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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킨스의 '올리버 트위스트'에서 인용한 '그때가 가장 좋은 시기였다'. 책의 서문에 날카롭게 표현된 이 말에 책의 무게와 빛깔을 짐작했다. 최근 박현욱의 '아내가 결혼했다'를 읽고 만만치 않는 스토리텔링에 혹해서 그의 다른 작품들을 찾아봤다. 의외다. 초기작 '동정없는 세상'과 2008년작'그 여자의 침대'를 포함해서 총 4권의 책이 있을 뿐. 평단의 높은 평가보다도 일단 글맛 자체가 색다르다. '새는'은 학창시절의 아름답고, 치열했던 그 때를 현재로 옮겨놓는다. 태양처럼 바라만 봐야 했던 한 여학생(은수)과 내 주위에서 늘 조력자처럼 맴돌았던 또 다른 여학생(현주), 그리고 나(은호)의 이야기다.
나의 고교시절을 떠올려본다. 소설의 무대처럼 지방의 중소도시. 학년당 8개반 정도의 고만고만한 사립고등학교. 산 중턱에 깎아지른 듯한 경사에 늘 숨을 헐떡이며 올라갔던 기억이 난다. 재단이 튼튼해서 도서관과 기숙사, 체육관 등은 남부럽지 않을만큼의 시설이었다. 원래부터 터가 공동묘지여서(실제로 기숙사 창밖으로 버려진 무덤들이 도처에 널려있다.), 특히나 음기가 센 곳이라 남자들만 있어야 한다는 이상한 풍수지리에 이끌려 정말 남자만 있었다. 남자학교에, 선생님도 전부다 남자, 그 흔한 서무실 아가씨도 모두 남자로 대체했다. 심지어는 매점 아저씨, 식당에서 일하는 사람들도 죄다 아저씨, 거기서 키우는 개들도 죄다 수컷이었다. 놀랄만한 수컷들의 세상인 셈. 비평준화 학교라 공부는 무식하게도 시켰다.아침 6시 30분 등교해서 새벽 1시까지 가둬놓고 공부를 시켰으니. 당시 그런 속에서도 앞만 보고 공부만 했던 기억이 난다.
시몽(시베리아 몽키)이란 불리는 작고 보잘 것없는 고교생 은호. 500명 남짓 인원 중에 끝에서 몇 번째에 들 정도로 있으나 마나한 존재. 이 소설에선 3명의 남학생이 등장한다. 돈 많고, 공부도 잘하고, 운동도 잘하는 민석, 집안은 좋으나 공부는 꼴통인 호철, 아버지는 술주정뱅이에 어머니는 시장 노점상을 하는 은호, 그야말로 돈없고, 뺵없고, 실력없는 그런 존재다. 그런 그에게 옷 브랜드의 광고처럼 '어느날 문득 그녀가 내 가슴'에 들어와버렸다. 공부 잘하고, 이쁜, 그래서 모든 남학생이 우러러보는 은수. 은호는 못오를 나무라 생각하며, 그냥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다. 여기서부터 은호의 고교 시절은 치열하고 숨가쁘게 진행된다. 주목받기 위해 기타를 연습하고, 문예부에 들어가고, 나중엔 공부를 한다. 모든 게 은수가 알아주길 바라는 마음에서. 정말 흥미진진하게 인생 대역전과도 같은 이야기가 펼쳐진다. 모든 이야기는 은수로부터 시작된 셈. 은수에게 좋아한다는 고백을 한다. 돌아오는 말은 지극히 범생이 같은 말. '우린 고3이잖아요. 대학 합격하고 그때 생각해보자'
또 한편으로, 그런 은호를 아련하게 바라보며 도움을 주는 현주가 있다. 현주 역시 집안 좋고, 공부 잘하고 예쁘기까지 한 엄친아다. 그런 그녀는 우연히 신문 배달을 하는 은호를 보고 알 수 없는 감정에 빠진다. 후에 기타학원에서 재회한 후, 은호의 책읽기, 은호의 공부를 손수 도와주며 사랑을 키워간다. 결국 서울의 명문대에 입학하게 된 은호는 은수를 찾아가, 자신의 고백에 대한 답을 듣는다. 역시 거절이다. 그런 은호를 바라보며 현주는 에둘러 자신의 감정을 고백한다. 마치 은호를 축으로한 사랑의 트라이앵글이 불협화음을 내듯, 그들은 그렇게 헤어지고 만다.
누구에게나 학창시절이 빛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한번쯤 그때로 돌아갔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은호와는 조금 다르지만, 나 역시도 비슷한 과정을 겪었다. 어린 시절 피아노가 배우고 싶어 신문 배달을 했었다. 초등학교 3학년 당시 레슨비가 7천원이었다. 어머니는 3달째부터 레슨비를 주셨는데, 사실 그때 피아노 선생님을 너무 좋아했었다. 그렇게 시작한 피아노를 7년을 배웠는데, 막상 진도는 체르니 50번과 약간의 재즈가 끝이었다. 문예부는 초중고를 다니는 동안 늘 나의 동아리였다. 이 또한 초등학교 4학년 때 우연히 참가한 전국 어린이 글짓기 대회에서 입상을 하면서부터다. 남 앞에서 인정받는다는 것. 단순히 그 재미에 빠져 지독히도 책을 읽었다. 물론 아동문학가였던 담임 선생님의 역할도 컸지만. 당시에 소년조선일보와 소년한국일보 등 왠만한 전국대회 상은 휩쓸었던 기억이 새롭다. 지금 돌아보면 유치한 어린아이의 말장난과도 같은 동시였지만. 고등학교 때에도 그러한 책읽기와 글짓기 대회 입상은 계속됐다. 결국 국문과에 진학했고, 책을 밥벌이 삼아 일하는 직업을 갖게 됐다.
