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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시작은 한 가지 예문으로 시작된다. 출근길에 길을 지나다가 물에 빠진 아이를 발견한다. 연못은 내 무릎까지 밖에 오지 않는 깊이지만 아이에게는 목숨을 앗아갈 수도 있는 위험한 깊이다. 아이를 구하면 새로 산 양복이 더럽혀질 수도 있고 출근시간에 늦을수도 있다. 당신은 아이를 구할 것인가? 아니면 그냥 출근할 것인가?
이에 대한 예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떻게 대답할 것인가? 당연하지 않은가! 양복이나 출근시간 따위에 구애받지 않고 아이를 구할 것이라고 말할 것이다. 눈앞에서 아이가 죽어가는데, 그까짓게 대수겠냐고 대답할 수도 있겠다. 그렇게 자신있게 대답하는 당신에게 피터 싱어는 심오한 질문을 던진다. 지금 이 순간 기아로 인해 죽어가는 아이를 위해 당신의 수입을 기부할 수 있겠느냐고.
피터 싱어의 질문에 순간 '멈칫'한다면 당신은 나와 같이 평범한 사람일 것이다. 눈 앞에서 죽어가는 아이를 구하는 것과, 내가 기부해서 모르는 아이를 구하는 것은 근본적으로 다른 일이라고 따져 묻고 싶을수도 있다. 하지만 피터 싱어는 하나하나 항목을 들어가며 우리가 기부하지 못하는 이유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흔히 우리가 저지르는 오류 가운데, 나 한 사람의 기부로 인해 얼마나 많은 도움이 되겠느냐는 생각과 넓은 호수를 메우는데 작은 돌멩이 하나로 족하겠냐는 생각이 들 수 있다. 나 역시, 기부를 하기에 앞서 그런 생각들이 앞을 가로막았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피터 싱어는 말한다. 눈앞에서 물에 빠진 아이를 구했듯이, 즉시 기부를 실천하라고 말이다.
나는 여러분이 소득의 5퍼센트 이상을 베풀어야 한다고 여기며, 결국엔 그럴 것이라고 희망한다. 이 책의 궁극적인 목적은 절대 빈곤을 줄이자는 것이지, 독자에게 죄책감을 심어주자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생각해보라. 우리의 상황이 최악의 최악이라도, 절대 빈곤에 떨어져 있는 사람들보다는 낫다는 사실을.
막상 기부하고 싶어도 그러지 못하는 수많은 현실이 도처에 존재한다. 하지만 싱어의 말대로 이미 풍족한 생활을 누리고 있는 우리의 최악이란, 절대 빈곤 속에서 죽어가는 그들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책을 다 읽고 나서 내가,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지갑을 열고 기부를 실천해야 한다는 것이다.
뮤지컬을 볼 돈으로, 별다방의 고급스런 커피를 마실 돈으로, 하다못해 더운날 편의점에서 사서 마시는 생수의 값을 아껴서 기부를 실천할 수 있다. 우리는 함께 살아가는 소중한 사람들이다. 눈앞에서 벌어지는 일이 아니라고 외면하기에는, 물에 빠져 허우적대는 아이의 비명소리가 생생하지 않은가. 피터 싱어의 말대로 이제는 실천할때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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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부터 얘기하면 이 책을 읽고 마음 속 깊이 반성하여 세이브 더 칠드런 홈페이지에 가입해서 아이티에 5천원 성금을 보내고, 난생 처음으로 한 달에 1만원씩 정기 후원을 신청했다. 아르바이트 비슷한 것을 하는 내 월급은 26만원. 피터 싱어가 권장하는 "수입의 5% 기부하기" 조건에 얼추 맞아 떨어지는 셈이다.
피터 싱어는 <물에 빠진 사람 구하기>를 통해 굶주리는 사람들을 외면하고 의미없는 소비에만 몰두하는 '잘 사는 사람들'을 향해 각성을 촉구하고 있다. 피터 싱어를 처음 접했던건 10년 전 <실천윤리학>을 읽었던 때였다. 그당시도 인간의 작은 욕심 때문에 동물을 학대하며 살육하는 모습을 비판한 주장이 크게 화제를 일으켰는데 이제는 그때보다도 훨씬 큰 영향력을 가지고 세계의 중요한 인물 중 하나로 자리를 잡았다.
