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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의 모델인 체사레 보르자와 그의 누이동생인 루크레치아 보르자에 관한 팩션이다. 팩션이다 보니 역사적 사실성에 작가의 풍부한 상상력이 적절히 융합되어 전개되고 있다. <거울아 거울아>가 일반 팩션에 비해서 좀 다른 특색이 있는 점은 다름아닌 소설의 전체적인 구도가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한 동화의 줄거리를 패러디했다는 점이다. 독일의 유명 동화작가인 그림형제의 <백설공주와 일곱난장이>을 모티브로 해서 소설의 전체적인 구도를 끌고 가고 있다.
소설의 초반부는 상당히 지루하다는 느낌마저 준다. 16세기의 이탈리아를 주무대로 등장하는 인물들의 생소함과 지역적인 상상력의 부재로 인해 다소 책읽기의 진도가 빠르게 진해되지 않는다. 그렇지만 작가는 군데 군데에 몇가지 보물찾기를 뿌려 놓은듯 하다. 주인공 비안카와 주무대인 몬테피오레의 목가적인 풍경과 전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인물들의 생동감은 벌써 책을 읽는 독자들로 하여금 후반부의 결말을 재촉이라도 하듯이 개개인의 인물에 빠져들게 한다. 특히 눈치 빠른 독자들 이라면 호수속에서 우연히 발견하게 되는 거울을 보면서 대충의 감을 잡을 수 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요소인 거울의 등장은 이야기의 결말 부분에 가서 나오니 속단하기도 힘들다.
특히 체사레 보르자와 그의 동생이자 역대 희대의 악녀로 평가받고 있는 루크레치아의 등장으로 그동안 픽션의 부분이 역사속의 한장면으로 재등장하는 부분에서 독자들은 과연 작가의 의도가 무엇인가에 대한 의구심을 가지게 한다. 판타지 소설속에나 나올법한 성물을 찾아가는 비안카 아버지의 임무나 아버지의 빈자리를 대신하게되는 루크레치아의 전면적인 부각은 서서히 독자들에게 결말에 대한 암시를 보여주고 있기도 하다. 또한 루크레치아는 그녀의 명성에 어울리게 백설공주의 계모 역활을 톡톡히 한다. 대략적으로 이런 줄거리를 봐서는 백설공주와 일곱난장이를 페러디한 정도로 오인받을 소지가 충분히 존재한다.
하지만 이번 소설 <거울아 거울아>에서의 계모 역활을 맡은 루크레치아의 악행은 백설공주의 계모에 비견하면 왠지 악녀로서의 이미지가 많이 퇴색되는 느낌을 자아낸다. 16세기 이탈리아라는 시대적 공간속에서 그녀의 일련의 행동들에 대해서 역사적 당위성마저 부여하는 느낌을 작가는 그리고 있다. 또한 극중 백설공주로 그려지는 비안카에 대한 이미지 또한 미와 선에 대한 막연한 이미지를 없애 버린다.
그러나 이러한 요소들 보다 가장 극적인 주제는 다름 아닌 <거울>에 있다. 거울의 역사는 선사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청동기시대에서 출발된 거울은 지금 우리 주변에 흔희 볼 수 있는 거울의 이미지와는 상당한 차이를 지니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 당시의 거울이 가지고 있는 의미는 부와 권력으로 대변된다. 극소수의 지배층만이 소유할 수 있는 종교적 성물 같은 존재였다. 작가는 거울을 통해서 인간의 깊은곳에 숨어 있는 다양한 심성들을 하나 둘씩 끄집어 내고 있다.
<거울아, 거울아>는 비록 백설공주와 일곱난장이를 패러디한 소설이지만 16세기 이탈리아의 르네상스를 진두지휘했던 보르자 가문이라는 역사적 팩트를 등장시켜 팩트와 픽션사이를 적절하게 오가는 흥미로운 소설이다. 특히 봉건제의 근간을 이루고 있었던 장원제도와 토스카나 지방의 풍경을 아름답게 그린 작품이다. 이탈리아 역사와 고전 동화라는 다소 이질적인 장르을 탁월한 상상력으로 새롭게 그리고 있어 읽는 독자들로 하여금 상상의 나래를 펼치게 할 작품으로 보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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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처음엔 제목 때문에 그저 그랬다. 책을 읽으면서도 직역을 하지 말고 한국판 제목을 따로 정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그러나 그것만 빼면 거의 완벽한 책이다.
