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

리뷰 (4)

한줄평
평점 분포
  • 리뷰 총점10 75%
  • 리뷰 총점8 25%
  • 리뷰 총점6 0%
  • 리뷰 총점4 0%
  • 리뷰 총점2 0%
연령대별 평균 점수
  • 10대 0.0
  • 20대 0.0
  • 30대 0.0
  • 40대 10.0
  • 50대 9.0

포토/동영상 (1)

리뷰 총점 종이책
절대왕정의 신화가 전설로 남다
"절대왕정의 신화가 전설로 남다" 내용보기
유럽 역사의 한 시대를 규정하는 단어, 절대왕정. 그 절대왕정의 대표적인 인물로 불리는 사람이 바로 프랑스의 루이 14세다. 하지만 이 책은 <루이 14세는 없다>라는, 정면대결을 하는 듯한 제목이 말해주듯, 절대왕정의 신화는 말 그대로 신화에 지나지 않았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있다.   루이 14세는 절대왕정의 이미지를 구축하는 데 많은 신경을 쏟았고, 당대 예술가들을 적극적
"절대왕정의 신화가 전설로 남다" 내용보기

유럽 역사의 한 시대를 규정하는 단어, 절대왕정. 그 절대왕정의 대표적인 인물로 불리는 사람이 바로 프랑스의 루이 14세다. 하지만 이 책은 <루이 14세는 없다>라는, 정면대결을 하는 듯한 제목이 말해주듯, 절대왕정의 신화는 말 그대로 신화에 지나지 않았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있다.

 

루이 14세는 절대왕정의 이미지를 구축하는 데 많은 신경을 쏟았고, 당대 예술가들을 적극적으로 동원했다. 문학과 연극이 번영기를 누린 반면 역사서술은 채 꽃을 피우지도 못했다는 것은 이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왕이 원한 것은 사실이 아니라 이미지의 구축이으니 말이다. 단순히 루이 14세 신화의 허상을 파헤치는 것뿐만 아니라 당대 프랑스의 왕실과 사회 전반에 대해서도 많은 비중을 두고 설명하고 있는데, 기억할 만한 대목이 많았다.

 

특히 당대 세금에 대해 서술한 대목에서는 입을 떡 벌리고 말았다. 난 프랑스 대혁명 직전에 왜 그렇게 불합리한 세금제도가 버젓이 운용되었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세금 징수원 노릇을 한 적이 있다는 이유로 처형당했던 화학자 라부아지에에 대해 이야기할때면 항상 나오는 이야기인데, 당대의 세금 제도는 징수권을 소유한 귀족이 재량껏 걷었고 일정 금액을 국왕에게 납부하면 차액은 귀족이 가질 수 있는 체제였다. 이러니 국민은 굶주리는데 왕실은 재정이 부족해 쪼들리는 상황이 벌어졌고, 왕실이 세금을 늘리겠다고 하자 프랑스 대혁명이 촉발되고 만다. 그런데 왜 이런 세금제도가 운영되었느냐 하면.... 루이 14세 시절 전쟁자금이 부족해서 귀족에게 세금 징수권을 미리 팔았고, 그 이후에는 당장 세금을 선납받지 않으면 국정에 쓸 자금이 없을 아슬아슬한 재정상황이라 그랬단다.

 

<루이 14세는 없다>라는 제목은 루이 14세의 절대왕정이라는 것이 신화에 지나지 않는다고 이야기한다. 실체 없는 허상, 허울뿐인 겉치레만이 허용되었던 루이 14세에게 절대왕정은 말 그대로 신화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루이 14세가 만들어낸 절대왕정의 이미지는 후대에 강렬하게 전해졌고, 결국 전설이 되었다. 그리고 허상뿐인 이미지의 대가는 애꿎은 후손이 목숨으로 치렀다.

