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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마지막 장을 덮은 후 곰곰히 생각해본다. 이 책의 제목인 함정이라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함께 적혀 있는 영문 제목인 breaking 이란 또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사전상으로는 연관성이 없는 breaking 과 함정이라는 두 단어 사이에는 도대체 무슨 연관성이 있어서 함정이라는 이름으로 이 책을 번역 출간한 것일까. 장소미상, 국명미상의 조그마한 나라가 있다. 대통령이라는 인물이 등장하니 나라는 틀림없는 나리일 것이다. 그러나 그 나라는 실제로 인물이 활동하는 구체적인 공간이라기보다는 등장인물들의 사유를 펼치기에 알맞게 고안된 적당히 작고, 너무 작지는 않도록 꾸며진 불명료한 공간일 뿐이다. 사람들이 등장한다. 여러가지 직업을 가진 사람들, 적들. 대통령이었던 사람과 쿠데타를 일으킨 사람. 그리고 그들과 연관된 여러가지 사람들. 사실 누가 누구인지, 누가 누구와 어떤 관련성을 가진 사람인지는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읽지 않으면 제대로 파악이 되지 않는다. 모호하고 애매하고 복잡한 관련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모호함을 통해서 저자가 표현하려고 하는 것은 오히려 더욱 분명히 드러나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책을 일독하고 책장을 덮은 후 제일 먼저 머리속에 떠오르는 막연한 관념이 사라지기 전에, 그 느낌을 적으려고 곧바로 컴퓨터 앞으로 달려와 글을 적어나가면서 막연하던 것들이 점점 더 구체화 되어가는 것을 느낀다. 지금 내가 느끼는 느낌은 바로 함정에 관한 것이다. breaking 이라는 단어로 표현할 수 있는 느낌이기도 하다. 그 두 단어가 공통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어떤 느낌. 사람과 사람 사이에 이루어지는 허망한 기대와 배반들, 무엇을 위한 것인지 알 수 없는 공허함. 시간을 열정으로 채워넣어 무엇을 향하영 다가갔을때 마침내 느껴지는 그 목표의 무의미함. 쿠데타로 정권이 바뀌고. 정권이 바뀌고도 실제로 바뀐 것은 아무것도 없고, 사람들은 복수를 위해 노력하고, 때로는 그 복수가 애당초의 목표를 잃어버리고, 사랑하는 사람들이 그 사랑이라는 지고의 가치가 땅바닥에 굴러다니는 비천한 것처럼 쓸모없는 것이라는 것을 느끼고, 세상은 패러글라이드를 타는 사람들 처럼 빙글빙글 나비 모양의 궤적을 그리면서 의미없는 회전을 계속한다는 것.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태어나 호주에서 공부하고 영국을 거쳐 미국에서 활동하는 학사학위로 찍은 다큐멘터리로 세상의 주목을 받고 석사 학위로 쓴 이 책이 세계적인 관심을 끄는, 아직도 세상에 남아있는 또 다른 대학으로 옮겨서 박사학위 과정을 밟고 있는 이 매력적인 저자의 눈에 보이는 세계의 모습은 이런 것이었는가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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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시대, 어느 나라에선가 정권교체가 일어난다. 오랫동안 독재정권을 지켜온 대통령은 반란군에 의해 제압당하고, 대통령의 시중을 들던 이발사, 요리사, 화가는 반란군에 의해 포로로 끌려온다. 대통령의 여름별장이었던 곳에 갇힌 세 사람. 그들은 각각의 사연과 생각을 지닌 채 불안한 나날들을 보낸다.
세사람은 정권이 바뀌기 전 대통령의 권력에 굴복하던 이들이였다. 보잘것 없는 화가였던 남자는 아내와 결혼하면서 대통령의 모습을 매일매일 그리기 시작하면서 권력과 한발짝 가까워졌다. 요리사는 대통령의 주말마다 음식을 만들며 대통령의 신임을 얻기 시작한다. 이발사는, 그의 탁월한 능력을 발휘해서 매일매일 대통령의 이발과 면도를 도맡는다. 그렇게 세 사람은 권력에 복종하며 자신을 이어간다. 그러다가, 하루아침에 또다른 권력을 만나게 된다.
