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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양조선을 꿈꾼 조선의 관료 송정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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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사람들에게 바다는 어떤 의미로 다가왔을까? 물론 바닷가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삶의 터전이었겠지만 일반인들에게는 거대한 장애물이었을 것이다. 육지에서 죄를 지은 사람들의 유배지로 섬, 특히 육지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제주도를 택한 것만 보아도 당시 사람들에게 바다는 일종의 경계였지 않나 싶다. 그런 바다에 배를 타고 나간다는 것은 어쩌면 도박이었을지도 모
"해양조선을 꿈꾼 조선의 관료 송정규." 내용보기

조선시대 사람들에게 바다는 어떤 의미로 다가왔을까? 물론 바닷가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삶의 터전이었겠지만 일반인들에게는 거대한 장애물이었을 것이다. 육지에서 죄를 지은 사람들의 유배지로 섬, 특히 육지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제주도를 택한 것만 보아도 당시 사람들에게 바다는 일종의 경계였지 않나 싶다. 그런 바다에 배를 타고 나간다는 것은 어쩌면 도박이었을지도 모른다. 현대에도 일기가 불순한 날에는 조난사고가 일어나는 것을 보면, 당시에는 비바람에 조난을 당해 표류하는 일이 비일비재하지 않았을까 싶다.

 

이 책 [해외문견록]은 조선 숙종 때 관료였던 송정규가 제주목사 시절에 제주에서 일어났던 표류사건을 정리한 책이다. 그는 관아에 보관된 기록들과 자신의 견문을 바탕으로 표류사건들 하나하나를 기록했다. 송정규가 살았던 17세기는 명,청 교체시기로 동아시아에 새로운 국제질서가 자리잡아 가던 시기로, 청은 극심한 왜구의 소요를 통제하기 위하여 해안을 봉쇄했다. 조선 역시 바다를 통한 교역이 매우 위축되어 있는 상태여서 외부에 대한 관심은 줄어들 수밖에 없었다. 그런 시기에 문인관료였던 송정규는 오히려 해양과 외부세계에 대한 관심이 컸음을 이 책은 보여 준다. 그는 이 책에 1611년에서 1706, 17세기에 발생했던 표류사건들과, 15세기 표류되어 중국에 도착한 후 의주까지 돌아오는데 걸린 6개월간의 여정을 기록한 최부의 [표해록]요약을 싣고 있다.

 

책에 실려있는 표류사건들은 외부인들이 조난을 당해 제주도에 표류해 온 것과, 제주도인이 표류하여 외국에 머물다가 귀환한 것으로 나눌 수가 있다. 먼저, 외부인들이 제주에 표류한 것으로는 유구(지금의 오키나와)의 중국조공 사신, 네덜란드인 하멜일행, 중국 산동상인 차관일행, 쓰저우 상인 묘진실일행, 복건사람 임인관일행 등의 이야기가 실려있다. 송정규는 이들 표류인들을 조사하면서, 각 나라의 사회, 경제제도는 물론 바닷길, 교역을 하는 물품의 종류 등을 구체적으로 파악하여 기록했다. 그런가 하면 원양 항해가 가능한 중국 선박과 무기의 구조 및 제작방식까지도 언급하고 있다. 이는 외지의 문물을 우리의 것과 비교하고 우리 역시 그런 교역을 해야 한다는 송정규의 바램이 깃들어 있어서 일 게다. 중국과 대만, 일본을 돌아다니며 교역하던 네덜란드인 하멜일행이 표류해 왔을 때, 표류한자들 중에는 열살 남짓한 아이들도 있었는데 중국에 갔던 것이 3, 일본에 갔던 것이 7번이라고 말하자 송정규는 한 쪽에서 해가 뜰 때 다른 쪽에서는 해가 지는 곳인데도 저들은 마치 이웃나들이 다니듯 하니 대단하다라고 적고 있다. 제주인으로써 표류했다 귀환한 것으로는 안남(지금의 베트남)에 표류했다 돌아온 김태환일행, 일본에 표류했던 이계민일행, 그리고 유구에 표류한 김려휘일행의 행적을 조사하여 기록하고 있다. 이들을 통해 해당지역의 문물 및 풍속을 빠짐없이 파악하고 또한 당시 해상교역에서 어떤 물품들이, 어떻게 거래되었는지를 빠짐없이 기록하고 있다.

 

그런데 책을 읽다 보면 한가지 이상한 점이 눈에 띤다. 제주에 표류해왔던 외지인들은 대부분이 상인이었던데 반하여, 제주인으로써 표류했다 돌아온 사람들은 상인이 아니라 관리이거나, 물품을 운반하다 조난을 당했다는 점이다. 당시에 조선은 그만큼 해상교역에 문을 닫고 있었음을 나타내는 것이 아닌가 싶다. 또 한가지는 의외로 동아시아의 해상교역이 활발했다는 점이다. 이들 표류인 들에게서 조사한 기록에 따르면, 각국의 상인들은 여러 지역을 다니면서 각 지역의 특산물을 사서 다른 지역에 파는 방법으로 활발하게 교역했으며, 일본의 나가사키가 이미 교역의 중심에 있었음을 알 수가 있다. 일본에 표류했던 이계민은 나가사키의 당시 지형과 풍속을 상세히 알아왔고, 그리고 부두에는 중국상선 수십척이 머물고, 그들을 위해 강남관이라는 숙소가 별도로 있었음을 말하고 있다. 이는 신라말 장보고가 동아시아 해상교역을 독점하고 중국에 신라방을 설치했던 것을 생각나게 만들었다. 송정규는 당시에 조선이 비록 그 교역권에서는 제외되어 있었지만 그 시장에 조선도 뛰어들어야 함을 염두에 두고 이 책을 쓰지 않았나 싶다.

 

최부의 험난한 중국탐방기인 [표해록 약절]14881월 검차관 최부가 제주도에서 공무를 수행하던 중 부친상을 당해 뭍으로 나가다 표류한 이야기를 담은 [표해록]을 요약한 것이다. 최부는 13일간의 표류 끝에 중국 영파에 도착했고, 이후 의주로 귀환하기까지 6개월 동안 자신이 지나는 고장의 풍속과 문물 그리고 당시 중국의 정세를 거의 매일매일 빠짐없이 기록했다. 그리고 귀환하여 자신의 기록을 토대로 [표해록]을 저술한다. 송정규가 이런 [표해록]을 요약하여 이 책에 실은 것은 표류인 들로부터 얻은 지식을 보충하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외부에 대한 관심이 극히 미약했던 17세기에 송정규는 이미 앞으로 전개될 국제정세를 읽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의 실용적이고 현실적인 문제제기가 실학파의 태동을 앞당겼는지도 모르겠다. 어찌되었던 송정규가 그린 해양강국 조선은 아직까지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그런 선견을 우리가 마음에 새기고 노력할 때 비로소 이루어지지 않을까 싶다. 이 책 [해외문견록]은 복사본이 국립중앙도서관에 비치되어 있지만, 원본은 일본 덴리대학이 소장하고 있다고 한다.

k*****1 2016.01.14. 신고 공감 6 댓글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