홉스는 자연 상태에서 인간은 ‘자연법’의 지배를 받는다고 말합니다. 그것은 ‘자신의 생명을 보전’하는 것입니다. 개인은 자신의 생명을 위해서라면 무슨 짓이든 할 권리를 갖습니다. 거기에는 타인의 생명을 침해할 권리도 포함됩니다. 그런데 인간들은 모두 인식의 오류를 갖고 있습니다. 그것은 자신이 타인보다 우월한 능력을 갖고 있다는 믿음이고, 그래서 1:1의 경쟁 상태에서는 자신이 승리하게 되리라는 확신입니다. 그래서 자연 상태에서 인간은 타인의 권리를 침해하려는 본성을 갖습니다. 그래서 끊임없는 투쟁이 일어나고, 절대적 강자는 없기 때문에 결국 그 누구도 안전하지 못한 상태가 된다는 것입니다.
이는 코먼웰스 간에도 마찬가지로 작동되는 원리입니다. 코먼웰스는 자신의 생존을 위해 다른 코먼웰스의 권리를 침해하려고 하는 본성이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코먼웰스든 기회가 되면 다른 코먼웰스를 침략함으로써, 자신의 보전을 위해 힘을 키우려고 합니다. 개인 차원에서와 마찬가지로 국가 간에도 ‘만인에 의한 만인의 투쟁’이 존재하는 것이죠. 그래서 홉스는 코먼웰스가 강하게 결속하여 외부와 경쟁하려면, 하나의 주권자에게 모든 권력이 모아져야 한다는 결론에 이릅니다. 그래서 주권자의 의지가 단일화되기 쉬운 왕정이, 다른 정치체제를 가진 코먼웰스보다 경쟁에서 유리하다는 것이죠. 그리고 이미 자연상태에서 자신의 안전을 위해, 모든 사람이 자신의 권리를 코먼웰스에 넘겼기 때문에, 그 코먼웰스에 속하는 사람은 태어난 순간부터 코먼웰스의 법에 복종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법은 시민법입니다. 자연법이 코먼웰스의 승인을 통해 시민법으로서 개인들을 구속하게 되는 것이죠.
여기서 더 나아가 홉스는 종교 권력조차도 정치 권력의 제어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주권은 분할되어서는 안되기 때문에, 정치 권력과 대립하는 종교 권력이 있어서는 안된다고 본 것이죠. 여기에는 그 당시 헨리 8세의 성공회 독립 이후, 메리 여왕과 엘리자베스 1세의 치세 이래 계속되었던, 카톨릭 교회와의 격렬한 권력 다툼 과정이 영향을 끼쳤습니다. 홉스는 내란을 겪으면서 통일된 주권 아래 국가가 유지되지 못할 때, 국민들은 행복할 수 없다는 결론에 이릅니다. 따라서 어떤 국가 내부의 갈등도 인정할 수 없었습니다. 따라서 정치적 주권을 넘보던 교회 권력에 대해 날선 비판을 가하게 된 것이죠.
그의 교회 비판은 교황을 바알세불이나 요정에 빗대어 공격할 정도로 신랄합니다. 그 시대 다른 대륙 철학자들이 비교적 사상의 자유가 인정되었던 네덜란드로 도피해 ‘이성’의 우위를 주장하고, 그러면서도 교회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기 위해 노력했던 것과 비교해보면, 그의 교회 비판은 정말 강력합니다. 그것은 그가 성공회 신도로서 카톨릭 교회의 영향권에 들어가 있지 않다는 점이 크게 작용했습니다. 이렇게 17세기 즈음에 인간은 데카르트, 스피노자, 홉스 등의 철학자들의 도움으로 맹목적 신앙이라는 ‘미개함’에서 차츰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그 과정을 그들의 책을 통해 목격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얼마나 험난한 과정이었는지 그들의 조심스러운 말과 글, 때로는 홉스처럼 열정적인 논박을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인류가 무지와 미신에서 얼마나 어렵게 벗어났는지를 생각해보면, 거리에 넘치는 점집과 인터넷의 한 쪽 자리를 차지한 사주풀이, 거리마다 가득한 온갖 우상 숭배소들은, 인간의 진보가 얼마나 힘든 과정인지를 다시금 생각하게 합니다.
홉스의 사회계약설을 통해 국가는 신에 의해 내려온 권력이 아니라, 시민 하나하나의 동의 하에 이뤄진 합의체가 되었습니다. 그러한 사상은 점점 더 발전해 국가의 목적이 시민의 안전, 시민의 자유, 시민의 행복으로 점점 더 개인의 권리를 신장시키는 역할을 맡는 쪽으로 진보합니다. 그리고 이제는 더 나아가 다른 생명체의 권리를 보존하고자 하는 데까지 발전합니다.
혹자는 다국적 기업들과 세계화의 영향으로 국가의 주권이 점점 더 약해질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각종 분쟁과 금융위기, 환경위기 등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처럼, 여전히 국가는 가장 강력한 문제해결자로서 기능하고 있습니다. 개인은 국가의 지배 아래, 자신들이 갖고 있는 가장 근본적인 문제 해결 능력인 폭력을 포기했습니다. 그리고 국가는 그러한 폭력을 독점하고 있는 정당한 합법적 기관으로, 개인들을 규율합니다. 아직 인류는 국가보다 효율적인 구성체를 만들지 못하고 있습니다. 새롭게 등장하는 시민권력도 아직은 국가권력의 보조적 역할을 수행하는 정도에 그치고 있죠. 따라서 인류는 아직도 상당기간 리바이어던의 보호 아래 살아야 할 운명입니다.
하지만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비록 우리가 리바이어던의 보호 아래 있는 무기력한 개인일지 몰라도, 그 시작은 우리의 ‘동의'가 있었다는 점입니다. 홉스는 그러한 동의가 한 번 이루어지면 주권자에 저항할 권리도, 그리고 그것을 철회할 권리도 개인에게 없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인류의 사상과 정치제도는 홉스 이후 많은 발전을 해왔습니다. 우리가 ‘동의’한 대가로, 국가는 우리의 행복을 향상시켜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계약의 이행을 요구할 권리가 시민들에게도 주어진다는 사실은 이제 상식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상식이 실제로 현실에서 이행할 수 있도록 각종 제도적 절차가 만들어졌습니다.
부족한 것은 늘 우리의 의지입니다. 우리의 의지가 약할 때, 그리고 자신에 대한 믿음이 약해질 때, 홉스가 말한 ‘어둠의 나라'가 우리를 덮치게 됩니다. 우리가 해야할 일은 이성의 등불을 밝게 밝히도록 노력하는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