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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망으로 읽어내는 우리 사회 '무례한 복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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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1.26 이택광 - <난장> \17,000   아, 어렵다. 어금니 꽉 깨물고 군소리 없이 읽으려 했건만, 결국 내 방정맞은 입은 “어렵다”를 연발하고 있다. 하여간 때론 ‘맛없는 것’도 읽어야 한다고 생각하며 용기를 내서 한입 베어 물었는데, 금세 뱉어버리고 만다. <무례한 복음>이 뭔지 알기도 전에, 불평만 내뱉는 ‘무례한 놈’으로 전락해버린 느낌이다. 글쓴이는 문화 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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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1.26

이택광 - <난장> \17,000

 

아, 어렵다. 어금니 꽉 깨물고 군소리 없이 읽으려 했건만, 결국 내 방정맞은 입은 “어렵다”를 연발하고 있다. 하여간 때론 ‘맛없는 것’도 읽어야 한다고 생각하며 용기를 내서 한입 베어 물었는데, 금세 뱉어버리고 만다. <무례한 복음>이 뭔지 알기도 전에, 불평만 내뱉는 ‘무례한 놈’으로 전락해버린 느낌이다. 글쓴이는 문화 비평을 생선회에 비유했는데, 나는 아직 그 맛을 알기엔 부족한 것일까?

 

이런 나의 불평을 뒤로 한 채, 그의 글은 정치, 경제, 문화 등 이 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모든 곳을 것을 샅샅이 분석하며 거침없이 질주한다. 물론, 사회를 분석하는 책이야 검색창에 ‘사회’만 입력하면 곧장 달려들겠지만, 이 책은 분명 그 녀석들과는 달라도 한참 다르다. 말 그대로 전례가 없는, 무례한 책이랄까..

나는 이 무례함(?)이 문제를 설명하는 방식 차이 때문에 힘을 얻는다고 생각한다. 저자는 사회를 자본주의나 사회주의 같은 구조적 관점으로 설명하려 들지 않는다. 아니, 그는 애초부터 무언가를 애써 설명하려 하지 않았다. 그저 구성원들의 욕망이 어떻게 흘러갔는가를 보여줄 뿐이다. 참 신기하다. 책에 수록된 새로운 이야기들(허경영, 강마에, 장기하와 얼굴들 같은 소재를 가지고도 이런 이야기를 하다니!)을 읽다보니, ‘나랑은 상관없는 일’이라고 생각한 내 무관심마저도 욕망이란 이름으로 이 사회에 작용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선거, 촛불집회 심지어는 1박 2일, 스타크래프트 등 이 사회의 곳곳에서 우리의 욕망은 흘러넘치고 있었다. 아, 하나의 꼭지로 모든 것을 포섭할 수 있는 이 강력함에 감탄을 하지 않을 수가 없다.

 

나는 책을 읽는 것을 안경을 끼는 행위와 같다고 생각한다. 제대로 볼 수 없었던 사회를 책이라는 안경을 통해 뚜렷이 보는 것이다. 하지만, 눈에 맞지 않는 안경을 쓰면 오히려 물체가 흐려보이듯, 자신에게 맞지 않는 책을 읽는 것은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물론, 여기서 말한 ‘맞지 않는 책’은 기호를 말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기초 체력이 부족할 때 가벼운 무게의 운동을 하는 것처럼, 책을 읽을 때도 절대 무리하지 말 것을 의미한다. 처음 접하는 어려운 책을 읽기 전에는 반드시 준비 과정이 필요하다. 욕심내지 말고 여러 책을 접하면서 천천히 내공을 쌓아 나가자. 그러다보면 나이가 들어 회의 맛을 알게 되 듯, 그저 어렵게만 느껴지던 책의 아쌀한 맛을 알게 되는 날이 오지 않을까. 이택광의 <무례한 복음>은 편식하던 나에게 다양한 독서의 필요성을 다시 한 번 일깨운 책이었다.

 

“내게 문화비평은 생선회를 뜨는 ‘일’같다. 뼈에서 살을 발라내 한 겹씩 물기를 제거하고 배열하는 것, 거기에 문화비평의 묘미가 있다. 쟁반 위에 놓인 살은 더 이상 ‘생선’이 아니라 ‘회’로 거듭난다. 생선은 사라지지만 입을 즐겁게 하는 맛이 태어난다. 회가 살아 있지 않다고 투정 부리는 사람은 없을 테다. 문화비평은 간장과 초장을 버무린 알싸하고 고사한, 죽은 생선의 맛을 위해 칼끝을 겨누는 행위이다.” - p5

 

“정치라는 것은 일상 속에서 항상 작동하는 것이 아니라, 그 일상의 흐름을 깨고 어떤 사건이 출몰했을 때 비로소 나타나는 것이라고 보는 게 옳다.” - p111

 

