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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문학을 대표하는 대표작은 꼭 읽어야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 다짐을 실천하지 못해 항상 숙제처럼 남아있던 작품이 바로 최명희님의 <혼불>이었다. 언젠가 한 번 시도를 했었는데 초반에 글에 집중하지 못하고 그 서사를 따라가지 못해 그냥 주저앉았던 기억이 있었다. 박경리님의 <토지>는 인물들의 캐릭터가 강하고 극적인 서사가 흥미로웠기에 휘리릭 읽었던 반면 <혼불>은 첫 장면부터 장면을 묘사하는 고어등이 익숙하지 않아 그랬던 것 같다. 그러다가 언젠가는 꼭 읽어봐야하는 소설이라는 생각에 차분히 다시 읽어보자 하는 맘으로 <혼불>완독에 도전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번에는 예전에 내게 버거움으로 다가왔던 장면들이 버거움이 아니라 흥미로움으로, 아름다움으로 다가온다.
첫 장면은 '그다지 쾌청한 날씨는 아니었다.로 시작하는 혼례 장면이다. 얼굴 한 번 보지 못했던 두 남녀. 이제 학생이라 짧은 머리의 어린 신랑 이강모와 다부진 성정을 가지고 있는 신부 허효원의 혼례식. 그 마을의 대갓댁 혼례였기에 마을의 경사요 잔치였고 그 잔치가 눈앞에 그려지는 듯 했다. 마당의 혼례청, 그 마당과 집 앞을 뛰어다니는 동네 아이들. 분주 집 안밖을 오가며 준비를 하는 사람들. 마을 한 가득 메우고 있는 고소한 기름 냄새와 한상 가득 차려지는 음식들.. 원삼 족두리를 쓰고 다소곳이 앉아 있는 신부, 어리둥절한 신랑. 그리고 드디어 시작되는 혼례.. 긴장한 두 신랑 신부를 바라보며 수근거리고 히덕거리는 사람들...이러한 풍경외에 신부가 입게 되는 혼례복에 대해. 혼례의 과정에 대해 그리고 혼례에서 차려지는 것들의 의미에 대해 그리고 풍습에 대해 그렇게 한 마을의 큰 잔치가 세밀하게 아름다운 언어로 묘사된다. 그러나 그 흥겨움 뒤에 신랑 신부의 무거운 책임과 의무가 뒤따른다. 종가집 종손과 종부의 삶..
쾌청한 날씨도 아니었는데 혼례식의 거의 마무리 단계에서 명주 실타래가 엉키면서 앞으로 그들의 삶이 순탄하지만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암시하다. 이미 그 시대는 혼란스럽고 힘겨운 시기였다. 그 힘겨운 시대를 종부로서 살아가야하는 효원.. 그러한 그녀에게 지아비의 그늘까지도 허락되지 않을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허물어져가는 종갓집 청상 과부로 시댁에 들어와 그 가문을 일으켰던 청암 부인.. 그렇게 지켜낸 가문이기에 그녀에게 창씨개명을 하라는 일본의 억지는 결코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었다. 효원의 시어머님인 율촌댁도 있지만 청암 부인의 뒤를 이어 효원이 이 가문에서 해야할 일들이 암시되고 있는 듯 했다.
1권에서는 이렇게 인연을 맺게 되는 두 가문과. 그 가문을 중심으로 소작을 하며 살아가는 서민들. 그리 고 일제 강점기 그 시대를 살아가는 다양한 사람들의 모습들을 볼 수 있다. 이 작품이 <토지>와 다른 점은 그러한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인물들이 등장하면서 그 들의 삶을 당시의 풍습이나 관습등을 접목시켜 그러한 부분을 자세하게 묘사해 주는 점이다. 그렇기에 어찌보면 좀 더 우리의 근원을 말해주는 작품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신랑 강모는 종손으로서의 삶의 그 무게, 태산처럼 느껴지는 아내 효원에서 벗어나고 싶어서였는지 음악 공부에 관심을 갖게 되고 동경으로 유학을 결심한다. 그러면서 맘 한 곳에서는 사촌누이인 강실에 대한 애뜻함을 간직한다. 남편으로부터의 외면, 시어머니와의 갈등.. 그 와중에 효원은 할머니인 청암부인에게 의지를 하게 된다.