 

이미지가 실체보다 생명력이 긴 경우가 그 반대의 경우보다 많다. 그림 한 점, 한 문장의 경구로 표상될 수 있는 이미지는 너무나도 간단하면서 강렬하기 때문이다. 단순함은 언제나 복잡함보다 더욱 쉽게 다가오는 법이다. 그러나, 그런 와중에서도 실제의 역사는 면면히 남아 있고, 이미지의 신화를 뚫고 실제의 역사에 접근하고자 하는 사람에게 언제나 실체를 내보이고는 한다.

p*******1 2010.06.13. 신고 공감 2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루이 14세는 없다]를 읽고
"[루이 14세는 없다]를 읽고" 내용보기
<루이 14세는 없다(2009.8, 이영림 저)>를 읽고 난 전반적 소감은 역설적이게도 루이14세는 ‘있었다’는 것이었다. 이 책을 통하여 실체가 들어난 인간 루이14세- ‘태양왕’의 화려함 뒤에 감추어진 외로움, 열정과 자신에 찬 얼굴에 드리운 두려움과 처절함의 그늘, 그럼에도 불구하고 프랑스 근대사에 남겨진 그의 짙은 명암이 생생하고 강렬하게 뇌리에 각인되었기 때문이다. 저자
"[루이 14세는 없다]를 읽고" 내용보기

<루이 14세는 없다(2009.8, 이영림 저)>를 읽고 난 전반적 소감은 역설적이게도 루이14세는 ‘있었다’는 것이었다. 이 책을 통하여 실체가 들어난 인간 루이14세- ‘태양왕’의 화려함 뒤에 감추어진 외로움, 열정과 자신에 찬 얼굴에 드리운 두려움과 처절함의 그늘, 그럼에도 불구하고 프랑스 근대사에 남겨진 그의 짙은 명암이 생생하고 강렬하게 뇌리에 각인되었기 때문이다. 저자는 어찌 보면 진부할 수도 있는 소재를 가지고 독특한 접근방법에 의해 일관되고도 흥미진진하게 주제를 전개해나가면서 확실하게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이 책은 일반적으로 알려진 ‘태양왕 루이14세’의 신화를 벗겨 ‘인간 루이14세’의 진면목을 보여주는 한편, 유럽의 역사상 가장 찬란하고 완벽했다고 알려진 프랑스 절대왕정하의 정치.경제.사회체제의 실체를 적나라하게 재현시켰다. 무엇보다 이러한 체제를 실질적으로 작동시켰던 원동력(driving force)-후견제로 표현되는 귀족중심의 인적 네트워크와 사회계층간 역학관계-를 속속들이 해부하여 그 실체를 들어 내 보였다. 사람으로 말하자면 외관과 내장뿐만 아니라 뇌리에 숨겨진 기억까지도 들어내 보이려고 애쓴 흔적이 엿보인다. 그러한 해체과정에서 저자의 예리한 분석과 섬세한 서술이 돋보였다.

 

이 책이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다음 몇가지로 요약될 수 있을 것이다.

우선, ‘태양왕 루이’를 만들어낸 인간 루이의 욕망과 행태는 물론 이를 실질적으로 기획하고 구현시킨 관료세력(콜베르로 대표되는), 그리고 절대왕정을 떠받친 인적네트워크와 계층간 역학관계를 시.공간적인 큰 그림속에서 조망하고 정교하게 분석했다는 것이다. 특히 귀족에 대한 깊은 통찰과 해박한 지식을 동원하여 그간 피상적 수준에 머물렀던 귀족의 역사적 진화과정과 역할에 대한 일반 독자의 이해를 높여주었다.

 

이 책의 제목에도 불구하고 저자는 본래부터 의도적으로 태양왕의 신화 깨뜨리기에 착수한 것은 아니었던 것으로 보인다. 저자는 책 서두에서 프랑스혁명 이전 최대 민란이었던 프롱드난과 이난의 표출 수단이었던 마자리나드에 대한 연구가 자연스럽게 루이14세에 대한 호기심으로 연결되었다고 밝혔다. 아마도 끊임없는 민란과 대내외 복잡한 갈등이 내연된 당시 프랑스 사회에서 절대왕정이 뿌리내릴 수 있었던 이면을 치밀하게 파헤치다 보니 자연스럽게 루이14세의 실체를 직시하게 되었으리라 추측된다.

 

이 책은 대양왕 루이14세의 포장을 벗기고 거품을 뺀 뒤에 인간 루이14세를 세상에 들어내 보였지만 결과적으로는 그가 역시 큰 역사적 인물이었음을 확인시켰다. 베르사유궁을 주 무대로 한 고도의 에티켓의 확립과 ‘귀족 길들이기’, 전쟁과 화려한 정치문화를 통한 프랑스의 대외적 위상 제고, 관료제, 조세, 재정제도 및 법체계의 발전, 문화.예술의 만개, 무엇보다 프랑스 근대 국민국가 형성에 그가 뿌린 씨앗 등-저자가 밀도있게 보여준 다양한 사실들은 그가 프랑스를 넘어서 유럽의 역사에 남긴 족적이 결코 작지 않음을 반증하고 있다.

