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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북동에 가면 분위기 좋은 '수연산방'이라는 찻집이 있다. 고풍스러운 외관에, 내부도 꽤 운치가 있었는데, 이곳은 소설가 이태준이 살았던 곳으로도 유명하다. 이태준하면 한국 현대단편소설을 완성했다는 평을 받는 대단한 작가다. 그렇지만 해방직후 월북한 관계로 한동안 우리 문학사에서 언급조차 되지 않다가 1988년 월북문화인에 대한 해금이 이루어지면서, 대중들도 비로소 그 작품과 그 명성을 접할 수 있었다. 그 이태준이 여기에서 글을 썼으려나 수연산방 마당이 내다보이는 방에 앉아 이태준이 집필하는 모습을 상상하면서 차를 마셨던 기억이 있다.
내가 접한 그의 첫 저서는 소설이 아니라, '문장강화'인데, 이 책은 지금까지도 글쓰기 교범으로 꾸준히 읽히는 스테디 셀러다. 그만큼 이태준의 문장력은 일찍이 정평이 나 있었다.
'해방전후`돌다리'는 이태준 소설로는 처음 읽은 작품이었는데 실려있던 단편 열네 작품 중 이 '해방전후'를 집중해서 읽었다. 그런데 이 작품이 문학사에서는 가치있는 작품이라는 것은 알고 있지만 아무래도 70년전 작품이다보니 단어나 문장 형식이 옛스러워서 편하게 읽지를 못했다. 선뜻 그 의미가 와닿지가 않아서 세 번을 읽고 나서야 겨우 전체적인 의미를 파악할 수 있었는데, 읽고 난 첫 느낌은 주인공 현이 이태준 자신이라는 것과 해방직전과 직후 이태준의 자전적인 내용이구나 하는 것이었다.
주인공, '현은 무슨 사상가도,주의자도, 무슨 전과자도 아니었지만, 시골 청년들이 어떤 사건으로 잡히어서 사택수사를 당할 때 그의 저서가 한 두가지 나온다거나, 편지 왕래한 것이 한두 장 불거진다든지..' 하는 이유로 '저들의 수첩에 준요시찰인 정도로는 오른' 인물이다. 동대문서 고등계에서 현에게 왜 시국을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느냐며 질책하자 그는 마지못해 대동아 전기의 번역을 맡게 된다. 그리고는 일본에 유리한 전기를 자신의 손으로 주물렀다는 것을 자책하면서 일제가 잘해야 이삼년 버틸 것이라고 전세를 전망하며 더 이상 일제에 협력하지 않기 위해 서울을 떠나 강원도 산읍으로 내려간 것이었다.
이런 일은 비단 이태준만 겪은 일이 아니라, 그 당시 작가라면 피할 수 없는 일이었을텐데, 이태준은 담담하게 풀어가고 있다. 일제에 저항하지 못하는 현의 무기력이나 자괴감어린 심정이나 어떻게든 일제에 부역하지 않으려고 시골로 피해 간 그의 고심이 고스란히 전해져왔다. 하지만 시골 역시나 안전지대가 되지 못했다. 주재소에서는 수시로 그를 감시하며 그를 독촉했다. 현은 그곳에서 낚시하고, 김직원과 교유하며 소일하는데, 김직원은 일제에 타협하지 않는 기개를 보여준 지사였다.
주재소의 압박에 버티다 못한 현은 친일 문학단체에서 주최하는 집회에 참가하게 되지만 자신의 연설 차례가 되자 현장을 빠져나오고 만다. 처벌을 각오하고 한 행동이었지만, 그 며칠 뒤 일본이 항복하고 조선이 독립하면서 그는 아무런 해를 입지 않았다. 자신의 예견대로 파시스트 일제는 패전을 한 것이었다.
독립의 기쁨도 잠시 뿐 현은 17일 새벽 상경을 했는데, 그가 본 서울 정황은 불쾌하기만 했다. 정당이 난립하고, 찬반탁을 두고 좌우익이 대립하는 가운데..그가 좌익을 선택하는 과정과 정황이 그려지고 있었다. 이태준 작품은 담담하게 일상을 묘사한 듯 그래서 현실감이 느껴지는 쪽이었다.이 혼란한 시기에 문학인으로, 이념을 선택하게 되는 과정이 차분하고 조곤조곤 결코 격정적이지 않게 그려져 있었다. 자신의 옳음을 목청 높여 외치지도 않고, 피를 끓어오게 하지도 않았다. 그래서 이 시기에 나였다면 어떤 쪽을 어떤 이유로 택했을까? 생각해보게 하는 쪽이랄까. 강원도에서 '현'과 교유했던 김직원은 좌익을 선택한 '현'을 멀리한다. 일제시대에 그렇게 멸시를 받으면서도 상투를 고수했던 김직원에게 독립은 다시 왕조에 충의를 바치는 것을 의미했으니, 그로서는 당연한 선택이었을 것이다.
이태준은 그 누구보다 순수 문학을 옹호했던 작가였다. 그랬던 그가 자신의 이념적 노선을 선택하고 월북하기까지 얼마나 좌고우면하고 돌아가는 정황을 살폈을까. '현'의 시선과 발언에서 그가 당시 해방정국의 상황을 촘촘하게 살피고 있었고, 그 과정에서 왜 이 길을 택한 것인지 그 이유가 묻어 나왔다. 이 작품이 나온 것이 1946년 8월, 이때쯤 그가 월북한 것으로 알려져있는 것을 보면,'해방전후'는 그의 월북성명서나 마찬가지가 아니었을까.
순수문학을 옹호했던 그에게도. 미군과 소련군이 점령해서 각각 남북한으로 나뉘어진 나라, 두 강대국이 나서서 만들어진 분단 체제에서 회색은 설 자리가 마땅치 않았을 것이다. 분단체제가 가혹했던 점 중 하나가 이렇게 좌와 우 남과 북 어느 한쪽을 선택해야 하는 상황에 내몰았던 것이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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