“형식이라는 것 자체가 형식 바깥의 ‘내용’을 논리화하고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사실 ‘문화비평’이란 건 이런 내용의 논리를 형식에 대한 분석을 통해 파악하려는 노력에 지나지 않는다.” - p311



j*****n 2010.01.28. 신고 공감 1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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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이론의 결과물을 맛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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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님께서 며칠 전부터 '공정한 사회'란 표어를 내걸고 나오셨다. 이 시점에서 대통령의 요 기치는 어떤 의미로 받아들여야 할까? 국민의 어떤 요구에 부응하려는 시도일까? 이것으로 미루어볼 때 현 사회가 욕망하는 바는 무엇일까? 물론 정치적인 수사로 치부하고 '또 헛소리하고 있네'라고 불평 한 마디 던진 후 넘길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게 하면 이 부조리한 현실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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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님께서 며칠 전부터 '공정한 사회' 표어를 내걸고 나오셨다. 이 시점에서 대통령의 요 기치는 어떤 의미로 받아들여야 할까? 국민의 어떤 요구에 부응하려는 시도일까? 이것으로 미루어볼 때 현 사회가 욕망하는 바는 무엇일까물론 정치적인 수사로 치부하고 '또 헛소리하고 있네'라고 불평 한 마디 던진 후 넘길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게 하면 이 부조리한 현실과 퍽퍽한 삶이 지속되리라. ! 그러니 사회가 어떻게 돌아가는 것인지 알아야 한다. 현상 너머의 진실을, 그리고 현상이 초래된 원인을 간파해야 한다지배층에게 이용당해 내 시간과 노력을 뺏기지 않고, 내 것을 온전하게 취하며 주체적으로 살기 위해.

 

하지만 한 사회의 내부자가 그 사회의 논리를 파악하기란 쉽지 않다. 그렇다고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이런 앎을 달성하는 데에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하나는 통찰력 있는 사람이 내놓은 분석을 취하는 것이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자신이 직접 현상을 분석하고 논리를 간파해내는 것이다. 첫 번째 방법은 사람마다 깊이가 다르고 또 입장에 따라 분석도 다르기에 뭘 받아들여야 할지 헷갈린다는 단점이 있다. 대신에 시간과 노력이 덜 필요하다. 두 번째 방법은 자신의 입장에서 사회를 바라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그만한 안목을 기르려면 시간과 노력이 제법 든다는 어려움이 있다결국 앎에 있어서 가장 이상적인 경로는 첫 번째 방법으로 사회를 파악하면서 안목과 통찰을 꾸준히 다져, 종국에는 두 번째 방법을 깨치는 것이리라.

 

나는 지금까지 주로 첫 번째 방법으로 사회를 파악해왔다이 사람 저 사람 덕을 보면서. 이 책 역시 그 앎의 방식에 상응한다. 이 책은 문화비평가를 자임하는 이택광씨의 저서이다. 문화비평이란 대중문화 분석을 통해 정치와 사회 문제를 해명하는 작업을 말한다. 저자는 '주체를 해명하고, 정치적인 것을 가장 효과적으로 분별해낼 수 있는 감식안이 문화비평을 통해 나올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다. 그래, 학문을 하려면 이정도 자신감은 있어야 한다. 하지만 그의 확신과 대중의 수용은 별개다현실에 적극적으로 개입한다는 그의 목적이 성취되려면, 일반 대중이 그의 이야기를 이해하고 인정하고 수긍할 수 있어야 한다.

 

이 책은 지난 이 년간 그가 해왔던 작업의 결과물이다. 결과는 어떠한가그가 목표로 하는 바가 사람들에게 '사유의 반전'의 계기를 마련하는 것이라면, 충분히 그에 부응하는 저서라 여겨진다. 일단 분석 대상 자체가 친근한 대중문화라 흥미를 끌었고, 해서 가독성이 뛰어났다보통 나는 책을 두 세 권씩 들고 다니며 번갈아 가며 읽는데, 이 책은 손에 잡고는 한 번에 후다닥 읽었으니게다가 분석이 꽤 명쾌하고 설득력이 있었다. 그러나 대중적이라 하기엔 조금 어려웠다그간 사회과학서적을 틈틈이 읽어와서 다소 익숙한 내용들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쑥쑥 머리에 들어오진 않았다. 그가 대중문화 분석에 활용한 것이 내게는 생소한 문화이론들이라 그랬을 것이다. 그래도 신경 써서 두 세 번 주의 깊게 읽으니, 점점 그의 설명과 분석이 명쾌하게 느껴졌다.