그럼 당시의 연애는 어땠을까? 이 소설에도 아련한 당시의 아련한 추억이 묻어있다. 죠다쉬와 나이키, 소방차. 연합동아리를 통해 여고생들과의 만남, 긴장감 넘치는 학원에서의 만남, 펜팔 등. 지금과는 사뭇 다른 풋풋함이 있었다. 내게도 여러 명의 여자친구가 있었다. 대부분 문예부 활동을 하면서 만나거나, 신문이나 잡지에 실린 내 글을 보고 펜팔을 요청해와 사귀었던 친구들이다. 그러나 너무나 억압적인 공부 분위기 탓에 연애사는 그저그런 편. 다만 무식하게 공부만 했으나, 시골 학교의 특성상 서울에 있는 대학에 들어가는 수가 극히 드물었다. 제대로된 과외나 학원 강의를 들을 수 없었던 환경 탓이 크겠지만, 아무리 깡으로 악으로 공부를 한다해도 한계는 있는 법.
결국 지금도 느끼는 거지만, 시간을 되돌리더라도 절대 고등학생 시절로 가고 싶진 않다. 피눈물나게, 무식하게 공부만 해야 하는 그런 삶이라면 도저히... 주위를 살펴보면 일생 일대의 계기를 통해 새로운 인생을 사는 사람들이 많다. 은호에겐 은수가 그런 존재였다. 무언가를 간절하게 원한다면, 그걸 이루기 위해 죽음과도 같은 고통과 인내를 감내하는 초인적인 힘. 내게 그런 계기는 과연 올까?
'아내가 결혼했다'가 축구 이야기를 교묘히 활용했다면, '새는'은 야구가 등장한다. 박철순과 박노준. 최동원에 열광했던 은호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그중 야구에 대한 은호의 생각은 남다르다.
"야구는 말이야, 아주 절묘한 게임인 것 같아. 어느 정도의 경계선 상에서 예외를 허용하고 있잖아. 담장 너머로 공이 넘어가면 무효라고 해도 괜찮을텐데 홈런이라고 해주고, 주자가 투수 몰래 도루하는 것도 어쩌면 비신사적인 행위인데도 인정해주고 말이야. 어떻게 보면 반칙인 것 같은 것들을 허용해주고 있잖아. 그리고 또 야구란 게 참 섬세하다는 느낌도 들고... 너무 섬세해서 지루할 때도 있지만 지루한 재미라는 것도 있지 않겠어? 그런 거 재밌잖아."
야구에 대한 아내의 생각도 마찬가지다. 너무 지루하다는 것. 허나 그런 재미를 좋아하는 많은 사람들이 있다. 이 소설은 서른을 훌쩍 넘은 은호가 학창시절을 추억하며 회상하는 방식이다. 은호에게 그 시절은 '별빛에 이끌려가던 중에는 혹시 행복하지 않았을까'란 아련한 기억의 소산이다. 나또한 즐겁지만은 않았던 그 당시를 떠올리며, 내 삶의 3년이 그리 불행하지 않았음을, 아니 행복한 한 때가 분명히 존재했음을 알게 해주었다. 다음은 박현욱의 데뷔작 '동정없는 세상'으로 옮겨갈까 한다. 참 재밌다. |
| 책을 읽다보면 나온다. 은호가 세르반테스에 대해 한 말 중, 소설을 그렇게 재미나게 쓰면 읽는 사람이 얼마나 고마운지 모른다는 말이.. 이 소설을 읽고나서 나 역시 박현욱 작가에게 같은 말을 해 주고 싶었다. 재미있는 소설로 인해 고마웠다고.. 이 책은 작가의 전작인 '동정없는 세상'을 읽은 후 꼭 읽고 싶었던 책이었다. 책을 그렇게 재밌게 쓰면서도 의미를 담을 수 있는 작가가 흔치 않기 때문이다. 박현욱 작가의 사진을 보니 예상보다 좀더 시니컬하게 생겼다. 하지만 글을 전혀 그렇지 않다. 주인공 은호의 생활환경은 조금 우울하지만, 글에서도, 그리고 은호의 삶에서도 우울함을 찾아보긴 힘든 것처럼 말이다. 이 소설은 5명의 고등학생이 주인공이다. 주인공 은호, 은호가 짝사랑하여 그녀에게 잘 보이기 위해 기타, 문예반, 그리고 은호와는 별 관계가 없었던 공부까지 잘하게 만든 정은수, 기타학원에서 만나서 은호에게 많은 지원과 눈에 보이지 않는 사랑을 준 현주, 은호의 단짝친구 호철, 마지막으로 은수를 사이에 두고 은호가 라이벌 의식을 느꼈던 범생이 반장 민석이 이 소설의 주인공이다. 교실에서 성적으로도 그렇고 성격으로도 존재감을 느끼기 힘든 은호는 어느 날 수돗가에서 은수를 본 후, 그녀의 눈에 띄기 위해 기타를 배우기 시작한다. 그의 친구 호철이 여자들은 기타 치는 남자를 멋있게 생각한다는 단 한마디 때문에.. 기타를 장만하고, 기타학원비를 마련하기 위해 은호는 새벽에 신문배달을 하고, 어느 무엇보다 기타 연습도 열심이다. 이런 과정으로 은호는 단지 은수에게 잘 보이기 위해, 기타, 책, 마지막 공부까지 마스터한다. 하지만 학력고사후 연락해도 되냐는 은호의 말에 은수는 미안하다는 말로 모든 대답을 대신한다. 은호가 기타, 책, 그리고 공부까지 해내는데 큰 도움을 주었던 현주는 은호를 향한 자신의 마음을 고백하지만 은호에게 현주는 그저 친구일 뿐이다. 