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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의 삶이나 성경을 속속들이 몰라도 유다라는 이름은 들어봤을 정도로 배신자의 아이콘으로 자리 잡은 유다. 하지만 희대의 악인 유다를 그리스도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행동에 나섰던 영웅으로 보는 시각도 생길 정도로 유다에 대한 인식이 변화했습니다.
유다는 과연 비열한 배반자인가 희생양인가. 가톨릭 신자이자 저널리스트 피터 스탠퍼드 저자는 <예정된 악인, 유다>에서 성경을 통한 유다의 삶과 배신의 의미, 종교와 다른 분야에서 활용된 유다를 해석하며 2,000여 년 간 유다에게 씌워진 굴레를 들춰봅니다.
종교학 외 세계사, 문학, 예술 등 다양한 분야가 연계되어있어 특정 종교 책이라는 거부감은 전혀 없었어요. 다큐멘터리를 보는 듯, 추리소설을 읽는 듯 흥미진진한 전개 덕분에 인문서인데도 무척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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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 성지가 있는 예루살렘을 거닐며 눈에 띄지 않는 또 하나의 장소, 하켈다마를 찾아가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피의 밭이라 불리는 하켈다마는 예수의 열두 제자 중 하나였던 유다가 예수를 배신한 뒤 수치심에 자살한 곳이며 유다의 최후를 보여주는 흔적이 남겨진 장소입니다. 유다는 사악한 배신자인가, 원대한 신의 섭리에 따라 쓰인 부속품이었을까라는 의문을 풀기 위한 여정입니다.
저자의 시각을 드러내는 문장은 일찌감치 등장합니다. "전통적으로 기독교는 자신들의 입맛에 맞춰 때로는 재빠르게, 때로는 시간을 갖고 역사를 다시 써왔고, 필요하다면 잊고 싶은 역사조차도 전설이라는 미명하에 대화하곤 했다." 즉 각색, 상징, 선입견, 본보기로 이용된 유다라는 점을 밝히고 있습니다.
이스가리옷 (가룟) 유다의 일생에 대한 중요한 정보는 대부분 공인된 복음서인 사대복음서를 기반으로 합니다. 복음서보다 먼저 기록된 사도 바울의 서신에서는 유다라는 이름이 나오지 않습니다. 유다에 관한 이야기는 마가복음에서 3회, 마태복음에서 5회, 누가복음에서 6회, 요한복음에서 8회 등장하며 성경에 총 22번 언급됩니다.
일명 유다 3부작 드라마는 은화 30냥에 예수를 팔아넘긴 거래, 로마 병사들에게 예수가 누구인지 알려주는 행동인 유다의 입맞춤,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건입니다.
복음서마다 유다에 대한 일관성은 부족하고, 뒤로 갈수록 유다에게 불리한 증거가 계속 늘어갑니다. 복음서 저자들은 이야기꾼이라는 것. 배신자가 등장해야 이야기가 더 재밌어지는 건 당연지사. 중세 교회가 성자로 만드는 과정이나 유다를 희대의 악당으로 만드는 과정은 동일하다고 보면 된다고 합니다. 포장하는 과정이 있다는 거죠. 유다를 희생양으로 삼으로써 향후 2,000년 동안 유다에 대한 선입견이 자리 잡히게 됩니다. 그런데 그 과정이 상상했던 것보다 심각하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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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창기 기독교 시대를 거치는 중에 희생양이 된 유다는 곧 유대인과 연결됩니다. 예수의 열두 제자들이 유대인임에도 불구하고, 유대인 전체를 배신자 유다와 동급으로 본 겁니다. 교회가 추진하는 선동전의 수단으로 쓰인 유다. 어떤 이야기들은 거의 호러 수준이었어요. 중세 종교재판에 쓰인 고문 도구 중 유다의 의자 혹은 유다의 요람이 불린 장치도 있었고, 1970년대까지도 유다 화형식 행사가 있었다는군요.
중세 미술 작품에서도 르네상스 초기에 잠깐 과장된 비하가 없는 작품이 나오긴 했지만 대부분은 사탄, 반유대주의 상징들, 악취와 변태적 성욕자 등으로 유다에 대한 상징주의가 강조되었습니다. 종교개혁의 루터마저도 유대인을 유다의 민족이라 불렀을 만큼 반유대주의는 강했습니다.
단테 <신곡>, 보르헤스 <유다에 관한 세 가지 이야기>, 카잔차키스 <최후의 유혹>, 엔도 슈사쿠 <침묵> 등 문학 작품 속 유다의 이미지와 다양한 학자들의 관점을 살펴보는 과정은 한마디로 '그것이 알고 싶다' 분위기였어요. 현장 르포 다큐 같은 생생함과 방대한 정보가 쏟아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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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틀러의 <나의 투쟁>에는 이런 문장이 있습니다. "그들은 유다처럼 은화 30냥에 기꺼이 배신자 역할을 수행할 것이다." 유대인 유다 이미지는 20세기 나치 체제 선전에 활용되며 유대인 혐오라는 세뇌교육이 절정에 이른 사례입니다.
"예수라고 쓰고 기독교라고 읽는다면, 유다라고 쓰고 유대인이라고 읽는 것이다." - 책 속에서.
2,000년 가까이 숨어 있다가 2006년에 등장해 전 세계를 강타한 유다복음서. 이로 인해 유다의 재평가가 더욱 활발하게 이루어지게 되었습니다. 오심의 피해자라는 해석이 압도적이지만 어쨌든 지금까지 유다를 극단적인 도구로 쓴 결과는 뒤엎을 수도 뒤집지도 못하고 있습니다.