죽 한 술 입에 대지 못하거나, 선진국에서는 이미 오래전에 없어진 하찮은 질병으로 죽어가는 사람들을 위해 기부를 해야 하는 이유와, 갖가지 조잡한 핑계들을 대며 기부하기를 거부하는 사람들의 논리를 명료하게 논파하고 있다. 그와 함께 각종 봉사단체들의 매우 다양한 형태의 봉사활동을 소개한다. 전쟁으로 팔다리를 잃은 아이들을 위해 외과수술을 해주는 의사 단체, 너무 어린 나이에 아이를 낳은 탓에 여성 생식기 내부가 손상되어 인생을 잃어버린 소녀들을 치료해주는 단체... 다양한 형태의 단체들이 내가 지금 자판을 두드리며 책 리뷰를 쓰고 있는 이 시간에도 고귀한 땀을 흘리며 생명을 살리고 있다.
이 책에서 재미있었던 대목이 있다. 사람들은 당연하다는 듯이 인간의 본성은 이기적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생각보다 사람은 이타적인 행동을 자주 한다는 것이다. 그런 모습을 사람들은 "부자연스럽다"고 생각하고 "이기적인 냉혈한"이라는 평가보다 "착한 척한다"거나 "영웅 놀이를 한다" 라는 평가를 더 거북해 한다고 한다. 생각해보니 내 주변 사람들도 위와 같이 이유로 기부하기를 거부했었던 것이 생각나서 조금 웃었다.
후반부의 "자신의 아이가 죽어갈 경우, 다른 죽어가는 아이들과 차별하여 내 아이를 우선해야 할 것인가?" 라는 딜레마는 마음이 숙연해진다. 많은 사람들에게는 생각할 여지도 없이 내 아이가 우선시 되어야 한다고 말할 것이다. 그러나 피터 싱어는 그것이 이해받을 수 있을지는 몰라도 옳지는 않다고 말한다. 생명과 사랑의 의미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소비의 의미는 단순하게 돈을 써서 자원을 사는 것만이 아니다. 때론 마음의 허전함을 달래기 위해, 혹은 일에 치인 자신에게 보상해주기 위해 필요 없는 돈을 너무 많이 쓴다. 그러니까 돈으로 물건을 사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사는 것이다. 텅 빈 마음을 채우기 위해 몇 번 입지도 않을 옷을 사고, 일없이 기름진 음식을 먹고 후회한다. 그런 삶을 나는 더 이상 바라지 않는다. 내 월급 26만원은 요즘의 한국 사회에서 넉넉하게 쓸 수 있는 돈은 아니다. 하다못해 여기 인터넷 서점에서 몇 번 책을 사면 날아가 버리는 돈이다. 그러나 절대로 내가 죽 한 술 뜨지 못해 굶어죽게 되진 않을 것이고 이질을 치료할 약을 사지 못해 죽게 되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거면 됐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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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를 보며 빌게이츠나 워렌버핏 같은 대부호들이 재산의 상당부분을 기부하는 기사를 접할 때마다 상당히 부러우면서도 우리나라의 부자들은 뭐하나? 싶은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재산이 몇 백억 많게는 몇 조가 있다는 재벌들이 위법을 해서 벌금이 얼마가 나왔다는 얘기는 매년 들었어도 기부를 몇 백억 했다는 얘기는 절대로 못 들었다는 게 참으로 씁쓸하기만 하다. 하긴 나부터도 내 코가 석자라는 이유로 기부는 남의 나라 얘기인양 멀게만 느꼈던게 창피한 일이긴 하지만. 얼마 전 한비야씨의 ‘그건, 사랑이었네’를 읽으면서 미처 인식하지 못했던 세계 빈곤의 모습이 잠시 언급되었을 때도 충격을 받았었다. 그리고 그녀가 속한 월드비전이 얼마나 고귀한 일을 하는지 새삼 느꼈는데 이번 책은 충격을 넘어 이제 나는 어떻게 할 것인가와 같은 좀 더 직접적인 문제로 다가왔다. 생수 한 병 값보다 적은 돈으로 하루를 살아가는 사람이 10억명이 넘는단다. 이는 실체감이 없어서 그렇지 실로 어마어마한 숫자이다. 피터 싱어가 쓴 이 책은 이렇게 보지 못했던 불행한 사실들을 이 책을 통해 낱낱이 밝히고 기부가 죽어가는 사람들의 삶에 어떤 의미인지를 실질적으로 인지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대한민국의 많은 식당들이 음식을 남기면 벌금을 물린다며 경고장을 던질 만큼 버려지는 음식이 상당한 이때, 지구 반대편 어딘가의 아이는 제대로 된 물 한 모금 먹지 못하고 죽어가고 있다고 그는 말한다. 