내용도 재밌고, 번역도 무난하고, 표지 디자인이나 글씨체나 책 속 디자인도 내용과 잘 어울린다.
처음 읽는 그레고리 머과이어는, 저자의 다른 작품들이 궁금해지게 만든다. 더군다나 보르자 가를 전면에 내세워 단지 '소설'이 아니라 '역사'를 읽는 재미도 있다. 보르자 가의 체사레나 루크레치아뿐 아니라 마키아벨리 등도 등장할 뿐 아니라 종교개혁 등도 언급된다.
그러니깐 역사 소설이나 팩션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너무 재밌게 읽을 수 있는 작품이라는 점도 장점이다.
거기다가 백설공주 패러디. 그렇다고 너무 뻔한 패러디가 아니라, 기본적으로 '백설공주'의 뼈대를 가지고 오기는 했지만 다양한 상징들을 통해 이야기를 풍성하게 만들었다.
여러모로 읽을 맛이 풍부한 작품이다.
성경을 인용한 부분은 적당히 지적인 부분을 만족시켜주고, 장의 앞이나 뒤에서 각 장을 열거나 닫는 시들도 인상적이다. 꼭 이러한 장치가 있어서가 아니라 작품 전체가 마치 시처럼 읽힌다.
곳곳에 있는 잠언같은 유익한 지혜의 말들도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다. 저자가 창조해낸 난쟁이 캐릭터는 너무 사랑스럽다. 아니, 어쩜 이렇게 멋진 친구들이!!!(생각같아서는 느낌표를 백만 개는 붙여주고 싶다.)
사람은 누구나 다 자기만의 거울이 필요한 게 아닐까? 책을 읽고 나서 든 생각.
암튼 재미나고 특이한 책이니만큼 조금은 색다르게 리뷰를 써보려고 한다. 내가 재밌게 읽었던 챕터를 표시하고, 거기에 대한 감상을 조금씩 적는 거다. 색다른 작품에 어울리는 색다른 리뷰 시도다. ^^
차례
몬테피오레의 지붕 체사레
48쪽 주를 보면 체사레에 대한 자세한 설명이 나와 있다. 따라서 이 사람에 대한 배경지식이 없어도 글을 읽는데 지장은 없다. 마키아벨리가 『군주론』에서 이상적인 군주의 본보기로 묘사한 인물인데, 사실 이 작품에서는 전면에 부각되기는 하지만 엄밀한 의미의 주인공은 아니다.
루크레치아는 '당대의 꽃, 로마의 백합'이라고 불렸다고 한다. 체사레의 여동생이자 애인이었다고 하는데, 이 작품의 핵심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사람은 많은 작품의 소재가 되었는데. 참고로 도니제티의 루크레치아 보르지아(Donizetti: Lucrezia Borgia : Bonynge)가 있다. 기회가 되면 들어봐도 좋겠다. 이 작품에서 가장 입체적이고 다중적인 성격을 가진 사람인데, 실제 역사에서의 평가는 좀 다르다. 체사레와 루크레치아는 역사적 인물이기는 하지만 저자에 의해 가공된 인물이라는 점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겠다.
나는 교황 아버지와 잔 여자다 소녀의 가슴에서 심장을 도려내어 가져와 이 부분에서는 루크레치아의 일화가 인상적이다. 루크레치아라는 인물의 성격을 극적으로 보여준다. '모성애'라는 것에 대해서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해주고.
암살자와의 대한 일곱
개인적으로 가장 압권이라고 평가하는 장이다. 리뷰의 제목도 바로 이 장에서 따왔다. 오죽하면 읽는 내내 '쵝오', '쵝오'하면서 혼자 읽으면서도 엄지 손가락을 번쩍 번쩍 들었다. 작가의 기발함이 가장 돋보이는 장이다. 너무 사랑스럽고.
