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이책을 읽다보니 예전에 친구와 함께 본 영화가 떠오른다.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 그당시에는 공안이니 화두니 알 턱이 없었고, 다만 메스컴에 아름다운 영상미와 감독의 칭찬이 연일 보도 되길래 시대의 흐름에 이영화를 안보면 자칭 문화인이라 는 자부심에 흠집이라도 날까 싶어 내내 졸음과 싸워가며 보고 극장믈 나오면서도 정작 왜 달마대사가 동쪽으로 갔는지는 고사하고 그 뜻조차 이해하지 못하고 어렵고 난해한 영화로 내머릿속에 여지껏 자리하고 있다.
우연히 접한 원철스님의 『할로 죽이고 방으로 살리고』를 통해 "달마가 서쪽에서 온 까닭은?" 선불교에서 가장 유명하고 중요한 공안(화두)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또한 달마가 이가 없기에 이를 보이기 싫어 꽉다문 입에 무서운 서양인을 닮은 달마도만이 남아 있는 이유란다. 그런 달마가 서양에서 선불교를 깨치러 동쪽으로 왔는데 왜 또 서쪽으로 돌아 갔을까? 이화두에 대한 답을 조주는 "뜰앞의 잣나무"라 하고 또 다른 이에겐 "앞니에 털이 돋았다"라고도 대답 하였으며, 운문 선사께서는 "마른 똥 막대기"라하고 또 어떤 선사는 "신주 앞에 놓인 술잔"이라 하였다. 그 뿐아니라 아예 "서쪽에서 온 뜻이 없다"고 답하신 선사 마져 있으니 어느것이 정답인지 알길이 없으며, 당체 무슨 소리인지 선문답이란 것이 경지에 이른 사람에게나 그 뜻을 헤아릴수 있고 보통 조차도 안되는 사람에게는 헤아릴 길이 없음인지, 영화의 내용 만큼이나 난해하고 어렵긴 매한 가지다.
선불교의 어렵다는 선입관을 조금이나마 누그려 뜨릴수 있었던건 명성과 권위로 이미 신화가 되어버린 화두를 현대적 감각으로 재해석한 원철 스님의 저서『할로 죽이고 방으로 살리고』를 읽어 봄으로써, 선불교의 가르침에 쉽게 다가갈 수 있었고 선어록 중에서 핵심이 되는 중요한 공안을 골라, 재미있게 풀이하고 자칫 지루하기 쉽고 어려운 부분들은 자세한 그 시대의 배경까지 꼼꼼하게 설명하고, 스님 특유의 맛깔스런 입담과 한컷의 만화로 대중들이 쉽게 선문답, 선지식과 접할수 있도록한 배려한 덕이라 하겠다.
어록 해설에 의한 공안은 이미 사구(死句)이며 수행자 자신의 사무침에 의하여 드는 화두가 진정 활구(活句)이다. 조주를 찿아간 수행자에게 '뜰앞의 잣나무'가 활구였다면 '조주록'을 펼쳐 수행하는 다른이에겐 사구일 것이다. '뜰앞의 잣나무'가 조주를 찿아간 어느 수행자의 눈에 비친 잣나무처럼 그렇게 누군가에게 다가올때 비로서 활구로 여전히 생명력을 간직할 것이다. "앞니에 털이 났다 (板齒生毛)"라 하신 말씀 또한 달마대사가 늘 벽만 바라보고 양치질하는것 조차 잊고 수행하니 치아가 지져분해 이빨에 곰팡이가 필 지경이라는 말일게다. 얼마나 치열하게 수행하였는지 '벽관 바라문'으로 뜻을 깨칠수 있었겠는가?
성철 선사께서 "문자를 보지 말라"고 하신 말씀에서 사구가 되느냐 활구가 되느냐 하는것은 문자 자체의 허물이 아니라 이를 받아들이는 사람의 문제라 하심이 십분 이해가 됨이다.
평소 어렵다고 펼쳐 보기는것 자체가 엄두가 나지 않는 선어록들. 속세와는 멀게 여겨졌던 선문답들, 갑자기 고함을 치고 (할) 몽둥이를 날려(방) 깨우침을 주시던 선사들의 기이한 행동들 조차 친근해졌다. 그들의 엉뚱하고 황당함 속에 감추어진 치열한 고민과 탁월한 안목이 이룬 지혜의 깨침을 한마디 함축된 말에 보여준다. 그들의 선지식들이 현대를 사는 우리에게 한발 앞으로 다가옴을 느낄수 있었다. 이책이 선불교의 세계에 일상의 생명을 불어 넣어 경전속의 선불교가 일상으로 나와 대중과 한층 가까이 할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
|
할로써 번뇌를 죽이고 방으로써 반야를 살린다. 파이립破而立이라고 했다. 낡은 틀을 허물지 않으면 도를 세울 수 없다. 집착이 깨지고 번뇌가 사라지고 지식이 무너지는 순간에야 한 소식 들을 수 있다. 그러나 한 소식 깨쳤다고 당장 천하통이 되는 것은 아니며, 깨침의 경지도 절로 유지되는 것은 아니다. 나는 돈오돈수보다는 돈오점수쪽에 수행의 가치를 둔다. 왜냐, 돈오돈수의 이후의 삶은 생각조차 하기 싫기 때문이다. 단 한번의 깨침으로 만사를 해결하려는 그런 고약한 심보 자체도 문제다. 「도고일척道高一尺 마고일장魔高一丈이라 했다. 내가 깨친 경지만큼 상대적으로 방해하는 장애물도 커지고 깊어진다. 깨쳤다고 당장에 고해苦海를 벗어나는 법도 아니다. 새로운 버전의 고해가 기다리고 있기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