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 안에 심겨진 가시나무...우리 모든 인생들의 삶에는 자신만의 가시나무가 심겨져 있는듯하다. 어떤 가시나무는 심겨진 나를 피가 나도록 아프게 만들고 어떤 나무는 자신보다 주변의 사람들에게 면도날처럼 날카로운 가시로 찌르고 공격을 하기도 하고 어떤 가시는 자신과 주변을 초토화 시키기도 한다..가시나무로 인하여 인생에 길을 걸어가면서 긴장도 되고 잘 가꾸어 가시나무의 가시가 자신과 타인을 공격하지 못하도록 아주 부드러운 솜털같은 가시로 만드는 기술을 우리는 배워야하리라..마치 진주조개가 자신의 몸에 굴러떨어져온 작은 이물질을 밀어내기보다 자신의 몸에서 이물질을 감싸는 물질을 연속하여 뿌리고 감싸서 이물질이 영롱한 빛을내는 인고의 진주로 만들듯이 우리 자신들도 언제나 우리의 가시나무를 기도하며 잘 가꾸어 간다면 아주 행복한 가시나무를 가꿀수 있으리라.."내 안에 심겨진 가시나무"의 작가 원의숙님 처럼 평범한 우리들의 삶의 조각 조각마다 담겨진 깊은 이야기속에는 남들에게 말 못할이야기와 나만의 고통스런 이야기도 담겨있다. 어찌보면 우리네 인생이 원의숙님보다 더 험난하고 고통스러운지도 모른다. 작가가 걸어온 인생의 길목마다 거룩하신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보호하심을 보게된다. 그의 삶의 하나님의 사랑이 담겨있음을 이 책을 읽으면서 알아간다. 하나님께서 함께하는 인생엔 결코 실패가 없다는 명쾌한 답안도 "내 안에 심겨진 가시나무"에도 잘 나와 있다. 나는 작가보다 아주 조금더 일찍 태어나서 비슷한 시기를 걸어가고 있으며 나의 지나온 흔적들 속에 지우고픈 기억과 아품도 참 많은듯하다 한편으로는 참 못나고 미련하게 살았다는 생각에 때때로 얼굴이 붉어지기까지 한다. 이런 나에게도 주님께서 오셔서 거룩한 자녀를 삼아주시어 몇번인가 넘어져 쓰라린 육신을 안고 울고 있을 때 언제나 나를 일으키시고 안으시고 싸매신분이 바로 작가 원의숙님이 만난 그 하나님이라는 것이 너무 감사한다. 이 한권의 책속에 담겨진 아프고 행복하고 즐겁고 슬픈 이야기들이 다는 아닐것이고 이 책을 읽는 이들의 삶의 흔적들과 비슷하리라. 하나님의 사랑을 알아가는 귀중한 사랑이야기. 원의숙님의 신앙간증 이야기는 또 다른이에게 힘이되리라 믿는다. 이 순간에도 다른곳에서 작은 상처로 고통스러워 하는이들이 이 책을 읽고 힘과 용기를 얻기를 기도한다. 이 책을 나의 교회에 초신자 교우께 선물하고 그분이 바로 서가는 지랫대처럼 사용하라고 읽혀주련다. 참 행복한 마음을 가지게 하는 책~~~~
|
|
하나님을 만난 것도, 육신의 가시(자신의 질병과 소아당뇨를 가지고 태어난 둘째, 조이를 양육하는 것)를 가지고 살게 된 것도, 사랑하는 엄마를 잃게 된 것도, 모두 하나님의 은혜로 여기면서 하루 하루를 하나님께 의지하면서 살아가는 저자 원의숙님의 수기 간증을 읽으면서 신앙인의 모습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보게 되었다.