사과는 에덴 동산에 있던 지혜의 나무의 과실인데, 사실 이 사과는 작품에서 참 많은 일을 한다. 아버지 비첸테는 딸 비안카를 위해 체사레의 명령에 순종할 수밖에 없고, 따라서 죽을 고비를 넘겨가며 사과를 가져오지만, 역설적이게도 이 사과로 인해 딸이 죽게 되는 것이다. 생명의 상징인 사과가 죽음에 이르게 한다. 고대 비극을 연상케 한다.
거울아 거울아
루크레치아, 거울에서 비안카를 보다!
탕자의 귀환
이 장에서 나오는 난쟁이족의 특징들 역시 저자의 기발함을 여실히 보여준다. 이 작품에서 가장 사랑스러운 캐릭터는 단연 일곱 난쟁이(아니, 여덟 난쟁이)이다. 이렇게 멋진 캐릭터를 창조해내다니. 천재다. 와우!
빈 터의 인물
언제나 늘 삶에는 의외성이 존재한다. 주목받지 못했던 거위 소년의 정체가 드러나다!
영화에서도 주인공인 줄 알았던 사람이 갑자기 죽여버리면 참 허무하다. 이 작품의 경우 체사레나 비첸테의 역할이 별로 없다는 게 의외라면 의외다.
사과 두 입
난쟁이들이 거울을 찾으러 몬테피오레에 온다. 거울의 상징성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거울이 변해서 유리가 된다. 수은이 없어진 유리 뿐인 거울은 방패가 되었다가 비안카의 관뚜껑이 된다.
시신을 찾은 건 아빠인 비첸테이다. 그렇다면 뭐야? 백설공주의 왕자님이 아빠인 거야? 궁금하면 책을 계속 읽어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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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그레고리 머과이어의 전작 <위키드>의 평이 대단히 좋아서 솔직히 기대를 많이 했었다. 게다가 역사적으로도 대단히 매력적인 인물인 체사레 보르자와 그의 여동생 루크레치아가 등장한다고 해서 시대물을 좋아하는 내 구미를 많이 당겼다.
이탈리아판 <백설공주>라는 설명처럼 구성이나 배경, 소재들은 좋았으나 주인공에게서 별다른 매력을 찾아볼 수 없었기 때문에 책속에 완전히 몰입할 수는 없었다. 체사레 보르자는 거의 엑스트라 수준으로 등장하고, 백설공주인 비안카는 개성도 의지도 없는 그냥 여자아이에 불과하다. 얼음처럼 냉혹한 루크레치아만이 입체적인 성격을 보여주기는 하지만, 비안카를 죽일려는 살인 충동의 이유는 설득력이 약했다.
보통 역사속의 인물들이 소설에 등장할때는 더욱 매력적인 모습으로 나타나는데, 루크레치아는 우울증으로 고통받는 불쌍한 아낙네에 불과하다. 문학적 측면에서 볼때 <백설공주>를 패러디한 작가의 역량을 느낄 수는 있지만 이야기 자체에 깊은 감동이나 매력을 느끼지 못하는 것은 아마 그래서 일 것이다. 난 문학적 소양을 갖추지 못해서 패러디 문학의 진수가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 다만 내가 영어를 대단히 잘해서 원서로 읽었다면 <거울아, 거울아>에 대한 반응이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난쟁이들에 관한 부분은 대단히 신선했다.
