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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나서 박수치며 이렇게 말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소설은 소설일 뿐이니 슬퍼하지 말자" 고. 도대체 뭐가 그렇게 슬펐냐고 묻는다면, 동문서답 같겠지만 이 소설을 영화로 만들어 찬란한 여름의 끝자락에서 솔솔한 가을바람이 불어올 때 개봉했으면 좋겠다는 간곡한 소망을 전할 참이다. 전쟁의 상흔은 커녕 21세기를 2년이나 살고나서야 다음해 겨우 스무살이 된 나는 살아있었다면 우리 할머니의 언니 뻘은 되었을 두 여자, 앨리스와 마릴린의 삶이 너무도 투명해서 아름다웠고 그래서 아팠다.
[나와 마릴린]은 전쟁을 겪은 여자가, 전쟁이 멈춘 후 그 상처들이 고인 땅에서, 살아가는 이야기다. 앨리스라는 가명을 가진 한국 여자가 미래를 향해 과거를 살고있는, 서글프고 서걱거리는 모래알 같은 이야기다. 시대가 달라도 가족과 연인의 사랑을 갈구하는 어쩔 수 없이 나약한 존재가 여자라는 것을 설득하지 않아도 충분히 각인시키는 보석같이 빛나는 "여자의 이야기"다. 나는 읽는 동안 적어도 세 번 이상 가슴을 움켜쥐고 눈가의 촉촉한 물기를 닦으며 책을 펼쳤다 덮었다 했다. 전쟁의 비극을 묘사하여 눈물을 짜내려는 것이 작가의 의도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서럽고 억울한 감정이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북받쳐 올랐다. 산산조각난 유리의 파편처럼 여기저기 흩뿌려진 약하디 약한 앨리스가 혼자 감당해내기 어려운 사연을 혼자 안고 있었을 세월을 생각하면 그녀를 단지 전쟁이 일어난 땅에서 피해입은 불쌍한 여자,로 치부해서는 곤란하다. 앨리스는 약했지만 강했고, 죽으려 했지만 죽어지지 않았고, 사랑에 솔직한만큼 끔찍한 배신에 몸부림치던, 전쟁 때문에 송두리째 변해버린, 비극적인 삶의 주인공이다. 한편, 마릴린은 한국전쟁 직후 주한미군을 대상으로 한 위문공연을 위해 일본 신혼여행 도중 남편을 두고 한국을 방문한 섹시 아이콘의 대명사, 우리가 아는 바로 그 마릴린 먼로다. 앨리스는 마릴린의 통역관으로 함께한, 짧고도 굵은 3박4일의 만남을 통해 비로서 자신의 상처와 마주하게 되고 그제서야 상처는 서서히 치유되기 시작한다.
모든 이야기가 그렇듯, 세상의 모든 비극은 사랑으로부터 온다. 하지만 [나와 마릴린]의 비극은 사랑이자 전쟁이다. 알다시피 사랑과 전쟁은 의지가 아니다. 행여 전쟁 때문이 아니라도 앨리스와 여민환의 사랑은 충분한 해피엔딩이 아니었을 가능성이 높다. 아무리 뜨겁고 간절하게 사랑했던들, 그들의 사랑은 당당하지 못한, 숨겨야 할 불륜에 불과했다. 앨리스는 조셉과의 사랑 아닌 사랑으로 여민환에게 상처를 주기도 했다. 그 시절의 앨리스는 사랑하고, 사랑받고 싶지만 그에 만족할 수 없는 불완전한 여자였다. 어쨌거나 사랑하지 말아야 할 남자를 운명처럼 사랑한 불행한 여자일 뿐이었다. 때마침 그녀에게 닥친 전쟁은 여러 사람의 목숨을 앗아가기도 했지만 남은 사람에게 낙인처럼 질기고 고된 상처를 남기고 갔다. 앨리스와 여민환과 조셉은 전쟁이 끝난 땅에서 비로소 다시 만나지만 그렇다고 해서 다시 예전의 관계로 돌아갈 수는 없다. 전쟁은 많은 것을 변하게 했고 변할 수 없는 것까지 변하게 했다. 삶에는 분명 지나면 되돌릴 수 없는 것들이 있다. 앨리스의 죄책감은 전쟁 때문이 아니라 사랑 때문이다. 그것이 바로 [나와 마릴린]이 전쟁을 배경으로 하지만 전쟁소설이 아닌 이유다.