믿음은 하나님 뜻안에서 바라는 것들이 실제로 이루어지기를 믿는 것이라 했는데 이저자의 삶을 볼 때 정말 진정으로 하나님의 뜻가운데 생각을 해보려고 노력하는 모습 속에 하나님께서 함께 하셨음에 감사드리며 우리의 곤고한 삶 속에서도 항상 진리와 선의 푯대가 되시는 하나님께서 주뜻 안에 있는 우리의 삶이라면 꼭 손붙잡아 주신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끼면서 나의 신앙의 여정에도 풀리지 않는 실타래들로 인해 내안의 생각으로 괴로워하지 않으며 하나님 뜻안에서 기도하며 날마다 승리하는 삶이 되기를 간절히 기도해 본다.
성숙한 신앙이란 이렇게 모든 것의 근원이 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확신하면서 주님의 깊은 뜻을 알아가려 노력하는 삶이라 생각한다. 주님의 깊은 뜻을 헤아리려고 생각을 하다보면 내안의 가시였던 것들, 나를 비수로 찌르는 상황과 사람들도 역시 하나님께서 나를 주님 안으로 부르시려는 단계의 여정이었음을 깨닫게 될 때 감사와 주께 영광 돌리며 기쁨으로 살아갈 수 있음을 고백한다. 그러나 또 다시 내게 닥쳐오는 많은 시련의 순간들이 있을 때에는 여전히 힘들고 외롭다. 그때마다 성령의 함께 하심으로 늘 승리할 수 있도록 주께서 은혜 충만함으로 함께 하여 주시기를 기도드린다. 오늘도 내가 감당해야 할 나만의 십자가는 분명 있다. 그것이 가장 사랑하는 남편과 아이들이 될 수도 있고, 너무 미운 주변의 사람들일 수도 있다. 그리고 신앙생활을 함께 하는 목회자와 성도들이 될 수 도 있다. 원의숙님처럼 자신에게 주어지는 육체의 가시가 될 수도 있고, 하나님 향한 마음으로 신앙생활하지만 생각처럼 그뜻을 이루지 못하는 자기자신때문에 괴로워 할 수도 있겠지요. 그러나 내가 꼭 지어야만 하는 나만의 십자가를 꼭 넘어서야만 하나님의 그크신 사랑과 깊은 뜻을 깨달아 늘 승리할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저역시도 내안의 십자가를 어떻게 지는 것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바인지를 오늘도 주님께 지혜를 구하면서 이 믿음의 여정을 한걸음씩 내딛습니다. 주님만 바라보며 나아갈 때 우리가 가야할 방향을 인도해 주시고 힘주시는 주님을 만나 승리하는 이땅의 삶이 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
|
책을 읽고 삶이 평탄하기만 한다면 우리는 하나님께 감사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감사하는 삶을 살겠다고 항상 다짐하지만 알게 모르게 내가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보다 내 속에 나의 대한 자랑과 교만이 더 많이 자리잡고 있음을 느꼈습니다. 원의숙님은 자신의 허물을 어느 것 하나 감추지 않고 다 쏟아 놓으셨습니다. 그러나 그녀의 고백이 부끄럽지 않은 것은 저자에게 있는 허물이 저에게도 같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책을 읽으며 저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인간적인 노력으로 병을 고칠려고 하고, 하나님의 구원을 높였던 저자가 끝이 없는 고통에서 죽음을 선택하는 모습에서 저 또한 그렇게 하지 않았을까 생각했습니다. 저자가 허리의 고통이 다시 시작되고 끝이 없는 절망에서 울부짖고, 고퉁 중에 하루 24시간을 누워서 지내야만 했습니다. 그 때 하나님은 저자를 버린 듯 했습니다. 