이 순간 나는 죄 안 짓고 평생을 떳떳하게 살아왔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가? 아니다. 당장이라도 오늘 하루 동안 과하게 쓴 돈과 물건들에 낯이 뜨거워진다. 피터 싱어는 기부가 그리 어려운 것이 아님을 설득력 있는 논조로 강조한다. 특히 지금까지 돈이 많던 적던 얼마만큼을 기부해야 하는가?에 대한 기준이 모호했다면 딱 5%만 기부하라는 실질적인 수치도 알려준다. 이게 많다고? 집값 대출금에 아이들 등록금에 경조사비에...더 줄일 수 도 없는 빠듯한 살림인데 5%나 떡하니 떼어주자니 엄두가 나지 않을지 모른다. 그래서 저자는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사람들의 경우에 연소득의 약 5퍼센트를 기부하라고 말한다. 자신의 삶이 궁핍해지면서까지 기부하라는 말은 절대 아니다. 하지만 24평 살다가 35평 아파트로 안 늘려가도, 한 달에 두 번 보는 영화를 한 번만 본다고 우리 삶의 질이 얼마나 낮아지겠는가? 누구는 목숨이 왔다갔다하는 판에. 그리고 더욱 궁극적인 것은 이 기부라는 행위를 통해서 나도 행복해진다는 명백한 사실이다. 뇌 실험을 통해 과학적으로 증명했듯이 우리는 남을 돕는 일을 통해서도 행복감을 느낀다는 것이다. 십시일반이라는 말이 지금 우리가 실천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하면서도 최소한의 손 내밀기가 아닐까? 물에 빠져 당신의 손을 기다리는 아이에게 더 이상 주저하지 말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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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는 무릎정도의 깊이밖에 안되지만 이제야 아장거리기 시작하는 꼬맹이에게는 치명적인 높이가 되는 연못에 아이가 빠졌다. 내가 새로 산 운동화와 물에 들어가면 망가지는 바지를 입었다는 이유로 그 아이를 구하기 위해 연못에 들어가는 것을 거부할 수 있을까? 이런 구체적인 물음은 그 범위를 확대하고 생각을 넓혀, 지구상의 수많은 아이들이 그렇게 쉽게 생명을 구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단지 나의 안락하고 사치스러운 생활을 위해 그 기회를 버리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생각해보게 해 준다. 내가 어릴 적에 사회적 빈곤층에게 어떠한 도움을 줄 수 있는가,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단지 돈 몇푼의 도움으로는 해결되지 않으며 구조적 모순을 해결해야만 빈곤층이 사라질 수 있다는 주장을 들었었다. 물론 사회 구조적인 모순을 해결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마더 데레사처럼 도움을 줄 수 있는 손길을 베푸는것도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은 좀 더 크고 난 후였다. 수많은 어린이가 굶주리고 있는데도 연료에 쓰이는 농작물의 비중이 증가하여 식량으로 사용하지 못하고, 단돈 천원이면 구할 수 있는 백신을 처방받지 못해 태내에서 에이즈에 감염되어 사망하고, 우리의 사치스러운 한끼니 식사값으로 설치할 수 있는 정수장치가 없어 수많은 사람이 죽어가고 있다. 이러한 이야기는 새삼스러울 것도 없는 것 같지만 구체적으로 우리가 얼마의 돈으로 몇명의 생명을 구할 수 있는지 산출하게 된다면 좀 더 많은 사람들이 '기부'에 대한 가치를 더 생생하게 느끼게 될 것이다. 물에 빠진 아이 구하기는 그런 의미에서 기부에 대한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이야기들을 하고 있다. 단순한 수치만으로는 선진국이라 불리우는 몇몇 나라와 몇몇 갑부들이 엄청난 금액의 기부를 하고 있음을 나타내지만 실질적으로 그 수치를 비교분석하여 나타냈을 때, 오히려 상위 10%이내의 부자들은 새발의 피만큼도 안되는 금액을 기부금으로 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건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성경의 비유, 가난한 과부가 낸 동전 한닢이 그 과부의 전재산이고 그것은 실로 가장 큰 헌금이라는 비유를 떠올리면 쉽게 이해가 갈 것이다. 