바로크 문체와 그로테스크한 필치로라고 해서 조금은 딱딱하고 지루할 것이라고 생각했으나 쉽게 쉽게 페이지가 잘 넘어간다는 큰 장점이 있다. 그리고 역사 속 인물을 백설공주로 패러디하여 심오한 주제를 잘 살렸다. 거울을 통해서 양면성을 표현한 작가의 상상력을 높이 평가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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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동화를 패러디하여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작가중에 존 세스카와 그레고이 머과이어는 독보적이라고 할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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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팩션 소설은 한마디로 독특하고 몽환적이어서 우리가 익숙하고 평이하게 접해온 일반 소설들과 다르기에 완독하는데 어려운 점이 있다. 그래서 인스턴트식 책읽기에 익숙한 이들에게는 중간에 접을 수도 있는 책이다. 문체의 독틈함은 이 책은 바로크 문체라 말하는데.. 그것은 아마도 감각적이면서도 그로테스크한 필치와 문학적 은유가 많이 사용되면서 마치 환상의 세계로 안내하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이런 독틈함이 때로는 읽히는 맛이 있기에 완독할 수도 있다는 점이다. 나처럼..ㅎ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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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크스타일의 이탈리아의 문체가 익숙하지 않아서였을까 처음 책을 읽을 때는 정신차리지 못할 정도로 어지럽게 다가왔었다. 독살과 음모로 악명이 높았던 이탈리아의 보르자 가문의 루크레치아를 모델로 하여 인간의 탐욕에 대하여 그려지고 있다. 조용한 행복속에서 딸 비안카와 함께 살던 비첸데에게 어느날 찾아온 손님. 냉혈안 체사래와 매혹적인 루크레치아. 그들은 권력과 사랑을 위하여 비첸데를 찾아와 그의 가족에게 불행을 안겨주게 된다. 루크레치아는 비첸데를 멀리 떠나 보내고 그의 딸 비안카까지 해지려 한다. 그리고 호수에서 건져올린 거울을 향하여 '거울아 거울아 누가 제일 예쁘니?' 를 묻는다. 그러나 거울은 말하지 않는다. 거울은 단어로 이루어진 것이 언어가 아니라 거울만의 언어로 사물을 비추기 때문이었다. 사람들은 보이는 형상에 대하여 많은 집착을 갖는다. 그래서 거울은 거울속을 바라보는 사람 즉 자신의 관점에서 보여진다는 것을 모르고 있다. 그러나 비안카는 루크레치아에게서 도망하여 숲속의 난장이들과 함께 생활을 한다. 동굴속 돌들의 형상을 한 난장들과 소통하는 비안카는 순수함을 잃지 않은 소녀였기에 보이지 않는 형상과의 소통이 이루어진 것은 아닌가 싶다. 그래서 난장이들의 이름 또한 절름발이, 무미, 무심, 쓴맛등 인간에게서 소외된 이름들로 짓지는 않았을까. 백설공주의 순수한 면을 부여 받은 비안카는 어려운 상황속에서 갈등하지만 끝까지 순수함을 잃지 않고 있다. 인간이 버리지 말아야 할 순수함. 그것이 비안카를 통하여 비추어지는 것 같다. 르네상스 시대의 이탈리아라는 배경이 복잡하게 얽혀있어 그런가 쉽게 읽혀지지 않았다. 저자의 의도대로 독자의 입장에서 끌려가는 꼴이 되어 말았다고나 할까. 다시금 읽어 보고 싶은 책으로 하나 더 축가하게되는 책 <거울아 거울아>는 인간의 삶에 대하여 많은 생각을 하게 되는 소설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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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울아 거울아’는 르네상스 이탈리아 보르자 가문의 실존인물 루크레치아를 백설공주 이야기로 패러디한 독창적인 작품이라고 한다. 책장에 첫 페이지에 있는 "이것은 사실이 아니더라도 잘 만들어진 이야기" 라고는 문구처럼 이 책은 등장인물 관점에서 사건을 바라보고 이야기해 나간다. ‘오즈의 마법사’를 ‘위키드’라는 소설로 그리고 ‘백설공주’를 ‘거울아 거울아’라 재탄시킨 소설인 것이다. 