방언의 은사를 받고 교회안의 자매들에게 방언을 열어주는 하나님의 도구가 되었던 저자는 원인을 알수없는 허리의 진통으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사람이 되고 끝이 없는 절망의 나락으로 빠져들며 사랑하는 가족들과도 담을 쌓고 교회를 정하지 못해서, 그리고 질병으로 인해 예배를 들이지 못함으로 영적으로 메말라가는 장면에서는 저도 한숨이 나왔습니다. 하나님이 떠난 듯 했습니다. 죽기로 작심하고.. 자신이 기도로 나아갔던 장소를 죽음의 장소로 지정하며 죽음을 바랬을 때.. 하나님은 구원에 대해서 깊이 생각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난 후 저자는 자신에게 임했던 하나님의 은혜와 예전에 가졌던 구원 받은 백성으로써의 열정을 다시 떠올리며 자신의 문제가 육체의 질병이 아니고 영적으로 메마른 상태임을 깨닫고 하나님께 다시 나아갑니다. 여전히 고통가운데 있으면서 금요기도회를 나가고, 새벽기도를 힘겹게 드리는 장면에서 뜨거움을 느꼈습니다. 다시 예배의 자리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기 시작하자 육체의 질병은 하나님께 나아가는 장애가 되지 못했으며 고난이 축복이라는 진정한 의미를 깨닫게 됩니다. 하나님이 떠나신 것이 아니라.. 저자가 하나님을 바라보지 못했음에 지금까지 더욱 큰 고난을 받았던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높여드리기 보다 자신이 높아질려고 자신의 자아를 깨닫고 말씀으로 하루하루를 돌아보며 더욱 하나님 앞에 깊이 나아갑니다. 저자를 따라가면서 저자에겐 임한 하나님의 뜻이 저에게도 나타났습니다. 저자와 같이 하나님의 일을 한다고 하면서,, 나는 단지 도구일 뿐이라고 거짓된 고백을 했던 지난날들을 뒤돌아보며 나 자신또한 얼마나 많은 달콤한 말로 겉으로는 하나님의 의를 속으로는 나의 의를 드러냈는지 깨달았습니다. 인간이란 참 어리석은 존재이며 그 어리석은 인간을 길이 참으시는 하나님.. 그리고 그 분의 끝없는 사랑과 기다리심을 보았습니다. 은혜를 받아도 잊혀먹고, 고통을 맛 보고난 후에도 잊혀먹고 자신의 옮은대로 행하는 죄악된 모습이 저자뿐만 아니라 우리모두에게 있지 않은지 진단해 봐야 할 것입니다. 조이가 3살 때 평생질병인 소아당뇨를 진단받고 저자가 한 아름다운 고백을 기억합니다. 완변한 조이를 자신에게 맞겼으며, 아직 나타나지도 않은 합병증에 대한 두려움으로 떠는 저자에게 하나님은 아직 나타나지도 않은 일로 두려워하냐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마지막에 나온 말 처럼 하나님이 고치지 못할 질병은 없습니다. 하나님을 믿고 나아갈 때 하나님은 우리의 걸음을 가볍게 하실 것입니다. 저자는 가시나무가 하나님이 주신 축복임을 고백합니다. 누구나 한개 쯤의 가사나무가 있을 겁니다. 나를 찌르는 가시나무의 고통을 볼 것이 아니라 가시나무를 허락하신 하나님을 바라본다면 나의 가시나무는 나를 하나님께 더욱 가까이 이끌게 됨을 다시 한번 느낍니다. 재발된 고통에서 하나님의 치유를 믿고 선포했을 때 하나님이 치유하신 것 처럼 가시나무를 넘어서는 하나님의 치유를 바라봐야 겠습니다. |
|