다시 마릴린을 보자. 그녀가 발딪는 곳마다 열광하는 남자들이 있지만, 정작 그녀는 수면제를 먹지 않으면 잠을 잘 수 없고, 금발과 두꺼운 화장이 아니면 세상에 설 수도 없는 부조리한 존재다. 고작 신혼여행지에 신랑을 두고 혼자 공연을 와야만 하는 섹스 심벌의 여가수일 뿐이다. 이 시대가 아니, 우리가 살아가는 시간과 공간이 여자에게 기대하는 것은 과연 무엇인가. 그런 세상에서 여자는 어떤 모습으로 기대에 부응하며 살아갈 수 있을까. 물론 여민환의 아내와 딸도 가엾고 앨리스를 혼자 사랑하다 거절당한 박구용도 안됐지만, 무엇보다 소설 속 앨리스가 되어 아파하고 절망하며 마지막 페이지를 덮었기에, 그녀와 마릴린의 이별과 서로로 인해 한층 성숙해졌을 두 여자가 걸어갈 앞으로의 삶에 기꺼이 박수를 보내고 싶다.
전쟁은 있어서는 안 될 아픔이지만, 전쟁이 앨리스를 더욱 단단해지게 했음을 안다. 더불어 하루하루를 산다기 보다 견디고 있던 그녀에게 마릴린이 어떤 존재였을지도 짐작할 수 있겠다. 그러고보니 오늘을 청춘의 세대로 살아가고 있는 내가 상상도 할 수 없는 아픈 역사를 온몸으로 겪어낸 세대가 점차 사라지고 있다. 겪어보지 않았으면 말을 말라. 짐작도 할 수 없는 어떤 상처를 감히 이해한다고 말하지는 않겠다. 그저 진심으로 앨리스를 이해하고 함께 아파하려 했다고 말하고 싶다. 어쩌면 때때로 그녀의 삶을 욕심내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겪지 못한 일에 대한 환상과 질투와 아름다움이라니 나는 질식할 것 같다. 아픔을 직잠할 수 없으니 가능한 일이다. 그게 아니면 어떻게 상처조차 아름답다 말할 수 있겠는가. 여자이기 때문에, 여자라는 이유로, 여자이고 싶어서, 여자로서 살아 낸 그녀들은 진정 위대하였더라. 아직도 가슴이 뛰고 있다. 결국 나도 아름답고도 비극적인, 그러나 환멸과 멸망을 원하지는 않는 그저 나약한 여자인가 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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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주로 감아 탈색된 머리, 짧은 미니스커트, 핏기없는 얼굴로 미군 부대로 들어가는 그녀, 앨리스. 겉모습을 보며 사람들이 짐직하는 바와 달리 미군의 타이피스트다. 차가운 바람을 뚫고 사무실로 들어와 몸을 녹일 때쯤 상사 해미트가 들어와 앨리스에게 소식을 전한다. 마릴린이 온다구! 그녀를 통역해 줄 사람을 추천하라길래 내가 앨리스를 추천했지!라며. 상기된 표정의 해미트와는 달리 앨리스의 표정은 얼떨떨하다. 미군들에게 신과 같은 존재로 떠받들어지는 마릴린이 그녀에게는 큰 의미가 없다. 그녀의 영화를 제대로 본 기억도 없으니. 다만 그녀를 보기 위해 몰려든 수많은 사람들 속에 있어야 할 일이 걱정이다. 앨리스. 앨리스.J.Kim으로 불리는 그녀의 한국 이름 김애순. 그러나 한국전쟁의 끔직한 기억 이후 그녀는 더이상 그 이름을 쓰지 않는다. 그녀의 발길을 따라 조금씩 그녀의 주변 사람들과 함께 그녀의 지난 과거들이 허물을 벗는다. 그와 함께 맥주로 머리를 감아 탈색시켜 감추는 하얀 새치들과 약간은 천박해 보이는 옷차림, 그외 어딘가 이상한 그녀에 대한 의문들이 하나둘 대답을 찾아간다. 지금의 그녀 모습이 왜 이런지 그 이유를 찾아가는 것이 이책의 행로다. 한국 전쟁 이후의 지금과 전쟁 이전의 과거 시간이 교차되며 진행되는 이야기는 유부남 공산주의자 여민환을 사랑한 그녀와 어느날 갑자기 그들 곁에 나타난 조셉, 그리고 한국전쟁이라는 시대의 비극이 그들 사이를 끼어들면서 얽히고설킨다. 그리고 앨리스, 그러니깐 한창 젊음을 피어내던 여인 김애순이 왜 그렇게 시들었는지, 무엇 때문에 미쳐갔는지를 찾아간다. 그녀의 파란만장한 삶을 따라가며, 치정과 배신의 이야기 뒤에 숨어 있다 그들을 덮치는 시대의 비극이 그대로 독자들에게 전해진다. <나와 마릴린>은 앨리스로 대표되는 비극의 시대를 살았던 여인들의 이야기다. 