타고난 악인이어서 자발적으로 죄를 저질렀거나, 신이 예비해둔 계획에 따라 사용된 것일 뿐이거나, 악마에 사로잡혀 그랬거나... 어떤 동기이든 전형적인 희생양 만들기 과정들은 인간의 무의식 속에 깊게 자리한 관념으로 자리 잡았기 때문입니다.
현대에 유다를 보는 시각은 예전보다는 자유로워졌지만, 여전히 배신이란 아이콘을 내던지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밥 딜런은 <신은 우리 편에> 곡 때문에 공연 중 유다라 불리는 모욕을 당했고, 축구 스타 루이스 피구는 이적 행위를 팬들이 배신자 유다와 연결해 큰 소동이 일어나기도 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름 모를 배신자를 그저 신의 대리인이라 했지만, 복음서 기록 이후부터는 배신자로 유다를 콕 짚어 사탄의 하수인으로 취급했습니다. 유다의 두 가지 얼굴은 여전히 건재합니다.
오랜 세월에 걸쳐 순례자들이 거닐던 곳을 돌아보고, 유다를 연구한 학자들의 의견을 수집했고, 역사적 사실성을 확인하며 활용하는 검증 기준에 맞춰 유다라는 인물의 삶을 추론하는 과정을 보여준 <예정된 악인, 유다>.
유다는 세계사를 관통하는 인물입니다. 희대의 악인 유다를 재해석한 이 책을 읽는 내내 그 죄가 사실이든 아니든, 어떤 동기였든 간에 종교적 대립은 물론 정치적 목적에 철저히 이용된 사례만큼은 착잡할 정도입니다.
"유다는 배신을 상징하면서, 한편으론 진전을 상징한다." - 책 속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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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의 말대로 배신의 아이콘 유다라는 인물에 대한 고고학적, 문헌학적 사료나 구전,구담이 일말이나마 남아있지 않다는 사실은 꽤나 놀랍다. 왜 놀라운가는 유다라는 인간이 넓게 보면 서양유럽에서, 국지적으로 보면 그리스도교의 영향력이 유력했던 콘스탄티누스대제의 기독교 공인(339년) 이후의 로마제국과 또 서양중세시기의 신성로마제국과 또 민족국가개념의 등장하기 이전의 일정 시기라는 시간적으로 천년이 넘고 공간적으로 대항해시대와 맞물려 지리적 대확장 속에서 무게중심적 위치에서 유럽인의 세계관을 조율했던 기독교관이 빈틈없으리라는 기존 생각이 있었기 때문이다. 서양역사의 큰 축인 그리스도교에 대한 역사적 이해와 서양인의 관념을 이해하는 한 지점으로 그리스도교에 대한 공부가 아직 이 분야 책을 읽기에 미흡한 나로서 많은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만 <예정된 악인, 유다>의 저자가 이 책을 집필한 의도에 대한 생각이나 나만의 물음 등이 떠오르면 그에 대해 이야기를 들으면서 차츰 저자의 이야기에 빠져들 수가 있었다. 저자가 책을 통해 전달하고자 하는 바도 비중있게 받아들일 수 있었다. 유다라는 인물의 인간적 접근이 쉽게 허락되는 환경도 아니고, 앞서 말했듯 자료가 부재한 상황에서 밀도있게 써내려간 한 평전이라든지, 저자의 즉각적인 피드백은 한 인물의 입지를 극적으로 움직여내고 동적으로나 정적으로나 생명력을 부여하는 놀라운 책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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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정된 악인, 유다 ] 누가 그를 배신자로 만들었는가.... 이책은 책 제목이 저를 강렬하게 이끌었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다 알듯이 유다는 예수를 배신했습니다. 예수의 열두 제자 중 하나였던 이스라리웃 유다는 인류 최초의 성찬식이 거행되었던 < 최후의 만찬 >에 참석하는 영광을 누렸음에도 불구하고 예수를 적대시하는 제사장들에게 고작 은화 30냥으로 예수를 팔아 넘겼습니다. 이로 인해 유다는 2000 년 동안이나 기독교에서 모든 악인 중에서도 최고의 악명 높은 배신자로 낙인 찍혀 오늘날까지 많은 사람들에게 배신자를 의미하는 단어로 '유다'라는 명칭으로 활용되고 있기도 하죠,, 그런 역사상 가장 악명 높은 배신자 유다를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면서 유다의 배신을 만든 왜곡의 신화를 재구성하고 유다의 배신이 만든 편견의 역사를 재해석(소개문구) 하니 이책의 내용이 너무나 궁금해서 아니 읽어볼 수가 없네요 과연 유다는 뼛속까지 사악한 배신자일까, 아니면 원대한 신의 섭리에 따라 쓰인 부속품이였을까? - 프롤로그 P 21 총 3부로 구성되어 있는 이책은 1부에서 4대 복음서에서 다루는 유다라는 인물을 어떻게 다루고 있는지 .. 배경지식과 유다에 대한 공식적인 기록들을 살펴보고 있습니다. 4대 복음서에는 총 22번 유다의 이름을 언급했는데요,, 마가복음에는 고작 3번의 언급을 그리고 마태복음은 5회, 누가복음은 6회, 요한복음에는 8회로 총 22번 그의 이름을 언급했네요.. 하나님의 자식인 예수를 배신하고 죽음으로 이끈 유다라는 인물에 대한 언급치고는 너무나 작습니다. 게다가 배신의 상징인<유다의 입맞춤>을 남긴 채 유다는 마가,누가,요한 기록에서 사라져버립니다, 유다의 최후에 대한 기록은 오직 마태복음에만 남아 있는데 그건 왜 또 그런것인지? 