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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 암 투병에 관련된 책을 보다보니 내친김에 좀 더 보고 싶어서 암 관련 서적을 찾게 되었다. 지금은 어느 집이나 흔한 일이라고 하지만 가족중에 암 환자들이 있었고 투병하는 모습도 봤고 안타까운 임종도 있었기에 어느 정도 암에 대한 지식은 있다고 생각됐다. 그래서 좀 더 전문적인 책을 찾게 되었고 특히 면역치료에 대해서는 이전에도 관심이 많던 분야여서 이 책이 눈에 들어왔다. 암이라는 것이 외부에서 들어온 바이러스나 박테리아가 아니고 자신의 돌연변이 세포이다 보니 그 점은 늘 기이한 느낌도 든다. 인체의 모든 세포에는 종말체(Telomere)가 있어서 계속된 복제가 되지 않고 정해진 횟수(50회 정도)만 복제되고 그 이후에는 세포가 사멸하게나 복제를 중단한다고 그것이 인간이 노화하는 이유라는 글은 예전에도 본 적이 있다. 그 글을 봤을 때는 혹시 여기에 신의 섭리가 숨어있는 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고 그 복제회수에 대한 제한을 풀면 계속 복제가 되는 것 아닌가 하는 호기심도 있었다. 최근에 뉴스중에 젊은 쥐의 피를 늙은 쥐에 주입하니 기억력등이 좋아지더라는 글을 봤는데 복제를 못하는 세포를 세로운 새포로 대체하면 젊어지는 것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종말체에 관해서는 암세포에는 그런 제한이 없어서 계속 복제를 한다는 점이 또한 신기하다. 미국의 어떤 흑인 여성의 암세포를 연구목적으로 아직도 증식시키고 있다는 글도 생각이 난다. 세포관점에서 보면 박테리아같은 미생물은 자기 자신을 계속 복제하니까 아주 고래적인 놈이 그대로 살고 있다. 그런데 인간의 세포는 이런 종말체에 의해 제한을 받는다니 이상하지 않은가? 세포 관점에서 보면 그리 다른 것도 아닌데...암 세포속에 혹시 불로의 비밀이 숨어있는 건 아닐까하는 엉뚱한 상상도 해보게 된다.그런데 현실에서 암세포는 발견 시기에 따라 난치이거나 불치이니 호기심과 별반으로 슬픈 일이 되버린다. 이 책에서는 자기세포의 돌연변이 후에 암세포가 증식하는 과정을 전문 의학 용어로 잘 설명하고 있다. 조금 더 의욕적으로 읽게 되면 그런 메카니즘이 흥미와 의학적인 지식을 준다. 다만 그 용어들이 낯설데 친철하게도 그림으로 설명하고 있는 부분들이 많아 이해를 돕는다. 작은 암세포가 덩어리로 자라는 과정은 사실 일반인이 알아도 그만 몰라도 그만일 듯 싶다. 다만 현실에서 흥미있었던 질문 중에 하나가 암이 전이가 되었다고 해도 왜 원발세포를 외과적 수술로 제거하지 않는지였는데 그에 대한 답을 알게된 점이다. 암이 인간세포의 돌연변이다 보니 우리에겐 반갑지 않지만 인간의 세포만큼 똑똑한 것 같다. 원발세포가 있으면 억제물질을 분비하기 때문에 전이가 더딘 것이지 원발세포를 제거하면 전이된 세포가 크게 증식을 한다고 한다. 결국 의미없는 수술이 되니 메스를 데지않는다는 것이다. 그전에도 암에 칼을 데면 더 번지기도 한다거나 원발세포를 제거하면 집을 잃어 다른 곳에서 암이 자랄 수 있다는 소리를 들은 적이 있는데 이 책 덕분에 논리적으로 이해가 된다. 암세포와 면역체게간의 싸움은 정말 복잡 미묘한 화학전이라는 생각이 든다. 왠만한 현대적인 군사작전에 비할만도 하다. 면역체계도 학습을 하고 암도 학습을 하기 때문에 암 치료가 쉽지 않은가 보다. 