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차에서 알 수 있듯이 주제들이 결코 가볍지가 않다.
나에게 이 책은 청년부의 토론의 목적으로 구입하였기에 더더욱 가볍지가 않았다.(나를 포함 우리 아이들?은 아직 말씀에 약하다)
읽으면서 부족하거나 난해한 부분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읽고, 또 읽고, 다시 읽고...(내 이해력이 이정도인가?ㅋ)
그래도 여러 상황과 대화채를 통해 이야기 형식으로 풀어가는 과정속에 자연스레 머릿속이 정리 되어가는 느낌을 받았다.
어렴풋이 알고는 있었지만 뒤죽박죽 섞여있던 무언가를 일렬로 세우는 작업이 내 머리속에서 이루어 지고 있었다.
요즘은 너무 감성적으로만 하나님을 찾으려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물론 여기에는 나도 포함된다.
찬양은 정말 열과 성을 다해 뜨거움으로 드리지만, 정작 말씀시간에는 졸거나 다른 생각을 하는 경우가 많다.
찬양 집회에는 사람이 넘쳐나지만, 말씀 집회에는 빈자리가 넘쳐난다.
즐기는 예배는 웃음으로 참여하지만, 공부하는 예배는 의무감으로 참여한다.
이런 흐름속에 올바른 말씀의 기준을 가지고 살아가는 청년들이 얼마나 될 것인가?
자칭 진리라고 말하는 이단들의 말씀 공격에 얼마만큼 자신있게 자신을 보호할 수 있는가? (그를 설득하는 것 까지는 바라지도 않는다.)
여기 C.S 루이스 중심에 품었던 말씀이 있다.
“너희 속에 있는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자에게는 대답할 것을 항상 준비하되 온유와 두려움으로 하고 (벧전 3:15)”
우리는 너무 말씀을 가볍고 작게 보는 게 아닌가 싶다.
이제는 조금 더 성숙되고 지적인 믿음이 깨어 있어야 할 때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고 감성적인 믿음이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여기서 내가 말하고픈건 감성과 지성의 밸런스를 의미한다.
어쨌든, 이 책은 그런 지적인 부분을 일깨워 주는 데 좋은 지침서라 하겠다.
많은 이들이 이 책을 통해 자신의 신앙을 점검하고, 더욱 하나님과 가까워지기를 소망해 본다.
|
|
C.S. 루이스의 책들을 몹시 좋아한다. 난, 작가의 책이 좋으면 그 작가의 평전도 꼭 읽는다. 작가의 삶을 이해하면 작품들이 좀 더 깊은 친밀감으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루이스의 평전도 나올 때마다 읽긴 했지만 솔직히 지루한데다, 읽고나면 기억이 나질 않았다. 하지만 이 책은 루이스의 삶을 친밀하게 느낄 수 있어 좋았다. 그냥 다른 사람이 평하는 것이 아니라 루이스와 삶의 상처를 나눌 수 있는 시한부 인생의 무신론자가 루이스가 나누는 대화는 정말 기독교에 관한 지적인 대화에 나도 동참해 듣는 듯한 유쾌한 기분을 안겨주었다.
정말 루이스가 살아있다면 회의론자나 무신론자를 만나 이런 대화를 나누지 않았을까? 루이스를 철저히 이해하고 마치 영화처럼 내 앞에 생생하게 묘사해준 느낌이었다. 아마 저자 자신도 무신론자였고, 루이스의 책을 읽고 회심했으니 가능한 일이었을 것 같다.
기독교를 처음부터 알지 않고 인본주의적 사고를 하고 있는 사람들은 정말, 기독교와 신에 대해, 믿음에 대해 이런 질문을 하겠구나 싶었다. 어린시절부터 교회에서 자라온 내게는 생각해보지 못했던 대화들이었다. 그리고 이런 대화를 나눠보지도 못했던 것 같다. 루이스 책이 어렵게 느껴졌었는데, 이 책을 통해 접하는 루이스의 사상은 쉽게 읽히고 이해가 된다.
정말 온화하고 연륜이 깊은 교수님같은 C.S. 루이스 옆에 앉아 직접 대화를 나누는 느낌이었다. 지성과 감성이 한꺼번에 충족되는 느낌... 또한 굳이 성경을 근거로 하지 않고도 기독교와 신에 대해 이런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대화들이 가능하다는 것이 놀라웠다.
믿음에 대해 당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던 나에게, 그리고 그것을 설명하는 데 두려움을 안고 있던 나에게 이 책은 새로운 도전을 안겨주었다. 그리고 열린 마음으로 답변을 찾을 때 하나님은 충분히 그 답변을 찾을 수 있도록 도와주시는 분이라는 것을 루이스를 통해 알게 되었다.
기독교와, 신, 믿음에 대해 이성적인 답변을 원하는 젊은이들이나 불신자들에게 선물하기에 정말 좋은 책이다. 기존 신자들도 읽고 배우고 느낄 것이 아주 많은 것 같다. 강추~!!! |
|
1. 요약 。。。。。。。
어느 평범한 날, 큰 병으로 입원해 있는 톰에게 중년의 노신사가 나타난다. 톰을 아주 잘 알고 있는 것처럼 말을 거는 그는 다름 아닌 C. S. 루이스였다! 루이스는 병실에 있는 ‘벽장 문’을 열고 자신과 함께 하는 여행을 톰에게 제안한다. 그렇게 시작된 두 사람의 여행.
