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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임(不姙), 불륜(不倫) 그리고 결혼생활이란 이 작품의 선명한 소재에서, 이 각기의 의미들이 지닌 본질, 즉 인간의 본원적 욕망이라는 내재적 가치와 윤리도덕이라는 외재적 가치의 원초적 충돌을 보게 되는 것은 전혀 우연이 아닐 것이다. 진부한 정의이지만 결혼이란 두 남녀가 배우자로서 서로에게 충실하고 부부로서 책임과 의무를 다하겠다는 사회적 약속이다. 이 사회적 약속은 나름 공고한 것처럼 보이지만 진화 심리학같은 거대 담론을 끌어대지 않더라도 인간의 본성을 압도할 만큼은 아닌 것이 분명하다. 바로 ‘불륜’이라는 단어가 존재하는 것처럼.
그리고 ‘불임’이라는 결혼생활에서 발생하는 자연적 이치에 거스르는 단어 역시 결혼의 의미를 배반한다. 사랑하는 이의 아이를 갖고 싶어 하는 여인의 갈망에 어떤 가치척도를 갖다 대어 집착이라거나 지나치다는 평가를 한다는 것은 본원적 섭리에 반하는 영역인지도 모르겠다. 결국 인간이 자신들의 본성을 억제하고 질서라는 사회적 기준을 벗어난 어떤 행위를 정의하는 언어는 불완전하고 모호하며, 절대적 진리이지 못한 결핍이 존재하는 듯하다. 부부의 사랑의 행위가 오직 인위적인 생명의 잉태라는 목적에 맞추어질 경우 그 행위 자체는 수단으로서 의미가 전환되어 본질적 가치의 훼손을 가져오기도 한다.
작품은 이처럼 결혼생활의 근원적 가치가 훼손당하기 시작한 부부의 일상적 내면을 투명한 창을 통해 보다 원초적인 인간의 심층을 들여다보게 한다. 불임치료를 위한 부부의 노력은 실패의 연속이고, 아내 ‘엘리너‘는 자신만의 공간인 세탁실로 칩거하고, 사랑의 의미를 상실해 버린 도구화된 잠자리는 그네들에게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된다. 급기야 남편 ’테드‘는 헬스센터의 트레이너인 매력적 여성 ’지나‘와 육체적 관계를 맺기에 이르고, 이들의 불륜현장을 목격한 엘리너에게는 치명적인 상처가 된다. 이야기는 이처럼 테드와 엘리너 부부의 갈등과 지나를 축으로 하는 이들과의 관계를 여과 없는 진솔한 일상과 내면의 조명을 통해 삶의 진정한 행복과 즐거움, 그리고 이를 막아서는 우리네들의 혼란스럽고 불완전한 의식을 성찰한다.
10년, 20년,... 부부로서 세월을 함께하면서 누군들 갈등과 위기가 없을까. 결혼 초기의 떨림과 열정, 그리고 상대에 대한 성적기대가 어느 순간부터는 사라지고, 그 정염(情炎)이 단지 함께하고 있음으로 인한 평온함과 안락함, 위안으로 변이되는 것을 인정할 수 없다면, 그 강렬한 욕망의 기억으로 불만과 고통이란 불행의 영역을 결코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이 뻔한 이야기와 이해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이 재미있게 읽히는 것은 뜻하지 않은 관점의 시사라 하겠다. “유부남 하고 자는 건 부도덕한 행위가 아닌가?” 하는 엘리너의 지나를 향한 조롱 섞인 방백(傍白)은 부부의 불륜대상인 지나라는 여성에 대한 내면적 갈등에 대한 탐색을 가능케 한다는 점이다. 이는 테드와 지나의 갈망이라는 거대한 축을 구성하여 ‘부도덕한 행위’로서 불륜의 관계에서의 시선이 아니라 이성(理性)의 도덕적 판단, 논리적 거부와 인간의 어찌 할 수 없는 본능적 끌림이라는 욕망에 대한 대결의 성찰로 이끌고 있다는 점이다.
우린 우리의 삶을, 욕망을 통제할 수 있을까? 대부분의 우리들은 결혼제도 속에서 도덕적 일탈을 억압하고 사는데 익숙해져 있다. 그래서 “반갑지만 흥분을 안겨주지는 않는 그 무엇”인 배우자에게서 위안과 위로가 되는 것, 혼자서 중년의 위기를 맞고 싶지 않아 서로 함께 해주길 바라는 그 어떤 것이 보상이 되어주고 또 그렇게 삶을 충실하고 건강하게 유지한다. 그럼에도 “내가 대단한 존재처럼 느껴지게”하는 사람, 나를 특별하게 생각게 하는 사람에 대한 희구, 진정 인생에 충실함은 그 사람과 함께 할 때에야 비로소 가능할 것 만 같을 때, 과연 삶의 행복을 위해 어떠한 선택이 가능한 것일까?