책속에서 유다가 예수를 배신한 동기에 대한 의문이나 복음서에 등장하는 유다에 대한 세가지 다른 시시선이나 저자가 의문을 가지고 요목조목 따져다는 다양한 해석의 가능성을 보면은 읽을 수록 좀더 유다라는 인물에 대해서 조금씩 알아갈수록 함께 의문이 찾아듭니다. 예수의 열두 제자 중 하나였던 유다가 스승인 예수를 배반하고 피의 대가로 받은 은화 30냥은 그 시대상황에 따져봐도 푼돈에 지나지 않는 금액이라고 하네요,,게다가 마가복음 기록에 따르면 돈을 요구한 건 유다가 아니였다고 하고요,,그렇다면 유다가 배신한 이유 가운데 돈은 중요한 요소가 아닌듯 한데 유다는 왜 예수를 배신했을까요? 이런 동기에 대해 실마리를 던지는 사대 복음서의 기록된 이야기들이 이치에 맞는지도 저자는 차근차근 확인에 들어갑니다 그리고 배신의 행동인 < 유다의 입맞춤 >에 대한 의문도 제시를 합니다, 책표지를 보면 바로 유다와 예수의 입맞춤에 대한 그림이 있는데,,,이게 그 유명한 유다의 입맞춤이였군요,, 저자는 말합니다, 로마병사들이 누가 예수인지 몰랐을까요? 로마병정들은 예수가 누구인지 이미 알고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합니다. 누추한 어부들 속에서 타고나길 고귀한 풍모를 가지고 있을 예수는 누가보다 한눈에 알아볼 정도로 돋보였을 거라고요,, 유다 입을 맞추어 신호를 보내야 했던 까닭에 대한 근거를 제시하는 마태복음의 이야기들도 근거가 미약하다고요,, 입맞춤에 담긴 깊은 의미나 요한복음에 등장하는 유다에 대한 세가지 다른 시각( 타고난 악인이었기때문에 자발적으로 죄를 저질렀다, 신이 예비해둔 계획에 따라 사용된 것일 뿐이라는 시각, 악마에 사로잡혀 그랬다는 시각 )에 대한 이야기나 오늘날 유다를 보는 시각이나 왜곡된 신화를 재구성하고 유다의 배신이 만든 편견의 역사를 재해석에 몰입해서 책을 읽었습니다. 유다는 배신을 상지하면서, 한편으로는 전진을 상징한다. 유다는 교회는 물론이고, 그 반대파도 각자의 목적을 위해 휘둘렸던 무기이자 희생양이다. 또한 유다는 사탄의 도구이면서 동시에 신의 대리인이다. 이런 유다의 양면성 덕분에 그의 일생은 수많은 사건으로 점철되었다. - 376 나조차도 그동안 배신의 아이콘으로 강력하게 낙인되었던 ' 유다'라는 인물을 좀더 깊게 파고 들어가서 알고 나니 그냥 희대의 악인으로만 생각하고 더이상 그를 생각하지 않았던 그에게서 유다는 과연 자신의 행위가 예수를 죽음으로 이끌 것을 알았을까? 그리고 예수의 죽음으로 인해 얼마나 괴로웠으면 절망에 바져 스스로 목을 메어 죽었을까? 하는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게도 되네요 어떤 논문에서는 역사적 맥락에서 보면 유다가 실존 인물이 아니라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하지만 사대 복음서의 저자들이 유다라는 가상인물을 창조했다면? 하는 1세기에 창조한 가상 인물로도 존재할수도 있다는 주장도 하네요 이 책을 읽고 기독교인들은 상당부분 인정할 수도 없겠지만 역사상 가장 악명높은 배신자 유다를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고 다양한 해석의 가능성을 열어 둔다는 점에서도 한번쯤 읽어볼만 한것 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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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번에 읽었던 「문제적 인간, 다윗」과 비슷한 느낌의 제목이라 더욱 관심이 갔다 그 책도 읽으면서 '다윗' 이라는 인물에 대해서 새로운 면면들과 생각지도 못 했던 부분들에 알 수 있어서 재밌게 읽었기 때문에 이 책도 기대가 컸다 더욱이 주인공이 바로 유다~ 성경에서는 예수를 배신하고 팔아먹은 13번째 제자 그래서 서양에서 13이라는 숫자가 금기시하는 이유가 되기도 한 이물이 이 유다라고 어디선가 들은 기억이 난다 하지만 작년인가 읽었던 또 다른 책에서 유다에 대해 조금은 다른 시선으로 풀어가는 책을 읽은 적이 있다 그가 "악인","배신자"의 고유명사가 된 건 누명이라는~~ 이 책도 조금은 그런 취지에서 나온 책이 아닐까 생각했었다 지난번에 읽었던 책에서 거인 골리앗을 물리친 영웅이라는 이미지가 강했던 다윗이 사실은 문제가 많았던 사람이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처럼 유다 역시 역사를 장악한 승자들로 인해 악인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닐까하고 말이다 전에 읽었던 세레 요한을 죽음으로 몰고 간 악녀의 대명사 "살로메"처럼 말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유다라는 인물에 대해 가장 의구심이 들었던 부분에 대해 어느 정도 풀 수도 있었지만 전혀 생각지도 못 했던 궁금점이 다시 생기기도 했다 성경 속의 유다는 과연 정말로 예수를 팔아넘긴 배신자였을까? 하지만 책에서도 강조했듯이 그가 예수를 판 대가로 받은 돈은 그리 큰 액수가 아니다 예수만큼이나 총명했다던 그가 겨우 그 돈에 자신의 스승을 팔아넘겼을까? 그랬다면 왜 그 돈을 다시 돌려주고 자살을 한 걸까? 유다에 대한 관심이 있었지만 그가 예수를 배신했다는 것외엔 별로 아는 것이 없었다 이 책에 있는 여러 가지 설들을 읽으면서 뭔가가 앞뒤가 맞지 않는 부분이 많은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가 자살을 했다는 것도 의외였고 어쩌면 그의 배신행위가 예수와 사전에 약속된 행동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에 대한 공감이 들었다 그리고 그가 예수를 유대 장로들과 만나게 한 것은 예수를 팔아넘기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들과 예수의 화합을 이뤄내기 위한 순수한 의도가 아니었을까 하는 설에도 어느 정도 맞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유다"라는 인물이 가공의 인물일지도 모른다는 것까지는 생각지 못했기에 이 책을 더욱 흥미진진하게 읽을 수 있었던 거 같다