사실 천만원이라는 돈은 내게 엄청나게 큰 돈이지만, 수십억의 재산을 가진 이에게는 맘 먹기만 하면 사회복지차원으로 쉽게 기부할 수 있는 그런 금액이 되지 않겠는가. 하지만 그 모든것이 또한 쉽지만은 않다는 것도 알고 있다. 실제로 나는 이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 thelifeyoucansave홈페이지에도 가봤고 50%동맹에 동참 선언하라는 글을 읽으며 많은 생각을 해 봤지만, 결국은 내 재산의 50%를 기부하지 못하고 내것을 움켜잡고 있다. 평소 입버릇처럼 내 재산의 절반은 교회에 기부할 것이며 나머지 절반은 상속을 해 준다고 말했으면서도 말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자괴감에 빠져들지는 않겠다. 내가 세상의 모든 아이들을 구할 수는 없지만, 내가 평소 아끼며 모아둔 돈을 기부함으로써 이 세상의 어느 누군가가, 또 어느 누군가의 한명 더...그렇게 살아나갈 수 있는 힘이 되어주리라는 것을 믿기에. 나의 새 운동화와 새 옷을 희생해가면서 물에 빠진 아이를 구할 것인가 말 것인가는 전적으로 본인에게 달려있는 문제이지만 많은 이들이 이 책을 읽고, 사람의 생명은 새 운동화와 새 옷보다 훨씬 더 가치있고 존엄한 것임을 깨닫게 되기를 희망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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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아직 아이가 없습니다. 그럼에도 이 책의 내용은 우리의 아이들에게 꼭 전해주고 싶습니다. 대학. 대학원을 거치며 경제학에 대해 10년가까이 공부해오는 동안 최근 '빈곤', '기부'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되면서 제가 너무 편협한 시각과 오로지 돈을 벌어 편안하게 사는 삶만이 행복한 삶이라는 어리석을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 세상에 부모와 국가를 선택해 태어나는 아이는 없습니다. 어떤 아이는 경제도 부유하고 안정적인 나라에서 태어나 자랍니다. 어떤 아이는 전쟁이 계속되어 집도 안전한 식수도, 먹을 것도 없는 나라에서 태어나 자랍니다. 사는 곳과 인종이 다르겠지만 두 아이는 모두 우리들의 아이들입니다. 내 아이들에게 차별없이 안전하고 행복하게 세상을 살게 해줄 의무가 우리 부모들에게는 있습니다.
제프리 삭스의 '빈곤의 종말'이라는 책이 전세계적인 방대한 계획을 담고 있다면 이 책은 윤리도덕학자인 피터싱어의 개인적인 생각과 방법론들에 관해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출근길에 분수대에 빠진 어린 아이를 발견합니다. 아이를 구해주기에는 출근시간이 촉박합니다. 젖은 옷을 갈아입기 위해 집에 다시 가야하고 회사에 사정을 설명해야 합니다. 그리고 내 주변에 그 상황을 뻔히 본 다른 사람들도 많습니다. 굳이 내가 그 일을 해야할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나는 어떻게 해야할까요"
이것이 이 책이 던진 화두라고 할 수 있겠죠. 누구나 쉽게 물에 빠진 아이를 구해야한다고 말하겠지만 이를 실천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거 같습니다. 얼마전 우리나라의 기부인식에 대한 기사가 있었습니다.
제목이 '우리는 빈곤국가의 지원에 대해 인색한 나라' 였었는데, 다음 자료를 이용한 기사였습니다.
http://www.cgdev.org/ 의 Sweden Ranks First in the 2009 Commitment to Development Index
를 인용한 http://news.nate.com/view/20091023n00489 기사입니다.
기사에 달린 댓글들을 보고 든 생각은 우리의 인식이 아직은 너무나 미약하다는 것입니다. 개인의 윤리관을 떠나서 우리나라는 사랑과 봉사를 기치로 하는 교회가 세계 어느나라보다 많고, 세계 어느곳보다 '정'이 많다고들 합니다만 댓글이 순전히 10대,20대 등 젊은이들에 의해 작성되었다면 오히려 더 걱정입니다. 우리는 언제부터 우리만 알고 지구상에 존재하는 다른 사람들에 대해 이토록 냉혹하기만 한걸까요.