아무렇지 않았던 날 아침에 전쟁이 나고, 공산주의자에게 끌려 가 하루종일 스탈린의 초상화를 그리고, 납북과 탈출과 수용소를 거치면서 수많은 사람들이 죽고 죽이는 장면을 목격하면서 미칠 수 밖에 없었던 한 여인의 이야기다. 그리고 그녀를 포함해 그 아픈 시대를 살아야 했던, 어떻게든 견뎌야 했던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다. 그러나 일본으로 떠나자는 여민환과 조셉의 권유를 마다하고 한국에 남겠다는 앨리스를 보면서 절망 속에서 새로운 희망을 찾는 우리들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이지민 작가의 <망하거나 죽지 않고 살 수 있겠니>를 원작으로 했던 영화 <모던보이>를 흥미롭게 봤었다. 워낙 기대가 컸던지라 조금 실망스러운 면도 있었지만, 암울했을 거라고만 생각했던 일제강점기 시대에 모던보이라는 화려한 세계가 있었다는 것은 새로운 발견이었다. 식민시대를 새로운 시점으로 보았다는 발견의 기쁨이랄까. 그 작품을 아직 책으로 만나보지 못한 상태에서 <나와 마릴린>을 먼저 읽게 됐다. 이번에는 6.25다. 암울했던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의 모습과 그속에서 새로운 면을 끄집어 내는 작가의 시선이 읽을수록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조만간 책장에서 아직 나를 기다리는 소설 <모던보이>를 만나봐야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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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이 지나간 자리, 지금 생각을 해 보면 경험을 해 보지 못했기 때문에 최소한 그 당시의 느낌을 고스란히 안고 살아간다고 감히 말할 수 없는 일이다. 그도 그럴 것이 한참 태어나기 전이었고 기억할 수 있는 그 무엇도 내게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러 책을 통해 당시의 느낌을 고스란히 기억하고 있다는 것이 참 신기한 일이다. 그리고 묘하게도 알아야 할 것과 모르고 그냥 지나쳐야 하는 것에 커다란 구분을 짓는 나에겐 이 책이 그래서 더 흥미롭게 느껴졌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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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나와 마릴린>을 읽기 전에 작가의 전작인 <망하거나 죽지 않고 살 수 있니>를 먼저 읽었다. <망하거나 죽지 않고 살 수 있니>는 문학동네 작가상을 수상한 작품으로 영화 <모던보이>의 원작이기도 하다. 영화가 한창 개봉될 무렵 이 책에 관심이 생겼다. 이미 그 한참 전에 수상 소식을 들었고 다른 이들의 서평을 보기도 했지만, 막상 이 책<망죽살>을 사려하니 품절이었다. 아마도 <모던보이>라는 새 이름으로 출간하기 위함인 듯했다. 왜 그리도 원래 출간된 책이 갖고 싶었는지 모른다. 각종 중고책 사이트를 뒤져서 원제 그대로인 <망하거나 죽지 않고 살 수 있니>를 손에 넣고 얼마나 흐뭇하던지...... <나와 마릴린>을 읽기 전에 꼭 <망하거나 죽지 않고 살 수 있니>를 먼저 읽고 싶었다. 어쩌면 작가에 대한 이해가 더 쉬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는지도 모를 일이다. 두 작품 모두 가독성이 대단했다. 책의 본문을 읽기 전에 앞뒷날개를 읽으면서 책의 내용을 상상하곤 하는 나는 어서 빨리 책을 펼치라고 재촉하는 목소리를 들은 것 같기도 했다. 