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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당하게, 열심히 살아왔지만, 삶이란것이 정작 자신의 뜻대로 되는 것이 없음을 알게되면
익숙하게 지내왔던 환경이 낯설어 지고, 스스로 자신을 소외시킨다.
자신을 찾고 싶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는 모른다.
상처가 나고 쓰러지고 아프지만 그저 이리저리 부딪혀 보는수밖에.... 그러나 그럴수록 더 험난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고통과 비참속에서, '분노'는 한가닥이라도 희망의 여지가 있어야 할수있는 것이다. 순응은 그것마저도 없을때 어쩔수없이 하게되는 것이다.
개인으로서의 존재가 상실된 세계에서의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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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성 심판 변신>. 카프카. 동서문화사, 2009 · 1. 프란츠 카프카 1883년 체코 프라하에서 독일계 유대상인의 아들로 태어났다. 글쓰기에 취미가 있었으나, 부친의 권유로 프라하 대학에서 법률을 공부했다. 대학졸업 후 25세에 노동자 재해보험 협회에 입사하여 14년간 일하였다. 1924년 41세의 나이로 빈 교외 요양소에서 눈을 감는다. · 2. 이 세상에 나만 불행한 것은 아니다. · 운전하기 위해서는 운전하는 법을 먼저 배워야 한다. 그럼 책을 읽기 위해서는 무엇을 먼저 해야 할까? 나는 책을 읽기 전, 먼저 저자의 약력을 읽어본다. 부족하다고 싶으면 책을 잠시 덮어두고, 인터넷으로 검색해서 작가가 어떤 사람이었지를 살펴보는 버릇이 있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책을 잘 읽기 위해서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의 독서습관이 책 읽기에 도움되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 이 책은 철학서적처럼 읽기가 힘들다. 대화부분에서 줄 바꿈도 없고, 한 번 호흡으로 읽을 수 없는 긴 문장들의 연속이다. 번역자가 잘못한 것 아닌가? 의구심을 가지고 원본을 보고 싶은 생각마저 들게 한다. 사실 그 당시 문체의 특징인지, 작가의 의도였는지는 알 수가 없다. 저자의 약력을 염두 해두고 졸린 눈을 두드리면 읽었다. <성>, <심판>, <변신> 그 중에서도 <변신>은 카프카와 주인공 그레고르가 동일시되어 더욱더 가슴을 파고들었다. · <변신>은 카프카의 대표작품이기에 학창시절에 누구나 한번쯤 읽어본 작품이다. 나 또한 학창시절에 이 책을 읽었다. 열정으로 똘똘 몽쳐진 그 시절에는 카프카의 암울한 현실은 내 세상이 아니었다. 그러나 불혹의 나이에 접어든 지금, 이 책은 내 뒤통수를 힘껏 내려친다. 1912년 단 두 달 만에 쓰인 짦은 단편이, 카프카의 삶을 대변하고, 100년 후의 세상의 현실을 그리고 있다는 것이 충격이다. 그 속에는 내 삶의 모습이 담겨 있고, 신문 사회면에 등장하는 기러기 아빠의 죽음, 독거 노인의 죽음 등이 그대로 담겨 있다. · 카프카의 부친은 아들이 글 쓰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카프카 또한 장남의 의무감을 평생 짐처럼 여기며 살았다고 한다. 그레고르의 부친은 카프카 부친과 너무 닮았다. 아니 전체적인 인물이나 배경 모두에서 카프카의 삶이 녹아있다. 얼마나 힘들었으면 벌레로 변신하고 싶어했을까? 책의 첫 부분에 주인공 자신이 변신을 원했다는 것이 간접적으로 잘 묘사되어 있다. 보통 사람이라면 잠을 깨었을 때 자신이 벌레로 변해 있었다면, 아마 소리 지르고, 의사를 찾고 난리가 났을 것이다. 하지만, 그레고르는 변신한 자신의 모습에 곧 적응하고, 지금까지 갖지 못했던 여유를 가지고 가족들을 바라본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가족들은 그레고르를 혐오하게 된다. 돈을 못 벌어다 주어서일까? 아님 생활하기에 불편해서일까? 인간이라면 모두 싫어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카프카는 그것이 우리 인생이라고 이야기한다. · Kaf·ka·esque(카프카애스)는 ‘카프카적’이라는 옥스퍼드 사전에 있는 단어이다. 이 뜻은 ‘섬뜩한, 우연히 등장하는, 실제를 넘어서는, 현실적이지 못한, 프란츠 카프카가 쓴 사실들이나 감정 상태와 비교될 수 있는’ 등으로 사용 된다. <변신>은 정말 카프카적인 작품이다. 벌레로 변하는 섬뜩함과 인간의 실체를 넘어서면서도 현실적으로 담담하게 이야기가 전개된다. 그러면서도 중간 중간 미소 짓게 하는 부분이 있다. 한편의 블랙 코메디 이다. · 삶이 얼마나 힘들었으면, 하찮은 벌레로 변신하고 싶은 사람도 있었고, 그 이야기가 100년을 지나오면서도 사람들이 공감해온 것을 보면, 지금 현실을 사는 나만 불행한 것은 아닌가 보다. 현실의 삶이 힘들지만, 하찮은 벌레보다 낮기에 감히 살아볼 만 하다고 이야기하고 싶다.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