 

저자는 "문화비평은 생선회를 뜨는 '' 같다"고 했다. 그는 문화이론이라는 칼로 문화라는 생선을 해체해서 사람들에게 내놓는 것을 천직으로 여긴다. 이번에 나는 그가 내놓은 회를 맛본 셈이다. 흡족했다. 그의 회에서는 장인의 손길이 느껴졌고, 맛도 뛰어난 편이었다하지만 조금 갈증이 났다. 앎을 달성하는 데 있어서 나의 궁극적인 목표는 언제나 두 번째 방법을 습득하는 것이었으니까. 이런 점에서 문화비평은 매력적이다. 문화라는 생선이야 도처에 널려 있으니, 칼 쓰는 법만 배운다면 무한정 맛난 회를 먹을 수 있는 것 아닌가. 그러니 이제는 내가 직접 회를 떠봐야 한다. 문화비평이라는 칼을 빌려서 말이다.

 

결국 문화비평을 체득하고자 하는 열망이 강해졌다고맙게도, 그는 나 같은 사람을 위해 <인문좌파를 위한 이론 가이드 내놓았다. 문화이론이란 칼을 쓰는 법을 알려주기 위해서. 호기심에 이미 그 책을 한 번 통독했다. 하지만 직접 회를 뜨는 것은 쉽지 않더라. 시간을 두고 차분히 읽으며 연습을 해야겠다. 그리고 해외의 장인들ㅡ루카치, 벤야민, 들뢰즈, 데리다, 라캉, 지젝, 바디우 등등ㅡ의 칼 솜씨에서 나온 회들도 두루 맛봐야겠다제대로만 배운다면  또한 사람들에게 맛있고 싱싱한 회를 제공할 수도 있겠다. 혹시 아는가. 내가 나중에 회를 팔아먹으며 살런지. 그러기 위해선 나만의 독특한 칼질을 창안해내야 할 것이다. 하여간 현실적인 단기 목표는 내가 먹을 맛있고 싱싱한 회를 마련하는 것이다. 좋은 것만 먹고 힘을 내서주체적으로 세상을 살아가기 위해.

 

 

 

그가 뜬 맛있는 회들

 

“부자 장관 후보가 “돈에다 권력과 명예까지 챙기는 현실”에 대한 개탄은 결국 쾌락의 평등주의가 실현되지 않는 한국식 자본주의 자체에 대한 불만을 드러내는 것이기도 하지만, 그와 동시에 쾌락의 평등주의가 제대로 작동한다면 그보다 더 좋을 순 없을 것이라는 생각을 감추고 있는 것이기도 한다. 한국의 대중들은 자본주의를 사랑한다. ()

대중들의 사랑의 쾌락의 평등주의를 전제하는 거다. 근대로 진입하면서, 쾌락의 문제는 개인의 것인 동시에 공공의 것으로 전환한다. 한국 사회에서 착시 현상을 일으키고 있는 건 이것이다. 개인의 쾌락을 공공적인 것을 통해 실현하는 것, 여기에 바로 근대국가의 작동원리가 있다. 이 지점에서 ‘근대인’이 탄생하는 거다. 지금까지 한국에서 부르주아계급은 이런 분배의 문제를 공공의 선으로 파악하는 ‘근대인’이었다기보다, 쾌락의 불평등성을 기정사실로 만들면서 자신의 즐거움을 만끽하고 유지하기에 급급한 사익 집단이었다고 할 수 있다.

실제로 대중들이 가진 자본주의에 대한 불만은 이처럼 ‘오지 않은 근대인’, 다시 말해 ‘완성되지 못한 부르주아계급’에 대한 열망을 표현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부자 내각에 대한 비판은 결코 부자 장관에 대한 질시나 원한이 아니라, 재물-자본의 불공평한 분배에 대한 정당한 불만이라고 봐야 한다. 결국 문제는 분배인 것이다.(p35~p36)

 

“한국 중간계급이 지지하는 민주화라는 건 결국 (신자유주의적인) 시장주의이고 이를 통해 쾌락의 평등주의를 달성하는 것이다. 이건 결국 시장의 규칙 안에 들어와 ‘공정하게’ 경쟁하는 것을 의미할 뿐, 이 시장에 진입하는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여러 가지 기회비용에 대한 배려는 사실상 생략된다. 무조건 시장 안에 들어가야 하는 것이 우선 과제이고, 그래서 입시경쟁이나 취업경쟁이 발생하는 것이다. 이런 생각은 시장 안의 불평등에는 민감하게 반응하면서 정작 그 시장에 진입하기 위한 ‘불평등’은 용인하는 이상한 논리를 생산한다.