펼친 지 한 시간이 지나면 책의 중반을 휙 넘기곤 하는 것을 보면서 나의 예감이 잘못된 것이 아님을 확신했다. 두 책을 연거푸 읽으면서 묘한 혼란을 느꼈다. 작가의 나이는 일제시대나 한국전쟁과는 거리가 멀다. 오히려 작가보다는 내가 더 그 역사와 가까움(아주 약간이지만)에도 불구하고 어쩐지 할머니가 이야기해주는 듯한 느낌도 들었다. 그만큼 철저한 고증이 뒷받침되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망하거나 죽지 않고 살 수 있니>를 읽으면서 경성의 모던걸과 모던 보이들의 생활을 상상하고 <나와 마릴린>을 읽으면서 포로 수용소와 눈보라가 휘날리던 바람찬 흥남부두를 어렵지않게 떠올릴 수 있었다. <나와 마릴린>의 화자인 앨리스는 요령부득의 여자다. 미군부대의 타이피스트인 그녀는 양공주들처럼 맥주로 머리를 감아서 우중충한 머리색깔을 하고 과거를 숨긴다. 부호의 셋째첩의 딸이면서도 아버지에게도 어머니에게도 버림받고 홀로 자란 애순은 지나간 옛사랑과 연관된 상처들로 자살 시도와 약물 중독의 황폐한 생을 보낸다. 어느 날 미군 위문 공연을 오게되는 당대 최고의 스타 마릴린 먼로의 통역을 맞게되면서 그녀는 잊고 싶었지만 잊지 못해서 삶을 망치게 되는 과거와 직접 대면하게 된다. 특이한 소재와 생생한 묘사가 한 장의 사진에서 비롯되었다는 작가의 말은 작가를 지망하는 많은 평범한 이들을 절망케할 수 있다. 어쩌면 작가란 하고 싶은 말들을 가슴 속에 담은 채로 태어나는 것은 아닐까? 그들의 가슴 속에 켜켜이 쌓인 그 많은 이야기들을 이 세상에 기어이 풀어놓아야 업보에서 해방되는 것처럼 훨훨 자유롭게 살 수 있을 지도 모른다. 마치 하늘이 내린 형벌을 받은 날개 잃은 천사처럼 말이다. 천사가 아닌 평범한 우리는 어쩌면 불가능한 꿈을 꾸고 있는지도 모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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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이 끝난 직후를 배경의 한국이 이 소설의 배경이자, 두 여인의 현실과 닮아 있는 듯 보여 졌다. 닮은 듯 다른, 다른 듯 닮은 앨리스와 마릴린, 어떻게 보면 앨리스의 경우는 마릴린의 경우처럼 눈에 띄는 유명함이나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지는 못할지는 모르겠지만, 책을 읽다보면 그들이 어딘가 닮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전쟁이 끝이 난 한국의 상황이 그리 좋을 리는 없다. 어떻게 보면 외롭고 쓸쓸하며 아프기도 한 이 땅에 그만큼의 기억과 아픔을 간직하고 있는 앨리스가 미군을 위해 일을 해 가며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다. 그림을 그렸던 과거와는 단절한 채 그녀는 타이피스트로 살아가고 있다. 또한 그녀의 모습이 안쓰러웠는지 그녀에게 지나치게 따뜻한 애정을 보여주는 것은 아니지만, 그런 그녀를 돌봐주고자 하는 이들도 있다. 그런 그녀에게 어느 날 새로운 일이 주어지게 되는데, 그것은 주둔하고 있었던 미군을 위해 위문 차 한국을 방문하게 되는 마릴린의 통역을 하게 되는 일이었다. 그렇게 그들은 서로 만나게 된다. 이 책은 어떻게 보면 조금은 통속적인 전개 방식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었지만, 그럼에도 그런 부분들에 대해 신경 쓰지 않을 수 있었던 것 같다. 주인공의 현실이 녹록치 않음에도 불구하고 책을 읽어나가는 속도는 조금씩 빨라져갔던 것 같다. 