작가는 이 작품을 '우리의 근원에 대한 그리움' 결국 '나 자신에 대한 그리움'때문에 집필을 하게 되었다고 한 강연회에서 말했다고 한다. 너무도 당연하다는 생각에 잊고 지내는 근원에 대한 자각.. 나도 작가의 자취를 쫒아보며 잊고 있었던 근원에 대한 깨달음을 얻을 수 있을 것 같은. 무척 뜻 깊은 책읽기가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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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6월의 여섯 번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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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문학을 대표하는 작품들 중 하나를 꼽으라고 한다면 바로 최명희 선생님의 혼불을 꼽을 수 있습니다. 서사가 방대하고 박경리 선생님의 토지와는 또 다른 맛이 있어요. 그리고 아주 오래전에 사용되었던 우리말의 매력들도 엄청나게 잘 살려내고 있다는 점이 그 특징입니다. 이 소설의 처음은 이강모와 허효원의 혼례 시작 장면으로 시작됩니다. "그다지 쾌청한 날씨는 아니었다"라는 말에서 물론 관습적이기는 하지만 두 사람의 결혼 이후 이어질 앞날이 그다지 순탄하지만은 않을 것임을 엿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장면들을 나타낼 때 예전의 모습을 바로 앞에서 보는 듯한 묘사들은 또 다른 백미입니다. 어쨌든 종갓집의 종손으로 그 무게를 버거워하는 못난 놈(솔직히 이렇게 평가하는 것도 이강모에게는 후한 평가이죠.) 이강모와 종부로 살아가야 하는 허효원, 마지막에는 혼례를 마무리하는 과정에서 명주 실타래가 엉키고 확실하게 그들의 혼인 생활이 어려운 방향으로 흘러가리라는 것을 암시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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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권 1)세상에서 가장 어렵고 힘든 일은 무엇있가 ☞어른 노릇 2)어른 노릇이란 무엇인가 ☞열 섬지기는 자기의 가솔드을 잘 먹이는 것이고, 백 섬지기는 자기 이웃이 배 굶지 않은지 돌아보며. 천 섬지기 만 섬지기는 고을을 두루 아우르는 것이다.
3)어른으로서 책임진다는 것은 무엇인가 ☞문제나 사고를 수습할 의지와 역량을 가지고 해결해 나가는 것이다.
4)자기 주위에 어른으로 볼 만한 분이 계시는가 어떤 점이 그렇게 생각하도록 햇는가 ☞모임에 회장님이 계시는데, 자체의 문제 발생시에 해결책 제시와 추진력이 있고 재력도 어느 정도 있어서 모임을 윤활유처럼 이끄시는데 탁월하신 분이다.
5)당신은 어른 노릇 제대로 하는 어른입니까 ☞내 것만 챙기지 않고 주위를 돌아보려 노력하고 있는 중이다.
제2권 1)돌아보면 첩첩산중이요 올려다 보면 텅 빈 하늘뿐이라고 느낀 적이 있는가 느껴 본 적이 있다면 어떤 일이 있었는가 ☞청년기 면접을 보고 합격자 발표에서 떨어졌을 때
2)마음을 비릿하게 하는 비루하다는 느낌이란 어떤 것인가 그 느낌은 어떤 때 느꼈는가 ☞모임이나 소속된 조직에서 법적으로는 꺼리낄 게 없으나 도덕적으로 의문이 제기될 수 있는 사안을 밀어 부치려 할 때 개인으로서 할 것이 별로 없는 무력감을 느낄 때
3)2권까지 강모의 성격에 대해서 공감할 만하거나 공감되지 않는 부분은 있는가 예를 들자면 어떤 것이 있을 수 있는가 ☞우유부단의 전형적인 성격이다 키우는데로 길러진 전형적인 인간형이다