손톱 끝에 가시가 박히거나 가시가 돋으면 정말이지 죽을 맛 인 것을 경험이 아니라도 우리는 어렴풋 이지만 확실히 안다.. 보드라운 살에 박힌 가시라니 닿기만 해도 소름 끼치도록 온 몸에 느켜지는 아픔, 고통이라는 표현이 무색할 정도의 무서움.아~ 소름돋움. 예수님께서 우리의 삶에서 빠진다면 그 고통을 어디에 비추며 무슨말로 표현해야 할 것인가? 한 여인의 삶속에서의 생생한, 전쟁같은 치열한 고통과의 싸움 그 보다 더 심한 영적 싸움을 승리한 후 감사함으로 써 내려간 이야기.한번쯤이 아니라 무조건 아무이유없이 꼭 읽으시라고 읽어 보시라고 권하고 싶다. 내안에도 가시나무가 있겠지 라고 생각하기 이전에 난 하나님께 기도한다. "하나님 제발요 저에게만은 우리 가족에게만은 내 아이들에게만은 안돼요" "하나님 아시잖아요 제가 얼마나 연약한지 .조그만 흔들림에도 힘없이 맥없이 무너지고 쓰러지고 못 일어나고 울고불고 난리인거 아시잖아요" "그리고 무엇보다 하나님 전 뭔가를 감당할 만한 그릇이 아니라는거 아시죠?" 이런 기도들이 쏟아져 나왔다. 하나님께서 고통중에 함께하시며 하나님께서 고통 후에 더 큰 축복을 예비하시며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자에게 시련을 통하여 더 큰 믿음을 주신다고 아무리 말해도 난 여전히 "하나님 전 아닙니다 전 아니예요 전 못해요 아시잖아요"를 외치기에 바쁘고 분주하고 눈물로 호소를 하는 나 자신을 본다. 하나님께서 다 하시겠다고 그저 믿고 따라 오라고만 하시는데도 불구하고 난 여전히 "하나님 무서워요 난 못해요 다른 사람 시키세요 이 세상 살면서 요기까지 하나님 믿고 걸어 온 것 만으로도 잘 하고 있잖아요 더 무엇을 바라시는데요?" 라며 떼를 쓰고 드러누워 통곡을 한다 나는 빼 달라고 그냥 이대로 가 좋다고..울어버린다 이것이 내가 가진 아니 가졌다고 여겼던 믿음의 크기이다.가시나무가 자랄 믿음의 땅이 없다 참 내 믿음, 내가 믿음 이라고 생각했던 습관적인 마당만 밟았던 행동들은 얼마나 터무니 없고 부질없는 너무 왜소한 것들이었단 말인가? 내 입술로 고백했던 그 많은 고백들이 내 온 맘으로 고백했던 찬양들이 아무것도 아니라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그렇지만 그것이 너무 왜소하여서 내 스스로가 생각 해도 너무 작아서 하나님께 죄송하고 미안하고(이럴 자격도 없으면서) 그럴지라도 나를 내 가족을 붙들고 계시고 인내하고 계심에 감사하며 감사한다. 원의숙님의 삶처럼 파란만장한 삶만이 있는것이 아니라는 것에 감사한 내 모습을 보면서 나도 참 어쩔수 없는 인간이구나 아니 죄인이구나 싶은 맘이다. 그래서 또 감사한다. 내 삶속에 우리가족속에 간섭하신 하나님, 그 당시엔 전혀 생각지 못했지만 지나고 난 후에 돌아보니 하나님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이 한 곳도 없음에 감사한다. 고통속에서 하나님을 향한 그 믿음을 아니, 하나님께서 고통중에 서 있는 가정을 놓아 버리지 않으시고 인내하고 계시었음에 감사한다. 우리가족에게도 하나니의 인내하심과 하나님의 계획하심이 있음에 감사한다. 하나님의 계획하심을 내 인간적인 생각의 틀에서 짜 맞추지 않기를 기도한다. 우리 가족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하심을 밝히 알아서 그 길을 열심히 걸어갈 수 있게 하실 하나님 감사합니다.영원히 하나님의 울타리에서 벗어나지 않게 하소서. |
|
표지에 나와있는 저자의 모습에서 긴 시간 병마에 시달린 모습은 정말 찾아보기 어렵다. 또 나이어린 딸이 평생 짊어지고 갈 큰 병이 있다는 사실을 엿보기도 어려운, 평안한 얼굴이다. 바로 이 평안함이 지금 그녀가 누리고 있는 삶의 한 모습이라는 것을 책을 다 읽고나서 느낄수 있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있지만 그 많은 사람들의 수만큼 그들에게 다가가는 하나님의 섭리도 헤아릴수 없을만큼 많다고 생각한다. 그녀에게 가지고 계신 하나님의 섭리는 감히 나같은 사람은 감당할수 조차 없을것이라고 단정지어 버릴정도의 지독한 병마와의 싸움을 통한 귀한 사랑이었다. 