이 소설은 작가의 전작인 동정 없는 세상만큼 재미있다. 특히 친구 호철이 하는 행동을 보면서 혼자서 키득키득 웃은게 몇 번이다. 요즘처럼 웃기 힘든 세상에 아무 상념없이 웃게 만든 작가는 참 대단한 사람이다. 그리고 책을 읽다보면 동정없는 세상의 주인공과 본 소설의 주인공인 은호가 은근히 닮았다는 것도 느낄수 있다. 아버지가 없거나, 있어도 없는 것과 매한가지인 상황이여서 주인공의 어머니가 생계를 책임지지만 주인공의 인성에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 점, 여자친구 또는 이상형과 더 친해지고 싶어서 노력하는 점 등 주인공들이 비슷한 또래여서 그런지 유사한 모습을 볼 수 있다. 하지만 접근하는 방식은 엄연히 다르므로 두 책을 비교하면서 읽는 것도 즐거운 책읽기의 한 방법일 것이다. 책을 읽고 난 후 소설 속에 등장하는 소설들을 읽고 싶어졌다. 그 무엇보다도 죠반니노 과레스끼의 신부님 우리들의 신부님은 꼭 읽고 싶다. 은호가 읽으면서 너무 즐거워했다는 이유만으로.. 읽는 것만으로도 유쾌해질 수 있으며, 뭔가를 열심히 하면 꼭 이룰 수 있다는 것을 느끼게 하는 책이므로, 자녀에게 권하면 좋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그리고 은호와 비슷한 세대로 공감할 수 있는 이들이 읽는다면 자신의 이야기처럼 느껴져서 더 즐거운 책읽기가 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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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햇살이 비치고 꽃망울이 팍 하고 터지고 누렇던 잔디가 파릇파릇 변해가는 바로 그때. 봄이다. 적당히 시원한 봄바람이 살갗을 스치면 발끝에서부터 묘한 기분이 온몸을 타고 오른다. 봄은 공기에 무슨 짓을 해놓았길래 그저 걷는 것 만으로, 햇살 아래 있는 것 만으로 설렘과 닮아있는 묘한 기분을 선물하는 걸까? 보통 계절을 인간의 삶과 비교하자면 봄은 처음과 닮아 있다. 아직 어리고 여려서 조마조마한 기분. 그러나 정작 당사자는 그걸 몰라 더 걱정스럽고 사랑스러운 시기. 봄은 십대와 닮아있다. 이 소설엔 십대가 잔뜩 있다. 다들 고등학생이니까 말이다. 주인공 은호는 아주 평범한 아이다. 공부를 못하지만 딱히 말썽 부리지도 않고 조용히 학교를 다닌다. 그런데 은호에게 운명적인 순간이 찾아온다. 은수라는 아이를 좋아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그 애는 하필이면 공부면 공부 기타 등등 못하는 것 없이 여러모로 뛰어났다. 그 애 눈에 띄고 싶지만 공부도 못하고 그 외 딱히 잘하는 것도 없는 은호에겐 방법이 없다.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기타였다. 축제 때 기타 솔로가 얼마나 큰 주목을 받는지 알기에 은호는 그때부터 기타를 죽어라 연습한다. 그곳에서 현주라는 친구를 사귀게 된다. 기타 연습의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은수에게만 빼고. 여전히 은호는 은수의 눈 밖 인 듯 하다. 그래서 어떻게 했을까? 낙담하고 더는 좋아하지 말자고 포기했을 수도 있지만 방법을 바꾼다. 은수가 활동하는 문예반에 가입한 것이다. 집안 환경 및 공부까지 따져서 나름 엘리트 집단이라 불리는 문예반에 기타 특기가 인정되어 나름 특기생으로 참가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 애들은 마치 다른 세계 아이들 같아서 도무지 은호가 어찌해 볼 도리가 없었다. 토론을 하는데 무슨 말인지 도통 알아들을 수도 없고, 질문을 해와도 답변할 방도가 없었다. 은수의 눈에 띄기야 하겠지만 이건 은호가 생각한 모습이 아니다. 이번엔 도서관에서 살기 시작한다. 무조건 책을 읽고 그 해설서까지 다 꼼꼼히 읽고 또 읽었다. 기타 연습을 하며 사귄 현주의 도움을 받으며 말이다. 이번엔 소기의 성과를 거둔다. 그 분위기를 타고 은수에게 고백하지만, 대학에 가서 생각하자는 답변을 듣고 이번엔 무조건 공부를 한다. 은수와 같은 대학에 가려면 머리가 터지게 공부해도 모자랄 판이니까. 이번에도 현주의 도움을 받으며 말이다. 