제3권 1)호성암 중 떡 달디끼 할 수 없는 일을 겪은 적이 있는가 있다면 어떤 일이 있었는가 ☞팀장으로서 팀원 평가시 정량적 평가에서는 어려움이 없으나 정성적 평가시 호성암 중 떨 달디끼 하기가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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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5월의 여섯 번 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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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5월의 첫번째
청암 마님이 죽음을 맞이한다. 그의 혼불이 하늘을 날고 점점 힘겨워지는 세상이 걱정되고 후손들이 걱정되어 차마 발을 떼지 못하는 듯. 청암마님의 장례를 통해 전통적인 장례 문화가 묘사되고 맘을 잡지 못하고 배회하는 강모의 모습과 매안 마을과 더불어 살아가고 있는 거멍굴과 고리배미의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가 전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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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명희는 말했다. “무엇이 나로 하여금 이렇게 끊임없이 “혼불”을 쓰게 하는 것일까. 여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터이나, 첫째로 가장 중요한 바탕을 이루는 것은 나의 ‘근원에 대한 그리움’일 것이다. 이를 다른 말로 하면 ‘나 자신에 대한 그리움’이라고 할 수도 있으리라. 나는 인간과 자연과 우주와 사물의 본질에 숨어있는 넋의 비밀들이 늘 그리웠다. 그리고 이 비밀들이 서로 필연적인 관계로 작용하여 어우러지는 현상을 언어의 현미경과 망원경을 통하여 섬세하게 복원해 보고 싶었다.“라고. 흔들리며 방황하고 사라져가는 우리 혼을 살려, 이곳 꽃심을 지닌, 전주와 남원 땅에 밝고 환하게 빛나는 혼불을 밝혀 들고 싶었으리라. 그러하니 17년의 기나긴 세월을 혼불 집필에 몰두했으리라. 어두운 역사, 암울한 시절……. 국권을 잃고 일제의 탄압을 극심하게 받았지만, 내부적으로는 여전히 조선말의 정신 구조와 문화를 지탱하고 있던 이중적 시대 상황 속에서, 처참하게 부서지고, 상처받고, 뒤집히고, 고뇌하며, 한없이 몸부림치지만 아름다웠던…… 그 시절 그 사람들의 삶을 형상화한 혼불은 원고지 1만 2천 장에 달한다. 오천 년 역사 속에 단 몇십 년, 하찮게 꿈틀거리다 죽은, 후백제라는 지렁이가 아직도 여전히, 전라북도 전주부 완산정에, 동네 이름으로 살아서 맥맥히 그 혼이 용틀임하고 있는 것이야. 가슴에 꽃심이 있으니, 피고, 지고, 다시 피어. 아직도 전주 사람들은 완산에 산다. 저 아득한 상고에 마한의 오십오 개 소국 가운데서, 강성한 백제가 마한을 한 나라씩 병탄해 올 때, 맨 마지막까지 저항했던 전라도 지역 원지국의 수도 원산, 그 완산, 전주. 그리고 빼앗겨 능멸당해 버린 백제의 서럽고 찬란한 꿈을 기어이 다시 찾아 이루겠다고 꽃처럼 일어선 후백제의 도읍 완산. 그 꿈조차 짓밟히어, 차현 땅 이남의 수모 능욕을 다 당한 이 땅에서 꽃씨 같은 몸 받은 조선왕조 개국시조 전주 이씨 이성계, 천 년이 지나도 이 천년이 지나도 또 천 년이 가도, 끝끝내 그 이름 완산이라 부르며 꽃심 하나 깊은 자리 심어 놓은 땅. 꽃의 심, 꽃의 힘, 꽃의 마음. 꿈꾸는 나라. 그 심정으로 효원은, 강실이의 목숨만이 자신의 생애를 건져 줄 수 있을 것 같아, 한없이 까라지려는 몸을 추스르며, 강실이 얼굴을 부른다. 강실이가 비록 누항의 시궁창 그 어떤 질곡에 빠져, 말로 못 할 더러움을 겪고 있다 하여도, 그네가 온전한 몸으로 살아만 있다면, 효원은 이 무서운 죄책에서 놓여날 수 있을 것 같았다. 어디에…… 어디에 있소……. 효원은 등을 구부리고 기도하듯 강실이를 부른다. 그 온몸에 눈물이 차오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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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불’이라는 말은 국어사전에 없다. 