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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출간된 [네이션과 미학](비, 2009)은 <서설>을 제외하면 고진이 90년대 영어로 발표한 논문을 엮은 논문집이다. <서설―네이션과 미학>에서 기존의 담론비판에 신물이 난 고진은 자본과 네이션과 스테이트는 단순한 표상이 아니며 표상비판이나 담론비판으로 해소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주장을 펼친다. 고진은 자본-민족-국가의 삼위일체적 구조를 설명하면서 네이션이 단순한 상상(fancy)이 아니라 자본제사회와 국가를 매개하고 통합하는 상상력(imagination)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고진은 국가나 네이션을 상품교환과는 다른 양식의 '교환'에 뿌리를 둔 광의의 경제적 문제로 다룬다. 고진은 교환양식을 크게 봉건국가의 수탈과 재분배, 공동체의 호혜성, 도시(시장경제)의 상품교환, 그리고 어소시에이션 네가지로 구분한다. 수탈과 재분배의 체제는 대표적인 전자본주의적 착취양식이다. 호혜성은 공동체의 증여와 답례라는 호혜적 교환양식을 말한다. 그런데 고진의 '공동체' 개념은 일단 원시씨족사회와 관련이 깊다. 호혜적 교환은 모든 교환양식의 기초이면서 동시에 그람시가 말한 헤게모니 지배의 토대가 된다. 역자 조영일은 '호수적 교환'이라는 일어를 그대로 차용하지만 나는 '호혜적 교환'이라는 번역을 선호한다.
전근대사회에서 어소시에이션의 원리는 보편종교라는 형태로 제시된 바 있다. 최초의 '상상의 공동체'인 보편종교는 상인자본주의, 공동체, 국가에 대항하는 운동으로 나타났다. 봉건체제에 대항하는 사회운동은 이런 종교운동의 형식으로 일어났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1642년 영국의 청교도혁명이다. 독립소상품생산자 계급을 대표하는 청교도의 수평파(평등파)는 19세기 아나키스트와 닮았고, 토지를 잃은 소농 등 농촌 프롤레타리아를 대표하는 청교도의 개척파는 공산주의와 흡사하다. 또한 근대의 네이션도 바로 보편종교의 대리보충에 해당한다. 네이션과 종교 모두 계몽주의적 비판으로 폐기되지 않았던 이유도 바로 '우애'를 강조하는 어소시에이션 운동의 형태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1848년 2차 프랑스혁명이 패배하고 어소시에이션이즘은 네이션(국민)/스테이트(국가)에 흡수된다. 프랑스에서 어소시에이션이즘은 보나파르트의 국가사회주의에 흡수되었고, 영국에서는 페이비언 사회주의와 사회민주주의에 흡수되었다. 20세기에 이런 자본/네이션/스테이트를 초극하려던 조류로는 레닌주의와 파시즘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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