 

저자는 독자들에게 또 하나의 중요한 메시지를 보낸다. 루이14세는 베르사유궁을 무대로 하여 귀족을 길들이고 ‘복종의 전염병’을 퍼뜨렸지만, 그것이 결과적으로 귀족문화를 계승.발전시켰고 추후 계몽주의로 이어지면서 근대국가의 출현과 근대 예술.문화의 탄생을 가능케했다는 것이다. 절대왕정과 계몽주의-일견 상치되는 두 개념의 상관관계를 저자는 책 전체를 일관하는 흐름속에서 설득력있게 해명하고 있다. 이는 저자가 이 책에서 토해 낸 농익은 루이14세 연구의 결실과 이 책에서 견지한 폭 넓은 시.공간적 연구지평 덕분에 가능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어느 역사가가 “역사란 과거와 현재의 끊임 없는 대화”라고 정의하였듯이, 저자는 루이14세의 허(虛)와 실(實), 그리고 공(功)과 과(過)를 조망하면서 오늘날의 정치현실에도 적용할 수 있는 시사점을 제시하고 있다. 루이14세가 귀족, 관료, 지방토호세력, 부르주아, 민중 등 각계층 간의 상호 이해의 조정을 통해 왕에 대한 충성과 국가의 존립을 확보할 수 있었던 노하우는 오늘날에도 시사하는 바 크다 할 것이다.

 

저자가 고백한 책의 미흡한 부분(민중,종교등)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역작으로서 면모를 갖추고 있다. 다른 학문보다 유난히 역서가 대부분인 서양사 분야에서 학술서이면서도 수준 높은 교양서의 품격을 갖추고 이 만큼의 완성도를 보여준 저서도 흔치 않다고 본다.

c****3 2009.09.20. 신고 공감 2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루이 14세는 없다.
"루이 14세는 없다." 내용보기
17세기는 이상한 시대다. 소빙기라는 자연재해가 시대를 휩쓸었다. 이 시기에 조선은 1670년 경신대기근과 1695년 을병 대기근 동안 몇 백만명이 기아와 전염병으로 죽는다. 총인구의 10~25%가 사망한다는 극단적인 위기에서 어떻게 사회가 유지 되었을까싶은 상황이었지만 국가는 잘 통제되었다. 숙종이라는 강한 권력을 가진 왕이 튼튼히 버티고 있었다. 환국과 다양한 통제 장치를 활
"루이 14세는 없다." 내용보기

17세기는 이상한 시대다. 소빙기라는 자연재해가 시대를 휩쓸었다. 이 시기에 조선은 1670년 경신대기근과 1695년 을병 대기근 동안 몇 백만명이 기아와 전염병으로 죽는다. 총인구의 10~25%가 사망한다는 극단적인 위기에서 어떻게 사회가 유지 되었을까싶은 상황이었지만 국가는 잘 통제되었다. 숙종이라는 강한 권력을 가진 왕이 튼튼히 버티고 있었다. 환국과 다양한 통제 장치를 활용하여 절대권력을 오래 오래 유지하고 있었다. 비슷한 시기 프랑스에서도 여러 면에서 비슷한 왕이 절대권력을 누리고 있었다. 


" 16~18세기 서유럽을 지배한 절대군주정의 역사에서 루이 14세가 지니는 의미는 각별하다. 무엇보다 먼저 그는 1643~1715년까지 72년이라는 유례없이 긴 기간 동안 왕위를 지킴으로써 정치적 속성을 유지했다. "


"루이 14세가 계속해서 대외전쟁을 벌인 대가로 세금부담이 더욱 무거워졌음에도 불구하고, 또 1693년과 1709년 기후 이상과 심각한 수확 부진으로 인한 경기 침체를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루이 14세 치세 동안에는 국가의 안위를 위태롭게 할 만한 반란이 일어나지 않았다. "