성경에서 고난의 대표적인 인물은 바로 '욥'이다. 기와로 몸을 긁는 엄청난 고통과 자녀가 모두 죽어버린 참담한 상황... 아마 저자의 느낌도 그 욥과 같지 않았을까! 아무도 없는 미국에서의 힘겨운 유학생활중에 그녀는 뜨거운 체험을 겪으면서 교회에서 중요한 직분을 감당하게 된다. 그러나 그녀에게 찾아온 허리통증은 어떤 검사로도 원인조차 밝혀지지 않는 고통의 시작이었다. 여자가 아이를 낳을 때에 느끼는 고통이 10이라면 저자는 평소에는 늘 2-3의 고통이 있었으며 약간의 무리에도 10정도의 통증에 고통스러웠다고 한다. 가장 강력한 진통제인 몰핀으로도 억제되지 않는 통증을 5년이나 겪으면서, 그녀의 사랑하는 둘째아이의 소아당뇨 판정도 함께 받게 된다. 자녀가 있는 사람은 그 자녀가 아플 때의 부모의 심정을 짐작할수 있을것이다. 나 또한 내 아이들의 질병으로 인해 눈물로 기도의 단을 쌓은 부모의 한사람으로 그녀의 심정을 미루어 짐작할수 있다. 자살까지 생각할 만큼의 극심한 고통과 가족과의 불편한 관계속에서 그녀는 하나님을 붙잡았다. 끝이 보이지 않는 질병의 고통, 그 고통의 터널에서 그녀는 신실하신 하나님을 바라보았다. 물론 처음부터 그 믿음이 쭉 이어온것이 아니라도 신앙의 굴곡이야 누구나 겪는 부분이 아니겠는가! 중요한것은 그녀는 그러한 고통의 한 가운데서 하나님의 손을 꼭 잡고 있다는 것이다. 자신의 의를 드러냈던 자신을 회개하며 하나님 앞에 늘 바로서고자 노력하는 그 모습에 나 또한 감사의 기도가 흘러나온다. 지금도 그녀의 이는 아직 투병중이지만, 그녀는 그 가운데서 하나님의 임재를 느끼며 평안을 누리고 있다.
하나님의 섭리와 그 하시는 일을 어느 누가 알수 있을까! 나의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수많은 알수 없는 일들중에서도 가장 확실한 것이 있다.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노니 재앙이 아니라 평안이요 너희 장래에 소망을 주려는 생각이라 (렘 29:11)" 하나님의 엄청난 사랑.... 우리에게 평안과 소망을 주시는 하나님을 찬양하며, 저자의 믿음의 모습을 닮기 소망한다. |
|
우선은 이 책을 읽으면서 참 많이 마음이 아팠습니다. 정말 한 사람의 인생에 이처럼 많은 고난이 있었다는 사실에 대해서 사실 좀 슬펐습니다. 암 재발로 인한 어머니의 죽음, 끝나지 않은 극심한 허리통증, 소아 당뇨에 걸린 아이......이 많은 고난들을 담담히 이겨낸 지은이는 지금은 그 고난들마저 하나님의 축복이라고 말합니다. 힘들 때 하나님께 의지하고 전적으로 모든 것을 맡긴다는 것은 왠지 당연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런 상황이 되면 자신의 잘못을 회개하고 더 믿음을 굳건히 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 힘듬이 보통으로 지나칠 만한 것이 아닐 경우에는 하나님께 등을 돌리는 경우도 자주 보게 됩니다. 어느 책의 제목처럼 하나님이 정말 나를 사랑하신다면 왜 나에게 이런 큰 고통을 주시는 것일까하는 생각이 당연히 들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은 나를 사랑하시지 않고 이 고통을 나에게 준 하나님을 원망하면서 서서히 멀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모든 것들을 하나님이 의도하신 것이라고 생각하고 또 그렇게 믿습니다. 그러니 그 고통 속에 담긴 하나님의 뜻을 파악해야 겠지만 인간인지라 눈 앞의 고통이 먼저 보이는 것입니다. 