처음 “나와 마릴린”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아마도 전쟁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는 점, 또한 여인의 모습을 통해 그 모든 것들을 설명하고 보여 주고 있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던 것 같다. 가족이 아닌, 여성, 그리고 사랑과 관련된 기억들이 이제까지와는 조금 다른 그 시기의 느낌을 전해줄 것 같은 기대가 있었던 것 같다. 또한 어떻게 보면 조금은 가벼운 느낌이 드는 부분도 있었지만, 그럼에도 충분한 것들을 전달했다는 생각이 든다. 오히려 무게가 줄어들었음으로 인해 현재의 시점에서 그 시간들을 보다 충분히 느낄 수 있었던 것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서서히 스며드는 감정들, 조금은 빠르게 읽히고 있는 글 속에서도 그 감정들이 책의 속도를 따라 떠내려가는 것이 아니라, 가라앉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충분히 이해하기에는 그 시대에 대해서도, 그리고 그 상황에 대해서도 또한 사랑에 대해서도 많이 경험해보지 못했지만, 그럼에도 이해가 아닌 그냥 그렇게 다가오는 느낌들이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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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전쟁시 유엔군과 북한 포로 사이에 선 여자 통역사의 사진, 그리고 6.25전쟁 직후 미군 위문공연을 온 마릴린 먼로의 사진.
두장의 사진에서 출발되었다는 이야기.
무언가 굉장히 매력적인 소재가 아닌가? 전쟁으로 아수라장이 된 한국, 그 곳을 방문한 빛나는 세계의 연인과 그리고 시끄러운 시대의 한 곳에 오롯이 선 커리어우먼.
멋진 소재. 이야깃거리. 하지만 이야기는 심심하고, 빛나지 않았다.
좀더 깊이 깊이 들어갔더라면 매력적인 이야기를 만날 수 있지 않았을까하는 이야기를 좋아하는 이의 입장에서의 안타까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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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운 표지처럼 이 책은 우리가 잊고 싶은 시절의 이야기다. 삶이 이렇게 힘들고 죽지 못해 살고 살기 위해 죽어라 하는 그러한 이야기라고 생각을 했다. 하지만 이 책을 다 읽고 난 지금은 전혀 생각이 다르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그녀 바로 앨리스.J.Kim이라는 여자이다. 맥주로 머리를 감아야 하며 옷도 남들이 이상하게 생각하는 그러한 옷들을 입고 미군부대로 출근을 하는 여자 미군부대에서 커피를 마실 수 있어서 너무나 행복한 여자 그저 그러한 여자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녀는 무서운 전쟁을 겪으면서 지금은 이렇게 나마 살아 숨쉬고 있다. 하지만 그녀의 과거의 남자들의 이야기가 나오면서 이야기는 더욱 재미있어 진다.
아마 불륜이라 더욱 재미있겠지만 그녀의 사랑은 진실했다고 말하지만 진실은 어디에도 찾아 볼 수가 없다는 사실이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사랑이라는 젊음으로 그들의 행복은 단지 쾌락일 뿐이라는 생각을 했다. 앨리스는 미군부대에서 일을 하면서 아주 중요한 일을 하게 되는데 바로 마릴린 먼로의 통역을 해주면서 스타의 고뇌도 알 수가 있었다. 사실 나는 마릴린 먼로의 이야기보다 그녀의 과거의 이야기에 많은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처음 알고 있는 이야기는 그녀의 과거를 전혀 알 수가 없다는 것이다.