암과 면역체계가 화학전이다 보니 여기에 항암제라는 외부 화학물질을 넣어 전세를 바꾸어 보려는 것이 항암치료인 듯 싶다. 그런데 이 메카니즘이 너무나 복잡한 것 같다. 하나의 물질로는 피아를 구별하지 못하니 적(암세포)이나 아군(면역체계)이나 모조리 죽이는 원폭투하가 되니 결국 암이 먼저 죽냐 내가 먼저 죽냐하는 치킨게임이 되는 형국이다. 내 자신이 의사는 아니지만 경험상 가지고 있는 생각(개인적인 편견일 수도 있지만)은 원발성으로 국한된 암의 경우에는 외과적 수술로 제거하고 있을지 모를 작은 암뿌리들을 화학물질(항암제)로 제거하는 정도가 그나마 실효가 있을 암치료이지 그 단계를 지나 수술은 불가하고 항암치료만 해야한다면 이 방법으로는 가능성이 너무 낮다. 강철같은 체력과 면역력이 있어서 계속된 항암치료를 견딜 수 있다면 암을 제거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못하니 항암을 하면서 시간을 허비하기 보다는 완화치료를 하면서 마무리를 하는 것이 머리속으로는 합리적인 선택인 듯 하다. 그런데 내가 만약 그 입장이라면 삶에 대한 끈을 놓을 수 있을까하는 것이다. 어린 자식들의 눈을 보면 얼마나 더 살고 싶은 마음이 뭉클뭉클할 것인가... 이렇게 생각하면 너무나도 슬프고 슬픈 일이다. 그러나 다르게 생각해 보면 병에 걸리지 않고 길게 살다고 해도 자식들과 애정을 나누며 보내는 시간은 한정된 것이라면 이미 가능성이 없는 단계이고 거기에 두가지 길이 있다면 - (1) 가능성은 희박하지만 항암치료를 끝까지 받으면서 삶의 불씨를 지필 것이냐 다만 병원에서 그대로 생을 마감할 수도 있다 (2) 3개월이 될지 6개월 될지 모르겠지만 이 시한부 인생을 받아드리고 그 순간을 최대로 느끼다가 떠날 것인가 - 난 어떤 길을 택할 것인가? 지금은 안 아프고 이성적인 판단에 (2)인지 모르지만 그 입장이 되면 (1)을 선택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내 어머니가 (1)을 선택하신 것을 봤기에 나도 그 길을 택해야겠지라고 생각할 따름이다. 사람이 살면서 계속 죽음을 생각할 수야 없겠지만 가끔은 죽음이 무엇인가에 대한 생각도 필요한 것 같다. 갑자기 셸리 케이건 교수의 "죽음이란 무엇인가?"라는 책이 떠오른다. 우리는 박탈감 때문에 죽음을 두려워 하는 것이라고 하는데 삶의 미래는 알 수가 없으니 갑작스럽게 닥치게 될 경우 어떻게 받아드릴 것인가에 대한 나름의 정리도 필요해 보인다.
암은 예방이 최선이라고 하는데 그러자면 정말 바른먹거리 바른생활을 해야하는데 이러자니 삶이 민민해진다. 절에 자주 가지는 않지만 예전에 석탄일에 가던 절에 고경스님이라는 분이 계셨는데 수줍음이 많은 스님이었고 조용한 분이서 별로 말할 기회가 없었다. 그런데 어느 해인가의 석탄일에 인사를 나눈 적이 있었고 그 다음 해에 가서 인사를 나누어야지 했는데 그 스님이 보이질 않아 주변에 물어보니 암으로 입적을 하셨다고 해서 놀란 적이 있다. 몸도 마르신 분이라 뭔 병이 있었을까 싶은데 산속에 기거하는 스님이 암에 걸린다는 사실이 멘붕이었다. 그렇게 생각하면 병 또한 운명인가? 톨스토이의 말처럼 우리가 영향을 줄 수 있는 시간은 지금뿐이니 지금에 충실하게 사는 수 밖에. 그리고 애들이 크는 동안에 가장 클 상처일 상실의 상처를 주지 않으려면 크는 동안에는 바른먹거리 바른생활을 하도록 노력하는 수 밖에... 인생사 공수래공수거이고 본래무일물이라고 하지만 그 삶아 가는 길에도 왠 씽크홀이 그리도 많은지. 사는 것도 어려운가 보다.. 8/28/20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