어린시절 누구나 읽었던 책인 ‘백설공주’를 모티브로 삼고 있지만 사실 ’백성공주‘가 모티브가 된 책이라고 하기에는 사실 동떨어진 느낌도 있는 것이 사실이다. 작가는 실존 인물이었던 루크레치아를 모델로 삼아 이야기를 해 나가기에 어느 정도 역사적인 바탕도 포함 되어있으며, 실제로 보르자 가는 근친상간, 독살, 간통, 음모, 살인, 미모, 성욕, 쾌팍주의, 친척드용, 교황의 과오 등의 소문으로 악명이 날렸다. 이 책의 주인공은 비안카이지만 실제로 이야기를 이끌어 주며 전개해 나가는 인물은 비안카의 계모역인 바로 루크레치아이다. 그녀는 비안카의 아이같은 심장을 부러워했으며, 순수함, 부모로부터 받은 사랑, 그리고 굳은 의지력을 부러워했다. 그녀 또한 아름다움을 소지한 인물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비안카를 시기, 질투함으로써 루크레치아는 책속에서 가장 큰 피해자이자, 가해자인 것이다. "거울을 단 하나의 정확한 질문, 거울이 신경 쓰는 유일한 질문을 할 수 있는 탈출구로 이용할 수도 있었을 텐데. 내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지금 어떤 사람인지가 아니라 내가 어떤 사람이 될 것인지에 대한 질문 말이다. 거울을 빛나게 하는 빛의 비밀스러운 행동이 실은 다음과 같기 때문이다. 거울에 반사되는 이미지는 언제나 일이 분 정도 진실을 앞서 말한다. 하나의 질문이 만들어지는 동안(예컨대 우리 중에서 누가 가장 예쁘지? 아니면 오늘 내가 눈가 주름을 몇 개나 갖지 않은 척할 수 있지? 아니면 이것이 살인자의 얼굴인가?) 거울은 질문을 받기도 전에 그 답을 알고 있다." '거울은 질문을 받기도 전에 그 답을 알고 있다.‘라는 문구처럼 이 책속에 거울은 모두를 연결시켜주는 매개체이며, 또한 자신을 가장 진실한 모습으로 바라보게 해주는 가장 중요한 물건이기도 하다. ’나는 거울이며, 거울은 나이기도 하다‘와 같은 문구가 이 책속에는 독자를 끊임없이 생각하게 만들어 준다. 이야기를 이끌어 나가는 시각의 변화와 함께 이 책에는 어지러운 부연 설명이나, 불필요한 에피소드는 담고 있지 않다. ’백설공주‘를 모티브로 했기에 동화적 이야기를 꿈꾼다며 그런 생각은 버리라고 말해주고 싶다. 이 책은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내면세계에 대해 질문을 해주고 답을 해주는 책에 가깝다고 말하고 싶다. 어릴 적 누구나 읽었던 환상 같은 동화 이야기가 이렇게 태어날 수 있다는 것에 조금 놀라웠다. 그리고 종소리를 들으면 목욕을 하고 예배당에 기도를 하러 가는 난쟁이 하지만 언제나 가는 사이에 예배는 끝이 나고야 마는 삶 책을 다 읽으면서 나는 거울 통해 나를 보고 내게 질문을 했던 순간이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가 질문을 하기도 전에 이미 답을 알고 있는 거울은 바로 내 자신일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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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처럼 하얀 피부와 핏방울처럼 붉은 입술 그리고 이 창틀처럼 새카만 머리카락을 가진 아이"....가 바로 우리 모두 잘 알고 있는 백설공주다. <백설공주> 이야기는 "옛날 이야기"이다. 오래전부터 입에서 입으로 전해 내려오던 이야기. 그 이야기를 그림 형제가 순화시켜 동화로 만들었고 또다시 디즈니를 거쳐 아이들의 오랜 친구이자 가장 좋아하는 여러 공주 중 한 사람이 된다. 하지만 그 이야기의 변이성으로 인해 <백설공주>는 그림 형제가 순화시키기 전의 형태와 내용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모험을 겪기도 한다. 그 내용은 상징으로 가득해서, 잔혹하게 변하기도 하는 것이다. <<거울아 거울아>>는 <오즈의 마법사>를 <<위키드>>라는 소설로 재탄생시킨 그레고리 머과이어의 <백설공주> 편이다. 책의 첫 장에 "이것은 사실이 아니더라도 잘 만들어진 이야기"라는 문장이 꽤나 의미심장하다. 이 소설 속엔 역사와 허구가, 현실과 판타지가 뒤섞여있기 때문이다. 이야기는 1502년 니콜로 마키아벨리가 <군주론>에서 가장 본받을만한 군주로 인정했다는 체사레 보르자와 그의 여동생 루크레치아 보르자가 소녀와 아버지가 사는 한적한 시골 마을 몬테피오레로 방문하며 시작된다. 