은수를 향한 은호의 마음과 그런 은호의 마음을 어렴풋이 눈치채고 있으면서도 마음을 솔직히 내비친 현주까지. 아무런 조건 없이 좋아하는 상대를 위해 자기를 바꾸어 가며 노력하는 모습이 참 맑고 아름다웠다. 아주 많이 순수해서 오히려 살짝 건드려도 깨질 정도로 연약해 보이기도 했지만 그게 오히려 마음을 뭉클하게 했다. 비록 은호와 현주는 그들이 꿈꾸던 결과를 얻지 못했다. 그래서 방황도 하고 마음 아파하지만 그런 것까지 아름다워 보인다. 자신이 몰랐던 새로운 면을 발견하게 된 건 은호에게 놀랄 만큼 큰 경험이었을 거라 생각한다. 성취의 기쁨과 그토록 재수없었던 민석이 코를 납작하게 해주기도 했으니까. 한눈에 반하는 사랑이라는 건 스스로에게 씌워놓은 환상이야. 어쩌면 그 환상을 더 사랑하는 것인지도 모르고 말이지. 만일 잘되어서 사귀게 되었더라도 넌 네가 그애한테 씌워놓은 환상 때문에 나중에 엄청 실망했을 거야. - 박현욱, <새는> 253p 은호와 현주는 나중에 이 시기를 돌이켜보며 어떤 생각을 할까? 앞으로 하게 될 모든 사랑의 출발점이었던 이 시기는 그들에겐 어떻게 기억될지 궁금하다. 그들의 이야기를 보는 내내 봄볕 아래 있는 것 같았다. 처음이란 단어와 설렘으로 가득한 이 시기, 꼭 금방이라도 꽃이 필 것 같이 팽팽한 꽃망울 바라보는 기분이었다. |
| [말죽거리 잔혹사]나 [품행 제로] 등 80년대 고교생의 삶을 다룬 영화들은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우리 문학에서 ''청소년 소설'', ''성장 소설''로 분류될 수 있는 작품이 얼마나 될까?라는 물음을 던졌을 때 그 대답은 쉽지 않을 것이다. 짧은 독서 경험에서인지 20대 대학생들의 사회화나 내면적 성장에 대한 작품들은 많아도 십대 청소년들의 삶을 가볍지 않게, 교훈을 앞세우지 않고 다룬 작품들을 퍼뜩 떠오르지 않는다. [아내가 결혼했다]로 베스트셀러 작가 대열에 합류한 박현욱의 전작 [새는]은 386세대의 고등학생 시절을 애틋하고 발랄하게 그려낸 작품이다. 내 바로 윗세대들의 고등학교 시절-[새는]이 다루고 있는 시절은 바로 내가 초등학교 고학년, 중학교 시절을 보낸 그 시기와 바로 겹친다-을 박물지처럼 묘사한다. 기타, 독서토론회, 학교 축제, 나이키와 죠다쉬 청바지. 나의 고등학교 시절과 살짝 겹치기도 하고 조금은 뒤떨어진 유행이기도 했던 그 시절의 애틋함과 어쩔 수 없음이 마음을 때린다. ''현주''같은 여성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호감을 가지고 있는 사람에게 도움이 되면서 본인 또한 함께 자라는 사람. 부담을 주지 않으면서 알게 모르게 지탱이 되는 사람. [새는]에 등장한 인물 중 가장 긍정적인 인물. 맘에 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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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처럼 바삐 돌아가는 세상에 이 무슨 내용인지... 처음 박현욱의 신작 소식을 접했을 때는 전작 <동정 없는="" 세상="">을 떠올리며 그처럼 경쾌하고 신나는 요새 아이들의 이야기를 기대했었다. 전작의 유쾌한 기억이 마음에 들었었고, 쉬운 언어로 만들어내는 묘한 매력에 빠져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박현욱이 다시금 성장 소설을 써냈다고 하자 전작의 주인공인 준호와 서영의 이미지에서 크게 탈피하지 않는 인물들이 등장할 꺼라고 생각헀었다. 그런 내 기대는 첫장을 펼치면서부터 완벽하게 깨어졌다. 뜬금없이 오래된 LP음반 그림이 그려져 있고 이게 무슨 음반이라도 되는 듯이 오래된 옛노래의 제목들이 소제목처럼 떡하니 붙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인지 기대와는 다른 약간의 호기심이 발동했다. 물론 전작의 준호와는 다르겠지만 이 작품 속의 은호 역시 평범한 고등학생은 아니었다. 공부는 지지리도 못하지만 어느날 수돗가에서 만난 은수라는 여학생에게 반한 후부터 은호가 보여준 행동은 정성을 벗어나서 거의 초인 기질에 가까웠다. 어떻게든 은수에게 잘 보이겠다는 일념 하나로 클래식 기타를 배우다 점점 그 속에 빠져들어 결국엔 클래식 기타 하나로 은수의 관심과 학교 전체의 관심을 받게 된다는 내용은 웃음을 벗어나 감동적이기까지 했다.