벽장을 거쳐 도착한 곳은, 루이스가 어린 시절을 보냈던 저택인 리틀 리. 그렇게 두 사람은 루이스의 생애의 주요 지점들―이후의 여행지는 1차 세계대전이 벌어지는 참호 속, 옥스퍼드 모들린 컬리지, BBC 라디오 방송국, 루이스가 친구들과 자주 다니던 펍(Pub), 루이스 생애의 후반부에 머물던 저택, 조이가 입원했던 병실 등이다―을 다니며 대화를 시작한다.
완고한 무신론자(정확히는 도적적 유물론자)인 톰과 루이스의 대화는 자연스럽게 유신논증으로 이어지지만, 두 사람의 대화가 꼭 그것만 다루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고통과 슬픔, 사랑(우정), 그리고 상상력의 세계까지, 루이스의 작품에 등장하는 주요 주제가 대화를 통해 실타래 풀리듯 자연스럽게 풀려나온다.
2. 감상평 。。。。。。。
루이스의 작품세계와 그의 사상, 생애를 설명하는 책들은 이미 우리나라에 소개된 것만 해도 충분히 여러 권이 있다. 이런 상황에서 굳이 또 한 권의 책을 더할 필요가 있을까 싶기도 하지만, 이 책은 한 가지 측면에서 다른 책들과는 구분되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바로 루이스의 입을 통해 직접 자신의 사상과 생애를 대화형식으로 풀어내고 있다는 점.
물론 얼마 전에 읽었던 알리스터 맥그래스의 “C. S. 루이스와 점심을 먹는다면”에서도 비슷한 시도가 있긴 했다. 하지만 그 책의 감상평에도 썼듯이, “점심을 먹는다면”에는 루이스 자신의 생각보다는 알리스터 맥그래스의 요약과 평가가 좀 더 두드러진 감이 있었다. 하지만 이 책에서 저자는 루이스 책에서 직접 가져온 문장들을 사용해, 좀 더 루이스다운 대화를 재구성해냈다. 여기에 ‘여행’이라는 콘셉트를 사용함으로써, 자연스럽게 루이스의 생애까지 녹여냈으니 나름 의의가 있는 책.
때문에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 곧 썩 괜찮은 루이스 입문서가 되겠구나 싶은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하지만 중반을 넘어가면서, 역시 인용과 정리를 쉬우나 루이스처럼 구성하는 것은 쉽지 않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예컨대 톰이 고수하고 있는 완고한 유물론의 한계에 대해 작품 속 루이스는 끊임없이 같은 논리를 반복하기만 한다. 고집스러운 노인의 이미지랄까. 실제 루이스라면 어떻게 했을지 알 수 없지만, 적어도 이렇게 논리적 발전 없이 그 자리에 머물기만 했을 것 같지는 않다. 물론 이미 완성된 작품들 안에서 대화를 재구성해내야 한다는 작가의 고민은 이해하지만, 이건 구성의 문제.
하지만 이제까지 읽어봤던 비슷한 유형의 책들 가운데, 가장 덜 딱딱하면서도 흥미롭게 쓰인 책이다. “순전한 기독교”, “고통의 문제”, “헤아려본 슬픔”, “네 가지 사랑”, “기적”, “나니아 연대기”, “그 가공할 힘” 등 주요 작품들을 중심으로 그의 작품세계를 소개하는 데 적절한 책이다. 좋은 루이스 초보 입문서. |
|
로버트 벨라르드 지음 C.S.루이스와 함께한 하루.
표지가 너무 이뻐서 선뜻 이 책을 골랐다. 하지만 내 예상과는 다른 너무 어려웠던 이책.
병든 클러크한테 C.S루이스가 찾아와 C.S루이스의 과거를찾아다니면서 무신론자와 유신로자간의 대화를 그린 책이다.
클러크는 절대적인 무신론자인데 여러 과거여행을 다니면서 그들과 논쟁을 벌이면서, 이해라기 보다는 알아가는 과정이다.
기독교에 관해서 이러쿵 저렁쿵 떠드는 사람들에게는 정말 안성맞춤의 책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 책 너무 어렵다. 몇 번을 봐야 이해가 될 법듯한 책이다.
악에 대한 이야기, 창조냐 진화냐 관한 이야기, 기적에 관한 이야기 등등. 솔직히 좀 어려웠던 책이다. 내가 궁금했던 이야기들도 있었지만 잘 이해가 가지를 않았다.
이 책 기독교를 안 믿는 무신론자들에게 어떻게 복음을 전해야하는지 알 수가 있지만, 너무 말이 어려워 선뜻 이해가 가지를 안는다는 거. 몇 번을 더 읽어봐야 할 듯 싶다.
신학생이나, 기독교에 관해서 논쟁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이 책을 권해주고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