한편, “오전 10시 반 거실 바닥을 뒹굴며 수목기사와 섹스”를 나누는 유부녀, 엘리너의 행동은 남편 테드의 지나에 대한 미련에 질시를 보내는 그녀의 행위와 모순됨에도 정당한 행위로 인식되는 것은 굳이 동서의 문화적 인식의 차이를 떠나서 인간의 원초적 욕망에 대한 부인 할 수 없는 본질적 구성요소, 즉 삶의 본원을 이루는 불가침의 사적 자유라는 관념으로서 이해된다. 그렇다면 내 정신이 위로받는 곳, 내 육체가 위안 받는 곳, 우린 그곳을 찾는 것 아닐까? 그것에 과연 도덕적 잣대를 내미는 것이 무슨 의미를 가질 수 있을까? 세월이 지나 사랑이 바뀌어 다정한 친구, 친정엄마에 느끼는 그런 종류의 사랑이 되어가는 것을 느낄 수 없고, 받아들일 수 없다면 그곳에 사랑은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너무 늦게 깨닫는 사람들.
가질 수 없는 것을 원하게 될 때, 우린 정말 아주 불행 해 질 수밖에 없을 터이다. 정말 쉽지 않은 논제이다. 갈망케 하는 사랑, 성적기대가 고조되는 사랑, 다정한 벗과 같은 위안과 평온을 주는 사랑, 이들 사랑의 우열이 있을 수 있을까? 단순한 이야기 속에 수월치 않은 삶의 의문이 놓여 있다. 섬세한 심리 묘사가 뛰어난 작품이다. 특히 여성적 시각에서 다루어진 결혼 한 여성들의 행복에 대한 고뇌와 갈등과 성취가 사실적으로 그려져 있어 독자의 공감을 높여준다. 스토리의 통속성이 주제와 어우러져 재미있는 소설이 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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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 책의 첫장을 펴보기도 전에 신랑이 먼저 이 책을 개시(?)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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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은 따로 팝니다]제목만으로 책을 본 것은 아니지만 책을 덮고 난 느낌은 행복은 따로 파는 것이 아니라 작은 것에서 감사하며 사는 것이 바로 행복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듭니다. 의사인 테드와 변호사 엘리너 그 둘 사이에 아이가 없다는 것만 빼면 너무나 부러운데 책을 읽다보니 인공수정을 하면서 점점 사이가 서먹 서먹해지면서 테드가 헬스클럽의 강사 지나와 만나는 사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나라면 어떨까 글쎄 아마도 배신감에 엉엉 울고불고 할 텐 데 엘리너는 차분하게 처리한다. 결혼상담사를 만나자고 하고 잠깐 동안 별거를 하자고 한다. 그러던중 엘리너에게 새로운 떨림으로 노아라는 수목기사를 알게 되고 그와 하 룻밤을 보내지만 자신의 몸속에 아기가 자라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테드와 다시 합치게 된다. 이 대목에서는 나 역시 잘 됐다 싶었다 그래 그러면 좋겠다라는 생각과 예쁜 아기 탄생과 지나에게도 좋은 남자가 생겨서 테드를 다시 생각하지 않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운명의 장난이지 아기는 자연 유산이 되고 둘 사이에 또다시 보이지 않는 것이 생겨나기 시작했고 지나의 아들 토비는 테드를 엄마와 연결시켜 주기 위해서 거짓말을 한다. 엘리너의 허락으로 토비가 말한 약속장소에 나가 지나와 로저그리고 새넌이라는 남자를 만나게 되고 테드는 그 남자가 찌른 칼에 찔려 병원에 실려 간다. 이제 끝이나나 싶어서 얼른 읽었는데 테드의 죽음으로 끝이 나는 것이 아니라 엘리너 스스로 어떤 결정을 내리느냐에 따라서 끝이 나는 내용이었다. 과연 엘리너는 어떤 결정을 내렸을까? 아마도 나라면 이혼을 하던지 아니라면 토비라는 아이를 입양해서 키우는 것이 어떨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책을 보고 나서 나역시 내 옆에 있는 남자를 다시 한번 보게 되었고 가족이 있다는 것에 감사함을 느꼈다. 행복은 누군가 파는 것이 아니라 내 스스로가 만들어 내는 것이라는 것을 가슴깊이 깨달았습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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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은 따로 팝니다 제목이 독특하다 행복을 돈을 살수만 있다면 누가 걱정을 하겠는가 아마도 역설적인 표현일것 같다. 엘리나는 우연히 남편에게 다른 여자가 있는걸 알게되고 뒤를 미행한다. 그리고 그녀가 본것은 둘의 불륜장면 그녀는 미행을 하면서도 혼자 상상을한다. 그리고 돌아와서도 남편의 여자에게 어떻게 할지를 상상을 한다. 그렇게 상상을하다 그녀를 찾아가 헬스컨설트를 받기위해 집으로 초대를 한다. 엘리나는 남편과 그녀의 만남을 지켜보고 그리고 그들에게 자신이 알고있다는걸 알린다. 테드는 지나에게 이별을 통보하고 엘리나에게 그 사실을 알려준다. 여기까지 일반적인 통속소설이다.