그들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은밀한 욕망을 내재한 채 권력앞에 굴복한다. 화가는 아내에 대한 집착에 가까운 욕망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대통령의 부인과 하룻밤을 보낸다. 이발사는 형에 대한 죽음을 복수하고 싶으면서도 대통령의 면도를 매일매일 정성껏 해낸다. 면도칼로 그어버리고 싶으면서도 살고싶은 욕망에 쉽게 권력앞에 무릎꿇고 마는 것이다. 요리사는 자신의 외모를 이용하며 여자들과의 하룻밤 쾌락에 쉽게 빠져든다. 그러면서 새로 만난 두목의 아내를 탐하며 자신의 욕망속에 빠져든다.
여자들 역시 욕망과 권력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기는 마찬가지다. 화가의 아내는 자신을 바라보는 남편의 시선을 즐기면서도 남편을 배신하고 대통령과의 하룻밤을 보낸다. 이발사의 딸은 여러 여자들과 방탕한 생활을 즐기는 아버지를 미워하면서도, 자신 역시 애인과의 은밀한 생활에 빠져든다. 두목의 아내는 정권을 잡은 두목의 모습에 환멸을 느끼면서도 옛 약혼자의 동생인 이발사에게 다시 기댄다.
사람들은 무엇을 얻기 위하여 그토록 권력에 기대는가. 그것은, 어쩌면 자신의 욕망을 이루고 싶은 작은 소망 때문이 아닐까. 권력의 다른 모습이 욕망인 것처럼 권력과 욕망은 따로 떼어놓을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일지 모른다. 하지만 새로운 권력이 생기면 또다른 욕망이 생기듯이 권력과 욕망은 밑바닥을 알 수 없는 깊은 수렁이 되어 나를 덮쳐올 것이다.
"양심의 가책은 오래가지 않았다. 이런 자리에서는, 후회란 좀처럼 오래가지 않는다."
분명, 이 책의 결말을 씁쓸하다. 독한 술을 마신 듯 씁쓸함과 지독함이 입안에서 떠나지 않는다. 그럼에도 책의 마지막 문장을 곱씹는 것은, 내면의 욕망이 은밀한만큼 권력 앞에 쉽게 무릎꿇는 인간의 본성이 너무나 잘 표현되어 있기 때문이리라. 그들의 모습이, 결코 책에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책을 덮는 순간까지도 씁쓸함이 사라지지 않았다. 권력과 욕망의 수레바퀴는 지금 이 순간에도 돌아가고 있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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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음. 책의 소개에는 무슨 대단한, 마치 카프카 혹은 조지 오웰을 연상시킬만한 대작이라는 식으로 되어있는데 나는 생각이 좀 다르다. 나쁘지는 않았지만 그 정도로 비교될만한 작품은 아니었다고 생각하고 그것도 아주 긍정적으로 판단했을 때나 그렇다. 까딱하면 이게 뭘까? 에 속하는 소설쪽으로 흐를 가능성도 적지 않다. 그러니 저들이 맞다면 내가 아닌거고 내가 맞다면 저들이 오버한 거다. 당연한 얘기를 너무 심각하게 하고 있잖아.
좀 묘한 소설이다. 재미있다 혹은 없다 라고 단정 짓기엔 묘한 기운을 지닌 소설이다. 그런데 또 좋은 쪽으로만 해석하려 들자면 이게 약간 꿈보다 해몽같은 기분도 든다. 왜냐하면 표면적인 이야기를 한 번 곱씹어 생각하면 뭔가 그럴듯한 함의가 담겨있는 것 같지만 그게 또 왠지 억지로 짜내어 갖다 붙이는 것 같은 기분도 들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한마디로 이 책의 이야기들과 이 책이 말하고자 하는, 뭐가 있다니까 그게 사실이라면 그 둘의 관계가 그리 자연스럽게 연결된 것은 아니라는 얘기이다. 이마를 탁, 치면서 아하, 이건 그런 것들을 풍자하는 거구나. 대단해. 뭐 이런 식의 느낌이 드는 게 아니라 오히려 그 반대이다. 이게 권력과 욕망에 관한 이야기라고? 으응. 그러고 보니 그런 것 같기도 하네...뭐 그런데 이런 건 어떤 식으로 이야기를 펼쳐도 끼워 맞출 수 있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더 많이 드는 것이다. 그러니 앞서 말한대로
<오만한 권력, 그 황홀한 얼굴 뒤에 숨겨져 있는 욕망의 실타래를 파헤치는 한 편이 우화>
라는 소개가 아주 틀렸다고 할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쿨하게 진짜 그래! 라고 고개를 끄덕여 줄 수도 없다는 얘기이다. 확실히 작품보다 작품을 해석하려 드는 이들의 의도가 더 하늘을 난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이야기는 조금 독특한 방식으로 진행된다. 각 챕터마다 화자가 다른 데, 모두 일 인칭 시점으로 이야기가 진행된다. 그러니까 화자가 누구인지는 챕터의 제목으로 알 수 있는 것이다. 화가, 이발사, 요리사가 1부의 이야기를 이끌어 가는 작중화자 `나' 이고 이발사 형의 약혼녀, 요리사의 딸, 화가의 아내가 2부의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화자 `나'로 등장한다. 그리고 3부는 다시 1부의 화자로 돌아오는데 소설이 3부로 나뉘어져 있으니 긴 것처럼보이지만 실은 짧다. 약 230쪽에 불과한 정도니 앞 뒤로 한 번씩 크게 베어먹으면 남는게 없는 소설이다.