[이 글은 해당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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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정된 악인 유다
오늘날 정경으로 이야기되는 성경은 66권(구약 39권, 신약 27권)으로 구성되었고 1,189장, 31,173절로 구성되어 있다. 이외에 외경이라고 이야기되는 몇가지 복음서들이 있다. 그중에 대표적으로 대중들에게 알려졌는것이 '유다복음서'이다. 이책은 신구약 성경과 몇명 외경서들 포함해서 '유다'에 관한 이야기를 중심으로 풀어간다. 예수님의 12제자중 한명이었던 유다의 역할이나 의미에 대해서 여러 의견들과 생각들을 설명하고 있다. 이책은 성경의 이야기들을 신앙적인 관점에서 본것은 아니고, 지식적인 시각에서 학문적인 관점에서의 '유다'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유다의 역할은 무었이었을까? 유다의 배신으로 인해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승천이 이루어 졌으니 유다는 죄인이라기보다는 예수님의 이적을 보여주기위한 도구로서 이용되었다는 주장이나 예수님을 팔고 받은 은화 30개도 버리고 양심의 가책을 받아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방식으로 회개하였기때문에 '유다'에 대한 재평가를 이루어야한다는 의견들이 심심찮게 흘러나오고 있는 현실이다. 이책도 그러한 이야기들을 바탕으로 저술되어 있다. 물론 책을 끝까지 읽어도 명확한 결론으로 도출되는 부분은 없긴 하지만. 여러 의문이 되는 부분들을 이야기하는 정도의 내용인듯하다. 아마 인간의 시각으로 본다면 이러한 몇가지 의문점들을 떠올릴수 있겟지만 이책을 읽는 나에게는 그렇게 흥미로운 부분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이책은 읽고 있으면 유다와 관련된 여러 주장들을 접할수 있다. 우리가 역사를 공부하면서 정사와 야사가 있듯이 이책도 야사에 가까운 이야기들을 모아서 이야기하는것 같다. 이런 이야기도 읽어서 생각해보는것도 성경을 이해하고 알아가는 과정에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든다. 소설같은 느낌이 들기는 하지만 책은 참 재밌게 읽혀지는것 같다.
제목: 예정된 악인 유다 저자: 피터 스탠퍼드 출판사: 미래의 창 출판일: 2016년 12월 26일 초판1쇄 발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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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다가 누구인지는 기독교인이 아닌 사람이라도 알 것입니다. 은화 30개에 예수를 팔아넘겼는데 예수는 십자가에 못박혀 죽었다가 3일만에 다시 부활합니다. 예수가 사람들의 죄를 대신하여 죽음으로써 인간은 깨끗해 질 수 있었다는 사상은 기독교에서 매우 중요한데 이때 유다의 배신이 주요 역할을 합니다. 로마 제국이 기독교를 국교로 받아들여 제국의 종교가 되었고, 중세 시대에 접어든 이후부터는 종교가 더욱 강하게 사람들의 삶을 지배하게 되면서 유다에 대한 비난도 매우 커졌습니다. 이러한 영향은 오늘날까지 여러 단어에서 살아남아 있네요. '예정된 악인, 유다' 는 이러한 유다에 대해서 자료를 모으고 심층적으로 분석함으로써 유다라는 인물을 재해석하고 있습니다. 예수를 팔아 넘겼다는 사실만 봤을때는 모든 것을 아시는 분인데 왜 유다의 행동을 막지 않았을까, 그리고 왜 유다가 그 역할을 해야만 했을까 등 궁금한 점이 많았네요. 저자는 오늘날 유다가 죽은 곳이라고 알려진 지역에 있는 한 수도원을 방문하면서 유다의 흔적을 찾는 것으로 이야기를 시작하고 있습니다. 책에서는 성경의 복음서에 기록된 내용에서 유다의 행적을 추적하고 있습니다. 유다는 예수의 열두 제자 중 한명이었다가 은화 30개를 받고 누가 예수인지 입맞춤으로 알려줌으로써 예수가 체포되었고 결국 죽음에 이르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유다는 자신이 한 행동에 대해 뉘우치고 후회하면서 받은 은화를 성전에 내팽겨쳤고, 이후 몸 안의 내장이 쏟아지면서 피를 흘리며 죽었다는 내용이 있네요. 중세가 시작되면서 부터 유다의 이야기에는 더욱 살이 붙기 시작합니다. 교회나 수도원에는 성경에 나오는 장면을 묘사한 그림들이 많이 남아있는데 유다는 사람이라고 부르기 어려울 정도로 기괴하거나 악마에게 영혼을 판 모습으로 그려지네요. 전혀 상관이 없을 것 같지만 성적으로도 문제가 있는 모습도 있습니다. 