댓글 내용을 보면 우리나라에도 빈민이 많은데 기부 특히나 다른 나라에 대한 원조(국가차원의 원조인 ODA를 포함해서)나 기부는 필요없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어느 나라도 자국에 빈민이 없는 나라는 없습니다. 세계 제1의 경제대국 미국에서도, 일본, 중국, 유럽 그 어느나라에도 오히려 우리나라의 빈민수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이 절대빈곤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빈민이 없어서 빈국을 지원해주는 것이 아닙니다. 또한 예산이 남아서 지원해주는 것도 더더욱 아닙니다. 빈국에 대한 지원은 윤리학의 관점에서 굳이 따져보지 않아도 한국인이 가진 "정"이라는 특성에 비추어보면 인간으로서는 당연히 가져야할 마음입니다.
우리 아이들이 높은 내신점수, 좋은 대학, 좋은 직장을 위해서 평생을 노력하면서 다른 사람의 아픔을 나몰라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자신에게 주어진 이러한 좋은 환경에 감사하고 가지지 못한 사람들에게 자신이 가진 것을 기꺼이 나눠줄 수 있는 생각을 가진 아이들. 그런 아이들이 성장하여 더 좋은 나라를 만들수 있지 않을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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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호활동을 전문으로 하는 모 국내 단체에 매달 소액 기부한 것이 삼 년째에 접어들었다. 말하기도 민망한 액수지만 꾸준히 끊지 않고 하는 일이 누군가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된다는 생각으로 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내가 충분히 먹고 살고 있고 넉넉하지는 않지만 하고 싶은 것과 사고 싶은 것을 살 수 있는 능력이 된다고 믿고 있다. 그래서 정말로 하고 싶어도 몸이 불편하거나 주변 환경 때문에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매일을 고통 속에서 사는 사람들을 내가 도와야 한다고 믿는 편이다. 하지만 이런 ‘믿음‘을 제대로 ’실천’하고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여러 곳에서 도움이 필요한 상황에서 어디에다 어떻게 내가 가진 돈을 주어야 할지는 항상 의문스럽다. 티브이에서 나오는 병든 아이를 배경으로 전화한통으로 1000원씩 기부되는 현황이 중계되는 장면은 뭔가 인간적이지 못한 느낌이다. 그리고 그 프로그램의 제작비와 촬영비, 기타경비 등을 제외하면 어느 정도나 그 아이에게 제대로 전달될까 하는 의심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그렇게 해서 그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된다면 비판의 여지는 없다.
98년 국가 환란의 돌파구로 홍보된 금모으기 행사 때 ‘가진자’들의 책임을 ‘가지지 못한 자’들이 대신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털렸다’는 느낌을 가진 이후로 정부에서 하는 모금행사에는 손이 가지 않는다. 베스트셀러 작가인 한비야씨의 책을 읽고 그녀가 소속되어 있었던 월드비전에 기부하고 싶다는 마음은 가지고 있었으나 그것도 차일피일 일 핑계로 미루어온 것이 오래되었다. 남들의 위기에 처한 삶보다 나와 내 안위가 더 우선에 있기 때문일 것이다.
돈을 많이 벌면 기부할 거야. 불쌍한 사람들 도우며 살면 얼마나 좋을까. 처와 가끔 불쌍한 이들의 이야기를 보거나 듣고는 하는 말이다. 하지만 이는 현실성이 떨어진다. 돈을 그리 많이 벌고 싶은 마음이 없거니와 정말 남을 돕기 위해 돈을 벌수 있을까? 과연 내가, 우리가 그런 마음으로 현실에 뛰어들 자세가 되어 있을까?
역시나 나의 삶은 올바르지 않았다. 세끼를 꼬박 챙겨먹고 가끔 외식을 하며 좋아하는 책과 영화를 사서보고 여름휴가를 가서 즐길 수 있는 처지에 당장 옆에서 돈이 없어서 굶거나, 아픔을 견디지 못해 죽어가거나, 주사를 맞지 못해서 병에 걸리는 예쁜 아이들을 제대로 도와오지 못했다.
당신은? 당신은 기부하는가.