한국 중간계급의 특징은 부르주아계급을 혐오하면서도 동경하고, 프롤레타리아계급을 동정하면서도 무시하는 태도에서 찾을 수 있다. , 한국 사회에서 중간계급은 ‘건전한 시민의식’이라는 이상적인 도덕성을 체현한 주체라기보다는 부르주아계급과 노동계급 사이에서 독자적으로 자기 이해관계를 추구하는 세력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p64~p65)

 

“계급은 존재론이라기보다는 인식론의 문제이다. 계급의 관점에 섰을 때 비로소 우리는 세계의 총체성을 파악할 수 있는 것이다. () 노동계급이 부르주아계급보다 더 훌륭한 ‘내면’을 가지고 있을 것이라는 믿음은 얼마나 어리석은가! 계급의 인식론은 판타지의 문제와 무관하지 않다. 노동자라고 반드시 노동계급의 판타지를 갖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한국 사회는 지금까지 여실히 증명했다.(p175)

 

“그람시에 따르면 민중은 자신들의 이해관계와 무관한 이념과 결탁해서 이에 대한 강고한 믿음을 보여주는데, 이런 착시 현상은 믿음과 이념 사이를 서로 혼돈하게 만드는 종교적 은유를 통해 만들어진다. 지젝 식으로 말하자면 이것이 바로 ‘이데올로기적 판타지’이다. 판타지는 현실성을 통해 작동한다. 절실하게 자신이 믿는 것이 현실화했을 때, 주체는 그것을 통해 하나의 믿음을 형성하면서 정체성을 획득한다. 이 정체성이야말로 특정한 이념에 대한 절실한 감정을 느끼게 만드는 믿음의 근거이다. <한겨례 21> 기사에 나온 노점상 같은 이들이 이명박 대통령에서 품었던 그 희망은 이런 심리적 구조에 얹혀 있는 것이다. 자신의 처지에서 나온 절실한 체감을 ‘경제를 살리자;는 이데올로기적 합의로 환원하면서 김씨는 ‘나는 ~이다’는 정체성을 획득할 수 있었다.

이런 맥락에서 그람시나 지젝에게 이데올로기는 그냥 미신이나 신화 같은 게 아니다. 이데올로기는 합리성의 최고 형태일 뿐만 아니라 종교 같은 ‘상식’이기도 하다. 이런 관점에서 이데올로기는 일상적인 것이고, 민담처럼 민중의 생활방식에 깊숙이 뿌리박고 있는 ‘담론’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이데올로기를 통해 세계를 인식하는 ‘대중’에게 아무리 이데올로기를 미신적이고 근거 없는 것이라고 주장해도 먹혀들지 않는 것이다. 이데올로기는 대중의 세계관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서 대중은 이데올로기를 ‘과학적인 것’이라고 철석같이 믿는 경우가 허다하다.(p180~p181)

 

연예인이 우리에게 신비로운 존재로 비치는 것은 연예인이라는 생물학적 유기체가 원래부터 이런 속성을 내재하고 있기 때문이 아니다. 이런 신비성을 만들어내는 요소는 자본주의의 상품구조가 만들어내는 물화이다. 물화라는 건 자율적이지 않고 의존적인 현상이 마치 처음부터 그랬던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객관적인 것이 아닌데 집단적인 신념이나 착오를 통해 객관적인 것처럼 변질되는 것, 이것이 바로 물화이다. 대체로 자본주의 문화는 이런 물화의 과정이라고 볼 수 있는데…”(p250~p251)

 

“대중문화는 대중의 욕망을 보여주는 바로미터이다. () 대중문화의 형식은 대중의 정치성을 욕망의 논리를 통해 드러내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 대중문화는 그 사회의 상식에서 자양분을 얻는다. 그래서 사회의 평균의식을 가늠할 수 있는 척도이기도 하다.(p278~p280)

 

“칙릿(소설)은 정신적 성장이 지체된 후기자본주의 사회 여성 노동자의 모습을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후기 자본주의 시대로 접어들면서 사회의 노동구조는 산업의 재편과 함께 급격한 변화를 맞이한다. 제조업에서 금융업으로 자본이 이동하면서 남성 노동자의 근육이 필요한 산업이 더 이상 사회의 중심에 놓일 수 없게 됐다. 공장들이 도심에 위치했던 19세기형 도시구조도 필연적으로 변화했다. 공장이 떠난 자리에 들어선 것은 유리벽으로 덮인 고층빌딩이었다. 이런 빌딩에서 지난 30년간 복잡한 수학과 물리학 공식들로 무장한 ‘금융공학 전문가들’이 밤낮없이 일하면서 괴상한 논리로 투자자들의 지갑을 열게 만들었다.

이 과정에서 기업들은 노동유연성에 적합하고 고용효율성이 높은 여성 노동력을 선호하기 시작했다. 이런 현상을 ‘여성화’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말이 좋아서 노동유연성이고 고용효율성이지, 결국은 쉽게 해고할 수 있고, 적은 임금으로 많은 노동을 강요할 수 있는 여성 노동력을 기업들이 활용했다는 걸 의미한다. 칙릿이 그려놓은 세계는 흥청망정 놀고먹는 유토피아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은 것이다.(p290~p291)

 

 

 

 

 

 



b******a 2010.09.09.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