책은 루이 14세의 권력 장악과 궁정문화의 분석을 통해 루이 14세가 절대왕권을 행사한 태양왕이 아니다라고 말한다. 단지,


"루이 14세는 중앙과 지방을 연결 짓는 먹이 사슬 구조를 개혁할 의지도 능력도 없었다. 결과적으로 루이 14세는 국가의 부를 갉아먹는 기생충만 살찌게 한 셈이며 그 피해는 고스란히 농민에게 전가되었다. "


라고 주장한다. 숙종의 조선과 루이 14세의 프랑스의 공통점은 저자의 용어처럼 "복종의 전염병"이었다. 국왕을 절대시하고 복종하면서 뒤에서는 착취를 하는 공생의 관계였다. 왕에게 복종을 하면 할수록 왕의 권력이 절대화 되면 될수록 태양왕의 그늘도 커졌다. 귀족과 소수의 권력가들은 그 그늘에서 특권과 이익을 누렸다. 신하들은 태평성대라 칭송하지만 백성들은 죽어나가던 시대였다. 기후라는 객관적 지표가 증거다.


숙종 (1661∼1720, 재위 1674∼1720)

루이 14세 (1638~1715, 재위 1643~1715)


* 책이 두꺼워서 놀랬지만 종이도 만만치 않게 두꺼워서 한번 더 놀랬고 안도했다. 

  (두가지를 고려하면 책 값이 좀 비싸지 않나요?) 

* 역사책은 역시 1왕 1책이 나와 줘야한다. 숙종시대를 다루는 제대로 된 책이 나왔으면 좋겠다.



        

YES마니아 : 골드 l****0 2017.05.27. 신고 공감 2 댓글 2
리뷰 총점 종이책
루이 14세는 없다 - 이영림
"루이 14세는 없다 - 이영림" 내용보기
절대주의란 16세기부터 18세기까지 유럽에 나타난 강력한 왕권 중심의 정치 체제를 의미한다. 아마도 우리는 절대주의의 상징이라 하면 주저없이 태양왕 루이 14세를 꼽을 수 있다. 비록 근대적인 중앙 집권제가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시점이었지만, 귀족 세력의 저항이 만만치 않은 상황이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루이 14세에 의한 강력한 왕권 중심의 통치체계는 여러모로 살펴볼
"루이 14세는 없다 - 이영림" 내용보기


 절대주의란 16세기부터 18세기까지 유럽에 나타난 강력한 왕권 중심의 정치 체제를 의미한다. 아마도 우리는 절대주의의 상징이라 하면 주저없이 태양왕 루이 14세를 꼽을 수 있다. 비록 근대적인 중앙 집권제가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시점이었지만, 귀족 세력의 저항이 만만치 않은 상황이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루이 14세에 의한 강력한 왕권 중심의 통치체계는 여러모로 살펴볼 요지가 많아 보인다. 화려한 베르사유 궁전을 건설하여 호화스러운 궁중 생활을 하면서, 4차례의 대규모 전쟁을 벌일 정도로 국가 정책과 정권을 확실하게 통제한 루이 14세는 분명 절대주의의 상징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영림의 저서 <루이 14세는 없다>라는 책은 제목과 같이 우리가 그동안 알고 있었던 루이 14세의 모습을 좀더 세밀하고 다른 각도로 분석한 책으로서 우리가 알 수 없었던 화려한 루이 14세의 치세의 이면을 다루고 있으며, 이를 통하여 루이 14세의 허상과 실제의 모습을 낱낱이 드러내고 있다.


 1661년 마자랭의 사망과 동시에 24살의 나이에 친정을 선포한 루이 14세. 사실 절대주의의 화신으로 평가받는 인물이었으나, 역설적으로 그의 재위 초반부는 오히려 귀족들과 총신들의 눈치를 보는 시기였음을 알 수 있다. 선왕인 루이 13세의 죽음으로 인하여 리슐리외-마자랭으로 이어지는 총신 체제는 어린 나이로 등극을 한 루이 14세의 초반부에 유지될 수 밖에 없는 구조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유능하지만, 귀족들의 권위를 약화시키고 자신에게 권력을 집중시키려는 마자랭의 처사에 의하여 결국 귀족들은 <프롱드의 난>이라는 반란으로 그들의 불만을 표출하게 된다. 등극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아서 루이 14세는 마자랭과 함께 피난을 떠나며 여기저기 떠돌아다니게 된다. 비록 유년기였지만, 직접 미약한 왕권을 경험하게 된 루이 14세가 훗날 강력한 왕권을 갈구하고, 파리를 떠나 베르사유 궁을 건축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 5년 간의 <프롱드의 난>이 종결되었지만, 이 책은 이 시점부터 절대주의로 포장된 루이 14세의 치세를 설명하기 시작한다. 