그저 동경유학파이고 그림을 그리는 여자이며 유부남를 사랑하고 유부남의 친구와 섹스도 하는 그러한 여자 .... 전쟁으로 그녀는 살기 위해 북한의 그림 쟁이가 되기도 하고 미군의 일을 도와주는 사람이 되기도 한다. 바로 그러한 그녀는 왜 살고 있는지 매우 궁금해 지는 여자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녀의 진실은 유부남과 헤어지면서 다시 이야기가 시작한다. 한 장의 편지 바로 한 장의 편지의 의미는 무섭기도 하고 저주스럽기 까지 하다. 만약 전쟁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한 장의 편지는 그저 장난의 편지일 뿐일 것이다. 이 책을 다 읽었지만 마음이 아프다. 전쟁이 얼마나 무서운지 알 수가 있는 이야기들은 지금의 나의 세대들은 잘 알 수가 없는 이야기라 그런지 그저 책으로만 느낄 수 있다.
이 책을 다 읽고 나서 작가에 대해 다시 한 번 더 자세히 읽어 봤다. 모던보이의 작가이기에 더욱 관심을 받았는데 이제는 '나와 마릴린'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이지민 작가에 대해 더욱 많은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녀의 이야기들은 전쟁 전의 시대에 있었던 '모던보이'처럼 지금의 이야기 또한 그 시대와 전쟁의 아픔 시대를 이야기 하고 있기에 작가의 지식에 대해 다시 한 번 대단함을 느끼게 되는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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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한국전쟁 속의 삶을 그리고 있다. 작가는 전쟁전후 그리고 있다고 하지만 나는 이 책이 여성을 그리고 있다고 생각한다. 여성의 삶을 전쟁이 관통할 때 어떻게 되는가? 제목이 보여주듯이 두 여성의 삶이 대조되거나 동일시 되면서 여성의 전형을 보여준다. 마릴린으로 대변되는 미녀의 화려한 삶, 전쟁 중에도 미녀는 모두의 사랑을 받는다. 아니 전쟁으로 인해 더욱 조급하고 불안한 남성들의 마음이 더욱 간절히 사랑을 보낸다. 또 다른 여성 Alice. J. Kim. 이상한 도시에 살아남게 된 Alice. 자신의 이름을 숨기고 과도기에 걸맞는 Alice라는 낯선 이름으로 살아간다. 일본이 물러간 자리에 미군정이 자리잡다가 다시 인민군이 자리하고 다시 국군이 오지만 그녀에게는 이 모든 것이 자신의 삶을 변형시키는 이상한 사건들일 뿐이다. 이념도 사랑도 의미없이 흐릿해진 그녀에게는 상처가 너무 많은 도시 서울은 자신을 닮은 듯 느껴진다. 위선을 가장하고 아름다움을 가장하기 보다는 차라리 위악을 가장하고, 나이보다 늙어버린 모습을 내보이고 다니는 여자라고 하기에는 인생이 너무 슬픈, 너무나 많은 것을 겪어버린 앨리스는 두 남자를 한꺼번에 사랑할 수 있었던 치기어린 애순이 더이상 아니다. 여자들의 삶은 확실히 더 질기고 더 강하고 더 슬픈 것 같다. 전쟁이 남자들의 놀이터라면 여자들에게는 시련이고 형벌이다. 능욕당하거나 스스로 죽거나 혹은 목숨을 바쳐 싸운 그 시대의 여성들, 모성들을 탄탄한 문장력으로 잘 그려내었다. 아름답지만 슬프고 때로 당돌한 문체는 전쟁이라는 무대를 더욱 잔혹하게 느끼게 해주고, 대단한 흡입력이 있다. 우리가 순간순간 서로에게 건네는 연민과 분노를 그녀는 잘 표현해낸다. 특히 상처를 그녀만큼 잘 잡아낼 수 있으랴. 