되도록 정치에서 가장 멀리 떨어져 "생활"해 오던 소녀의 아버지 비첸테는 오히려 그런 생활을 했기 때문에 체사레 보르자의 명령을 받아 자신의 영토를 떠날 수밖에 없게 된다. 소녀 비안카는 당시 미모와 정치적 음모로 악명높았던 루크레치아의 손에 넘어가게 된다. "나는 루크레치아 보르자를 바라보면서 그녀를 바라보는 나를 인색했다. 나 자신을 인식한 것이다. 나는 아버지 다리 뒤에 숨어 있는 어둡고 뒤틀린 아이였다. 그리고 그녀는 몬테피오레라는 안전지대의 정원에서 소용돌이처럼 타오르는 불길이었다."...67p 소녀 비안카는 어린 나이였음에도 루크레치아를 바라보며 자신을 인식했고 루크레치아는 아직 소녀의 눈부신 빛을 알아보지 못한다. 루크레치아는 자신의 미모와 권력에 당당했고 때문에 자만심에 부풀어있었다. 무엇이든 자신이 원하는대로 하리라는... 하지만 루크레치아의 이 당당함은 시대 흐름과 함께 변한다. 애초부터 루크레치아는 아버지에 의해, 오빠에 의해 정해진 삶을 살 수밖에 없었던 운명의 여인이었고 그녀가 오빠를 사랑하는만큼, 사랑했던만큼 그에게 의존하는 삶이었다. 하지만 소녀는 눈부시다. 소녀는 애초부터 갖고있었던 그녀만의 미모 외에 처녀의 순진함, 순수함, 자신의 삶을 자신의 의지대로 살려고 하는 자유로움, 아버지의 애정을 한몸에 받아온 사랑의 힘을 갖고 있었다. 루크레치아가 소녀를 질투한 것은 소녀의 미모라기보다 바로 이 본성이었다. "아이는 심각하고 진지한 표정을 지었는데, 뭐라 설명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혼란스러움과 호기심이 뒤섞인 표정. 분노와 인내심. 분명한 단순성. 여성스러움이었다. 어쩌면 그 아이가 결코 충분하지 못하다라는 의미가 무엇인지 걱정하지 않는 사람처럼 보여서 그랬을지도 모른다. 아이의 이마에 그런 걱정거리가 없다는 점이 나로서는 이루지도 맞서지도 못할 천상의 아름다움으로 그 아이를 가득 채웠다."...257p 이야기의 초점을 비안카에 맞춘다면 이 이야기는 하염없이 지루하고 늘어지는 이야기가 될지도 모른다. <<거울아 거울아>>는 그 누구의 이야기도 아니다. 그들 모두의 "변화"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가 싶다. 특히, 루크레치아에게 끊임없이 비안카와 연결시켜주고 그들의 소망과 진실을 보여주는 "거울"의 이야기는 아닐지...... "거울을 단 하나의 정확한 질문, 거울이 신경 쓰는 유일한 질문을 할 수 있는 탈출구로 이용할 수도 있었을 텐데. 내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지금 어떤 사람인지가 아니라 내가 어떤 사람이 될 것인지에 대한 질문 말이다. 거울을 빛나게 하는 빛의 비밀스러운 행동이 실은 다음과 같기 때문이다. 거울에 반사되는 이미지는 언제나 일이 분 정도 진실을 앞서 말한다. 하나의 질문이 만들어지는 동안(예컨대 우리 중에서 누가 가장 예쁘지? 아니면 오늘 내가 눈가 주름을 몇 개나 갖지 않은 척할 수 있지? 아니면 이것이 살인자의 얼굴인가?) 거울은 질문을 받기도 전에 그 답을 알고 있다."...325~326p) 거울은... 나 자신, 그대로를 비춰주지만 내가 보고 싶은대로만 보고 내맘대로 해석한다. 진실을 그대로 보여주는 거울을 제대로 보지 않는다. 나 자신과 바로 맞서는 것이 두렵다. 하지만 진실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용기가 필요하다. .... 거울아...... 거울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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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울아 거울아~ 상상 속의 동화에서라면 마녀여왕이 거울을 쳐다보며 이 세상에서 누가 가장 예쁜지를 물어보겠지만, 매일 아침 현관문 옆에 붙어 있는 거울을 한번 스윽 보고 출근을 하는 나는 마음속으로 이렇게 외친다. ‘거울아 거울아~ 얼굴에 밥풀은 안 붙었냐.’ 오늘 아침만 해도 그렇다. 가방을 챙겨 집을 나서기 전 두 살배기 딸을 안아 뽀뽀해주고 신을 신으려는 찰나, 아내가 묻는다. 얼굴에 그게 뭐여. 거울을 보니 밥풀이다. 아이를 안은 순간 아이의 몸에 붙어 있던 밥풀이 내 얼굴에 달라붙은 것이다. 