 먼저 <프롱드의 난>이 종결되는 과정을 살펴본다면 방계 가문이며, 위대한 군인이기도 하였던 콩데 공작이 가담할 정도로 대다수의 귀족들이 저항을 한 이 반란은 국왕의 주도하에 종식되었다기 보다는 반란 세력의 자중지란에 의하여 와해된 경우라 할 수 있다. 이것은 결국 강력한 왕권에 의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여전히 불안정한 상태임을 알 수 있다. 더구나 루이 14세는 아직 친정을 하지 못하고, 마자랭에 의하여 정국이 운영되었기 때문에 절대주의의 모습과는 거리가 먼 상황이었다. 1661년 마자랭의 죽음과 더불어 시작된 루이 14세의 친정은 사실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마자랭의 죽음과 동시에 새로운 총신에 의한 정국 운영이 예상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귀족 내부의 권력 다툼을 꿰뚫어 본 루이 14세는 이러한 분열을 틈타 스스로 친정을 선언하고, 동시에 콜베르를 중용하기 시작한 것이다. 비록 콜베르가 마자랭의 세력에 속해 있던 인물이긴 하지만, 그는 마자랭과 달리 국왕을 좌지우지할 상황도 아니었기에 루이 14세에 협력하면서 정적인 푸케를 몰아내면서 점차 정권의 안정화를 꾀하고, 이는 자연스럽게 루이 14세의 권력의 강화로 이어지게 된다.


 또한 루이 14세는 자신의 이미지를 적극적으로 만들어내어 태양왕의 이미지를 꾀하기 시작한다. 연극 무대에서 태양의 신인 아폴론의 모습으로 분장하여 안무를 보여주면서 그의 이미지를 귀족과 백성에게 각인시킨 것이었다. 또한 몰리에르, 라신과 같은 예술가들을 후원하면서 루이 14세의 이미지를 미화시키고, 심지어 신격화시키게 된다. 이러한 작업들은 루이 14세와 콜베르에 의하여 보다 체계적으로 진행이 되며, 콜베르는 지방에 지사를 파견하면서 점차 지방 귀족의 권한을 약화시키고, 강력한 중앙 집권화를 꾀하게 된다. 이러한 모습은 루이 14세가 강력하였기 때문에 백성과 귀족들이 복종한 것이 아니라 치밀한 정치적인 계산과 제스쳐를 통하여 형성되었음을 보여주게 된다. 백성들은 이러한 통제 정책과 예술적 미화로 인하여 복종을 하였다고 하지만, 도대체 귀족들은 <프롱드의 난>이후로 국왕에게 전혀 대항을 하지 않고 복종을 하게 된 것일까? 저자의 말대로 귀족 사이에서 루이 14세에 대한 복종의 전염병은 어떻게 퍼지게 된 것일까?


 왕을 피난시킬 정도로 격력했던 <프롱드의 난>이 내부 세력의 분열로 인하여 와해되었음을 앞에서 언급하였다. 이러한 내부 세력의 분열은 마자랭이 대검귀족, 법복귀족, 지방귀족과 같이 각 계층마다 상이한 목표를 가지고 있음을 꿰뚫어 보고 회유와 압박을 통하여 이끌어낸 것이다. 결국 귀족들은 자신들의 이익과 특권이 보장이 된다면 굳이 국왕에게 대항할 이유가 없음을 깨닫게 된다. 루이 14세는 이러한 귀족의 사정을 이용하여 반란의 지도자였던 콩데 공을 회유하여 궁궐에서 머무를 수 있는 벼슬을 내리고, 막대한 연금을 하사하게 된다. 또한 각 지방에서 막강한 권력을 가지고 있던 대귀족을 콩데 공과 같이 중앙으로 불러들여서 벼슬과 연금을 제공한 것이다. 그들이 궁정 문화에 심취해 있는 동안 각 지방은 점차 국왕이 파견한 지사들에 의하여 통제가 되고, 지방 소귀족과 대귀족의 연결 고리가 끊어지게 된 것이다.