그 고통 너머에 있는 하나님의 큰 뜻을 인간의 그릇으로 알아차리기에는 많은 무리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지은이처럼 인내하면서 다시 하나님께로 더 굳은 믿음으로 돌아 오는 사람들도 많이 있을 것입니다. 저자도 많은 고통들을 겪어 내면서 하나님께 원망도 하였습니다. 갈수록 심해지는 고통과 괴로움을 참지 못해 마지막으로 '죽음'이라는 단어까지 생각할 정도로 힘든 생활을 해야만 했던 지은이. 하지만 지금은 자신이 처한 이 상황들에 대해 믿음의 눈으로 보고 대처하고 있습니다. 고통 중에 희망과 신앙의 힘을 소중하게 느끼고 또 느끼게 됩니다. 또한 고통 중에 자신을 전적으로 주님의 손에 맡기지 못한 자신을 되돌아 보고 있습니다. 고통 속에서 빠져 나올 수 있는 길은 역시 말씀과 기도였습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이 책을 쓰게 되었다는 말씀을 읽으니 작은 일 하나도 하나님의 인도하심이라는 생각을 다시 한 번 더 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솔직히 고통이 싫습니다. 고통이 축복이라고 하셔도 말입니다. 되도록이면 저에게서 고통을 없애주십사고 기도하는 초보적인 신앙을 가지고 있습니다. 아직 전적으로 맡기지 못하는 것이지요. 이 책을 읽으면서 참으로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과연 나라면 이라는 생각을 수십 번도 더 했습니다. '가시를 보배로 만드시는 하나님'이라는 문구가 내내 가슴에 남아있습니다. |
인간이 당하는 시련 중에서 가장 견디기 어려운 것은 '끝이 보이지 않는 고통'이 이라고 생각한다. 도무지 끝날 것 같지 않은 고통은 사람을 지치게 하고 절망하게 한다. 육체적인 고통과 경제적인 어려움을 당하더라도 회복할 가능성이 손바닥만하게라도 보이면 인간은 '희망'을 붙잡으며 견딘다. 그러나 가도 가도 끝이 없는 고통의 연속이면, 그 고통이 점점 가중되면 회복의 의지는 꺽이고 좌절하기 마련이다.
[내 안에 심겨진 가시나무]의 저자는 둘째 아이를 낳고 생긴 산후통으로 아기를 안아 볼 수도, 살림을 할 수도 없는 극심한 통증을 당하며 13개월 동안 누워만 지낸다. 그런 와중에도 피아노 반주 봉사를 거르지 않고 기도와 말씀 묵상을 쉬지 않는다. 기적적으로 병상에서 일어서지만 다시 찾아온 허리 통증은 다시 그녀를 자리에 눕게 만든다. 엎친 데 덮친 겪으로 둘째 딸아이 조이는 3살에 평생 질병인 소아당뇨판정을 받아 이중고에 시달리게 된다. 자신의 몸 하나도 가누기 어려운 상황에 조이의 혈당을 하루 네 번 이상 검사하고, 인슐린 주사를 놓고, 두세 시간 간격으로 세 번의 식사와 세 번의 간식을 준비하고, 탄수화물 양을 잘 맞춰야 하는 엄청난 짐을 안게 된 것이다.
암으로 떠난 엄마의 죽음에 하나님의 뜻이 있었듯 자신과 아이의 육체적 고통에 숨겨진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려 몸부림치는 과정이 눈물겹다. 끝 간 데 없는 고통은 우울증과 자살 충동, 남편과의 갈등으로 나타나 그녀를 벼랑 끝으로 몰고가지만 결국 깊은 말씀묵상을 통해 살아나기 시작한다. 남편과의 관계가 회복되고 하나님과 친밀하게 교제하며 날마다 '감사'를 말한다. 아직도 허리 통증은 여전하고 조이의 소아당뇨도 그대로이고 달라진 게 없지만 기뻐하며 감사를 고백한다. "지금 나의 고난은 더 이상 고난이 아님이 틀림없다. 고난의 끝은 현재의 내 어려움과 고통이 사라진 때가 아니다. 하나님이 내게 고난을 더 이상 아픔과 괴로움이 아닌 기쁨의 축복으로 받아들일 그때가 바로 고난의 끝이자 축복의 시작이라는 지혜를 주셨기 때문이었다." 내가 본 최고의 고백이며 가장 아름다운 고백이다.
