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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바뿐만이 아니라 인간 사회의 모순을 고발하는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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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접하는 쿠바 작가의 작품이고 쿠바의 추리 소설이다. 중남미 소설들은 모두가 알다시피 이해하기 어려운 환상 문학을 주로 추구한다. 우리가 알고 있는 작가들, <백년 동안의 고독>의 마르께스나 <픽션들>의 보르헤스가 이런 작품을 선보이는데 이들 작품은 읽어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난해하고 미로처럼 한번 빠지면 좀처럼 출구를 찾기 힘들게 만들어져 있어 독자의 머리를 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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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접하는 쿠바 작가의 작품이고 쿠바의 추리 소설이다. 중남미 소설들은 모두가 알다시피 이해하기 어려운 환상 문학을 주로 추구한다. 우리가 알고 있는 작가들, <백년 동안의 고독>의 마르께스나 <픽션들>의 보르헤스가 이런 작품을 선보이는데 이들 작품은 읽어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난해하고 미로처럼 한번 빠지면 좀처럼 출구를 찾기 힘들게 만들어져 있어 독자의 머리를 어지럽힌다. 그래서 중남미 작가의 작품은 그다지 선호하지 않는 편인데 출판사에 대한 믿음도 있고 또 내가 너무 영미권이나 프랑스, 일본 문학에 편중된 감이 있어 무게 중심을 균형 잡는다는 차원에서 읽게 되었다. 바깥의 소설이라는 시리즈 제목이 마음에 들기도 했고.   

 

쿠바 혁명 정부의 가면을 벗긴 미학적 추리 소설이라는 부제가 달린 이 작품은 어떤 면에서 <거미 여인의 키스>적 분위기를 느끼게 한다. 게이의 등장과 콘데에게 추리의 길을 알려주는 날개 꺾인 연출가인 예전에는 반동이었지만 십 년의 세월이 흐르자 문학계의 신적 존재가 된 알베르토 마르케스의 과거 회상 장면이 몽환적 환상을 자나 내 현실 도피적 분위기를 자아낸다. 쿠바의 현실은 비참함 그 자체인데 말이다. 혁명 직후는 좋았다. 꿈이 있었으니까. 그때가 콘데가 가고 싶어하는 어린 시절이다. 작가를 꿈꾸던 시절. 그의 친구 말라깽이가 아직 성한 두 다리로 다니던 시절. 지금 콘데는 형사가 되어 믿었던 동료의 부패를 목격하고 말라깽이는 앙골라 내전에 참가했다 휠체어 신세가 되어 뚱보로 앉아 있게 되어 꿈도 희망도 사라진 지 오래지만 그래도 살아가야 하는 목숨이기에 다시 한번 꿈을 꾸려 한다.   

 

아멜리 노통의 「적의 화장법」이라는 작품이 있다. 이 작품에서의 화장법이 뜻하는 것은 위장, 위선, 거짓 등등. 이런 뜻이다. 이 작품 「마스카라」에서와 마찬가지로. 마스크를 뜻하는 이 말들은 인간의 허상들을 말해 준다. 처음 읽는 쿠바 작가의 작품이다. 여장을 하고 살해당한 한 남자의 시신을 둘러싸고 살인자를 찾으려는 형사의 눈에 비친 쿠바의 오늘과 어제, 그리고 미래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미스터리 작품이지만 그 안의 한 연극 연출가의 비틀린 삶이 마치 액자 소설처럼 펼쳐져 쿠바, 그 자체가 쓰고 있는 가면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체 게바라」를 읽으면 자본주의에 맞선 혁명 국가, 카스트로의 나라로 생각될 수 있지만 이 작품 안의 정치와 상관없는 사람들의 삶을 보게 되면 그 혁명이라는 것이 누굴 위한 것이었나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한다.

 

출판사의 시리즈 제목이 바깥의 소설이니 우리 얼마나 영미권과 일본 편향적인지 알 수 있을 것 같다. 이 작품은 작가의 노벨라 네그라 4부작 시리즈 중 한 작품이라고 한다. 그런데 노벨라 네그라가 무슨 뜻인지는 모르겠다. 우린 모두 가면을 쓰고 산다. 어릴 적 나는 우리가 어떤 명찰을 달기 위해 세상을 산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리고 그 명찰을 어떤 것이든 달아야만 한다는 것이 무척 싫었다. 어느 사회나 마찬가지다. 사상이나 이념을 배제하고라도 사회를 구성하는 것에는 기득권자와 피 기득권자가 있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기득권자에 대한 피 기득권자에 대한 핍박은 절대로 사라지지 않는 것이다.