그런 오기로 뭘 못하냐 싶은 마당에 은호가 다시 도전한 대상은 책이었다. 은수가 속해있는 독서 동호회에 가입하고 그녀에게 말이라도 붙여보기 위해 죽어라 책을 파는 은호의 순진한 모습에 웃음이 터져 나왔다. 게다가 독서 동호회에서 할 말을 연습하지만 필생의 라이벌인 모범생 녀석에게 짓밟힌 뒤 친구 현주의 도움으로 그녀석에게 복수하는 장면은 유쾌 상쾌 통쾌 그 자체였다. 그리고 이제는 됐다꾸나 싶어서 고백한 은수에게 듣는 대답은 뻔하디 뻔한 핑계인 대학간 후에 생각해보자는 것이었다. 그리고 믿어지지 않게 은호는 죽어라 공부해서 그녀 수준의 대학에 덜컥 합격하게 된다. 어찌 보면 허황되기 그지 없는 만화같은 이야기지만 항상 경쾌한 필체로 진행된 이 이야기에 감동을 심어준 것은 후반부의 이야기이다. 대학 합격 후에 최후로 들은 은수의 대답이 거절임을 안 직후에 은호는 졸업식에도 불참한 채 담배와 술에 빠져 살게 된다.
그런 은호를 건저넨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자신의 기타 친구이자 과외 선생님 노릇을 한 현주였다. 이야기를 처음으로 되돌려 현주가 처음 은호를 만나던 장면이 등장하고 그때부터 현주가 은호를 좋아했다는 사실이 소설의 맨 끝에서야 밝혀지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둘은 그냥 우정에 머무르고 만다. 아니였다면 정말 그렇고 그런 청춘소설에 머물 수 있었는데 작가는 그 함정을 교묘히 빠져나가 이 유쾌한 소설에 깊이를 남겨 준다. 물론 지금과는 다른 여러 상표들과 프로야구 경기들, 야구 선수들의 이야기가 잔재미를 던져 준다. 그러나 때로는 이 이야기들이 본편의 즐거움을 육박할 지경에 이른다. 지금은 생소하게 느껴지는 상표들과 아이들의 관심사, 그리고 야구경기에 목숨거는 사람들, 낯선 노래 제목들... 말 그대로 80년대로 되돌아간 기분을 느끼게 해주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이 재미난 소설이 나는 마냥 즐겁지만은 않다 요즘 아이들에겐 존재감조차 없는 송창식과, 이제는 탈렌트로 인식된 김창완의 노래제목을 빌려와 마치 시간의 구성대로 흘러가는 음반처럼 소설을 구상해낸 작가의 의도가 보였기 때문이었다. 추억이 아름답다는 거, 당시 아이들이 순수했다는 거, 그래서 그때가 그립다는 걸 알 수는 있는데... 그게 뭐 어쨌다는 건데? 라는 딴지가 계속 걸고 싶어지는 건 왜일까? 그래도 이 소설은 참 재미있다. 재미를 얻기 위해 소설을 읽는 분들이라면, 옛 추억을 더듬고 싶은 분들이라면 200% 만족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왕이면 이 작가의 전작과 비교해서 읽어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그리고 청승스럽긴 하지만 소설 속 소제목으로 쓰여진 송창식과 김창완의 음악도 찾아 들어봤으면 좋겠다. 무라카미 하루키나 무라카미 류가 잘 쓰는 이 방법을 우리의 작가라고 못 쓸 법은 없다. 그래서 당시의 세계 속으로 빠져 보는 것도 좋은 독서법이 될 것이다. 그런데 정말 은호는 천재였을까??? [인상깊은구절] 스토리 자체를 음반으로 구성하고 거기에 각각의 노래제목을 소제목처럼 가져다 쓴 의도 자체가 인상적이었다. 그외의 작품 속의 새의 의미도 참...동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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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이라고 하지만 읽는 사람에 따라
공감을 일으킬 수도 있고 가벼울 수 있고 무거울 수 있고 향수를 일으킬 수 있고
페이지를 날리며 읽을 수도 있는 책이다.
이 책의 뒤에서 소설에 대한 해설이 나와있는데 역시 이걸 읽고 나면 내 글을 한심해
지고 그 잘난 철학공부를 해서 나는 그 짜증나는 현학적 용어를 쓰지 않고 글을 쓰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나는 내 나이인 열 아홉에 맞지 않게 이 책의 내용들에 대해서 친근함을 느낀다.
아마 이건 내가 근 10년만에 확 바뀌어버린 지방 김해에서 살아왔기 때문이고
아주 어린나이에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 이런 소설들이나 개인 수필들을
많이 읽어 봤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과외가 금지되고 교복, 두발 자유화가 이루어지던 시절, 사실 고등학생 선에서는
공감대가 그리 다를게 없다. 우리는 과목수가 17과목에서 7과목으로 줄어든 것 뿐이고
교육에 있어서 큰 진전은 없는 세상인 것 같다.