뒤적여 보고, 표준국어대사전을 검색한 결과, 그 말이 맞다. 다만 우리말 샘엔 있다. 전북, 전남의 방언이라며. ‘사람의 혼을 이루는 바탕. 죽기 얼마 전에 몸에서 빠져나간다고 하는데, 크기는 종발만 하며 맑고 푸르스름한 빛을 띤다고 한다.’라고 정의한다. 우리의 혼, 나의 혼, 나의 넋이 찍히는 그 무늬임은 조상으로부터 대를 이어 전해 내려온다. 이를 어찌 함부로 할 수 있겠는가. 더구나 최명희 작가가 추구하듯 모국어는 모국의 혼이기도 하니, 진정한 불빛 같은 알맹이를 담고 있는 우리말의 씨로서 혼불이다. 9권은 강호와 스님 도환의 만남으로 시작한다. 영산백 흰 꽃이 투명한 모싯빛으로 소담스럽게 핀 암자의 뒷마당 그늘진 곳에서, 놋대야 만한 단지 뚜껑에다 연분홍 물감을 풀어 놓고, 한 장 한 장 백지를 담가 흔들며 물을 들이고 있던 호성암 암주 스님 도환은, 인기척을 듣고 문득 고개를 돌린다. 주르르 분홍물이 떨어지는 한지를 양손으로 맞잡아 올리면서. “초파일이 가까워서 바쁘시구만요.” 강호는 물들여 널어놓은 색지를 가리켜 눈짓한다. 이제 몇 순간 뒤에는 환한 연꽃 등으로 피어나겠지. 저마다의 소원을 가슴에다 불 밝힌, 꽃등불 바다를 이루며 떠오르겠지. 진흙밭에 연꽃같이 피는 소원의 등불들을 부처님은 일일이 다 살피실 수 있을까. 아니면 이처럼 손끝 밝은 스님의 정성을 빌려야만 무명의 중생들 소원은 부처님 곁에 좀 더 가까이 갈 수 있는 것일까. 중생들은 어찌 살란 말인가? ‘넘어져라. 그리고 일어서라. 넘어지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진저. 크게 넘어지면 크게 쏟아 버릴 것이다. 쏟아 버린 만큼 한 생을 덜어내 버리니, 이 가벼움이여.’ 부처님은 그리 말하겠지만, 느낌이 스치면 이미 업이 시작되는 것이다. 홀로 되는 일은 없을 것이고. 절에는 문이 많다. 수목이 울창하게 우거진 사찰의 경내로 들어서는 어귀에 서 있는 산문인 일주문이 삼문三門 중 첫 번째 문이다. 일주문을 지나면 중문인 금강문과 천왕문, 그리고 불이문들이 서 있다. 이렇게 사찰에다 금강문과 천왕문을 중문으로 세워 금강역사와 사천왕을 봉안 하는 까닭은, 청정한 도량에 사악한 악귀가 끼여들지 못하게 엄중히 외호하며, 절에 오는 사람들의 방일한 마음을 신성 엄숙하게 가다듬도록 하려는 데 있다. 그 문들을 지나면서 깊이 절하고 속진의 남루를 깨끗하게 씻어내며 바로잡은 마음이 도달하는 곳은 이제 불이문不二門. ‘불이’는 글자 그대로 ‘둘이 아님’인 것이다. 나뉘어 흩어진 그 무엇들의 본체는 본디 하나라는, 진리 그 자체를 달리 표현한 말이다. 그래서 이 불이문을 지나면 바로 본존을 모신 금당이 보이게 되어 있다. 궁극이 그곳에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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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불의 지리적 배경인 남원을 알아보자. 보다 더 아득한 상고의 내력은 오로지 짐작할 수밖에 없는 일이지만, 남원은 마한, 진한, 변한이 한강 유역으로부터 남부 일대에 걸쳐 삼한을 이루고 있을 때, 마한의 영역에 속한 부족 국가였다. 수도를 익산군 왕궁면 일대에 두었던 마한은, 진한인 경상북도와 어깨를 비비는 접경 지역 남원 산내면에다 별궁을 지었는데, 그곳이 곧 달궁達宮이라고 노인들은 말했다. 달궁 옛 궁터에서는 이천 년이 넘도록 마한의 온기를 그대로 담은 발소리가 두벅 두벅 다숩게 수런거리며 울려오는 것만 같고, 달궁 머리 지리산을 경계로 진한과 서로 국경이 맞물린 곳 ‘정령치’, ‘황령치’ 험준한 봉우리에 정장군과 황장군의 이름과 자리가 이토록 뚜렷이 남아 있으니. 그러다가 통일신라 신문왕 5년에 왕은 대방군에다 남원소경을 설치하였고, ‘남원’ 이란 말이 이제 드디어 처음 나온 것이다. “고려 때에는 어찌 되었소?” 강태가 공부하는 학동처럼 진지하게 묻는다. 남원소경은 님원부로 개칭이 되고, 이 남원부에 속한 다섯 현은 순창현, 임실현, 운봉현, 장수현, 장계현이다. 그런데 영조 때. 