그리스도인들은 고난을 당하면 고난에 감춰진 하나님의 계획과 섭리를 감지하고 그것을 깨닫기 위해 엎드린다. 그러나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고난의 섭리를 발견하는 것은 아니다. 끝까지 인내한 자, 마지막까지 견디며 엎드린 자만이 그 오묘한 뜻을 발견하게 된다. 저자는 끊임없는 고통에서 가족의 소중함과 타인의 고통을 바라보는 법을 배우고, 말씀으로 응답하시는 하나님을 만나고,사명을 붙들고 비전을 보았다. 그리고 여전한 고통 가운데에서도 감사하는 참 믿음을 소유한다. 고난이 끝난 후에 하는 감사는 누구나 다 할 수 있지만 고난 중에 감사는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그러기 때문에 고통 가운데 드리는 저자의 감사와 찬양은 무한 감동을 준다. 아픔과 슬픔, 환난과 괴로움의 가시나무를 선하게 사용하시는 하나님의 깊고 크신 사랑이 원의숙 저자와 조이를 통해 세상에 널리 전해지길 기도드린다. |
|
누구나 인생을 살아가며 짊어지고 가야 할 짐이 있게 마련이다. 하지만 그 아픔과 고통을 어떻게 생각하고, 받아들이는가에 따라 삶은 하늘과 땅차이로 달라지는 것이라 생각한다. 책을 읽기 시작할 때쯤 세상은 참 불공평한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에 가슴이 먹먹해지고, 답답해짐을 느끼기도 했지만 내 안에 심겨진 가시나무는 비단 저자 한 사람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삶이란 본래 그런 것이 아닌가.. 생각지도 못한 괴로움들이 느닷없이 나타나 아무런 준비도 없는 상태에서 구렁텅이로 빠져 들때가 있는가 하면, 괴로움이란 이름속에서 헤어나올 수 없도록 자신 스스로를 더욱 괴롭힐 수도 있게 만든다. 저자의 험난하고, 고달픈 인생 이야기를 읽어가면서 나라면 어땠을까하는 생각에 현실의 내 자신을 생각해 본다. 가슴이 메어오도록 아프고, 힘이 들면서도 정작 내가 찾아야 할 방향을 찾지 못하고, 나를 회복시키실 수 있는 분은 오로지 하나님 한 분이라는 사실을 애써 외면한 적도 있었다. 상처입은 몸과 마음에 새살을 돋아나게 해주실 분은 오직 주님뿐이라는 사실을 왜 더 빨리 인정하지 못했던 것일까... 하나님을 외면할수록 나의 마음은 분노와 미움으로 더욱 가득 차게 된다는 사실을... 그 때는 왜 몰랐을까... 언젠가 극장에서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란 영화를 보고 온 기억이 난다. 영화 장면 하나하나가 실제와 너무 흡사하다란 느낌에 몇 년이나 지났어도 아직까지 생생하게 기억에 남아있는 영화였다. 그 영화를 보며 그 때 나는 채찍을 휘두르고, 가시 면류관을 씌우며 그 분을 으스러트린 우리의 악행으로 말미암아 참기 힘든 그 고난과 역경을 이겨내신 아버지의 그 크신 사랑을 평생 내 마음속에 품고 살아갈 것이란 다짐을 했었다. 우리가 살면서 겪는 고통은 그 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받으신 고통과는 감히 비교할 수도 없을 만큼의 아무것도 아니란 사실을 얼마나 절실하게 느꼈었던지... 고통스러웠던 시간들은 긴 시간이 흐른 후에도 다시 기억하고 싶지 않기 마련이지만 그 고통으로 인해 자신이 깨닫지 못했던 것을 알게 된다면 우리는 그 고통의 의미와 가치를 평생 기억해야 하지 않을까 저자는 가시나무야말로 불순종하는 자에게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긍휼이라고 이야기한다. 고통을 겪을수록 자신의 연약함에 대해 더 자세히 알게 되고, 내 작은 상처와 멍에 하나하나까지도 모두 알고 계시는 분은 바로 주님뿐인 것이다. 