이런~ 하마터면 큰일 날 뻔했다. 거울의 쓰임새란 얼마나 유용한지. 덕분에 오늘 아침에 밥풀을 얼굴에 달고 출근하는 불상사만은 막을 수 있었다. 옷매무새를 단정히 할 때도 좋고, 자동차를 운전할 때 백미러 덕분에 쉬이 운전을 할 수 있다. 그런데 거울이라는 게 요상해서 자꾸 자신의 얼굴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엉뚱한 마음이 드는가 보다. 나야 거울을 보며 나르시즘에 빠질 리가 없지만, 잘난 얼굴을 가진 이는 자아도취 상태에 빠져들고, 못난 얼굴을 가진 이는 견적을 뽑느라 분주하다. 그냥 있는 대로 살면 편할 텐데 자꾸 미의 기준을 들이댄다. 이럴 땐 거울이 문제다. 아수라백작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이러한 거울의 양면성이 상상의 세계에 투영되면 긍정적인 면보다는 대개 부정적인 모습으로 드러난다. 더 정확히 말하면 거울 자체의 문제라기보다는 거울을 이용하는 자들의 문제인 셈이다. 거울을 수도 없이 불러 자신의 미모를 확인하려했던 백설공주의 계모가 대표적이라 할 수 있다. 이는 많은 영화나 애니메이션에 패러디되었는데, 이번엔 독살과 음모로 악명 높았던 이탈리아의 보르자 가문 이야기 속에 투영되었다. 주로 고전의 모티프를 독창적으로 재배치하여 소설화한 그레고리 머과이어에 의해 <거울아 거울아>(민음사, 2009년)라는 이름으로 탄생한 것이다. <거울아 거울아>의 배경이 된 보르자 가문은 칼릭스투스 3세와 알렉산데르 6세를 배출한 15세기 이탈리아 명문가로 근친·쾌락·독설·살인 등으로 악명이 높았다고 한다. 특히 이 소설의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체사레 보르자는 중부 이탈리아를 무자비하게 통일하고 있었고, 그 여동생 루크레치아는 예술 후원자이자 능수능란한 정치 음모가로 유명했다고 한다. 이러한 역사적 사실은 소설 속 캐릭터에도 그대로 반영되었다. 루크레치아는 백설공주를 독살하는 계모 역으로 등장, 그 역을 훌륭히 소화해 내었다. 원래 성격이 소설이 캐릭터와 잘 맞아 떨어진 것이다. 난장이들도 등장하는데, 그렇다면 백설공주 역은 과연 누구? 비첸테 데 네바다의 딸 비안카 데 네바다이다. 보르자 가문의 호의를 입어 몬테피오레의 영주가 된 비첸데는 아내를 잃고 비안카와 살던 중 체사레와 루크레이아의 방문을 받는다. 체사레는 자신의 야욕을 위해 비첸데로 하여금 에덴의 신성한 과일을 가져올 것을 요구하며 비안카를 돌봐주겠다고 한다. 울며 겨자 먹기로 비첸데가 몬테피오레를 떠난 사이 비안카는 성숙한 여인의 자태를 띠게 되고, 전투에 패해 쫓겨 와 있던 체사레는 비안카를 마음에 들어 한다. 그리고 그녀를 이용해 재기를 꿈꾼다. 그러나 오빠인 체사레를 사랑했던 루크레이아가 이를 가만 두지 않는다. <거울아 거울아>의 팜므파탈 루크레이아는 비안카를 죽이는데, 난장이들의 도움으로 다시 살아난 비안카를 훗날 재차 죽이는 극악 무도한 살인을 천연덕스럽게 자행한다. 우리의 불쌍한 백설공주 비안카는 착하디 착해, 변장한 루크레이아에 속아 세 번씩이나 문을 열어 주는 우를 범하고 만 것이다. 처음에는 다른 이야기를 듣는 듯 했지만, 후반부로 갈수록 소설은 백설공주를 닮아 갔다. 소재의 유사성 때문이다. 그러나 내용은 다르게 전개되었다. 특히 거울은 다양한 모습을 보인다. 루도비코 수사가 찾아낸 유물로, 루크레치아의 거울로, 난장이들의 거울로, 비안카의 유리관으로 등장하여 환상을 만들어낸다. 책의 첫 부분에 등장하는 몽환적인 시로부터 출발하여 백설공주 이야기의 패러디가 만들어내는 환상의 세계. 잠시 환상의 거울 속에 빠져 보시길. by 꽃다지, 2009년 8월 13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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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책을 읽다 보면 어떤 부분이 진실인지 어떤 부분이 허구인지 헷갈리는 경우가 종종 있다. 특히 사실이나 실제로 일어난 일을 바탕으로 전개되는 픽션이 첨가되는 부분이나 누구나 아는 이야기를 소재로 이야기를 더욱 흥미롭게 이끌어가는 이야기를 읽을 때면 나도 모르고 갸우뚱거리게 된다. 어디서부터 진실인지 어디서부터 허구인지 짐작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진실과 허구 때문에 이야기는 더욱 재미있다는 것이다.
