 있어도 좋고 없어도 좋고. 엄청 프리덤. 근데 이런 '어정쩡한 제약'이 의외로 쓰는 사람은 편합니다. [에취くしゅん … 키타무라 카오루] 아아아무리 고민해도 '여자아이의 귀여운 재채기 소리'를 글로 표현할 수가 없어!! …따라서 대충 '에취'로 눙치고 넘어가기로. =ㅅ=; 결혼한 후 시간이 흘러 박정해진 남편에 대한 불만을 고양이 '냐오리'에게 털어놓는 어느 여자의 이야기. 의식의 흐름 기법이라 읽으면서 '흐응' 하고 끝나는 스타일;; [길고양이まよい猫 … 노리즈키 린타로] 키타무라 카오루에게서 '고양이'를 테마로 받은 노리즈키 린타로는, 어느 날 실종된 애완동물 찾기를 전문으로 하는 탐정 사무소에 '주인이 없어졌다'며 의뢰하러 온 고양이의 이야기를 씁니다. ... 심지어 고양이와 주인의 영혼이 서로 바뀌었다는 대황당한 설정! 심지어 주인의 이름이 '사나다 치히로'라 고양이 이름은 '유키무라'! 짧은 이야기도 좋지만 보기 드문 설정이다 보니 이 이야기로 연작이나 장편을 읽고 싶었습니다 :) [반짝반짝 작은 박쥐キラキラコウモリ … 슈노 마사유키] 이어서 '박쥐'를 테마로 받은 슈노 마사유키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 나오는 '반짝반짝 작은 박쥐'…가 달린 머리띠를 한 고스로리 여자애와 그 파트너 청년의 이야기를 썼습니다. 대체 무슨 생각인지는 모르겠지만 얘들이 '행동'하는 부분보다 카페에 앉아 잡담하면서 서로 캐릭터 부각시키는 부분만 열심히 그렸으므로 읽는 저는 짜증이 났습니다. 캐릭터 설정을 잡으려거든 장편소설 도입부에서나 하라고. 물론 짜증난 건 그 캐릭터들 자체가 매우 짜증스러웠기 때문이지만;; 그건 그렇고 외부음식 반입 금지된 카페에서 감자튀김 좀 먹었기로소니 정말 쫓아내나?-_-; 커피도 시켰는데. [블랙 조크ブラック・ジョーク … 토리카이 히우] 그런 슈노 마사유키에게서 '개그맨'을 받은 토리카이 히우는 꽤 재밌는 글을 써냈습니다. 한때 만담 콤비로 활동하면서 상당히 이름을 날렸으나 파트너가 죽고 나서 날개가 꺾인 어느 개그맨이, 파트너의 방에서 매우 많은 양의 아이디어 노트를 발견하고 그것을 기반으로 새로운 파트너를 찾아(이 과정에서 사나다 치히로도 고스로리걸&청년 콤비도 전부 연예인으로 만들어 버림 ㅋㅋㅋㅋㅋ) 재기한다는 내용. 이것을 다시 마야 유타카가 이어갑니다. [배드 테이스트バッド・テイスト… 마야 유타카] 마야 유타카가 넘겨받은 테마는 '스카치'. 어느 골목 깊은 곳에 숨은 바 '유키무라'(ㅋㅋㅋ큐ㅠㅠㅠ)에 수요일마다 나타나 항상 같은 스카치만 마시는 남자. 주인공은 마찬가지로 '유키무라'의 단골이며 희귀차 딜러인 이 남자와 흉금을 터놓고 이야기하는 사이인데, 어느 날 남자가 이상한 이야기를 시작하고… 오호, 그런 의미였군, 하고 무릎을 치게 되는 이야기. 그나저나 외국인 용병 야구선수 이름 두 개 붙여놓고 스카치 이름이라고 뻥 치지 마셔. 그런 거 있나 하고 엄청 찾아봤잖아;;;;; [의존의 다과회依存のお茶会 … 타케모토 켄지] 다들 앞 이야기와 관련이 있거나 캐릭터를 가져다 쓰거나 하는 와중에 꿋꿋하게 혼자 붕 뜨는 이야기를 쓰는 타케모토 켄지;; 어느 날 학교 인기인의 집에서 열리는 차 모임에 초대를 받은 주인공은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갔다가 얼결에 우울한 성토회에 입회하는 처지가 됩니다. 