이들 각자의 생각을 엿본다면 테드 불임치료등으로 엘리나와는 소원해지고 너무힘들때 멋진 여성과의 만남 그리고 엘리나와는 또다른 그녀만의 매력에 점점 빠저든다 그에게 지나는 감정의 늪과 같다. 발을 빼려고 할수록 빠져드니 말이다. 그렇다고 엘리나와 이혼은 생각하지 않는다. 엘리나 아이를 같고 싶어 노력을 하는데 너무 힘들고 지친다. 그래서 남편인 테드에게 짜증만 내고 모든게 무력할때 테드에게 변화를 감지하고 그의 불륜을 확인한다. 그런데 테드를 사랑한다. 이혼은 생각도 하지 않는다. 지나 불륜인줄 알지만 지금까지 불운한 연애 대상들과 다른 남자 아내가 있는걸 알지만 자꾸만 생각난다.
이렇게 각자의 생각이 다르면서도 또 같은 생각을 한다. 이들 부부는 불륜에대한 반응이 너무도 쿨하다. 이런 와중에도 서로 사랑한다고 외친다. 그런데 내게는 그들이 외치는 사랑이 와 닫지 않는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나아닌 다른 사람이 생겼는데 어찌 감정이 저렇게 이성적일수 있나말이다. 물론 엘리나가 완전하게 이성적이지는 않지만 사랑하고 있는 상대에대한 배신에 엘리나같은 반응을 할수 없다. 나같은면 딱 삼류드라마 같은 반응이 나올것이다. 테드 그는 정말 멍청한 바보다 자신이 누굴 사랑하는지 말하지 못한다. 그의 그런 행동때문에 엘리나가 더 상처 받을거란 생각은 왜 하지 않는가 말이다.
결혼생활을 하다보면 힘든시기가 몇번은 있다. 그렇다고 그때마다 테드같은 선택을 한다면 이세상 결혼이 어떻게 유지되는가 말이다. 유혹을 이겨내는것 또한 결혼생활의 약속이 아닐까 그런 약속을 지키지 못할 의지력이라면 과감하게 다른 선택을 해야한다고 생각한다. 테드가 진저리치는 상담들이 미국사회의 많은 부부들이 쿨하게 헤어지는데 많은 영향을 주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이혼을 하는것도 그냥한는게 아니라 조정을 하고 상담을하고 그러는 과정에 감정이 점점 매말라 버리는건 아닌지 상담이 좋은 결과를 도출하기 위해 하는건데 그게 독이 되는것 같으니 참으로 아이러니 한 일이 아닐수 없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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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을 보고 고개를 갸우뚱했다. 처음엔 잘못 읽은건 아닌지 다시 한번 읽어봐도 <행복은 따로 팝니다>였다. 물건처럼 금전거래가 가능한게 아님을 알면서 이런 제목을 붙인 이유는 무얼까?란 의문을 달고 책장을 펼쳤다.
매주 금요일마다 부부문제를 다룬 사랑과 전쟁이란 드라마의 한 장면을 보는 것 같았다. 특히나 불륜 드라마는 많은 여성들의 감정을 자극하면서 울분과 분노를 자아내는데 이 책의 내용 또한 불륜을 다룬 통속소설이다. 변호사로 잘 나가는 엘레나와 남편 또한 족병 전문의로 성공의 자리를 걷는 두 부부에게 위기가 찾아 왔다. 결혼한 후 아이가 생기지 않아 2년 동안 불임클리닉을 다녔지만 임신에 성공하지 못했다. 임신에 성공했다 해도 몇일만에 유산되는 아픔을 겪으면서 부부의 행복은 점점 멀어져만 간다. 엘레나는 세탁실에서 빨래를 빨고 널고 개는 일로, 테드는 헬스클럽을 다니면서 몸매 가꾸는 일에 매달린다. 어느날 엘레나는 테드가 남모르는 여자와 전화통화 하는 것을 듣게 되고, 남편의 뒤를 미행하게 된다. 남편이 도착한 곳은 헬스클럽 트레이너인 지나의 집이었던 것이다. 엘레나는 믿었던 남편의 배신에 그녀도 헬스클럽에 등록하고 자신의 집으로 지나를 초대한다. 자신의 집에서 테드와 지나는 만나게 되고 둘의 밀회는 들통나면서 테드와 엘레나의 결혼생활은 위기에 직면하게 된다.