386세대가 살아온 시절을 지켜보면 사실 우리와 다를 것이 없다.
다만 그때는 지금보다 야구가 더 유행했었고 PC방이 없었고 그때도 당신들도 담배를 피고
술을 마시고 방황도 했었다는 것.
주인공을 무엇으로 규정해야 할지는 모호하다. 그는 잠재력이 뛰어난 인간임에는 분명하다.
하지만 그가 생각하고 목표하는 것은 사실 유치하고 목적은 단순하지만 결과는 항상 그것을
뛰어넘는다.
그리고 이 소설을 잘못하면 멍청이들의 환상이라고 불리게 만들지도 모를 같은 또래의 조력자.
사실 그녀가 없었으면 주인공은 기타를 치다가 언젠가는 그만두고 다시 평범함, 혹은 그 밑에서
살아야 할 것이다. 평강공주의 설화가 딱 그 말이다. 하지만 이게 현실로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에
슬프다.
주인공은 기타를 치다, 독서를 하다, 공부를 하게 된다. 그렇게 옮겨가는 과정은 단순하게
좋아하는 여자의 관심을 끌기 위해서다. 그따위 단순한 목표가 뭐냐라고 생각되어도 우리들도
다를 것이 없다. 우리들이 행하는 대부분의 행위들은 그 목적이 지극이 단순하고 유치하다.
열정이라는 건 뭔가를 하기 위해서 일차적으로 부여될 수 있지만 뭔가를 해서 그 뭔가로 인해
뭔가를 하는 이차적인 단계로도 부여될 수 있을 거다. 주인공은 그런 단계로 노력을 했고
그 결과 단기간에 수면 아래에서 하늘로 솟을 수 있었다.
소설의 구성은 한 장마다 송창식, 산울림의 노래를 하나씩 담는데 해설에서는 그 장과 관련이
있다고 하지만 나는 그것까지는 알지 못하겠다.
이번에도 나에게는 그냥 모처럼 좋은 책이었다. |
| Alles hat seine Zeit! - 존재하는 모든 것에는 제각기 다 자신의 시절이 있다. 책의 어느 부분인가에 나오는 독일어 한 토막이다. 소설은 이 말처럼 존재하는 우리들의 어느 한 시절, 그러니까 언젠가 영화 <와이키키 브라더스="">에서 인생의 하이라이트라고 명명하기도 했던 삶의 황금기를(그것이 황금기였다는 것을 알기 위해서 또다시 많은 시간이 흘러야 한다는 이율배반적인 상황에도 불구하고 돌이켜보면 거개가 황금기라는 의견으로 귀결되는 그 시절) 축약해 놓고 있다. 성장 소설이라는 패턴을 전작에 이어 두 번째 소설에서도 유지하고 있는 박현욱은 꽤나 순발력있는 묘사와 재기발랄한 인용을 통해(이번 책에서는 한국의 프로야구, 그리고 최동원이라는 야구 선수에 대한 내용을 중심으로), 삶의 축약이란 이런 것이다, 라고 보여주고 있다. 소설 속의 주요 인물은 은호, 은수, 호철, 현주이다. 이제 막 고등학교에 입학한 은호는 있는 듯 없는 듯한, 대부분의 고등학생들과 마찬가지로 별다른 생의 낙이라고는 찾아 볼 수 없는 평범한 학생이다. 그런 은호에게는 호철이라는 느시시하게 웃는 친구가 하나 있을 뿐 달리 친구들도 없다. 하지만 어느날 은호가 은수라는 같은 학년의 여자 아이를 발견하면서 삶이 달라지기 시작한다. 일종의 갈림길이거나 발견되지 않았던 숨은 길의 도래와도 같이 나타난 은수와의 관계 진전을 위해 나는 먼저 기타를 배우기 시작한다. 그리고 학교 축제 기간에 멋진 기타 연주를 선보이게 된다. 다음에는 학교 문학반으로의 진입. 애초에 책이라고는 모르고 지내던 나는 도서관을 드나들며 책을 읽기 시작한다. 우연인지 이러한 은호 변화의 전과정에 현주라는 여자 아이가 끼어든다. 그러니까 기타를 배우러 간 곳에서 만났던 현주는 도서관에서도 만나고, 이후 은호가 공부를 하려고 맘을 먹은 이후(이후 최하위권을 맴돌던 은호의 성적은 최상위권으로 발돋움한다)에는 학습 도우미의 역할까지도 담당한다. 그래서 은호는 은수의 남자 친구 자리를 꿰차게 되었냐고? 물론 은수는 노, 라고 단호하게 말함으로써 고등학교 삼년내내 진행된 은호의 눈물겨운 노력을 수포로 돌린다. 하지만 그렇다고해서 은호가 낙담할 필요는 없다. 어쨌든 덕분에 그 지옥같은 고등학교 삼년을 무난히, 아니 너무나 잘 통과하게 되었으니 말이다. 과거를 돌아보는 행위를 나 또한 꽤 즐기는 편이다. 