또 유다 인형을 만들어 불태우기도 하고, 유다라는 이름을 기피하거나 유대인 전체를 유다와 동일시해 핍박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유다가 있음으로써 예수의 죽음과 부활이 있을 수 있었던 것처럼 유다와 예수 사이에는 사전에 서로 알고 있었을 것이라는 해석도 있습니다. 실제로 수백년이 넘는 시간동안 묻혀 있다가 발견된 유다복음은 많은 관심을 불러 일으켰습니다. 수많은 학자들의 연구로 유다복음의 내용이 하나씩 밝혀졌는데 이는 유다와 예수가 일주일간 나눈 대화를 기록한 것으로 유다도 여느 제자와 마찬가지로 예수를 믿었으며 나중에 예수를 팔았다는 내용이 나옵니다. 현대에는 기존의 관점에서 탈피해 여러 각도에서 유다를 보려는 시도들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기독교에서 예수가 차지하는 역할이 매우 크기 때문에 그 예수를 판 유다는 언급 자체가 금기시되어 왔었습니다. 하지만 종교가 지배하던 시기가 막을 내리고 과거보다 객관적으로 볼 수 있게된 만큼 여러 사료를 통해 유다의 삶을 재평가하려는 시도는 유다라는 인물을 밝혀내는데 좋을 것 같아요. 그동안 막연하게 알고 있던 유다와 그의 일생에 대해서 전체적으로 살펴볼 수 있어서 도움이 되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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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의창에서 나온 책들 중에서 유달리 나의 호기심을 끄는 책을 가끔 만나곤 한다. 피터 스탠퍼드의 <예정된 악인, 유다>도 그런 책들 중의 한 권인데... 인류 역사상 유다만큼 질기디질기게 오래도록 많은 사람들에게 욕을 먹는 경우는 거의 없지 싶다. 2천 년이 넘도록 욕을 먹다 보면 안식을 취해야만 할 그의 영혼마저 너덜너덜해질 것이란 생각을 하게 된다. 도대체 유다는 어떤 극악한 죄를 지었길래 몇 세기를 걸쳐서까지 그토록 사람들의 지탄을 받는 것일까? 많은 성화 속에 흉측한 모습으로 그려지고... 다양한 작품 속에서 천하에 존재하면 안 될 극악한 인간으로 표현되고... 온갖 추한 것에는 유다란 이름을 붙이고... 심지어 유다란 욕은 영혼마저 탈탈 털릴 만큼의 심한 상처를 받는다고 한다. 이 책 <예정된 악인, 유다>는 제목부터가 내 눈길을 잡아끄는 무엇인가 있어 줄기차게 책을 붙잡고 있게 만들었다. 신의 아들이자 구세주인 예수를 배신하여 그를 죽음에 이르게 하였다는 것은 성서 속에 나오기에 너무나 잘 알고는 있지만... 단순히 은화 30냥이 탐이 나서 예수를 유대인 제사장 손에 넘겼다고 보기에는 뭔가 찜찜한 구석이 많았다. 예수는 전지전능한 신의 존재인데... 설마 유다의 행동을 예수가 예측하지 못하였을까? 란 의구심도 들었었고... 로마 병사들이 예수를 붙잡으러 올 때 예수가 달아나고자 마음만 먹었다면 얼마든지 그 자리를 피할 수가 있었을 것이며... 심지어 성서 속에는 예수가 자유자재로 변신까지 가능한 능력이 있었다고 하니 어쩌면 그 상황을 바란 것은 아니었을까? 아버지의 뜻대로 하소서... 란 기도도 하였고... 유다에게도 네가 할 일을 하라는 말을 했다고 하니 더더욱 의구심이 생겨났다. 어쩌면 유다는 예수란 존재를 극대화하기 위한 희생양이자 하나의 장치가 아닐까란 생각도 하게 만들었다. 야훼는 어인 영문인지 지극히 사랑하는 이에게도 그의 신심을 시험하기 위하여 외아들을 제물로 바치라는 요구를 하였고... 또 다른 이에게는 차마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고통을 받도록 하였기에 어쩌면 유다 역시도 같은 희생양이 아닐까 싶었다. 신적인 존재가 아닌 인간 예수에 대하여 많이 궁금했고 악마의 존재가 아닌 인간 유다에 대하여서도 마찬가지로 많이 궁금했다. 그런 나의 지적 호기심을 충족시키겠다 싶어서 참으로 열심히 읽은 책이 바로 <예정된 악인, 유다>다. 제목은 붙이기 나름이겠지만... 예정된... 이란 단어가 나의 그런 궁금증을 풀어줄 듯도 싶어 끈질기게 마지막 장까지 읽게 했다. 책 소개에 따르면... (아래 기울임 글꼴은 예스24에서 제공한 네이버 책 정보에서 펌을 해온 것이다.) 지난 2,000년간 끊임없는 논쟁을 불러일으킨 유다의 배후를 추적하는 전복적 순례기. 교황 레오 1세가 ‘이 세상에서 가장 사악하고 가장 불행한 자’라고 단언하고, 요한복음이 ‘멸망의 자식’이라고 저주를 퍼부었으며, 단테가 《신곡》 〈지옥 편〉에서 참혹한 형벌을 받으며 극심한 고통을 받는 모습으로 묘사한 희대의 악인 유다. 하지만 정말로 유다는 뼛속까지 사악한 악당이었을까? 아니면 기독교의 교세 확장을 위해 버림받은 희생양이었을까? 유다의 배신은 악마의 부추김이 아니라, 어쩌면 예수의 죽음과 부활을 위해 예정된 계획은 아니었을까? 지배적인 담론이 철저히 숨겨온 유다의 이면을 문헌학, 종교학, 역사학, 심리학 등 다양한 토대 위에서 입체적으로 살펴본다. 당신의 뜻대로 하소서...라고 했는데... 왜 유다는 그토록 참혹한 평가를 받게 되었는지 여전히 의구심이 사라지지 않는다. 진정 야훼가... 예수가 바라는 대로 그의 제자들은 제대로 온전하게 그의 뜻을 이어나간 것일까? 싶기도 하다. 소소한 일이건 큰일이건 간에... 인간은 자신의 잘못보다는 남에게 책임을 돌리고 싶어 하는 비열한 심리가 잠재한다. 신의 사도랍시고 사익을 취하기 위하여 구세주인 예수의 죽음을 통해 유다를 극한의 배신자로 악마로 몰고 간 것은 아닐까? 