우리가 드라마나 이혼한 부부에게서 가장 흔하게 보고 듣는 이야기 주제가 아닌가..하지만 이 책에는 드라마와 다른점이 있다. 보는 이의 속을 확 풀어주는 여자들의 다툼이 없다. 남편과의 싸움도 없다. 주인공 모두가 자신에게 벌을 내리고 있다. 서로를 화나게 만든 상대방과 싸우는 게 아니라 자신과의 싸움으로 티격태격한다. 엘레나는 남편을 용서할 수 없지만 그 모든 원인을 제공한 게 자신임을 깨닫게 된다. 인공수정때문에 힘든 시간을 보냈을때 테드는 엘레나에게 최선을 다했지만 엘레나가 받아주지 않았다. 테드에게 무조건 화만 냈으니까..테드 또한 미지근한 성격 탓에 지나와의 관계에서 쉽게 결단을 내리지 못한다. 하지만 엘레나를 사랑한다. 테드는 두사람 모두를 사랑하는 것이다. 엘레나가 조금만 더 테드에게 따뜻하게 대하고 자신의 아픈 속마음을 속시원히 털어 놓았다면 테드는 결코 엘레나를 배반하지 않았을 것이다.
지독히도 남자 운이 없는 지나에게 잠시나마 동정심이 일기도 했지만 테드 곁을 맴도는 행동은 결코 용서할 수가 없었다. 테드의 마음을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엘레나는 테드와 지나, 지나의 아들 토비의 행복을 위해 홀로서기를 결심한다. 엘레나가 그렇게도 원하던 행복한 가족의 구성은 결국 무산되고 마는 것인가란 생각에 마음이 아파왔다. 사랑해서 부부의 연을 맺고 살아가지만 살다보면 사랑보다는 정으로 살아가는 것인데 엘레나가 테드를 붙잡고 놓아주지 않았음하는 바램이었다. 테드와 엘레나 사이에 아이가 없더라도 행복한 부부로 살아가길 바랬는데 내 마음과 다르게 마무리 되어서 안타까웠다. 아픔을 가득 담고 있는 주인공들의 이야기였지만 유머와 재치가 넘치는 말들로 독자들에게 무겁게 다가오지 않는게 이 책의 매력인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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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을 보고 드는 느낌이란 행복을 따로 팔면 사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는 거에요. 정말이지 행복을 파는 가게가 있다면 엄청 잘 될텐데.. 어릴 땐 행복이라는 걸 알지 못하지만 모르기에 더 행복했던 것 같아요. 행복이 무엇인지 생각하고 부턴 정말이지 행복하지 않다는 걸..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이 행복인지도 모르면서 다른 사람의 행복을 쫓아다니고, 상상 속에 존재하지도 않는 행복을 만들어 잡으려고 하니 어떻게 행복할 수가 있겠어요. 결혼이라는 게 사랑하는 두 사람이 함께 하는 약속인데, 요즘은 그 약속이 너무나 쉽게 깨어지는 걸 많이 보는 것 같아요. 수많은 연인들이 결혼을 하고 또 이혼을 하고.. 사랑하면 행복할 거라고, 결혼하면 행복할 거라고.. 생각을 하게 되지만 이상과 현실은 너무 다를 수 있다는 걸 알게 해주는 것 같아요. 이 책을 읽고 과연 결혼생활에 대한 환상을 꿈꿀 수 있을지.. 책에서는 두 주인공이 불임이라는 문제를 안고 있기에 삐걱대는 두 사람의 관계에 비난과 함께 동정이나 연민이 생기기도 하네요. 불행한 가정생활이 그들의 화려한 성공을 더욱 우울하게 만드는 것 같아요. 배우자의 외도를 목격한 순간 우리들은 과연 어떤 생각을 하게 될까요? 폭력적이 되거나 체념하게 되거나 혹은... 사람의 믿음에 대한 배신이야 말로 지울 수 없는 상처가 될 것 같아요. 세 사람의 삼각관계를 보면서 인간관계 속에서 어쩔 수 없는 운명이라는 게 있는 것인지, 아님 모든 것이 자신의 선택에 의한 것인지 알 수가 없네요. 행복이라는 것이 사랑이나 결혼에 의해서 거져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 행복은 스스로 또는 함께 노력을 통해서 얻어야한다는 걸 알게 해주는 것 같아요. 사랑하는 사람과 행복을 사러 가야겠어요. |