상대와 마주잡은 자신의 장갑이 너무 더러워서 상처받는 여성의 마음, 자신의 신발을 뺏긴 것보다도 구멍난 스타킹이 드러난 것이 더 화나는 여성의 마음을 그녀는 능란하게 그려낸다. 과장된 은유와 직유법으로 그녀는 상처받은 영혼들이 자신을 숨기는 방법을 다 알고 있다는 듯이 너무나 누추하고 초라한 그래서 너무나 인간다워서 징그러운 진실을 그대로 드러낸다. Alice J Kim이 한국전쟁의 중요한 순간을 찾아 서울, 부산, 거제도, 흥남부두 까지를 미친년이 되어 싸돌아다닌 것은 좀 작위적이긴 하다. 허나 어쩌랴 그것이 바로 주인공인 것을. 가장 가슴 아픈 역사의 페이지들을 찾아 Alice J Kim에게 엮어준 이지민 작가의 구성력에 박수를 보낸다. 뒷면에 붙인 참고문헌 목록은 아마도 탄탄한 고증을 거쳤다는 작가의 자만심일지 모르겠다. |
![]() "확실히 나는 아름다움과는 거리가 먼 모습이었다. 아름답다기보다 견딘다는 말이 어울리는 모습이었다. 견디는 자만이 아름다움의 기회를 갖는다. 어느 책에서 본 이 문구를 나는 벌써 몇 년째 의혹에 시달리며 몸소 시험해보고 있는 중이다. p.13"
전쟁이 끝난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 그녀는 오늘도 죽음을 생각하면서 출근을 한다. 얼굴에는 아낌없이 분가루를 바르고, 낡은 스타킹에 구두코가 닳은 슈즈, 구멍 난 레이스 장갑, 거기에다 맥주로 감아 노랗게 탈색된 머리가 유난히 눈에 띈다. 사람들의 따가운 시선은 마치 그녀가 '미군들이 쓰다 버린 인형' 일 거라고 생각하며 손가락질 하는 듯 하다. 하지만 그녀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과는 달리 미군부대에서 번역일을 하고 있다. 김애순이란 본명보다 앨리스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것을 더 편하게 느끼는, 전쟁으로 인한 깊은 상처를 가진 여인이다.
전쟁전만 해도 일본에서 그림을 공부하며 귀하게 자랐던 앨리스는 귀국 후 미군정 공보처에서 일하던 여민환과 격정적인 사랑에 빠지게 된다. 하지만 유부남이었던 여민환은 가정을 버릴려는 의지가 없었고 그런 사실이 앨리스로 하여금 복수를 결심하게 만든다. 그녀가 받았던 상처만큼 그도 마음이 아프기를 당혹해 하기를, 단지 그 정도만 바랬을 뿐이었다. 그녀는 몰랐던 것이다. 한순간의 치기어린 행동이 전쟁이라는 변수와 맞물리면서 이토록 엄청난 결과를 가져오게 될줄은... 그로인해 너무나 오랜 세월을 고통속에서 보내게 될줄은 정말 몰랐던 것이다.
"하얀 눈가루가 꽃잎처럼 날리고 마릴린 먼로는 무대 한가운데 서 있다. 그녀의 블론드는 지금 이 시간 모든 브라운과 레드와 블랙을 무의하게 만든다. (중략) 열이 나고 아플수록 그녀는 무대 위에 서야 한다. 외롭고 고독할수록, 오해받고 거부당할수록, 그녀는 사람들 앞에 있어야 한다. 어쩌면 그녀는 한 남자의 사랑도 받지 못하면서 모든 남자를 사랑해야 하는 운명인지도 모르겠다. (p.95)"
앨리스는 때마침 한국에 위문공연을 온 마릴린 먼로의 통역을 맡아 3박 4일의 일정을 함께 하게 된다. 그런데 앨리스와 마릴린... 이상하게도 닮았다. 만인의 연인이지만 외로움에 움츠러든 세기의 스타 먼로와 전쟁으로 인해 산전수전 다 겪고 정신줄까지 놓아버렸던 적이 있는 앨리스가 묘하게도 닮은 것이다. 화려한 의상과 짙은 화장으로 외로움도 감추고 슬픔도 감추고 상처도 감춰야만 하는 생활, 두 사람은 상대방의 아픔과 삶에 대처하는 방식에 공감하며 말없이 서로를 보듬어 준다.