종교라는 미명 아래 역사적으로 오늘날에도 자행되고 있는 차마 눈 뜨고는 못 볼 온갖 추악한 일들이 그 증거가 아닐까 싶다. 자신들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하여 무지몽매한 민초들을 발아래 두기 위한 희생양으로 유다를 선택한 것은 아닐까 싶다. 예수를 비롯한 열두 제자들도 유다처럼 유대인이었는데 왜 그 사실을 쏙 빼놓고 유독 유다만 유대인 유다라 모멸하고... 유다와 같은 민족... 유대인이라고 예수의 죽음 이래로 오늘날까지 온갖 죄를 씌워 핍박했던 역사적 사건들이 그 증거이지 싶다. 내게 있어서 참으로 흥미로운 책 <예정된 악인, 유다>는 피터 스탠퍼드의 유다의 흔적을 찾는 여정을 통하여 무엇을 말하고 싶었을까? 유다는 특정적인 집단이자 지배적인 존재들의 조작되고 과장된 억울한 희생양이었다? 아니면 인간이란 존재의 나약하고 불완전함? 책을 덮는 순간까지 또 다른 의구심이 들고 유다에 대한 평이 과연 정당한가를 생각하게 만드는 <예정된 악인, 유다>였다. 종교적인 평가를 떠나서 인간의 본성으로만 본다면 너무나 흔하게 볼 수 있는 지극히 인간적인 유다가 아니었을까 싶은 나의 생각이다. 지난 2천 년간 받아왔던 유다에 대한 지독하고 부정적인 평가는 시대의 변화에 따라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여전히 노골적으로 드러내놓지는 않지만 잠재하여 불쑥 어느 때고 희생양이 필요할 때 등장할지도 모른다고도 한다. 언제인가 필요에 의하여 또 누군가가 유다와 같은 역할을 할지도 모르겠다는 내 염려됨은 부디 노파심이기를 빌어보며 글을 맺는다. 아래의 기울임 글꼴 역시 다음 책에서 펌 한 것으로 인터파크의 책 소개이다. 위의 글 펌이나 아래의 글 펌은 내가 궁금해서 참고하기 위하여 펌 한 것이니 법적 조치는 부디 말아주시길... 지난 2000년간 끊임없는 논쟁을 불러일으킨 유다의 배후를 추적하는 전복적 순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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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에 나오는 인물 중, 가장 잘 알려진 것은 누구일까 그 누구의 이견도 없이 답은 예수겠지만 열두 제자로 범위를 좁히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그런데 만일, 유다가 만들어진 악인이라면?
유다, 가롯 유다 역사상 가장 악명 높은 배신자의 이름이다 그런 그를 새로이 해석한다는 이야기에 귀가 솔깃했다
아마 기독교인이라면, 그리고 유다라는 인물의 행적을 들어본 사람이라면 이상하지 않게 들릴 이야기다 그러나 이런 유다를 단지 악인으로 보지 않고 참신한 시각으로 재해석했다니, 솔직하게 말하자면 '과연 그렇게 할 이야기가 많을까?'라는 생각부터 먼저 들었다 사람의 이름은 의미를 가진다 말 그대로, 그 사람의 인생을 함께 걷는 동반자이기 때문이다 자기 아들에게 히틀러, 혹은 개 와 같은 이름을 붙일 부모는 없을 테다 그리고 유다의 이름은 많은 이들에게 그다지 긍정적이지 못한 이미지를 가진 이름이었다
너무 복잡하고 어려워서 포기할뻔했던 초장 "유다의 이름"에 관한 내용을 넘어서고 나면, 이제는 유다의 배신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그리고 작가 피터 스탠퍼드는 넌지시 독자에게 질문을 던진다
A라는 사건을 조금 더 총천연색으로 물들이기 위해, 그리고 남들의 시선을 잡아끌기 위해 a, b, c 등의 조미료를 쳤을 가능성도 있을 수 있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상 종교인 입장에서는 굉장히 고얀 말로 들릴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이쯤되니 작가가 누구인지 궁금해진다 활동이력을 보니 어지간히 활발한 활동을 해온 것을 알 수가 있다 개인적으로 생각하기에, 성경은 굉장히 불친절한 책이다 묘사와 설명이 상당부분 생략되어 있고 내용을 전체적으로 아우르려면 공부가 필요하기까지 하다
실제로 어렸을 적 아무것도 모르고 읽던 성경과, 어느 정도 판단력이 갖춰진 채 읽었던 성경의 느낌이 굉장히, 정말 굉장히 달랐어서 놀랐던 기억도 있다
내가 그닥 인문학 도서랑 친한 편이 아니라서 더 그럴테고, 앎의 깊이가 모자라서 그런 것도 있겠지만 그럼에도 유다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고 고찰하고 연구해온 작가의 글을 읽는 건 흥미로웠다
유다가 스승을 배신한 것은 유다의 사악함을 보여주는 것일까? 아니면 유다는 그저 신이 예정해둔 계획의 일환에 불과했던 것일까