그러니 사회주의 혁명에 의해 탄생한 나라가 가난에 찌들고 내부적으로 부패하고 절망감에 쌓여 살수밖에 없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 아닐까. 단순하게 여장남자 게이의 살해 사건이 초점이 아니라 콘데 형사 주변 인물들이 쓰고 사는 가면을 통해 쿠바 사회의 모순을 고발하는 작품인 이 작품은 비단 쿠바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어떤 사회에도 적용되는 것임을 알 수 있었다. 우리 사회도 이런 가면이 수도 없이 많다. 그것은 어느 사회나 마찬가지일 것이고 절대 벗겨지지 않을 것이다. 어떤 자의 가면을 벗겼다고 안도해도 다른 사람이 그 가면을 이어 받아 쓸 것이고 지금의 나조차도 어떤 가면을 쓰고 있을 테니까. 단지 인정하지 않을 뿐.   

 

읽어보니 신선했다. 내가 알지 못했던 쿠바라는 나라의 정치 상황과 소시민의 일상을 알 수 있었다. 시거나 체 게바라, 아바나의 서구인의 추억으로 엿보는 쿠바가 아닌 내 눈으로 들여다보는 쿠바. 우리와 다르지 않은 그들. 작가가 북한이 아닌 남한에서 작품을 출판하고 싶다고 해서 감격했다는 말이 이질감이 느껴질 정도로 우리가 세계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얼마나 다양한 시각을 가져야만 할 지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가면이 아닌 본질을 파악한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도. 정말 권하고 싶은 작품이다. 

작가는 애써 작품에서 모든 이들에게 가면을 씌우고 벗기면서 또 다른 가면을 쓰기를 준비시킨다. 아마도 그것이 인생인 모양이다. 어떤 사회적 모순과 처해진 실상의 다른 점에도 불구하고 인간이 사는 곳은 어쩜 이렇게 똑같은지. 이것이 우리의 현실이 아니라고 과연 말할 수 있을까. 기왕 쿠바 작가의 작품을 소개한 만큼 책임을 가지고 시리즈를 모두 출판해 주시는 것은 어떨지. 이 작가의 다른 작품을 더 읽고 싶다. 다른 라틴 아메리카 작가들의 작품보다 읽기 쉬우면서 독특한 쿠바를 잘 나타내고 그러면서 공감할 수 있는 작품이었다.