아프리카로 대표되는 헐벗은 사람들. 우리는 주기적으로 미디어를 통해 가난 때문에 죽어가는 아이들을 접하고 있다. 그들은 아무 죄도 없이 태어난 환경부터 고통의 시작이다. 그저 먹을 것을 구하지 못해서, 예방주사를 맞지 못해서, 모기장을 살 돈이 없어서 그들은 그렇게 힘없이 생을 마감한다. 그들을 위해 우리가 하는 것이라고는 순간의 동정심을 발휘해서 마음으로만 멀리서 위로하는 것뿐이다.
기부해야 한다. 죽어가는 아이들을 살리기 위해, 그들이 지속적으로 최소한의 생계를 꾸려나갈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하지만 우리는 그러지 않는다. 왜? 왜 우리는 우리가 술을 마시거나, 차를 바꾸거나, 해외여행을 가거나, 과자를 사먹거나, 핸드폰을 바꾸거나 하는데 들이는 돈의 일부라도 그들의 삶을 찾아주는데 쓰기를 주저하는 것인가.
당신 앞에 물에 빠진 아이가 있다. 중대한 계약을 위해서 또는 가족과의 일 년만의 약속을 위해 시간을 다투며 길을 가고 있는 중이다. 그런데 곧 빠져 죽을 것 같은 아이가 보였다. 어떻게 해야 하는가. 옷이 젖을까봐. 양말과 새로산 구두가 머릿속에 떠오르고 차를 그냥 두고 달려가면 누군가 훔쳐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머리를 어지럽힌다. 하지만, 아마 그냥 못 본체 하고 지나치는 인간은 거의 없다. 누구든지 주저하지 않고 구하러 뛰어 들 것이다.
우리는 지속적으로 ‘물에 빠진 아이들’을 접하고 있다. 돈이 없어서 매일 한 끼밖에 먹지 못하는 아이가 아니라, 태어나서 한 끼도 제대로 먹지 못하는 아이들. 천원의 주사를 맞지 못해서 병에 걸리는 아이들. 그들은 하루 천원이면 적어도 삶을 이어갈 수 있게 된다. 그들을 위해서 선진국의 국민들이 각자 1달러씩 기부만 해도 지금 죽어가는 아이들의 대부분을 살릴 수 있다고 한다. 그런데 왜 그렇게 하지 않고 있는 것일까. 당장 해야 한다.
하지만, 너무 급진적인 논리로 기부하지 않는 사람들을 압박해서는 안 된다.
“누구나 다른 견해를 가질 수 있으며 각자의 신념대로 행동할 수 있다. 우리는 돈을 벌기 위해 일했고, 그 돈을 마음대로 쓸 권리가 있다. 우리가 아무런 잘못도 저지르지 않은 사람들에 대해서 어떤 보편적인 의무를 갖는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세금에서 일부의 돈이 대외 원조로 나가고 있다. 또한, 일방적 원조는 의존하는 습관을 들이게 한다.”
이러한 생각들이 우리를 기부로부터 멀어지게 한다. 그리고 꽤 설득력이 있다고 믿고 있어서 마음속에서 거의 흔들리지 않을 정도다.
그러나 이는 핑계일 뿐이다. 그들의 처지는 우리가 이런 의논하는 것조차 사치일 정도로 훨씬 절박한 상태이다. 그저 그들에게 생명을 유지할 수 있는 기회를 주자는 것인데 그런 기회를 내가 벌어들이는 돈의 일부로 주자는 것은 선한일이며 오히려 알면서도 주지 않는 것이 ‘악’이 될 수 있다는 주장은 설득력을 가진다.
그 어느 단체나 과거의 대부호들보다 많은 기부를 하고 있는 빌게이츠나 워렌버핏 같은 ‘의식 있는’ 부자들은 수입의 1%의 기부로 온갖 생색을 내고 다니는 일부 부자들에 비한다면 칭찬받아 마땅하다. 하지만 그들은 그런 돈을 기부하고도 여전히 여유 있는 삶을 누릴 수 있으며 당장 자동차 할부금과 집 대출 이자를 갚는데 급급한 서민들하고 비교할 수 없다.
서민은 기부할 수 없다. 자동차 할부금에 집 대출 이자를 갚아야 하고 아이들 학원비를 대기에도 빡빡해서 마이너스 통장의 지출이 늘어간다. 휴가비와 주변의 관혼상제가 차지하는 비용등도 벅차다. 하지만, 나는 먹고 산다. 굶지 않고 있고 예방주사도 꼬박꼬박 맞으며 무엇보다도 물을 길으러 십리길을 걸어 다니는 일은 해본적도, 그런 일을 하는 주변사람을 본적도 없다. 그러니 색이 바랜 티셔츠를 몇 달 더 입고 그 돈을 학교도 못다니는 아이를 위해 기부하는 것은 불가능하지 않다.