단순한 흥미유발 도서로 보일수도 있겠지만, 사실 그런 줄 알았지만 책은 상당히 진지한 고찰을 통해 "유다의 누명"을 벗기려 노력한다 거의 2천년 가까이 "악인"으로 살아온 유다는 과연 악인이었을까- 적어도 유다라는 존재가 가진 성질이 사람들에게 매우 다양하게 해석되고 재창조되고 있다는 점에서, 많은 사람들에게 유다가 악인인지 아닌지는 그다지 의미가 없지 않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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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다는 예수의 12제자 중 하나로 성경에는 그가 예수를 배반하고 종교지도자들에게 그를 팔아 넘겼다고 기록하고 있다. 배반자의 상징인 그를 어떤 이들은 예정된 악인 곧 그가 신에 의해 예수를 팔도록 예정되어 있었다고 주장한다. 12사도들을 중심으로 복음전파가 왕성하게 일어나던 때 예수를 따르던 자들 중 이들과 다르게 생각했던 자들을 억누르기 위해 유다를 희생시켰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존재한다. 이들은 실상 유다는 예수를 가장 신뢰하였고 예수도 그를 가장 인정했다고 주장한다. 그들이 내세우는 것 중 가장 유력한 것이 유다복음이다. 3세기경에 쓰여진 것으로 추정되는 이 책은 기존에 알고 있던 예수와 제자들의 모습이 아니다. 너무나 가볍고 때로는 화를 자주 내는 예수의 모습과 성경에 나오는 제자들과는 사뭇 다른 제자들의 모습도 보인다. 자기들 나름대로의 뚜렷한 주관으로 예수와 논쟁을 벌이기도 하고 예수가 그들을 부르기 전에 그들도 하나님 앞에서 분명한 소명도 있었고 준비가 되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저자는 분명하지 않지만 유다가 쓴 것이 아니라는 것과 유다 입장에서 예수와 12제자들의 생각을 기록하고 있다. 객관성이 전혀 없고 많은 부분이 소실되어(보관을 잘 못해 부숴져 버렸다고 한다.) 앞뒤 문맥에 맞추어 해석을 해야 한다. 그런데 이 책이 발견되었을 때 엄청난 사실을 발견한 양 소동이 벌어졌었다고 하니 아이러니하다. 몇몇 무리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유다는 경쟁이나 주류에서 밀린 이들이 만들어 낸 희생양일까? 또 어떤 이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신에 의한 희생물일까? 그런데 이러한 것들이 허탄한 신화나 허황된 이야기들에 불과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성경의 예언대로 성취가 되어도 예수를 십자가에 매단 빌라도는 예수님을 죽인 상징적인 존재다. 그대로 이루어졌다고 해서 그의 죄가 용서되는 것은 아니다. 유다는 분명 예수를 강도의 무리들에게 은 30으로 팔아 넘겼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은 아니다. 4복음서들은 그가 도둑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돈을 사랑했고 빼돌렸다는 것이다. 인간의 호기심이나 신에 대한 반감으로 유다를 재해석하려는 의도는 계속될 것이다. 좋은 쪽이든 나쁜 쪽이든. 그러기에 깨어 분별하는 자세가 필요하리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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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히려 예수가 요한에게 배신을 당했다면 훨씬 감동적이면서 사실적이었을 거야. 왜냐하면 요한이야말로 예수가 가장 아끼던 자였으니까." - 데이비드 헤어의 연극 <유다의 입맞춤>(1988)에서 '오스카 와일드'의 대사(57) "예수님의 열두 제자가 면접을 본다면"이라는 제목의 예화를 메모해 둔 것이 있습니다. 만약 한 회사가 유능한 신입사원을 뽑기 위해 예수님의 열두 제자를 대상으로 인물분석을 했다고 가정하자. 회사가 이들의 학력, 경력, 적성을 종합해 컴퓨터에 분석을 외뢰했다면 아마 이런 결과가 나왔을 지도 모른다. 야고보와 요한은 매우 이기적인 사람이다. 도마는 매사에 의심이 많고 부정적인 성경의 소유자다. 베드로는 성격이 급해서 실수할 가능성이 높다. 안드레는 너무 내성적이어서 매사에 추진력이 떨어진다. 야고보는 혁명가적인 기질이 있어 위험한 존재다. 세리 출신 마태는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이기적인 사람이다. 제자들 중 적격자는 가룟 유다뿐이다. 그는 학식과 경험을 겸비한 인물이며 실업가의 김각과 사교성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기독교 역사를 변화시킨 사람은 실격자로 판정난 제자들이었다. 세상적 판단으로 가장 유능한 가룟 유다는 배신자로 낙인찍혔다. <예정된 악인, 유다>는 독자들에게 이런 질문을 던집니다. "누가 그를 배신자로 만들었는가?" 다윗의 이름을 아는 사람은 골리앗의 이름을 알듯이, 예수의 이야기가 전해지는 곳에서는 역사상 가장 악명 높은 배신자 '유다'의 이름도 전해지고 있습니다. <예정된 악인, 유다>는 그 유명한 입맞춤으로 스승을 은화 30냥(노예의 한 사람의 몸값)에 팔아넘긴, 그리하여 역사장 가장 악명 높은 '배신자'로 낙인 찍힌, '유다 이야기'를 추적한 책입니다. '유다'가 아니라, '유다 이야기'라고 하는 것은 그에 관한 사료가 턱없이 부족할 뿐 아니라, 얼마 안 되는 기록물의 조각들도 서로 이야기가 맞지 않으며, 교회의 역사와 함께 덧입혀지고 가공되어져 왔다는 전제 하에 저자가 '유다의 이야기'를 재구성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유다의 이야기에 등장하는 구체적 내용들은 수많은 역사적 렌즈와 선입견을 거치면서 어지러울 정도로 많은 해석을 낳는다. ... 유다의 경우에는 오랜 세월을 거치면서 이야기가 지나칠 정도로 확대된 것이 사실이다"(33). <예정된 악인, 유다>는 역사적 발자취를 추적하며 "유다 이야기"를 다각도에서 재조명하는데, 우선 유다는 전형적인 '희생양'이었다는 것입니다. 