d*****g 2009.09.07.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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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면의 카니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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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여장남자들은 모방을 통한 무한한 변신이라는 꿈을 실현시키지. 그네들의 변신은 실제로 존재하는 어떤 일정한 모델을 모방하는 변형이 아니라 무한한 가능성을 향한 변신이라는 점에서 구별되지. 사실, 게임이 시작되는 순간부터 그들은 어쩔 수 없는 현실을 인정하고 있거든. 그들의 변신은 날이 갈수록 좀더 도망치고 도착할 수 없는 어떤 현실을 향하게 되네. 다시 말하면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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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여장남자들은 모방을 통한 무한한 변신이라는 꿈을 실현시키지. 그네들의 변신은 실제로 존재하는 어떤 일정한 모델을 모방하는 변형이 아니라 무한한 가능성을 향한 변신이라는 점에서 구별되지. 사실, 게임이 시작되는 순간부터 그들은 어쩔 수 없는 현실을 인정하고 있거든. 그들의 변신은 날이 갈수록 좀더 도망치고 도착할 수 없는 어떤 현실을 향하게 되네. 다시 말하면 나날이 좀 더 여성으로 변하면서 궁극적으로는 그 경계를 뛰어넘어 여성보다 더 먼 그 어떤 존재로 변한다는 말일세. ... 둘째, 위장이 있네. 그것은 남자를 여자로 만드는 화장술로 표출되네. ... 그것은 남자라는 공격적 종족, 수컷이라는 짐승 무리 안에 있는 남성성 자체를 없애겠다는 태도에서 나오지. 마지막 행태로는 공포를 꼽을 수 있네. ... 그들의 경우에는 지나친 화장, 겉으로 확 드러나는 어떤 모습, 칙칙한 가면의 사용을 통해 다른 이들에게 공포를 주고 얼이 빠지게 한다네..." 이태원 게이빠에서 심심찮게 볼 수 있는 드랙퀸들에게 이런 해석을 내려보면 어떨까. 레오나르도 파두라의 소설 '마스카라'에서 작중 인물은 1969년도의 빠리를 활보하던 여장남자들에게 이런 설명을 붙인다. 도대체 어떤 소설이길래...? 궁금증을 풀기 위해 소설 속으로 좀 더 진입해보자. 이야기는 여장을 한 채 죽은 한 동성애자의 살인범을 찾는 주인공 형사의 추적으로 수직적 흐름을 타는 동시에 그 안에서 가면을 쓴 독특한 캐릭터들이 수평적으로 충돌한다. 게이임을 숨기고 사는 사람들, 부패한 고위경찰간부, 위선적인 공직자들... 한때는 사회주의 이상을 실현시키는 게토로까지 간주되었던 쿠바의 정치사회적 현실이 배경으로 작용하며 이들의 카니발은 더욱 탄력을 받아 춤춘다. 패러디, 상호텍스트, 카니발리즘 등의 기법을 이용해서 작가는 자신의 이념을 화려하게 설파하면서 추리소설 고유의 긴장을 늦추지 않음으로써 독자에 대한 배려도 잊지 않는다. 아직도 중남미문학하면 '마술적 사실주의'밖에 모르는 사람들이 있는가. 국내에는 다소 생소한 중남미 포스트 붐세대의 기수 파두라의 소설은 중남미 문학에 대한 환상을 여지없이 깨어줄 것이다. 무엇보다 이 소설의 백미는 작가는 죽은 동성애자의 여장행위를 마태복음 17장에 나오는 예수의 '영광의 순간'과 비유하고 있다는 점이다. 예수의 신성과 인간성이 동시에 드러나는 이 장면! "...예수께서는 베드로와 야고보와 그 동생 요한을 데리고, 그들을 따로 높은 산으로 이끌고 올라가셨다. 그리고 나서는 그들 앞에서 모습이 변하셨다. 그분의 얼굴은 해와 같이 빛나고 그분의 옷은 빛과 같이 희게 되었다.... 그리고 갑자기 구름에서 소리가 울렸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니 나는 그를 어여삐 여겼노라.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 제자들이 듣고 그들의 얼굴을 땅에 대며 몹시 두려워했다. 예수께서 다가가 그들을 만지시며 '일어나시오, 두려워하지 마시오' 하셨다. 그들이 눈을 떠보니 아무도 없고 예수님만 보였다." 그리고 작중 주인공의 설명에 귀를 기울여보라! "... 성경의 변모와 알렉시스(죽은 게이청년)의 변모는 마치 다시 찾아가고 있는 파우스티노 아라얀(게이청년을 죽인 아버지)의 집과 마르케스(게이청년의 정신적 지주였던 게이 극작가)가 사는 어둡고 습한 동굴같은 집이 보여주는 극명한 대비와도 같았다. 그러나 마지막 야행을 위해 여장을 한 알렉시스가 나온 집은 바로 마르케스의 어두운 집이었다. 이 두 생의 공간에는 도저히 좁혀지지 않는 심연이 있으며, 두 공간을 연결할 어떤 다리를 놓는다는 것도 불가능해 보였다. ... 그것은 빛과 어둠, 가난과 풍요, 고통과 기쁨의 양극과도 같았다. 그러나 알렉시스는 자신의 삶과 죽음을 통해. 삶의 기원과 종말이 속한 이 두 반대 세계를 용해시켰고 도저히 불가능한 끈으로 양쪽을 연결하고 있었다." 최근 인권위의 동성애관련 청소년보호법 개정권고 문제로 격렬한 반대의사를 표명했던 한기총이나 기독교 단체 일부에서 이러한 묘사를 보면 과연 무엇이라 말할지 궁금하다. 감히 종교를 모독했으니 이 괘씸한 청년을 죽인 그 청년의 아비는 용서받을 수 있을 것인가? 문학은, 아니 모든 예술은 자유로워야 한다. 문학이 사회적 장치에 구속당할 때 그것은 이미 문학으로서의 존재가치를 상실한 윤리지침서나 다름없다. 그리고 문학은, 현실의 삶을 반영하고 새로운 세계관을 은유할 때 그 존재근거를 찾을 수 있다. 문학이 벌써 죽어버린 게 아니라면...

[인상깊은구절]
"첫째, 여장남자들은 모방을 통한 무한한 변신이라는 꿈을 실현시키지. 그네들의 변신은 실제로 존재하는 어떤 일정한 모델을 모방하는 변형이 아니라 무한한 가능성을 향한 변신이라는 점에서 구별되지. 사실, 게임이 시작되는 순간부터 그들은 어쩔 수 없는 현실을 인정하고 있거든. 그들의 변신은 날이 갈수록 좀더 도망치고 도착할 수 없는 어떤 현실을 향하게 되네. 다시 말하면 나날이 좀 더 여성으로 변하면서 궁극적으로는 그 경계를 뛰어넘어 여성보다 더 먼 그 어떤 존재로 변한다는 말일세. ... 둘째, 위장이 있네. 그것은 남자를 여자로 만드는 화장술로 표출되네. ... 그것은 남자라는 공격적 종족, 수컷이라는 짐승 무리 안에 있는 남성성 자체를 없애겠다는 태도에서 나오지. 마지막 행태로는 공포를 꼽을 수 있네. ... 그들의 경우에는 지나친 화장, 겉으로 확 드러나는 어떤 모습, 칙칙한 가면의 사용을 통해 다른 이들에게 공포를 주고 얼이 빠지게 한다네..."
j******n 2003.05.10.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