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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과 호치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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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무더운 여름, 인생에서 처음으로 해외여행을 갈 기회가 생겼는데 여행지는 베트남과 캄보디아였다. 두 국가는 지리상으로 붙어있지만, 현재 베트남은 공산주의 국가(사실 공산주의 국가이기도 뭣하다)이며 반대로 캄보디아는 민주주의를 표방한 자유국가이다. 신기한 것은 두 나라 또한 내전을 겪고 서양제국들의 식민지를 겪었으나 정반대의 길을 걷게 된 것이다.<소달구지나 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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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무더운 여름, 인생에서 처음으로 해외여행을 갈 기회가 생겼는데 여행지는 베트남과 캄보디아였다. 

두 국가는 지리상으로 붙어있지만, 현재 베트남은 공산주의 국가(사실 공산주의 국가이기도 뭣하다)이며 반대로 캄보디아는 민주주의를 표방한 자유국가이다. 신기한 것은 두 나라 또한 내전을 겪고 서양제국들의 식민지를 겪었으나 정반대의 길을 걷게 된 것이다.


<소달구지나 끌고 쓰러져가는 양옥집만 있는 베트남의 시대는 한참 지나도 지났다.

우리에게 친숙한 외국 프랜차이즈 기업 롯데리아도 있다. 경제수준은 대한민국보다 약간 뒤쳐지지만 전반적인 문화나 생활은 거의 비슷하다>


현재의 베트남은 아직도 흔히들 인식하는 동남아시아의 개발도상국가의 이미지가 강하지만, 앞으로 계속 성장하게 될 젊은 국가이다. 세계 인구수 15위를 차지하고 대한민국 인구의 2배나 된다. 

말이 공산국가지, 자유무역 체제에 점점 늘어나는 고층빌딩, 곳곳에 보이는 서양문화와 프랜차이즈 상점, 그리고 활발한 여행관광업 등 전망이 무궁무진한 나라이다.


<베트남 국민들 대부분이 오토바이를 교통수단으로 삼는다. 이발이 삼발이는 기본이고, 학생들은 부모 뒤에 타면서 아침식사나 책을 보는 스킬을 가지고 있다. 신기하게도 이렇게 오토바이가 때로 지나가는데도 경적소리가 들리거나 무질서함이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가 없다. 우리나라가 배울 점이 많다.>


베트남은 오랜 저항의 역사를 가진 국가이다. 고대시대부터 베트남 왕조들은 지리적으로 밀접한 중국의 야욕에 부딪혔고, 근세기에는 서양제국의 교묘한 식민지의 손길에도 맞서 싸웠다. 누가 봐도 약소국인 이 국가는 사상의 통합을 이루고 자주 통일을 한 국가, 그리고 강대국인 프랑스, 미국에게 패배를 안긴 승리의 국가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오늘날의 베트남을 만들고 통일의 영광을 이륙한 중심에는 누가 있었는가? 

단연코 대한민국에도 누구나 다 아는 위인 호치민(호치민은 이름만 수십개가 된다. 호치민으로 널리 알려졌으므로 이하 호치민이라 칭하겠다)일 것이다. 명실상부 베트남에서는 수십년이지났지만 여전히 국부의 존재이다(요즘에는 박항서가 국부급의 대우를 받고 있다 카더라. 덕분에 한국 사람들이 관광가면 아주 대접을 받는다고)


<베트남 중앙우체국에는 국부 호치민의 초상화가 장엄하게 걸려있다.>


-호치민의 성장

호치민은 개천에서 용 난 전통적인 유교 집안에서 성장하였다. 학문에 관심이 많았으며 총명하여 배운 것을 안벽히 소화해냈다고 한다. 아버지는 일찍이 고아 신분이였으며, 베트남의 올바른 역사를 후세에게 전하기 위해 고위직의 명예를 버릴 정도로 올곧은 사람이였다. 어머니는 내조의 현모양처였으나 호치민이 현재로 따지면 초등학생 무렵 호치민의 동생을 낳자마자 얼마안가 생을 다하게 된다.


그는 아버지가 교류하던 애국 학자들의 영향을 받아 베트남의 독립에 눈을 뜨게 되었으며(이 당시는 프랑스가 베트남을 서서히 지배하고 있던 시기였다), 지피지기처럼 적을 알아야 물리칠 수 있다는 생각에 프랑스어와 문물을 접하며 유학을 떠난다. 