무수히 많은 책에서 전쟁과 사랑을 주제로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다. 전쟁의 검은빛과 사랑의 핑크빛은 너무나 강한 대비를 이루면서 독자들의 가슴을 울린다. 이 책에서는 특히 섹시함의 대명사로 손꼽히는 마릴린 먼로를 등장시킴으로써 더욱 강열한 느낌을 전달하고 있는데, 마릴린과 앨리스가 동질감으로 이어진 모습을 통해 화려함의 이면에 감추어진 인간의 모습은 다르지 않다는 것을 생각하게 한다. 또한 폐허 속에서도 밤마다 댄스홀을 찾는 사람들을 보면서 '미친듯이 살아가는' 치열함이랄까 슬픔을 잊기위해 몸부림치는 아이러니가 느껴진다.
전쟁에 대한 아이러니는 그 시대만의 것은 아니다. 오늘날 우리 사회는 일제 강점기가 남긴 흔적은 많아도 전쟁의 흔적은 찾아보기 어렵다. '먹고 사는 것'에 대한 고민이 줄어들고, 삶의 질을 고민하는 시대가 오면서 때론 물질적 풍요가 '휴전'이라는 상황을 잊어버리게 만들기도 한다. 전쟁을 겪은 세대는 점차 줄어들고 젊은 세대들은 전쟁을 영화나 소설 속에서만 만나게 된다. 전쟁을 떠올릴 때, '사랑을 애틋하게 만드는 배경' 쯤으로 이해하지 않기를, 전쟁으로 인해 이 땅이 얼마나 피폐해 졌으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희생되었는지, 그리고 살아 남은 자들의 삶이 어떠했는지를 떠올려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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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하게도 한국전쟁 시절을 배경으로 한 책을 읽으면 어딘지 모르게 가슴이 먹먹해지고는 한다. 이 책 또한 내게 그런 느낌을 다시금 느끼게 한다. '사의찬미'노래와 박완서님의 '나목'이 내가 처음 접한 작품들이어서 언제나 그 기억된 느낌이 다시 되새김질 되는듯 했다.
어려운 시기, 전쟁까지 일어난 이 땅에 아버지에게서 버림받은 엄마의 딸로 태어나 자신있게 살아가기란 그리 쉽지 않았을거란 건 누구나 짐작이 간다. 하지만, 애순은 일본까지 그림 공부 유학을 한 그야말로 그당시의 엘리트 여성이다.
일본에서 유학한 그녀 애순은 엘리트 남자를 만나지만 그 남자는 유부남. 지금 같은 시대라면 만나고 헤어지는 것이 자유롭겠지만, 전쟁통에 남녀가 만나 둘만의 사랑에만 집중하기에는 '사상'과 '관습'이 너무 그들 주변을 꽉 채우고 있다.
표지의 앨리스 모습은 그야말로 섹시미, 촌스러움, 약간은 비장한 싸구려 냄새까지도 표현해내고 있다.
작가의 한국전쟁당시 자국의 군인들을 위로하기 위해 방문한 '마릴린과 그녀 옆의 통역사' 그 사진에서 나온 상상력은 그렇게 나를 전율하게 한다.
극한의 상황에서 죽지도 못하고 살아남은 그녀는 머리가 하얗게 새버리고, 그런 죽지도 못하는 자신의 상황을 받아들이며 살기에는 수면제로도 부족하다. 그런 그녀가 만난 마릴린은 화려한 모습을 지켜내며 자신의 직업에 충실함을 보여준다. 그런 모습을 보는 앨리스는 마릴린과 함께 [여전사]로 불려도 될만큼 장한 대한의 딸 모습을 보여준다.
이 소설을 많은 오늘의 젊은이들이 읽고 산다는 것은 자신을 책임지는 것이며, 산다는 것 그 자체가 전쟁을 겪는 것이지만, 많은 문제를 헤쳐나가는 삶이야말로 진정한 승자의 삶이라는 것을 배웠으면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