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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이문의 [환경철학]이 전문도서라면 최종덕의 [함께하는 환경철학]은 대중을 향한 교양도서같다.177쪽에 [환경운동은 자연을 바라보는 세계관의 변화에서 시작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환경운동은 환경철학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환경운동은 아주 시급한 실천의 문제이기 때문에 형이상학적인 철학은 필요 없습니다.] 라는 저자의 주장이 나온다. 그의 환경철학은 박이문과 달리 실천론적인 접근에 있다. 하지만, 환경철학의 개념분석에서부터 다른 철학과 어떻게 다른지, 그로부터 얻을 수 있는 의식적 담론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이 있는지 발견하기 어려워 아쉬웠다. 그림과 짧은 여러 주장들이 어우러져 남녀노소 누구나 어렵게 느껴질 수 있는 [환경철학]에 문이나마 열어볼 수 있게 하는 것이 그나마 다행이 아닌가 싶다. 물론, 그의 저서 취지가 [함께하는] 환경철학 앞에 붙여 있기 때문에 너무 많은 기대를 가졌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총 3 부 중에 1부의 [마음]과 2부의 [사회]에 너무 많은 분량과 주장을 담고 있기에 3부의 [철학]이 빈약한 게 사실이다. 조금 더 깊이 있는 철학적 분석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인상깊은구절] 자전거가 앞으로 가고(운동) 있지 않다면 서 있을 수 없듯이, 운동하는 그 자체가 자연의 본래 모습입니다. 정지된 자전거는 사실 운동하는 자전거를 사진으로 찍은 한 컷일 뿐입니다. 자전거는 그냥 계속 가고 있는 것이지만 서구의 기하학적 이성은 움직이는 자전거를 사진으로 찍어 그 사진의 컷을 모아 자전거의 운동을 설명하는 것과 같습니다. 서구의 이성은 자연을 미분화시키고 그 미분화된 단위들을 다시 모아 자연이라고 말하며 이런 작업을 하는 것이 바로 자연과학입니다. 서구의 운동학은 이성으로 다시 만든 정지의 실체론을 상정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동양의 운동학은 정지가 아닌 역동성의 운동학입니다. 그런 이유 때문에 동양에서는 서구처럼 자연과학이 발전하지 않았다는 분석도 가능합니다. 서구에서 자연을 미분화시켜 대상화하는 서구의 이성이 있었기 때문에 과학이 발전하고 산업혁명이 이루어졌으며 정보화시대가 되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이제 공장의 굴뚝이 하늘을 찌르고 화학물질의 먹구름이 터지고 우리를 둘러싼 자연은 인간의 오만함에 깊은 신음을 하고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