차 이야기 하면서 전문용어가 마구 등장하는 부분은 영 안 읽혀서 고생했지만 끝까지 다 읽은 보람이 있는 이야기였습니다. 암, 카오루와 니오우노미야는 사실 그런 사이였던 거야!! [수지帳尻 … 누쿠이 토쿠로] 저 수지는 '수지가 맞다' 할 때의 수지입니다. 다들 반쯤 장난으로 글을 쓰는 상황에서 혼자 진지하게 열심히 성실하게 글 쓴 누쿠이 토쿠로;; (어쩐지 그럴 것 같긴 했지만...ㆀ) 어느 날 친구가 차를 몰다 앞 차 바퀴에서 튄 돌멩이가 프론트 유리에 부딪혀 사고가 나는데, 앞 차에서 내린 운전자는 아이돌 뺨치게 귀여운 아가씨. 친구는 아가씨와 사이가 좋아졌다며 희희낙락 신나하고, 주인공은 그런 친구를 한심해합니다. 그런데 어느 날 주인공도 차를 몰고 가다 같은 사고를 만나는데, 불운하게도 주인공의 경우 앞 차가 눈치채지 못하고 그냥 가 버리는 바람에 봉변! 다행히 넘버를 기억하고 있어서 차 주인을 찾아냈지만 증거가 없는 터라 아무런 보상도 받지 못하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지갑을 잃어버리고 카드에서 3백만 엔을 인출당하는 일까지 겪는데… 와아, 눈물 날 것 같은 불운의 연속. [엄마 나야 나, 나라구お母さん、おれだよ、おれおれ … 우타노 쇼고] ↘의 후일담을 우타노 쇼고가 블랙코미디로 승화. 푸하하하 저 우울한 이야기를 이렇게 바보같이 만들어 버리다니 우타노 쇼고는 천재가 분명합니다. 저 제목은 물론 일본에서 한창 유행했던 '나야 나 사기' 멘트이고 우리나라에서도 보이스피싱이 문제가 되고 있지요. 이 이야기를 자세히 쓰면 앞 이야기까지 스포일러가 되어 버리기 때문에 줄거리는 쓸 수 없지만 아무튼 우타노 쇼고가 천재라는 건 확실합니다. 푸하하하하. [벚꽃 보기 좋은 날さくら日和 … 츠지무라 미즈키] 책의 대미를 장식하는 마지막 앵커는 유일한 여성 작가이자 짬밥으로도 한참 막내인 츠지무라 미즈키입니다. 하지만 글의 레벨은 그 누구보다도 높지! 전부 이 분 앞에 꿇어! 특히 대충 봐도 성의없이 쓴 게 눈에 확 띄는 슈노 마사유키는 사과해라!!!!!!! 공원 근처에 있는 붕어빵(타이야키) 가게는 언제나 사람들이 줄을 서서 먹을 정도로 인기있는 가게로, 주인공인 초등학교 4학년 여자아이도 기적적으로 사람 없는 타이밍에 엄마 손을 잡고 달려(;;) 겨우 한 번 먹은 적 있습니다. 꼭 한 번 다시 먹어보고 싶다고 가게 근처를 기웃거리던 어느 날, 붕어빵 가게의 오빠가 여자아이를 불러 공짜로 붕어빵을 주면서 공원에 가서 맛있게 먹어 달라고 부탁을 합니다. 멋진 오빠가 맛있는 붕어빵을 주는 통에 기뻐진 여자아이는 며칠을 행복한 기분에 젖지만, 엄마 몰래 간식을 먹고 있다는 사실에는 죄책감을 느끼는데… >_< 끝까지 따스하고 귀엽고 사랑스러운 이야기였습니다. 아, 신세계백화점 지하에 가서 타이야키 먹고 싶다. 스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