 특히 지방 소귀족은 대귀족과 같이 막대한 수입이 없기에 베르사유 궁전에서의 궁정 생활을 감당할 수 없었기 때문에 그대로 자신의 지방 영지에서 머물러야 했다. 그들의 후원자인 대귀족은 모두 중앙으로 진출한 상황에서 이들은 세금 징수권과 같은 어느 정도의 정책적인 보장으로 인하여 지사에 협력하는, 다시 말하면 국왕에게 협력하는 체계를 이루게 된다. 중앙에 진출한 대귀족은 루이 14세의 눈에 들기만 하면 막대한 연금과 벼슬이 하사되기 때문에 화려한 궁정 생활에 집중을 하게 된다. 이는 결국 귀족들의 후견인의 자리를 루이 14세가 차지하게 된 것이며, 자연스레 귀족들은 루이 14세에 의하여 통제가 될 수 밖에 없게 되었고, 이것은 우리가 잘 아는 절대주의로 표현된다. 콜베르의 정책이 얼마나 효과적이었는지는 연구하는 사람마다 달리 평가를 하지만, 어쨌든 다양한 경로로 마련한 국가 수입은 이러한 체제를 지탱하는데 이용된다. 


 그러나, 이러한 루이 14세의 체제는 베르사유 궁전의 건축과 같은 사치스러운 궁정 생활과 더불어 거대한 전쟁으로 인하여 점차 몰락의 길을 걷게 된다. 초기 네덜란드 왕위 전쟁에서 승리를 맡본 루이 14세는 자신의 권위를 내세우기 위한 수단으로 전쟁을 선호하게 된다. 무려 65만의 상비군을 보유하고 있던 프랑스는 모든 유럽의 적으로 떠올랐으며, 승패를 떠나 4번의 거대한 전쟁으로 인하여 재정은 파탄의 길로 들어선다. 물론 이러한 재정적 파탄으로 인하여 당장 반란이 일어나거나 루이 14세의 권력이 도전을 받은 것은 아니었으나, 분명 이전과 달리 그의 권력에 누수가 생겼음은 곳곳에서 드러난다. 당당한 태양왕의 이미지로 묘사가 된 루이 14세의 말년의 모습을 들여다보면 초라한 인간의 군상만이 남아 있음을 볼 수 있다. 세자와 세손의 세력에 대한 견제와 맹트농 부인에 대한 맹목적인 신뢰는 결국 그가 쌓아온 절대주의 체제가 허상이었음을 보여주게 된다. 죽음을 눈앞에 두고 장차 루이 15세가 되는 손자에게 건축에 심취하지 말고, 전쟁을 하지 말라는 유언을 남기는 루이 14세의 모습은 우리가 알고 있던 절대군주의 모습이라 할 수 없을 것이다.


 <루이 14세는 없다>는 제목과 같이 우리가 알고 있던 루이 14세의 이미지를 다른 의미로 해석하여 좀더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고 있다. '없다'라는 단어는 어떻게 보면 루이 14세의 이미지를 깨기 위한 것으로도 볼 수 있다. 그러나, 당시 권력의 흐름과 상황을 꿰뚫어보고 계략과 정책의 입안을 통하여 스스로 강력한 왕권을 이룩한 것은 결코 루이 14세가 범상치 않은 인물임을 알 수 있다. 다만 '왕권 신수설'에서 말하는 것처럼 등극과 동시에 강력한 왕이 된 것이 아니라 다양한 미화 작업과 회유, 계략을 통하여 절대주의의 아이콘인 루이 14세가 만들어졌음을 우리는 이 책을 통하여 깨달을 수 있는 것이다. 루이 14세가 꽤 인지도 있는 인물이긴 하지만, 정작 그를 다룬 책은 찾아보기 힘들다. 있다고 하더라도 이 책과 같이 루이 14세의 본질을 다른 각도에서 다룬 책들이 대부분이다. 아마도 '절대주의=루이14세'와 같이 각인되어 있는 우리의 상황과 관련이 있는 것은 아닐까? 

g*******7 2015.03.22. 신고 공감 1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