고등학교에 진학하여 첫 번째 맞이하는 수업 시간의 그 경쾌한 긴장감을 고스란히 떠올리는 일 따위를 하기에는 역부족이지만, 변태에 가까웠던 선생님과 개학하고 한달을 넘기지 못해 자실로 생을 마감했던 우울한 급우, 플레이보이지로 영어 공부를 하던 목사 아들, 캐나다로 유학을 갈 예정이라는 거짓말을 삼년내내 입에 달고 살았던 허풍쟁이, 도와 미와 솔만을 이용해서 노래 한곡을 불렀던 우탕(비우자에 끓일탕자라고 우기던)이라는 별명의 친구, 다리의 곡선을 유감없이 보여주는 달라붙는 청바지에 기타를 매고 다니던 친구(요즘도 적잖이 술친구인)까지... 여기에 서점 언니의 동생이었으며 내 생애 첫 번째 데이트의 동행이 되어 주었던, 아직까지도 친구로 남아 있는 여자 아이, 첫 번째 키스의 상대가 되어 주었던, 이후 지난하고 험하게만 생의 활로를 찾으려다 어느날 막연하게 사라져버린 여자 아이, 등교를 할 때마다 저만치 이십 미터쯤 앞을 걸어가던 두어 학년 아래로 짐작되었던 여자 아이, 그리고 바로 앞 동에서 살면서 내 애간장을 태웠던 금보라(지금은 완전히 푼수 아줌마를 트레이드 마크로 삼고 있어서 내 환장하게 거룩한 회상에 초를 치고 있기는 하지만)까지... 돌이켜 황금빛으로 번쩍이지 않는 성장기가 없듯이 성장 소설이 보여주는 도면상의 도시 계획을 읽는 일은 언제나 황홀하기만 하다. 어리지만 섬세한 욕망을 훔쳐보는 일은 언제나 즐거운 작업이다.와이키키> |
![]() 새는 노래하는 의미도 모르면서 자꾸만 노래를 한다. 새는 날아가는 곳도 모르면서 자꾸만 날아간다. 라는 문구로 소개되고 있던 이 책. 뒷표지에 적힌 짤막한 글을 읽다보면 왠지.. 성장소설일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래서 좀 망설여졌다. 헌데.. 책장을 넘기면 등장하는 목차가 눈길을 사로잡았다. 어디선가 많이 본 제목이 담겨있던 목차에는 'track list'라는 타이틀이 붙어있었다. 그 목차는 통기타 반주와 함께 들을 수 있는.. 요즘처럼 허밍만 하기는 민망하니까 대충 단어를 가져다 붙인 노래들 말고, 정말 한편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예전 노래 제목들이었다.
아날로그 시대의 성장소설 박현욱 장편소설 '새는'은 1960년대 중후반에 태어나 1980년대 중후반에 대학을 다녔던, 386 중후반 세대들의 허구적 자서전이다. 1980년대 중반 지방 중소도시의 고등학교. 주인공 은호는 가출한 아버지 때문에 어머니가 가계를 책임지고 있는 가난한 집안의 남학생이다. 반찬은 늘 김치 한 가지, 죠다쉬 청바지에 나이키 운동화는커녕 프로월드컵 운동화 한번 신어보지 못할 정도로 가난한데다 공부는 꼴찌를 다투며 지독한 음치에 내성적인 성격으로 교실에서는 "있어도 그만이고 없어도 그만인 아이"가 바로 은호이다. 집도 부자고 공부도 잘하는 반장 민석, 집은 잘살지만 공부는 지지리 못하는 호철, 집도 가난한데다가 공부마저 못하는 은호와, 얼굴도 예쁘고 집안도 좋으며 교양에 대한 관심도 남다른 두 여학생 은수와 현주, 다섯 명이 이끌어가는 소설의 서사는 은수·은호·현주 사이에 잠재적으로 형성된 연애의 삼각형 구도 위에서 전개된다.
이야기를 끌어가는 사건은 은호의 사랑이다. 체육시간에 우연히 보게 된 은수에게 한눈에 반해버린 은호. 그애의 눈에 띄기 위해 그는 클래식 기타를 배우기로 결심하고, 기타학원에 다니기 위해 신문배달을 한다. 깨어 있는 모든 시간을 기타 연습에 할애하고, 멋진 기타 연주로 학교축제의 대미를 장식하며 1학년을 마친 은호의 다음 선택은 은수가 활동하는 문예반. 2학년 내내 카뮈의 '이방인'이나 카프카의 '성'과 같은 문학작품을 읽는다. 그사이 자신감을 얻은 은호는 은수에게 고백을 해보지만 이어지는 은수의 대답. "우리 이제 고3이야. 대입 시험 끝난 후에 생각해도 늦지 않을 거야." 그렇다면 이제는 공부다. 고3 동안 필사적으로 공부한 은호는 서울의 유명 사립대에 합격한다. 그리고 은수를 만나지만 되돌려 받은 말은 "미안해." 자신을 향한 현주의 도움이 사랑이었음을 알게 되는..