이 고장 남원은 뜻하지 아니한 수난을 당하고 마는데. “사실은 내가 이 말이 꼭 하고 싶었다. 그 남원을 알아야만, 이 남원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서.” 강호는 강모와 강태를 바짝 끌어안는 눈빛으로 두 아우를 얽으며 음성을 조여 줄인다. 영조 16년 경상도 지방에서 큰 반란이 일어났다. 종이었던 찬규는 변을 일으킨 지 얼마 못되어 관군에게 붙잡히고 말았다. 네 태생지가 어디냐는 고을 원의 물음에 전라도 남원이라고 찬규는 대답하였다. 오직 이 한마디 때문에, 저 아득한 상고로부터 이날에 이르기까지 성벽처럼 굳건 하고 위엄있던 남원 땅은, 죄인의 하급 땅으로 굴러 떨어지게 되었다. 남원도호부를 폐하고 ‘현’으로 강등하라! 천 년 이상이나 변함없는 긍지로 써 오던 지명을 모든 문서에서 깎아 지우고, 대신에 이 고장의 이름으로 낯설고 어설픈 ‘일신一新’이라고 고치게 하였다. 모처럼 돌아온 고향, 매안의 온 마을에 감도는 불길함의 검은 어깨너머 보이지 않는 곳에서, 강호는 찬규의 흐느낌이 귀곡으로 울리는 것을 들었던 것이다. 푸른 힘줄이 돋은 그 울음의 멍든 옹이에 춘복이가 감긴다. 찬규와 남원. 춘복이와 매안. 찬규와 춘복이. 남원과 매안. 그 대비 환영들은 도저히 떼쳐내 버릴 수 없는 주문이나 무슨 예감처럼 강호에게 파고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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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불에 나온 풍습, 풍경을 지금은 어찌하여도 만날 수 없다는 게 너무 안타깝다. 최명희만이 덜렁 그 시대, 그 시절로 돌아가 도란도란 들려줄 뿐이다. ‘며느리 율촌댁이 담옥색 명주 저고리에 물 고운 남빛 끝동을 달아 자주 고름 길게 늘인 데다 농남색 치마를 전아하게 부풀리고 단정히 앉아 시어머니 청암 부인을 가까이 모신 좌우에는 담황색 저고리, 등록색 치마, 진자주 깃·고름에 삼회장 저고리, 짙고 푸른 치마에 담청색 은은한 저고리며 북청색 치마에 녹두 저고리, 앵두색 저고리에 은회색 치마, 흑자주 긴 옷고름들이 이만큼 다가앉고 저만큼 물러앉은 방안은, 묵은해 벗고 새해를 맞이한 정초의 첫나들이 세배 길 이어서도 그러했고, 모처럼 일가친척 문중의 부인들이 한자리에 모두 모인 흥겨움에 상기되어서도 그러했고…….’ 부인들이 입던 저고리와 치마에 들어가는 옷감을 마련하자면 얼마나 정성이 들어 가야 했는가! 더구나 동정 귀 어긋난 년, 버선 수눅 틀어지거나 뒤바뀌게 신은 년, 가리마 비뚤어진 년, 낭자머리 뒤꼭지에 머리카락 삐친 년은 사람으로도 치지 않았다는, 매안 부인들의 불문율은 또 어찌 그리 서슬 퍼런지! 청암부인은 그리 말했단다. 그것을 드러내 말하는 것은 사치하라는 것이 아니라 부녀로 하여금 공을 들이게 하고자 함이지. 산다는 건 곧 공들인다는 것이라고. 비단을 다듬기를 달걀과 같이 반들반들하게 하고, 베를 다릴 때 매미 날개와 같이 아늘아늘하게 하는 것은 사치를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오직 그것이 부녀자의 정성이니, 정성이 없고서야 어찌 능히 인생을 이루리. 청암부인은 그리 말했단다. 속옷과 이불은 남에게 그 속을 보이지 말라 하였으며, 공들일 줄 모르는 아낙은 부덕한 족속이라고. 오류골댁도 강실이와 마주 앉아 바느질을 하며 말한 일이 있었다. “양반이란, 배워서만 되는 것이 아니다. 양반은 겉보기에는 위용 있고 고결하고 신선같이 때깔 있지마는, 그 속은 민어가시보다 억세고, 섬세하고, 미묘하고, 까다로워 그 노릇을 제대로 하기는 결코 쉽지 않은 것이니라.”라고. 그리고는 자기도 모르게 그만, “아아, 너도 어서 사람을 만나야 할 것인데.” 탄식하고, 아차, 싶어서 아무렇지도 않은 듯 흔연히 낯빛을 바꾼다. 그 고운 강실이 지금 이 물에 몸을 던지려 하는 운명을 어찌 짐작이나 하였을까? 오류골댁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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