호치민은 프랑스어뿐만 아니라, 중국어, 영어도 유창하게 구사하였다.(부러운 능력이다) 흥미로운 점은 그가 정약용 선생님의 목민심서를 즐겨 읽었다고 한다.



-호치민은 공산주의자였는가

호치민은 다양한 직업을 전전했으며, 여러 나라를 다니면서 현실을 직접보고 깨닫기 시작했다. 베트남은 영국도, 일본도, 미국도, 중국도, 러시아의 도움도 아닌 오로지 베트남 인민 스스로의 힘으로 완전한 독립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일찍부터 인지하고 있었다.

그는 사실 베트남의 독립을 위해 여러 나라에 협조와 원조를 요청하기도 하고, 사상 노선을 채택한 과정에서 공산주의 노선을 따르게 된 것이다. 미국이나 유럽국가들이 베트남의 독립에 옹호적이였다면 지금의 베트남 역사는 또 달라졌을지 모른다.


이 호치민은 공산주의자로 널리 알려져있지만, 필자는 호치민이 공산주의자기 이전에 민족주의자라 말하고 싶다.

아직도 무의미한 사상 싸움에서 벗어나지 못한 대한민국의 극우파들은 호치민을 빨갱이, 통일을 위해 수많은 동포를 학살한 인간이라고 폄하한다. 좌파의 탈을 쓴 종북들은 호치민의 호 자도 모르면서 공산주의자라고 무조건적인 찬양을 하고 부터 본다.

그러나 호치민은 앞서 말했듯이 공산주의자가 아니라 조국의 독립과 통일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으로 사상을 채택한 냉철하고 이성적인 민족주의자였다. 


-인간 호치민

베트남 전쟁(vs 미국) 중 심장마비로 생을 마감 할 때 까지 호치민은 인생 전체를 조국의 진정한 독립을 위해 받쳤던 인물이다. 리더임에도 평민과 다를 것 없는 소박하고 근검한 생활을 하였다. 이웃에게는 독립투사, 민족주의자가 아닌 그저 친숙한 '호 아저씨'라고 불리었다.

이는 전 세계의 리더가 본 받아야할 덕목이다. 


<통일전쟁 당시 세계 초강대국 미국을 상대로 북베트남군-베트민은 게릴라 전술을 주로 사용했다. 베트남 병사의 체구에 겨우 맞는 이 땅굴 통로는 신출귀몰한 작전을 가능케 하였다. 미군은 이 땅굴의 존재를 발견하고 체구가 작고 민첩한 병사들을 보내 탐색을 하였으나, 워낙 길이 미로처럼 복잡하고 함정들이 많아 족족 실패하고 만다.

지금은 관광 목적으로 이 통로를 조금 넓혀 놔서 체험이 가능하다. 필자는 체구가 작은데도 불구하고도 이 길을 쪼그려 지나가는데 매우 힘들었다. 베트남 기후 특성상 고온다습하여 안에서 꽤나 힘들었다>


<전형적인 트랩, 독침이 살벌하게 깔려있다>


워낙 신비주의자였던 호치민은 독립의 거사를 위해 치밀하게 행동한터라 기록들도 거의 없고, 베일과 비밀에 쌓인 것들이 많다. 저자가 많은 사람들의 인터뷰와 직접 발로 뛰어다니며 구한 기록들이 전부이다. 

그래서인지 이 책이 국내에 번역 출간된지 벌써 16년이 되지만, 호치민에 관한 일대기나 평전은 아직 새로 나오지 않고 있다.


추가로 참고할 사항은 베트남 전쟁과 호치민을 알고 싶어서 이 책을 본 분이라면 다소 안 맞을 수도 있다. 베트남 전쟁 보다는 인간 호치민에 초점에 맞춰져있다.



900페이지가 넘는 이 벽돌책의 내용만을 리뷰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그래서 호치민의 생애에 대한 간략한 요약과 현재의 베트남에 대해 이야기 하였다. 호치민에 대해 궁금하거나 이 책에 대해 망설이는 독자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길 바라며 리뷰를 마친다.

YES마니아 : 골드 c*******i 2019.03.12. 신고 공감 7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