우리가 흔들리고 괴로워할 때마다 하나님은 당신의 품을 한껏 열어놓으시고 우리를 기다리고 계신다. 앞으로 나는 내 안에 심겨진 가시나무를 하나님과의 소통방법이라 생각할 것이다.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시는 그 마음으로 받아들일 것이다. 이 책을 통해서 내 삶의 가시나무에 대해 되돌아보며 나를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과 축복이 얼마나 큰 것인지에 대해 다시 한 번 마음깊이 새겨볼 수 있는 시간을 갖을 수 있게 되었다. 여호와 나의 하나님.. 내가 당신을 진실로 사랑합니다... |
|
- 들어가는 말 다른 사람은 평생을 통해서 겪어도 다 겪지 못할 고통을 몇 년 사이에 겪는 사람들을 보며 많은 사람들은 혀를 끌끌 차며 걱정을 하기도 하지만, 전생에 무슨 죄를 저질렀기에 저렇게 벌을 받을까? 라는 소리를 하기도 한다. 세상 사람이 겪는 모든 고통이 죄의 결과라는 논리로 다가서는 사람들의 이야기임을 우리는 알고 있다. 그러나 하나님의 생각은 다르다. 알 수없는 이유로 고통을 당하는 것을 하나님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함’이라고 말씀하신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함이라고 할지라도 피부로 느끼는 고통과 정신적으로 느끼는 고통이 너무나 심하면 자기 부정을 하게 된다. 즉, 더 이상 살고 싶은 생각이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되며 심한 우울증에 빠지기도 한다. 그런 와중에도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고 하나님께 더욱 다가가며 전적으로 하나님께 매달릴 수 있음은 포기를 할 줄 아는 사람이기에 가능하다. ‘소망이 있는 포기’를 했다는 말이다. ‘소망이 있는 포기’는 자기를 비움이요, 자기를 내려놓음이요, 자기를 살리는 길이다. 저자는 ‘소망이 있는 포기’를 제대로 할 줄 아는 사람이었음을……. - 책 속으로 이 책은 비록 병상에 있지만 말씀묵상으로 주님과 깊이 교제하는 평신도의 감동적인 간증집이다. 둘째 아이를 낳고 생긴 산후통으로 현재 5년 여 동안 병상에 있는 저자는 허리 통증으로 오랫동안 앉아있을 수도, 걸을 수도 없어서 살림을 전적으로 할 수도 없는 상태이다. 그녀의 둘째 딸아이는 만 3세에 소아당뇨판정을 받아 하루 24시간 아이의 먹는 것과 모든 상태를 챙겨야 한다. 자신의 몸도 가눌 수 없는 그녀에겐 엄청난 스트레스이며 과중한 짐일 수밖에 없다. 그 과정에서 저자는 우울증으로 자살의 충동도 겪었지만 깊은 말씀묵상을 통해 살아계신 하나님과 친밀하게 교제함으로 승리한 고백들을 이 책에 기록하고 있다. - 나가는 말 바울 사도의 고난이 내게 유익이라는 고백이 저자에게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는가를 생각하게 했다. 하나님께서 택하신 백성을 어떻게 들어 쓰시는가도 알게 하는 소중한 내용이었다. 살다 살다 별 고생 다해본다고 하지만 저렇게 많은 고통을 당하면서도 하나님께 전적으로 의뢰 할 수 있음이 얼마나 감사한지 깨달을 수 있었다. 하나님이 택하셨다면 그 대상이 누구이든지 그는 이미 하나님의 존귀한 축복의 통로이다. 저자는 독자에게 이렇게 말하고 싶은지도 모르겠다. “당신은 하나님의 존귀한 축복의 통로입니다.” 2009. 9. 4. -양미동(나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