이 여섯의 화자는 모두 독재 권력자들과 깊은 연관이 있는 자들이다. 독재자라는 건 이런 문장,
<이것은 대통령의 눈이 어디에나 있다는 증거였다. 특구에 있는 한 이발소에서 일어난 미미한 선호도의 변화조차 그의 정보망을 피할 수 없다.>
마치 오웰의 빅 브라더를 연상시키는 이런 문장을 통해 아, 이 작품도 시방 독재자에 대한 뭔 야그를 씨불이는 갑다. 그렇게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그게 뭐, 그닥. 그래도 이야기가 매우 지루하지는 않고 고만고만한 수준은 제법 유지해나가는 편이다. 종종,
<와인이 복수를 하는 중이다. 깨어났을 때부터 머리가 아프고 온 몸이 쑤셨다.>
처럼 초딩같은 묘사가 등장하는, 그리고 작품의 전체 분위기로 봐도 마치 곰국에 뜬 기름같은 저런 난데없는 문장만 빼면 무난한 편이었다가, 후반부로 가면서 드디어 지치기 시작한다. 서사가 있는 작품도 아니고 그렇기 때문에 당연히 독자의 감정 조율 코너도 없으며 그래도 어느 정도는 참아줄 수 있었는데 도가 지나치니 슬슬 지치는 것이다. 그렇게 지쳐서 욕이 나오기 바로 직전에 소설은 막을 내린다. 그래서 별 넷이랄까? 눈치껏 끝내줘서? 제 아무리 멋진 메시지를 우화적으로 표현한다고 해도 재미없는 소설은 인정해 줄 수 없다. 그럴 거 같으면 독재에 관한 신랄한 이야기들이 담긴 인문서를 보는 게 낫다. 그런 쪽으로 좋은 서적도 차고 넘친다. 그렇다고 이게 뭐 문학적으로 기가막힌 표현들이 등장하는 것도 아니고 말이다. 조지 오웰의 <동물 농장>이 재미는 없으면서 온갖 동물들이 찧고 까불면서 풍자만 했다면 그게 그리 많은 독자들에게 사랑을 받을 수 있었겠는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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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와 나라를 가늠할 수 없는 어느 곳, 대통령을 가까이서 모시는 화가, 요리사, 이발사가 쿠데타의 현장에서 대통령과 함께 붙들린다. 각자의 위치는 다르지만, 어떤 공통의 이유로 대통령과 함께 끌려가서, 각자의 시선으로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리고 또 다른, 화가의 아내, 요리사의 딸, 이발사의 형의 약혼녀의 시선으로 이야기를 들려준다. 도대체 뭐가 함정이란 걸까, 의문을 갖고 만나서, 마지막 반전까지 읽어나가면, 그렇구나,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 이야기.
얇은 듯 한 장편이고, 장편이란 이름답게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는 듯했다. 그들이 각자 맡은 일에의 묘사들, 그리고 개인의 심리의 묘사들... 결코 가볍게 읽을 수 없는...
동갑내기 작가라는 사실에, 부럽고 시샘도 느끼며 읽었다. 어떤 계기로 이런 작품을 쓸 수 있게 되었는지 참 놀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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