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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늦깍기로 대학을 다닌 92년만 해도 민중문학이라는 단어가 살아 있었다. 창비나 실천문학에서 나온 문학서도 그랬지만, 문지(문학과 지성사)에서 나온 글들에도 참여에 대한 의지들이 녹아 있었다. 하지만 이런 시대의 느낌은 내가 중국에 있었던 10년(99년~08년) 사이에 민주화의 확대와 함께 거의 사라졌다.
이런 느낌이 사라진 것은 이제 더 이상 독재나 인권유린 같은 일들이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지 않을 거라는 느낌이 강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용산 참사나 어처구니가 없는 정치 상황을 보면서 이제 그런 느낌이 얼마나 허상이었는가를 절감하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 그래도 힘을 쓰기 시작한 이들이 있다는 것은 희망이다. 무엇보다 안심스러운 것이 ‘창비’(창작과 비평사)가 전투모드를 찾은 것이다.
사실 10~20년전에 살았던 세대에게 창비가 주는 의미는 남다르다. 전집으로 된 창비 전집이나 쏟아지던 창비 시집은 참여문학의 정확한 지표였다. 그 지표를 이끈 사람이 백낙청 선생 같은 선장도 있지만 가장 실질적인 역할을 한 사람이 이시영 선생이라는 것을 부인하는 이들은 많지 않을 것이다. 31살이던 80년 2월 ‘창작과 비평’의 편집장으로 입사해 그는 엄혹한 고통의 시간 동안 창비호를 이끌었다. 그런 공로를 떠나서 시인으로의 데뷔 40년을 맞아서 후배 문인들이 주동이 되어 시선집 ‘긴 노래, 짧은 시’를 출간했다.
사실 개인적으로는 이시영의 시에 대한 느낌은 강하지 않다. 김남주나 신동엽, 김준태, 김지하, 조태일, 김정환처럼 강하지도 않고, 안도현, 곽재구, 김용택, 정호승처럼 부드럽지도 않은 중간적인 위치에 있기 때문이다. 사실 이 모든 문인들을 중간에서 수용해야 하는 창비 편집장의 위치 때문일텐데 그런 이유로 그의 시들이 익숙치 않았었다.
하지만 이번 시집을 읽으면서 나는 그가 지리산처럼 모든 것을 받아들이는 정말 깊은 시인이라는 것을 알았다. 우선은 그는 행동하는 시를 썼다는 점이 좋다. 시위의 기억을 옮긴 시들이나 외국인 노동자들의 문제 등을 다룬 시는 그가 여전히 길항적인 삶의 선상에 있다는 것을 느끼게 한다.
다른 하나는 그 속에 존재하는 부드러움이다. “시인이란, 그가 진정한 시인이라면/우주의 사업에 동참할 수 있어야 한다//그러나 내가 언제 나의 입김으로 더운 꽃 한 송이 피워낸 적 있는가/내가 언제 나의 눈물로 이슬 한 방울 지상에 내린 적 있는가/내가 언제 나의 눈물로/이슬 한 방울 지상에 내린 적 있는가/내가 언제 나의 손길로/광원(曠原)을 거쳐서 내게 달려온 고독한 바람의 잔등을/잠재운 적 있는가 쓰다듬은 적 있는가”(‘내가 언제’ 전문. 1994년)
이 시를 보면 안도현의 ‘연탄재’에 나타난 세상에 대한 부드러움을 넘어선 깊은 시선이 느껴진다.
그러면서 시인은 이미 삶을 관조하는 시선을 느낄 수 있다. “어느날 죽음이 나를 따라와 누웠다”로 시작하는 ‘어느날 죽음이...’(1996년)을 보면 나희덕의 ‘그곳이 멀지 않다’(1997년)에서 느껴지는 삶에 대한 시선을 볼 수 있다.
이렇든 실천하고 같이 술을 따라주고, 글을 다듬어주는 이시영이야말로 창비의 ‘멘토’라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그 때문에 김사인, 고형렬, 김정환, 하종오 등의 후배들이 그의 시를 더 깊이 읽어서 시선집을 만든 것이다.
사실 지난 10년간 우리는 세상에 대해서 너무 방심했다. 그간에 설마 하면서 생각했던 것들이 불과 1년만에 뒤집어 질수 있다는 무서운 세상을 우리는 살아가고 있다. 1년만에 이 정도를 올 수 있다면 앞으로 3년반이나 혹시나 올수 있는 8년반 후는 얼마나 끔직한가. 그런 점에서 이시영은 이제 삶에 대한 관조가 아닌 다시 참여로 가야하는 어려운 상황에 처했다. 실제로 현기영의 ‘누란’ 등을 보면서 나는 이 문제를 다시금 생각한다.
과거의 적이 실체가 있는 독재권력이라면 지금의 적은 권력은 물론이고 자본 등과 결탁해 문화라는 당의정을 쓴 채 우리 내부에 존재했던 가장 무서운 암세포와 같다. 그런 점에서 이시영이 하던 뢴트켄 같은 역할이 더욱더 절실해 지고 있다.
이제 쉬어야할 나이인 시인에게 다시금 긴장을 요구하는 시대가 슬프지만 어쩌랴. 우리 안에 쌓인 지리한 지식의 콜레스테롤도 이토록 진한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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