셀 수 없는 소주병과 더불어 사랑과 우정이 엇갈리며, 그렇게 그렇게 한 시절은 마감되는 그 시절 젊은 날의 초상. 이 작품은 그걸 하나의 앨범으로 담아내고 있었다. 물론 그 앨범은 어느 음반가게를 찾아가더라도 지금은 구할 수 없는 앨범이다. 이건 완성되어 나오는 그런 음악 앨범이 아닌.. 좋아하는 곡들을 모아 정성스럽게 테잎에 한곡한곡 녹음해 만들었던, 불과 십수년 전의 일이지만 지금 아이들은 상상할 수 없는(저작권법 위반이란 범죄 행위일테니까.) 수고로움을 겪어내야 만들 수 있는 앨범이다. 마음에 드는 곡들을 선별한 후에 최대한 신경쓰며 한곡한곡 녹음을 해서 듣던 그때의 추억. ![]() 그렇기때문에 박현욱 작가가 작가는 "그 시절의 평범한 풍경을 담아보고 싶었다"고 말하지만, 그의 평범한 기억은 나의 추억과 맞닿아 있었다. 물론.. 그 시절의 평범한 이야기인 것처럼 보이긴 하지만 이 작품이 소설이라는 걸 부인하지는 못하겠다. 특별히 잘하는게 없다고 생각했던 한 고등학생 은호가 첫눈에 반해버린 같은 학년의 은수를 보고 난 뒤, 그녀에게 다가가기 위해 1학년때는 기타, 2학년때는 문학, 3학년때는 공부.. 이 모든걸 거의 완벽하게 소화해냈다는 건 어찌보면 꽤나 진부한 성장 '소설'의 전형이기 때문이다. 배경은 충분히 추억을 떠올리게 했지만, 스토리는.. 완벽한 '소설'일 뿐이었다.
그럼에도 이 작품을 '재미있다'는 느낌으로 읽을 수 있었던 건, 작가가 가진 특이한 재주 덕분이 아닐까 생각한다. 전에 읽었던 '아내와 결혼했다'에서 축구에 대한 풍부한 배경지식을 통해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를 꽤나 유쾌하게 읽을 수 있게 만들었던 작가는 이번엔 야구로 스토리의 진부함을 메우고 있었다. 1982년 개막하면서 우리나라 최고의 스포츠로 자리잡은 야구. 작가는 1980년대 고등학생을 내세운 성장 소설에 야구라는 각본없는 드라마를 배치시켜 놓았다. 물론 이런 이야기만으로 그 진부함을 무마하려했다면, 재미있을 수 없는 그저그런 이야기가 되었을텐데.. 작가는 그 무렵의 문화나 스포츠, 당시에 있음직했던 에피소드와 사건에 그치지 않고, 아련하기만 한 그 시절, 그 때에만 가질 수 있었던 순수하고 애틋한 감성을 함께 담아두고 있었다.
그건 각 장을 구성하고 있던 노래에서 고스란히 전해진다. 그 시절 좋아하는 노래를 한데 모아 녹음할때에.. 아무런 의미가 없는 노래들을 숨죽여가며 녹음한 사람은 없었을 거다. 당연히 은호 역시 그랬을거다. 당연히 그 사연을 독자가 모두 알 수는 없다. 은호에게 그 곡이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는 그를 탄생시킨 작가만이 알고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이 노래들과 함께 떠올릴 수 있는 아련한 정서는, 추억으로 오롯이 남아있기에 독자가 공감할 수 있는 것이다.
책을 다 읽고 나서야 알았다. 2006년 베스트극장에서 이 작품이 단편드라마로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이 포스트안의 사진들은 그때의 드라마 장면들이다. 교복을 입은 학생들.. 그 시절을 겪어내고 그만큼의 나이를 더 먹어가는 우리들. 언제까지나 추억이란 명찰을 달고 마음에 남아있을 그 아련한 정서가 함께한 작품이었다.. |
| 80년대를 관통한 세대들의 잊을 수 없는 추억담. 브랜드와 상품으로 기억되는 추억이 그것인데, 일테면 이런 것들. 50원 넣고 하루 종일, 갤러그 백만 점 돌파, 꼬리가 길게 날린 나이키 운동화. 나이키를 흉내낸, 머리가 꼬인 나이스 운동화, 나이키를 못 사는 대신 사 신었던 월드컵, 최악의 경우 말표 운동화. 청바지 주머니에 그려진, 갈퀴 날리는 말이 그려져 있던 죠다쉬 청바지, 길고 날렵한 뿔이 그려진 써지오 바렌테, 지금은 없어진.... 살마다 색이 다르게 칠해져 있던 아놀드 파마 카디건, 역시, 지금은 없어진 빼빼로네나 챌린저, 같은 상표들. 그리고 통키타로 연주되던 세미 클래식, 우등생들이 모였던 문예반, 어설픈 축제..... 교복 자율화와 두발 자유화, 이후, 다시 교복. 지난 시간들이란 이런 것이다. 구체적으로 떠오르는 것, 어느 날 문득, 내가 입은 청바지 뒷주머니에 뭐가 그려져 있을까, 궁금한 것, 그런 것이다. 충실한 80년대 추억담. 거기에다가 아련한 사랑도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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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을 읽었다기보다는 그저 옛생각을 할 수 있는 것들을 하나둘씩 곱씹어봤다고나 할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