성경에 묘사된 유다의 이야기가 "문화역사학자이자 인류학자 르네 지라르"가 지적한 희생양의 특징에 정확하게 부합한다는 것입니다. "마태가 유다의 죄를 조금이라도 덜어주려 했던 반면, 다른 복음서 저자들은 유다를 유대교 지도자와 같은 사악한 자로 묘사하는 데 조금도 주저함이 없다. 그들은 유다를 배신자로 낙인찍었고, 유다가 후회할 기회조차 주지 않았다. 희생양을 만드는 전형적인 과정을 밟은 셈이다"(119). 이런 이유를 들어, 사복음서에 기록된 유다가 허구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유다가 실존 인물이 아니라 그저 희생양이 필요해서 창조된 허구의 인물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에 대해서는 저자가 이의를 제기합니다. "만약 유다가 철저하게 가공의 인물이라면, 다시 말해 배신자나 희생양 역할을 맡기 위해 작가의 입맛에 따라 창조된 허구라면, 사대 복음서의 유다에 대한 기록은 심각할 정도로 내용의 일관성이 부족하다. 즉 유다를 사대 복음서 작가들의 창작으로 보기에는 구체성이 결여되어 있거나, 시기가 일치하지 않거나, 논리적 전개가 빈약하거나, 내용이 불일치한다"(126). "5세기부터 15세기까지 중세를 지배했던 시각에서 보면, 유다를 대표하는 이미지는 사탄의 대변인이나 악의 화신처럼 누가복음과 요한복음에서 그려낸 모습이었"고, "중세 시대에 유다의 이미지는 열두 제자에 포함되어 언제든 구원을 받을 수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끝내 사탄에 항복한 자였"습니다(159). 그러나 시대가 변하면서, 유다의 성격과 배반의 동기, 죄에 대한 해석도 마찬가지로 변모했"습니다. "심지어 유다가 정말로 죄인인지에 대해 의문을 품는 이들도 생겨났"습니다(272). "유다를 사탄의 도구나 배신자로 보지 않고, 그저 잘못된 선택을 한 인간으로 인식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역사적으로 유다라는 인물에 대해서는 세 가지 서로 다른 시선이 혼재합니다. 유다가 타고난 악인이었기에 자발적으로 죄를 저절렀다는 시각, 신이 예비해둔 계획에 따라 사용된 것일 뿐이라는 시각, 악마에 사로잡혀 그랬다는 시각이 그것입니다. <예정된 악인, 유다>는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지며 시대별로 유다에 대한 해석과 이미지가 어떻게 달려져 왔는지 보여줍니다. "그렇다면 유대는 배신이 본인의 책임이기에 오랜 세월을 거치도록 저주를 받아 마땅한가? 아니면 유다는 신이 예비한 계획과 사탄의 계약에 의해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선과 악의 대결에서 희생된 꼭두각시에 불과한 것인가?"(85) 아마도 유다가 돈궤를 맡은 자로서 탐욕스러운 제자였다는 이미지를 가진 교인이라면, 유다가 본래 선한 사람이며, 예수가 보기에는 다른 모든 제자보다 '더 뛰어난 제자'였고, 유다가 예수를 배반한 이유는 악의나 탐욕 때문이 아니라 우정과 존경 때문이었으며, 유다는 그저 예수가 명한 바를 충실히 따랐을 뿐이었다는 주장이 충격적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유다의 배신은 세속적인 것과 천상의 것 간에 존재하는 장벽을 허무는 과정을 돕는 행위로 봐야 한다. 한마디로 유다는 신이 자신에게 부여한 역할을 수행함으로써 예수를 돕고 있는 셈이다"(149). 심지어, 유다의 자살이 예수의 용서를 얻기 위한 지름길이었다는 주장도 소개됩니다. "유다가 목을 매었던 밧줄이 체념한 유다의 도피 수단이 아니라 속죄의 도구로 활용되었다"는 것입니다. "유다는 (마태의 기록에 의한 시간 순서로 볼 때) 예수가 죽기 전에 스스로 목을 매달아 죽었다. 따라서 예수가 부활하기 전에 지옥에 들러서 모든 고통 받는 영혼을 구원했을 때, 이미 유다도 지옥에 있었던 셈이 된다"(273). <예정된 악인, 유다>의 저자는 유다를 악인으로 보는 시간과 반대로 그저 어쩔 수 없이 악역을 수행해야만 했던 인물로 보는 시각을 동시에 보여주지면, 저자 자신이 그리 객관적인 입장은 아니라는 의심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저주받은 제자를 축복받은 제자로 복원하고 싶은" 저자의 욕망이 스며 있다고나 할까요? "유다는 교회는 물론이고, 그 반대파도 각자의 목적을 위해 휘둘렀던 무기이자 희생양이다. 또한 유다는 사탄의 도구이면서 동시에 신의 대리인이다"(376). 가장 사악하면서도 불행한 자, 유다! 유다에 대한 동정심을 갖는 것이 신앙에 위배되는 일은 아닐 것입니다. <예정된 악인, 유다>는 전형적인 유다의 이미지에 익숙했던 독자(성도)에게는 상당히 충격적인 이야기가 될 수도 있습니다. 교회 제자훈련 때에 유다가 지옥에 간 것은 아니라고 주장하는 한 분 때문에 교회에 큰 논란이 일었던 적이 있는데, 책 한 권을 읽고 신앙이 흔들릴 정도의 믿음이라면 이 책은 신앙성장이 그리 유익하지 않은 책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비판적 책읽기가 충분하고, 세상에 회자 되는 이야기에 열린 마음으로 경청할 준비가 된 독자(성도)들에게는 보다 다양한 시각과 다각도의 성경(인물) 연구를 위한 좋은 자료가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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