어릴 적 읽었던 《백설공주와 일곱 난쟁이》 이야기는 모두가 아는 내용이다. 그 동화 속에 등장하는 계모, 왕자, 백설공주, 일곱 난쟁이의 인물로 이야기는 재미있게 진행된다. 그리고 이 동화책을 어릴 때 읽으면서 정말 ‘난쟁이’가 있을까? 라는 고민과 궁금증이 생기기도 했다. 이번에 읽게 된 책은 「거울아 거울아」라는 제목의 책이었다.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백설공주와 일곱 난쟁이》의 모티브로 전개되는 작품이었다. 하지만, 동화와 조금 다른 점이 있다면 계모의 역할로 느껴지는 이 책에서의 주인공 ‘루크레치아’는 어떤 인물인지에 대해 중점을 두고 읽어야 한다는 점이다.
‘비첸테 데 네바다’에게는 딸이 하나 있었다. 딸의 이름은 ‘비안카’였고 아주 예쁜 아이였다. 그는 딸과 함께 지내던 중 생각지도 못한 자들의 방문으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체사레 보르자’와 그의 여동생 ‘루크레치아’였다. 두 사람의 등장으로 암흑의 손길이 드리워지고 이슬람 왕실의 비밀을 이야기한다. 그 비밀은 에덴동산의 지혜의 나무의 가지로 사과 세 개가 달린 성물이라고 한다. 그리고 중동 어느 수도원의 창고에 ‘지혜의 나뭇가지’를 구해오라는 것이었다. ‘비첸테’는 결국 그 나뭇가지를 구하기 위해 길을 떠난다. 자신의 딸 ‘비안카’를 뒤로하고 말이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비안카’는 소녀로 성큼 성장해있었다. 그 소녀를 ‘체사레 보르자’가 순수한 아름다움에 반해버린다. 그 광경을 보고 있던 여동생 ‘루크레치아’는 질투와 모욕감에 사냥꾼을 시켜서 ‘비안카’를 죽이라고 명령을 내리지만, 사냥꾼은 사슴의 심장을 가지고 돌아온다. 그리고 지금까지의 일을 몰래 지켜보고 있던 누군가가 있었다. 바로 ‘돌’들이었다. ‘돌’은 난쟁이였고 그들로 말미암아 이야기는 더욱 재미있게 흘러간다.
이 책을 읽으면서 허구일까? 진실일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실제로 ‘보르자 가문’이 있었으며, 15세기 교황을 두 명이나 선출했다. 그리고 살인, 독살, 근친으로 유명했기에 이 책에서도 그런 이야기가 등장하기에 책을 읽으면서 진실과 허구를 가늠하기가 어려웠다. 하지만, 고전을 모티브로 누구나 아는 《백설공주와 일곱 난쟁이》를 새롭게 재탄생시킨 이야기라는 점에서 놀랍기도 하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그리고 질투와 권력, 희생자와 음모자는 누구인지 이 책을 읽으면서 생각하게 하였고, 책에서 등장하는 ‘거울’의 진실은 과연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그리고 어떤 진실과 어떤 모습을 비추고 있는지 궁금하다면 「거울아 거울아」를 통해서 상상의 세계로 빠져보라고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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