그럼 어떻게 기부할 것인가. 저자는 본인의 수익을 어떻게 써야 할지에 대한 계획을 세우고 유흥과 오락을 위해 쓰이는 돈, 더 써도 되는 물건을 바꾸는 일에 쓰이는 돈 등을 무조건 기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를 위해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기업체나 국가차원에서 개인 소득의 일부를 기부액으로 미리 설정해 놓는 것도 한 방법이라 한다. (오스트리아는 기부를 Default로 한다) 개인이 그 기부설정을 거부신청하지 않으면 자동적으로 기부액으로 나간다는 이야기이다. 당연히 그 기부의 비율은 구성원들의 동의를 통해 정해져야 한다.
옆집아이가 물에 빠졌는데 나 몰라라 할 인간은 없다. 먹고사는 데에 더 이상 급급하지 않은 ‘선진국’의 개인으로서 책임을 강조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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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연인인 시절에 늘 이러한 질문을 들어왔다 '어머니랑 나랑 물에 빠지면 누구를 구할거야?' 언제나 결론이 나지 않는 그 질문에 나는 물에 빠진 사람을 구하는 것은 나에게 스트레스만 더해 주는 질문이라고 생각했는데, 피터싱어의 인류를 구하기 위한 진지한 질문, 정의를 세워가기위한 그의 질문은 우리에게 있어서 삶의 우선순위와 불평등한 이 세계를 정의로운 사회로 한걸음 내닫기 위한 노력으로 비추어 진다. 실제로 이와같은 사고는 우리뿐만 아니라 다음세대를 통해서도 지속가능한 세계를 위해 꼭 필요한 부분으로 여겨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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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곤이라는 무거운주제를 다룬것인데 다른 사람들은 어떠한지 모르겠지만 나에게는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기부가 인생의 숙제처럼 안겨있기 때문에 선택하게 되었다.
사실...아직 나에게 기부란 단어가 희망일뿐이고 사치일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내 앞가림도 제대로 못한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누군가에게 특히, 나와는 먼나라의 가난한 사람에게 기부라는 것은 먼미래의 이야기로만 머물고 있다.
그런데 이 책은 나와 같은 고민을 하는 수 많은 사람에게 너무도 명쾌한 논리를 제시한다. 기부를 회피하는 사람, 기부를 부정적으로 보는 사람, 기부를 머뭇거리는 사람에게 그들의 생각과 행동을 빠굴만한 강력한 논거를 제시하고 있다. 읽다보면 기부를 하지 않는 나는 그냥 어린아이가 부모의 말이 다 옳지만 그냥 때를 쓰는 것과 같이 여겨질 정도이다.
출근길에 작은 연못가에 빠져 허우적되는 아주 어린아이가 있는데 그 아이가 연못에서 혼자 빠져나오기에는 역부족이고 내가 도와주지 않으면 곧 죽을 수 도 있는 상황이다. 나에게 연못은 옷을 더럽히게 하고 회사에 지각을 하는 장애요소가 되지만 그 아이를 구하기에는 물이 그다지 깊지는 않다. 이런 상황에서 나는 그냥 출근을 할 것인가?
명쾌하다..어느 누구도 지각을 하거나 옷이 더럽혀지는 것때문에 죽을 고비를 맞이한 어린아이를 그냥 지나치지는 않을 것이다. 이것이 피터싱어가 제시하는 절대빈곤 국가에 대한 기부를 바라보는 상황이다.
책을 읽다보면 우리가 기부를 거부하는 논리에 대한 반박도 명확하고 기부를 주저하게 만드는 심리적 요인에 대한 언급이 너무 자세해서 내 옷이 벌겨벗겨지는 느낌도 들었다.
이 책은 이 세상은 혼자 살수만은 없다고 조금이라고 인정하는 사람이라면 꼭 한번 읽어봐야 할것같다. 책을 읽는다고 기부를 바로 실행하게 되지는 않을 수 있다. 내가 바로 그렇다.
하지만. $1.25 미만으로 하루를 힘겹게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한 관심이 왜 필요하고 이것이 왜 중요한지 정도는 얻어갈 수 있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