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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요, 완전히, 까마득히 잊고 지낸 우리 고전 소설이예요. 어쩌다 이렇게 되어버린 것일까요?
초등학교 때 읽은 위인전집, 장화홍련전, 장끼전, 토끼전, 또 무엇이 있을까요?
그리고 고등학교 입시를 위해 읽었던 구운몽, 춘향전, 금수회의록, 유충렬전 또 얼마나 있나요? 고전 소설 분야의 신간 혹은 스테디셀러의 수위에 오르는 것은 대부분이 해외 고전 소설들의 얼굴이 된지 오래인 것 같아요.
국어 교과서에 실린 단편적인 몇 쪽의 내용, 한다는 것은 장르, 주제, 의의 따위의 분석과 암기. 그 때는 그게 진리같더니 이제는 웃기지도 않는 국어 교육의 현실을 떠올려봐요.
분분한 해석에서 가장 인지도가 높은 해석을 정답으로 삼는 여전히 그런 국어시험인가 하는 것이 궁금해지네요.
하지만 국어 교과서가 아니면 아마 우리 고전 소설이라고 이름 붙여진 작품과 아이들을 상봉시키기란 '공양미 삼백석에 인당수에 몸을 던진 심청이가 아버지 심봉사와 재회하여 심봉사가 개안하는 것' 만큼이나 어려운 일이 되지 않았나 싶어요.
뭐, 부끄럽게도 사두고서도 한참이 지나도록 읽지 않고 방치해둔 스스로의 모습도 부끄럽고;; 언제부터인가 한국 고전은 수준이 떨어진다는 생각을 하고 있지 않았나 싶어요. 분명 외국에 비해 저변의 확대가 어려웠던 문화적 배경이 결과적으로 풍부한 문학 작품이라는 유산의 부재를 불러오지 않았나 해요.
우수한 언어체계인 한글을 가지고서도 양반들의 언문 천시(언문이라는 말 자체가 한글을 낮추어 부르는 말이지만), 한문에 대한 끝모를 집착과 편애가 결국 이 사단을 일으킨 셈이겠죠. 그것이 못내 아쉽게 느껴졌어요. 그 시대의 사랑, 모험, 신분 상승에 얽힌 비화들 외국의 고전들 못지않은 풍부한 소재들이 있었는데 말예요.
아, 각설하기로 합니다. 서론이 너무 길었네요.
홍길동전에서 시작해서 춘향전을 거쳐 임진록까지 다양한 고전 소설들과 재회했어요. 홍길동전이야 유명한 '호형호부'를 하지 못함. 지금 봐도 재주 많은 홍길동이 서얼이라는 신분에 얽매여 그 능력을 펴지 못했음이 안타깝더라구요. 임진록을 보니 임진왜란을 진압한다고 파견된 청나라 장수가 수숩하고 돌아갈 때는 작은 나라에 인재가 많다면서 강산의 맥을 끊어놓고 간다는 부분이 나오더라구요.
참 시기도 질투도 많이 받은 민족이구나 했어요.
일본이 제일 먼저 했나 했더니, 얼씨구 청나라가 더 먼저했더군요. 작다고 무시할 땐 언제고 경계는 왜하는지 원.
춘향전에서는 눈을 돌리려해도 눈에 띈 것이 방자한 이도령의 태도였어요. 춘향을 처음 만난 날, 야밤에 춘향을 찾아가는데 이 수작하는 짓거리가 딱 거리낌없이 막대하는 태도 인 것이지요.
다른 양반네 여식이었어도 그랬을까? 싶더라구요. 뭐, 나중에 배신하지 않았으니 그러려니 해주지만 양반 의식의 뿌리가 어찌나 깊었던가 새삼 깨달았어요.
한중록이나 인현왕후전 계축일기와 같은 역사적 배경을 품고 서술된 소설을 읽으면서(사실을 중심으로 써서 소설이란 이름이 미안한 작품도 있지만요), 아, 역사의 그 때는 그랬지하는 학습효과를 본 것은 좋았습니다. 그랬더군요.
이번에 특히 눈여겨 본 것이 금수회의록이예요. 짐승들을 의인화해서 인간의 행태를 비판하고 자숙을 요구한다는 것은 알았지만 기독교적 색체가 그렇게 깊을 줄이야 누가 알았겠어요?(나만 몰랐을지도요 ^^;;)
하나님, 성경, 아담, 하와. 천지창조. 조목조목 동물들의 일화를 통해 사람을 비유하고 풍자하는 것도 재밌었지만 그 안에 녹여넣어둔 기독교적 색체를 발견하는 일도 흥미로웠어요.
우리 고전 소설이라는 제목을 지닌 책이 많지 않아요. 전부터 늘 외국 고전 소설만 읽는 것 같아 미안한 마음에 찾아봤었는데 청소년을 위한 어쩌구는 많지만 단행본으로 전문이 실린 것은 많지 않더라구요. 뭐, 어쩔 수 없다는 것은 알지만 조금 씁쓸하기도 했다는 이야기지요.
우리나라 고전 소설들도 사랑해주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