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1년 11월 9일, 프랑스의 전 매체에서는 프랑스인은 아니었지만 프랑스 최고의 가수이자 영화배우인 이브 몽땅의 죽음을 애도하면서, 모든 정규방송을 중단하고 그의 대표적인 영화와 샹송 ‘고엽’을 들려주었다.
가을만 되면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샹송이, 듣는 이로 하여금 그의 저음의 음률이 어우러져 운치를 극대화 시키는 바로 이브 몽땅의 ‘고엽’인 것이다.
1921년 10월 13일 이보 리비(이브 몽땅)는 이탈리아 토스카나 지방의 가난한 일가의 셋째로 태어났다. 그리고 그 해 이탈리아 공산당이 창설되던 해 당원이 된 아버지 때문에 1924년 그의 가족은 프랑스 카뷔셀로 이사를갔고 곧 귀화를 했다. 많은 이들이 몽땅을 프랑스인으로 알고 있지만 사실 그는 이탈리아인인 것이다.
프랑스에서 납공장과 마르세유시에서 나오는 쓰레기와 도살장 등으로 사방에서 악취가 풍겨나와 환경이 좋지 않은 지역에서 그는 어린 시절을 보낸다. 그 곳에서는 그 당시 많은 아이들이 죽어 갔는데 후에 알고 보니 그 이유가 오염된 물을 마신 까닭이라고 한다. 그리고 어려운 가정환경으로 인해 11세까지 학교를 다니고 돈벌이를 해야 했던 그는 공장에 다니기도 하고 누나의 미용실에서 보조를 하기로 한다.
몽땅은 1938년 무대에 올라 점차 가수 생활 시작한다. 당시 19세의 나이에 언론에서 이브몽땅에 대해 거론하고 점차 스타 대열에 올라간다. 그 후 히틀러가 소련을 침공하는 등 전쟁이 있었지만 전쟁과 상관없이 차츰 몽땅의 가수로서 그의 신분은 올라간다.
대중적이면서도 시적인 레퍼토리와 뮤직홀 무대에서의 그의 노래는 사람들의 마음을 끌어들인다. 주위 사람들의 도움이 있었고 그의 운도 꽤 작용했다. 그리고 그때부터 그는 가수로서가 아닌 한 순수하고 매력적인 남자의 모습으로 여러 여심을 사로 잡기도 했다. 그랬다. 그는 가수, 영화배우로도 유명했지만 특히 여배우들과의 스캔들도 유명했다. 에티드 피아프부터 마릴린 먼로, 셜리 맥클레인, 카트린 드뇌브와 평생 함께한 부인인 시몬 시뇨레까지... 하지만 그는 언제나 말한다. 내 인생의 진정한 위안을 얻은 여인은 시몬 뿐이었다고......
수줍음이 많았던 그가 가수가 됐다. 후에 역시 수줍을 많이 탔던 시몬 시뇨레는 이렇게 말한다.
“수줍음을 많이 탄다는 것은 오만함과 자만심이 많다는 거에요. 스스로를 남들보다 한 수 위에 놓고 생각하고, 남들이 자기를 이해하지 못한다고 믿는 거예요.”-본문 50p
교양 있는 지식인이었던 미모의 영화배우 시몬과 학교도 제대로 다니지 못했던 몽땅은 어떻게 그 많은 세월을 함께 했을까? 수준차이가 날만도 했지만 몽땅에게는 눈에 보이는 걸 그대로 말할 수 있는 순수와 자유가 있었다. 많이 배우진 않았지만 작가 아서 밀러, 화가 피카소, 철학자 샤르트르와 끊임없이 교감했고 반전운동과 핵실험 반대운동의 선봉에 나선 이유였다. 공산당 당원이었던 몽땅은, 훗날 우익으로 전향하면서 좌익사상에 대해 비판을 가하기도 한다. 특히 프랑스의 지식인들 사이에서 인기가 높아, 한때 대통령 후보로 거론될 정도였지만 그는 정치가의 길을 정중히 고사한다.
그리고 1959년 몽땅은 프랑스에서 미국으로 자신의 무대를 옮긴다. 브로드웨이, 로스앤젤리스, 샌프란시스코, 그리고 헐리우드 영화에까지 출연하기에 이른다. 이탈리아 빈민가의 소년이었던 그가 헐리우드를 배경으로 자신을 전 세계에 알리게 된 것이다. 그리고 그는 헐리우드 첫 작품 <사랑합시다>의 여주인공. 세기의 연인 마릴린 먼로와 연인이 되기까지 한다. 짧은 시간 동안 주체할 수 없는 감정으로 사랑을 경험했던 이들은 그러나 두 사람 모두 가정이 있었다. 그 당시 시몬은 미국에 없었다. 후에 마릴린 먼로와의 염문을 보고 시몬은 “마릴린 먼로가 품에 안겨 있는데 무감각할 남자가 어디 그리 많겠어요?”라고 말함으로써 그를 공경에서 끌어내고 더불어 그들의 가정과 몽땅과의 관계도 지켜낸다.
후에 몽땅은 아내 시몬에 대해 이렇게 회상한다.
내가 견딜 수 없었던 것은 늙어가는 그녀의 모습을 보는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녀의 노쇠는 나를 감동시켰다. 그녀가 죽고 없는 지금 내 머리에 떠오르는 그녀는 매혹적인 젊음이 아니다. 내가 다정하게 손을 잡아주지 않으면 텔레비전을 볼 수 없었던 그 여인이다.
-본문 248p
그리고 그 후 시몬이 먼저 삶을 마감한 후 그는 젊은 여인 카롤 아미엘과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고 그가 67세때 그녀로부터 그의 아들 발랑탱을 얻게 된다.
여기, 내 옆에 있는 이 꼬마 아이가 내 삶의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그래, 내가 네 아빠다’라는 실감이 나려면 꼬집어보아야 했다. 이 아이는 늦게 세상에 나왔지만, 그는 내 아이이고, 그 아이로 인해 나는 기뻐서 미칠 것만 같다. 그러니, 내가 다시 노래를 부른다면, 그것은 발랑탱을 위해서일 것이다. 주위에 비록 5천명이 있어도, 그 아이의 귀에 다바디의 이 찬란한 말을 속삭여 주기 위해서일 것이다.
한나절이 우리를 가르고 있구나,
발랑탱, 너는 이른 새벽,
나는 지는 저녁이란다, 내 사랑하는 아이야. -본문266p
이 책은 또한 그의 외아들 발랑탱을 위한 책이기도 하다. 어린 아들에게 늙은 아비로서 줄 수 있는 모든 것을 주고 싶어하는 마음...... 꽃과 같이 화려한 젊은 시절을 보냈고 꽃들과 사랑을 했던 자신의 지난날을 담담하게 고백한다. 애틋하다.
그러나 이런 그에게 프랑스의 한 여인이 그의 아이를 낳았다며 친자소송을 냈다. 이미 사후였지만 1997년 그가 죽은지 6년만에 법원은 그의 무덤을 파헤쳐 유전자 검사를 하였다. 결과 99.9% 몽땅과는 유전자가 맞지 않았지만 살아 생전 그의 여성 편력의 막을 내리는 사건이기도 했다.
가을이면 어김없이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고엽”. 낙엽소리와 인간의 외로움을 내면 깊숙이 끌어당기는 이 샹송을 올해는 일찍 듣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